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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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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온고이지신의 진의
2016년 03월 04일 08시 05분  조회:863  추천:0  작성자: shijun
                                  온고이지신의 진의
 
                                      한 세 준
 
     
      《론어》(위정편) “옛것을 읽혀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만하다.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温故而知新,可以为师矣)”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温”은 익힐“습(习)”과 의 미가 비슷하다. 그러면 “온고이지신”이 무슨 뜻이기에 스승이 될수 있다는것일가?
    자고로 스승이라 하면 오히려 임금보다도 정신적으로 더 높은 존경의 대상이였다. 심지어 “부모나 왕의 잘못을 간언하라”라는 말은 고전에 있지만 스승이 잘못이 있을 때 어떻게 하라는 말은 본적이 없다. 그만큼 “온고이지신”은 단순히 옛글을 깨득하여 새로운 글을 아는 의미만이 아니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
    조선의 정조대왕을 사례로 들어보자. 하루는 정조가 “온고이지신”이란 무슨 말인가고 물으니 리유경이 “옛글을 익혀 새글을 아는것이옵니다.”라고 대답을 올렸다. 그러자 정조가 “그렇지 않다. 초학자들은 이렇게 보는 페단이 많은데 대개 옛글을 익히면 그 가운데서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여 자기가 몰랐던 새로운것을 더 잘 알게 된다는것을 말한다.” 정조가 시독관 리유경과 경연을 하다가 주고받은 대화이다. 경연이란 임금이 학식이 높은 신하와 함께 경서를 강독하 는 행사를 이르는 말이다.
    당시 정조는 즉위한지 일년이 채 안되는 때였으니 어린시절부터 책과 더불어 살 아왔던 정조의 학문이 얼마나 연박했는가를 짐작할수 있다. 그러면 옛글을 통해 새로 운것을 알려면 어떻게 글을 읽어야 할가?《예기》에 이런 글이 있다. “단순히 외워서 장악한 학문으로는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기엔 부족하다. 그냥 외우기만 한다는것은 생각보지 않는다는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옛날 우리가 공부하던 방식을 돌이켜보면 가히 깨침이 크다고 말할수 있겠다.
    례를 들어 력사공부를 하면서 력사사실의 인과관계라든가 상황, 사건의 개연성을 생각하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년도만 죽어라고 외워대던 일이 새삼스럽다. 선생님들도 력사지식에서 년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 시험에도 잘 내는 문제이니 꼭 잘 외워 야 한다고 루루이 강조했다. 선생님의 말대로 사건의 년도만 기억하기에 애쓰다보니 력사사실의 인과관계 등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분석연구할 여념이 있었겠는가?
    력사는 왜 배워야 하는가? 력사는 현시대의 거울이라 할진대 력사공부를 하면서 통찰능력과 미래예측능력을 얻을수 없던것은 당연하다. 시험이 끝나고 나서 곧 희미 한 기억의 페지로 남으니 어찌 새로운것을 얻을수 있으며 그것을 응용할줄도 모르니 어찌 남을 가르칠수 있겠느가?그러니 무엇을 배웠다면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거쳐 완전하게 터득하여 자기것으로 만들라는 말이다.
    유태인의 지혜의 총화라고 할수 있는 “탈무드”라는 책에도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 하면서 “책을 읽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당나귀가 책을 잔뜩 싣고 가는것과 다 를바 없다”고 제시하고있다. 우리 말로 그저 공을기같은 “글뒤주”가 되지 말라는 뜻 이다. 상술한 례문은 공부나 독서함에서 지식을 습득하는것과 스스로 생각하기가 병진해야 한다는것을 깨우쳐주고있다.
    두뇌에 많은 지식을 축적하고 그 지식을 운용하여 비판하고 표현하면서 경험함으로써 나만의것으로 변형시켜야만 실제 생활에 유용한 지식이 되는바 곧 “온고이지 신” 이 되는것이다. 달리 말하면 새로운것을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사고방법이 류추 라는것이다.
    인류의 력사에서 최고의 현자로 꼽히는 솔로몬왕은 “3천여년전에 이미 있었던것 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태양아래 새것이란 없나니…”라 고 설파하였다. 그러니 완전한 창조는 신만이 할수 있다는 고백인것같다. 주자와 그의 제자들이 편찬한《근사록(近思录)》의 핵심원리라 할수 있는“이류이추(以类而推)” 라는 말도 “가까운것을 가지고 미루어 생각하는것” 류추의 사유방식을 론한것이다.
    그러나 이미 있던것에서 새로운것을 생각해내기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며 그만 큼 실천적으로 잘 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혁신적이라고 하면 “무”의 상태에서 “유”를 만드는 창신을 떠올리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아니면 모든 창조는 재창조라 하였겠는가!대화가 비카소는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하였는데 과시 계시성적인 금언이라 할것이다.
    21세기에 들어와서 가장 창의적인 기업인으로 칭송받는 스티브 잡스는 이 말을 인용하여 “우리는 언제나 위대한 아이디어를 뻔뻔스럽게 훔쳐왔다”라고 말했다. 1979년 어느 날, 제록스연구소를 창관할 때 “그리픽 사용자환경”기술을 보고 이것을 베킨토시에 적용한 사례를 두고 한 말이다. 아이폰도 기실은 기존의 스마트폰에 남들 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기능을 융합시켜 만들어낸 재창조품이다.
    남들이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력사적인 발견을 한 과학자들과 음악, 미술, 문학 등의 모든 예술분야에서도 류추하지 않았더면 탄생하지 못할 작품들이 많다. 다 아는 얘기지만 뉴톤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법칙을 발견한것도, 개미가 음식물을  물고 가는 모습에서 상처봉합기술이 나왔고 옷에 붙은 엉컹퀴가시를 보고 찍찍이라 불리우는 벨크로가 만들어졌다. 발명가 조르주 드 메스트랄(George De Mestral)이 프랑스 고어로 벨벳(velvet)에 해당하는 블루아르(velours)와 걸이(hook)에 해당하는 크로셰(crochet)를 결합하여 벨크로(Velcro)라고 명명했다.  
    쉐익스피어의《로미오와 쥴리에트》,《베니스의 상인》등 만세유전의 명작들도 실은 다른 작품들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했다고 전해지고있다. 또 옛날사람들은 속이 빈 나무를 보고 배를 만들었으며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중의 하나인 문자도 새의 발자국을 본떠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렇듯 인류력사에서 획시대적인 발명창조는 거 의 류추에 뛰여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창조적파괴전략”으로 유명해진 미국의 요세프교수는 “혁신은 세상에 없었더 새 로운것을 만드는것이 아니라 단지 자원의 결합방식을 바꾸거나 새롭게 결합해 그 가 치를 높여주는 활동”이라고 하면서 새로운 결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티브 잡스도 “창조성이란 무엇인가를 련결하는것에 불과하다. 창조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아무것 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바라볼뿐이다. 보노라면 명확해진다. 과거의 경험을 련 결해 새로운것을 통합할수 있기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현시대는 혁신적인 생각과 창의력을 가진 개인과 기업이 성공하는 우승렬패의 시대이다. 남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것을 생각해 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사람 만이 남다른 결과를 낳아 도태의 위기에서 벗어날수 있다. 즉 적자생존인 이 시대인것이다. 그러나 이런 창의력이 완전이 무중생유로 새것을 창안해내는것은 아니다. 세상에 아예 없었던것,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것을 찾아헤맨다면 그냥 삽질만 하다가 한방울의 물도 보지 못하는 격으로 되기 십상이다.
    말하자면 어떤 신생사물을 보았을 때 “저것이 무엇인가?”하는 단편적이고 피상적 인상에 그치지 말고 “저것이 또 무엇이 될수 있을가?”하는 창의적인 생각에 몰입한다 면 새로운것을 만들어낼수 있다. 이미 존재하는것들을 서로 련계시켜 생각하는것을 미래지향적인 구상이라 말해도 틀리지는 않을것이다. 이는 인류의 발명, 창조의 력사 가 증명하고있다. 옛것과 새것, 기술과 인문학, 제품과 감성 그리고 다양한 학문들 등 판이하게 다른것들을 합쳐서 새로운것을 새로 조합해서 새것이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창의력이 출중한 사람들이며 인류의 고기술발달의 선두주자로 된다.
    세상의 다양한 령역에 숨어있는 가능과 목적이라는 실제를 찾아낼 때 우리는 새로운 풍경선을 볼수 있을것이다. “태양아래 새것이란 없나니…”라고 단언한 솔로몬왕 의 말은 진리성적인 제시이다. 그러고 보면 공자의 “온고이지신”의 교육사상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만고절창이라 하겠다. 새것은 그저 새것이라고만 여기며 무작정 없는것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젊은세대들은 심사숙고해봐야 하리라.
 
 
                            2013년 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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