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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限界)
2016년 03월 06일 09시 25분  조회:1155  추천:0  작성자: 김태현




중편소설
   (限界)
 
 김도영

처음에는 귀엽고 마음에 와닿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그 이름이 알게 모르게 싫증이 난다. 더우기 불혹의 나이를 넘기면서부터 아기때의 이름이 유치하게 느껴진다.
주인아저씨는 요즘 들어 생활에 권태를 느껴서인지 걸핏하면 아침에 먹다남은 음식을 그대로 던져주어 입맛도 없고 힘도 없다. 심지어 자리에서 일어서려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시도 때도 없이 눈에서 눈물이 자꾸만 흐르면서 눈확이 젖어들어 앞이 뿌옇게 보인다. 그래도 가까이에서 어루쓸어주는 위로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개운해진다. 허지만 그런 위로보다는 차라리 색다른 음식이거나 맛나는 고기붙이를 가져다준다면 얼마나 좋을가? 위속을 파고드는 쓰라림때문인지 맛나는 먹을 거리만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입가에 느침이 질질 흐른다. 입을 꽉 앙다물고 아무리 참고참아도 기름기가 번들번들 감도는 고기붙이가 눈앞에서 알른거려 정말 미칠것만 같다. 조물주가 빚어놓은 흑덩이로 태여나지 못하고 시누런 가죽에 하얀색을 뒤집어쓴 애완견의 몸에서 다리가 네개이고 몸이 휘여지게 둥글고 입은 있어도 말을 못하고 “왕왕!” 짖어대지 밖에 못하는 몽톡한 주둥이를 갖고있는 강아지로 태여난것이 한스럽다.
그러나 사실 나는 행복한 강아지임이 틀림없다.
내가 지금 이 주인아저씨와 함께 산다는 자체가 바로 복인것이다.
주인아저씨는 내 족속을 부르는 호칭인 “강아지”라는 강씨이여서인지 나를 무던히도 고와한다. 처음에는 당장 집밖으로 내동댕이칠 기세로 아줌마한테 성깔도 많이 부렸지만 그래도 손바닥만한 나의 가녀린 몸을 한식경이나 들여다보더니 그런대로 아줌마가 하는대로 내버려두었다.
나는 어느 추운 겨울날에 이 집으로 이사, 아니 팔려왔다.
내가 엄마의 몸에서 태여나 막 한달도 되지 않는, 금방 20여일 밖에 되지 않았을 때 주인은 나를 엄마품에서 떼여내 종이함속에 넣어가지고 장마당으로 갔다. 나는 종이함속에 갇힌채 몸을 옹송그리고 추위에 달달 떨었다. 그나마 길가던 행인들과 장보러 온 사람들이 간혹 들여다보고 따스한 손으로 머리털이며 온몸을 살살 어루쓸어주어 기분이 좋았다.
“아유, 귀엽기도 해라. 낳은지 얼마나 됐어요?”
나는 새우처럼 몸을 곱송그리고 모재비로 누워있다가 갑자기 들려오는 웬 녀인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종이함속에서 기지개를 쭉 켜며 밖을 내다보는데 어느새 녀자의 길고 가는 손가락이 아직도 젖내가 다분히 묻어있는 나의 털에 와닿았다. 녀자의 손은 어쩌면 포근한 엄마의 품과도 같이 따뜻했다.
나는 용기를 내여 녀자의 손바닥에 머리를 들이밀고 온몸을 비비꼬았다. 꼭 마치 이 녀자가 앞으로 나의 주인이 될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던것이다.
“아유, 귀여워라. 요 하얀 털색갈을 봐.”
녀자가 아예 작고 갑삭한 나를 두손으로 받쳐들고 어루쓸며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얼마얘요, 이 강아지가?”
녀자가 지갑을 들추며 흥정하였다.
“금방 에미 몸에서 떨어진지 20일이 되였수다. 그러니 20원만 주시우.”
나는 어쩐지 나를 낯선 녀자에게 팔아버리는, 눈에 허연 눈곱을 달고 꺼벙하게 서있는 늙은 녀자가 한없이 미웠다.
아니, 정말 싫었다.
이렇게 되여 나는 젖도 채 떼지 못한채 엄마와 생리별을 하여 억지로 낯선 집으로 팔려가게 되였던것이다…
새집의 주인아저씨는 시문화체육국 창작실에서 사업하는 작가였는데 이름은 강설환, 가정의 평범한 주부인 녀자의 이름은 김태희, 그리고 외아들로 태여나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있는, 아직 장가도 가지 않은 새파란 녀석의 이름은 강환희였다.
나는 새 집에 오자마자 토토(淘淘)란 이름을 얻게 되였다. 이 이름은 환희가 나에게 지어준것이다. 이렇게 되여 나는 새 보금자리에서 그들과 한 가족이 되여 숙명적인 불행한 이야기를 엮게 되였다.
 
 
갑자기 엄마가 한국으로 간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저도 모르게 주인집녀자는 “엄마”, 주인집아저씨는 “아빠” 그리고 외아들인 강환희는 “형님”이라고 불렀다.
나는 수컷이였기에 당당하게 환희를 형님이라고 부를수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한국으로 간다고 하니 어쩐지 가슴이 허전해나 미여지는것만 같다. 나한테 날마다 밥도 챙겨주고 치장도 해주고 또 목욕까지 시켜주는 엄마인데. 이제 엄마가 한국으로 가게 되면 누가 나를 챙겨주겠는가?
나는 한동안 입맛이 떨어져 도저히 밥을 먹을수가 없었다. 금방 새 집으로 팔려왔을 때와 같은 그런 막막한 기분이였다.
한달도 안되는 가녀린 내가 새 집에 왔을 때는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더우기 전신에 이가 득실거려 가려움증에 시달렸다. 그나마 엄마가 목욕을 시켜주다가 나의 몸에 붙어있는 이를 발견하고 시간이 나는대로 짬짬이 잡아주기에 망정이지 하마트면 이들에게 물려 제명대로 못 살고 죽을번했다.
“토토가 이들한테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렇게 여위였을가?”
엄마는 가슴이 아파하였다. 가끔 아빠도 나를 품에 안고 이를 잡아주면서 윤기나기 시작한 나의 털을 곱게 어루쓸어주었다.
형님은 아예 나를 자기의 이불안에 끌여들여 껴안고 잤다. 그러나 나는 형님의 이불안에 기여들기를 싫어했다. 편하게 잠을 잘수가 없기때문이였다. 쩍하면 태질을 하여 쬐꼬만 내 몸이 이불밖으로 밀려나올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편하게 잠을 잘수 있는 곳은 유독 엄마, 아빠가 함께 주무시는 이불속이였다.
엄마, 아빠의 이불속에 기여들면 그들은 나를 따스한 살결로 품어주었고 내가 아기인양 둘 사이에 눕혀놓고 겨끔내기로 어루쓸어주었다. 때문에 밤마다 엄마, 아빠의 이불속에서 자는 시간이 나한테는 더없는 즐거움이였고 행복이였다.
어느덧 내가 이 집에 온지도 5년이 되였다.
언젠가 텔레비죤에서 볼라니 인간과 우리 동물, 강아지들의 나이는 다르게 구분되는데 이른바 인간들이 일컫는 한해가 우리 강아지들에게는 6년과 맞먹는다고 한다. 그러니 나도 어언 서른살의 불같은 청춘인셈이였다.
그러나 아직도 숫컷의 딱지를 떼지 못하였다. 엄마, 아빠는 내가 짝짓기를 하는것을 거부했다. 물론 나도 이같이 행복한 우리 가족을 떠나 불행이 겹치는 혼자의 삶을 살아갈 용기가 없었다. 또 그렇게 하고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한국으로 나간다니…?
아빠도 례사롭지 않다.
아직 엄마가 한국으로 나가지 않았는데도 아빠는 밥맛이 없다며 가끔 식탁에서 빈 입을 다시는 경우가 빈번했다.
나의 밥그릇도 좀체로 축나지 않았다.
엄마가 한국으로 나가려고 심양주재 한국령사관에 비자신청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우리 집에서는 내내 웃음소리 한번 들리지 않고 무거운 침묵만 감돌았다.
내가 아무리 아양을 떨고 극성스레 아빠와 엄마의 바지가랭이에 매달리며 치근거려도 막무가내였다.
“저리 가. 네가 자꾸 눈에 밟혀서 어쩌겠냐? 괜히 길러가지고… 이렇게 정 많은 놈을…”
엄마가 가끔 나한테 눈을 흘기며 정을 떼기라도 하듯 짜증을 냈다.
얼마나 서운한지 몰랐다.
인간들처럼 말할수만 있다면 나도 “엄마, 가지마! 엄마가 없는 이 집이 무서워!”하고 말하련만.
내가 입을 열면 되려 기막힌 울음소리 밖에 나가지 않았다.
“앙앙! 왕왕왕!”
나는 종래로 식구들앞에서 이렇게 “애처롭게” 울어본적이 없었다.
“얘가…”
엄마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할 말을 잃었다.
“엄마가 없더라도 밥 든든히 먹고 아빠랑, 형님이랑 엄마가 올때까지 기다려. 알겠어?”
나는 엄마의 이 말을 머리속에 새겨두었다. 비록 쉽게 알아들을수 있는 말이 아니였지만 나는 머리와 가슴에 아로새겼다.
엄마는 2010년 3월 20일, 연길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난 엄마를 보내고 외로운 나날을 보내는 아빠랑 형님과 함께 한달, 두달… 1년, 2년을 보냈다. 엄마의 목소리는 아빠가 나를 품에 안고 통화할 때 가끔 엿들을뿐이였다.
 
 
지겹다.
사는것이 이처럼 힘들고 피곤하기는 처음이다.
모르름지기 아빠가 알지 못할 곤혹에 깊이 빠져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5년동안 줄곧 엄마를 대신해 목욕도 시켜주고 또 굶길세라 밥도 챙겨주던 아빠가 어느날 갑자기 술에 만취되여 돌아왔다. 엄마가 한국에 나간후 여직껏 한번도 있어본적이 없는 외람된 행동이였다.
지독한 술냄새에 내가 막 취하는것 같았다. 아빠는 형님이 봐드린 이부자리우에 힘없이 쓰러져 곁에서 맴도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는데 벌겋게 충혈된 두 눈에 하얀 물안개가 보얗게 끼여있었다.
“토토야, 어쩌면 좋으냐? 사는것이 참말로 지겹고 힘들구나. 뭐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갈라져서 살아야 하냐? 우리가… 이것이 그래 숙명이란 말이냐?”
아빠의 술취한 목소리가 오래동안 머리속에 맴돌았다. 도저히 무슨 말씀인지 아리숭하였다.
“엄마가… 엄마가 아직도 3년을 더 벌고 오겠다는데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아빠의 한숨소리가 나의 예민한 두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나는 어깨가 축 처져있는 아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빠가 하도 안스러워 나는 위안의 말이라도 해주려고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아빠한테 다가갔다.
“아빠, 너무 속상해 하지 마세요. 엄마는 꼭 돌아올거예요. 나도 엄마의 당부대로 아빠랑, 형님과 함께 엄마를 기다리겠어요. 왕왕!”
그러나 나의 입에서는 왠지 “왕왕!”하는 개소리밖에 나가지 않았다.
“기특한것이… 그동안 너라도 곁에 있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모르겠다. 토토야!”
아빠는 나의 머리털을 어루쓸며 감격해하였다.
“아빠, 힘내세요. 왕왕!”
나는 아빠한테 어리광을 부리며 아빠의 바지가랭이에 매달렸다.
“아빠, 옷 벗고 주무세요. 왕왕!”
나는 한사코 아빠의 구겨진 바지가랭이를 물고 뒤로 당겼다.
“후-, 요것이… 그래 토토야, 아빠가 옷 벗고 누울게.”
아빠는 드디여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벗고 이부자리우에 누웠다.
“아빠, 왕왕!”
나는 아빠의 이불안에 기여들며 목이 쉬도록 불렀다.
그러나 아빠는 길게 한숨만 톱더니 어느새 드렁드렁 코를 골며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나는 은근히 엄마가 야속해났다. 이젠 그만 벌고 집에 돌아와서 가족이 단란하게 모여 살면 얼마나 좋은가. 정말 나같은 동물의 두뇌로서는 도저히 리해할수 없었다.
형님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아빠가 출근하고나면 형님은 하루종일 혼자서 외롭게 자기만의 고독을 씹군 하였다.
왠지 형님이 안스러워보였다.
형님은 한창 나이인 20대의 청년인데 왜 하루종일 집에만 들어박혀있지?
나름대로 내가 몇번이나 물어보아도 형님은 묵묵부답이였다. 아마 형님은 나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것 같았다.
형님은 텔레비죤에서 눈을 떼더니 말없이 이부자리우에 쓰러져 코를 골고있는 아빠를 넋놓고 바라보며 가슴이 꺼지게 긴 한숨을 토해냈다.
“후- 우리 아버지가…”
“형님, 왜요? 혹시 아빠가 몸이 불편해요? 아니면 엄마가? 왕왕?”
나는 형님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쳐다보면서 불안한 생각이 갈마들었다.
“이 강아지가… 왜 안하던 짓을 하나? 집식구들한테 종래로 짓지 않던 네가 요즘들어 왜 이래?”
형님이 오히려 걱정스러운지 나의 잔등을 어루쓸며 답답해했다.
“아니예요. 아빠가 걱정스럽고 엄마가 그리워서 그래요. 왕왕!”
나는 참을수가 없었다.
“형님, 왕왕!”
그러나 형님은 아는지 모르는지 돌아앉아 텔레비죤에만 눈을 박았다.
“토토야, 너도 우리 집에서 10년 넘게 자랐으니 이젠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
문득 형님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내 나이를 걱정하였다.
“나는 이 집에서 형님과 함께 아빠를 모시고 사는것이 정말 좋아요. 왕왕!”
나는 연신 형님의 다리에 감겨들며 재롱을 부렸다.
참말이지 내 나이에 이런 어리광은 당치도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형님과 아빠에게 부리는 어리광이 좋았고 또 그들의 따스한 손길이 너무 살갑게 느껴졌다.
“토토야, 엄마가 보고싶지? 나도 엄마가 보고싶어 미치겠다. 왜 우리 조선족은 이렇게 떨어져서 살아야 하는 불행한 민족인지 모르겠다. 언제면 우리 모두 한집에서 오손도손 함께 살수 있을가? 날마다 아빠의 힘빠진 처량한 모습을 볼 때마다 내 가슴이 막 미여진다.”
형님의 울먹울먹한 목소리가 아프게 귀구멍을 파고들었다.
“형님, 엄마는 꼭 돌아오실거예요. 엄마가 그랬잖아. 아빠랑 형님이랑 함께 기다리라고. 난 엄마의 말을 믿어. 왕왕!”
나는 형님을 위안하며 형님의 곁에 몸을 뉘였다.
이젠 나의 몸도 례사롭지 않게 많이 무거워졌다. 나이가 나이인만큼 나도 가끔 몸이 불편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형님이 간혹 소화제를 먹이며 내 건강을 챙겼지만 인간도 아닌 내가 사람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산다는것은 어불성설이였다. 그만큼 나는 언제부터인가 엄마, 아빠, 형님과 함께 동물이란 개념을 떠나 사람인듯한 환각속에서 버젓하게 살아왔던것이다.
이젠 아빠의 눈치만 봐도 아빠가 성을 내는지 아니면 귀찮아하는지를 제꺽 판단할수 있다.
형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형님은 종래로 나한테 욕 한번 하지 않았다.
아빠가 간혹 “망할놈의 강아지!”라고 욕을 퍼부었지만 나는 그런 욕쯤은 대수로와하지 않았다. 나를 욕하는것으로 아빠의 스트레스가 풀린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아빠는 작품을 창작하는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아빠는 매일 아침부터 팽이처럼 바삐 돌아쳤다. 일찍 일어나서 밥을 짓고 나한테 먹이를 챙겨주고 또 출근해야 했다. 직장의 일이 힘든지 저녁이면 량어깨가 축 처져 집으로 돌아왔다. 허지만 종래로 형님한테 힘들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위가 아파 며칠동안 입맛을 떨군채 아빠가 챙겨준 밥을 꼬물만큼도 먹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었다가 아빠한테 혼난적이 있었다.
그날도 아빠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하얀 이밥에 돼지고기국을 끓여서 사발에 꼴딱 담아주었다. 그러나 어쩐지 자꾸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꺼워서 나는 종내 밥 한알도 먹지 못하였다. 저녁이 되여 퇴근한 아빠는 그것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토토야, 왜 오늘도 밥을 먹지 않았냐? 너마저 이렇게 아빠를 속태우면 어떡하니? 이놈의 강아지가 정말… 자꾸 이러면 래일부터는 밥을 챙겨주지 않을거야.”
아빠는 화가 났는지 사발에 그득 담겨져있는 돼지고기국밥을 뜨물바게쯔에 왈칵 쏟아버렸다.
“토토가 낮에 자꾸 토하는것 같습디다. 얘도 속이 부실한가봐요.”
형님이 안스러운지 나를 두둔해서 한마디 하였다.
그러나 아빠는 비여버린 나의 밥그릇을 씻으면서 아닌보살을 했다.
“아까운 쌀밥을 던질게면… 정말이지 이런 짐승은 키우는것이 아니야. 말도 못하는 짐승한테 괜히 정만 들어가지고… 후-”
아빠는 긴 한숨으로 형님의 말에 대답하였다.
나는 어쩐지 아빠가 한숨짓는 모습을 쳐다볼수 없었다. 괜히 아빠의 스트레스가 더 쌓이게 한것만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아빠, 내 몸이 예전같지 않아서 그래요. 이젠 몸이 부실해서 간혹 형님이 주는 소화제를 먹어도 막무가내예요. 왕왕!”
내가 목이 쉬도록 아빠한테 사죄했지만 입에서 “왕왕!”하는 개소리밖에 나가지 않았다.
“이젠 우리 토토도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봐. 사람이 늙으면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것처럼 토토도… 역시 세월은 속일수가 없는가봐.”
아빠는 이렇게 탄식하며 다시 나의 밥그릇에 밥을 담아주었다.
“그래도 먹어야 살아. 이눔의 강아지야!”
아빠는 걱정스레 겁에 질린 나의 두 눈을 들여다보더니 나를 끄당겨 눕혀놓고 배를 살살 문질러주었다.
“너라도 건강하게 엄마를 기다려야지 않겠냐? 토토야?”
아빠는 밥사발을 한켠으로 밀어놓으며 자리에서 움쭐 일어셨다.
나는 아빠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려면 억지로라도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식기앞에 다가섰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이는 속이지 못하니라…”
나는 아빠의 말씀을 다는 리해하지 못하였지만 어쩐지 아빠의 건강이 나빠진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빠는 저녁을 드는둥마는둥 몇술 뜨더니 그대로 숟가락을 놓아버렸다.
“요즘들어 아버진 통 음식을 드시지 않네요. 어디 아프세요?”
형님이 숟가락을 놓고 물러앉는 아빠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아니야, 환절기여서 그런가봐. 곧 다가오는 겨울을 걱정하다보니 자연히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어. 단위일도 그렇고.”
아빠가 힘없이 대답했다.
“힘들면 좀 쉬세요. 엄마도 집에 없는데… 아버지의 건강이 좋아야 우리 가족이 있는것이 아닙니까?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죠? 큭!”
갑자기 형님이 쿨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여서 어쩔바를 몰랐다.
“형님, 제발 아빠한테 가슴 아픈 모습을 보이지 말아요. 아빠가 얼마나 힘들면 저러겠어요? 왕왕!”
나는 밥알을 씹다말고 목이 꽉 메여 아빠와 형님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날 밤 아빠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였다.
나도 자지 않고 가만히 이불안에서 아빠의 행동을 살펴보았다.
아빠는 엄마가 없는 지난 몇년 동안 많이 여위였다. 튼실하던 허벅지도 살이 빠져 가죽만 주글거렸다. 혼자서 집살림을 하랴, 출근하랴 많이 힘들었던가보다.
나는 달리 어떻게 위로해줄수 없어 혀바닥으로 아빠의 허벅지를 살살 핥아주었다.
“허허, 이눔의 강아지가… 토토야, 정말이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다독이는 정성에 감복하는거야. 엄마가 있을때는 너에게 밥을 챙겨주는 엄마를 그처럼 따르더니 인제는 나를 따르는구나. 넌 정 많은 동물이야.”
아빠는 내 행동이 대견스러웠는지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아빠, 절대 아프지 말고 건강하세요. 그래야 엄마가 돈 많이 벌어가지고 돌아와서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지요. 왕왕!”
나도 마음속으로 아빠의 건강을 기원하였다…
 
 
갑자기 목이 심하게 꺾이며 숨을 쉴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앞다리가 풀썩 꺾이는것 같았는데 이젠 뒤다리마저 세울수가 없었다.
“웬 일이지? 아빠, 왕왕!”
나는 안깐힘을 다해 주무쉬고있는 아빠를 불렀다.
그러나 아빠는 피곤한지 이불도 덮지 않은채 따듯한 구들에 잔등을 붙이고 굳잠에 깊이 빠져있었다.
“아빠, 일어나세요. 아빠! 왕왕!”
나는 힘없이 아빠를 계속 불렀다.
온몸이 엿가락처럼 해나른나며 전신의 기운이 다 빠져가고있었다.
나는 점점 오그라드는 앞발과 맥이 풀려 아운해진 뒤다리를 굽힌채 간신히 아빠한테로 대굴대굴 굴러갔다.
“아빠, 일어나세요. 왕왕!”
나는 고개를 쳐들고 깊은 잠에 빠진 아빠의 얼굴을 핥으며 애타게 부르짖었다.
한참후에야 아빠는 나의 혀바닥에 의해 젖어드는 턱을 문지르며 두눈을 번쩍 떴다.
“어? 웬 일이야? 아니, 이건 석탄가스냄새가 아니야?”
아빠는 후닥닥 뛰쳐일어나더니 무릎걸음으로 방문앞으로 기여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순간 겨울의 신선한 공기와 함께 강한 바람이 집안으로 후욱 날려들어왔다.
“아빠…!”
나는 혼겁해서 정신을 차릴새도 없이 아빠의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토토야, 너도 석탄가스를 먹었구나.”
아빠는 나를 한손으로 붙안고 후둘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옮겨놓으면서 엎어지듯 밖으로 뛰쳐나갔다.
 갑작스레 찬바람을 맞자 나는 당장 두 눈알이 밖으로 튀여나오는것만 같았다. 나는 아빠의 품에 안긴채 머리를 떨어뜨리고 가슴이 콩닥콩닥 심하게 뛰는것을 가까스로 진정했다.
“토토야, 고맙구나. 네가… 네가 어떻게 나를 깨울 생각을 다 했냐? 네가 이 아빠를 살렸구나.”
아빠는 나를 가슴에 꼭 껴안은채 울먹거리며 연신 치하했다.
나는 그러는 아빠를 바라보며 엄마의 말씀대로 아빠를 지켜냈다는 자호감에 가슴이 뿌듯해났다.
“아빠, 정말 다행이얘요. 우리 살아났어요. 왕왕!”
나는 아빠의 가슴에 안긴채 기운없이 대답했다.
저녁에 아빠가 부엌에 불을 지핀것이 흐린 날씨때문에 대기압이 높아져 밤중에 석탄가스가 부엌으로 쏟아져 나왔던것이다.
그후부터 아빠는 각별히 조심했고 나도 명심해서 밤을 잘 지키리라고 속다짐했다. 만약 밤귀가 빠른 나까지 잠에 곯아떨어진다면 불행이 눈섶밑에서 떨어질수 있었다. 하여 나는 항상 낮과 밤의 교대를 위해 낮에만 자고 밤에는 자지 않기로 하였다. 그렇게라도 아빠를 지키고 우리 집을 지키는것이 바로 나의 임무이고 또 엄마의 당부를 체현하는것이기도 하였다. 더구나 엄마의 요청에 의해 얼마전에 형님까지 한국으로 간 마당에 말이다.
나는 아빠가 출근하고나면 낮에 그날의 잠을 보충받고 밤이면 두눈을 부릅뜨고 우리 집의 안녕을 위해 밤을 새웠다.
아빠도 생목숨을 둘이나 잃을번한 석탄가스중독을 경험하고나서 우리도 빨리 아빠트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말씀했지만 아직 새집을 마련할만한 목돈을 장만하지 못한 형편이여서 부득불 계속 단층집에 눌러앉아 살수 밖에 없었다.
아빠는 늘 하루빨리 엄마가 목돈을 벌어가지고 돌아오기만 학수고대하였다.
세상에 돈이란 무엇이기에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질하는지 모르겠다. 입으로는 곧잘 “개도 안먹는 돈”이라고 하면서도 그 돈에 미쳐있다. 사실 엄마도 그 돈때문에 한국으로 나간것이 아닌가. 만약 속담처럼 누가 나한테 돈을 던져준다면 나는 비록 먹지는 않더라도 제꺽 물어다가 엄마, 아빠한테 가져다줄것이다. 그렇게라도 한국에서 뼈 빠지게 돈을 벌며 고생하는 엄마를 돕고 또 혼자서 힘들게 집을 지키고있는 아빠를 도와주고싶었다.
물론 이 모든것은 절대 있을수 없는 일이겠지만 나는 하루도 이같은 망녕된 생각을 하지 않은적이 없다.
사람으로 말하면 내 나이가 벌써 70살도 넘었으니 많이 늙었다. 그러나 나는 오래오래 우리 가족과 함께 살고싶다. 언젠가 엄마와 형님이 한국에서 돌아와 온 가족이 오붓하게 모여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다시 어릴때처럼 그들의 사랑속에서 귀여움을 받으며 “만년”을 행복하게 보내고싶다.
과연 그날이 언제가 될지?…
 
 
형님은 한국에 가더니 모질게도 소식 한번 보내오지 않았다.
사실 형님과 내가 함께 한 시간이 제일 많았다. 물론 아빠도 마찬가지였지만 날마다 출근하고나면 나와 형님이 서로 의지하면서 집을 지켰던것이다. 때문에 형님이 한국으로 떠나고나니 집안이 텅 빈것같아 허전하기 짝이 없었다.
간혹 형님이 일이 있어 밖으로 나가면 나는 불안하여 출입문을 넋놓고 바라보며 꼼짝않고 앉아서 형님이 돌아올때까지 기다리군하였다. 형님이 한국에 나간후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늘 형님이 당장 문을 떼고 들어올것만 같아 문앞에서 맴돌았다.
헌데 한국이란 도대체 어디에 있으며 어떤 나라인지는 모르지만 형님은 한국에 가더니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이젠 아빠의 말씀대로 출입문밑에 엎드려 형님을 기다리는것도 고역이였고 너무나 힘겨웠다.
아빠도 나와 같은 심정인지 한숨만 풀풀 내쉬였다.
“토토야, 한국은 바다건너에 있는 먼 나라란다. 그러니 무작정 기다리지 말거라. 참, 세상에 너같은 강아지는 처음이야.”
아빠의 말씀에 나는 한국이란 나라가 먼곳에 있는 외국이란것을 알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나는 엄마와 형님을 유혹하여 데려간 한국을 저주하게 되였고 끝이 보이지 않는 안타까운 기다림과 한탄으로 가슴을 적시며 그리움을 달래였다…
 
 
어느덧 형님이 한국으로 간지도 6개월이 되였다.
형님이 떠날때는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가을이였는데 벌써 하얀 겨울도 다 가고 따스한 봄이 싱그러운 아지랑이를 산과 들에 피워올리며 기별도 없이 찾아왔다.
겨우내 석탄먼지와 가스냄새가 진동하던 지긋지긋한 집안공기는 아빠가 열어젖힌 창문으로 깡그리 사라졌다.
아빠의 얼굴도 한결 밝아보였다.
그러나 나만은 여전히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형님은 아직도 한국에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빠도 인젠 외기러기의 삶이 점차 지겨워나는것 같았다.
비록 겉으로는 전혀 내색을 내지 않고있었지만 아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면 금방 알수 있었다. 아무리 미욱한 동물일지라도 아빠와 함께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그것도 모르겠는가.
아빠가 갑자기 멋을 부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엄마가 사놓고 간 옷만 입고다니던 아빠한테 여러가지 옷과 더불어 고급양복까지 생겼다. 여직껏 아빠는 종래로 자기절로 옷을 산적이 없었다.
아빠의 거동이 많이 가벼워졌고 얼굴에도 한결 윤기가 돌았다.
나의 미련한 생각으로도 아빠한테 녀자가 생긴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멋을 부리겠는가? 그러나 나는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고 아빠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관찰하였다. 아빠의 옷은 물론 발에 꿰고 다니는 양말의 퀴퀴한 냄새까지 맡아가면서.
어쩐지 아빠한테 버림을 당하는것만 같은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여전히 아침에 출근하면 저녁이 되여서야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군했다. 아빠의 일상은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판에 박은듯이 예전과 똑같았다. 하여 나는 가족을 올곧게 지켜가는 훌륭한 가장인 아빠를 공연히 의심한 자신이 미웠다. 하기야 세상에 우리 아빠와 같은 남자도 드물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이 만들어낸 속담과 같이 불 때지 않은 굴뚝에서 연기가 날리 없었다. 아무리 아빠에 대한 의심을 부정하려고 해도 아빠에게서 풍기는 고기비린내같은 향수냄새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아빠는 종래로 몸에 향수를 뿌리지 않는데 뜬금없이 웬 향수냄새란 말인가. 이는 틀림없이 밖에서 누군가에 의해 묻혀온것이였다.
나는 미칠것만 같았다.
지금까지10여년을 아빠와 한집에서 살면서 그처럼 엄격하고 당당한 남자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었다. 심지어 나의 짝짓기마저 거부하면서 내가 망측한 행동을 보이면 비자루를 쳐들던 아빠였다.
나도 수컷인지라 가끔 암컷이 그리워 아빠의 기다란 베개를 붙잡고 흘레를 한답시고 촐싹거리군하였다. 그때마다 아빠의 비자루에 얻어맞아 깨갱깨갱명을 지르며 걸상밑으로 달려가서 몸을 사렸다.
그런데 아빠한테 녀자가 생기다니? 물론 내 나름대로의 추측이지만 이건 엄마에 대한 배신이 아닌가.
불현듯 아빠가 축은하게 느껴졌다.
엄마가 한국에 간지 8년 짓이 되도록 아빠는 내 앞에서 외간녀자를 껴안고 “남자”를 호령한적이 한번도 없었다. 아빠도 남자인데 기나긴 세월 독수공방하면서 얼마나 외로웠겠는가. 나도 가끔 암컷이 그리울 때면 미칠것만 같은데. 그 심정을 충분히 리해할것 같다. 허나 우리 동물과 달리 인간들은 정조란것이 있는데 함부로 녀자를 사귀면 안되지 않는가? 그러다가 엄마가 알게 되면…
내가 걱정하던 일은 끝내 터지고말았다.
어느날 저녁, 술에 알딸딸하게 취한 낯선 녀자가 아빠와 함께 우리 집으로 왔다.
“토토야, 엄마다. 엄마가 돌아왔어.”
아빠가 등뒤에 선 녀자를 앞으로 끌어당기며 나한테 인사를 시켰다.
“뭐?! 엄마라고? 아니야, 왕왕!”
아무리 두눈을 크게 뜨고 찬찬히 보아도 엄마가 아니였다.
“왕왕! 우리 엄마가 아니야. 누구야? 왕왕!”
나는 당장 달려들어 낯선 녀자를 물어뜯기라도 할듯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오, 네가 토토구나. 아주 귀엽게 생겼네.”
낯선 녀자가 술냄새를 푹푹 풍겼다.
나의 이름까지 부르며 아빠의 등뒤에서 머리를 내민 낯선 녀자에게서 익숙한 향수냄새가 풍겼다. 바로 아빠의 몸에서 가끔 나던 그 향수냄새가 분명하였다.
첫눈에 녀자가 매우 예쁘게 생겼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몸에 빨간 원피스를 걸치고 함박꽃같이 살풋이 웃는 모습이 아주 복성스러워 보였다.
나는 대뜸 기고만장하던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아빠만 퀭하니 쳐다보았다.
“아빠, 정말 녀자가 생겼어요? 그럼 엄마는요…?”
나는 아빠 앞에서 녀자한테 감히 덤벼들수 없었다. 더구나 내 이름까지 부르며 귀엽다고 하는데 웃는 얼굴에 침을 뱉겠는가.
“이것보오. 녀석이 벌써 제집식구를 알아보고 친해지려고 하는걸…”
아빠가 다가와 나의 머리털을 어루쓸며 잔등을 톡톡 도닥여주었다.
“정말요?”
낯선 녀자까지 다가와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나의 머리를 어루쓸려고 하였다.
“왕왕! 아줌마는 안돼.”
나는 아빠의 손에서 벗어나 대뜸 무서운 기세로 낯선 녀자를 사납게 째려보았다.
“아유, 이 녀석이…”
낯선 녀자가 덴겁하여 뒤로 주춤 물러서며 손을 움츠렸다.
“이 녀석이… 안되겠다. 정 이러면 이불장안에 가둬놓는다.”
아빠가 무섭게 호령하면서 나를 덥썩 끌어안았다.
“아빠, 아니야. 아줌마가 나한테 손을 대려고 해서 그런거야. 아빠, 왕왕!”
나는 한사코 이불장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네발을 버둥거리였다. 허지만 아빠는 막무가내로 나를 이불장안에 밀어넣고는 거세게 문을 닫아버렸다.
“아빠, 나를 가두지 마세요. 아줌마한테 안 그럴게. 왕왕!”
이불장안에 갇힌채 아무리 소리질러도 아빠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콩알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시커먼 이불장안에서 낯선 녀자를 저주하며 발톱을 세워 유리창을 박박 긁어댔다.
아빠는 그 낯선 녀자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호호… 그러세요?”
녀자도 가끔 아빠의 말에 동조하면서 꺄르륵 귀맛좋게 웃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우리 집에 녀자가 찾아온것이다. 그것도 말쑥하게 생긴 멋장이 녀자가.
녀자의 냄새가 좋았다.
나까지 녀자의 냄새에 이처럼 민감한데 아빠야 말해 더 뭘하랴?
나는 아빠의 녀자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또 어쩐단 말인가? 아무런 반항도 할수 없고 더우기 쩍하면 갇히는 몸인데 난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나는 더는 발톱을 세워가지고 유리창을 허비지 않았다. 다만 한쪽 눈으로 일광등불빛이 하얗게 부서지는 방안을 숨을 죽이고 내다보았다.
아빠와 낯선 녀자가 나란히 연분홍 비단이불우에 다리를 포개고 앉아있었다. 녀자는 무엇이 그렇게도 좋은지 아빠의 어깨에 자기의 몸을 기대며 연신 까르르 웃어댔다.
아빠는 그러는 녀자의 함박꽃같은 얼굴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홀연 덥석 껴안고 엄마와 하던 뽀뽀까지 서슴없이 하였다. 녀자는 아빠가 하는대로 자기의 몸을 맡긴채 이불우에 스르르 무너져내렸다.
아빠의 손에 의해 녀자의 빨간 원피스가 벗겨졌다.
녀자는 한떨기의 불타는 함박꽃이였다.
빨간색 브래지어가 녀자의 볼록한 젖가슴에서 두송이의 함박꽃으로 피여 도톰하게 입을 열고있었다.
드디여 아빠의 손이 브래지어속으로 파고들자 녀자가 숨 넘어갈듯한 신음을 토해냈다.
“헉, 왕왕!”
나도 숨이 넘어갈것만 같았다.
녀자의 말쑥한 알몸이 어느새 눈앞에서 하얗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얼핏 보아도 녀자는 너무나 매혹적이고 아름다웠다.
아빠의 거친 손길에도 녀자는 아무런 반항도 없이 두 다리를 배배 꼬며 아빠의 몸밑에서 숨박꼭질이라도 하려는듯 아빠를 품고 놓지 않았다.
“아빠, 왕왕!”
나는 도저히 참을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런 장면은 처음이였던것이다.
오랜만에 아빠는 엄마와만 하던 적라라한 짓거리를 낯선 녀자와 서슴없이 저지르고있었다.
“아유, 급해하기는…? 좀 천천히 서두르세요. 옷도 벗지 않고…”
애교가 다분한 녀자의 목소리가 은방울을 굴리듯 유리창에 맞혀 살갑게 들려왔다.
“어, 당신이 벗겨줘야지…”
아빠는 응석둥이 어린애마냥 녀자앞에 몸을 맡겨버렸다.
녀자가 웃몸을 일으키더니 아빠의 적삼과 팬티를 벗기는데 벌써 아빠의 “남자”가 우뚝 솟아있었다.
“호호호…”
녀자가 호들갑을 떨며 야한 웃음을 흘렸다.
이윽고 알몸뚱이 두 남녀가 서로 부둥켜안고 이불우에 쓰러졌다.
“아니, 아니야. 안돼. 왕왕!”
나는 도저히 두 눈을 뜨고 그 광경을 볼수 없었다. 허지만 아빠는 나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녀자의 몸우에 올라탔다.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며 이불장에 머리를 틀어박았다.
아빠는 한식경이나 낯선 녀자의 몸을 탐하더니 맥없이 한켠에 떨어져나갔다. 녀자는 두 눈을 꼭 감고 우유빛갈의 몸을 반듯하게 뉘인채 아빠의 곁에 그린듯이 누워있었다.
나는 미칠것만 같았다.
“왕왕! 아빠, 왕왕왕!”
나는 연신 이불장의 유리창을 발톱으로 긁어대며 사납게 부르짖었다.
“이놈의 강아지가 한동안 잠잠하더니…  어두컴컴한 이불장안에 갇혀있으려니 무척 답답한 모양이구나.”
아빠가 옷을 주섬주섬 입으면서 중얼거렸다.
“잠깐만요. 제가 밖으로 나간 다음 토토를 꺼내주세요. 아무리 강아지라도 저의 알몸을 보여주기 싫어요.”
녀자가 이불장으로 다가오려는 아빠를 제지시켰다.
“어, 그래? 허허, 소심하기는…”
아빠는 녀자의 말을 곰상곰상 잘 들었다.
녀자는 빨간색 원피스를 몸에 걸치더니 문가로 다가갔다. 아빠는 느닷없이 녀자를 꼭 껴안더니 소리나게 뽀뽀를 했다. 녀자는 행복에 겨워 함박꽃웃음을 피워올렸다.
이윽고 삐이익- 하고 방범문이 여닫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숨막히는 이불장안에서 잠시나마 아빠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가만히 도적질해 보고나니 나는 머리속이 뒤죽박죽이 되였다. 다만 뜬금없이 엄마의 얼굴이 떠오를뿐이였다.
어쩐지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나는 몸을 옹송그린채 스르르 두 눈을 감았다.
터벅터벅!
아빠의 무거운 발걸음소리가 이불장으로 서서히 다가오고있었다…
 
 
너무나 황홀했다.
나는 가벼운 깃털처럼 어딘가로 둥둥 떠가는것만 같았다.
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아빠와 형님을 바라보며 너무나 즐거웠다.
이게 얼마만인지 기억에도 아리숭했다.
엄마의 품이 이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엄마의 품은 너무나 따스했고 또 엄마의 향기는 세상에 다시없는 싱그럽고 풋풋한 냄새였다.
나는 간혹 이렇게 엄마의 품에 안겨 엄마의 향기를 맡는 자신이 좋았고 또 엄마의 냄새를 느낄수 있다는것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행복했다.
엄마도 언젠가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토토는 꼭 우리 집에서 살게끔 태여난 강아지인것 같아요. 어디 가서도 얘만한 강아지는 보지 못했어요. 얘는 강아지인것이 아니라 사람의 간을 녹여내는 요물단지라니깐요.”
나도 엄마의 이 말씀에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갑자기 어디선가 비릿한 냄새가 풍겨와 코를 찔렀다. 그러나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이런 냄새를 몰고 올 바람도, 물건도 길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살폈다.
“아니, 이 냄새는… 왕왕!”
나는 깜짝 놀랐다.
비릿한 냄새가 분명히 엄마의 입안에서 새여나왔던것이다.
“웬일이지? 엄마가…?”
엄마가 언제부턴가 가끔 위가 아프다고 한것은 사실이였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 심한 역겨운 냄새를 풍기지?
나는 엄마의 품에서 길게 몸을 늘구고 가만히 엄마의 배에 귀를 가져다대고 조심스럽게 소리를 들어보았다. 마치도 엄마의 위속에서 무엇인가 심하게 태동하며 끓어번지는것만 같았다.
“엄마, 어디 아파? 왕왕!”
나는 참을수 없어 엄마한테 물었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흑흑흑… 엄마가 많이 아파요. 난 어쩌면 좋아? 왕왕!”
나는 엄마가 걱정스러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엄마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부지런히 앞서가는 아빠의 뒤만 따랐다.
갑자기 엄마가 몸을 휘청거리며 길섶에 주저앉았다.
“웬 일이세요 엄마? 왕왕!”
나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엄마를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엄마가 가슴을 부여잡고 손으로 입가를 훔쳤다. 입술에는 빠알간 피가 가득 묻어있었다.
“엄마, 왕왕!”
나는 엄마의 품안에서 풀쩍 땅에 뛰여내리며 근심스레 물었다.
그러나 엄마는 말없이 울컥울컥 길가에 무엇인가 토해내기만 했다.
순간 역겨운 피비린내가 코를 쿡 찔렀다.
“엄마 왜 이래? 왕왕!”
나는 기절할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여전히 앞에서 형님과 무엇인가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며 부지런히 갈길만 재촉하였다.
“아빠, 형님! 왕왕!”
나는 아빠와 형님을 목터지게 불렀다. 하지만 목소리가 무엇엔가 꽉 막혀 입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아빠, 형님! 흑흑흑… 왕왕왕!”
나는 연신 아빠와 형님을 부르며 앞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서 걸어가던 아빠와 형님이 보이지 않았다.
“아빠, 왕왕! 형님, 왕왕!”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헌데 감쪽같이 엄마도 사라지고 없었다.
순간 사위가 온통 칠흑처럼 새까만 어둠에 잠기는가싶더니 눈앞도 분간할수 없는 검은 장막이 온 누리를 뒤덮었다.
“아빠, 엄마, 형님! 왕왕왕!”
나는 있는 힘껏 앞으로 뛰쳐나가려고 앞발을 모두었으나 전신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허허, 이눔의 강아지가 꿈을 꾸고있는가봐. 꿈속에서도 무엇이 좋아서 짖어대냐? 토토, 토토야!”
누군가 내 몸뚱이를 건드리는것 같아 간신히 두 눈을 떠보니 아빠가 나를 부르며 흔들어 깨우고있었다.
내가 아빠의 곁에서 껌빡 졸았던것이다. 입가에 느침이 게발린것을 보니 자면서 꿈을 꿨나보다.
“아빠, 엄마는? 형님은? 왕왕!”
나는 아직도 꿈속에서 헤여나오지 못하고 비몽사몽간이였다. 피를 토하던 엄마의 그 창백한 얼굴이 떠오르고 그런 엄마를 길가에 내버려둔채 무정하게 사라지던 아빠와 형님의 야속한 모습이 눈앞에서 얼른거렸다.
그런데 이것이 꿈이였다니.
“후-”
나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꿈인것이 천만 다행이였고 또 행운이였다. 그만큼 꿈에 목을 놓던 일이 현실이 아니라는것에 너무나 행복했다.
“왜? 꿈에 누굴 만나거냐? 혹시 엄마와 형님을 만난건 아니겠지? 이제 오후가 되면 만날건데…”
아빠의 웃음 띤 얼굴이 한결 밝아보였다.
“뭐라구요? 엄마와 형님이 돌아온다구요? 그게 정말이얘요? 와- 좋아라. 왕왕!”
나는 너무나 좋아 선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였다.
“허허허, 강아지도 이처럼 제 집 식구가 온다니 좋아하는데… 우린 언제면 헤여지지 않고 한집에서 영원히 함께 살게 될지? 후-”
아빠의 얼굴에 잠간 그늘이 비끼는가싶더니 인차 다시 밝아졌다.
“토토야, 오후에 아빠가 공항으로 마중가야 하니 잠시 혼자 있거라. 오늘 3시 30분 비행기에 엄마랑 형님이랑 돌아온다는구나.”
아빠는 나의 머리털을 어루쓸고 다독여주면서 무척 즐거워하였다.
“좋아요, 아빠. 왕왕!”
나도 흥분에 들떠 뾰족한 주둥이로 많은 말들을 쏟아냈지만 오로지 “왕왕!”하는 소리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이제 저녁이면 엄마와 형님을 만날수 있다는 생각에 허리가 늘씬하게 펴졌고 또 네다리에 기운이 부쩍 솟았다.
이게 얼마만인가? 엄마는 7년 아니, 8년이였고 형님도 거의 1년이 되였다.
그동안 엄마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가? 엄마는 나를 알아볼가?
물론 나는 엄마의 갸름한 닭알형 얼굴과 굵지도 약하지도 않은 몸매와 항상 매끈한 엄마의 긴 다리를 기억하고있다.
형님도 마찬가지이다. 형님의 냄새만 맡아도 아니, 방문을 떼고 집안에 들어서는 거동만 보아도 대뜸 누구라는것을 익히 알아낼수 있다.
나는 점심밥도 거른채 어서 빨리 오후가 되고 저녁이 되기만 앞발을 싹싹 비비며 기다렸다.
아빠도 언제 집을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즐거웠으면 집을 나설 때마다 매번 내 머리털을 쓰다듬어주던 아빠가 그것마저 깜박 잊었겠는가.
나는 그런 아빠의 심정을 충분히 리해할수 있었다.
그러나 아빠에 대한 우려와 걱정은 완전히 떨쳐버릴수 없었다. 바로 우리 집에서 있은 낯선 녀자와의 만남때문이였다.
일반적으로 남녀간의 만남은 한번이 있으면 두번이 있기 마련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빠는 그번의 단 한번으로 무우를 자르듯이 단칼에 잘라버리고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물론 나 모르게 밖에서 만났는지는 몰라도 다시는 그 녀자를 우리 집으로 데려오지 않았다.
엄마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엄마가 두려워진다.
한번이든 두번이든 아빠는 결국 엄마 몰래 외간녀자와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어찌됐든 오늘 하루는 애끊는 그리움과 두려움이 동반하는 희비극이 교차된 시간이 될것 같았다.
 
 
내가 우려했던 일은 끝내 터지고야 말았다.
인간들의 속담에 “밤에 한 일은 쥐가 엿듣고 낮에 하는 일은 새가 엿듣는다.”는 말이 있다. 결국 아빠는 그 녀자와의 불륜이 들통나고 말았다. 그 녀자의 남편이 자기의 안해가 우리 아빠와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것을 알았던것이다.
그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아빠의 단위를 찾아가서 국장을 상대로 행악질을 하였다. 남편이 있는 녀자와 사사로이 성관계를 가지는것은 남의 가정을 파괴하는 “중혼죄”라며 길길이 뛰였다. 심지어 그 녀자마저 자기가 좋아서 아빠와 성관계를 가지고도 뻔뻔스럽게 아빠가 돈으로 자기를 꼬셨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바람에 아빠는 입이 열개라도 변명할수 없었다.
아빠는 더는 얼굴을 들고 다닐수가 없게 되였다.
엄마도 자초지종을 알고나서 기절초풍하였다.
아빠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비참하게 일그러졌다.
결국 아빠는 모든것을 포기하고말았다. 아빠는 아직 정년이 안되였지만 부득불 앞당겨 내부퇴직을 하는수 밖에 없었다.
하여튼 아빠는 그번의 그 실수로 참 많은것을 잃었다.
엄마는 안해를 두고 어찌 외간녀자와, 그것도 가정이 있는 유부녀와 살을 섞을수 있냐고 눈물을 쏟으며 넋두리를 하였다.
“당신만 굳게 믿고있었는데… 남들이 뭐라고 해도 나의 남편만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있었는데…”
엄마는 아빠의 외도로 하여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것 같았다.
“안해가 외국에서 힘들게 돈을 벌고있다는 생각을 하면 차마 어떻게 그럴수 있어요?…”
엄마는 한동안 이런 말을 되풀이하면서 아빠를 원망하였다.
물론 아빠도 그동안 엄마가 한국에서 벌어보낸 돈을 한푼도 건드리지 않고 꼬박꼬박 은행에 저금해두었다. 그러니 그 녀자를 돈으로 꼬셨다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하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였고 시위를 벗어난 화살이였다.
아빠는 누구도 원망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녀자마저.
“세상에 내가… 내가 참 바보였어.”
다만 한마디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뿐이였다.
나는 량어깨가 축 처져내린 아빠의 가긍한 모습을 도저히 바라볼수 없었다.
엄마는 원래 힘들고 험한 한국생활에 위가 많이 안 좋아져 잠시 집에 돌아와 건강을 추스려가지고 다시 한국으로 나가려고 하였었다. 헌데 뜻밖에 아빠한테서 불미스러운 일이 터지는 바람에 한달도 안되여 형님을 데리고 다시 한국으로 떠나가버렸다.
“우리가 함께 살아갈수 있는 운명의 끈이 아직도 남아있는지 모르겠어요. 토토를 잘 건사해주세요. 이제 우리가 돌아올때까지 이눔이라도…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엄마는 마지막으로 위안인지, 위협인지 나로서는 알아들을수 없는 말을 남겼다.
“엄마, 형님. 가지마세요. 왕왕!”
엄마는 잘 있으라는 말도, 돌아오련다는 말도 없이 트렁크를 끌고 조용히 문을 나섰다.
나는 불현듯 목이 꺽 메였다.
쏘파우에 그린듯이 앉아 집을 나가는 엄마와 형님을 목이 터지게 불렀지만 마이동풍같이 쓸데없었다.
아빠는 배웅을 나오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 한동안 봉당에 내려선채 우두커니 서있더니 한참만에야 불에 덴 황소처럼 후닥닥 문을 뛰쳐나갔다.
“아빠, 왕왕!”
나는 떠나가는 엄마와 형님보다 아빠가 더욱 근심되고 걱정되였다. 문을 뛰쳐나가는 아빠의 얼굴에서 하얀 물기가 번뜩거렸던것이다.
분명 아빠는 가슴을 치며 마음속으로 한없이 울고 또 울었을것이였다.
그러나 나는 아빠를 뒤쫓지 않았고 오히려 인내심을 가지고 아빠를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비록 미욱한 강아지이지만 아빠한테 위안이 되고 배신을 모르는 영원한 친구로 남으리라고 속다짐했다. 물론 엄마도 그 어느날엔가는 꼭 아빠를 용서하고 형님도 다시 아빠의 곁으로 돌아오리라고 굳게 믿고있었다.
그날 나는 텅 빈 집에서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채 줄곧 아빠만 기다렸다.
예전에 형님과 같이 있을 때는 용변이거나 오줌이 마려우면 형님한테 기별을 보내 문을 열어달라고 하였었다. 허나 형님마저 한국으로 떠난후에는 용변을 보려고 해도 낮에 집에 사람이 없어 아주 불편하였다. 하여 나는 혼자 있을 때는 절대 밥을 먹지 않고 하루종일 굶었다.
저녁에 아빠가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면 그때가 바로 나의 맛나는 식사시간이였다. 아빠가 있으면 아무리 많이 먹어도 쉽게 밖으로 용변 보러 나갈수 있어 근심걱정이 없기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례외였다.
아빠가 황급히 엄마와 형님을 쫓아나간것이 걱정되여 도저히 마음의 안정을 찾을수 없었다.
나는 엄마와 형님까지 떠나간 텅 빈 집안에서 하루종일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아빠만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아빠, 어서 돌아오세요. 집에서 이 토토가 기다리고있지 않아요? 아빠, 어서 돌아오세요. 왕왕왕!”
나는 아빠를 부르며 이불깃에 머리를 틀어박고 울었다.
“아빠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계시는지? 아빠, 왕왕왕!”
 
 
아빠는 이튿날 점심녘에야 술에 만취되여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비칠비칠 집으로 돌아왔다.
“토토야, 네가 아무것도 먹지 못했겠구나. 배 고프지?”
아빠는 그래도 집에 들어서면서 내 걱정부터 하였다.
“아니야, 아빠. 아빠가 무사히 돌아왔으면 됐어요. 왕왕!”
나는 힘없이 아빠가 앉은 쏘파곁으로 기여가 아빠의 발밑에 앉았다.
“어서 뭔가 먹어야지. 아빠가 참 한심하다. 토토야!”
아빠는 호주머니에서 명태쪼가리를 꺼내 나한테 주면서 허구프게 웃었다.
아빠의 몰골이 말이 아니였다.
어디에서 자고 왔는지 머리가 부시시하고 옷깃이 구겨져 있었다.
“아빠, 힘내세요. 토토가 있잖아요. 왕왕!”
나는 마른 명태쪼가리라도 조금 먹고나니 기운이 솟는것 같았다.
그러나 아빠는 힘없이 쏘파에 몸을 뉘이더니 그대로 잠에 곯아떨어졌다.
“아빠, 엄마와 형님은 꼭 돌아올거얘요. 우리 함께 기다려요. 아빠, 왕왕!”
나는 아빠의 잠을 깨울세라 입속으로 아빠를 응원하며 저도 모르게 아빠의 코고는 소리에 흠뻑 빨려들어갔다…
 
 
참으로 독한것이 인간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인간세상이라는것도 역시 무정하고 넌덜머리가 난다.
그렇게 떠나간 엄마는 소식 한번 전해오지 않았다.
형님도 전화 한통 없었다.
그러나 아빠는 매일 소식이 두절된 전화통만 부여안고있었다. 미욱한 짐승이지만 곁에서 바라보는 나의 가슴이 다 찢어지는것 같았다.
인간들은 너무 매정하고 무서운 독종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같은 동물들은 인간들에 의해 할수없이 서로가 떨어져 살지만 사람들은 왜서 자기절로 자기의 마음을 아프게 허비며 사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날마다 술에 절어서 살았다. 아침부터 술병을 끼고 앉으면 온종일 고주망태가 되여 나한테 밥을 챙겨주는것마저 까맣게 잊었다. 가끔 음식물찌꺼기나 술안주로 먹던, 고기 한점 붙어있지 않는 뼈다귀를 던져주는것이 고작이였다.
나의 몸도 날마다 여위여갔고 목욕도 하지 못해 눈가에 항상 시허연 눈곱이 덩어리져 붙어있었다. 심지어 나중에는 시누렇게 말라들어 눈을 아프게 찌를때도 있었다. 허지만 아빠는 목욕은 커녕 세수조차 시켜주지 않았다.
매일 앞발로 자꾸 문지르다보니 눈가의 털이 허옇게 빠져 보기가 흉했고 발톱에 심하게 긁혀 피까지 났다. 하지만 아빠를 원망하지 않았다. 아빠도 며칠에 한번 꼴로 세수하고 이발을 닦는데 나같은 강아지가 언제 그런 향수까지 바라겠는가?
“아빠, 아빠만 무탈하면 전 아무것도 필요없어요. 우리 함께 가족의 재상봉을 위해 힘내요. 왕왕!”
나는 머리속으로는 이렇게 말하였지만 뾰족하게 툭 틔여져나온 뭉툭한 주둥이로는 도저히 이같은 말귀를 짜낼수도, 뱉어낼수도 없었다. 다만 남들이 듣기에도 귀찮은 “왕왕!”하는 개소리밖에 낼수 없었다.
인간이 아닌 이상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그렇다고 천성이 미욱한 동물인 나에게 사람과 소통할수 있는 대화식별능력을 갖추라고 억지를 부린다면 실로 강아지보다 더 우둔하고 미욱한 놈팽이가 아니겠는가.
이젠 아빠도 기다림에 많이 지쳤는가보다.
날마다 부여안고있던 전화통에 다시는 매달리지 않았다. 나는 이런 아빠가 걱정되였고 또 아무렇지도 않은듯 태연한 기색으로 하루일상을 시작하는 아빠의 거동이 알게 모르게 불안해났다.
나는 아빠가 예전과 같은 밝은 모습을 되찾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빠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깊은 한숨만 내쉬였다. 간혹 한식경씩 넋을 잃고 멍하니 나를 바라볼 때면 푹 꺼져 들어간 눈확에 살얼음이 쫙 깔려있는것 같아 오싹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마치 폭발을 일으키기 직전의 시한폭탄처럼 무서웠다.
아빠는 암암리에 뭔가 무시무시한것을 계획하고있는것 같았다. 이것은 나같은 미욱한 동물만이 가지고있는 직감이다.
우리 동물들중에서 지진의 방위를 제일 먼저 알아맞추는 짐승은 쥐이다. 쥐들은 땅속에 굴을 파고 살기에 지진이 일어나기전에 그 지진파를 용하게도 감지한다. 물론 다른 짐승들도 지진이 일어나기전에 재난을 미리 예견하고 자리를 뜨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나도 같은 동물로서 아빠의 수상쩍은 거동에서 뭔가를 감지할수 있었다.
 
 
날씨가 갑작스레 추워지는데도 아빠는 구들을 수리할 궁리를 하지 않았다. 지난해 석탄가스를 먹고 크게 혼이 난적이 있었으면 무척 걱정되련만… 도대체 무슨 심사인지?
그래도 나는 날마다 아빠와 함께 있는다는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토토야, 참 인간으로 산다는것이 너무나 힘들다.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이런 벌을 받는지…”
아빠의 이런 말씀을 들을때면 나도 눈물이 난다. 허지만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아빠를 쳐다보는것으로 그 마음을 헤아릴뿐이다.
“아빠, 아니야. 아빠가 얼마나 훌륭하다고 그러세요? 엄마랑, 형님이랑 돌아올 때까지 집을 지킨다는것이 얼마나 큰 책임인데요? 왕왕!”
아빠는 말없이 나의 머리털을 곱게 쓰다듬으며 긴 한숨을 내쉬였다.
언젠가 아빠가 이런 말씀을 한적이 있다.
“참, 사람이란 정말 모르겠다. 내가 어쩌다가 그런 녀자를 만나서 인생을 말아먹었는지… 후- 인제와서 누굴 탓하겠냐? 내물은 건너봐야 알고 사람의 마음은 지내봐야 안다던 옛 선인들의 말씀이 참말로 지당하구나. 그래도 토토야, 네가 있어서 아빠가 조금 위안이 되는구나.”
아빠가 자책감에 모대기는데 엄마도 아빠를 용서하고 돌아왔으면 좋으련만…
인간들에게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 이제 세월이 가고 또 시간이 흐르고나면 아빠의 상처도 치유되고 엄마도, 그리고 형님도 집으로 돌아와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게 될것이다. 나는 그렇게 되리라고 믿고싶다.
“참, 아빠도 불쌍해. 어쩌다가 불여우같은 녀자를 만나가지고…”
예로부터 여우라는 동물은 요물이였다. 때문에 여우는 꼬리가 아홉개라고 하였다.
아빠가 알게 모르게 정에 빠져 허우적거린 그 녀자도 결국은 꼬리가 아홉개 달린 구미호같은 녀자이다. 아빠를 홀려 제 욕망만 채우고 오리발을 내민 천하의 나쁜 년이다.
그 녀자를 만나게 되면 날카로운 이발로 콱 물어 뜯어놓고싶다. 아니, 날이 선 발톱으로 할퀴여 주고싶다. 그렇게라도 아빠에 대한 분풀이를 할수만 있다면 조금이나마 가슴이 후련하련만.
그러나 나는 절대로 사람을 물수도 또 할퀼수도 없다. 나는 강아지가 아니라 아빠와 함께 살아가는 “토토”이기때문이다.
 
 
“토토야! 아빠가 오늘은 나갔다 올테니 집에서 혼자 놀고있어.”
아빠가 아침부터 출근할 때도 입지 않던 멋진 정장을 차려입고 부산을 떨었다.
“네, 다녀오세요 아빠. 왕왕!”
나는 오늘따라 한결 더 멋져보이는 아빠를 바라보며 흡족하게 짖어댔다.
아빠는 며칠동안 깎지 않은 더부룩한 수염을 깎고 얼굴에는 크림까지 바르고 거울앞에 서서 이리저리 비춰보며 한동안 서성거렸다.
나는 아빠가 오늘에야 비로소 그동안 억눌렸던 기를 펴고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것 같아 무척 기뻤다.
아빠는 이불장밑에 깊숙히 숨겨놓은 나무궤속에서 가방을 꺼내들고 집문을 나섰다. 그 가방에는 엄마가 그동안 한국에서 벌어 보낸 돈은 물론 여러가지 문서와 각종 서류들이 들어있었다. 실로 우리 집의 전 재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나는 아빠가 엄마의 양로보험료를 물려고 나간것이라고 생각했다. 날씨가 추워져 올해의 양로보험료를 엄마의 생일인 12월달을 넘기지 말고 년말전에 꼭 물어야 하였던것이다.
나는 쏘파우에 엎드린채 아빠가 어서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기만 학수고대하였다.
이렇게 넋 놓고 아빠를 기다려보기는 오랜만이였다.
불현듯 얼마전에 아빠가 한 격월간 잡지에 발표했던 나에 관한 글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그날 아빠는 화보처럼 두터운 잡지를 들고 오시더니 나를 안아다 앞에 앉혀놓고 시름없이 웃으시였다.
“허허허, 토토야. 네가 오늘은 내 글의 주인공이 되였어. 바로 이 잡지에 너를 모델로 쓴 아빠의 수필이 실렸어. 그동안 우리 토토가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어. 네가 있어 우리 집안에 웃음이 생겼고 즐거움이 감돌았어. 이제 아빠가 천천히 읽어줄테니 명심해서 잘 들어.”
아빠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목소리를 가다듬어 소리내여 읽었다.
 
 
…토토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어찌나 작은지 방 한가운데 가로 놓여있는 미닫이문턱도 넘지 못해 쬐꼬만한 발로 뚱기적거렸다. 그럴 때면 반드시 누군가가 안아서 건늬여주어야 했다. 더우기 해바라기씨를 담은 작은 양재기안에 제 집인양 비집고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있을 때면 가엾다기보다 귀엽기만 했다. 그때로부터 토토는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되였다.
 
…손바닥만하던 토토가 지금은 키도 훤칠하고 몸매도 둥글둥글하고 허리통도 늘씬하게 잘 자랐다. 그만큼 우리 집 식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인지 정도 많다. 내가 퇴근하면 제일 먼저 꼬리를 뱅뱅 돌리며 달려와 반기는것이 바로 토토이다. 집문을 열고 들어서기 바쁘게 토토는 내 다리에 감겨들며 안아달라고 앞발을 껑충 쳐든다. 나는 그런 토토가 너무 귀여워 옷에 털이 묻어나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덥석 안아준다. 비록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토토는 우리 집에 웃음을 가져다주는 “천사”였다.
 
…그런데 “토토”가 이상해졌다.
 
안해가 한국으로 간후부터 밥을 잘 먹지 않는다. 아마 밥을 챙겨주던 주인이 바뀌여서인것 같다. 그런 토토가 가여워 예전에 안해가 하던대로 닭알을 삶아서 노란자위에 밥을 비벼주었지만 여전히 입맛이 없어한다. 녀석도 은근히 엄마가 그리운가부다. 그러고보니 못난 사람보다 아니, 은정을 모르는 사람보다 토토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토토에게 바라는것이 있다면 오직 건강뿐이다. 안해가 돌아올 때까지 앓지 말고 건강하게 잘 자라 우리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헌데 그날이 언제면 현실로 될지? 옆집 강이네만 봐도 그렇다. 얼마전 강이네 엄마가 한국에서 3년동안 이국생활을 하고 돌아오더니 강이 아버지와 리혼하고 다시 한국으로 나갔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위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있다. 동병상련이라고 안해를 한국에 보낸 나도 어느날 갑자기 그런 일에 맞띄울가봐 가슴이 죄여든다.
… …
 
 
창밖에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는데 아빠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눈물이 난다.
눈가에 허옇게 꼈던 눈곱이 꼬들꼬들 말라들어 눈을 아프게 자극한다.
온종일 아빠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문가만 주시해서인지 두 눈에 아픔이 몰려든다.
오늘도 또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혼자 밤을 지새야 하는가?
나는 기다림에 지쳐 쏘파우에 옹송그리고 누웠다.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온종일 물 한모금, 밥알 한알 먹지 않았더니 탈진상태가 오는가보다.
그러나 아빠가 돌아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먹을수가 없다.
나는 아예 두 눈을 꾹 감고 두 귀만 벌쭉 세웠다. 나는 청각이 특별히 발달하여 멀리에서 울리는 아빠의 발자취소리도 가려들을수 있었다.
나는 창밖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힘없이 누워있었다…
 
 
덜커덩!
문이 여닫기는듯한 둔중한 소리에 눈을 뜨려 했나 좀체로 떠지지 않았다.
아빠를 기다리다가 그만 깜빡 졸았나본데 웬일이지?
앞발로 두 눈을 비벼댔지만 눈가에 엉킨 찐득찐득한 눈곱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빠, 왕왕!”
나는 곤하게 하품을 하며 허연 눈곱사이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언제 왔는지 아빠가 부엌에서 지난번 엄마가 한국에서 올 때 사다준 노란색 긴 팔 적삼을 입고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기는 삶은 돼지고기를 썰고있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우리 토토가 몹시 곤한가보구나. 아빠가 돌아와 밥하고 돼지고기를 삶고있었는데도 깨여나지 못한것을 보면… 허허허, 이젠 우리 토토도 많이 늙었네.”
아빠가 먹음직스럽게 잘 삶긴 커다란 고기덩이를 칼로 썩뚝 잘라서 나의 밥그릇에 놓으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더는 참을수 없어 쏘파에서 풀쩍 뛰여내려 아빠가 금방 챙겨놓는 밥그릇앞에 다가가 냉큼 고기덩이를 물고 씹을새도 없이 꿀꺽 삼켰다.
“아빠, 이게 얼마만이죠? 와- 맛나다. 왕왕!”
나는 아빠가 돼지고기국물에 말아준 밥을 게 눈 감추듯 후딱 먹어치웠다.
“허허, 우리 토토가 많이 배가 고팠구나. 이젠 다시는 너를 굶길 일이 없을거야. 오늘저녁에는 아빠도 술 한잔 해야겠다. 이 좋은 돼지고기 안주에…”
아빠가 돼지고기 한점을 집어 나의 밥그릇에 놓아주며 말했다.
“아빠, 고마워요. 왕왕!”
나는 오늘따라 넘치게 베푸는 아빠의 사랑에 눈물이 찔끔 솟았다.
나는 다시 아빠의 곁을 떠나 쏘파에 기여올라가 누웠다.
아빠는 둥그런 밥상을 마주하고 혼자서 자작술을 마셨다. 종래로 혼자서 술을 마시지 않는 아빠인데 오늘따라 이상했다.
이윽고 아빠가 또 나를 불렀다.
“토토야, 이리 온. 아빠곁에 앉거라. 정말 너한테 정이 많이 깊어졌어. 네가 우리 집에 올 때는 애들 손바닥만했었는데… 참,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너도 인젠 사람으로 치면 칠십살이 넘었을거야. 그동안 강아지라는 동물을 떠나서 가족처럼 잘 살아왔는데…”
아빠는 술 한잔을 입안에 털어넣더니 긴 한숨을 내쉬였다.
나는 아빠의 허벅지와 엉덩이에 몸을 기댄채 가만히 드러누웠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이 언제 함께 살았던지 아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낱 강아지에 불과한 나마저 이렇듯 가족이 그리운데 아빠의 마음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빠, 술 많이 마시면 안돼요. 몸이 상해요. 왕왕!”
나는 아빠가 은근히 근심되였다.
“왜? 아빠가 걱정되냐? 괜찮아, 다시는 토토 너를 굶길 일이 없을거다. 인젠 아빠도 정신을 차려야지.”
아빠는 또 큼직하게 썬 돼지고기를 집어 나한테 주면서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더는 먹을수가 없었다. 이미 배가 너무 많이 불러있었다.
“아빠, 래일 먹을게요. 오늘은 과식이얘요. 많이 먹으면 소화도 잘 안되는데… 왕왕!”
나는 아빠가 준 고기덩이를 입으로 물어다가 나의 밥그릇에 가져다놓았다.
“참, 세상에… 토토 너같은 령물은 없을거야. 우리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할텐데…”
아빠의 긴 한숨소리에 내 가슴이 막 꺼져들어가는것만 같았다.
“아빠, 나 졸려요. 쏘파우에 가서 잘래요. 아빤 술 적게 마시고 얼른 밥을 드세요. 왕왕!”
나는 아빠의 곁을 떠나 무거운 몸을 엉기적거리며 쏘파에 기여올라갔다.
“그래, 토토야. 오늘 아빠를 기다리느라 무척 힘들었던 모양구나. 어서 가서 자거라.”
아빠의 눈언저리가 이상하게 벌겋게 상기되여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서러움과 그리움으로 눈물이 차올라서 충혈된것이라는것을 몰랐다.
나는 무거운 몸을 쏘파우에 반듯하게 펴고 힘없이 누웠다. 전신이 물먹은 햇솜처럼 해나른해났다. 온종일 물 한모금, 밥 한알 먹지 않고있다가 배고픈김에 급히 기름진 돼지고기국밥 한그릇을 뚝딱했더니 식곤증이 몰려오는것 같았다.
나는 무겁게 처지는 눈까풀을 앞발로 연신 치켜올리며 졸음을 쫒으려 하였으나 천근같은 눈까풀을 도저히 이겨낼수가 없었다.
나는 쏘파의 한켠에 몸을 뉘이고 혼자서 자작술을 마시는 아빠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쏘파우에서 언제 내려왔는지 나는 아빠의 품에 안겨있었다.
저녁에 혼자 자작술을 마시던 아빠는 웬 일인지 아침에 집을 나가던 정장차림으로 이불우에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둥근 밥상도 말끔하게 치워진채 찬장앞에 곱다라니 세워져있었고 부엌도 깔끔하게 잘 정돈이 되여있었다.
나는 아빠의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머리가 뗑하고 자꾸 눈까풀이 맥없이 처져내려왔다.
“아빠, 웬 일이죠? 눈을 뜰수가 없네요. 아빠, 왕왕!”
하지만 모기소리만한 웨침이 목구멍안에서 간신히 맴돌뿐이였다.
“아빠, 왕왕!”
나는 아빠의 품을 빠져나오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으나 무엇인가에 꽁꽁 묶인듯 도저히 움직일수가 없었다.
아빠의 얼굴도 저녁에 마신 술때문인지 피기 한점 없이 창백하고 퉁퉁 부어있었다.
“아빠, 왕왕!”
나는 힘이 빠진 앞발로 아빠의 가슴을 허볐다. 그러나 아빠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아빠의 팔이 나의 몸을 으스러지게 감고있었다.
“아빠, 왕왕, 왕왕왕!”
나는 덴겁하여 사납게 부르짖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몸이 말을 잘 들어주지 않았다. 간신히 앞발로 버티고 섰으나 뒤다리의 맥이 풀려 도저히 몸을 일으킬수가 없었다.
갑자기 어디에선가 석탄가스냄새가 풍겨왔다. 아빠가 겨우내 구들을 수리하지 않더니 결국 이런 후과를 초래하였다.
“아빠, 아빠! 왕왕!”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온몸이 뒤탈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자꾸만 길다란 몸뚱이가 안으로, 안으로 꼬부라들었다.
“아빠, 석탄가스예요. 빨리 일어나세요. 아빠! 왕왕왕!”
나는 힘없는 앞발로 아빠를 허비고 머리로 떠박았지만 아빠의 몸은 통나무마냥 꽛꽛하게 굳어진채 전혀 움직일줄 몰랐다.
나는 곧 쓰러지려는 몸을 가까스로 가누며 아빠의 머리곁으로 다가가 뻣뻣하게 굳어지는 혀끝으로 아빠의 얼굴을 핥았다. 그런데 웬 일인지 아빠의 얼굴이 너무나 차가웠다. 따스한 온기라곤 하나도 없었다.
“아니, 아빠, 아빠! 왕왕왕!”
나는 목이 터지도록 아빠를 부르며 아빠의 머리맡에 맥없이 쓰러졌다.
석탄가스냄새는 점점 더 강하게 몰려왔다. 집안에는 이미 매캐한 석탄가스가 꽉 들어차 숨도 제대로 쉴수 없었다. 필사적으로 기여가서 문이라도 열고싶었지만(물론 내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였지만) 이미 문마다 안으로 꽁꽁 잠겨져있었다.
나는 더는 소리를 낼수 없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이 넘었고 나도 전신이 마비되여 도무지 움직일수 없었다.
아빠는 엄마가 시집올 때 가지고 왔다는 파란색 첫날이불우에 태연하게 누워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것 같았다.
나는 더는 아빠를 부르지 않았다. 아니, 아빠의 꽛꽛하게 굳어진 팔을 헤집으며 아빠의 품속으로 기여들어갔다.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창자가 뒤탈리는듯한 아픔을 참아내며 젖먹던 힘까지 다해 한사코 아빠의 품속으로 기여들었다.
“아빠, 고마워! 마지막까지 나를 잊지 않고 챙겨줘서…  왕왕왕!”
나는 전신의 기운을 한껏 살려 목청껏 웨쳤다. 그러나 목구멍이 꽉 막혀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나는 아빠를 떠날수가 없었다. 아니, 아빠와 우리 가족을 떠나서는 영원히 살아갈수가 없었던것이다.
나는 하얗게 굳어진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며 행복하게 웃었다. 순간 지난 13년간 우리 가족과 동고동락했던 일들이 주마등마냥 스쳐지나갔다.
나는 아빠의 품에서 점차 밀려오는 강한 졸음을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비록 죽음이라는 낱말과 이어진 영원한 졸음이였지만 나는 아빠의 곁을 떠나 다른 생을 찾을수도 없었고 또 아빠를 두고 혼자 살길을 찾아 헤맬수도 없었다. 오직 아빠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것만이 나에게 다함없는 사랑을 준 가족에게 보답하는 일이였다.
인젠 온몸을 휘감던 아픔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아빠의 차가운 품이였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따스하고 안온하게 느껴졌다.
나는 가까스로 눈곱이 쌓인 두 눈을 떴다. 갑자기 눈앞에 아름다운 칠색무지개가 곱다라니 펼쳐졌다. 그리고 어디선가 청아한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자주 듣던 “우리는 길 떠나는 인생”이라는 노래였다.
 

더 사랑해 줄걸 후회할것인데
왜 그리 못난 자존심으로
용서하지 못하고
리해하지 못하고
비판하고 미워했는지
사랑하며 살아도
… …
 
꿈결처럼 안겨오는 영상속에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
나는 가까스로 새여나오는 날숨을 크게 몰아쉬며 아빠의 품속에서 순간이였지만 엄마를 보았다. 그리고 형님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짧은 순간이였다.
“엄마, 형님! 아빠가… 아빠가… 왕왕!”
허연 눈곱같은 눈물이 샘 솟듯 흘러내렸다.
그러나 닦을수도 닦을 기운도 없었다. 다만 입속으로 부르짖을뿐이였다.
이때 갑자기 아빠의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이 자지러지게 울렸다. 허지만 아빠는 미이라처럼 고즈넉히 누운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액정에는 내가 늘 아빠의 품에 안겨 보아왔던 눈에 익은 전화번호가 떠있었다.
엄마의 전화였다.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걸려온 엄마의 전화였다…
 
2015년 11월 学府园세집에서
<한계(限界)> ㅡ 연변문학 2016년 제2월호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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