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국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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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기축년에 부치는 만필 댓글:  조회:967  추천:0  2012-07-31
기축년에 부치는 만필최국철전통의 힘을 무시하고 우리 말 용어에서조차 낡투, 새것의 계선을 가르 면서 첨단을 달리는듯한 모양새를 보이는 요즘 풍토에서도 기축년, 소해 라는 용어들만은 용케 살아남아서 기원을 표시하는데 일조한다. 끊임없이 륜회를 거듭하는 세월속에서 새해의 벽두가 가까와오면 우리의 문화풍토에서는 어김없이 새해벽두만필, 단상 등 제목의 글들이 흘러나오고 서기스러운 새해를 축복하고 사회 제반 분야에서 해야 할 일을 제시하고 독려한다. 무자년에는 쥐를 말한다면 기축년에는 소를 말하는것이 이제 문화류행으로 되였다. 소는 파워와 억척스러움의 상징이고 대명사이다. 부리망이란 말이 있다. 주전부리를 막을 요량으로 소의 주둥이에 씌우는 물건을 말한다. 부리망이란 소를 부릴 때 소가 햇풀이나 곡식을 뜯어먹지 못하게 하려고 소의 주둥이에 씌우는 물건인데 가는 새끼거나 철사로 그물같이 엮어서 만든다. 이 부리망을 조선북부에서“꾸레미”라 했으니 연변쪽에서도 단연 “꾸레미”라 했다. 그 꾸레미가 변형되여 민간에서는 “쇠꺼레”,  “투레”라 했고 돈화쪽에서는 “다부제”라고도 불리웠다. 지역적으로 이름이 달라도 부리망의 그 제동장치는 한결같았다. 파워가 무진장하고 호랑이도 겁나지 않은 강강한 소라지만 자그마한 부리망을 씌우면 굶어죽어도 부리망을 해체할 아무런 방도도 없다. 지구의 력사가 고급동물이 저급동물에 대한 억제고 간섭이라 볼 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듯하다. 소는 햇풀을 먹으려 하고 인간은 그 풀을 못먹게 막는 장치를 발명한것이다. 철저한 인간위주의 사고이다. 2   관습이란 무섭다.  낯선 길을 걷거나 등산을 하다보면 뒤사람이 꼭 앞사람의 발자취를 따르게 된다. 가로질러나가면 빠르고 앞선 사람이 낸 길보다 더 평탄해보인다고 의식했는데도 결국 잠재적인 무의식에서 해탈하지 못하고 그냥 뒤따르게 된다. 소도 마찬가지다. 수레를 끌고 산으로 들어가보면 꼭 동종류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는것을 볼수 있다. 관방에서 사상해방을 캠페인 벌리듯 주도한지 오래다. 그런데 지역사회에서 진정으로 사상을 해방하고 경제,  문화 등 사회 제 분야에서 파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해방됐는지 기웃거리게 되는 요즘 세월이다.특히 문화령역에서 우리들은 처처에서 자신들이 만든  “부리망”을 쓰고 함구로 일관하고 길을 가로질러 나가거나 독창적으로 길을 열려는 기미도 없다. 관습과 전통은 룰이 다른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전통이란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 시대에 이미 이루어져 계통을 이루며 전하여 내려오는 사상, 관습, 행동따위의 양식을 말한다면 관습이란 어떤 사회에서 오래동안 지켜내려온 질서나 풍습을 말한다. 이 질서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된다. 20세기에 지켜왔던 하드파워적인 질서를 문화라는 파워로 혁파해야 한다는 말이 되겠다. 그 혁파는 가장 기초적인 인간문화행위로부터 시작된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촌이 기와집 사면 배 아프기식 문화”,  “소집단리익문화”,  “남의 뒤담화문화”,  “안면봐주기문화”가 그 특례다. 연변은 이 문화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한 지역으로 남았다.  이런 “무자년문화”가 기축년에도 지속된다고 생각해보면 가슴이 아프다. 3   음력설 제야 밤하늘의 천정을 샹들리에처럼 장식하고있는 별자리가 있다. 오리온 자리의 북서쪽에 놓인 부자형의 별들은 성난 황소의 뿔이 되고 6~7개로 이루어진 별무리들이 황소의 머리를 이룬다. 초원에서 지축을 흔들며 마구 달리는 소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황소자리라고 하는 이 별자리의 주인공은 제우스신이고 황도 12궁 가운데 두번째에 해당하는 별이다.그렇다면 소는 전 인류적인 토템으로 승격하지 않았나 의심할수도 있다. 차마고도에서 등에 짐을 지고 묵묵히 설산을 넘는 서장의 모우를 보노라면 인류가 소를 토템으로 신성시했는지를 단적으로도 알수 있을것 같다. 소가 가장 겁나하는 곤충은 시골에서 “쏘개”라고 이름한 까만 곤충이다.  검은 개미보다 약간 큰 날아다니는 이 곤충은 6~7월사이에 소를 습격하는데 이때면 소는 꼬리를 빳빳이 추켜세우고 네발뜀을 하면서 발광한다.  곤충학자들이나 알것 같은 이 곤충은 소에게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이다. 혹 밭에서 후치질을 하다가 이 곤충의 습격을 받으면 소는 후치멍에를 멘채로 뛰는데 이때 생둥이라면 보습날에 소 발뒤축을 뭉청 끊어서 소를 도살하게 만드는데 경험자들은 소가 뛸 기미가 알리면 보습날을 깊게 박아서 가대기를 부러뜨려 소의 목숨을 살린다. 농경사회에서 소의 가치고 사랑이다. 부리망도 좋고 황소자리도 좋다. 산업화로 달리는 현시대에서 우리는 소란 동물이 내재한 하드파워에 사랑과 문화라는 옷을 입히고 소를 습격하는 “쏘개”가 되지 말고 현대적인 지역문화의 창출에 시선을 돌린다면 기축년이 더 뜻깊지 않을가 속삭여본다.   
58    연변,지역소프트파워시대 열어가는가? 댓글:  조회:1069  추천:0  2012-07-31
연변문화현상투시 4연변,지역소프트파워시대 열어가는가?최국철 연변일보 기자소프트파워란 간단하게 말하면 정보, 과학,  문화, 예술 등이 행사하는 영향력을 의미하는 용어다. 물리적인 힘으로 표현되는 하드파워에 대응되는 개념으로서 관례적으로 강제가 아닌 매력을 통해,  명령이 아닌 자발적 호응에 의해 얻어지는 능력을 말하는것이다. 21세기는 소프트파워가 주도하는 시대가 될것으로 전망되면서 지구촌은 부국강병을 토대로 한 물리적인 하드파워,  즉 경성(硬性)국가(지역)의 시대로부터 문화를 토대로 한 소프트파워, 즉 연성 (軟性)국가(지역)의 시대로 접속했다.이제 소프트파워란 개념은 신대륙 같은 의미지로 각인되였고 따라서 지역마다 정보,  교육, 학문, 예술, 과학, 기술 등 인간의 리성, 감성적 에너지로 구사되는 산물과 련관된 모든 분야에서의 움짐임도 활발하다. 그럼 연변지역의 소프트파워는 현재 어느 단계까지 왔을가?  한마디로 용어가 생소하리만치 초급단계라고보면 비슷할것 같다. 몇년전에 관방에서 주도한 연성환경건설은 템포가 빠른 경제발전을 념두에 두고 부상시킨것 같지만 따지고보면 소프트파워 건설이란 맥락에서 나온것이다. 작년에 연변지역에서 치른 중국북방관광교역회 및 중국연변민속문화관광박람회를 기점으로 관방주도형 소프트행위가 치러지고 파워로 세인들의 눈길을 끌었다지만 이런 단기적인 행위로는 역부족이다. 연변으로 다녀간 내지인들의 별볼일이 없다는 뒤담화가 껄끄러운건 두말없고 외국인들에게는 아직도 연변지역은 촌스럽다는 평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나름이 평이겠지 홀가분하게 지나칠수없는 일이다.한마디로 연변지역의 소프트파워의 미달로 생긴 따가운 시각들이다. 연변지역 가치와 인프라가 잘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소프트파워를 추진할 주,객관적인 엔진박동이 미약하다는 설명이 나온다.현재 중국의 180여개에 달하는 도시(지역)들은 모두가 국제화 대도시를 꿈꾸며 총력전을 기울이고있다. 이들 도시들의 좌표는 경제발전을 전제로 한 소프트파워라고 불리는 문화도시경쟁력이다. 그 경쟁력에 참여하려면 문화도시발전에서 필수조건으로 되는 기술과 인재집결,그리고 지역과 도시의 문화관용을 떠날수 없다. 여기에서 가장 관건은 인재유치다.하지만 연변은 가장 선결조건으로 되는 인재유치가 활발하지 못하고있다.연변은 상당기간 중국의 변연지구에 속하고있는만큼 변두리문화의 속성에서 해탈할수 없고 선진문화와의 접속에서 자주 와류(涡流)가 발생할  지역문화적인 제한성을 갖고 있다. 이런 불리한 여건에서 현재 진행형인 중국도시들의 소프트파워 경쟁에 참여하려면 정보와 인재,기술, 문화와 예술 등 각 방면에서도 저자세의 위치에서 탈출하기도 어렵다.하지만 이런 불리한 여건이라도 마냥 손을 놓고 기다릴수도 없다. 우리들도 “기름 한방울 없기에 초대형유조선을 만드는”긍정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다시말하면 연변이라는, 연길이라는 지역의 특성, 민족집거지란 특성에 맞게 우리들만의 문화적 어메니티(어메니티란 사람들에게 휴양적.심미적 가치를 제공해주는 지역의 특징적인 모습들을 총칭하는 용어, 지역 고유의 민족특성, 민족건축물, 공동체의 독특한 문화나 전통 등이 포함된다)를 창출하자는것이다.연변지역특성, 민족집거지특성, 이런 말은 이제 너무도 들먹거려서 신선감을 잃었지만 문제는 신선감이 아니라 민족지역특성을 만들어가는 인식과 행위자체가 관건이다. 입으로만 특성을 살릴수 없다. 몇년전부터 공무원들의 민족복장화가 추진되고 모퉁이에서나마 의(衣)에서 지역적인 특성이 구현되는것 같더니 이제 그런 작은 움직임도 미비해졌다. 소프트파워는 이런 기초적인 행위로부터 시작된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타지역인들이 연변에,연길에 온후의 첫 감상이 중국의 중형도시(지역)와 비해 새로운것이 없다는 평에서 해탈하자는 설명이 되겠다. 민족지구에서 타지역인들에게 강렬한 어메니티를 발산하지 못하면 이건 분명 우울한 일이다.우리들에게는 연변(연길)이란 변두리 지역특성에 걸맞는 민족문화적인 만족감, 쾌적함을 창출할수 있는 힘이 있다.물론 이런 문화인프라와 친화적인 문화환경의 창출은 단시간내에 이룩되는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의욕적으로 밀어붙쳐야 한다. 세계인은 부르지 못하더라도 자국인들의 시각을 자극할만한 부대시설, 우리들에게만 있는 문화와 예술의 발전에 힘을 모아야 한다. “문화와 예술이 당장은 돈이 안돼서 안되오”는 한치보기 발상이다. 연변은 민족특색구현이란 무형의 상징자본이 있기때문에  절대 그 자본을 그저 흘려보내서는 안된다. 소프트파워는 거리의 간판이 민족어라해서 되는것도 아니고 민속촌을 건설해서 되는 일도 아니다.유형,무형 문화의 집합체고 독특한 민족공통체의 발전상과 그에 걸맞는 전통이 적정선에서 결합해야 한다.도시의 문화품위를 제고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사람들을 오라고 손짓하면서 보여줄것도, 자랑할것도 만들지 못하면 그것은 1차적인 경제소비행위로 그치고만다.연룡도를 연변지역발전 경제발전청사진으로 설계할 때 소프트파워라는 설계도를 꼭 부착해야 한다.우리에게만 있는 가치와 민족정신을 담아내는 지역(도시)이 되고 민족문화적인 향기가 있고 민족특색이 물결치는 지역(도시)이라고 할 때에야 우리의 연변은 소프트파워지역으로 변신할수 있고 지역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미리 약속할수 있을것이다.
57    우리의 거리문화 이래도 되는가? 댓글:  조회:1017  추천:0  2012-07-31
우리의 거리문화 이래도 되는가?최국철 연변일보 기자외국인들이거나 외국에서 몇년 생활하다가 귀국한 사람들의 제일 처음의 평가가 우리들의 란잡한 거리문화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규범과 질서를 무시한 대중들의 보행문화가 이제는 용서해줄수 없는 시점까지 박두했다는 말이다. 지금 이 시각도 연변의 각 도시, 특히 연길의 거리에서는 임의로 차량전용도로를 마구 질러나가면서 질주하는 차량들과 “게릴라전”을 펼치는 행인들의 모습이 연출되고있다. 건널목도 마찬가지다. 적색, 록색 신호등을 무시한 행인들의 용감한 행진은 계속되고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오염된 무질서지만 우리들은 이젠 이런 진풍경에 너무도 익숙해져서 그저 그렇거니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친다. 적색, 록색, 오렌지색으로 점멸하면서 십자거리거나 건널목에서의 차량통행을 지휘하고 행인들의 행보를 지휘하는 신호체계는 그것을 발명한 인간들에 의해 깡그리 무시된다는 설명이 되겠다. 교통에서의 적색과 록색은 사회적인 인간의 행보를 규정해주고 질서를 지키게 만드는 지시등이지만 이 지시등은 우리한테서는 무색해지게 된다.    엄격히 말하면 우리들은 규범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사회인이고 거리에 나서는 순간부터 길문화를 지켜야 할 의무감을 가지고있다.가장 기초적인 사회도덕이다. 객관적으로 이런 현상의 출현은 우리의 도로에 아직도 인간들을 위주로 편성되거나 만들어진 행인전용 건널목의 부재, 인교, 공중, 지하통로 등 각종 부대시설이 부재한데서 원인을 찾아볼수 있고 주관적으로는 우리들의 길문화의식이 전무함에서도 문제를 찾아 볼수 있다. 공중질서의식의 보편화는  초창기에는 홍보도 필요하겠지만 무질서를 규제하고 제한하는  조치도 따라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지금의 교통경찰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민관합동정리가 필요할 시점까지 왔다.교통정리는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다. 정부에서 자금을 내고 로약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줄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건널목에 교통질서를 지휘하는 안전원들이 포진해서 행인들의 질서를 바로잡아주고 강박관념을 주문하느라면 교통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과 관념에 저도 모르게 획기적인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가 시간이 흐르면 행위를 규범하는 질서의식으로 다시 자리잡을것이다. 이런 질서의식은 다시 타인들에게 아름다운 모식으로 전염된다. 사회의 규범의식과 행위의식은 이렇게 문화로 자리잡는 과정을  요하게 된다. 강대한 국가 건설의 제일 마지막 관문이 인간들의 자질과 문화의식, 질서의식이라는 점을 다시 상기시키고싶다.
56    연변의 축제 무엇이 문제인가 댓글:  조회:892  추천:0  2012-07-31
연변의 축제 무엇이 문제인가최국철 연변일보 문화부 부장, 소설가겨울을 잡아들면서 연변의 각 현시의 축제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휴면기에 진입했다. 올해 처음으로 벌인 연변의 축제는 연변을 대외에 홍보하고 지역민들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정부행위에 대한 응집력형성에 매개물 역활을 했다고 나름으로 정면긍정을 하고 싶다. 그러면서도 이제 지속적으로 진행시킬 축제를 문화함양이 높고 관광산업과 접목하고 연변특색의 축제로 자리매김할 그날을 미리 그려보면서 문화적, 경제적인 측면에서 축제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축제란 국가, 지역이나 공동체에서 그 어떤 대상을 기리여 제를 지내거나 경축하여 벌이는 큰 잔치나 행사를 이르는 말이였지만 현시대에 이르러 제란 토템적인 의식은 거의 퇴색되고 축이라는 현대풍만이 활발하게 남아 있는 규모적인 문화행사라고 보면 무리가 없다. 오늘날 세계각국에서는 수천 수만가지의 종종별별의 축제가 다양하게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유럽은 축제를 창출한 지역답게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축제문화가 활발하게 벌어지면서 세인들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산업화가 빠른절주로 진행되는 현시대 생활문화가 바뀌고 고도의 물질문명을 창출하면서 국가, 지역에 따라 전통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독특한 축제를 만들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올해 연변에는 진달래 축제, 련꽃축제 ,사과배축제, 송의버섯축제 ,민속음식축제, 두만강문화관광축제 등등 다양한 축제가 벌어져 세인들의 눈길을 사라잡기도 했다. 연변이라는 지역공동체의 력사적. 문화적. 상업적 특성과 관련된 것이여서 기쁘다.특히 연변이란 특수지역의 동질성에 한획을 긋고 정부주도형 축제가 응집력형성과 복지에 한몫 단단히 했다고 본다. 하지만 옥테 티라 할가 우리들의 초동축제에는 이제 미봉해야 할 구멍들도 처처에 상존해있다.축제문화의 련속성과 영구성적인 고착을 위하여 한단계 엎그레이드 해야 한다고 본다. 축제라면 우선은 문화가 선도되여야 하고 특색이 구비되여야 한다. 행정명령이나 주먹구구식은 외발배기 효과밖에 못낸다.련속성을 보장할수 없다. 진달래 축제는 연변의 축제브랜드로 되기엔 손색이 없는 축제지만 이 축제는 축제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지성인들에 의해 외면되고 있다. 정부주도로 진행시키는 진달래 축제에서 찰떡치고, 그네뛰고 온갖 민속들을 총동원한다.진달래축제에 민속을 접목시켜서는 안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연변은 아름다운 우리민속을 너무도 랑비하고 뒤섞어서 오히려 민속문화를 퇴색시키지 않나 하는 우려심이 든다.그런데다 일견에는 장족들의 하다 같은 수건까지 출시하여 하다가 아닌가 하는 시시비비에 말려들었다. 이름이 진달래 축제인데 진달래를 부각시키는것이 비미하고 단조롭고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행사라는 인상만은 지울수 없다. 진달래란 브랜드 상품과 진달래에 유관된 행사목록을 더 첨부해야 한다. 품을 더 들이더라도 진달래아가씨선발대회같은 응집력에 도움이 되는 행사를 첨부하고 가까운 국내로부터 멀리 타국에 까지 아가씨들을 손짓하는 등 축제의 영구적인 고착에 한몫을 할 수 있는 행사를 다양하게 조직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아 있다. 올해 진행된 각 현시의 축제는 모두가 상기지적한 경향들이 상존했고 정도부동하게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식 , 임무를 완성하는 행사라는 지적에는 자유스럽지 못할것이다. 특히 송이버섯축제와 사과배축제는 동시에 치러서 대상이 분명하지 못하고 참가자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헤프닝까지 벌어졌다. 축제는 말그대로 춤과 노래로 일색하지만 그냥 보아 오던 춤과 노래뿐들이라 이제 식상하다. 다행이 외국 가수들을 불러오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사이사이에 첨가되여 축제를 고저에 끌어 올리는데 도움도 되였지만 이것도 한번이면 족하다. 우리들이 지역적인 축제는 지역특색이 우선되고 축제대상이 분명해야하고 지역의 문화가 선도되여야한다. 중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축제는 연등제와 하르빈의 빙등축제를 꼽을 수 있다.이미 영구성적으로 고착된 빙등축제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 까지 널리 알려진데는 북방겨울이라는 계절적인 원인이 첫째라지만 거기에는 지속적인 시간대와 자연이 부여해준 자연적인 얼음의 세계를 북방인들이 고층차적인 문화상품으로,예술창작품으로 그 얼음을 신비와 몽환의 경지로 창출하는 로동에 그 맥이 있다.북방특색이다. 그리고 축제와 관광의 접목이다.현대의 축제는 그 핵이 부의 창출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미 축제문화가 고착된 타지역의 축제내역들을 보면 한마디로 부의 창출을 겨냥하고 있는것이 많다.한마디로 에서 볼거리를 만들어 놓았으니 와서 구경해줍시사 하는것이 바로 축제이고 여기와서 돈주머니를 풀어달라는것이 기본 내역이라해도 과장은 아니다. 축제에서의 부를 창출하자면 볼거리가 우선이 되여야하고 참신성과 특색, 참가자 참여도가 우선이 된다. 독일 뮌헨의 맥주축제,스페인의 토마토축제는 매개인들의 직접적인 참여에 그 생명이 있는것이다.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참여적인 축제가 전무하지만 이왕 축제라고 하면 볼거리가 풍성해야한다.그리고 그 볼거리를 소유하기 위하여 돈가방을 풀게 만들어야한다. 한바탕 북치고 꽹과리나 치고 춤추고 노래하는 단순무식을 피해야한다. 축제의 주체신분도 이제 다양해야 한다.관, 민이 합작하고 나아가서 정부주도형에서 민간기업에 맡겨 경제효과를 꾀해보는것도 축제문화를 고양하는 수단이라고 본다.그 외에도 행정과 지식계의 련합이다. 적어도 축제문화에 대한 지식계의 자문이 필요하다는 말이다.그 외에도 언론과 매체를 동원하여 대외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를 해야 한다. 한마디로 축제는 항상 화려하고 대규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예산 이벤트식 축제문화보다는 지역적인 특성을 고려하고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여 소규모 저예산이라 하더라도 그 축제가 의미하고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하고 알차게 해야한다.사전의 준비가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다. 축제를 위한 지역 전체가 호응하고 지속적인 의미를 갖고 있을 때 연변축제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다. 연변 지역 주민들도 자기 지역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질 높은 문화 축제가 될 수 있도록 개개인들이 참여도 자못 중요하다. 정부의 주도라고 팔짱만 끼고 간건너 볼구경하는 일 만은 피해야한다. 연변의 축제는 상기한 지적들을 피하고 진정 지역문화로 승화 시켜나갈 때만이 진정한 연변축제로 자리 매김할수 있고 련성성, 영구성을 고착할 수 있다고 본다.
55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했는데… 댓글:  조회:942  추천:0  2012-07-31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했는데… 최국철 연변일보 문화부 부장1《렬양세기》에는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우리의 속담이 진지하게 그려져 있다. 현시대에 이르러 민속학자들에 의하여 이 속담이 다양하게 풀이 되지만 긍정적이라는 데는 모두가 입을 모으고 있다.  그래서 이 속담은 완강하게 류전되여 온다.우리들은 흔히 가을계절을 일컬어서 천고마비의 계절, 맛나는 계절, 사색의 계절, 황금의 계절, 수확의 계절 … 등등 으로 묘사한다.하지만 살벌하고 우울한 계절이기도 하다. 지평선을 넘어 마구 내달려오는 야싸한 가을 바람이 얼굴을 가볍게 때리며 후르르 아우성을 지르고 지나간 뒤에는 노랗게 병든 황철나무잎이  슬프게 뒹굴고 곡식을 거둬들인 전야는 헐벗고 황량하기만 하다. 새벽의 찬기운이 내린 시골과 땀배인 농부들의 고달픈 등짝에는 남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떼들의 울음소리가 《끼륵—끼륵》 처량하게 떨어지고 언 감자알 같은 까마귀떼들이 콱- 콱 불길한 울음소리를 남기며 해가 곤두박질하는 산너머로 날아가버린다. 그래서 이때쯤이면 느닷없이 불안하고 초조해난다. 우울증으로 앓는다.계절병과 생리라고는 하기엔 억울하다. 그래서 그것을 고뇌라 이름짓고 종의 장에 그릴 충동을 느끼나 본다. 그것이 긍정보다 부정을 먼저 인식해보려는 문화인의  약한 몸부림이라도 좋다.하지만 그 와중에도 추석만이 남아서 그런대로 번뇌와 우울를 자아내는 가을날을 상쇠하고 정서를 조률한다. 2벌써 추석이 왔나...시골의 가을은 추석을 전후해서 단풍이 가장 진하게 타고 들녘에서 롤롤히 익은 곡식들의 매틀한 내음이 풍긴다. 하지만 이런 풍경은 말 그대로 잠간이다.일년 사계절에서 가을 만큼 단명계절도 없나 본다.뒤이어 떨어지는 새벽의 찬바람에 이슬.서리가 되여 떨어지면 여름내 독을 쓰며 덕으로 뻗어오르던 오이덩쿨, 고추, 가지, 호박…온갖 남새들은 잎사귀를 널부러뜨리며 시르죽죽 죽어간다.새끼 밴 암소를 먹이려고 언녕 베어낸 옥수수밭에는 피빛으로 시들어가는 변태근을 송엽장처럼 낀 옥수수그루턱이 들쑥날쑥 살벌하게 널려져있다.청징하기만 하던 가을의 코발트색 하늘도 점차 회백색으로 빛을 바꾼다.그 참담함이 어느 때부터인가 추석날 귀성길에서 암담함으로 《승격》했으니  내가 괜히 엄살떠는것이 아닐가.3올해의 추석은 다행이도 된서리도 없고 시르죽죽하던 산천도 아직은 록색이여서 눈뿌리가 시원했지만 추석 특유의 경치와 냄새가 적어서 흔쾌하지 못했다. 왕년의 성묘길은 안해까지 동원 , 동생, 사촌들로 팀을 무엇지만 이번 추석 조묘길은   평생농사일에  찌든 늙은 아버지와 단둘이 갔다. 모두가 어디론가 가버린것이다. 싸늘한 아침의 바람에 코물을 흘리시면서 벌초를 하시는 아버지의 바싹 말라버린 그 등짝이 서럽도로 눈물겹다. 왕년에는 고향의 서산 기슭에는 청명과 추석이되면 성묘하러 오는 성묘객들이 하얗게 나붓겼는데 그 끌끌하고 왕성했던 인파는 이제 하얀 추억속에서만 춤춘다. 형님, 누나 삼촌들은  어디로 갔을가. 그리고 친구들과 이웃들은…4추석은 조상을 기리는 추원보본의 행사이다. 추석날에는 농사일로 바빴던 일가친척이 서로 만나 하루를 즐기던 풍경은 농경사회의 풍경이라고 일괄하기에는 억울할 만치 그냥 현시대를 풍미하고 지속되던 추석경지이다. 친지, 친구들이 성묘가는 길이거나 중간 지점에서 만나 《그간 잘 지냈나?》 《반가워》 라는 가장 간단한 인사를 나누며 함께 회포를 풀고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기는 것을 반보기라고 하고 이 반보기가 추석의 일점홍만큼 풋풋했는데 이제 그 반보기를 할 사람들이 없어졌다. 사람이 사는 냄새가 적어졌다는말이 되겠다.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꼭 겪게 되는 과정이고 그 자체가 진보를 의미하지만 인구의 급감은  산업사회와는 별개의 문제다.우리의 조상님들은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날만 같아라》는 깊은 속담을 남겼는데 ...
54    [문화기행8] 물레야 빙빙 돌아라 (최국철10) 댓글:  조회:1045  추천:1  2012-07-31
[문화기행9] 물레야 빙빙 돌아라  최국철   물레는 민요에서 보다 싶이 빙빙 돌려서 날실을 뽑는게 특징이다. 물레야 아 물레야 빙빙 돌아라...시어머니 오면 매 맞겠구나.닭이야 울며는 이 밤이 새건만 물레는 울어두 샐 줄 모르네 ... 민요에서 보다 싶히 물레 역시 애원의 민구이다. 물레란 솜이나 털을 자아서 실을 만드는 틀인데 한어로 방거 혹은 방차(紡車)라고도 한다 나무로 된 여러 개의 살을 끈으로 얽어 보통 6각의 둘레를 만들고 가운데에 굴대를 박아 손잡이로 돌린다. 회전축을 이용하는 물레는 용도에 따라서 삼과, 목화실을 뽑았고 피나무 껍질로 바를 꼬기도 한다. 청동기시대로부터 사양하기 시작한 물레는 베틀과 나란히 가장 많이 쓴 민구이기도 하다. 베틀이 정교하다면 물레는 엉성한 편으로 제작공예가 간단하고 베틀에 섬기는 날실을 공급하는 기초용기이기도 하다. 어려서 보았던 물레들은 다 세월이 때가 검스레 내려앉아 지금 보면 추레한 물건이 틀림없다 .하지만 한뭉치의 솜이 술술 풀려서 물레바퀴에 감기는 전경을 추억해 보면 물레 역시 우리들의 의(衣)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민구가 틀림없다. 연변의 시골에서 60년대까지 집에서 물레로 솜실을 뽑았고 고급편직물이 나날이 보급되면서 둔중한 물레는 자취를 감추면서 그 대신 란 간편한 민구가 물레는 대신하게 되었다. 질그릇 깨진 것을 모를 죽여서 대충 동구랗게 만들고 중간에 구멍을 뚫어 나무 추를 넣고 손으로 돌리게 만들었는데 말하자면 방추인 셈이다. 시골에서 아낙네들이 모이는 장소마다 이런 가 등장하는데 아낙네들이 저마다 솜실을 늘구어서 그때면 온 집안에 솜먼지로 뿌옇게 되었고 이런 고역을 거쳐서 다시 양말이나 적삼을 뜨기도 했다. 우리세대가 어렸을 때 신은 양말이나 적삼은 다 이런 덕이다.그 를 자꾸 건드려서 솜실을 끊어 놓아 어머니들에게 볼기짝을 맞으면서 성장한 우리들이다. 이번에 이 민속문화기행을 련재하면서 우리연변의 각 현시 문물관리부문에서 우리민족들의 민구 소장에도 눈길을 돌려 봤음하는 바램이 든다.    
53    [문화기행8] 눈물의 민구 - 절구(최국철9) 댓글:  조회:705  추천:0  2012-07-31
[문화기행8]                           눈물의 민구 - 절구최국철 절구-곡식을 찧거나 빻는 민구(民具)이 하나다. 하지만 현시대 믹서, 주서의 출현으로 보기 흔치 않은 민구로 기억에 남아 있다.우리민족은 > 라는 속담을 출범시킨 민족답게 수천가지 민요군을 방출했지만 그 중에서 유독 절구 타령이나 절구에 관한 민요가 없다. 새 쫓는 노래, 쇠스랑타령 까지 만들어 낸 우리민족에게 절구 타령이 왜 없을가 의심해 보지만 결국 절구와 방아는 용도가 같은 민구에 속한다는 해답에서 방아타령을 대입해도 불편하지 않을것이다. 방아가 일반적으로 발로 사용되는 민구라면 절구는 알짜 손으로 사용하는 민구이고 발 방아보다 가변성이 있고 일감이 방대하지도 못하다.절구는 재료에 따라 나무절구·돌절구·무쇠절구 등이 있다. 두 사람이 마주서서 맞공이질을 할 수 있는 큰 절구도 있었다. 현재 이런 대형 절구는 언녕 소실되고 양념을 빻는 소형 무쇠절구들은 흔하게 볼 수 있다.할머니 말에 의하면 에 녀인들은 일터에서 돌아와서는 저녁에 먹을 보리쌀을 빻았다는데 얼마나 고달팠으랴. 삼 나이가 무릅을 퍼렇게 물들게 했다면 절구는 허리병을 도지게 하는 기구였다. 허리힘을 요하는 절구는 오래 빻으면 저도 모르게> 신음 비슷한 먹임소리가 흘러나간다.80년대까지 시골에서 꼬부랑 할머니가 등뒤에 손자, 손녀를 위태롭게 업고 절구를 빻는 경치를 흔하게 볼수 있었다. 엉덩이께로 흘러내리는 어이를 추스르고 한편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고... 고역이 틀림없었다. 정미소가 있지만 작은 량의 먹거리는 이런 절구에 의거하는 일이 많았다. 지금도 간혹 이런 전경을 볼수 있다.민요의 연변 과정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민요의 탄생을 지혜, 기지, 지향과 념원, 풍습 등, 아름다운 서사어를 동원하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우리민족의 민요는 먼저 애원이나 고달픔, 한. 넉두리, 눈물에서 배출된 것이 틀림없으리라절구 -언녕 소실되여 박물관에서만 소장해야 하는 민구다.  
52    [문화기행7]-쟁기-바람같이 사라지다 (최국철8) 댓글:  조회:725  추천:0  2012-07-31
[문화기행6]쟁기-바람같이 사라지다최국철 이번 시골 생활문화기행에서 거리던 소달구지의 소실이 첫 번째 기쁨이였다면 두 번째의 기쁨은 쟁기의 소실이다. 겨리- 소 두마리가 끄는 쟁기를 이르는 말이다. 시골에서 모두 라는 방언으로 통칭되는 쟁기의 출현은 수천년의 력사를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그냥 무심하게 보아 왔던 쟁기가 갑자기 바람처럼 사라진 것이다. 아닌데...기자는 쟁기를 찾아서 이 마을 저 마을 찾아다니면서 기웃거리는 싱거운 행각을 보이다가 어쩌다가 쟁기풍경을 렌즈에 담는 수고도 했다. 사라진지가 어느 땐데... 시골사람들은 이제는 모두가 손잡이뜨락또르거나 소형뜨락또르용 쟁기를 쓴다고 했다. 실제 돌아보니 모두가 소가 아닌 동력으로 밭을 갈고 있었다. 어느 때부터 풍경이 바꿨나. 옛날 우리의 선조님들은 한겨울 쌀밥에 희나리(마른 장작나무)가 웰빙 생활이라 알았고 아지랑이 아물거리고 종달새 우짖는 봄날 남편이 앞에서 밭을 갈고 안해가 뒤에서 씨뿌리면 그것을 가장 따뜻한 경치로 간주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풍경이 가뭇없이 사라졌고 한 쪼각이 감동으로만 남았다. 시골에서 웬간한 장정이면 모두가 쟁기를 다룰 줄 알지만 그 쟁기를 만들거나 다루는 차이가 있다. 쟁기를 잘못 만들면 뒤 손이 무겁다고 툴툴거렸고 꽁무니에 연장을 차고 나가서 밭머리에서 뚝딱거리면서 고치는 일이 비일비재였다. 콩이나 옥수수를 심을때면 괜찮지만 조씨를 떨구 때면 묵은 곡식 그루를 뜨는지라 는 속담이 류전될 정도로 고도의 정신력을 수요하기도 했다. 밭갈이에는 보통 쟁기를 다루는 장정 한 명과 씨를 떨구고 비료를 두는 녀성 두 명을 멤버로 조를 짜는데 생산대 시절 처녀들은 은근히 잘생기고 자기마음에 드는 총각을 찾아 나섰고 총각들 역시 해사한 처녀들을 곁눈질했는데 시골 일에서 밭갈이만큼 남녀사이를 급속하게 가깝게 하는 일도 없었다. 총각이 밭을 갈고 처녀가 씨뿌리고... 이제 누군가 이런 풍경을 유화로 그려 역사에 넘겨야 하지 않을가 잠시 생각해 본다.
51    [문화기행6]'때려서 먹는 음식' -찰떡 (최국철7) 댓글:  조회:675  추천:0  2012-07-31
[문화기행6]"때려서 먹는 음식" -찰떡최국철지금으로부터 49년전 도문시 장안진의 소동구라는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보리가을하고 저녁 늦게 들어온 한 중년녀인이 어둑한 등잔불 밑에서 떡을 치는 남편의 시중을 들다가 남편의 떡메에 골을 맡고 쓰러 졌다. 자루에서 빠진 메가 공중에서 란무하다가 사고를 낸 것이다. 그리고 녀인은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나갔다. 기자의 외조모는 이렇게 세상을 떠나갔다. 음식 중에서 찰떡만큼 공예가 번잡한 음식도 없다. 떡을 치는 순간부터 그 육중한 떡메로 하여 위험수위가 높았고 먹을 때도 자칫하면 목구멍에 걸려서 생명을 잃는다. 필자의 소학교4학년 반주임도 찰떡을 먹다가 목에 걸려서 그 자리에서 떠나갔다. 찰떡을 먹다가 횡사한 사람들은 이전부터 부지기수다.그래서 찰떡을 먹는 습관이 가관인데 찬물에 휘적휘적 적셔 먹는 사람, 콩기름에 말아서 먹는 사람, 각양각색이다. 못살던 그 시절 동네에 떡치는 소리가 들린다고 베보자기에 놓고 주근주근 밟아서 만들었다는 어느 깍쟁이 일화도 거짓말이 아니다. 찰떡에 대한 비화가 끊임없이 발생하여도 떡은 말 그대로 찰떡같은 끈기로 그 생명력을 연장해나가고 잇다. 찰떡이 점도가 강한 것은 찹쌀의 녹말이 주로 아밀로펙틴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밀로펙틴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서 사슬 모양의 구조를 가진 고분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찹쌀을 쪄서 치면 아밀로펙틴이 서로 엉겨서 끈끈해진다. 찰떡은 질이 치밀하므로 용적에 비하여 질량이 많으므로 칼로리가 높다. 오뉴월에 까마귀 골만한 찰떡을 먹어도 기를 돋구어 주고 삼복철에 개고기 국물을 넓적다리에 발라도 기를 돋군다는 속담은 지금도 유효한 걸로 알고 있다. 약이 귀하던 그 시절 민간에서는 위가 약하거나 위궤양에 찰떡을 먹혀서 치유했다. 어디 그뿐이랴. 대학입학시험일에는 락방하지 말라는 속설에 의해 학교의 출입문에 하얀 찰떡이 덕지덕지 매달린다. 끈기 있게, 풀기 있게...새로운 찰떡전설을 아름답게 구가 할 것이다. 지금은 떡메를 보기가 흔치 않고 기계로 대신하여 힘들게 때려서 먹는 중간고리를 생략해서 좋은 점도 있지만 그 대신 찰떡 맛이 순수하지 못하다는 말을 듣는다. 타민족들이 가장 신기해하는 음식 중에서 단연 찰떡이 왕관을 차지한다.. 때려서 먹는 음식- 찰떡 지속적으로 껄끄러운 비화가 끊지 않는 음식이지만 맛좋은 우리민족의 전통음식이다.
50    [문화기행5] 아, 눈물방아야 댓글:  조회:875  추천:0  2012-07-31
[문화기행5]"아- 눈물방아야"최국철방아야 방아야한숨방아 눈물방아 쿵쿵찧니 돌쌀되박하루해를 어찌사노하아까막 아득하다내 팔자야 내 팔자야...우리민족의 구전민요의 한 구절이다.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그 시절 아녀자들에게 제일 고된 일이 방아찧기와 베짜기라 했다. 집단부락이나 조건이 하락된 마을에서는 돌로 만든 연자방아를 놓거나 물의 흐름을 리용한 물레방아를 놓았다지만 연변의 경우 이주의 첫 정착지가 깊은 산골이 대부분이라 산재부락위주였다. 그러니 대부분은 발방아거나 절구에 의거하여 조나, 보리를 빻았다.올 여름방학에 집에 왔던 아들놈이 시골에 계시는 할머니 집에 인사차로 갔다가 거기에서 정미기를 보고서 쌀이 되는 과정을 처음 목격하고 와서 전기가 없던 이전에는 무슨 물건으로 쌀을 빻았나 물어 보았다 그래서 아래 와 같은 대답을 했다.연자방아의 경우 연변의 농촌에 60년대까지 남아 있어 시골출신 중년세대들에게 서먹한 공구가 아니다. 연자방아는 한꺼번에 많은 곡식을 찧거나 밀, 보리를 빻을 때 마소의 힘을 이용한 방아인데 대부분 눈을 싸맨 당나귀가 끌게 돼 있었다. 라도향의 소설이 제목으로도 된 물레방아는 방아채 한쪽을 파내어 물받이를 만들고, 반대쪽에는 공이를 달아 가운데를 받친 원시적인 물방아이다. 물받이에 물이 차면 그 무게 때문에 아래로 내려가 반대쪽의 공이가 들리고 물받이가 기울어져 물이 쏟아지면 공이가 아래로 떨어져서 확 속의 곡식을 찧는다. 역시 60년대까지 남아 있어 기억하는 시골사람들이 많다. 현대의 기계만 보면서 자라온 아들놈은 나의 해석을 듣고도 얼빤한 눈치를 보였다. 아들에게는 나의 그 해석이 타임머신을 타고 아득힌 먼 원시적인 생산현장으로 돌아간 삭막한 해석으로 들렸을것이다.방아에서 가장 보편화가 되고 사용빈도가 많았던 방아는 발 방아다. 디딜방아라고도 통칭되는 발 방아는 필자의 집에 90년대 초까지 남았고 그 방아를 주제로 나의 첫 소설이 탄생한지라 방아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스크린화면처럼 생생하다. 이 방아로 해서 우리 부산함도 많았는데 그 장본인은 아버지였다. 농망기에 시골아낙네들은 보통 점심기간대면 찾아 와서 방아를 찧는데 워낙 그 방아소리가 생경스러운 쿵덕쿵이라 낮잠을 쉬는 아버지를 방해하군 했다. 성미가 괴팍한 아버지는 아낙네들이 돌아간 후 달려 나가서 당장에서 방아채를 뽑아 던진다. 이거 부산해서 못살겠다. 하지만 이튿날이면 어김없이 방아채가 제자리로 돌아갔고 다시 쿵덕거리군했다.
49    [문화기행4] 덜커덕 달구지 댓글:  조회:595  추천:0  2012-07-31
[문화기행4]덜커덕 달구지최국철해밝은 길에 삐그덕 삐그덕 달구지가 흔들며 가네 덜커덕 덜커덕 삐그덕 삐그덕 흔들흔들 흔들며 가네 ... 앞마을에 복스러운 며느리감이 있다던데 ... 우리민족의 민요의 한 대목이다. 우리는 이 민요에서 봄이 내려앉은 시골의 흙 길에서 시름없이 흘러가는 소달구지를 련상할 수 있고 거기에 눈을 지그시 감고 느릿느릿 소가 끄는 달구지에 몸을 싣고 가는 늙은 촌옹의 보습을 상상할 수 있다. 우리민족의 민요에서 상기한 노래만큼 농경사회의 풍경을 유연하게 묘사한 노래가 없다고 본다. 한 폭의 수채화다. 삐그덕, 덜거덕은 나무바퀴에 쇠테를 두른 달구지에서 나는 소리를 말한다. 이런 달구지를 찾아 필자는 이번에 십여개의 촌을 밟았는데 끝내 예기한 목표물을 찾지 못했다. 시골사람들이 말에 의하면 4-5년전에 벌써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어제같이 보았는데 벌써 자취를 감추다니... 그 대신 고무바퀴로 만든 달구지가 류행이였는데 멍에에서 자체까지 알뜰한 강철로 만들었다. 새 천년을 맞으며 새롭게 진화한 달구지들이다. 1300년경 은나라에서 전차가 출범하면서 동시에 나타난 소달구지는 700백년의 력사를 자랑하고 있고 아직도 집요하게 그 존재를 고집하고 있다. 달구지는 수레라고도 통칭되는데 의미지가 같으면서도 캐고 보면 약간 다르기도 하다, 달구지라면 소가 끌게 돼 있고 수레라면 소도 끌 수 있고 가볍게 만들면 사람도 끌 수 있게 돼 있다. 이런 수레는 각 나라마다 모양이 약간씩 다르고 지역마다 다르다. 마퀴 4개 짜리도 있는데 우리민족은 대개 2개의 마퀴가 달린 달구지를 사용해 왔다. 하지만 남도에서는 흔히 멍에와 달구지 틀이 분리되여 있고 북도는 멍에와 자체가 채로 련결되여 있다. 그리고 평원에서 쓰는 달구지와 산지에서 쓰는 달구지도 약간씩 달랐다. 용정이나 화룡쪽에서는 달구지 틀이 약간 짧고 짐을 실어도 세로 실었지만 훈춘이나 왕청쪽에서는 차체가 약간 길었고 짐을 실어도 가로 실었다. 달구지라면 삐그덕 거리는 소리 외에도 겨울이면 눈길에서 짜르르 이상한 소리를 내는데 한겨울 벼 짚이나 조 짚을 성시에 실어 나르는 처서 때면 새벽에 짐 실은 달구지가 눈길에서 짜르르 들려오던 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 날 저녁이면 동구 밖에서 아낙네들은 처서를 간 나그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달구지는 육중한 강철축대에 역시 쇠로 만든 강철원을(시골에서는 타리라 불렀음) 끼여서 바퀴가 돌게 했으니 거기에는 마찰을 줄이려고 기름칠을 하게 돼 있는데 달구지에 쓰는 기름은 고약처럼 질긴 검은 기름이다. 지금 보면 석유에서 가솔린, 디젤유 같은 상등 기름을 분유한 후 남은 찌꺼기다 보리밥에 박 바가지가 짝이고 된장에 풋고추가 제격인 것처럼 달구지에는 찌꺼기 기름이 제짝인가 한다. 고약처럼 필요 없이 질기고 상품가치도 전무한 그 보잘것없는 기름과 달구지의 소실은 이번 문화기행에서 제일 환호작약할 일로 남는다는 것을 밝히면서 그>소리를 아련한 향수로 떠 올려 본다.
48    [문화기행3] 시골 대문문화 댓글:  조회:657  추천:0  2012-07-31
[문화기행3]시골 대문문화최국철대문문화에서는 아무래도 성시보다 시골이 앞선 듯 하다. 시골의 대문은 부지 내의 시설을 보호하는 방어적인 목적과 시설을 표현하는 의장적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골에서 현재 거이 대부분 마당으로 통하는 대문이 설계되여 있는데 대개 쇠파이프로 만든 철대문과 널판자로 만든 두 가지로 크게 볼 수 있다. 소유지를 표현하는 대문은 시대에 따라 대문의 의장, 구조, 재료의 구성, 경제 여건 등 복합적인 의미지로 변화되여 왔다.시골에서 제일 먼저 출현한 것이 사립문(삽짝문)이다. 가느다란 싸리나무나 잔잔한 나뭇가지로 엮어서 문짝을 만들었는데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연변의 노래에도 많이 오르내렸다. 개바자에 삽짝문은 사촌격이다. .사립문은 대충 만든 문이라 든든하지 못하고 삐걱거려서 사용하기가 불편했다.시골에서 주택개혁은 80년대 중기부터 고조를 일으켰는데 이시기에 벽돌담장이 서고 거기에 철대문이거나 솟을대문이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시내에서 나온 철문장사차가 시골에서 어슬렁거린다. 현재 시골이라도 철대문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철대문은 든든하지만 엿 볼 수 있다는 괜한 불쾌감이 있어 몇년전부터 철판문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과거 우리조상님들의 주택대문은 계급에 따라 그 양식을 달리했다. 보통 농가나 초가에사는 서민들은 사립문을 설치했다. 이때 대문의 구성재료는 설치된 바자 재료와 대부분 같게 하는 것이 통례이나 때로는 담은 토담으로 구성되고, 대문은 사립문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기와지붕을 한 일반 서민주택이나 중류주택에서는 몸채 또는 행랑채와 같은 지붕 속에 문을 설치한 평대문 양식으로 했다. 이런 양식은 북도 보다 남도쪽에서 더 광범위하게 사용하였다.벼슬자리가 높은 관료들이거나 사대부의 주택에 주로 건축되는 솟을대문은 이 대문이 설치되는 행랑채보다 대문채 지붕을 한층 높이 솟게 만들었다. 또 좌우에 기둥을 하나씩 세우고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하고 두짝 판장문을 설치한 일각대문은 주로 마당과 마당을 구획하는 담에 설치되었다. 솟을 대문은 부와 권력이 상징이기도 했다.이런 력사가 있기에 우리 민족에게는 '남대문놀이'와 '문열어라놀이'라는 민속 놀이까지 있었다.
47    [문화기행2] 우리들의 담장문화 댓글:  조회:575  추천:0  2012-07-31
[문화기행2]우리들의 담장문화 최국철현재 연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울바자는 야산에서 나는 싸리나무나 가둑나무 등으로 만든 울바자(《목책(木柵)》이라고도 하고 한국에서는 바자울이라 함)와 판장(板墻)으로 만든 나무울바자들이다. 이보다 튼튼하게 만든것은 담, 또는 담장이라 하는데 토담, 돌담, 벽돌담, 블록담, 콘크리트담 등이 있다.력사적으로 담장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만든 성(城)에서 기원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담장문화에서 중국은 만만찮은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담장문화는 그 력사가 깊고 웅후하다. 중국인들의 담장은 조선사람들의 담장보다 높고 든든한것이 특징이다. 조선도 삼국시대부터 꾸준하게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나름으로 력사가 있는 셈이다. 옛날의 성곽은 흔히 토성(土城) 과 석성(石城)이 알려져 있으나 목책으로 울타리를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현재 담장은 시골에서 가장 많이 볼수 있는데 크게 울바자와 벽돌담장으로 나누어 볼수 있다. 수만년전부터 사용해 왔던 울바자와 현대산물인 벽돌담장이 나란히 상존해 있는 보습이 퍼그나 신기하다. 훨씬 이전 우리 조상님들의 거주지와 집들은 대개 외주물집들이였다. 외주물집이란 마당도 크게 없고 밖에서 안을 마음대로 엿볼수 있는 그런 집을 말한다. 사실 깊은 산골에 외따로 떨어져서 지은 집에는 울타리가 필요없었을것이다. 군체를 이룬 부락이라 해도 셈평이 짭짤하게 펴인 집이라야 돌과 흙으로 만든 죽담이거나 지푸라기를 섞어 쌓은 흙담이 고작이였다.현재의 담장문화는 너무 높게 쌓는걸 맹신하지 않는다. 풍수설과 기후에서 기원한것이다. 시골에서는 지금도 주인집 나그네를 알려면 먼저 변소간부터 보라는 일설이 류행하는데 마찬가지로 담장을 보면 주인집 나그네 얼굴을 련상할수 있다. 울바자를 개바자로 대충 엉성하게 뭉그렸다면 틀림없이 어수선한 나그네의 일솜씨를 짐작할수 있다. 반대로 참나무로 튼튼하게 만든 울타리면 아주 튼실한 나그네의 모습을 엿볼수 있다. 지금은 시골에서 바자(담장) 싸움을 흔하게 하지 않지만 이전에는 봄이 되여 울타리를 다시 세울때면 앞뒤 집에서 흔하게 바자싸움을 하군 했다. 그 바자 너머로 언제 떡사발이 오갔냐 의심할 정도로 얼굴을 붉히고 삿대질이 오갔다. 담장은 울바자보다 경제적으로도 훨씬 투자가 많고 든든하고 이런 말썽도 피할수 있었다.이런 담장문화도 어쩔수 없이 제한성을 동반하고 있는데 괴리감을 조장하고 바깥세상과의 련계를 등지는 등 지적을 받기도 했고 개혁개방전에 담장문화는 중국의 전통적인 자기중심과 외계의 발전을 도외시한다는 대명사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여 정부청사에 둘러막았던 담장을 철거하는 파격적인 모습도 보였다. 제창할 바다.
46    [문화기행1] 주거문화로 보는 력사 댓글:  조회:687  추천:0  2012-07-31
[문화기행1]주거문화로 보는 우리력사 최국철조선족들의 이주 력사가 통상적으로 백년안팎이라 볼 때 이민 1세들의 지은 주택은 이제 문화재 버금가는 고택으로 남았고 이런 대표적인 유물은 후세들에게 민속적인 읽음과 대단원을 달아야 하는, 은근한 무게로 압박을 해 오는 시점까지 왔다. 조선족들의 대표적인 주거 공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는데 하나는 지금도 흔적이 랑자한 초가집들이고 다른 하나는 기와집 군체다. 초가집은 그 맥이 길어도 과거나 현재까지 거이 답습상태이기에 여기에서 기와집만 잠시 언급하련다. 현재 연변의 시골에 간혹 남아 있는 기와집은 그 력사가 대개 60-100 좌우로 봐도 무리가 없다. 도문시 량수진 소재지마을에 합각지붕 기와집이 네 채가 군체로 자리잡고 있는데 현재 한 채가 무너지고 세 채가 보존 되여 있다. 그 외에 월청진의 하석건, 백룡, 등지에 4-5 의 기와집이 남아 있는데 이중에서 가장 완전하게 보존 되여 있고 대표적인 기와집은 하석건촌의 조상룡 로인이 살던 기와집이다. 현재 도문시 민족 사무국에서 관심을 갖고 보전방식을 고려하고 있는 기와집이기도 하다.29일 기자와 도문시민족 사무국의 박영강과장은 도문시 정부 방부시장이 안배해준 전용차를 차고 하석건으로 향했다. 하석건촌에서 서쪽 산기슭에 자리잡은 고택은 현재 주인이 바꿔였고 상주인도 없이 비여 있었지만 세살문까지 남아 있어 가장 전형적인 량통 팔간 기와집이였다. 부엌과 정지간을 중심으로 서쪽에 안방, 아랫방, 고방, 웃방이 붙어있고 동쪽은 외양간, 방앗간으로 설계 되였는데 외양간은 아직까지 수채 구멍이 남아 있었고 외양간 마루가 남아 있었다. 그 리고 밖에 툇마루가 있었다. 종가집 규모로 보이는 이 집 밖에는 아직도 우물자리와 연자방아자리가 남아 있었다. 토담까지 있었다지만 현재는 흔적이 없었다.이 집의 원래주인인 조상룡(76세)로인의 증언에 의하면 자기가 그 집에서 태여 났다고 했다. 그러면 1930년 이전에 세워졌다고 보아야 하는데 로인도 건축년대를 모르고 있었다. 그저 이 집은 자기의 조부가 지었고 거기에서 5대가 함께 살았다는 기억밖에 없었다. 원래 조선 청강동(이전엔 보천개라 불었음)에서 조부님이 두만강을 건너오고 그 후에 지엇다고 하는데 90- 100년으로 잡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이런 집은 대못 한 개 사용 안하고 중방, 대공 들을 자개를 물려서 만드는데 그 건축방법이 어찌나 절묘한지 이런 집을 철거한 시골사람은 갈채를 보낸다. 여기에서 잠간 짚고 넘어갈 것은 이런 집은 일반적으로 양택풍수설에 근거하여 터를 잡고 지었다는 것이다. 현재 이런 주택 문화재가 바야흐로 훼기되고 있는데 관계부처에서 하루빨리 대책을 대여 보존해야 한다고 본다.
45    추천사(2.21~ 2.28) 댓글:  조회:457  추천:22  2011-02-20
 추 천 사  최국철 연변작가협회 부주석의 《광복의 후예들》이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였다.  《광복의 후예들》은 앞서 출판된 최국철의 장편소설 《간도전설》에 이은 제2부이다.  《광복의 후예들》은 이주 1세대와 2세대들이 광복후 토지개혁이라는 전대미문의 특정시기에 계급분화를 맞이하고 그 소속집단에 속한 특정인들의 인간상을 치렬하게 그려내고있다. 또한 유산자와 무산자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대립구도가 획분되고 혁명의 대상과 혁명의 력량으로 계급분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에 대한 폭력을 섬뜩하게 그리고있다.     금주의 문인으로 추천한다   문학닷컴 편집부
44    [단편] 왈복이가 돈을 꾸다 (최국철) 댓글:  조회:737  추천:22  2010-04-05
왈복이가 돈을 꾸다최국철국경절 황금련휴를 고대 기다려온것만치 준비할 물건들이 요란했다. 낚시도구외에도 텐트, 에이매트, 버너와 코펠, 쌀, 그외에도 자질구레한 일습들을 챙기는 사이에 아래에서는 언녕 와서 기다린 낚시친구들의 재촉이 화살 같다.  당장 내려가 거짓말을 몇번이나 한후 집을 나설 즈음 이번에는 전화벨이 팔팔하게 울렸다. 없다고 해. 전화 받으러 가는 안해의 등뒤에 건방지게 한마디 던지고 돌아섰다. 십중팔구 나를 찾는 전화일것이다. ―남대천이요?… 지금 나가는데요… 알겠어요… 여보, 낚시터에서 찾는것 같은데요. 촐싹거리기는… 낚시터에서 누가 찾는다고… 안해는 이번에도 우리가 남대천으로 낚시하러 가는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이거 또 왈복이 전화 아닐가.  마지못해 전화를 받는 나의 청각은 전화코드를 진동하는 그 특유한 목소리임자를 확인하는 순간 짐작이 맞는구나라는 가벼운 안도감과 이번에도 또 돈을 꾸려는가 하는 은근한 불안감이 동시에 달려왔다. 품을 팔아서 이렇게 전화한다면 틀림없는 청탁이다. ―헤헤헤헤… 사둔이 낚시대  휘둘기러 가겠는데 내가 훼방놓았지?   왈복의 그 특유한 큰 입과 헤헤헤헤… 웃음소리를 전화코드에서 듣는것이 아니라 곁에서 보고 듣는것만치 쟁쟁했다.   사무실 동사자들은 모두 헤헤헤가 최선생을 찾습니다. 헤헤헤가 전화로 찾던데요 하고  왈복이라는 이름보다 그 특유한 헤헤헤로 왈복이를 대체하리만치 그 헤헤헤는 인기가 있다. 뭔 일인가? 인사수작까지 늘여놓고… 왈복이는 인사수작을 모르고 그냥 직방 자기가 할말을 먼저 까놓는데 ― 훼방이라는걸 알면 전화하지 말아야지.  왈복이와는 신사치레를 하지 말아야 한다. 교제에서 샌님처럼 사양하고 공청단서기처럼 해말쑥하면 그게 더 구겨지는 일이라 더 강하게 밀어부쳐야 한다. ―헤헤헤, 내 오늘 장가가는데 하루만이라두 내 둘러리루 해라이. 곁을 아무리 둘러봐두 쓸만한 넘이 한넘두 없다이. ― 뭐? 사돈이가 장가가? 자다가 봉창 뜯는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생긴 말이렷다. ― 왜? 이 사둔이 장가가문 안되냐? 헤헤헤헤. ― 그게 아니구 그런 소식을 왜 이렇게 촉박하게 알리냐 그게지. ― 헤헤헤,  그렇잖아두 사둔한테 자꾸 헌 이불짝만 씌워놓아 진땀나게 맨들어서 미안할가 해서리 기별 안했더니… 곁에 사램이 너무 없어서 이렇게 알린다이. 그리 알구 좀 와바라이, 기다릴게. 그리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탁 끊어버렸다. 어허, 이거 사람 피곤하게 만드네. 말 그대로 사돈이 장가가는데 내가 왜 가야 하나? ― 왜요? 전화 잘못 받았다고 나한테 소박을 맞은 안해는 조마조마해서 지켜보고 섰다가 무슨 큰 일이라두 생겼나 얼굴에 근심기를 달았다. ― 왈복이가 장가 간다우. ― 왈복이? 왈복이가 누군가요? ― 남대천의 그 사돈 말이요. 형수님의 사촌동생되는 그 사돈… ― 아, 형님의 사촌동생 … 그 사돈 말인가요? 근데 장가는 무슨 말인가요? ― 이거 말을 못알아먹네. ― 아, 그러니까 여지껏 로총각이였다는 말씀인가요?  시골을 모르고 시내에서 알뜰하게 자란 안해는 시골에 마흔이 된 총각들이 무작정 대기중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있지만 가슴으로 통감하지 못하고있다. ―기가 차네. 마흔에 첫 버선이라더니. 남대천은 연길― 훈춘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형님의 처가마을이라 너무 삭막하게 생각하는 곳은 아니다. 여느 마을처럼 뒤에 배산림류로 뒤에 언덕 같은 자그마한 산을 의지하고 앞에는 가뭄철이면 황소오줌처럼 흐르는 남대천이 지절거린다. 형을 따라서 몇번 가보았고  사돈들이 사는 마을로만 알고있었다.  그런데 타의로 사돈들만이 사는 남대천에서  누군가를 만나보아야 할, 팔자에도 없을 사연이 나를 기다리고있을줄이야.  내가 본사로 옮겨간지 얼마 안되여 동사자가 나를 찾는다고 했다.  그날 연변작가협회로 취재차로 나갔는데 그 소식이 올 무렵은 내가 한창 취재에 열중하던 때라 귀찮았다. 그래서 후에 다시 보자고 하고는 전화를 꺼버렸다. 그런데 또다시 전화가 왔다. 그 손님이 돌아갈 움직임이 없이 끝까지 기다린다는데 남대천에서 왔다고 했다. 남대천? 이상한 일이다. 남대천에서 나를 알 사람도 없고 황차 있다 해도 어려운 사돈들뿐이다. 두번이나 전화로 호소문을 날린 녀동사자는 사돈벌이 된다는 해석까지 달았다. 이거 아무래도 가보아야겠네.  녀동사자의 사정보다 점심시간에 사무실에 낯선 손님이 혼자 멀거니 주저앉아있는 풍경이 우리 사무실의 품격을 잡는 일이라 취재를 마치고 곧바로 본사로 직행했다. 그러면서 내내 궁금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남대천의 사돈? 사돈이라면 형수님의 편에서 올라온 손님인데… 누구인가?  부랴부랴 사무실로 찾아오니 나를 반겨주는 손님은 얼굴이 생소한 시골장정이였다. 게다가 이마가 훌러덩 까진 번대머리고 걸대도 황소 같이 헌걸찬 껄껄한 손님이다.   나를 보자 구면지기라도 되는듯이  헤헤헤헤… 웃음을 짓는데까지는 호기심을 보였는데 그 다음에는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였다. ― 사돈인가?  이제 소설 쓰길 그만두고 기자질 한다면서리? 헤헤헤, 날 모르는가? 다짜고짜로 하대하는 놀음에 어안이 벙벙해서 얼굴이 굳어졌다. 기자질이라니… 그 질자가 아무래도 꺼림직했다. 누군데? 무례라기보다 오히려 치기 같았다. 내가 귀인도 아니고 기억력도 너무 삭막하지도 않지만 눈앞에 장승처럼 뻗치고 서서 헤헤헤를 련발하고 낯색 한점 변하지 않고 하대하는 품을 보면 내가 오히려 주눅이 들었다. ―  아직도 몰겠나? 나 왈복이야. 남대천의 왈복일세. 왈복이?… 왈복이가 누군데?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 남대천에 민철매부 따라온적이 있지? 생각 안나? 술도 같이 마셨는데. 서산너머로 감자알 같이 사라지는 까마귀떼들 같은 존재처럼 거의 사그라져가는 기억속에는 형을 따라 남대천으로 고기잡으러 갔던 기억밖에는 없었다. 그러니 거기에서 사돈들의 얼굴을 익히고 함자까지 기억할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형을 매부라 하고 나를 찾아온 사돈손님이라 일단은 손님을 어려운 자리에 모시고 꽃방석을 펴주어야 했다.       왈복이는 나의 깎듯한 기색에서 자기를 알아보았다고 단정하고는 또다시 헤헤헤 너털웃음을 쳤다. 철이 지난듯한 그 헤식은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사돈이라는 왈복이가 나를 찾아온 까닭을 다시 궁금해야만 했다. ― 헤헤헤헤… 그 매부하구 누나가 없으니 연길 와두 아는 사람 하나 없어서리… 서글프구먼. 형님과 형수님이 한국간지도 3년이 되니 그럴만도 하다. 무슨 일일가? ― 왔던바하군 군더기 없애구 직방 말합세. 렴치없다는걸 알면서두 연길 한번 행차하자 해두 며칠 별려야 하니. 돈 200원 먼저 빌려줄수 있나? 뭐, 돈 빌려?  작두로 눈섭 밀어주오 라는 소리보다 더 허기지게 웃기는 청탁앞에서 웃지 못했다. 자신의 존재두 기억하지 못하는 먼 사돈을 청해놓고는 대뜸 돈 빌려달라는 먼 사돈 왈복이,  그 용기와 바지랑대 같은 꿋꿋함에 그저 멍―해야 하는게 내가 취할 몫이였다. 관방의 통고도 격식이 있는데 외나무다리보다 더 어렵다는 사돈에게 돈을 빌리자는 그 뻔뻔함에는 례의라는 절차까지 깡그리 무시당했다. 억이 막혔지만 내색할수도 없었다. 형님보다 형수님의 체면을 봐주어야 할게 아닌가. 그것도 많지도 않은 푼돈 200원인데…   기색을 감추고 지갑에서 돈을 선선히 뽑아주면서 넌지시 점심식사를 하자고 빈소리도 했다. 오지랖이 넓기는… 당장에서 후회했지만 빈말에도 순순히 따라서는 사돈앞에서는 다시 어쩔 도리도 없었다. 앞장서서 씩씩하게 나가던 사돈은 손님이 주인의사를 따라 아무거나 혹은 간단하게… 라는 례의적이 사양도 외면하고 자기는 밀가루음식을 즐겨 한다면서 그쪽으로 가자고 했다.  주객이 전도되는 풍경이다. 이번에는 놀라지 않았다 생면부지의 먼 사돈한테서 씩씩하게 돈을 빌리는 그 용기라면 음식에서도 례외가 아니기때문이다. 사람들이 욱적거리는 캘리포니아우동집에 가서 우동을 시켰다.  캘리포니아우동이 처음이라면서 번대머리에 구슬 같이 돋아나는 땀을 깨끗하지 못한 팔소매자락으로 뻑뻑 훔치며 후르륵, 후르륵 요란하게 먹어대는 사돈을 가만히 바라보느라니 어느덧 은연중 측은해났다. 이 동정이 후날 왈복이와 교제를 이어가는 끈으로 남았지만 당시는 그 동정의 의미를 몰랐다.  경악에서부터 동정까지 불과 한시간 차지만 나 자신도 그 우화과정이 어슴푸레한 꿈만 같았다. 그 동정은 대중음식인 캘리포니아우동을 처음 맛본다고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그 시각부터였고 깨끗하지 못한 옷과 굽이 물러앉는, 시류에 뒤진 검은 구두를 훔쳐보던 시각부터였으리라.  사돈도 가슴에 따스한 온기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겠는데 오죽했으면 나를 찾아오랴― 하는 가슴 넓은 리해심까지 불러왔다. 둘은 소경이 제 닭 잡아먹듯 말없이 묵묵히 앉아 음식을 먹었다. 그저 시골에서 살지만 농사일은 안하고 기술직에 종사한다는 음식상분위기와 전혀 동이 닿지 않은, 자랑 비슷한 왈복의 소개가 고작이였다. 시골에서 기술직에 종사한다면  어떤 직종일가? 시골태생인 나도 모르는 기술직종… 그것이 시작인줄 당시는 몰랐다. 며칠후에 우편으로 나에게 그 돈이 날아왔다. 솔직히 그 돈을 그저 사기당하는 셈으로 주었기에 기다리는 마음이 비고 홀가분했는데 정작 그 돈이 다시 임자 찾아오자 감동까지 하는 내가 이상한 존재로 느껴지면서 다시 한번 왈복이를 생각할 즈음에 왈복이는 신기루처럼 내앞에 나타났고 또다시 캘리포이나우동을 세그릇이나 먹는 그를 지켜보아야 했다.  그렇게 자주 나타나는 왈복이는 나에게는 유쾌한 존재도, 불쾌한 존재도 아니였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남대천벽돌공장에서 기술공으로 일한다지만 가만 보면 권양기의 스위치를 만지고  밀차바퀴 바람이 새면 손질하는 허드레잡일을 하는것이 틀림없었다. 왈복의 기술직은 이런것이였다. 하지만 세물전령감 같이 모르는게 없이 다 아는듯 으시댔다. 시골에서 이런 사람을 일컬어서 《대포》라고 하는데 내보기에 《왕대포》라 해도 왈복이는 서러울것이 없을만치 왕창 불었다. 시골에서는 제법 화려하다 할만한 경력이였는데 탄광의 막장일에 능하고 야장간에서 몇년 모루를 뚱땅거리고 타일벽 붙이고 기와 얹고 목수하고…모조리 다 안다고 했다. 그만하면 웬만한 알부자가 되겠는데 자기는 마누라도 없으니 곁에 달린 식구가 없기에 주머니에 돈을 비축할줄 모르고 먹는 놀음에 다 때려치운다는 희떠운 자랑까지 덧붙인다.  왈복이는 기억에서 지울가 하면 찾아왔는데 대체로 돈을 꾸지 않으면 캘리포니아우동을 얻어먹으러 왔다. 왈복이는 덥지도, 차지도 않게 대할 그런 사람 같았고 실제로 그렇게 대했다. 그러면서 왈복이와의 처세를 나름으로 익혔는데 알루미늄처럼 나긋하기보다 녹이 쓴 강철 같이 껄껄하게 맞대거리해야 한다는것이다. 왈복이도 례의를 차리고 격식을 차리는 일에는 싫어했다. 그와의 사이는 4계절의 온도를 따라 변해갔다. 그와 가깝게 보낼 계기는 여름에 있었다. 내가 낚시편집광인걸 어떻게 알았는지 얻어먹은 우동값을 갚는다면서 남대천으로 낚시하러 내려오라 했다. 자기네 벽돌공장 공장장이 낚시전문용 늪을 하나 만들고 거기에 잉어와 붕어 5천근을 넣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뒤에 달고싶은 친구가 있으면 다 데리고 오라는 큰소리도 남겼다. 어허, 이거 어쩌다가 왈복이 신세로 공짜 낚시할 일이 생겼네. 기분이 좋았다. 낚시군들에게 가장 반가운 소식은 낚시하러 오라는 기별이다.  가만, 이거 대포가 아닐가?  더럭 의심이 들었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인기업가라도 5천근이나 되는 고기를 못에 방류하다니… 적은 돈이 아닌데. 하지만 그 의심은 잠간이였다. 낚시터로 간다는 그 일 자체가 즐거운것이다. 낚시에서 한마리도 못낚거나 낚시바늘과 줄을 떼우는것도 낚시재미의 한가지다.  이튿날 한무리나 되는 낚시꾼들을 데리고 남대천으로 갔다. 대를 펴고 한낮까지 기다렸지만 어신은 바이 없었다. 고요한 수면우로 물새들만이 외롭게 날아예면서 지종거렸다.  이거 속임수에 든거 아닌가. 한마리도 낚지 못한 친구들이 허구프게 웃으면서 나를 원망할 무렵에 왈복이가 요기를 하라면서 술 몇병에 나무잎처럼 바싹 마른 낚지 몇마리를 달랑 들고 덤벙거리면서 다시 늪으로 찾아왔다. ― 5천근이라더니… 또 대포가 아닌가. ― 헤헤헤헤… 급해말구 술이라두 한잔 하세. 왈복이는 넉넉한 표정이다. ― 사돈이 말 믿은 내가 우둔해. 데리고 온 친구들앞에서 내 체면이 구겨져서 말이 아닐세. ― 헤헤헤헤…글쎄 급해말라니까.  왈복이는 그 특유한 웃음을 지으면서 내옆에 쭈그리고 앉으면서 이미 반죽한 떡밥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 이게 먼데? ― 여기 괴기는 이 떡밥만 문다네. ― 그래?… 근데 냄새가 왜 이렇게 고약해? 이게 무슨 떡밥인데? 향긋한 떡밥에 습관된지라 썩은 두부냄새가 나는 그 떡밥이 탐탁치가 않았다. ―헤헤헤헤… 글쎄 넣어보라이. 공장장이 가만히 맨들어준건데 나두 모르우. 하는수 없이 떡밥을 바꾸었다.  허허허… 이게 웬 일인가? 스윙하자마자 어신이 오면서 찌가 미끌어지듯 수면아래로 빨려 들어간다. 바삐 낚아채자 손으로 고기의 그 용감한 발악이 전률해오면서 낚시대가 심하게 반등했다. 이것이 진정한 낚시재미다.  ― 사돈만 많이 낚으면 된다이. 헤헤헤헤… 그 공장장두 돈을 팔아서 넣은 괴긴데 다 낚아가면 되우?  못낚으문 그게 기술 탓이지 괴기 탓이겟수. 하하하… 전형적인 시골사람의 교활함이다. 흐뭇한 인사는 자기 몫으로 남기고 남은 몫은 다른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그 교활함이 왈복에게 있다는 자체가 신기하기도 했다. 고기가  노는 곳까지 청해왔으니 이제 남은 몫은 너희들이 재간에 달렸다는 왈복이 그 소박한 교활함은 우리쪽에도 못주인에게도 얼굴을 세우는 일이다. 내가 줄기차게 낚아올리자 못에 고기가 없다고 아우성치던 친구들을 입을 닫았다. 여기 늪고기들은 향긋한 떡밥보다 냄새가 고약한 떡밥만 찾는다네. 나의 귀띔에 떡밥을 바꾼 친구들도 서운함을 상쇄하고도 남을만치 몇마리씩 낚아올렸다.  나도 덕분에 체면이 섰다. 더욱이 그날 저녁에 왈복이는 귀로에 오르는 우리들을 잡고 양고기내포와 고기를 대접했는데 우리들에게는 그 은근한 맛이 좋은 추억거리로 남았다. 낮에 아무런 기별도 없이 모르는체 시치미를 떼고있다가 슬그머니 준비해놓은 그 술상은 왈복의 솜씨가 옳은가 의심이 들 정도로 완벽했다. 그저 로모가 함경도식 가마목에서 바삐 돌아치는게 민망할뿐… 그외의 시골분위기는 감성에 충실한 기자들에게는 그저 신선하기만 했다.  돈을 빌리고 캘리포니아우동을 세그릇이나 비우는걸 보고 싱거운 맨물 한사발인줄 알았는데 은근히 귀여운데가 있는 왈복이였다. 왈복이― 먼 사돈은 대체 이런 사람이였다. 그후 왈복의 발걸음은 더 가벼워졌고 무랍없이 나를 찾아왔다. 왈복이는 이렇게 나의 생활권에 뛰여들었다. 왈복이는 나의 먼 사돈이고 친구였다. 그러던 왈복이가 장가를 간다. 차안에서 내가 사정을 말하자 동행자들은 별수 없다는 기색을 보이면서 일단 먼저 남대천에 들렸다가 부조로 통하면 그 자리에서 낚시터로 다시 직행하자고 합의하고 먼저 남대천에 들렸다.  동행들이 말대로 그저 부조로는 통하지 않을것 같다는 막연한 직감은 왈복의 그번 대머리와 격에 맞지 않은 양복과 헤헤헤를 보는 순간에 신통하게 맞는 서글픈 직감이였다는것을 통절하리만치 느끼면서 동행들을 먼저 보내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헤헤헤헤, 사돈두 좀 보게. 여기에 둘러리감으루 누가 나설 사램이라두 있는가. ― 신부는? ― 집안에서 얼굴에 연지곤지 쳐바른다이. 헤헤헤, 몽고족녀자라이. ― 몽고족? ― 그리 됐다이. 몽고족처녀와 결혼하다니? 혼례를 치르는 집치고는 모여온 사람들이 서글플만치 적은데다가 모두가 령감로친 일색뿐이였다. 상과자를 욕심낼 조무래기들조차 없는 시골의 한산한 잔치집 분위기는 무너져 바야흐로 실그러지는 시골의 축소판이다. 왈복이가 설명을 안해도 차에서 내리면서 오늘의 낚시는 여기에서 끝났다는 직감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조상님들이 남긴 혼례의례를 깡그리 무시하고 초라하게 치르는 왈복의 잔치날은 찌뿌둥하게 흐린 하늘에서 비까지 질질거리면서 거추군들과 하객들의 기분을 탁하게 망쳐놓았다. 절차를 무시하고 신랑집에서 대충 화장을 마친 몽고족신부는 혼례에서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입는다는것도 까맣게 모르고 어설픈 한복을 입고 큰상으로 직행했다. 현대식 혼례절차에서 흔히 보는 성혼선언, 주례사, 결혼선물 같은 의식은 모조리 삭제되였다. 조선말 한마디 모르는 몽고족신부는 목석 같이 묵묵히 큰상앞에 앉아서 수탉의 입에 물린 빨간 마른 고추를 신기하듯 바라볼뿐이였다. 해볕에 타고 고된 일에 지쳐버린 얼굴에 화장발자국이 얼룩덜룩 남아있는데다 바람이 불면 당장 날아가버릴듯 바삭 말라있었는데 젖이 샘 솟을듯해야 할 어머니 후보로는 등외품 판정을 받을 체질이였다.  ― 헤헤헤헤, 올해 벽돌공장에 몽고쪽에서 숱한 일군들이 새로 들어왔는데 저 룽메이가 내 눈에 들어서리… 큰상을 받으면서 왈복이는 둘러리로 앉은 나의 어깨를 건드리면서 결혼담을 늘여놓았다. 천하의 미인을 얻은 기분이다. 어깨에 잔뜩 힘주고 앉은 왈복이 모습을 보노라니 말 못할 서글픔과 헤픈 웃음밖에 다른 말이 필요없는 현장이다. ― 룽메이를 데리구 몽고로 들어갔다 왔는데 거기에는 늙어서 기절할 아버지밖에 안계시더군. 그래서 그 걸음에 저레(아예) 데리구 나왔다이. 얼매나 구차한지…집도 없이 허술한 풍막에서 살드라이. 왈복이가 구차하다면 그 정도가 어떤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왈복이는 이렇게 로총각의 허물을 벗으면서 장가라는 의식으로 우화과정을 마치고 로총각의 딱지를 뗐고 몽고족처녀 룽메이는 자기보다 무려 15살 년상이고 팔자에도 없을 조선족 총각에게 시집왔다.  연변 남대천의 왈복이는 초원에서 말을 달리던 칭기스칸의 후예를 장인으로 모셔왔다. 인생이란 이러듯 무상하다. 그후 왈복이는 몽고족 안해를 데리고  몇번 연길로 왔고 그때마다 캘리포니아우동을 세그릇을 먹으면서 몽고족 안해를 옆에 앉혀놓고 위생이 불결하다 가정살림 모른다고 궁시렁거렸다. 조선말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그의 안해는 나의 얼굴기색과 남편의 기색을 번갈아 살펴보면서 궁폐한 기색을 짓고 측은하게 앉아있군 했다.  칭키스칸의 후예들은 장구한 초원의 생활에서 얼굴륜곽을 대개 둥글넙적하게 만들고 공연히 광대뼈를 부각시킨것이 특징인데 룽메이는 동남아녀성처럼 이마가 도두라져 나와있었고 머리칼도 노르무레해서 도무지 몽고족녀성이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가만히 보면 왈복이는 룽메이와 꽤나 으르렁거리는것 같았고 룽메이 역시 다소곳이 남편의 뜻에 따르는지라 살아가는 일에서 큰 트러불이 없을것 같았다. 부부가 별게라더냐 상호 뜻에 따르고 떨어져있으면 보고프고 아프면 이마 짚어주면 그게 부부이다. 반반한 인물만 뜯어먹고 살 일도 아니다. 한쪽이 세게 나오면 지고들고 흠집이 있어도 슬쩍 갈무리하는것이 부부사이다. 나는 몽고족들의 생활환경과 우리들의 생활환경이 다르니까 리해하라는 제법 어른스런운 조언을 했고 왈복이는 헤헤헤 웃음으로 대답하군 했다. 안해는 룽메이에게 화장품이거나 옷견지를 선물하군 했는데 그때마다 룽메이는 조용하게 웃었다. 가만 보면 이들은 재미있는 부부간이다. 이들을 볼 때마다 장현량의 《령혼과 육체》(후에 말 모는 사람 제목으로 영화로 개작) 소설이 떠올랐다. 현대판 《말 모는 사람》들이다. 왈복의 느닷없는 출현과 어두운 밤에 홍두깨 내밀듯하는 돈빌리기 작전은 장가가면서 자취를 감추어서 이제는 그 유습이 근절되는가 했는데 웬걸 그게 아니였다.  퇴근무렵에 불쑥 나나타서 500원만 빌려달라 했다. 안해가 해산하러 부호병원에 입원했다는데 선불금으로 2000원 내야 하는데 약간 모자란다고 했다. 느긋하고 넉살좋은 헤헤헤를 련발하던 왈복이 모습은 어디로 도망치고 그 대신 무척 조급한 모습만이 대신했다. 다른 일도 아닌 애기 낳는 일인데 거절할 턱이 있겠는가. ― 몽고족들은 다 그런지 몰겠다이. 우리네 의사 말이 룽메이는 애기 나오는 길이 너무 좁아서 애기 못낳는다네. 그래서 연길 큰 병원에 와서 수술해야 한다는데… 애 낳는 일에 무슨 돈이 그리 드는지… 연길 병원 넘들은 말짱 도둑넘들이여. ― 어느때 낳는대? 재정과에 올라가서 돈을 빌려 왈복이에게 주었다.  ― 뭐 며칠후면 낳겠지므. 돈을 받고 병원으로 돌아갔던 왈복이는 그 이튿날로 또 나를 찾아왔다. 안해가 언제 애 낳을지 모르는데 멀쩡한 놈이 병원침대머리에서 끄덕끄덕 졸면서 침을 흘리기보다 어디 마땅한 일자리를 찾아서 돈이라도 벌고싶다는것이다. ― 일찌감치 이런 날을 준비하구 푼돈이라두 여투어두면 어디 병나우? 버는족족 때려치우더니 이제야 바쁜 모퉁이를 만났군.  ― 그러게 말이여. 장가란게 노름질이 아니라이 헤헤헤. 난감했다. 당장 어디에서 마땅한 일자리를 구한단 말인가. 로무시장에 가면 림시 일자리를 구하는 인부들이 인산인해를 이룰만치 일자리가 턱없이 모자라는 연길인데… 더우기 남자의 일자리는 힘들다. 녀자라면 식당에서 허드레일자리라도 구할수 있으련만… 하지만 안해의 해산비용을 마련하려고 일자리를 구한다는 왈복이에게 찬물바가지를 주기가 어려웠다.  무슨 방법이 없을가? ― 헤헤헤헤… 아무 일이라두 돈만 벌면 되니까 사돈이 나서서 꼭 찾아주게. 마누라의 말라가는 얼굴과 남산만하게 불어나는 앞배를 보면  참으로 불안해진다이. 내가 남대천에서 왕대포라 통하는데 마누라하구 자식한테야 왕대포를 불겠나. 이왕 이렇게 된바하군 늦었지만 어떡허나  마누라 굶기지 말구 애두 잘 키워야지.  이튿날에 다시 오라는 큰소리를 치고 왈복이를 바래고 선 나는 어디서 림시 일자리를, 그것도 헌걸찬 사나이 일자리를 구할가 고민해야 했고 큰소리만 치는 입과 내 능력의 차이를 통절하게 느껴야만 했다. 이 세상은 그래도 가슴으로 통하는 길이 따로 있고 머리로 통하는 길이 따로 있다. 일이 되느라 그런지 행정과의 리과장이 사장사무실로 가는 걸음에 나의 사무실에 들렸다.  아차, 내가 왜 이 친구를 잊었지? 키가 롱구선수처럼 큰 리과장은 나의 낚시친구다. 다짜고짜로 남자가 할수 있는 일자리를 청탁했다. 그리고 사정을 말했다. 리과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남자가 할수 있는 일자리는 이미 다 찼고 청소원으로 일하는 박아주머니가 병가로 출근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럼 됐어. 리과장은 남자가 청소를 할수 있겠는가 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배가 허기져서 허천 들리듯 껄떡거리는 판에 보리밥, 조밥 가릴 계제가 있나. 내가 억지로 밀어붙이자 리과장은 그럼 먼저 시험해보자는 식으로 마지못해 응낙했고 그 이튿날로 왈복이를 불러왔다.  ― 헤헤헤헤, 마침 잘됐다이. 못배운 시골넘이 시내 와서 찰떽 굳은 떽을 가릴게 있나? 돈버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두 해야지. 왈복이는 헙헙하게 대답하고 당장에서 리과장을 찾았고 그걸음으로 비자루를 들고 복도를 쓸고 걸레를 쥐고 위생실을 청소했다.  남자가 할 일이 따로 있지 아녀자들이 하는 일 내가 왜 해? 대포체질인 왈복이는 충분하게 이런 말을 뿜어낼수 있는 사람이고 그 말을 대비하여 왈복이를 궁지에 몰아넣고 호되고 윽박지를 말을 골라두고 은근히 준비해온 내가 되려 무색해졌다.  왈복이가 두말없이 일을 하자 내가 편해졌다. 녀자들의 위생실청소가 은근히 걱정되였는데 그것도 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 정도에서 그치면 왈복의 림시직업은 조용하게 시작되고 조용하게 끝나겠지만 그것이 아니였다. 왈복이는 사무실마다 불쑥불쑥 뛰여들어서 파지를 거두었고 사무실 재떨이까지 말끔하게 비워주는 열성까지 보였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사무실침대에 있는 이불까지 걷어다 말끔하게 씻어주는 서비스까지 했다.  남자가 그것도 마흔이 되는 번대머리사나이가 투박한 손으로 이불을 씻는 그 풍경은 상상해도 장관이다. 각 부마다 밤당직을 위해서 침대를 놓고 이불까지 준비해두고있는데 원래 청소담당이였던 박아주머니는 복도와 위생실만 책임지고 사무실은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 그것은 행정과에서 정해준 계선이라 다른 시비가 없었다. 그런데 이 무언의 계률을 왈복이가 무랍없이 깨고 용감하게 뛰여든것이다. 행정과 리과장의 말에 의하면 왈복이는 자처하고 저녁마다 밤당직까지 선다고 했다. 청소직 월급이 500원이니까 남자에게는 너무 적은 임금이다. 저 사내는 누군가?   각 사무실마다 이런 물음표가 떠돌고 그 물음표가 감탄표로 변하기까지는 불과 며칠사이다. 최선생네 사돈… 나와 왈복이 관계가 드러났다. 웬만하면 선생호칭을 잘 쓰는 기자들이지만 시골에서 올라온 사나이에게 그것도 허구한날 헤헤헤만 련발하는 번대머리에게 선생이라는 호칭은 사용하지 못하고 그저 두루뭉실하게 《사둔님》이라 호칭했는데 삽시간에 왈복이는 기자들 사이에서 《사둔님》이라 통칭되였다. 그 유머적인 《사둔님》은 화제인물로 부각되였다. 우리 사무실 이불도 례외없이 독수리앞의 병아리신세처럼 왈복의 우악진 손에 끌려나갔고 이튿날로 다시 제자리에 찾아왔는데 아녀자들이 씻은 빨래처럼 제법 새물내가 나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새로 온 청소담당이 최선생네 사돈이라던데 잘하더군. 복도에서 만난 주필까지 이런 말을 남겼다. 불과 며칠만에 왈복이는 사람들이 흔히 잊고 외면하는 청소담당자의 자리를 수면우로 떠올리게 하는데 성공했다.  처음에 내키지 않은 기색을 보이던 행정과의 리과장은 나를 찾아와서 반색하면서 박아주머니가 이번에 다시 나올것 같지 못하다고 하면서 왈복이와 정기로무계약서를 체결할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것만은 될것 같지 않았다. 왈복이가 있을 곳은 농민공들에게 관용을 모르고 짜기만 하는 연길이 아니라 시골 남대천이다. 왈복의 안해가 제왕절개수술을 받은것은 왈복이가 청소담당으로 무려 20여일을 뛰고난 다음이였다. 애기가 룽메이 배속에서 나올 기색이 없다고 희미한 근심기를 달고있던 왈복이에게는 너무도 반가운 일이다. 안해에게 미역국이라도 끓이게 하고 안해를 뒤에 달고 부호병원으로 찾아갈 때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밤시간대다.  연길의 밤은 이때부터 열린다. 임신부들만이 모이고 새 생명을 배태하는 부호병원은 다른 병원과 달리 활기찬 모습이다.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애기들의 울음소리가 간간하게 들렸다. 새 생명의 신음만큼 듣기좋은 소리가 이 세상에 다시 없다는 실감이 들면서 룽메이가 있는 병실로 찾아들었다. ― 어마나 쌍둥이네.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안해가 환성을 먼저 올렸다. 녀자들의 눈이 달랐다.  뭐 쌍둥이? 전화에서 그런 말이 없었는데… 다시 보니 쌍둥이가 옳았다. 어허, 왈복이가 재간 있네.  ― 헤헤헤헤… 그렇게 됐다이. 왈복의 이번의 헤헤헤헤는 여느 헤헤헤보다 다른 밝은 웃음이였다. ― 고추인가? 국화인가? ― 고추 한놈 국화 한떨기라네. 헤헤헤헤, 오누이 쌍둥이지무. ― 와따, 이거 호박에다 수박넝쿨까지 얻었네그려. ― 오누이쌍둥이는 하늘이 알아준다는데. 지금도 애 하나 더 낳고싶어하는 안해는 진정 부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수술에 지치고 마취에 절었던 룽메이는 우리가 들썽거리자 살그머니 깨여났다. 우리에게 조용하게 머리를 끄덕여 인사를 대신한 룽메이는 추호의 부끄러움도 없이 빈약한 젖가슴을 활짝 들어내고 쌍둥이오누이에게 젖을 물렸다. 왈복이는 측은하게 안해를 지켜보면서 땀에 절은 노란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드라마가 따로 없었다. ― 사둔이, 다른 일자리가 더 없을가? 저 룽메이가 수술하면서 피를 많이 흘렸다고 의사들이 병원에 더 입원해있으라 하는데… ― 우리쪽 일은 어찌구? 지금 장기고용계약을 맺으려 하던데. ― 그 일은 아침, 저녁나절이면 끝나는데 낮시간대에 할 일이 없다이.   ― 일 욕심이 너무 많은게 아닌가? ― 헤헤헤, 일해서 지친다는 벱이 없다이. ― 내가 다시 알아봅세. 나는 처음으로 추호의 유예도 없이 흔쾌하게 대답했다.  안해는 룽메의 이불밑에 우유라도 사라면서 돈봉투를 밀어넣었다. ― 사돈만 믿네. 나 무슨 일을 하더라두 나를 믿구 이 세상에 온 저 쌍둥이오누이를 굶기지 않겠네… 나만 믿구 온 저 룽메이를 잘 지켜야 하겠구… 말을 마치면서 꺽―하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왈복이가 울어? 왈복이가 울다니… ― 사돈 내 주책이 없지? 이런 날에 왜 눈물이 나는지 나두 모르겠다이… 연길의 밤은 화려한 가로등이 타면서 조용하게 여물어간다. 왈복이와 몽고족 룽메이… 쌍둥이, 새 생명의 고고성,  그 새생명을 지키는 이들 부부에게  연길이라는 도시의 품과 사랑은 얼마나  넓을가? 연변문학 2006년 제12호
43    [단편] 개같은 어느 여름날 댓글:  조회:1180  추천:39  2009-08-02
개같은 어느 여름날최국철1북으로 급하게 날아가던 기러기의 끼륵- 울음소리가 바람같이 후르르 떨어지던 소리가 어제 같이 들렸는데 어느덧 여름이 찾아 왔다. 새벽을 털고나면 빈터만 늘어나고 여망없는 지경마을의 여름은 터무니없이 무덥기만했다. 개가 가난한 주인을 꺼리지 않듯 세월도 가난하고 찌그러져가는 깡촌을 그저 스쳐지날 줄 모르고 여름의 온갖 교태와 성채를 몰고 온다.이제는 약한 비라도 한줄금 내려서 더위를 몰아갔으면 좋으련만 사방산기슭을 휩쓸며 덮쳐든 중복의 무더위는 황소불알을 삶을 지경으로 맹위치고 있다. 범이 새끼를 쳐도 모르게 무성한 쑥대만이 키높게 자란 지경마을 길에는 뜨거운 해빛만이 제멋에 내려 앉아 화로같이 달구었고 쑥대만 멋없이 키워댔다. 밤마다 옥수수가 퍼런 잎사귀를 이들거리며 쑥쑥 크는 소리를 들어도 컹컹- 자지러지게 짖어대던 동네개들마저 돌담밑을 찾아서 혀를 길다랗게 빼물고 십리 마라톤을 하기라도 하듯 요란스레 헐떡거렸다. 암탉만 보면 괜히 심술끼가 발동해서 돌담우로 내쫓으며 담약한 암탉을 식겁하게 만들더니 지금은 암탉이 코밑으로 유유히 스쳐지나도 숫제 못본척한다. “켁켁…왈헝(형) 이게 무슨 노름질이우? 수캐덜마저 세떼(혀를) 가루 물고 암캐두 못쫓구 쫠- 네각 뻐더뿌리구 늘어졌는데 매나네 (괜히)개고생을 사서 하는게 아니우?”왕싼에게는 왈룡이가 왈헝으로 불려진다. 한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든 왕싼이 돌담 곁에 뻗은 자드락 길에 나타날 무렵은 오후의 해가 서편으로 기우는 시각이다. 왕싼이는 자드락 길에 시름없이 뻗어 나온 호박 줄기를 발로 툭툭 건드리면서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이 자드락 길은 아낙네들이 마을뒤 “서싸위재”라 이름한 밭에 심은 풋 옥수수를 뜯으러 다니던 길인데 이제는 망태기나 버들광주리에 풋옥수수를 담아 이고 내려 오는 아낙네들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아침에 손잡이뜨락또르부품 사러 진정부 소재지 마을 합촌으로 내려갔던 왕싼은 합촌에 있는 산동출신형제들과 술이라도 한잔 걸친 모양 취기가 도도하다. 질척거리는 눈귀에는 취기가 잔뜩 매달렸고 누렇게 싹아빠지는 뻐덩이 쯤 사이에 벌건 고추가루 몇개가 렴치없이 매달려 있었다. 비밀봉지안에는 커다란 돼지고기 한덩이와 보기에도 느끼한 비게덩어리들이 들어 있었다. 왕싼이는 비게를 녹혀서 식용유 대신으로 쓰는데 그 냄새로 하여 그의 잡안에서는 사철 쿰쿰한 기름냄새가 가셔질줄 모른다. 지경마을 사람들은 이런 냄새를 “산동냄새”라고 두루뭉실하게 이름했다. 아주 폄훼에 가까운 조크였지만 사람좋은 왕싼은 대수로운 기색이 아니다.석수쟁이 돌을 보고 그냥 지나칠수 없다. 아침에 내려 갈 때에는 맨정신이라 뱀을 잡는다고 육중한 선바위밑굽을 파내는 왈룡이를 보고 속으로 황소보다 더 우둔한 놈이라고 픽픽 비웃으며 알은체도 않더니 거나하니까 사설쟁이로 둔갑해서 수작을 걸어 온다. 갖바치가 남이 신만 살피고 야장쟁이는 쇠철만 찾는다더니 왕싼은 왈룡이가 파내는 바위를 살피면서 이 커다란 바위를 쪼개면 20장의 비석을 깎을 수 있다고 번개같이 타산하고 있었다. 어느 때부터 세월이 때가 묻어 더 단단한 이 선바위를 욕심냈지만 땅에 허리까지 박힌 큰 화강암이라 섣불리 손을 쓰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그런데 구성이 나타난것이다.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왈룡이가 지금 바위주위를 전호를 파듯 파고드니 품이 엄청드는 토역공사를 면했다고 속으로 즐거운 비명지르고 있었다. 비석같은 정교로운 물건은 산에 올라가서 만들기보다 마을안이라 만들면 도둑을 맞힐 근심도 없다. 그리고 사방산으로 올라가는 다리품이 덜 든다. 황차 산에서도 이런 바위를 만나면 바위 주위를 덮은 흙을 파내야 한다.“젠장헐 썩을 얼방뒤눔이 어디서 똥물이라두 한잔 후려쳤꾸마 (마시 다) 시방 난 세떼(혀를) 가루 빼물게 탈탈 바쁘니까 쉬여빠진 헌소릴 작작 허구 그냥 지나가. 돌떼(덩이) 보니 또 쪼아서 돈벌 궁리나냐”얼결에 이쪽으로 올라오는 왕싼이를 본 왈룡이는 왕싼쪽을 거들떠보지 도 않고 삭정이를 부러뜨리는듯한 꺽꺽한 소리로 맞대꾸했다. 지경마을 사람들은 한족인 왕싼이가 조선말을 얼음우에 박밀듯히 잘한다고 《얼방 뒤》라고 부른다. 대개 혼혈아라는 의미다. 광복전후에 로씨야군인들을 “마우재”라고 부르더니 이제 조선말을 잘한다는 한조건으로 되지도 않는 “얼방뒤”로 몰아간다. 어디에서는 혼혈아를 “튀기” 라하더니 여기서는 얼빤한 사람을 일컫던 “얼방뒤”가 된다. “시끄럽다 고마 가라”왈룡이 입에서 잔디같은 상냥한 말이 흘러나올리가 만무하다. 헌렁 닝구까지 벗어낸친 왈룡의 웃몸는 아프리카 흑인들도 우리 조상님 올시다 를 련발할만큼 까마귀 같이 검고 반들거린다. 초여름부터 웃몸은 뜨거운 해볕에 로출되여서 동면에서 금방 깬 검은 곰 같다. “와차 맨삽으루 이런 큰 구뎅이를 파냈수…대단하우.”왕싼은 입을 딱 벌렸다. 왈룡이 같은 우둔한 사내만이 발상이다. 커다란 바위 주위를 파낸 토역공사는 장난이 아니다. 뱀을 잡는다고 벌린 역사치고는 도저히 상상이 안되는 무리한 공정이다. 혼자 힘으로 이런 역사를 벌이다니 …사람이 아니라 우둔한 황소라니까“이 돌째기(바위)는 이제 내꺼니까 수캐수작질 말어…”이?…왈룡이헝(형) 가만보니 그저 바지저고리거나 맨물한바가지로만 봤다가는 큰코 다친다니까. “헤헤헤…무신소리우 사방산에 가문 숱한 돌인데 욕심안내우…헤헤헤 왈헝(형) 저녁에 돼지괴기나 삶아 놓구 한잔 후려치지무.”왕싼은 왈룡이에게 타박 당했는데도 대들줄 모르고 벙글거린다. 왈룡 이가 괜히 심술을 부려보는것 같지만 이 선바위는 왕싼이 차지가 되는건 시간문제다. 왕싼의 잔머리라도 몇마디에 왈룡이를 나긋하게 구워 삶을수 있다. 저녁 편쯤 왈룡이를 술상에 끌어들이면 이 선바위는 당장에서 왕싼이 차지가 될것이다. 왕싼이는 속이 단단하지 못한 왈룡의 속내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호떡이 차려졌어“켁… 이 지경마을에서 누가 왈헝이 힘을 누가 당한다우 당체(최)… 근데 이 돌밑에 정말 무리뱀굴이 있단 말이우?”왈룡이는 지금 집채같은 선바위의 허리쯤을 파내면서 연신 쾡이로 뱀을 놀라게 하느라고 탕-탕- 요란하게 때리고 있었다. 쇠붙이가 돌에 마치는 특유한 파찰음은 바위밑에 숨어 있는 뱀을 놀라게하기엔 족했다.“있지…옛날부터 많았다구 소만났네라. 그래서 장난이 험차란 애덜두 이 선바위 근처에는 얼씬두 안했니라 … 벌써 몇마릴 후무렸지무(잡다)…”왈룡이가 허리를 펴는 사이에 바위밑에서 재빛에 검은 줄무니가 건너간 살모사 한마리가 불쑥 기여나왔다.“이크!…이크!…”구덩이 우에 선 왕싼은 살모사가 구덩이 벽을 타고 자기한테로 다가오기라도 하듯 얼른 한발 피하면서 사색이 되였지만 고무장화를 신은 왈룡이는 구덩이 안에서 빠질 구멍을 찾느라 갈팡질팡 기여다니는 뱀을 내려다보며 서두르지 않고 기회를 보다가 재빠르게 살모사의 뒤꼬리를 쥐여들고 몇번 휘둘렀다. 그리고는 뱀이 기절할 무렵 재빨리 비밀주머니 안에 쑤셔 넣었다. 왈룡이는 지경마을 사람들이 정평대로 뱀을 무서워하 지않는 사내가 옳았다.스르륵- 스르륵- 비밀봉지안에서 되살아난 뱀들이 나오려고 발악하는 소리가 소름끼친다. 겁을 모르고 둔감한 황소도 뱀을 만나면 흠칫 몸을 떨면서 놀란다. 짐승중에서 돼지만은 뱀을 무서워하지 않고 사냥해서 우적우적 씹어 삼킨다 왈룡이도 돼지 못지않게 용감하게 뱀잡이를 하고 있다.“이거…이거 선바위가 무리뱀이 굴이라던게 정말이구마. 왈헝이사 똥담이 크니까 이런 잽이라두 하지 이 지경마을에서 뉘기 감히 겝나서 달려나 든다우. 당최 비실거리지무”왕싼은 듣기에도 가소로운 아첨을 하면서 가만히 웃었다. 왈룡이가 제일 듣기 반가워하는 소리라는걸 잘 아는 왕싼이라 왈룡의 가려운데를 슬슬 긁어주고 다독여주는데는 명수다.“아적에(아침) 나와서 두마릴 잡구 점심먹구 나와서 세마릴 줴겼거든(잡았다) 헤헤헤… 백원벌이 했어 오눌(늘)은 재수 좋치므”기계가 할 방대한 토역공사를 하고 목숨을 볼모로 뱀잡이를 하면서도 백원벌이에 크게 만족하는 왈룡이다.왕싼의 예상이 적중함은 인차 드러났다. 왈룡이는 왕싼이 둥실둥실 춰주는 가소로운 말에 대뜸 입이 귀에 걸리면서 흙과 땀으로 번뜩이는 얼굴에 찬란한 웃음을 피워 올렸다.“이제 이 선바위밑을 다 파내느라문 왈헝은 이 지경마을에서 왕부자가 될게우 흐흐흐…저녁편이 꼭 오우. 이 도투괴기루 안주해서리 술이나 왕창 후려치기우(마시자)”왈헝- 이라는 당치도 않는 호칭을 빼면 왕싼의 조선말은 한구석도 나무랄데 없다. 어려운 속담이나 관용구 에서도 막힘이 없다. 하기에 모르는 사람들은 조선사람으로 착각한다. “체나라(물러나라) 펄펄 끓는 삼복철에 뉘기 똥배주나 후려친다구 그래두 말오줌이(맥주) 좋치무…갈 때 뒤병 사가지구 갈게”맥주가 좋다면서 고작 두 병이다. 하루 벌이 백원에 입이 귀에 걸리는 왈룡의 호주머니 사정으로는 맥주로 배를 불리기에는 아직 무리다. 두병을 사는것이 마치 값비싼 양주라도 사는듯 뿌듯한 기색이다.“켁 왈헝두 량로반네 뱀탕집으루 불이 펄펄 나게 댕기더니 이제 피쥬거품에 입맛을 들였수? 봄까지만해두 피쥬가 쇠오줌같아서리 못 마신다고 흑흑 거리더니 …헤헤헤 어저는(이제) 입이 와늘(정말) 꼬지(고급)구먼”“그려그려… 뭐 그리 됐다이…”왈룡이는 어깨를 으슥해보이고는 다시 허리를 굽히고는 선바위밑에 드러난 잔돌들을 부지런히 밖으로 내던졌다. 이제 허리께 만큼 파들어간 둥근 구덩이는 뱀이 기여 오르게 힘들 정도로 가파로웠다. 우둔한 왈룡이지만 구덩이가 깊어야 뱀이 도망치지 못한다는 도리를 잘 알고 있었다. 평생 지경마을에서 살아 온 왈룡이는 너구리 사냥군들이 날이 저물면 너구리가 굴안에서 달아나지 못하게 입구를 든든하게 틀어막는다는 사냥법을 잘 알고 바위밑으로 통한 뱀굴을 건드리면 구덩이가 깊어야 밤사이에 기여 나온 뱀이 밖으로 도망치지 못하고 구덩이안에서만 맴돈다는것을 도리는 알고 있었다. 뱀사냥에서는 번지수가 환하다.“내 먼저가서 괴기를 푹 삶아 놓을터이 저녁편에 오우.”“도투괴긴 칼판에 왕소금 뿌리고 주둥이가 델 지경으루 뜨거울때 답새겨야(먹어야) 흠흠하지무”왈룡이는 생각밖에 생긴 공짜 저녁으로 약간 흥분했다.“알았수”왕싼이는 히쭉 웃어보이고는 오던길을 따라 휘적휘적 돌담을 따라 내려 갔다.2지경마을의 공식촌명은 태양촌이다. 왕천현천교룡진에 있는 태양촌 은 일제시기 집단이주로 일본사람들이 지어준 촌명이라면 왈룡이가 사는 태양촌은 문화대혁명시기에 정치적인 색을 가미해서 지은 촌명이다. 이 시기 연변의 수많은 촌들이 촌명을 바꾸었는데 홍기촌, 흥진촌, 홍광촌 으로 요란했다. 사람의 이름도 문혁, 홍철, 문자등등으로 구색을 맞추었다. 태양촌-촌명으로는 나무람 할수 없다. 당양지지에 자리잡은 지경촌 에 어울리는 촌명이다. 하지만 촌민들과 토지사용계약서는 체결할 때 벌건 인장에나 박힌 촌명이다. 사람들은 공식촌명보다 오래전부터 입에 오른 지경촌을 더 선호한다. 지경촌의 이웃마을은 지변촌, 사방대산너머 마을은 지서촌이다. 땅 한필지가 없던 옛날에 지(땅)에 대한 욕심으로 피해의식이 생겨서 지은 촌명들 같다. 지경마을은 1930년대 일본사람들의 집단부락화와 안전촌 정책으로 마을 밖에 돌담을 쌓아서 원래의 산재촌과 지경(경계)를 그었다고 지경촌 으로 되였다는 일설도 있지만 캐고보면 그것만은 아니다. 이 지경촌은 조선에서 이주한 조선인 최씨와 박씨가 귀화입적해서 땅을 사들이고 그 땅에 자기의 번지수를 올리면서 생겨난 촌명이다. 말하자면 최씨와 박씨가 밭지경으로 대를 물려오면서 연장싸움하면서 생겨난 촌명이다. 부자간에도 논물싸움은 연장 싸움으로 번진다고 했는데 피가 다른 남남끼리 밭지경 싸움은 인명을 볼모로 하는 큰 싸움이고 세대를 이어오면서 연장되는 싸움이다. 그 싸움은 마지막에 왈룡이가 뱀잡이를 하는 선바위를 중심으로 거기에서부터 경계선으로 돌담을 쌓으면서 끝을 내렸다. 선바위는 마을에서 뒤편에 자리 잡았는데 그 뒤로는 야트막한 둔덕이고 그 둔덕을 넘어서면 “서싸우재라고” 이상한 지번이 붙은 사래긴 밭이 펼쳐진다. 그러니까 그 돌담 서편은 최씨가 차지 했고 동편은 박씨가 차지한것이다. 돌담을 계선으로 이렇게 서편동편에도 동네가 생겼는데 동편에 인가가 집중하면서 본마을이 되고 서편은 최씨를 비릇한 최씨집성촌이 되였다. 일본사람들은 집단부락화를 할 때 최씨에게서 뒤돈을 챙겨 먹은 모양 최씨지주가 사는 동네를 그대로 남겼고 그 동네가 결국 왈룡이가 사는 서지경마을로 되였다. 지금도 동지경마을은 태양촌의 본마을이고 왈룡이가 사는 서지경마을은 본촌마을에 딸린 부속동네로 전락되였다. 행정규모로는 툰으로 하향조절된 서지경마을이라 겨우 10여호만이 달랑 산다. 대약진 시기와 문혁시기까지만 해도 50여호나 되였지만 현재는 10여호만이 미희미한 문패를 달고 숨소리를 죽이고 조용하게 살아간다. 어린이 첫돐 생일 잔치도 한번 없고 로인들의 회갑잔치도 없는 서편지경마을이라 동지경마을사람들에게도 잊혀가는 아득한 섬 마을로 되였다. 그것도 알뜰한 최씨집성촌이 아니고 여기저기에서 모여들었던 잡성후예들이 사는데 어느덧 왕씨성을 가진 한족 두 호까지 끼여 있었다. 최씨집성촌은 퇴색했지만 그래도 최씨들이 남긴 배타적인 정통성만은 완강했다. 서지 경마을에서는 한족들이라면 당초에 곁에서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지만 조선말을 얼음에 박밀듯하는 왕씨네 세째와 네째의 두 형제의 천입은 결국 막지 못했다. 왕청 십리평 쪽에 온 왕씨 두 형제는 산동 후예들이였는데 그 쪽에서도 조선족집성촌에서 살아 온 경력으로 조선말에 막힘이 없었다. 이들은 서지경마을에 들어 설때 알뜰한 홀아비 석수쟁이 신분이였다. 동지경마을과 서지경마을에도 아래턱 수염이 더부룩한 로총각들만이 서성거리는지라 홀아비는 흠결이 아니였다. 왕씨 형제는 농사도 모르고 매일과 같이 정대와 망치를 메고 사방산에 올라가서 똑딱 돌만 쪼개는지라 지경사람들과 아무런 트러불도 없이 사이좋게 살아 갔다.왈룡이는 왕씨형제와 사이좋게 어울렸는데 서지경마을은 물론 동지경마을에서 호랑이 만큼 세도가 있었다. 그의 세도란 아무런 시비도 리도 무시하고 불문곡직하고 멧돼지같이 저돌적인데서 호랑의 위상을 세웠다. 기실 사람들은 그를 진정으로 무서워서 두려워한것이 아니라 상대하기 싫어서 피한것뿐이였지만 왈룡이만은 그것도 모르고 밤낮으로 지경마을에서 버럭버럭 힘 자랑을 했다. 호랑이는 원색적인 방뇨를 통하여 자기의 존재와 세력범위를 시위한다면 지능적인 인간도 결국 물리적인 통치수단을 통하여 자기의 존재와 가치를 통보하는 모양이다. 원색적인 물리수단의 귀천을 떠나서 생존욕과 그 생존을 뒤에서 밀어주는 수단에서는 높낮이가 따로 없고 동물이란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나 본다. 머리회전이 빠른 사람들이 베바지에서 방구가 새나가듯 슬그머니 떠나간 지경마을에서 지능적이지 못한 왈룡의가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는 인물로 부상되는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형님 우리집 탈곡을 좀 해주오- 이런 청이 오면 왈룡이는 당장에서 흥- 하고는 외면이다. 말도 안돼 이 왈룡이가 누군데가 네따위 집에 가서 먼지 먹으면서 너절한 일을 해주냐 하지만 같은 청이라도 왈룡이가 선뜻히 나설 때가 있다. -지경마을에 서야 형님만큼 탈곡을 잘하구 힘이 쎈 나그네가 어디에 있수 형님이 안 오면 우리집 탈곡은 해를 넘기우- 이 따위로 지껄이면 월룡이는 급하던 일도 집어 던지고 당장에서 팔을 걷고 달려 간다. 그리고는 죽을둥 살둥 모르고 일한다. 이것뿐이 아니다. 술상에서 간혹 왈룡이 비위를 건드렸다 면 그 상대는 어느때던지 소똥벼락을 맞고 컴컴한 밤에 어디에서 날아오는 몽둥에에 뒤통수가 깨질지도 모른다. 왈룡이는 이런 위인이다. 이래서 지경마을 사람들은 왈룡이를 모두 송총을 피하듯 한다. 왈룡이라면 부부간의 싸움을 그칠만큼 왈룡이는 지경마을의 두억시니다. 이런 왈룡에게도 두려운 상대가 있으니 바로 그의 절름발이 마누라다. 왼다리로 동그라미를 긋으면서 힘겹게 걸어야하는 그의 마누라는 병신 몸인데도5년전에 35섯살 먹은 로총각인 왈룡에게 재가하면서도 11살 나는 아들한놈을 데리고 오만한 표정으로 왈룡이 한테 시집왔다. 녀자를 모르는 숫총각한데 시집오면서도 아주 득세를 한듯히 뻐기면서 마지못해 시집온 상통이다. 머리회전이 좋은 녀자는 자기의 병신몸도 알고 아들이 딸린 신세도 잘 알고 있지만 녀자라는 조건하나로 왈룡이같은 로총각 에게는 넘쳐날만한 신분이라는것을 잘 알기에 남편의 첫 그루부터 단단하게 박아서 주동권을 거머잡았다. 녀자에게는 살만한 시기가 왔다고 너스레를 떨어도 과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물리적인 힘보다는 지능적인 머리가 우선이라는 말이 맞다. 왈룡의 병신 마누라는 첫시작부터 왈룡이를 손안에 넣고 살살 얼리고 닥치면서 왈룡이를 꼭두각시같이 조종하는데 설화에서 나오는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이 따로 없었다. 말 그대로 칠종칠금이다. 자기의 피줄도 아닌 이붓아들 부양책은 알뜰한 왈룡이 힘이 의거했다. 은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왈룡의 병신안해는 낮색한번 변할줄 모르고 집에 앉아서 마술같은 힘으로 왈룡이를 쉬엿,차렷을 시켰 고 왈룡이는 마누라 말이라면 그저 머리를 백번 주억거려도 아깝지 않은 기색이였다. 신통해…신통하다니까 왈룡이가 마누라를 무서워하다니… 마을사람들은 뒤에서 가만히 킥킥 거렸다. 왈룡이가 마누라를 이긴다고 할 때면 억척으로 술을 마시고 곤두레로 취할 때 뿐이다. 왈룡이가 황소눈을 부릅뜨고 꺽-꺽 희나리가 부러지는 소리로 괜히 트집을 잡으면서 알지도 못할 말을 지껄일 때면 그의 병신 마누라는 입에 함박꽃같은 웃음을 피여 올리면서 왈룡의 까진머리를 어린애 다루듯히 살갑게 만져주고 털이 부숭부숭한 다리를 살뜰하게 만져준다. 꿀물 마시고 어서 자우- 왈용이는 어느듯 봄버들가지처럼 해나 른해 나면서 쿨쿨 자버린다. 결국 왈룡이는 꼭두각시였다.3한편 왈룡곁을 떠난 왕싼은 곧추 왈룡이네 집으로 향했다. 술은 색기를 부르는 음식이다. 왈룡이가 당장 집으로 오지 않는다는것을 제눈으로 보고 잘 알고 있기에 망설이거나 겁을 내는기색도 없다. 여름 오후의 무더위가 쏟아지는 마을길는 인기척 하나 없이 적요하게 비여 있다. 왈룡이네 집은 옛날 생산대 시절에 우사로 쓰던 기다란 집이였는데 벽돌로 지은 집이라도 처마를 낮게 만든데다 쓸모 없이 크고 길기만 해서 한칸만 막아서 집으로 쓰고 소 구유를 걸었던 통칸은 아직 간벽도 막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대낮에도 우둑스레한 통칸에서는 쥐들이 요란하게 뛰여 다녔다. 거기에는 쟁기, 연장, 쌀뒤주 같은 농사일에 필요한 잡동사니들이 흙이 뿌옇게 묻은 채로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형수 있나?… 왕서방이 인기척을 냈다. 밖에서는 염천같이 끓어번지는데도 추운지 개떡같은 포대기로 아래배를 가리고 낮잠을 자던 왈룡이 마누라가 눈을 떴다. 누구?… 왕싼이구만 … 손님을 알아 본 추월 이는 불편한 다리를 겨우 가누고 허치럭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왼 쪽다리가 터무니 없이 마르고 짜른 병신 몸이다. “무슨일루?… 그 양반은 뱁잡이루 선바위루 나갔는데… 물이라두 떠 달라우?”추월이는 상기된 왕싼의 기색을 보고 모든걸 알아챘지만 모르는체 시치미를 뗐다. 왕싼이가 남편보다 아래여서 반말지걸이 아니라 한족들에게는 자질구레한 례절이 따로 없기에 그냥 시름없이 만발을 깐다. 왕싼이가 왜 왔는지 번히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는 추월이라고 보면 가슴도 웬간히 차고 묘하다. 추월이는 포대기를 대충 개여 한켠에 밀어 놓고는 자리에서 겨우 일어 났다. 그리고는 절룩거리면서 물독에 다가가 비밀뚜 껑을 열고 비닐바가지에 더위에 미지근해진 물을 듬뿍 떠서 왕싼에게 내밀었다. 추월이 뒤모습을 보니 왼편 엉덩이까지 풀썩 꺼진 짝궁덩이다.꿀떡-꿀떡 물을 마시고 난 왕싼은 등디목에 놓았던 비닐봉다리를 불쑥 내민다. 추월의 짝궁둥이를 볼때마다 추월이란 녀자가 싫어지고 매번 그녀의 몸을 가진 후 화대를 챙겨주면서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속으로 맹세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또 이렇게 느닷없이 찾아 온다. 곁에 녀자가 없는 왕싼에게는 짝궁둥이 추월이는 그저 녀자라는 조건으로 정염을 달래는 도구뿐이다. 왕싼은 왈룡이에게 술안주로 삶아먹자던 향약을 잊고 있었다.머유?… 돼지 고기…픽 추월이는 랭소를 던지면 돼지고기를 받을념도 하지 않는다. 왕싼이 입에서 마구 풍기는 문맷내( 술을 마신 사람에게서 나는 구취)에 속이 울런거린다. 잠 을 금방 깨서 얼굴에 약간 붓기가 있어도 자색은 그만하면 밉상은 아니다. 이놈이 돼지고기 한점으로 공짜를 노릴것이다. 추월이는 순간적으로 계산을 마쳤다. 어림도 없지…그까지 돼지고기 한점으루 어림두 없소“이거 조선족녀자들 되게 무섭다. 하루 이틀도 아닌데… 맨날 돈을 내야만 하우? 이제 이만해두 정이 들었다 할수 있는데”형수로부터 조선족 녀자들로 바뀐다. 불륜이라도 이런 불륜이 어디 있을가 그러니까 왕싼의 눈에도 왈룡이가 무서운 존재는 아니다. 앞에서는 왈헝-이라고 잔뜩 추켜세우지만 뒤에서는 단판이다. 진정 왈룡이가 무섭다면 애초부터 왈룡이에게 오쟁이를 지우지 않을것이다.“왕싼이 이 병신 묌을 보면서두 그런소리가 나우? 나뚜 뜨거운 밥이라두 먹게 벌아야 할 묌이 아니우. 그리구 핵교 댕기는 아들의 뒤바라지는 뉘기 하우 이 동네 보우 몸이 성한 녀편네들치구 다 돈벌려구 밖으루 튀지 않았수 나야 이 묌으루 무슨 돈을 벌겟수? 남편이라두 단단하면 모르지만두…싫으면 말구 나두 이런 짓이 귀찮수”추월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추월의 가슴에는 온통 아들만이 차서 남편인 왈룡의 존재를 담을 여유도 없었다. 오다가다가 아들의 뒤바라지를 계산으로 만난 남편이 알고보니 우직한데다 단단하지도 못한 위인이다. 그러니 정이 들리가 만무하다. 이제 당장 대학으로 진학할 아들의 뒤바라지가 제일 큰 거정거리다.“알았수… 알았다니까”왕싼이 대답하자 녀인은 대뜸 왕싼의 코앞으로 손가락 세개를 쭉 펴들었다.“아무턴 대단하우! 대단해”왕싼은 홑바지호주머니 손을 넣어서 지전 몇장을 더듬어 냈다. 모두가 빨각거리는 10원짜리 지전들이다. 개가 혀를 내밀듯 혀를 내밀고 때가 묻은 손가락으로 침을 찍고는 돈이 겹치기라도 하듯 꼼꼼하게 두장을 헤여서 녀인에게 건넨다. “두장? 한장만 더 얹수 난 지금 몸이 불편해서 그럴 맴이 올챙이만두 없수. 돈 받아두 난 기생은 아니우. 무슨 말인지 알지?”“무슨 소릴? 두장만(20원) 아니였나?”“왕서방 이보꽈이 맨날 뚝떡거리면서 돌째기를 깨서리 꽉지루 돈을 긁어 모으면서두 발발 떨긴… 이 서지경동네서 형제끼리만 벽돌집 쓰고사는 남정네가 뉘긴데 그만한 돈 갖구 떨긴…나뚜 생각 없으니까 그만두기우 ”“이거 나뚜 이제 빨리 아무 녀자라두 얻어와야지…왈룡이 좋은 노릇만 한다이”왕싼은 아쉬웠지만 분수처럼 솟아나는 정염을 달랠길 없어서 진전 한장을 녀자의 손바닥에 더 얹었다. 그리고는 즉석에서 허리띠를 풀면서 성큼 구들우에 올라섰다.“아니 여기서? 대낮인데 남편이라두 들어 오문 어쩐다구”“그렇찬아두 내 왈헝이한테서 오는 길이우 지금 쯤은 무리뱀을 잡구 있을걸”“그래두…동네서 뉘기 불숙 들어 오기라두 하면 어쩌우… 동네눈이 겁나는것이 아니라 아들이 알가봐 제일 겁난다. 공부를 잘하는 똑똑한 아들에게는 끝가지 단정한 어머니 역으로 남고 싶다. “그램 어디서?”“먼저 텃밭 오이밭으루 나가우 내 뒤따라 나갈께”겁을 내긴… 사내는 투덜거리면서도 선선히 밖으로 나갔다. 찌는듯한 무더위는 덕대를 맨 오이 밭속으로 새여들어 왔다. 조금 후에 검은 주름치마만 달랑 입은 왈룡이 마누라가 절뚝거리면서 오이 밭으루 들어 왔다. 밀페된 공간이거나 사위가 막힌 이런 풀색밭은 불륜을 저지르는 시골남녀들에게는 그야말로 락원이나 다름없다. 고슴도치만이 가만히 출몰하는 오이밭숙에 웅크리고 앉았던 왕싼은 녀인이 절뚝거리면서 다가오자 굶은 승냥이처럼 병신녀인의 몸을 희롱하기 시작했다. 오이밭속에서 이를 앙다문 녀인의 비명소리와 거친 남자의 소리가 흘러 나왔다.4집이서 마누라와 왕싼이가 블랙거래를 하는줄 까맣게 모르는 왈룡이는 이 시각 부지런히 바위밑에 깔린 잔돌을 주어 냈다. 얼굴에서 땀에 이겨진 흙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시골에서 뼈를 굳혀 온 왈룡이는 전야에서 득실거리는 뱀이 돈이 될줄은 까맣게 몰랐다. 어려서 드문드문 잡은 뱀이 껍질을 쳐내고 구워먹어 봤지만 지금처럼 화려한 별장에 간판을 달고 뱀탕이란 료리까지 개발될줄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비싼 값으로 팔릴지도 몰랐고 그 뱀탕을 먹으려고 시내의 돈많은 량반들이 개미처럼 줄을 이어서 내려 올 줄도 몰랐다. 아무튼 시내 사람들은 싱겁다니까. 봄에 지경마을 앞으로 흐르는 석개울앞에 대형굴착기가 들어오고 불도저가 밤낮으로 땅바닥을 밀고 깎아내더니 뒤이어 건축자재를 산더미 같이 박아 실은 대형트럭들이 부르렁거리면서 풀방구리에 생쥐 나들듯 부리런을 떨어댔다. 연길의 돈 많은 량씨 부자가 신작로에서 지경마을로 통하는 석개울 가녁에 별장을 짓는다고 했다. 시골사람들의 머리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집이다.시내사람들은 별장이라 하지 않고 유식하게 펜션를 짓는다고 했다. 유럽에서부터 불어친 펜션 바람이 이제 연변이란 변연지역까지 기세차게 분다. 호텔의 고급화와 콘도의 편리성과 민박의 가정적 분위기를 모두 갖춘 새로운 유럽형 시설이지만 지경마을 사람들은 무슨 집인지도 몰랐다. 펜션은 유럽에서 로인들이 은퇴 후 여생을 민박 경영으로 보내는 것에서 그 이름이 붙은 별장형 펜션으로 식당도 한다고 했다. 철근기둥이 수풀처럼 일어서고 건축공들이 개미처럼 모여들자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기신기신 다가가서 기웃거리며 구경하던 지경마을 사람들은 어머어머한 집터 규모와 기초가 자리잡는 지번에 눈길을 돌리면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누구 땅에 이런 별장이 서는가? 시골사람 들에게는 도시사람들의 머리로는 도저히 따를수 없는 계산이 있는데 그것인즉 땅에 관한 문서다. 땅문서에 한해서는 지지콜콜 따지고 철저한 시골사람들이다. 안돼 …말도 안돼. 누군 땅인데 함부로 이런 집을 짓는다냐…촌장이 승낙해도 안된다. 우리가 이름 박아서 선거하지도 않은 촌장이 뭘 믿고 함부로 우리땅을 내주냐…지경마을 사람들은 쉬쉬거렸지만 누구도 선뜻히 나서서 자가용을 타고 꺼덕거리는 량보스(지경마을 사람들은 량로반이라고 두루뭉실하게 불렀다)와 대거리 하길 싫어했다. 누군가는 나서서 말려야한다. 사람들은 별장주인 량보스와 맞설 인물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꼭 부딫쳐야하고 지경마을 사람들의 억울함 을 풀어주고 빼앗긴 땅을 되찾아야한다.왈룡이는 서지경마을과 동지경마을을 통털어서 힘이 제일 좋은 사내고 누구도 그를 이길수 없다. 한낮에 도적이 출몰해도 감히 나서서 말릴수 없을 정도로 청년들이 씨가 말라서 료료하고 장정들도 주름살만 늘어가고 쇠약해지는 마을이라 왈룡이가 적임자인건 당연하다. 성이 나면 메돼지처럼 저돌적이고 불물을 안 가르고 연장을 쥐고 달려드는 왈룡이를 누가 감히 엇서겟는가.왈룡의 저돌과 파워가 빛낼 무렵은 연길에서 온 량보스가 별장의 골조를 다 세운 무렵이다.이보게 왈룡이만 믿는다네 저 연길넘이 중대가리 촌장만 믿구 우리의 땅에다 제 맘대루 집을 짓는데 아무리 처박아두어 놀고먹는 강변모 래땅이라두 우리 지경촌이 땅이 아닌가. 저 연길넘이 우리지경마을사람 알길 개코같이 안다니까- 마을 중년들과 로인들은 우직한 왈룡이를 만나면 괜히 역증내면서 비분강개한 표정을 보였고 왈룡이를 앞장에 나서라고 개를 추기듯히 추겼다. 이 지경마을에서 왈룡이가 나서야 가망이 있다니까.“어디서 저런 씨팔같은 개새끼가 겨들와갖구 ” 드디여 왈룡이가 폭발했다. 병신 몸이라도 밖에서 돌아가는 마을 형편을 잘 알고 날자가는 줄 잘 아는 추월이는 남편이 나서 슬픈 제물이 될가봐 나서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술을 마시고 얼빤한 기분이 된 왈룡이는 비가 추적거리는 어느날 기세가 충천해서 벽력같은 고함을 지르고 끝내는 폭발했다. 그리고는 당장에서 달구지에 흐물거리는 소똥을 박아싣고 석개울을 건넜다. 왈룡의 뒤로는 지경마을 늙은사람들이 슬금슬금 뛰따랐다. 왈룡이는 지경사람들의 감탄속에서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별장의 골조와 기초돌우에 번질거리는 소똥으로 매질했다. 투닥- 투닥 박수 소리까지 터졌다. 우리왈룡이 참 잘이 헌다. 잘이허네 펜션 골조를 세우던 외지 인부들은 왈룡이가 소똥벼락을 안기자 제지시킬념도 못하고 물끄럼히 지켜보면서 이상한 표정을 보였다. 미친 사람인가? 왜 저런더니…이튿날 연길에서 소식을 듣고 내려 온 량보스는 소똥으로 칠한 자기의 별장골조와 기초돌을 돌아보면서 누가 그랬나 갈범같이 으르렁거렸다. 그리고는 그 걸음으로 자가용을 몰고 석개울의 간너 마을에 들와서 큰소리 쳤다. 어느놈이 그랬냐? 나와바라!어느놈이야? 나서라!“좇같은 시키 내가 그랬다! 어쩔테냐? 그 개털같은 촌장 이 뉘 아덜이냐 그런 새끼만 믿구 지경땅에 개집 지어? 안될 일이지 ”누군가 소식을 전하자 왈룡이가 썩 나섰다. 연길놈이 내가 없는 사이에 큰 소릴 쳤다면서? 어른이 그랬다 어쩔테냐?씩씩거리면서 누가 그랬냐 추적하던 량보스는 하늘에서 떨어진듯 불시에 나타난 시커먼 사나이가 날이 시퍼런 삽을 들고 겁기 한점 없이 대들자 당장에서 굳어졌다. 겁이 난것이 아니라 미친듯히 달려드는 사내의 기상을 보고 싫어졌다. 지경마을에 이런 사내가 숨었다니 …량보스는 뒤걸음쳤다. 정면으로 승부해서 촌사람들의 버르장 머리를 고치겠다던 분기를 누르고 뒤로 한발 물러서는 아량을 보였다. 이런무 지막한 시골놈과 정면으로 대들면 자기의 외제승용차가 분풀이 대상이 되여 왕창 깨지는건 둘째치더라도 혼자서 대들다가 면상이나 할퀴워서 생채기라도 나면 이건 평생으로 통탄한 일이 될것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량보스는 돈이 많고 파워가 강해도 앞뒤를 잘 계산해서 유리하게 둘러 맞추는 사내다. 두고 봅시다- 한마디를 남기고 표연히 사라진 량보스는 그날 오후에는 시내바닥에서 껌이나 씹고 주먹깨나 날리는 어깨 몇을 불러 다시 내려왔다. 주먹에는 주먹이 맞서야한다. 이쯤 되면 웬간한 시골사람들은 사지가 쫄아들어서 겁을 내겠지만 왈룡이 한테는 그게 통할리가 없었다. 맞짱을 뜰 상대를 만나면 폭팔하고 흥분하는게 왈룡의 제일 큰 장끼다.“연길이 개털조무래기덜이 내려왔구나 헤헤… 한넘만은 이 삽날에 목가지가 날아나야 겟다”왈룡이는 끄무레한 기름내가 진동하는 왕싼네 집 부엌에서 날이 선들거리는 시퍼런 한족식칼을 찾아서 허리에 차고 날이 선 삽을 비껴들 고 죽을둥 살둥 모르고 달려들었다. 조자룡이 헌창을 꼬나들고 장판파에서 좌충우돌하듯 한점이 겁도 없이 돌격하는 그 기세에 시내에서 내려 온 젊은 주먹들도 눈치를 보면서 슬슬 물러났다. 시골놈이 미쳤구나. 미치지 않고서는 이렇게 나서서 목숨까지 내걸고 대들리가 없다. 제정신으로 사는 놈이 아닌것 같았다. 아주 어설픈 촌놈으로 알고 귀뺨이나 둬개 박아 위혁해서 구석에 대동이쳐 찌그러뜨리자고 작정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골에 내려 왔는데 어디에서 이런 미친곰같은 놈을 만나다니…왜 달려들어봐라-세상을 모르는 시골에서 부실한 넘인줄로만 알고 흔들거리며 내려 왔다가 오히려 당하는 꼴이 되였다. 어수룩한 촌놈과 상대해서 이겨도 망신 져도 망신이다. 상대할놈이 아니니 그만두기오. 소문난 주먹들은 실실 웃으면서 미친놈이 휘두르는 삽날에 억울하게 맞을가 슬슬 피했다. 거기에다 기죽었던 장정들까지 은근히 왈룡이를 도와나서자 싸움은 시작도 못하고 일방적인 승리도 끝을 보았다. 그날 밤 왈룡이는 그 여세를 몰아서 기초돌을 마구 허물면서 지경촌촌민들에게 큰 끼쁨을 안겨주었다.이거 큰 우환거리 만났네. 량보스는 그저야 촌사람이라고 어수룩하게 봤던걸 후회하면서 다시 촌장을 찾았다. 아무래도 촌장이 나서서 말려 주오 공안국에 친구들도 있지만 그들이 나서면 그 후과가 더 안좋을 가봐 촌장을 찾아 온거요. 촌장은 중학교 중퇴생인데 까까머리를 슬슬 만지면서 자기는 감히 나서지못하고 왈룡이를 대처할 방법을 가만히 알려주었다. 이튿날 마을사람들의 눈을 피해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던 량보스는 숱한 술과 온갖 식품을 담은 꾸레미를 왈룡이네 집으로 보내주었고 덤으로 돈 500원까지 가만히 찔러넣어주었다. 그 외에도 왈룡이를 연길에 끌고 가서 내내 왈룡이가 제일 듣기 좋아하고 귀가 간질거리는 소리만 골라서 늘여놓아 절반 시래기로 만들었다. 다음 녀자들이 애교소리만 넘쳐나고 향수내가 진동하는 어떤 휴식센터로 데리고 들어가서 이쁜 처자까지 안겨주었다. 왈룡이는 남자다 처음에는 뚱한 표정을 짓고 눈을 뜨부럭거리던 왈룡이는 무슨 갈래판인지 인차 알았다. 후후후 이런… 병신마누라를 만나면서 녀자의 궁둥이가 모두 짝궁둥인가 착각하면서 살았던 왈룡이는 회벽같이 하얀 녀자의 대칭되는 온근 엉덩이를 처음으로 만지면서 세상이 노래졌다. 참으로 세상은 크고도… 크구나 세상에…이 왈룡이도 이렇게 이쁜처자도 안을수 있는 날이 오다니…난생 처음으로 받은 향응에 왈룡이가 당장에서 입이 귀밑까지 째지면서 헤헤헤를 련발했고 량보스앞에서 햇솜같이 포근해졌다. 왈룡이는 이렇게 량보스의 사탕앞에서 물먹은 담벽 무너지듯 무너졌다.왈룡이는 남자가 옳았다 아무리 헤식어도 녀편네 앞에서는 시내에서 안아본 이쁜처자의 사연은 입을 다물었다. 왈룡이가 지금 하는 뱀잡이도 량보스가 제의하면서 시작되였다. 왈룡이가 뱀을 무서워안하는 포획능수라는것까지 알고 이제 펜싱에 뱀탕 집을 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배로 값을 쳐준다고 했다. “량로반(주인)근심 놓아 번지라구 여기 지경촌에서야 이 왈룡이 한마디면 필이지 뉘기 대든다구” 왈룡이는 당장에서 때오른 가슴을 탕탕 치면서 감동했다. 그리고는 당장에서 형 동생 사이가 되였다. 왈룡이를 하늘같이 믿고 밀어주었던 지경촌 사람들은 왈룡이가 중도에서 하산하고 배신을 때리자 또 달콤한 말에 넘어 갔다고 한탄했다. 거페생페라고 억울함을 호소하려다가 되려 순진한 왈룡이만 망치고 량보스편으로 밀어버린것이다. 그러니까 왈룡이는 바지랑대와 같은 꺽꺽함에는 강하지만 사탕발림에는 약한 그런 무른 사내였다. 왈룡이는 이렇게 량보스의 대리인이 되였고 앞잡이가 되였다. 맹장을 잃은 지경마을 사람들은 다시는 량보스와 대놓고 엇서지못했다.초가을이 되자 지경마을사람들이 난생 처음으로 보는 화려한 펜션이 들어섰다. 지경마을사람들은 대리석으로 감싼 별장을 감히 들어가서 구경할 념을 못내고 철책너머로 안을 기웃거리면서 드러내놓고 부러워했다. 왈룡이만은 주인처럼 버젓히 출입했다. 전동기까지 안장하고 자동으로 여닫는 대형출문 옆에는 보기에도 머리털이 곤두서는 세퍼드 한마리가 매여져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흠흉하게 쏘아보다가 행식이 초라하거나 자기식구가 아닌 사람이면 사정없이 으르렁거리지만 왈룡이만 보면 꼬리를 치면서 은근히 추파를 보냈다. 이런 왈룡이게게 주인은 이것저것 잔것들을 잘 챙겨주었다. 마당에 세멘트를 하라면서 세멘드 한톤을 공짜로 보내주었고 펜션을 짓다 남은 고급건축자재들도 보내주었다. 지경마을 사람들은 왈룡이만은 덕을 보았다고 은근히 질투를 했지만 왈룡이가 왈칵 할가 겁나서 아는체 하지도 못했다. 잘사는 주인에게는 먹다 남은 떡부스 러기지만 왈룡이게는 평생 잊지못할 감지덕지한 은혜로 남았다. 왈룡이 짝궁둥이 안해는 건축자재보다 돈을 달라고 은근히 부추겼다. 하지만 정직한 왈룡이는 돈을 달라는 말만은 하지 않았다.그림처럼 아름다운 지경촌과 그 앞을 감돌아 흐르는 석개울을 끼고 앉은 펜션은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워 대중음식이 아니고 부자들의 돈주머니만 노리는 뱀탕료리집으로 쓰기에는 알맞았다. 철책으로 둘러친 앞마당에는 거금을 들여 만든 인공못이 있는데 여기에는 주인이 친구들이 매일몰려와서 낚시로 세월을 보냈다. 초여름을 잡으면서 뱀탕집간판이 붙으면서 영업이 시작되였다. 량보스네 펜션에는 시내에서 내려 온 갑부들로 밤낮으로 들컹거렸고 비단으로 온몸을 칠한 녀자들의 달콤한 목소리가 고달픈 남대천의 하늘과 그 하늘 아래에서 허위허위 위태롭게 살아가는 인간들은 무차별적으로 희롱했다. 5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그 하루가 왈룡이에게는 두둑한 금전을 향약하는 좋은 하루가 되였다. 어제 잡은 뱀을 팔아서 200월을 번 왈룡이는 오늘은 새벽부터 출동했다.마을사람들은 선바위가 지경마을의 수호신이고 광복전에 동신제를 지내던 곳이라 선바위를 건드리면 안된다고 뒤에서 쉬쉬했지만 누구하나 감히 드러내놓고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왈룡이는 바위돌밑을 부지런히 파냈다. 점심때가 다가 올무렵 벌써 30십여마리나 잡았다. 그냥 바위밑을 뚜지면 이제 얼마 더 나올지 대중할수 없다. 이렇게 잡다보면 오늘 수입은 어제보다 더 짭짤할것이다. 왈룡의 병신 마누라까지 나와서 독전하고 있었다. 어제 왕싼에게서 30월을 받아 하루 벌이를 한 추월이는 남편이 하루에 200원을 벌자 이게 무슨 떡이냐 부끄럼도 없이 손수 나와서 현장지휘를 했다. 눈치 코치가 제로인 왈룡이는 죽을 때까지도 자기의 비밀을 알리 없다고 장담하고 있는 추월이는 날이 갈수록 대담해지고 남편에게 품었던 미안감이 삭막해져갔다. 옳거니 그것도 한두번이면 낮이 간질거리지만 그런 일도 자꾸 번복하면 얼굴에 철판이 깔리는건 어쩔수도 없는 일이렸다. 처음에는 왕싼이 동생인 왕쓰를 먼저 받아주었는데 왕쓰가 작년에 산동에서 온 녀인과 결혼하면서부터 왕싼이 그 뒤를 이어서 추월이 몸을 탐하고 있다. 실리적인 녀인이라 동생이든 형이든 비밀이 보장되고 돈만 주면 아무런 상관도 없다.“ 자꾸 그쪽을 뚜지지 말구 웃쪽편을 들추오”남편인데도 존대를 무시하고 평어를 쓴다.“어디? 여기?… 여긴 안돼 이러다가 돌이 무너지는데”오쟁이를 지고도 안해의 기생행각을 모르는 둔재지만 일에서는 묘기가 트였고 수순을 잘 안다.“에구 뼈대가 꽛꽛한 나그네가 겝두 많네 이 큰바위가 그렇게 헐이 무너질가…안쪽에 잔돌이 많은데 뱀덜은 돌이 많은곳에 많습지비. 사방산에 왜 뱀들이 득실거림두 그게 다 돌이 많어서입지”그럴가…왈룡이는 안해의 말에 안된다는 토를 달줄 모른다. 어찌돼서 병신안해에게 덜미를 쥐여 꼼짝못하는 왈룡이가 되려 측은스럽기까지하다.달그락- 달그락- 기다란 쇠파이프로 바위를 건드리자 또다시 뱀 한마리가 기여 나왔다. “보라니까 내말이 틀리나” 추월이는 징그러운 뱀이 기여 나왔는데도 눈한번 감짝이지도 않는다. 왈룡이는 눈깜작 할 사이에 맨손으로 뱀을 잡았다.하지만 이것으로 왈룡의 뱀잡이는 영원히 끝났다. 잡을 뱀을주머니에 쑤셔넣고 다시 쇠파이프를 들이밀고 낑낑 힘을 주는데 바위가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큰 바위가 움직이는지라 이들 량주의 반응은 둔감했다.“이쿠!날래 물러 나우!… 바위가 굴러내리우! ”그래도 병신안해의 눈치가 빨랐다. “???”이때까지 영문을 모른 왈룡이는 엉거주춤 앉은 맵시로 당황한 마누라만 뒤돌아본다. 왜 그래?“날래 구뎅에서 올라오라는데!우-!!!”추월이 경황한 웨침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음직이기 시작한 돌은 왈룡이가 판 구덩이쪽으로 굴러내리면서 왈룡이를 종이장같이 가볍게 깔아 뭉갰다. “으…이…잉”왈룡이는 영문도 모른채 괴음소리를 길게 흘리면서 집채같은 바위돌에 깔렸다. 왈룡이가 판 구덩이는 널찍하지 못해서 바위가 반바퀴도 구을지 않아서 멈추었지만 피할길 없는 왈룡이는 이 세상에 무서운 괴음 한마디를 토하고는 안해가 보는 눈앞에서 죽어갔다.왈룡이를 살려주오! 왈룡이가 죽어가오!추월의 실성한 웨침소리를 듣고 지경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득달같이 달려 왔다. 대낮에 이게 무슨 변이라우.밖에 드러난 왈룡의 얼굴은 피가 통하지 못해서 거멓게 죽어갔고 퉁퉁 붓기 시작했다. 도무지 구할 방법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저 멀거니 죽어가는 왈룡이만 지켜보았다. 가슴이 바위와 흙벽에 끼인 왈룡이는 이미 숨이 졌다. 시체도 꺼낼 방도가 없었다. 누군가 량보스네 끌삽굴착기를 빌지는 이견도 잇었지만 아무리 힘이 있는 굴착기라도 바위를 움직이지 못한다는 결론이 났다. 마지막에 누군가가 시간이 들더라도 왕싼이와 왕쓰가 청해서 선바위를 쪼개야 한다고 했다.왕싼이와 왕쓰가 정과 메를 들고 달려 왔다.그날 밤으로 왕싼이 형제는 선바위를 네쪼각내고 왈룡이를 구덩이에서 건져올렸다. 왈룡는 거대한 시체가 되여 선바위 곁에 내쳐졌다.사람인명을 빼앗은 현장이 너무도 처참해서 사람들은 모두 외면했다.추월이는 남편의 시체를 멀거니 내려다보면서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생떼같던 첫남편을 잃고 재가 했는데 이번에는 두번째 남편도 잃는다.사방산으로부터 득달같이 달려 내려온 언뜰먼뜰한 검은 구름에서 우두둑- 소낙비가 떨어졌다.이튿날 아침나절에 또다시 소낙비가 내렸다. 왈룡가 판 구덩이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설설 기여다니던 숱한 뱀들이 구덩이안에 비물이 차자 조각이 난 바위를 타고 지경마을 전야로 달아 났다. 왕싼이만은 네쪼각이 난 바위를 보면서 가만히 웃었다. 왕싼이는 비석을 만들어 돈을 벌 타산을 했다. 끝*주해본 소설은 \"연변문학\" 2008년 11호에 발표시 \"어느 여름날\"로 편집되였습니다.본 소설은 제1회 두만강문학상 수상작입니다.                                                  -조글로문학 관리자 주
42    [자전] 내 혈관속의 색바랜 사진들 댓글:  조회:775  추천:35  2009-08-02
내 혈관속의 색바랜 사진들…문학자서전최국철내가 제일 처음으로 읽은 책은 “고옥보” 다. 당시 소학교 3학년생이였던 나는 누나가 빌려온 “고옥보” 를 억지로 빼앗아 밤을 패며 독파했다. 넑을 잃을 정도로 충격이 컸다. 이 세상에 이렇게 좋은 책이 있다니…로인들의 말을 빌면 “팔자소관” (운명)이다. 나는 커서 글쓰는 사람이 되겠다. 때투성이의 시골소년은 너무도 이르게 선택을 배운것이다.지금 돌이켜보면 후회되기도 하지만 나는 너무도 때이르게 작가지망생이 되였고 작가후보로 일사분란하게, 혼자 고독하게 문학을 배웠다.그 시절 문학은(소설) 나의 최대기대치였다. 문학외의 다른 직업들은 너무도 하찮았다. 나는 모든 기능과 정력을 문학에 투자하였다. 기업에서의 투자는 리윤을 위한것이지만 문학에서의 “투자” 는 투자자체로 그치고만다.지금도 나느 끊임없이 투자한다. 하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삭막해지고 흐리터분해진다. 문학(소설)이란 무엇일가? 대답이 묘연해진다. 나는 대답을 찾기 위해 계속 글을 쓴다. 쓰고 쓰노라면 수학적인 확답이 있을가?문학을 하면서 나의 흥분점은 줄곧 엉뚱한 곳에 가있었다.내 혈관속의 색바랜 사진들… 이 말은 3년전 할빈에서 있은 장편소설 “간도전설” 출간기념회의에서 한 창작담의 제목이다.그 출간기념회의에서 평론가 리장수선생님은 내가 할머니와 합작하여 글을 쓴다고 하였다.나는 지금도 리장수선생님의 말을 수긍하고있다. 고인과 합작한다는것은 대단한 어페지만 나의 문학실천은 이를 충분히 증명하고있다.내 혈관속의 색바랜 사진들… 보리, 보리고개, 베틀, 베틀가, 세발전지, “코코불”, 삼나이, 베치마, 함경도 창곡, 애완성, 사이섬, 8.15광복, 토지개혁… 나는 이런“력사화폭” 들에 대해 눈물겨우는 열애감을 갖고있다. 하기에 그 색바랜 사진들은 의인화되여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고 소설적인 흥분점을 느끼게 한다.정확하게 따지면 20년대-40년대 사회의 문화점경이다. 아니, 할머님과 할아버지의 청춘과 팍팍한 삶에 묻힌 그때 그 시절… 그 사람들의 원모습을 과장없이 그려내고 구축하는것이 나의 몫이라고 생각하기때문이다. 그것이 력사소설이든 이민소설이든 나에게는 굳이 이름지을 필요가 없고 정착의식, 계급분화 같은 낱말들도 평론가들의 해석이지 나의 몫이 아니다.난쟁이나 다름없는 병신할머니가 나에게 이렇게 크고 많은 “류독” 을 남길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다.할머님의 세대를 소급해보면 어쩔수 없이 제일 먼저 아픔과 고독, 굶주림과 가난… 등을 들먹거리게 된다. 하지만 캐고보면 굶주림과 아픔속에도 그들에게 성스러운 삶과 사랑이 있었고 생명의 에너지가 있었다.할머님은 쌍둥이의 맏이로 태여나서 그런지 병신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뒤머리조차 만지지 못할만큼 팔이 짧았으니까 더 말해 무었하랴. 부모들의 강박혼인으로 자신보다 스물셋이나 더 많은 조부와 결혼하여 서른둘에 청상과부로 난후 3남매를 데리고 삵바느질로 살으셨다.할머님은 글 한자 깨치지 못하여 자신의 이름자도 쓸줄 몰랐지만 선천적인 재간으로 남의 흉내를 신통히 냈고 주근주근 이야기도 잘해서 곧잘 웃겼다.한여름밤 섬돌밑에서 모기 쫓는 쑥타레가 실실 추녀끝을 핥으며 감돌 때면 숱한 이웃사람들이 몰려와서 할머님의 옛이야기를 들었고 한겨울 누런 창호지가 샛바람에 붕-붕 울 때면 화로에 목침같은 감자 파묻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나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님의 훌륭한 청중이 되였다. 결혼 첫날밤 조잘조잘 흐르는 내물에 달이 부서지는 아쉬움을 멀거니 구경했던 이야기, 조부가 싫어서 친정으로 가만히 달아났던 이야기, 샛섬(사이섬)에서 보리농사하며 집사대의 눈을 피해 소금을 가만히 밀수하던 이야기, 선길장수 다마루를 딸랑거리며 홀어미집으로 넘나들던 이야기, 노란 깍쟁이 성덱(덕)이가 동네에 찰떡치는 소리가 들린다고 베보자기를 덮고 주근주근 발로 밟아먹었다는 이야기, 베틀 이야기, 삼나이… 할머님의 이야기는 해도해도 끝이 없었다.할머님의 이런 이야기가 몇십년이 지난뒤 나에게 이렇게 자극적인 흥분으로 남을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다.색이 바랜 사진들- 지난 옛이야기들을 재현하고 복구하는 작업이 바로 소설쓰는 일이다. 나의 문학관을 거친 사진들이 명암과 효과가 여하튼간에 작가의 몫이라고 생각하면 기쁘기만하다.색이 바랜 사진들속에는 찬란한 “명” 보다는 어두운 “암” 이 더 많다. 다시 말하면 고통과 아픔이 더 많았다는 말이다. 할머님은 청상과부로 청승을 떨며 알뜰한 남편의 사랑을 전혀 모른채 이 세상을 떠나갔다. 단명으로 간 조부님 역시 마찬가지다. 무릇 어제의 이야기는 색이 바래는 사진이 된다. 나의 혈관속에서는 이런 사진들이 끊임없이 인화되여 나오고… 나는 그 사진들의 명과 암을 보며 웃고 우는것이다.나는 울면서 문학을 하고 울기 위해 글을 끄적거린다. 도라지 2002년 4월
41    [수상소감] 외면되는 인간의 삶과 잊혀져가는 현장 댓글:  조회:614  추천:32  2009-08-02
[수상소감]외면되는 인간의 삶과 잊혀져가는 현장최국철제목을 달고 보니 어딘가는 거창하고 들뜬 것 같다.하지만 이렇게 제목하여야 “어느 여름날”(<연변문학> 2008년11호)의 작품창작실천을 중얼거릴수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은 원래 “개같은 여름날의 오후”라고 어느 소설가의 소설제목을 몬따쥬한것인데 편집과정에서 녀편집이 왁살스러운 감이 들었는지 “어느 여름날”로 지극히 평범하게 순화했다. 우리들의 삶의 현장과 과정을 압축하고 현대인간들의 내면화, 치렬한 갈등을 그리는 풍토에서 나만의 거친 속사로 한 인간의 외면화를 작위적으로 로출시키고 거기에서 외면되는 인간의 삶과 잊혀져가는 민족삶의 현장을 민족자화상으로 승격시키려고  했지만 미상불 수박 컫 핥기에 그치고만 작품에 대해 상이라기보다 10년동안 민족의 애환에 천착한 문학실천에 대한 격려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조선족작가들만치 정체성 혼란을 겪는 작가군체도 흔치 않은것 같다. 이데올로기가 개입되고 작품을 통해서 인간 령혼을 세척하고 인간교육자 로 입문해서 불과 20여년만에 작가란 그 이름이 찬란하지도 않다를 슬프 게 자각하기까지 그리고 다시 작가는 그저 작가일뿐으로 허탈해하고 홀가 분하게 나가다가 다시 창작활동에서  작가의 의무감을 의식하기까지 나 같은 소설가의 입지를  두고 말하는것 같고 변화하는 시대가 작가에게 강요한 “의무감”으로 밖에는 볼수 없다. 작가는 그저 발견하고 표현한다 로부터 다시 민족적인 삶의 현장을 우환의식으로 다가가기까지 작가의 의무감은 체념에서 개입, 그리고 퇴각을 반복하면서 잠의식으로 굳어졌 다고 보면 무리가 없다. 다시말해 조선족이라는 이 군체에 속한 한 인간의 량심과 넉두리이기도하다. 시골이라는 특정된 현장이 마치 축소한 변연지구같고 그 변두리 현장에서 사는 인간을 민족적인 구성원으로 승화시키고 다시 민족의 현실 과  외적인 갈등을 그리게 되기까지 나의 창작실천은 이제 서서히 성급해 지고 거칠어지고 있다.  그 거친 흔적은 덮어버리고 합리화로 가장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치렬한 고뇌와, 인생, 사랑, 재미를 그리는  작가가 현실 과 리격된채 안락한 생활의 편린들만 구성하고 있다고 한편으로 질타 해보았고 그만치 억지를 쓰기도 했다. 필경 나는 거친 반항심으로 하여 작가의 존재를 너무도 환상적으로 알아가고 있고 인간과 민족이란 군체를 혼연일체로 보지않고 그 순위마저 이제 임의로 바꾸려고 한다. 이것은 아름다운 혼동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량심이기도 하다. 민족의 삶을 구휼해야하고 그 구휼화가 초기화가 되고 무효화로 련속되고보니 이번에는 엉뚱한 우환의식으로 싱겁게 승화했나 본다. 결국 작가의 “의무감”에 손발이 묶인셈이다. 하지만 이 승화과정이 바로 작가의 의무감으로 창작활동에 영향을 주었고 십년동안의 작품이 모두가  아픔으로 관통되여 있었다. 작년에 가친을 여의면서 처음으로 오열해보았고 그 슬픔속에서도 아버지라는 한 인간의 죽음이 어쩌면 어떤 군체의 축소를 예고하는 그 어떤 류다른 상징이 아닐가 하는 작가적인 고심도 해보았다. 그러면서 아버지라는, 아니 민족이라는 하늘과 바다를 잃는것만 같고 그 상실감과 종말감을 상쇄하기 위해서 요지음에도 또다시 새로운, 외면되는 현장과 무시되는 인간들의 일상을 컴퓨터란 현대화된 기기로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고향과 바다와 하늘의 공활함을 지향하고 쪽빛을 꿈꾼다. 고민이다. 내가 왜 고민하고 갈등해야하는가는 누구에게 물어볼것인 가? 이 시대는 답이 없다. 해답은 내절로 찾아야하고 그 답을 작품속에 숨 겨놓는 일에 게을리 할수 없다는 일에 슬퍼하면서 작가의“의무감”도 전혀 나쁘지도 않는 것을 오늘 다시 발견한다. * 본문은 2009년 7월 31일,제1회 두만강문학상시상식에서 소설 \"어느 여름날 \"로 국내상 대상을 수상하고 행한 수상소감이다.
40    간도전설-가을(끝) 댓글:  조회:850  추천:32  2009-02-24
8     <영수 아부제,이게 무슨 변임두.> 길순이는 무작정 원도에게 매달렸다. 길순이는 지금 눈이 하얗게 뒤집어져 제 정신이 아니였다.    <우리 쥔을 왜 끌고 가우.안돼우...안돼우.>    <이게 왜 이래? 귀찮게...> 땅땅보순사가 자기앞을 막아서는 길순이를 탁 밀쳐버렸다.    길순이가 저만치에 나가 궁둥방아를 찧었다.    <어서 들어가, 난 인차 풀려나오니까.>    <여보-> 걸음이 빠른 숙자와 <<저기나>>가 뒤쫓아와서 길순이를 부축했다.    <여보->    <거기 서우.> 저만치에서 준식이와 문수가 달려오고있었다. 이들도 일하다가 이쪽켠의 정경을 알아본 모양이다. 곁에 다가온 준식이는 숨을 헐떡거렸다.    <거...기 서우.나...나 이 마을 갭쟁이우.무슨 일루 마을사램 잡아가는지 알구싶수.>    <갑재? 갑장이 뭐야?> 순사 도놈은 마주보며 키들거렸다.    <정 알고싶음 알려주지. 치안소란죄에 군견죽인 죄야. 군견이 뭔지 알만한가?>군경?군경이 뭔데?<형님, 영수 에미 데리구 들어가우. 뭐, 인차 풀려날게우. 큰일두 아니니까.> 말을 마치고 돌아선 원도는 제 혼자 썩썩 걸어갔다.    <영수 아부제->    <인차 풀린다는데 이랑마우. 그러다가 얼나(애기)떨구겠수.>    <순사들이라두 김선상을 어찌 해친다구.>    <제수, 이럴 때가 아니우 빨리 조기술원 찾아가서 방도 세워야지.> 그렇지, 길순이는 그제야 조기운을 생각했다. 길순이는 마을로 급히 향했다.     한편 구영벽마을에서는 또다시 란리가 터졌다. 조기운과 헤여진 원도가 량수천자경찰서 순사들에게 잡혀간지 조금 지나 온성에서 나온 수비대들이 소위 가네다니의 인솔하에 강삭배를 타고 구영벽으로 덮쳐들었다. 맨앞에는 머리에 붕대를 감은 최십장이 살기등등해서 섰고 그옆에는 천규가 섰다. 천규는 여기서 살았다는 조건으로 앞에 나선것이다. 천규가 원도네 집을 가리키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총잔으로 여기저기 마구 찔러보며 구석구석을 수색했다.    길순이가 도착한것은 이때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길순이는 말 한마디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남편이 큰일은 저지른것만 같았다.    천규는 길순이를 보자 고개를 숙이고 비실비실 뒤걸음쳤다.    <쥔은 어디 갔는가?> 최십장이 길순의 곁에 다가서며 으르렁거렸다.    <쥔은 금방 량수천자경찰서에서 잡아갔수.> 뒤미처 도착한 준식이가 길순이 대신 대답했다. 앞마당에 마을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경찰서?거긴왜 끌려가?> 보매 이들은 원도의 일을 모르고있었다. 그러니 갈래가 다른것이다.    <큰골에서 밭자리루 해서 장지주허구 싸우다가 군긴지 군경인지 죽였다우.> 군견? 최십장도 모르는 모양 고개를 저으며 소위한테 다가가 무슨 말인가 지껄였다.    집안에서 발칵 뒤집으며 뭔가를 찾던 병사들은 아무것도 찾지 못하자 책 한꾸레미를 들고나왔다.    <그건, 내 책인데 왜 다쳐?>마당으로 조기술원이 승만이와 상국이네를 달고 들어섰다. 이들 뒤로 숱한 인부들이 따라섰는데 모두가 광수의 친구들이여서 알만한 얼굴들이였다.    <일은 하지 않구 왜 몰려와. 당장 내려갓.> 최십장이 큰소리치며 인부들에게 눈을 흡떴다.    <그건 내 책이요.> 조기운은 여전히 담담하게 말했다.    조기운은 수비대들이 강삭배타고 건너올 때부터 어제밤 일로 이들이 들이닥치는줄 알고 상국이를 시켜 이들 뒤를 슬그머니 따르게 했다. 아니나 다를가 상국이가 급히 내려와서 하는 말이 원도네 집을 뒤진다고 했다.가슴이 철렁했다. 어제밤 이들이 권총 두자루를 잃은걸 아는 조기운은 총이 원도네 집에 감추어져있는줄 알고 급히 뒤따라섰다. 눈치를 보니 아무것도 찾지 못한줄 알자 나선것이다. 조기운의 기색은 쌀쌀하기만 했다. 책은 정치와 거리가 먼 문학서적들이 대부분이라 꺼리낄것도 없었다.    조기운을 돌아보던 소위는 책을 돌려주라고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그리고는 천규를 앞세우고 뒤집으로 다시 쳐들어갔다.    냄새를 맡은걸가.    한동안 역사끝에 아무것도 찾지 못한 이들은 다시 앞집마당으로 몰려나왔다.    <이 마을 갭쟁이라 했지?> 최십장이 준식이 곁으로 다시 다가왔다. 총가목에 머리를 부시운 최십장은 기가 죽기는커녕 더욱 서슬푸르렀다. 총을 빼앗긴 일로 아침에 소위한테 크게 닦이웠다. 무슨 판국인지도 모르고 얻어맞은후 까무러쳤다가 요행 도망친 최십장에게는 어제밤 괴한들의 인상착의가 희미했다. 하지만 소위가 마지막에 구영벽사람들까지 의심하자 머리를 저었다. 여기 놈들이 아무리 날고뛰는 재간이 있다 해도 이런 우둔한 놀음은 못한다고 믿었다. 기껏해야 무리싸움질이나 할 놈들인데...더구나 총까지 버젓이 들고있었다지 않는가. 총은 누가 만들수도 없다.    <그 놈은 어디 갔는지 모르는가?>    <누구?, 광수 말이우? 그때 크게 다친후루 지금두 낫지 않아서 일두 못하우. 큰골 넘어갔을게우.> 조기운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어제밤 누가 취선당 사건을 저질렀는지 모른다.최십장은 소위한테 다가가 준식이가 한 말을 다시 옮겼다. 소위는 눈을 부릅뜨고 둘러선 마을사람들과 인부들을 쏘아보더니 승만이한테 한동안 눈길을 돌렸다. 승만이는 겁을 내는체 하면서 인차 고개를 숙여버렸다.    기실 소위도 산에 있는 군대들의 소행으로 점찍고있었다. 그런데 술집녀자의 실종이 미심쩍었다. 이 녀자가 어쩐지 구영벽과 련계되는것 같았고 줄을 따라 캐보니 원도가 걸려나왔다. 소위는 광수네쪽보다 원도를 수상하게 보는터다. 얼마든지 큰일 저지를 놈이다. 투전군들을 잡고 캐우물으면 선색을 쥘수 있지만 투전군들이 집에 불이 달리자 밤사이로 도망쳐버렸다. 남은 술집년들을 족쳐보았지만 모두가 남자품속에서 재미보다가 불시로 당한 일이라 아무것도 모르고있었다. 란아의 실종소식은 백용락의 처가 가만히 알려주었다. 이번에 손실을 톡톡히 본 셈이다. 자기들이 가만히 박아넣은 밀정(백용락)이 죽었고 권총 두자루까지 잃었다.    제일 큰 사건이다. 소위도 이제 상관한테 꾸중을 들을것이다. 소위가 독살을 피우니 마을사람들은 슬밋슬밋 헤여져갔고 인부들은 일하러 내려갔다.    조기운만이 마당에 뻗치고선채 소위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가자, 소위가 손을 홱 내젓자 병사들이 렬을 짓고 언덕을 올라 나루터로 내려갔다. 최십장과 천규가 소위뒤를 바싹 뒤따라 갔다.    이들이 돌아가자 길순이한테서 원도의 소식을 들은 조기운은 준식이와 함께 량수천자로 급급히 들어갔다.    삘리리-삘리리-    밤마다 우는 물새울음소리 외롭게만 들렸다. 하늘에는 이따금 뭉게구름이 지나치며 달빛을 가로막았다.    싸치라이트 불빛이 거무칙칙한 교각과 강물우로 유령같이 배회했다.    저녁편에 큰골에서 내려온 용범이는 저녁을 치르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슬그머니 두만강으로 나왔다. 오늘부터 구영벽사람들은 병권령감뒤를 따라 큰골의 석골 막바지로 올라가서 또다시 나무를 베여내기 시작했다. 낮에 일에 시달려 고단하련만 지금 용범이는 힘이 부쩍 솟았다. 머리에 난 상처에 더뎅이가 앉아 오늘부터 머리를 동였던 거치장스러운 베천오리를 풀어던져버렸다.저녁에 내려오자 안해한테서 낮에 구영벽에서 벌어졌던 일을 대충 들은 용범이는 앞집으로 원도 보러 건너갔다. 경찰서에서 금방 풀려난 원도를 보고 저녁먹으러 들어오다가 길에서 숙자를 만났다. 눈치를 보니 보는 사람들이 없는지라 용범이는 용기를 내여 숙자와 저녁밀회를 약속했다.    아래로 내려오면서 통발을 건지는체 하던 용범이는 버들숲으로 도적놈같이 몸을 숨겼다.    버들숲을 뚫고들어가면 낮다란 언덕이 있고 그 언덕을 넘어서면 가둑나무, 황철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선 나무밭이다. 나무밭속으로 곧추 들어온 용범이는 오줌을 싸버리고는 마춤한 곳을 찾아앉았다. 쿵-쿵 ,가슴이 무섭게 뛰였다. 필경 사람들의 눈을 피해 유부녀와 사통하고있는 셈이라 은연중 겁이 나기도 했다.    황차 숙자의 남편과는 친구지간이 아니였던가. 그날 새벽녘에 급작스레 황당하게 숙자와의 정사가 있은 뒤 용범이는 여지껏 다시 숙자를 건드리지 않았다. 나올가 꼭 올거야...용범이가 청을 들자 샐쭉 웃으며 거절했지만 용범이는 숙자의 마음을 잘 알고있었다.    삘-삘리리-다급한 물새울음소리가 나는가싶더니 달그락 달그락 자갈돌이 구으는 미소한 소리가 났다. 틀림없는 인기척이다. 용범이는 살금살금 나무숲을 헤치고나갔다.    달빛아래 가냘픈 그림자가 드러났다. 숙자다.    <어이-> 용범이가 가만히 불렀다. 느닷없는 부름소리에 흠칫 놀라던 그림자는 발볌발볌 이쪽으로 다가왔다.    <무섭게 이런델 끌고 오긴, 할 말있음 날래 하시꽈이. 인차 집에 가야지유.> 숙자는 아닌보살했다. 이래서 녀자다.    용범이는 아무 말도 없이 뛰쳐나와 숙자의 손목을 덥석 틀어잡았다. 그리고는 숲속으로 무작정 잡아끌었다.    아이구...어델 자꾸...숙자는 마지못해 끌려가는체 했다. 용범이는 첫번처럼 수동적이 아니였다. 한번의 짜릿한 정사는 용범이를 리지를 잃게 만들었고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시켰다.    곧추 처음자리로 들어온 용범이는 승냥이처럼 숙자에게 덮쳐들어 숙자를 맨땅에 쓰러뜨렸다. 그리고는 한마디 말도 없이 숙자의 베치마자락을 들쳤다.    왜...이러지유...왜...오늘은...안되지유... 숙자가 버둥거리며 반항하는체 했지만 용범의 손이 속곳앞 섶을 터치고 아래배에 미치자 인차 평양나막신처럼 해나른해졌다.    원도네 집마당에 숱한 사람들이 모여왔다. 모두가 원도가 경찰서에서 풀려나왔다는 말을 듣고 원도 보러 모여온것이다.    원도는 말없이 섬돌우에 앉아있었다. 어제와 오늘 일은 인젠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어제 장씨가 어째서 가만있었는지 오늘 잡혀서야 알았다. 원도는 멋도 모르고 경찰서에서 큰골자위단에 준 군견을 때려죽인것이다. 그까짓 개 한마리때문에 잡혀가서 욕을 보다니...원도가 돈 있고 땅 많은 지주라는걸 알고 봐주었지만 벌금만은 면하지 못했고 귀뺨 맞는것을 면하지 못했다. 오라줄을 풀사이도 없이 멋모르는 순사 몇이 달려들어 원도를 때린것이다. 조기운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원도는 오늘 풀려나오지 못했을것이다.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가을잡으며 원도의 일은 자꾸 꼬이기만 한다. 어느 놈의탓이야,대체... 마당안은 웅성거렸다. 아낙네들은 길순의 곁에 모여앉아 무슨 말인가 재잘거렸고 사내들은 끼리끼리 둘러앉아 잡담을 나누고있었다.    상국이가 슬그머니 원도에게 다가와 귀속말을 했다. 그러자 원도는 말없이 세관쪽으로 나왔다. 세관곁에는 상국이 말대로 광수가 있었다.    둘은 아무 말도 없이 언덕을 넘어 나루터에 내려섰다가 다시 아래켠으로 내려왔다. 광수는 지금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있었다.    숙자를 련이어 두차례나 범한 용범이는 온몸이 땀투성이 되였다. 치마자락으로 용범의 얼굴에 내돋은 땀을 훔쳐주고난 숙자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졸랐다. 하긴 둘이 오래 있노라면 들통이 날수도 있다. 숲속에서 나오던 그들은 강변에 서있는 사내들을 보고 흠칫 놀라며 풀속에 몸을 숨겼다. 처음에는 자기들의 일이 꼬리를 잡혔는가 놀랐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원도와 광수였다.    <이제 어쩔 셈이냐?>    <오늘밤으루 다시 큰골 넘어가서 랠 새벽에 왕청쪽으로 빠져서 거기서 강동으로 빠질 셈이우. 그 년이 아래배에 칼을 맞았는데 이번에 그 년의 목숨만은 구하구싶수.> 용범이와 숙자는 처음에는 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듣지 못했지만 차츰 일의 진상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옛수, 형님은 어느때부터 총욕심을 냈는데 한자루 가지우.>    <허 진짜군, 날 주고 넌 어쩌니. 이제 강동 가자문 길에서 마적들을 만나겠는데.>   <보우, 내게두 한자루 있수. 형님건 최씹장이 갖구 있던게우. 털보가 욕심 내는걸 형님 주자구 가져왔수.> 두 사내는 멀지 않은 버들숲에서 용범이와 숙자가 엿듣고있는줄 모르고있었다. 총을 가진 원도는 달빛에 권총을 비춰보며 대단히 기뻐했다. 허허, 끝내 총을 얻었군.    <형님, 그 놈을 (최십장)이번에 못해치운게 제일 통분하우. 나 이제 건너가서 그 년의 목숨이나 살구면 다시 나오겠수. 내 그 놈을 못해치우면 평생 시름놓구 못살게우.> 광수는 이를 갈았다. 어제밤 첫번째로 내세운 목표를 놓친것이다.    <가만,너 돈 필요하지? 상처 치료하자문 돈이 필요하겠는데...내가 집에 얼른 가서...>    <그만, 그만두오. 이번에 우리가 턴 돈이 얼만지 아우? 털보는 이제 기와집 짓구 살수 있구,승만인 장가밑천 벌구두 남수. 돈걱정은 아싸리 하지두 마우.옛수, 이건 상국이 몫인데 형님이 건사했다가 류성기나 한대 마련해주오. 남은 돈은 그 놈이 극장에라두 나가면 반반한 옷견지라두 갖춰주구. 류성긴 어느때부터 내가 사준다구 했는데...> 원도에게 돈뭉치를 넘겨준 광수는 달빛이 내려앉은 두만강을 멀거니 지켜보았다.    <내 이번에 가면서 그 놈 일이 제일 걸리우. 불쌍한 놈이요. 아버지 따라 마도강 향해오다가 자그마한 읍에서 전염병으루 아버지를 잃었다는데 죽으면서도 그 놈을 보면서 눈을 감지 못했다우. 열두살짜리가 여름동안 걸어서 개마고원 넘구 갑산지나 혜산으루 나왔수...그 놈 소원대루 가수라두 맨들었음 얼매나 좋겠수.>    <그 놈 근심말어라.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내가 어떡하나 그 놈 일을 성사시켜주겠다. 그러니 넌 네 일이나 잘 알아서 해.>     <형님,그런 말을 하니까 내 상국이를 대신해서 큰절이라두  올리구싶수. 한시름 놨수.형님,조기술원이 언제 떠나우?>   <그 일을 네가 어떻게 아니?>   <형님, 내가 왕도깨비 소리 들어두 눈치 하나루 세상사는 놈이요. 형님과 복희 아주머니 일두 알구있수.>    <귀신이군...인차 떠날게야. 그 친구도 사정이 썩 좋은편은 아니니까...>    <형님에겐 정말 괜찮은 친구였는데 떠난다니 정말 안됐구만.>    <어떤 일은 꼬리 잡힐 건덕지가 없니?>    <옷두 바꾸고 얼굴두 가려서 누구도 모를게우. 최십장은 우릴 보지도 못한채 부시웠으니까. 그런데 털보말이 큰골 장씨가 냄새를 맡았는지 수상하더라우. 내가 그래서 인차 떠나는게우. 그놈은 오늘저녁편에 개 한마리 잡아가지구 량수천자경찰서루 간사 떨러오는것 같습데.>    <경찰서놈들이 나를 잡구 벌금까지 톡톡히 받아냈다구 기뻐서 그러겠지.>    <죽일놈...형님 다른 일 없음 나 이 길루 승만이허구 상국이나 보구 올라가겠수.>    <급해말어. 나두 너같이 큰골 넘어가겠다. 멀리까지는 바래주지 못하겠지만 이 밤에 널 혼자 보낼수야 없지.>    <별소리, 만리 떠나두 종당에는 하직이라는데.>이들은 몸을 돌려 다시 우로 올라간다.    <저-그 놈이 내려오는걸 언제 봤냐/>    <누구 말이우?장씨?저녁편이우.> 광수가 홀연 걸음을 멈추고 원도를 돌아보았다. 광수는 원도가 지나가는 말처럼 심상하게 물었지만 무슨 낌새를 기민하게 챈것이다.    <와서 술을 마시느라문 아직두 안갔을게우.> 광수는 원도가 묻는 뜻을 알아챘다.    <해치우자는게우?>    <그런건 아니야.> 원도는 시치미를 땄다.    <하긴 그 놈이 있는 한 형님은 큰골 가두 편안하게 살지는 못할게우. 그 놈의 욕을 적게 봤수. 그런 놈은 살려둬서 쓸데없수.>    <오늘밤으루 그 놈이 큰골 넘어갈가?> 원도는 혼자소리를 하며 생각에 잠겼다. 광수말이 진짜 사실이라면 오늘 같은 기회는 다시 없다. 장씨는 이제 미워하기도 싫은 놈이다. 자기의 생존을 위해서, 안녕을 위해서 장씨를 죽여버리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 치부장고개길옆에 숨었다가 그 놈이 지나갈무렵 감쪽같이 습격하면 산에 있는 군대들이 한짓으로 짐작할것이다. 좋은 기회다. 온몸이 달아오른 원도는 지금 후과를 생각할 여유가 없이 야수와 같은 욱기에 투척되여 있었다. 원도는 권총을 틀어잡았다.    원도와 광수가 물러가자 용범이와 숙자는 너무도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알고보니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다.    <늙어죽을 때꺼정 오늘 일은 누구한테두 말해선 안되우. 알겠수?!>숙자에게 비밀을 약속하는 용범의 말은 우둔하기만 했다. 이날 깊은 밤.꿈나라로 들어간 구영벽사람들은 치부장고개쪽에서 울린 두방의 총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잠을 이루지 못한 용범이와 숙자만은 똑똑히 들었다. 끝내 큰일을 저지르는군...    길순이도 이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남편이 광수와 같이 큰골로 올라갔다는 일을 상국이한테서 가만히 들어 알고있었다. 9     쪽빛이 소조한 가을이다. 산에도 들에도 가을이 왔다. 풍요로운 황금빛 들녘에서 콩이 놀놀히 익어갔고 석양녘이면 사이섬에서 새꽃이 하얗게 날려왔다. 꺼껑-까투리를 찾는 장끼의 울음소리가 유정하게만 들린다.    은근하고 유정한 계절이지만 구영벽마을의 인심은 날이 갈수로 뒤숭숭해졌다.    원도가 경찰서에 잡혀갔다 온후부터 마을에서는 밤을 자고나면 불안한 소식만 터졌다.    먼저는 큰골 장지주가 술마시고 밤에 큰골 넘어가다가 치부장고개에서 산에서 내려온 군대들에게 총에 맞아죽은 소식이였고 그다음은 복희의 신비한 실종, 광수가 강동(연해주)갔다는 소식, 뒤이어 조기운이 떠난 사실이였다. 장지주의 죽음은 큰골 가서 신개지를 터치는 장덕사람들의 입에서 나왔다. 장씨의 죽음과 조기운이 떠난 사실에 대해서 구영벽사람들은 쾌념한 기색이 아니였으나 복희의 신비한 실종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여러가지 이러쿵 저러쿵 했다. 그중에는 광수와 배가 맞아 도망쳤다는 엉뚱한 구설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진상을 딱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구설 하나로 그쳤을뿐이였다. 어제까지 복희를 보았는데 밤사이에 없어진것이다. 그래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말인가. 옛말에서나 있을 일이다. 암만 해도 이상하기만 했다. 과부몸으로 딸 둘 거느린 녀자가 무슨 힘으로 밤사이로 떠났을가.    광수의 일도 그렇다. 처음에도 그냥 큰골에 있는줄 알고 류의하지 않았는데 큰골 가서 일하는 장덕사내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쪽에도 광수가 없다고 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광수는 또 어딜 갔단 말인가...    구영벽의 모든 일은 원도만이 알고있는 비밀이였지만 원도가 내색없으니 사람들은 복희와 광수의 신비한 실종,조기운이 까닭없이 떠난 사실,나아가 장씨의 죽음까지 원도와 련계가 있을줄은 까맣게 모르고있었다.    밤을 자고나면 뒤숭숭한 소문으로 불안하기만 했지만 그래도 밤이 오면 법석을 떨며 앞집으로 모여들어 상국이가 갖춘 레코드노래소리를 들었다. 레코드를 처음 보는 구영벽사람들에게는 얇은 판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는게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우깨산말기우로 해가 불쑥 솟아오르자 아침해살이 구영벽마을로 찬연히 쏟아졌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였다. 비운의 하루였지만 이 시각 구영벽사람들은 그것을 상상도 못하고 분주히 돌아치기 시작했다.    9월 16일, 박씨가 손가락 꼽아보며 정한 날이다. 16일이라면 래일이다.원도네는 래일이면 이사하게 된다. 그사이에 백번두 더 이사했을 노릇이나 장지주의 죽음으로 큰골마을 인심이 뒤숭숭했고 거기에다 박씨까자 나서서 중뿔나게 이사날자까지 똑똑하게 정하는바람에 줄곧 이사를 늦추었다. 병수가 죽은 뒤 한시 바삐 구영벽을 뜨자고 급해하던 길순이는 박씨가 길일을 택하자 두말없이 곱게 따랐다. 녀자들이란 원래 이런 놀음에는 큰 정성을 바쳐 따르는것이다. 하긴 초가집에서 기와집으로 이사하는 큰일이라 절대로 얼떨떨할수는 없는 일이다. 황차 원도 역시 장지주의 죽음으로 시간적여유를 가지고싶은지라 이사를 급해하지 않고 박씨말을 따르는체 했다.승만이와 상국이가 일하러 나가자 집안에서 서성거리던 원도는 길순이가 설겆이를 하는 사이에 인수를 데리고 마당에 나섰다. 세관뒤로 빠져나가는 준식이의 뒤모습이 얼른거렸다. 사이섬의 버들숲을 거의 절반이나 작파해버린 준식이는 얼마전부터는 재껴놓은 나무를 걷어내고있었다. 참, 오늘은 사이섬으로 나가볼가. 원도는 자기가 뚱겨주고 뒤를 받쳐주는 일이라 준식의 일에 무척 신경을 쓰고있었다.    노들갯변 봄버들...무정세월...칭칭 동여서... 집안에서 설겆이를 하는 길순이는 느닷없이 상국이가 부르던 노래 한대목이 생각나서 가만히 흥얼거려보았다. 길순이는 지금 기분이 둥-떠서 무척 흥분하고있었다. 병수가 죽은 뒤 처음으로 기분을 펴보는 길순이다. 래일에는 이사가게 된다. 큰마님... 큰마님...큰마님이 되는게다. 내내 앓던 이를 뽑았다. 복희의 신비한 실종은 길순의 가슴속에 맺혔던 응어리를 풀게 했다. 어딘가 짚이는데가 있지만 그런것을 상관할바가 아니다. 내 눈앞에서 복희라는 요물이 사라지면 되는것이다.    길순이가 집안에서 설겆이를 끝내고 밖으로 나올무렵 마당으로 옆구리에 버들광주리를 낀 덕희와 금숙이가 들어섰다. 섬돌우에 앉은 원도에게 인사하는데 길순이가 활짝 웃으며 이들을 반겼다.    <랠 이사한다던데 이사집 같지 않습꾸마.> 금숙이가 집안을 기웃거리며 의문을 품었다.    <우린 그저 빈몸으로 간다우.> 하긴 이사짐이래야 벽감에 모셨던 시어머니 신주를 모셔가면 된다. 그외 농짝이나 세간기물 같은 자질구레한것들은 큰골쪽에서 새것으로 갖추어놓은지라 여기것은 덕희에게 줘버리면 그만이다.    <광주리 끼구 어딜 가우?>    <새썸에 버들버섯이 돋았다구 해서.> 엊저녁에 비가 한줄금 내린지라 버들버섯이 살아났을것이다.    <버들버섯?나두 갈가?> 기분이 좋은 길순이는 남편쪽을 돌아보며 동의를 구했다. 집에 있어도 할 일이 크게 없다. 그런데 인수가 문제다.    <갈거지 누가 잡수.> 원도가 선선히 대답했다. 원도 역시 요사이에는 기분이 많이 좋아져있었다.    <기랜게 아니구 인수일루 그랩지비.>    <인순 저 강숙...뭐 나하구 놀지 뭐.난 오늘 일이 크게 없는데.> 원도는 어망결에 인수를 복희한테 맡기겠다는 소리를 할번 했지만 용케 말머리를 돌렸다.    <아이 좋네.> 길순이는 남편에게 해쭉 웃어보이며 집안에 들어가 바삐 차비하고 나왔다. 인젠 아래배가 웬간히 큰지라 예전처럼 움직임이 날렵하지 못했다.    이들이 떠나가자 원도는 인수의 손목을 잡고 뒤마을로 들어갔다. 사이섬으로 가는 일은 오후에 다시 보기로 했다.    길순이네가 세관을 지나 인도를 넘을무렵 최십장과 소위가 엇비스듬히 맞띠웠다. 이들은 나루터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이쪽편 교두에 구축하는 또치까가 완공되였지만 이들은 쩍하면 여기로 건너왔다. 조기운이 다리일을 총괄할 때에는 얼신거리지도 않더니 조기운이 떠나고 총감독이 다시 오자 이들은 다시 뻔질나게 공사장으로 나왔다.    <어랍쇼.고운 만주아가씨님네 어딜 가우?> 최십장이 너덜거렸다. 소위도 희미한 웃음기를 입에 달고 녀자들을 음침하게 훑어보았다. 음전한 녀자들이군...소위는 오늘 여기로 피뜩 나왔다가 량수천자로 가야 한다. 량수천자 순찰부로 금방 발령받고 내려온 친구보러 간다.    <여기 헌 투레기놈들은 말짱 고운 녀자들만 차지했다니까. 히히히...> 최십장은 벌써 머리에 감았던 붕대를 풀어던지고있었다.    <아주머니구먼,빨리 넘어가우.> 뒤따라오던 천규가 길순이를 알은체 하며 최십장을 말렸다.    뱀앞에 선 개구리가 되여 길순의 등뒤에 숨어 가슴을 떨던 덕희와 금숙이는 길순이를 따라 바삐 인도를 넘어갔다.    히히히...하하하 등뒤에서 음탕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여보소, 아가씨님네들 치매 한번 들쳐보소. XX이나 한번 귀경하게...히히히.> 최십장은 녀자들에게도 악패다. 사경에서 겨우 몸을 건졌고 산에 있는 군대들의 활동이 빈번하다고 뒤소문이 흉흉했지만 겁내는 기색이 없이 더욱 우쭐거린다.    죽일 놈, 길순이네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급한 걸음으로 사이섬으로 갔다. 여름에는 <<몸뻬>>를 입지 않았다고 도강을 막으며 희롱질이더니 이번에는 얼굴 곱다고 희롱질이다. 죽일 놈 치마를 들어? 굶은 범은 뭘 하구 저런 놈을 잡아가지 않수...    원도는 인수의 손목을 잡고 뒤마을로 들어갔다. 길옆숲속에서 매미들이 기세차게 울어댔다. 마을길에는 인적기 하나 없이 조용했다. 아들의 손목잡고 마실돌이를 해보기는 처음이다. 구영벽마을을 돌아보는것도 이제 마지막이다.    오다가다 잠시 이사짐 풀고 눌러앉은 구영벽,날자수로는 일년이 못되여도 해수로는 2년철을 잡는다. 여기서 원도는 갈림길이 생겼고 전환점이 생겼다. 아무래도 정이 들었다고 해야 할 곳이다. 유정천리라면 무정만리다. 얻은것이 많은만큼 잃은것도 많다. 조기운과 광수를 잃은 일이 제일 가슴아프다. 만남과 리별,재부와 정감,원도는 여기서 인생을 배웠다...    뒤마을로 들어왔던 원도는 장덕사람들을 찾아 다시 삼밭으로 향했다.    장덕사람들은 이른아침부터 삼찌기에 나섰다. 어제 물도랑과 가까운 삼밭머리에 삼구뎅이(중식가마)를 파는 토역을 마치고 밑바닥에 온돌까지 놓아 힘든 일은 마쳤는지라 오늘은 아낙네들이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아침나절에 삼단을 삼구뎅이에 우물정자모양으로 차곡차곡 쌓았고 해가 허리를 펼무렵에는 그우에 쑥을 덮고 다시 흙까지 덮었다.    조금 지나 삼구뎅이우로 연기가 꾸역꾸역 쏟아져나왔다.    물을 길어오우-용범이가 허리에 손을 얹고 소리쳤다. 그러자 아낙네들이 치마바람 일구며 동이로 물을 이어 날랐다. 어-널널 어여루 상사듸여찌네 찌네 삼을 찌네여보소, 농부님네 일심져서 잘 쪄보세...이 삼 쪄서 무얼 하나, 단허리에 감을시구...     용범이가 흥이 난김에 청승맞게 한대목 소리를 뽑자 물긷는 아낙네들은 궁둥이를 더 힘차게 흔들며 동이를 이고 오간다. 아래목에서 남편과 같이 일하던 숙자가 용범이에게 뺑긋 웃어보였다.    잘헌다,잘헌다.우는 애기 좆(젖)멕이듯한다...    칠성이가 생뚱같게 나서서 장타령 먹임소리를 내며 훼방을 놓았다.    와르르-    사내들은 칠성의 먹임소리에 돌멩이가 굴러가는 소리를 내며 웃어댔다.    자,그만하구 담배나 먹읍세-    사내들은 기신기신 그늘밑을 찾아들었다. 아낙네들이 달기 시작한 삼구뎅이에 물을 쏟아붓자 삼구뎅이 우로 단김이 실실 피여올랐고 삼이 익는 알찌근한 냄새가 마구 뎦쳐왔다.    <앞마을 김선상이 래일 이사간다구 했지?> 용범이가 화제를 끄집어냈다.    <형님,우리두 따라올라가봐야지 않수?>   <글쎄,그래야 되겠지.>    <쳇 또 개괴기 생각났던게로군.> 득삼의 뒤를 이어 칠성이가 끼여들었다.    <구데기가 우글거리는 쇠괴긴 뉘기 먹구,죽은 새끼돼지 물어오다가 김선상한테 무안받은게 뉘기라구 그따위 소릴 해.> 용범이가 당장에서 칠성의 덜미를 눌렀다.    <이 사램 쓸데없는 걱정말구,아래물건이나 잘 건사하우.> 용범이가 싱글거리며 겨릅대로 칠성의 사타구니를 툭툭 건드렸다. 잠방이만 입고 앉은 칠성의 사타구니로 거무튀튀한 육실한 연장이 절반쯤 밀려나와있었는데 가만보니 그쪽의 실밥이 풀려져서 그 사이를 비집고나온것이다. 이 잠방이 혼솔이 따진것은 큰골에서부터였는데 인젠 칠성의 연장이 꺼리낌없이 해빛을 본지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 물건짝이 왜 자꾸 버둥거린다우?> 둘러앉았던 사내들은 칠성의 물건을 보자 에이쿠, 혀를 홰홰 내둘렀다.    <이제 나와서 시방 할 일이 있수?> 칠성이는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물건을 안으로 밀어넣었다.    하지만 조금 지나자 다시 기웃거리며 기여나왔다. 만덕이는 이때에야 겨우 삼구뎅이를 덮고 불을 지폈다. 만덕이는 요사이에 장덕으로 되돌아갈 생각을 하고있었다. 인젠 구영벽이 재미없었고 사람들을 보기도 싫다.똑똑한 놈으로 둔갑하기는 어렵지만 머저리로 되기는 쉽다. 요사이에는 안해까지 곰상곰상하지 않는다.    <혼자 우두커니 그러지 말구 사램모인 장소 가서 담배라두 태우쉬꽈이 예.>  좌르륵 삼구뎅이에 물을 붓고 돌아서던 숙자는 혼자 고개를 떨구고 묵묵히 앉아있는 남편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만덕이는  대답이 없다.    호-한숨까지 톺은 숙자는 용범이쪽을 가만히 훔쳐보고는 다시 물 길러 개울가로 나갔다.    개울가에서는 아낙네들이 물을 긷다말고 모여앉아 참새떼처럼 재잘거리고있다가 숙자가 나타나자 별안간 뚝 끊었다. 수상쩍다. 왜 자기가 나타나자 개구리가 우는 늪에 돌 던진듯 말을 끊나...    <무신 야기길래 쇵사리 끓듯 재글재글 합다매?왜? 끊수? 나두 들어보자이.> 숙자뒤에 따라섰던 덕녀가 <<저기나>>맞은편에 오금을 꺾고 앉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금이 말째인지라 다른 사람들이 두번 걸음을 할 때면 겨우 한번 걸음하지만 막내딸년이 금숙이 대신 나와서 일에는 별지장이 없었다.    <저기나,시방 이 안깐들이 자꾸 강숙이 엄마 소릴 해서...복희 일이야 여기서 날 내놓구 누가 더 아는 사램이 있슴두.>    <여끼가(여우)고슴도티 잡아묵은 얘기하구선...강숙이 엄매야길 했다구 떼질이네.>    <<저기나>>곁에 앉은 통통한 녀인이 숙자를 핼긋 훔쳐보며 <<저기나>>의 잔등을 때렸다.    <복희 말은 더 하지 말랑이, 곁에 없는 사램말은 자꾸 하는벱이 아니지.> 덕녀는 <<저기나>>의 얼림수에 넘어가서 정색해했다.    더러운 년들,꼭 내 말을 한게 틀림없다. 모르는체 눌러앉으려던 숙자는 생각을 고쳐먹고 동이에 물을 담자 인차 자리를 떴다. 숙자는 <<저기나>>가 아낙네들을 휘동해서 자기를 따돌리는것을 알고있었다.    <욕심 많아서 잘살겠수.> <<저기나>>가 가만히 한 소리였지만 숙자는 어쩔수없이 들었다. 물동이는 머리에 인채 숙자는 몸을 홱 돌렸다. 그리고는 <<저기나>>를 쏘아보았다. <<저기나>>는 아닌보살하고 힝힝 코웃음쳤다.    <참구 있으니까...제 뉘길 욕하우?>    <저기나, 듣는 귀가 열두폭치매라더니 뉘기 절 욕했다구 색을 내우.> <<저기나>>는 기다렸다는듯 당장 대들었다.    <내가 욕심써두 저네 보리밥 달라우, 개똥참외 달라우?> 숙자는 눈에 쌍가래톳을 세웠다. 여지껏 참고참았던 분이 일시에 터진것이다. 흥,네 년이 뒤에서 날 헐뜯어두 난 네년 남편과 살섞었다. 네 년이 계속 날 물고 늘어지면 나도 네 년을 편안하게 살지 못하게 할테다.    <저기나, 말이 더럽수. 똥욕심은 장덕에서부터 센세(소문)난 일인데 왜? 내가 없는 말 했수?>    <이 아낙네들은 왜 마주서면 수탉처럼 싸움질이우. 저기 남정네들이 있는데...소리 죽이우.>    <왜? 일밭에 나와 지랄이야. 동네 망하게.> 아니나 다를가 인차 불호령이 날아왔다. 용범이가 눈에 독을 세우고 이편을 노려보고있었다.    <까딱말라이, 자기 앞마을 김선상이 들어오구 있수.>보니 원도가 정말 인수의 손목을 잡고 이쪽으로 오고있었다. 아낙네들은 찍소리도 못했다. 아낙네들에게는 원도가 무서운 사람이였다.     어느덧 점심때가 되였다.    버섯뜯기에 열중한 길순이네는 점심때가 된지도 모르고 준식이가 나무찍은 곳을 지나쳐 버들숲에 들어섰다.   아래에서 준식이와 문수가 어이어이 소리쳐 이들을 불렀지만 세 녀자는 부름소리도 듣지 못한채 무작정 우로 올라갔다.    녀자들을 부르던 준식이와 문수는 이들이 청계하쪽으로 빠져 마을로 들어가는가 여기고 집으로 들어갔다.    하얀 버들버섯은 보기에도 탐스러웠다. 금숙이는 길순이와 덕희와 떨어져 홀로 버섯을 뜯었다. 등에 걸머진 보따리가 꽉 차있었고 앞섶에 찬 주머니도 버섯으로 불룩했다.    그제야 금숙이는 두리번거렸다. 길순이와 덕희는 어디로 갔는지 그림자도 없었다. 문뜩 두려움이 들었다. 복희네 새끼돼지를 물어간 무리승냥이가 여기에 웅크렸다가 마을로 덮쳐든것이 아닌가. 승만이와 상국이네도 여기까지 쫓아와 승냥이 입에서 새끼돼지를 빼앗고...    <덕희야->    <응-> 예상외로 덕희는 그와 멀지 않은 앞에 있었다. 덕희의 앞에서 버섯을 뜯던 길순이는 금숙의 부름소리를 듣고서야 피뜩 정신이 들었다. 여기가 어딘가, 주위는 온통 버드나무다. 에이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해자리를 보던 길순이는 그제야 부랴부랴 짐을 싸들고 아래편으로 내려왔다.    <어이,내려가기우-> 청계하로 나온 길순이가 소리쳤다.    조금 지나 덕희와 금숙이도 버들숲에서 나왔다. 서로 마주보던 세 녀자는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세 녀자는 모두 얼굴이 얼룩덜룩해졌고 손이 버섯진으로 거멓게 물들어있었다.    <이럴 때 승만이와 문수가 봐야 하는데. 얼매나 고운가 호호호. 아무리 급해두 얼굴이나 씻기우.> 녀자들은 물가녁에 붙어앉아 저마끔 얼굴을 씻기 시작했다.    손발까지 말끔히 씻고난 이들은 언덕을 넘어 조밭을 꿰질러 길목에 나섰다.    에그머니나...    세 녀자는 동시에 가느다란 비명을 질렀다. 량수천자에서 오는 소위와 최십장을 만난것이다. 아침에도 엇비스듬히 맞띠웠는데 지금 또 맞띠운것이다.    소위와 최십장은 술을 마신 모양 둘이 모두 눈이 개개 풀려있었다.    <섯,히히히,이거 ,암만 혀두 연분이 들었구만...히히히,아가씨님네 뭘 이리 많이 캤수?> 최십장이 앞길을 막아서며 흥글거렸다. 최십장은 몸가짐도 흩어져있었다. 덕희와 금숙이는 아침때처럼 또다시 길순의 등뒤로 숨어들었다. 길순이는 소위와 최십장의 탐욕스러운 눈길을 보고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호젓한 곳에서 또다시 만나다니... 좌우로 살펴봐도 길손이 없고 해볕만이 노랗다.   <비켜서우,집에 가겠수.>    <뭐 비켜? 이 년이 보자보자 하니 뭘 믿구 그래 히히,넌 집에 가두 되지만 이 아가씨님네들은 못가 히히히.> 최십장이 막아서며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냈다. 소위도 실실 웃으며 슬금슬금 다가왔다.    <아니,이게 무신짓이우...물러서우...> 이미 버섯짐을 벗어던진 길순이가 덕희와 금숙이를 결사적으로 막아섰다. 길순이밖에 처녀들을 보호할 사람이 없었다.    히히히...두 사내는 음탕하게 웃으며 점점 육박해왔다. 참새같이 할딱거리고선 덕희와 금숙이는 이 사내들이 오래전부터 자기들에게 눈독을 들인 일을 모르고있었고 금방전에 자기네가 물가녁에서 얼굴을 씻을 때부터 자기네를 엿보고 길목을 지켜선 일을 까맣게 모르고있었다. 절대 돌연적인 일이 아니다.    <빨리,달아나...빨리.> 길순이가 두 사내의 앞을 막으며 소리질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길순이는 최십장이 날린 발길에 아래배를 드세게 얻어맞고 쓰러졌고 덕희와 금숙이는 사나운 매한테 치운 꿩 신세가 되였다.    <엄마아...> 두 처녀는 거의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버섯짐이 길바닥에서 길순의 신세같이 뒹굴었다.    <안되우...안...돼...시...시집두 못간 체네들인데...> 아래배를 험악하게 채운 길순이는 낯이 하얗게 바래진채 비틀거렸지만 그래도 덕희와 금숙이를 구하겠다고 모지름을 썼다.    <이 년아,갈길이나 갈게지 웬 상관이냐.> 금숙이를 잡고 조밭속으로 들어가던 최십장이 자기앞을 막아서는 길순이에게 또 발길을 날렸다.    윽-길순이는 외마디비명을 지르며 몸을 꿈틀거렸다. 불시에 눈앞이 노래지며 하늘땅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길순이는 조밭속으로 끌려들어간 덕희와 금숙이가 발악하는 줄도,두 사내가 마구 폭행을 가해 금숙이와 덕희가 졸도하는줄도 모르고 길바닥에 반듯이 누워 눈에 정기를 잃으며 신음하고 있었다. <<몸뻬>>가랭이 아래로 피가 흘러내렸다...    시간이 불시에 멎는듯한 정적이 지나갔고 조밭속에서 이름모를 산새들이 푸드득 푸드득 날아다녔다... 10     구영벽마을은 쥐죽은듯 조용하기만 했다. 하늘도 땅도 굳어진것만 같았다.    길순이는 락태한후에도 피가 멎지 않아 생명을 다투었다. 상국이가 원도의 분부받고 량수천자로 의원 부르러 간 뒤 마을에서는 또다시 불상사가 터졌다. 사람들은 모두 강가로 모여갔다. 옥생각을 먹은 덕희가 가만히 나가 두만강에 몸을 던진것이다. 준식이가 덕희의 몸을 안아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덕희의 몸은 싸늘히 식어갔고 손발이 뻣뻣이 굳어졌다. 자기의 삶과 앞날을 동경하여 꿈으로 살던 덕희는 해빛이 소조한 가을날에 아버지와 사랑했던 문수를 버리고 세상을 떠나갔다. 너무도 절통하니 눈물도 없었다.    덕희를 우깨산자락에 묻을 때까지 누구나 얼굴이 철통같이 굳어져있었다.    밤에 문수와 승만이가 칼을 품고나서는걸 원도가 귀쌈을 때려서 주저앉혔다. 길순이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있었다....     원도는 오늘도 언덕에 올라서서 다리공사장을 지켜보고있었다. 벌써 련 사흘째나 여기에 붙어서서 공사장을 지켜본다. 구영벽사람들은 요사이 원도의 지휘에 따라 하나같이 움직이였다. 사이섬으로 나가던 준식이와 문수는 다리공사장으로 나갔고 득삼이와 용범이,칠성이네 장덕패들까지 농사일을 젖혀놓고 다리일에 나섰다.    나왔수다-    상국이가 언덕에 선 원도에게 미리 약정한 암호를 보내고는 층계를 타고 17호기둥타입현장으로 올라왔다. 휘틀안과 비계우에는 구영벽사람들로 득실거렸다.    <나왔수!>    상국의 말대로 소위와 최십장이 층계아래로 왔다. 일을 저지른 뒤 오늘 처음으로 공사장으로 나온것이다.    준식이가 손세를 보이자 휘틀안에서 세멘몰탈을 다지는 작업을 하던 승만이와 문수가 휘틀벽을 꽝꽝 잡아쳤다.    무슨 일이야?17호기둥을 그냥 지나치던 소위와 최십장은 의아하게 올려다보다가 급급히 층계를 타고 비계우로 올라왔다.    언덕에 섰던 원도가 손세를 보이지 상국이와 재필이,용범이네가 층계우에 세멘몰탈을 지고 올라오는 인부들을 막으며 층계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사고났수 사람 살리우->    용범이와 재필이가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좋은 기회다. 층계우에는 인부 하나 없이 비여있었고 인부들의 시선이 모두 물에 빠진 상국이 몸에 집중되였다.    <왜 ? 이랴? 씹새끼들 벽은 왜...> 최십장은 말도 끝맺히지 못한채 준식이한테 떠밀려 휘틀안에 굴러떨어졌다. 동시에 소위도 미리 대기하고 선 칠성이한테 떠밀려 최십장 꼴이 되였다.    <칙쇼...> 소위가 기여일어나며 총을 더듬거렸다. 하지만 총을 꺼내들사이도 없었다. 만단의 준비를 하고 대기해섰던 문수가 쇠파이프로 소위의 뒤통수를 드세게 내리깠다.    퍽-둔중한 소리와 함께 소위는 찍소리도 못하고 물기가 이지르르한 세멘몰탈에 코를 박으며 쓰러졌다. 일격에 골통이 묵사발이 되였다.    <개새끼들...>    최십장이 바삐 휘틀벽에 붙어서며 허리춤을 더듬거렸지만 승만이의 칼에 아래배를 질리우고는 비틀거렸다. 대뜸 피가 콸콸 흘러내렸다.    <새끼야,알구나 듁어(죽어),취선당 닐은 우리가 했다. 그때 니가 듁어야 했는데...> 승만이는 다시 한번 최십장의 가슴께로 칼을 박았다. 개새끼야, 넌 이렇게 죽어두 아깝다.    빨리-휘틀안에 있던 인부들이 일제히 손을 써서 미리 파놓은 세멘몰탈구뎅이에 소위와 최십장을 묻어버렸다.    우에 섰던 준식이가 다시 원도에게 손을 홱 저었다.    <비계가 내려앉수!->   <비계가 바지 벗는다!> 칠성이가 아우성치며 도끼로 비계를 비끄러맨 참바를 내리찍자 비계가 우르르 무너져내리며 층계까지 허물어버렸다.    사램 살리우-    사램들이 물에 빠졌수-    물에 빠진 준식이와 칠성이네가 소리지르며 허우적거리자 뒤따라 휘틀안에서 일하던 승만이와 문수네가 물에 뛰여들어 복새통을 피웠다.    일은 예상대로 말끔히 해치웠다. 하지만... 11     이른 새벽.    구영벽마을은 짙은 안개속에 잠겨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꿈나라에 빠져있었다.    강삭배가 은밀히 오가며 전신무장한 일본병사들을 실어날랐지만 이 시각 구영벽사람들은 꼬물도 모르고있었다.    군복을 차려입고 권총을 찬 미쯔우라는 첫배로 건나와서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미쯔우라곁에는 경기관총이 걸려져있었고 뒤에는 맞아서 얼굴이 만신창이 된 천규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한개 중대가량 되는 병사들이 미쯔우라의 지휘에 따라 두길로 나누어 구영벽을 청통같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상리공생을 말하고 세뇌를 운운하던 미쯔우라가 아니다. 조선땅으로 들어온지 오라지만 자기네 군인까지 서슴없이 해치는 조선사람들을 처음 본다. 어벌짝이 대중없이 큰놈들이다. 총가진 군대도 아닌 놈들이 이런 일까지 치다니.    일본사람들은 머저리가 아니다. 어느모로 보나 이 땅에 군림한것만치 강한 사람들이다. 더구나 미쯔우라는 비상히 총명한 사내다. 소위와 최십장의 실종은 취선당사건과 련계된다는것을 알아챈 그는 천규를 잡고 족쳤다. 천규도 잘 모르는 일이지만 소위와 최십장이 다리공사장에서 실종되였다는 단서만은 알아냈다...    밤새 굳어지기 시작한 세멘몰탈속에서 소위의 시체를 파낸 미쯔우라는 한동안 아연해졌다.   탕-   새벽공기를 찢으며 뒤마을쪽에서 총성이 터졌다. 토벌이다!토벌이다-누군가 소리치자 또다시 총소리가 울리며 아우성소리가 터졌다. 어느덧 집이영이 타는 매캐한 연기가 밀려왔다.    불은 장덕사람들의 집에서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삽시에 구영벽마을은 불바다가 되였고 란장판이 터졌다. 곤히 자다가 놀라깬 사람들이 병정들에게 몰려 앞마을로 밀려나오기 시작했다.    천규가 부들부들 떨며 원도네 집을 가리키자 병사 둘이 총을 받쳐들고 짓쳐들어갔다.    <이거 암만 해두 심상치 않은 일이 터졌다이...어험.> 안방에서 쉬던 병권령감이 정지에 있는 원도내외에게 기척소리를 냈다. 늙은 몸이라 새벽잠이 없는 령감이다. 원도네가 이사한다고 했지만 넘어오는 기척이 없자 궁금해서 알아보러 어제 큰골에서 넘어온 병권령감이다.    <글쎄유...> 원도도 벌써 깨여서 밖의 동정을 듣고있었다.    쿵-쿵-마당에서 다급한 발걸음소리가 들리는가싶더니 쾅-출입문이 군화발에 열려졌다. 일본병서 둘이 장승처럼 뻗치고섰다.    <안되우!->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락태해서 의식까지 잃고 꼼짝 못하고 누워있던 길순이가 벌떡 일어나며 원도를 막아섰다.    탕-    앞선 병사의 총이 불을 뿜었다. 가슴을 맞은 길순이는 신음소리 한마디 없이 이불우에 무너져내렸다.    <엄마아,엄마...> 놀라깨여난 영수와 인수가 길순의 몸우에 덮쳤다. 뒤에 선 병사의 총구가 영수를 겨누고있었다.    개새끼들...노랭이들아... 원도의 권총이 먼저 불을 뿜었다. 뜻밖의 총격을 당한 두 일본병사가 너부러졌다.    병권령감이 안방에서 뛰쳐나오며 영수와 인수를 끄잡아 일으키고 뒤문으로 재빨리 몸을 피했다.    <아바이,영수와 인수를 부탁합니다-> 이것이 원도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원도는 일체를 불문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 길만이 영수와 인수를 구하는 길이다.    노랭이 새끼들아...쪽발이들아...    탕-탕-탕-    언덕우에서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원도는 피를 콸콸 쏟으며 섬돌우에 쓰러졌다. 여보-여보-    당신 어디에 있수...영수야...인수야...아버지는 간다...아버지가...가물가물 의식이 가면서 원도는 침침한 빛 한점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이것이 원도가 세상을 떠나가면서 마지막으로 본 새벽빛이다.    같은 시각 승만이와 상국이도 이불밑에서 반항 한번 못해보고 총에 맞아 숨이 졌다.    준식이는 호미를 들고 병사들에게 다려들다가 아래배에 총창을 맞고 창자를 흘리며 숨져갔다...    원도네 앞마당은 끌려온 구영벽사람들로 빼곡이 차있었다. 아이 울음소리 욕소리...주검을 본 아낙네들은 기혼해 넘어갔다. 원도의 참상에 사내들은 소리없이 눈물을 지었다...    일본놈들은 득삼이와 용범이를 비롯한 풍리,길주 사내들을 모조리 끌어갔다...    구영벽에는 맨 아녀자들만 남았고 집은 모조리 타서 재더미로 되여버렸다.    구영벽은 새벽부터 호곡소리로 지동쳤다...    이때로부터 구영벽은 페허로 되였고 사람 그림자 얼씬거리지 않았다.    량수천자사람들과 장덕사람들은 밤이면 구영벽페허에서 귀신이 운다고 낮에도 오기를 꺼렸다.여보-아들아-내 딸아-애 아부지-...    정말 구영벽페허에서는 밤마다 귀신이 울었다. 새하얀 옷을 입은 귀신... ~~~~~~~~~~~~~~이상 전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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