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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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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풀며 산다는 것
2018년 03월 31일 08시 30분  조회:569  추천:0  작성자: shijun
                                            베풀며 산다는것
 
                                                 한 세 준
 
    사람이 사람인 이상 누구나 이런저런 욕망을 안고 산다. 도를 터 득한 성인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면 모를가 욕망의 늪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문제는 각자가 욕망을 절 제하고 안으로 해소하는 방법에 있다. 오직 만족할줄 아는 만족만이 진정한 만족이라 할 것이다.
    한 시 기,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운 장기려(张起吕1911-1995) 박사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해방후 조선의 제1호 박사였는 데 “6.25전쟁” 시기 의상의 량심으로 인민군과 국방군 부상자들을 차별하지 않고 성심성의로 수술치료를 해주었는데 그때는 대역부도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여 그는 창황중 신변에 있던 막내아들만 데리고 철퇴하는 국국의 트럭에 올라38선을 넘어야 했다. 그리하여 부인을 비롯한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이북에 남게 되였다.
    그는 한국 부산에 정착한후《록십자병원》을 꾸리여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의 병을 무료로 혹은 싼값으로 치료하며 봉사하면서 의사의 일생을 마쳤다.
    연변의 김학철 작가님도 장박사가 평양 특별병원에서 사업할 때 세차례나 장박사에게서 수술치료를 받았는데 자기이 회억록에서 그 분이 성자(圣者)중에 성자라고 칭소송하면서 그이 성품을 너무나 잘 안다고 썼다. 장박는 여느 월남자들과 달리 끝내 재혼하지 않고 아들 하나를 믿고 40여년을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부산바닥에서 명성높은 병원을 경영하면서도 자기 소유로 된 집 한채도 없이 병원 옥상에 자그마한 방을 만들어놓고 독수공방하였 다고 한다. 누군가 안쓰러운 마음으로 어떻게 집 한 칸도 없이 그렇 게 사느냐고 묻자 장박사는 “나는 집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록십자 병원이 나의 집이요 서울가면 자식놈의 집이 곧 내 집이며 친구집에 갔을 때는 친구집이 곧 내 집이다. 어딜 가나 거기가 내 집인 데 어째서 나같은 집부자를 두고 집없는 사람이라 하는지 모르겠다.”라 고 대답하였단다.
    당시 작가 리광수가 “당신은 바보가 아니면 성자이다”라고 했듯이 그는 물욕이 횡행하는 이 시대에 진정한 바보이지 성자였다. 장기려 박사야말로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베풀면서 자신은 집한칸 없이 늘 즐겁게 살다가 간 만족할줄 아는 사람, 만족을 몸소 실천한 성자 같은 사람이였다.
    말이 난 김에 나눔의 미학을 몸소 해석하며 반생을 행복하게 살았 다는 다른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세상 사람들이 거의 다 알 고있는 록펠러는 서른살에 백만장자가 되였고 만흔살에는 세계 90% 의 석유를 지배하는 세계의 석유대왕으로 미국의 최고갑부가 되였다. 그런데 쉰다섯살에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당시 그는 눈앞이 캄 캄해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만큼 정신적 타격은 치명적이였던 것이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병원의 로비를 무심히 바라보다가 거기에  씌여있는 “베푸는 자는 행복하다.”는 글귀를 읽은 순간 뒤통수를 호 되게 얻어맞은 느낌이였다고 했다. 그때 병원의 한 구석쪽에서 소란 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록펠러가 찾아가보니 치료비가 없어 주원치 료를 할 수 없다는 병원측과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 볼테니 먼저 주 원부터 시켜달라는 환자의 보호자가 말다툼하고 있었다. 환자인 녀자 애는 한쪽 구석에서 울고 있었다.
    그 녀자애를 보는 순간, 어떤 깨달음을 얻은 록펠러는 즉시 비서를 불러 녀자애의 주원치료비를 대신 지불해 주라고 지시하면서 절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엄명하였다. 얼마후 병원을 다시 찾았을 때 건강이 회복된 녀자애의 모습을 보고 록펠러는 자기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였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기적이 나나탔다.그 자신의 암병도 회복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때로부터 록펠러는 여생을 나누고 베푸는 삶을 영위하였다. 그렇게 널리 덕을 쌓은 덕분인지 아흔여덟살까지 복을 누리며 행복하 게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인생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눔의 삶이 이렇게 행복할줄은 미처 몰랐다. 내 인생에서 나머지 43년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였다.”
    어찌보면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또 다른 욕망으로 만족시키려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환언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자기 마음속의 그릇에 채워보려고 아득바득한다. 행복한 삶을 영위함에서 돈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태도요 잊혀진 착함이다.
    록펠로의 인생총화에서 우리는 그의 고상한 가치관과 성숙한 마 음에서 나오는 도덕적 완성과 신조를 가슴에 새기게 된다. 베풀며 사 는 착한 성정은 결코 유전되는 것도 아니고 저절로 생기는 자질도 아니묘 기술이나 특별한 지식을 얻는 것처럼 계발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진정 사심을 죽여가며 베푸는 삶을 위해서 의도적인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고달픈 인생은 그로써 풍요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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