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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 서울
2017년 09월 15일 19시 51분  조회:176  추천:1  작성자: 장학규
 
리포트

럭키 서울

장학규
 
 
 
2010년 9월 3일 한국시간 12시 10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이다. 이제부터 서울관광마켓팅(주)이 주도하는 “2010한국방문의 해 – 서울과 함께” 프로젝트에 따라 3박 4일간의 서울 취재 일정에 들어가게 된다.
나에게 서울은 완전히 생소한 도시는 아니다. 7년전인 2003년 8월에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 관광을 와서 잠간 서울을 말 타고 꽃 구경하듯 스쳐지난 적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느낌은 세관인원들의 너무 딱딱하고 사무적인 인상이다. 한 나라의 관문이 지나치게 경직된것이 아니냐는 위구심은 여전했다. 하긴 매일같이 수천수만의 이국인을 대해야 하는 그들에게 아니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웃게 하는건 과분한 요구일수도 있고 또한 격에도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아무튼 1시간 30분남짓한 동안 려객기에서 대한한공 스튜디어스들의 밝은 모습과 친철한 서비스를 목격하면서 무척이나 들떴던 가슴이 차분히 가라앉는 순간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무엇보다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건 화청한 가을날씨였다. 며칠전부터 내려진 태풍주의보때문에 은근히 걱정했었는데 괜한 노파심이였다. 높이 들린 하늘에 흰 구름이 유유히 떠돌고 하느작 불어스치는 바람은 퍼그나 시원했다. 역시 서울은 친환경적인 도시라는 감각이 들었다.
그것보다 더 반전적인 기분 전환은 공항 교통안내카운터에서였다. 이번 걸음은 짧은 시간내에 많은 코스를 소화해야 했기에 오후 4시의 서울관광마켓팅(주)과의 미팅전에 꼭 들러야 하는 코스가 있었다. 경복궁이였다. 영욕의 5백년 조선을 주도했던 그 현장은 한겨레 피를 이어받은 모든 이들이 꼭 가봐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공항버스터미널에 가서 리무진 로선을 확인해도 될걸 왜 굳이 교통안내카운터에 찾아갔던지 모르나 내가 화들짝 놀라 당황할 정도로 따뜻한 배려가 돌아왔다. 내가 중국동포임을 확인한 예쁘장한 안내아가씨는 메모지에 몇선 타고 어디서 내려 어떻게 무엇을 갈아타고를 깨알같이 박아써주고는 그것도 미심쩍었는지 한사코 괜찮다는 나를 공항밖으로 안내하여 승차역까지 가리켜주었다. 코마루가 쩡해나는 순간이였다. 례절 바른 내 민족의 나라가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한국에서의 첫 시작은 희비가 엇갈렸다.
리무진을 타고 경복궁으로 가는 시간은 내내 태조와 정도전, 그리고 무학대사간에 엉키고 설킨 고사가 머리속에 떠올랐다. 정도전의 로련함과 그 라이벌이였던 무학대사의 능청함이 착시적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사진이나 뉴스에서 가끔 보아왔던 경복궁은 생각처럼 그렇게 작은것도 아니였다. 대수 반시간이면 넉넉할거라고 어림잡았던 자신의 유치함을 비웃으면서 나는 자칫 미팅 약속을 어길가봐 분주히 뛰여다니지 않을수 없었다. 궁궐의 크기는 아무래도 중국 북경의 고궁에 비기기에는 너무 무리인듯 싶었다. 그러나 그 기세와 당당함은 절대 그에 손색이 가지 않았다. 특히 단청이 기막히게 화려하고 사치하고 정교했다. 중국 어디에서도 보아온적이 없는 그 섬세함과 조화로움에 한동안 대뇌는 정지상태에 놓이기도 했다.  
마침 한무리의 중국관광객이 지나치고있었다.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산동성 성소재지 제남시에서 배낭려행을 왔다고 했다. 나는 청도에서 왔다고 하니 한동네 사람 여기서 만났다며 반갑게 손들을 내밀었다. 산동성의 면적은 남한의 1.5배, 인구는 1억명에 가깝다. 그걸 한동네로 아는 중국인들이다. 
경복궁이 한국 관광의 첫코스라고 한다. 인상이 어떠냐고 물으니 자신을 공무원이라고 소개한 왕씨 성의 30대 녀성이 앞질러 “대장금 드라마에 들어온 느낌이예요.”하고 엉뚱한 대답을 했다. 중국 대륙을 휩쓴 “대장금”의 저력을 확인하는 마당이였다. “대장금” 세트장이 따로 있다고 알려주는데 기업을 한다는 진씨 남성이 “그런데가 있어요? 코스를 변경해서라도 한번 가봐야겠네요.” 하고 역시 주제를 떠났으나 별로 기분 나쁘지 않은 말을 했다. 
별수 없이 내가 기억을 더듬어 자료에서 본대로 경복궁은 조선 왕조의 법궁(法宮)으로 1395년에 창건하였으며 “경복(景福)”은 시경에 나오는 말로 왕과 그 자손, 온 백성들이 태평성대의 큰 복을 누리기를 축원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두 나라가 공유하고 있는 문화에 대해 그들은 신기해마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과 어울려 국립민속박물관까지 함께 가면서 나는 생각지도 않게 서툰 가이드 역할을 맡게 되였다. 반만년 력사를 단 10여 분에 설명한다는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였다. 모형과 자료를 살펴보면서 수박 겉핥기로 멘트하면서 진땀을 뺐다.
옆에 붙어서서 진지하게 듣던 진씨는 언어불통때문에 출국전에 인터넷으로 가이드를 수배하였는데 그저 길안내 수준이라고 가만히 속삭였다. 다음에 또 올거냐고 물으니 한국이 참 마음에 든다면서 비즈니스거리가 생길거 같은 예감도 있어 꼭 다시 올거라고, 그것도 자주 올거 같다고 대답했다. 아는대로 하나투어, 모두투어 등 한국 유명 려행사를 알려주면서 무의식적으로 대방의 팔목을 건너다보던 나는 아차 뒤통수를 쳤다. 서울관광마켓팅(주)과의 미팅시간이 눈앞에 다가온것이다.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에 무거운 짐을 풀고 부랴부랴 미팅 장소인 프레스센터로 달려갔지만 약정 시간을 20분이나 넘겨버렸다. 서울마케팅의 문연미씨가 예쁜 모습만큼 반갑게 맞아주었다. 얼마나 미안하고 송구스럽던지. 서울시청측으로부터 "서울관광리포터" 위촉장을 받으면서 이제는 나도 서울 시민이 되여진듯 뿌듯했다.
고국에서의 첫날밤은 불면의 밤이였다. 잠자리가 바뀐 원인도 있겠지만 그보다 영문모를 흥분과 격동이 모질게도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였다.
취재 계획대로라면 이틑날은 서울의 옛거리를 활보하는 코스였다. 
우선 명동을 가보기로 하였다.
친구 하나가 청도에서 “명동”이란 보신탕집을 운영하는데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요리 솜씨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가게명이 좋았지 않았냐고 항상 생각하고있었다. 
명동은 자자한 명성과는 달리 그렇게 요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무엇이라 짚이지 않으면서도 자꾸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여의도나 청량리처럼 번화하지만 세계 어느 큰 도시에서나 쉽게 볼수 있는 그런 동네가 아니였다. 꼭 한국만이 가지고있는 그런 마을이여서 명동은 다분하게 이색적인 분위기였다. 기분 좋게 이곳저곳 기울이다가 아무 가게나 무작정 들어갔다. 복장가게였다. 전에 제주 이마트에서 디자인 멋진 옷견지 여러벌 사갖고 집에 가서 보니 일매지게 “메이드인 차이나”였던 기억이 되살아나 제작사부터 살펴보니 온통 알아보지 못할 외국글 아니면 한글로 되여있어도 외래어여서 알아볼수 없었다.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하고있는데 주인아저씨인듯한 후더운 인상의 50대 남성분이 다가왔다. 
“중국 동포 아니십니까?”
“아, 네…”
눈썰미 하나 기막히다고 감탄하며 외마디 대답을 하다가 내친김에 되물었다.
“여기 중국 사람 많이 옵니까?”
“아니,별로요. 일본손님은 많이 오는 편인데 중국 사람은 흔치 않아요.”
그렇게 마주한 자리에서 주인아저씨로부터 패션 유행을 선도했던 명동의 자랑찬 력사를 살짝 얻어듣는 행운을 가졌다. 현재도 일당 백만명의 인구가 드나드는 곳이기는 하지만 밤에는 인구공동화 현상이 심하다는 얘기도 숨기지 않았다. 
허탈한 감정이 엄습해왔다. 솔직히 나는 와자자하고 삐까번쩍하는 대형 타운보다는 인정미 있고 고풍적인 전통 터전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세계화 추세와 더불어 이젠 이런 옛거리도 흔치 않을것인데 중국처럼 아예 전통거리 또는 테마거리로 개조하여 관광프로그램에 합류시키면 좋지 않을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주인집아저씨는 그대로 빈손으로 나오는 나에게 환한 모습으로 근처에 남대문시장이 있으니 그리로 가면 싸고 좋은 선물을 마련할수 있을거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는 센스도 보여주었다. 
서울시민의 성숙한 모습에 굿소리가 저절로 나갔다. 벌써 여러번 그런 감탄을 했었다. 리무진을 가리켜주던 공항 아가씨부터 택시기사 아저씨의 자상한 서비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차량들의 질서정연한 질주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지하철 시스템  등은 그대로 선진적인 서울의 참모습이였다. 
엎딘 김에 절이라 했던가? 단김에 쇠뿔 뽑는다 했던가? 아무튼 다음 행선지를 남대문시장으로 돌렸다. 아예 계획 자체를 접고 그때그때 사정을 보아서 다음 코스를 잡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남대문시장은 한번 다녀간적이 있는 곳이였다. 7년만에 다시 만나는 남대문시장은 그때와 별로 달라진거 같지 않았다. 쿵닥쿵닥 음악소리가 사처에서 울리고 호객소리도 다투듯 들려왔다. 재래시장은 어디나 거의 비슷한 모양이였다. 숭례문을 기점으로 눈뿌리 모자라게 끝없이 이어진 상가에는 이름을 부를수 있는 물건이면 모두 있는듯 싶었다. 
잠시나마 내 사명을 잊었다. 와이프와 귀여운 딸, 그리고 회사 직원과 이웃들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다보니 두시간 넘어 소진한거 같았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서야 점심시간을 한참이나 넘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두리번거리는데 저 멀리에 아주 익숙한 간판이 보였다. "해흠루"라는 중국간판을 내건 식당이였다. 
주인은 40대 장년이었는데 중국 흑룡강에서 왔다고 했다. 가끔 아르바이트로 중국에서 오는 손님들을 안내하기도 한다면서 앞으로 한중을 오가면서 보따리 장수도 겸해볼 타산이라고 했다. 이젠 보따리 장수도 컨테이너로 한다고 산동에서 취재한 정보를 얘기하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아, 벌써 그렇게 변했어요. 전에는 집채같은 짐가방을 끌고 밀고 숱한 사람들이 오갔는데…”
인천과 산동성 위해를 오가는 위동페리가 승선 가격이 오른데다 한국정부에서 기준 초과부분에 세금을 징수하면서 보따리가 수지 맞지 않아 많이 한산해졌다고 얘기하자 별로 맥빠진 모습이였다. 시장을 업고있는 이점을 리용하여 중국계 관광객을 전문 접대하는 식당으로 업그레이드하는게 좋지 않냐고 제의하자 똑같이 김빠진 공이 된 표정이였다. 관광 단체가 가끔 오기는 하는거 같지만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고 식사까지 하는 경우는 거의 제로라는것이였다.
려행부문를 오래동안 전담해왔던 경력때문인지 서울의 관광시스템에 많이 아쉬운 느낌이였다. 쇼핑 천당을 관광단체에 접목시켜 관광, 쇼핑, 음식, 레저 등을 활성화시키는것도 좋은 출로가 아닐까?!
늦은 점심을 치르고 동대문에 다녀왔다. 여흥은 여전하여 다리 아픈줄도 모르고 돌아다녔다. 눈뿌리 모자라게 구경거리가 많았지만 별로 혼자서 감흥을 느끼는거 같아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인사동에서 꽤나 큰 충격을 느꼈다. 중국 상해의 청황묘(城隍廟)나 항주의 허방가(河坊街)나 청도의 즉믁로(卽墨路)와 아주 흡사한 거리였다. 다르다면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중국의 그것과 달리 어딘가 한산한 모습이였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골동품 가게들, 고서, 서예작품, 도자기, 악세사리 등 너무나도 볼거리가 많은 특색의 이 동네가 이렇게 외롭게 방치되여있는 그 리유를 나는 알수가 없었다. 중국의 경우라면 “조작(炒作)”이라고 해서 벌써 가감없이 려행사를 끌어들여 관광객들로 꽉 채워넣었을것이다. 상기 중국 동네들은 그렇게 현실로 되여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상술만은 배워도 무방하지 않을가싶다.
인사동에서 그런대로 마음에 드는 골동품 몇가지를 고르고 효자동으로 건너갔다. 여긴 관광코스로 활용해도 좋을거 같았다. 민담과 같은 구수한 옛이야기에 고풍의 구조물이 어울려 하나의 코스가 되여지는것은 세계적인 관례이기도 하다. 인사동을 이곳과 접목시켜 쇼핑코스와 관광코스를 유기적으로 이어놓으면 꽤나 전망이 있을거 같았다. 그런데 여직 접촉한 서울관광코스에는 상기한 시장이나 동들이 한번도 언급된 적이 없었다. 그만큼 한국의 려행사들은 이미 어떤 경로로 국외에 잘 알려진, 이를테면 경복궁이나 한류로 인해 잘 알려진 세트장이나 세계적으로 유일한 분단 현장인 판문점 등을 판매하는데 열성을 보이는 대신 새로운 코스 개발에는 많이 라태하고 회의적인거 같은 인상이다.  
저녁을 먹고 호텔에 돌아왔을때는 밤 10시가 넘어가고있었다.
분주하게 돌아친만큼 사흘째는 좀 한가한 편이였다. 중요한 코스는 다 들른 편이고 이제 편하게 서울시민이 되는 순서였다. 
래일은 출국해야 하는 날이다. 오후 1시 5분 항공편인데 국제항공편은 2시간전에 도착해야 하는게 룰이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가는 시간을 계산하면 10시엔 호텔에서 떠나야 한다. 그리고 그전에 이번 취재건의 조직측인 서울관광마켓팅(주)과의 미팅도 약정되여있다. 그러니까 마지막날은 나에게 차려지는 시간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우선 신풍역 1번 출구에 위치한 흑룡강신문사 한국지사를 찾았다. 뒤늦은 신고식이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신문사 산하의 "다문화협회"에서 모임이 있었다. 김청호 다문화협회장이 협회 설립 한달동안의 활동과 그 취지를 설명했다. 타문화권에서 온 외래인들이 한국사회에 융합되여 밝고 맑은 한국을 만들어가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자는것이라고 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한국에 헌신하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모임에는 박진엽 한국지사장과 김명환 편집국장을 위시한 20여 명의 회원이 동참했다. 
형제사인 산동지사에서 왔다고 꼭 점심을 대접하겠다는걸 한사코 취재라는 핑계로 물리치고 곧바로 청계천을 찾았다. 고가도로를 헐어내고 청계천을 만들 당시 말썽 많던 일이 눈에 선했다. 그래도 시멘트보다 저렇게 휴식공간이 만들어진게 보기에 더 좋은거 같았다. 소문이 자자한 63빌딩도 올라가보았다. 서울관광상품에 가끔 올라있는 메뉴가 “63빌딩”이다. 오후에는 꽉 닫힌 생활을 영위하던 해외 동포들의 눈을 틔워주고 귀를 열어준 KBS방송국을 찾았다. 남의 눈에 들킬가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밥곽만한 라디오를 귀에 대고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를 경청하던 30년전의 일이 불현듯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해외동포들에게 익숙하고 다정하고 고마운 KBS였다. 그 전파를 통해 “럭키 서울”이라는 노래도 배웠었다.
 
서울의 거리는 태양의 거리
태양의 거리에는 희망이 솟네
타이프 소리로 해가 저무는 
빌딩가에서는 웃음이 솟네
너도나도 부르자 희망의 노래
다 같이 부르자 서울의 노래
에스 이 오 유 엘 에스 이 오 유 엘
럭키 서울
 
아, 정말 그랬다.
서울의 거리는 비전을 향해 달리는 “태양의 거리”임에 틀림없다. 생기로 끓고 활력이 넘치며 지적인 서울은 그대로 영원히 가슴 깊이 남을것이다. 
2009-2010년 세계도시경쟁력 보고에 따르면 서울은 종합경쟁력, 경제규모부문, 국제영향력부문 등에서 세계 10위권에 랭킹되여있다. 그만큼 서울의 국제적 지위와 위상은 세인이 공인하는바이다. 아울러 이제 세계인의 눈길은 서울로 쏠리고있다. 
어쩌면 이번 걸음에 찬사보다 콕 찌르는 말을 더 많이 한거 같다. 접시 깨지는 소리로 들어주시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행운의, 길운의, 대운의 서울을 축복한다. 럭키 서울!
 
2010년 9월 5일 밤 12시 서울 M호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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