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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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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정해우(庖丁解牛)의 도
2016년 01월 26일 14시 41분  조회:689  추천:0  작성자: shijun
                              포정해우(庖丁解牛)의 도
 
                                          한세준
 
   고전 장자편에는 포정해우(庖丁解牛)의 이야기가 있는데 실력이 있는 도사(道士)의 모습을 그리고있다. 포정(庖丁)은 전국시대 살았던 최고의 백정이였는데 어느날 포정이 궁정에서 소를 잡고있었다. 그런데 포정이 칼을 놀리는 솜씨가 신기에 가까웠다. 그 모습을 지나가다 본 문혜왕은 너무 감탄하여 포정에게 소잡는 도(道)를 물었다. 포정은 칼을 놓고 왕에게 이렇게 아뢰였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의 겉모습만 보였습니다. 3년이 지나니 어느새 소의 겉모습은 눈에 띄지 않고 소가 부위별로 보이게 되였나이다. 그리고 또 19년이 지나니 눈으로 소를 보지 않습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소의 살과 뼈, 근육 사이의 틈새속을 봅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칼이 지나갑니다. 이런 기술을 터득한후 아직 한번도 실수하여 칼이 살이나 뼈와 부딪힌적이 없습니다.
   솜씨 좋은 백정이 1년만에 칼을 바꾸는것은 칼을 가지고 소의 살을 베기때문입니다. 평범한 백정은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이는 칼로 무리하게 뼈를 가르기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칼은 19년이나 되도록 수천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것과 같습니다. 소의 뼈와 살 근육 사이에는 어쨌든 틈새가 있기 마련이고 그 틈새로 칼날을 넣어 소를 잡기때문에 칼날은 전혀 무디지 않는것입니다. 이것이 19년이 되여도 칼날이 방금 숫돌에 간것과 같은 리유입니다.”-양생주편(養生主篇)
포정이 중하게 여긴것은 도(道)였지만 포정의 도는 기술을 넘어선것이다. 말하자면 소를 잡는데도 길이 있다는것이요 도를 닦았다는것은 길을 닦았다는 말이다. 그가 이같은 경지에 이르게 된것은 글로 익힌것도 아니고 머리로 익힌것도 아니였다. 소잡는 일을 소신으로 삼고 일심불란으로 소잡는 일에 몰입하였던것이다. 그도 처음엔 길을 몰라서 손이 떨렸을것이나 자기의 령혼을 소잡이에 쏟아부어 차차 길을 보안해고 3년이 지나 초보적인 실력을 키워냈다.
   처음 같은 실력이라도 3년이 지나면 각자 그 차이가 알린다. 대충 살아간 사람과 포정처럼 인생과 령혼을 걸고 현장에서 고심히 분투한 사람, 그뒤 계속 10년 동안이나 분투한 사람과 다를수 밖에 없다. 무슨 일을 하든 이 정도는 해야 된다는것이 포정의 소잡이비결이자 대답인 셈이다.
   실력이란 하루아침에 장악되는것이 아니라는것은 주지하는바이다. 그러면 도를 틔운 포정의 눈에 보인것은 무엇이였을가? 다른 사람이 보아내지 못한 곳, 즉 뼈와 살 사이에 난 칼이 순리롭게 지나갈 공간이였다. 이 공간을 보아낼줄 안다는것이 굉장히 중요한것이다. 바로 허(虚)를 찾아낸것이다. 허를 볼줄 안다는것이 포정의 뛰여난 재능이다.
   요즘 같이 경쟁이 치렬하여 살기 어려운 세월에 남들은 답이 없다고 투덜대지만 각축장같은 경쟁마당에서 허를 보아내는 진짜 실력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갈 길을 찾아내여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수 있다. 이것이 바로 포정의 해우의 도인것이다. 포정처럼 남들이 보아내지 못하는 길을 볼줄 아는 뛰여난 능력을 득도(得道)라 한다. 득도한 사람을 도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것이다. 어떤 분야든 최고가 되는데는 단순히 기술이 뛰여나다고 해서 되는것도 아니고 아는것이 많다고 최고가 되는것도 아니다. 그래서 박사(博士)보다 더 높은 도사(道士)가 있다고 하는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나의 처가편 한 조카는 고중을 졸업하고 대학에 갈수 없는 상황인지라 한두해 집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하루는 심양에 있는 누이집에 놀러갔다. 그번 길이 그에게는 한차례 기회의 길이였다고 할수 있다. 그는 건축부문에 들어가 말단직원으로부터 출발하여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30여년을 건축업에 몰두하면서 필생의 정력을 쏟아부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처럼 지금은 심양판에서 몇십명의 직원을 거느린 건축회사의 기술자이다 사장으로 재능을 떨치고있다. 비록 대학졸업증은 없어도 엄청난 큰돈을 벌었다. 어느 친척집에 결혼잔치에서 그를 만났을 때 “넌 크게 성공했는데 건축박사가 되였겠구나” 하고 치하하니 그의 대답이 걸작이였다.
    “허참, 어떻게 대답 올릴가요? 좋게 말하자면 저는 박사가 아니라 땅우에서 뛰는 도사가 되고싶으니 말입니다.”
    롱담 반 진담 반인 그의 말에서 생각되는바가 있었다. 박사는 쎈스를 가진 사람이라면 도사는 자기 인생을 걸고 부지런히 뛰면서 자기만의 길을 찾아낸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았다. 그러데 지금은 실력보다 간판이 번듯한 사람이 선택되는 시대이다. 사회가 더 활성화되고 발전을 추동하려면 도사들을 충분히 긍정해야 순리라고 생각한다.
    백명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뛰여도 도사는 한명이나 나올가말가한다. 학위만능주의에 물젖어 편향하던 시대의 풍조도 변하기 마련인가? 요즘 돌아가는 세상사를 살펴보면 반갑게도 학력보다 실력이 더 각광받는 풍조가 이루어질 조짐이 보인다. 실천이 증명하다싶이 실력자를 채용하면 확실히 효률적이라는것이 사실이다.
    전국적으로 학위범람이 엄중해지면서부터 학위획득자는 무수히 많지만 창조적연구나 독창적인 기술개발을 한 학자는 많지 않다. 학교사정에 꽤 밝은 한 권위인사의 말에 의하면 해마다 수많은 박사생론문이 쏟아져나오지만 대다수가 여기저기서 뽑아서 조합한 가짜론문으로서 괄목할만한 연구과제는 별로 없다고 한다.
    대학은 서책지식접수를 위주로 한 학문을 닦는 곳인가? 지식이 능력으로 전환되여 실질적인 업적을 쌓을수 있도록 준비하는 곳인가? 아니면 량자가 결합된 곳인가? 로마제국에서 처음 일떠세운 대학은 신학(神学)을 배우는 곳이였다. 동양의 고전인 《사서삼경》의 하나인 《대학》의 첫머리에 “대학의 도는 명덕(明德)”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데 있고 지선(至善)의 머무름에 있다고 했다.
    그러니 대학이란 본래 학문을 탐구하는것을 통하여 인격수련을 하는 고등교육 기구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풍조는 대학을 나오면 좋은 취직자리를 얻고 고등인재대우를 받으면서 시집장가를 가는데 푸른등을 켜는것으로만 인정되고있다. 하여 많은 사람들은 대학을 구직의 선행관이라 여긴다. 과시 틀린 말은 아니로되 대학들이 원색적인 광환이 색바래지고 그 무슨 면허증이나 자격증을 발급하는 기관으로 이질화한다면 그것도 고등교육의 비애가 아닐수 없다.
   그저 직장을 얻으려면 직업전문학교에서 기술을 배워도 될수 있다. 돈도 대학생졸업생보다 더 잘 벌 기회도 있다. 간판은 낮아도 실력이 있기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저마다 대학에만 매달리지 말고 전문화의 길로 나가는것도 바람직하다. 그런데도 공부소질이 아니면서 부모의 허리가 새우등이 되도록 짜내며 굳이 대학에 가야만 하는걸가? 남들이 다 가니까, 사회에서 폼을 내며 살려니까. 그럴수 밖에 없다면 명지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본다.
    지금 외국서 도금하고 빈털터리로 돌아온 류학생, 박사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대학졸업증을 쥐고 동분서주해도 취업은 여전히 난관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장을 찾는데 눈높이를 낮추라. 그러면 희망이 보일것이다”라는 기성세대들의 충고를 자주 듣게 된다. 이것은 붙는 불에 랭수를 끼얹기가 아닌가? 자기 꿈을 펼쳐보기도전에 현실과 타협하라는 충고가 선의적일지라도 평생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것인가에 대한 고민조차 허망하다고 하는 말과 같다고 불만일것이다.
    나와 친분이 있는 한 교수는 대학생의 취업난을 가리켜 “비전문화된 인력들이 자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경쟁하는것”이라며 인력이 필요한 곳은 있지만 내실화된 인력은 적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니 애초에 자신이 하고싶은 일, 취직하고싶은 곳을 마음속에 정해놓고 그곳에서 원하는 전문화된 상품으로 자기를 부상시키는 일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취업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미 부모님의 피땀으로 얼룩진 대학졸업장을 쥐고 이대로 주저앉을수도 없지 않는가?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얼마나 아느냐보다 그 누구를 아느냐가 더 실용적이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명문대를 나와도 상황은 여의치 못하다. 개천에서 나올수도 있을 룡이 멸종직전이다. 그래서 방관자로 깨닫게 되는것은 알고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는 힘이 될수 없다는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에서 배우는것은 아는것이 힘이라는것이다. 알고있다는것은 단지 잠재적인 에너지에 불과하다. 우리가 배운 그 고정관념을 깨기전에는 늘 허둥대기 마련이다. 대학졸업증을 능사로 여기지 말고 포정해우의 도를 되새기면서 열심히 하다보면 길이 보일것이다. 격변하는 시대,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그 어떤 경쟁을 등지고 살아갈수 있을가? 경쟁하지 않고도 편안히 살수 있는 철밥통의 일자리는 아무데도 없다.
    적자생존의 현시대에 어디서든 선수교체는 피면할수 없는 관문이다. 발달국가에서는 종신직업자란 없다고 한다. 평생에 최소한 5-6번은 직장을 바꾸어야 살아갈수 있다고 한다. 실력이 없는 촌보난행이라는 설명이 되겠다. 그러니 항상 자기를 갈고 닦아서 새로운 나로 무장하지 않는다면 다음기 선수교체에서 도태를 피할수 없다.
    한번 이기기는 쉬워도 그 이김이 련속적이라는 법은 없다. 중공17기4차전원회의에서 호금도주석은 “지난날의 선진은 지금의 선진이라 할수 없고 지금의 선진을 영원한 선진이라 할수 없다. 지난날 소유했던것을 지금도 소유한것이라고 할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큰 따끔한 일침이다.
   글이 빗나가는것 같지만 《론어》의 맨 첫머리의 “학이시습(学而时习)”이란 말이 떠오른다. 자기가 모르던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고 그 배운것을 깨달음에 도달시키라는 말인즉 학(学)은 머리로 배우는것이고 습(习)은 새끼새가 자기절로 날기를 련습하다가 어느 순간에 하늘높이 날아간다는 뜻으로서 습은 몸으로 하는 배움의 완성이다. “학”만 있고 “습”이 없다면 하다못해 비자루를 가지고 땅바닥도 제대로 쓸줄 모를수 있다. “학”은 있으되 “습”이 안되니 말이다.
   생각하면 2500년전 “학습”이라는 단어를 이 세상에 내놓은 사람이 공자님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닌것 같다. 포정해우의 도와 비슷한 맥락인것 같다. 종신교육이야말로 인생에 가장 필요한 프로젝트가 아닐가싶다. 무한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학”과 “습”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여 실력자가 되여야 할것은 자명하다. 이 사바세계에서 내 살길을 찾으려면 실력자가 되는길 밖에 없다. 인생길을 힘겹게 가노라면 어느 굽이에서 뱀처럼 묵은 껍질을 벗으며 부단히 갱신해야 살아남을것이다. 
   포정해우의 이야기는 짧아도 시사하는 바는 크고 넓고 깊다. 지금은 겨울이다. 겨울이 이미 왔거니 봄인들 멀소냐? 새해에도 꿈을 안고 나래를 퍼덕이는 새 세대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구하라, 그러면 얻을것이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것이다”와 함께 진정한 실력자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12년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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