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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그림자
2017년 06월 12일 09시 03분  조회:453  추천:0  작성자: 김태현

세월의 그림자

□ 도 영

2017-06-08 14:49:29

갑작스레 몰려드는 추위때문에 20여년전에 입다가 궤 속에 넣어두었던 낡은 라사천외투를 꺼냈다.

궤 속에서 쭈글쭈글 볼품없이 구겨지고 퇴색한 외투는 오래동안 외면을 당하더니 한결 초라하게 낡고 어두운 색상으로 지난날의 삶을 눈 앞에 그려왔다.

몇년 전, 한국으로 떠난 안해가 집에 있을 때는 좀체로 입지 못하게 하던 외투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20년이나 걸쳤으면 강산도 두번이나 변했을라니 이젠 이처럼 낡고 구겨진 지저분한 외투는 벗어두라는 것이였다. 그렇게 되여 여직 이불장의 침침한 나무궤 속에서 가볍고 서늘한 양복과 깃털 등산복의 멸시를 받으며 맨 밑퉁이에 깔려있었던 것이다.

새삼스레 낡은 옷에 대한 집착을 되살리는 내가 야속스럽다. 그러나 낡은 옷을 눈 앞에 두고 바라보는 내 마음이 불현 듯 20여년을 거슬러 처음으로 화룡이라는 시가지에 발을 들여놓고 안해와 함께 새 살림을 꾸려가며 보듬어온 즐거움이 하나의 드라마 각본마냥 가슴에 와닿는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갓 사회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던 탓에 남의 세방살이를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결혼생활이였지만 마냥 즐거웠고 행복했었다. 또한 날마다 웃음과 환락을 안겨주는 귀염둥이 아들애가 태여나면서부터는 고된 로동의 허탈 속에서도 피곤이란 뭔지 모르고 살 정도였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을 남의 세방살이로 전전긍긍했다.

참말이지 이사만도 열번을 했었다. 세방살이를 하면서 제일 서러운 것은 아무때고 방을 빼라는 집 주인의 독촉소리이다. 그 땐 집없이 사는 서러움보다도 ‘방을 빼라’는 그 말이 어쩌면 그토록 가슴이 시리게 맺혀오던지?

지금도 안해는 가끔 ‘궁궐’ 같은 집에서 ‘호강’하는 오늘의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은 그때의 집 없이 남의 세방살이를 살면서 쌓아온 보귀한 재부, 즉 없이 사는 가난 속에 생활의 진실을 참답게 인식하고 삶을 올곧게 지켜왔기 때문이라며 부드럽게 웃는다.

다섯번째 세방에서 있은 일이다.

단위의 재무일로 며칠 외출했다가 돌아오니 한 여름 갓 돌이 지난 아들애를 업고 땀발을 쏟던 안해가 갑자기 쿨적쿨적 울음보를 터뜨렸다.

“왜 인제야 왔어요? 전기세도 물지 못해 전기까지 끊겼어요.”

“뭐라오? 그럼 집주인도 모르쇠를 댔단 말이요?”

나는 머리 우로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남의 세방살이를 한다고 집주인마저 모른다고 하는 몰렴치한 행동에 그날로 이사짐을 꿍졌다.

세방살이의 곤혹은 이루 헤아릴 길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토록 렬악한 환경 속에 남의 세방살이를 살면서도 아들애를 키웠고 또 남들에게 흔치 않는 우리들만의 재부- 즉 가정생활의 행복을 쌓았다.

마지막이 되는 아홉번째 세방에서 우리는 세방살이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아름답게 그렸다.

집이 어찌나 헐망한지 한 여름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집안에서도 똘랑똘랑 여기저기 비물이 샜다. 그러면 아홉살을 금방 잡은 아들애가 생수병을 들고 다니며 비물을 받는다고 꺄르르 웃음의 동화를 만들어갔던 것이다.

나와 안해도 여기저기 비물이 새는 자리를 옮겨가며 몇개 안되는 소래와 작은 양재기까지 동원해가면서 아들이 만들어가는 동화에 아름다운 색감을 얹어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온 집안에 웃음꽃이 피여나는 날이였다.

대야는 물론 크고작은 생수병까지 동원해가며 집안의 비물을 막으며 심어온 하나의 가족이라는 그 아름다운 에피소드야말로 남들의 부러움을 자아낼만한 소중한 추억이 아니였을가?!

“여보, 이제 당신이 퇴직하면 우리 ‘이사짐회사’나 꾸리지 않겠어요? 당신은 이사바람에 지쳤어도 저는 ‘이사짐’운반에 이골이 텄나봐요? 그처럼 신물이 나던 세방살이였어도 그 세방을 살았기 때문에 오늘의 행복을 감수할 수가 있지 않았을가요?!”

안해는 가끔 지금의 화려하지도 않고 평범한 단층 54평의 자기 집을 가지고 사는 작은 행복에도 만족해서 소담한 웃음꽃을 피우군 한다.

갑작스레 낡은 옷을 꺼내놓고 괜스레 지난 세방살이를 재현시켰으니 웃음이 불쑥 나온다.

하기야 이 라사천외투는 그때 공장에서 판매한 비닐주머니 값 대신 받아온 물품이였다. 하여 로동자들에게 하나에 20원씩 받고 주었던 것이다.

20원짜리 낡은 외투, 기업에 출근할 때는 언제나 나의 몸에 입혀져 겨울을 따스하게 지켜주었었다.

그 후 내가 전근을 하면서 문화인이라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였는데 그때부터 라사천외투는 겨울이면 하냥 궤 속에 누워서 ‘구겨진 력사’를 지켰다.

조심스레 몸에 껴입으니 너무나 포근하였다.

비록 20여년 세월의 흔적에 닳고닳아 팔소매가 반들거리고 보들보들한 라사천의 털들이 얇다랗게 변하였어도 너무나 따스했다.

하기야 깃털 등산복에 비하면 무겁고 칙칙하게 안겨드는 색바랜 외투가 너무나 볼품없고 천하게 보이였지만 나에게는 지나온 20여년의 력사를 새긴 한장의 그림과도 흡사했다.

어쩌면 오늘의 나로 설 수 있은 것은 모두가 지난날의 없이 살면서 느낀 생활의 진정한 철리와 있는 자의 부(富)와 없는 자의 부(富)를 가슴깊이 느꼈기 때문이 아닐가?!

문득 낡은 라사천외투를 상대로 자기만의 하찮은 추억 속에서 이제 걸어가야 할 길의 굴곡과 허망한 소용돌이를 보는 것만 같다. 그러나 없이 살 때의 그 건전한 마음과 몸가짐으로 쌓은 생활의 지혜로 소용돌이 치는 급류도 헤쳐나아갈 수 있다는 진리를 터득한 것 같다.

남들처럼 화려한 문화주택의 사치를 느끼지는 못했어도 항상 자기에게 주어진 행복을 만족으로 가진 것 하나 없이 추수에 몸을 떠는 가을나무마냥 한껏 욕심을 버리고 겨울의 차가운 땅 속에서 래년봄의 해동을 기다려 다시 새움을 틔우며 여름의 푸르름을 장식하는 나무들처럼 남들에게 주는 것을 사랑으로 행복으로 알고 살 것이다.

나는 궤 속에서 주글주글 구겨진 낡은 라사천외투를 구들 한가운데 놓고 다리미를 꺼내 곱게 다렸다.

황홀하게도 다리미가 지나가자마자 구겨진 주름살은 간 곳 없고 쪽 몸매를 빼는 새 라사천외투가 탄생했다.

(그래, 래일부터는 이 라사천외투를 입고 출근할 거야! 나의 지난날의 행복을 쌓아주고 오늘의 나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항상 지켜주고 몸을 덮혀준 외투!)

나는 낡은 라사천외투를 곱게 다리미질하여 옷걸이에 걸어놓았다.

한결 빳빳해진 모습으로 깃털 등산복의 곁에서 새롭게 싱싱함을 나타나는 외투를 보며 나는 기쁨을 금치 못했다.

이제 안해가 돌아오면 얼마나 행복해하랴?

비록 지금까지 ‘출국가족’성원으로 외롭게 집을 지키고 있지만 안해와 함께 지난날의 고역을 이겨온 낡은 외투가 있다는 것이 하나의 그리움이 되여 안해와 나누던 사랑을 되새겨주는 것 같아 너무나 기쁘다.

나는 옷걸이에 걸린 낡은 외투를 쳐다보며 래일의 출근길을 상상했다.

마치도 10년, 아니 20년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밥곽을 마련할 쌀밥이 없어 안해와 함께 강냉이국수를 도시락으로 사들고 출근하던 고난의 길, 겨울철 언 동태 한마리 사들고 돌아와 토막토막 끓여놓고 즐겁게 웃음을 토하던 가족사랑, 파산을 선고한 기업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고저 입에서 침방울이 떨어지기 바쁘게 얼어터지는 엄동설한에도 목재판에서 통나무를 굴리던 일, 비가 새는 세방에서 안해와 아들과 함께 온갖 잡동사니로 비물을 받으며 환락으로 들끓던 추억의 에피소드… 그 것들은 모두다 오늘의 행복한 삶을 장식하는 가족사랑의 인테리어가 아니였을가?!

낡은 외투, 그 것은 결국 우리 가정에 가져다 준 행복의 상징이였다.

아니, 래일의 분투를 위해 독촉하는 지난날의 교훈과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흘러간 세월에 담긴 한장의 황홀한 ‘흑백그림’이였다.

연변일보 6월9일 해란강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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