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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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장편소설 《진허》(7)
2013년 10월 12일 14시 24분  조회:1194  추천:1  작성자: 김극민
7
 
철벅, 철벅, 철벅…
이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나는 왜 네발걸음을 치고있는가. 내가 짐승으로 되였단 말인가.

앞에서 동그스름한것들이 느릿느릿 움직이는것 같았고 주위에서는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뒤쪽에서 웬 아낙네의 거치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체호총각! 논김을 매오? 나그네 말죽 먹이오? 돌피는 그냥 세워두구 물장구만 치구 나가문 어떡하오?”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는 정신을 차렸다. 둥그스름한것들은 녀자들의 궁둥이였고 그도 엉뎅이를 쳐들고 논김을 매고있는중이였다.

돌이 에미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옆줄을 타고 나오면서 그가 남긴 돌피까지 뽑아주다가 참다 못해 소리를 지른 모양이였다.

“아직두 돌피를 분간 못하겠소? 돌피는 잎이 노르스름하고 줄기두 약하다니까… 이것 봐, 또 남겼네.”

돌이 에미는 그의 발치에 손을 집어넣어 벼포기사이를 박박 훑었다. 돌피며 가래풀을 한웅큼 걷어내서는 돌돌 뭉쳐서 논이랑에 묻고 발로 꿍꿍 밟으며 시범을 보여주었다.

“사내는 아무리 약해두 여자보다 한근 두냥 더 무거운데… 포기사이를 좀 와락와락 뚜지오. 그 힘 뒀다가 어디다 쓰려구…”

돌이 에미는 한바탕 푸념을 늘어놓고는 철벅거리면서 앞으로 나갔다. 개구리들이 그녀의 기세에 놀라 벼포기사이로 황급히 도망친다.
돌피를 분간 못해서가 아니였다. 정신이 왕청같은데로 가있은것 같았다. 그것도 잠간사이가 아니고 오래도록 허공에서 떠돌다가 문득 논판에 내리꽂힌것 같았다. 내가 꿈을 꾸었을가. 꿈이라니, 해볕이 지금 목덜미와 잔등을 지독하게 내리지지고있는데… 논판에는 두엄냄새와 함께 금방 돌이 에미가 남기고 간 비릿한 체취마저 감돌고있지 않는가.

그와 서너줄 간격을 두고 한 젊은이가 안경을 번뜩이며 철벅거리고있었다. 집체호의 동원이였다. 녀석이 낄낄거리기는… 내가 돌이 에미한테 꾸중당하는것이 그렇게도 깨고소하더냐?

정신이 완전히 돌아왔다. 지금은 1966년 7월이야. 지난해 연변1중을 졸업하고 대학시험에서 락방한 14명의 동창생들과 함께 농촌으로 내려왔지. 녀자 아홉은 정지간에 들고 남자 셋은 옆방에 들고 나와 저 자식이 뒤방에 들었지…

그는 동원이를 집체호에 내려와서부터 알게 되였다. 학교때 면목은 있었지만 한학급이 아니여서 서로 말을 건넨적은 없었던것이다. 한방에 자면서도 그는 동원이와 친해질수가 없었다. 녀석은 리과지망생, 그는 미술지망생, 취향이 다른 원인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녀석은 자기의 우월한 가정조건을 턱대고 그를 은근히 천시하는것 같았다. 녀석의 아버지는 주정부의 국장급 간부였고 어머니는 어느 소학교의 부교장이였다. 지난해 년말, 동원의 부모를 비롯하여 지식청년 학부모들이 집체호로 위문을 왔는데 유독 그의 어머니만 오지 않았다. 여러 학부모들이 함께 가자고 설복했으나 귀가 먹어 아들한테 망신만 줄거라면서 한사코 거절했다는것이다. 동원의 부모는 지식청년들앞에서 좋은 말씀도 많이 하셨다. 농촌에 내려와 로동인민의 감정을 수립하는것은 지식청년의 대방향이고 시대의 요구라는둥 동무들에게는 무한한 전도가 펼쳐져있다는둥…

금년초에 동원이와 처음 싸웠다. 녀석은 대학에 가려고 교과서까지 가지고 내려왔는데 항상 밤늦게까지 수학문제를 푸느라고 전등을 끄지 않고있었다. 그날 밤에는 너무도 잠이 오지 않아 전등을 좀 끄라고 했더니 녀석이 들은척만척 응대도 하지 않는것이였다. 그래서 말다툼이 시작되고 드디여 이불을 벗어내치고 서로 두들겨패기 시작했다. 팬티바람으로 알몸을 짝짝 두드리는 소리에 옆방의 남자들도, 정주간의 녀자들도 모두 잠을 깼다. 사이문이 활짝 열렸다. 집체호 호장 복순이가 모두 옷들을 입고 정주간에 모이라고 했다. 한밤중에 생활회의가 열렸다. 두 싸움군은 동창생들의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동원이한테는 개인명리주의사상이 농후하다고 했고 그는 자유산만하고 감정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결함이 있다고 지적받았다. 아무튼 비판과 자기비판을 통하여 그 자리에서 화해를 하긴 했지만…

그는 철벅거리면서 동원이를 건너다보았다. 녀석의 볼따귀에서 가무스름한 털이 자라고있음을 알아볼수 있었다. 아직 보슴털수준이지만 장차 왕성하게 자라날것 같았다. 자기의 턱이나 코밑에서는 본격적으로 수염이 자라고있지만 구레나룻만은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슬그머니 질투심이 생겼다. 구레나룻은 나한테서 나야 하는데 왜 네놈의 볼따귀에서 자라는거야. 예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녀석, 아무튼 너한테서 부러운것은 딱 한가지, 구레나룻뿐이야.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김대장! 담배쉼이나 하기요.”

그는 허리를 폈다. 앞논배미에서 김대장이 네발걸음을 치고 그뒤로 아낙네들이 줄줄이 따르고있었다. 똑 마치 덩치 큰 장닭이 암탉무리를 거느리고 모이를 헤집는 장면을 방불케 했다. 오늘은 초벌김을 매는 날, 우사마당에서 퇴비를 만드는 장년들을 내놓고는 생산대로동력이 총동원되였다. 집체호에서도 취사원과 유치원 교원 영희를 내놓고 모두 논판에 나왔다.

저마다 자기앞의 김을 마저 매고는 논뚝에 올라서서 버드나무숲으로 향했다.

아낙네들이 모인 곳은 언제나 장마당이다. 김대장이 또 무슨 우스운 소리를 줴쳤는지 아낙네들이 와그르르 웃음보를 터뜨렸다. 놀란 물새 한쌍이 버드나무숲에서 솟아오른다. 복순이가 한손에 《모주석어록》을 들고 다른 한손에 만년필을 들고 청년들앞에 나섰다. 휴식시간을 리용하여 정치학습을 진행하려는것이다.

복순이는 고중때 그와 한학급동창이였다. 복순이는 부학급장, 공청단지부 선전위원, 학생회 간부였지만 그는 아무것도 아니였다. 그의 학급에서는 정치사상품질이 좋고 공부 잘하는 애들이 대개 앞줄에 앉았고 어수선한 애들이 뒤켠에 앉았다. 가정출신에 문제가 있거나 2년 련속 락제를 한 녀석, 시인이 되겠다고 맑스머리를 하고 다니는 녀석… 그도 이러루한 괴짜들이 몰켜있는 뒤켠에 속했다. 그나마 복순이한테 요긴하게 보일수 있었던것은 미술재능때문이였다. 뢰봉동지를 따라배우는 열조가 일어났을 때 그는 복순이의 지시에 따라 벽보란에 뢰봉동지의 초상화를 그리고 모범사적을 적었는데 벽보를 잘 꾸렸다고 복순이는 학교지도부로부터 뢰봉동지를 따라배우는 선진인물로 표창까지 받았다. 그야말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호인(胡人)이 받는 격이였다. 아무튼 복순이는 령도간부의 소질을 갖춘 애였다. 농촌에 내려온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인민공사모택동사상학습열성분자”로 당선되였고 예비공산당원으로 되였다. 그는 복순이를 존중했지만 복순이처럼 되고싶은 욕망은 추호도 없었다. 그의 인생목표는 오로지 예술에 있었던것이다…

복순이의 강연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몸은 청년들과 함께 있었으나 정신은 어느덧 몸을 떠나고있었다.

오, 저 김대장을 보라. 진흙이 게발린 다리가 마치 무쇠기둥 같구나. 온몸에 울뚝불뚝 삐여진 근육덩어리들은 미껠란젤로의 조각상을 련상시키지 않는가. 시내에서 살면서 언제 저렇듯 발달한 육체를 본적이 있었던가. 내가 본 중년사나이들은 대부분 왜소하고 허약한 사람들이였지…

아낙네들의 모습도 이채롭게 느껴졌다. 저마다 흰 저고리 검정치마 차림이였다. 허리끈을 동여 거치장스러운 옷고름을 끼워넣었는데 논판에서 작업하려면 그렇게밖에 할수 없을것 같았다. 하얀 머리수건밑의 얼굴들은 까무잡잡해도 저마다 웃음꽃이 만발했다. 떠들썩하는 아낙네들중에서도 돌이 에미의 목소리가 유난히 높다. 돌이 에미는 젖가슴이 높고 엉뎅이도 굉장히 큰 체격이다. 애도 많이 낳았는데 그가운데 한 녀석은 신통히도 아래마을 수리위원을 닮아 코가 우뚝해서 동네남정들은 그 애만 보면 빙글거리군 했다. 돌이 에미의 사생활에 비록 애매한 사연이 있는듯했으나 성미가 걸걸하고 집체일에 몸을 아끼지 않아 오히려 “녀장부”로 존대를 받고있었다.
어느덧 정치학습이 끝났다.

해란강이 내다보이는 버드나무 숲가에서 동네처녀들의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해란강 푸른 물이 논판을 적시고
모아산기슭에 사과배 열리는
에헤야 흥흥흥흥 데헤야 흥흥흥흥
내 고향 좋구좋네
 
처녀애들이 제멋대로 부르는 노래소리가 동뜨게도 그의 서정을 격발시켰다. 아, 근로하고 소박한 우리 민족… 아, 아름다운 내 고향 연변이여… 지나친 격동으로 하여 그는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어둠속에서 난데없는 경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밤안개에 휩싸인 과수원, 달빛이 차분히 내려앉은 초가이영들, 우중충한 담배건조실 그리고 저 멀리 개구리 울음소리 요란하게 들려오는 무연한 논벌…

곁에서 처녀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고있었다. 그녀가 누구라는것을 알아보는 순간 그는 머리칼이 쭈뼛이 일어섰다.
“앗! 영희…”

“어머나 깜짝이야. 너 왜 이렇게 놀라니? 밤에 과수원에 올라오니 좀 으스스하긴 하다. 안 그래?”
“아니, 넌 할머니가 다됐구 몇해전에 심장병으루 죽지 않았니? 난 동창생들과 같이 너의 장례식에두 갔다왔는데…”
“어마나! 무서운 소릴…”

처녀가 와뜰 놀라면서 그의 곁에 바싹 다가앉았다.

“이 ‘19세기’야, 무슨 끔찍한 소리야? 내가 왜 죽었어? 그리구 징그럽게 할머니는 또 무슨 소리야?”
처녀가 그의 손등을 힘껏 꼬집었다.
“아가갸!”
손등이 아파났다. 그제야 제정신이 좀 드는듯했다.
“이상하다. 너는 할머니가 다됐구 나두 오륙십 되는 늙은이가 되였는데 좀전에 어느 머나먼 나라 산중오두막에서 신선인지 귀신인지를 만나가지구…”
“얘, 끔찍한 소릴 해서 사람 좀 놀래우지 말아라. 심장이 막 뛴다.”
“젠장, 모르겠다. 어느게 현실이구 어느게 환상인지.”
“네가 학교때부터 예술에 미쳐있었으니까 어처구니없는 환상이 생기는거야… 집체호애들이 별명 한가지는 잘 지었어. ‘19세기’라구, 호호호…”
“간나새끼들이 내앞에서만 별명을 불러봐. 아가리를 찢어놓지 않는가구.”
“어금마, 입두 지저분하네.”
“지저분하다니? 너 지금 빈하중농을 모욕하는거니?”
“네가 무슨 빈하중농이야? 재교육대상이지.”
“난 빈하중농한테서 재교육을 충분히 받았어. 술담배두 배우구 사투리두 배우구…”
“빈하중농한테서 좋은 품성을 따라배우라 했지 나쁜 점을 따라배우라 했니?”
“술담배두 모르구 사투리두 모르구 어떻게 빈하중농의 감정을 수립하며 어떻게 빈하중농과 한덩어리로 될수 있니?”

그는 자기가 그 누구보다 빈하중농과 한덩어리로 되는데 앞장에 섰다고 자부하고있었다. 집체호에 갓 내려왔을 때에는 거무틱틱하고 한결같이 상말을 쓰는 로동인민에게 습관이 되지 않아 소자산계급지식분자의 틀거지를 쉽게 벗어버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번은 야간탈곡을 하면서 우사숙직실에서 담배쉼을 하게 되였는데 녀자들이 끼우지 않아 그런지 장년들의 입에서 걸직한 육담들이 거침없이 쏟아져나왔다. 그가 구석쪽에 잠자코 앉아있는데 김대장이 문득 그한테 말을 걸었다. “너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왜 그렇게 점잖은체하고있어? 네놈의 그것두 진작 소매를 걷었겠구나…” 그가 “일도 안하는데 소매는 왜 걷겠습니까”라고 했더니 장년들이 와그르르 폭소를 터뜨리는것이였다. 누군가 소리질렀다. 바지를 벗겨! 고중생의 소매 걷은 꼴 좀 보자구. 장년들이 히히닥거리며 그한테 달려들었다. 죽을힘을 다해 발악했지만 끝내 바지를 벗기우고말았다. 분하고 억울했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장년들이 이번에는 김대장을 복판에 몰아넣었다. 김대장이 제아무리 힘장사라도 여러 사람의 힘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그는 보복적인 심리로 김대장의 바지 벗기는 행동에 동참했고 김대장의 그것이 흉물스럽게 소매를 걷은 꼴까지 들여다보았다.

아무튼 그는 바지를 한번 벗기우면서 자신한테서 가면 비슷한것까지 벗겨지는듯했으며 그후부터는 거리낌없이 무지스러운 장난에 끼여들고 막말을 내뱉기도 했던것이다.

“동네청년들이 너를 ‘김삿갓’이라구 한다더구나. 무슨 소릴 했길래 그런 별명을 얻었니? 아무튼 별명이 많아 좋겠다. 집체호에서는 ‘19세기’, 동네에서는 ‘김삿갓’…”

“담배쉼 할 때 자꾸 옛말을 해달라구 해서 김삿갓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지.”

“너 말 좀 주의해라. 아무 말이나 하지 말구… 동원이를 봐. 쓸데없는 말 한마디 하는가구…”

“얘, 동네에선 그 녀석을 ‘영화배우’라구 하더라. 너무 표준어를 써서… 그나저나 너 동원이를 사랑하는게 아니야?”

“‘사랑’이라니? 왜 용속하게 ‘사랑’이란 말을 쓰니? 징그러워.”

“잘못했다. 다시 말하마. 너 동원이를 좋아하니? 안하니? 너희들이 한학급때부터 감정이 있었다던데?”

“누가 그따위 소릴 하던? 그 애는 인생목표가 ‘청화대학’, ‘북경대학’이야. 지난해 대학시험에 합격하구두 일반대학이라구 안 갔지 뭐야. 흥, 누가 그렇게 꼬장꼬장한 애를 좋아한다구…”

녀자의 마음이 동원이보다 자기한테 쏠리고있음을 확인하자 그는 가슴이 달짝지근해났다. 그래 나한테 전혀 호감이 없다면 여기까지 올라오지 않았을거야… 하지만 성급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수는 없었다. 괜히 “용속”하게 보였다간 끝장이니까.

“너하구 전도문제를 토론하려구 여기로 오자구 한거야. 우리가 농촌에 내려온지 거의 1년이 되지 않니? 교장선생님은 2년간만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으면 대학에 추천받을거라구 했으니까 명년 이때엔 우리도 대학생이 될거란 말이야. 넌 어느 대학을 지망하니?”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내 리상은 아나운서야.”

“난 미술대학이다. ‘중앙미술학원’ 아니면 ‘로신미술학원’…”

“너 지난해 신체검사에서 미끄러지지 않았어?”

“오른쪽눈이 시력이 좀 약해. 어두운 집안에서 책을 너무 봐서 그렇게 된거야. 2년간 로동단련을 하면 그만한것쯤이야 봐주겠지. 미술실력은 얼마든지 자신있어.”

“네 실력이사 누구나 인정하지. 고중때는 미술과목두 없었는데 넌 어디서 미술을 배웠니?”

“문화관 정선생한테서… 그분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분이야.”

“그런데 너 지망을 바꾸는게 어때? 예술이 무슨 전도가 있다구.”

“왜 전도가 없다구 그러니? 예술만큼 신성한 작업이 어디 있다구.”

“이것 봐, 그러니까 너를 ‘19세기’라구 하는거야. 지금은 누가 예술을 한다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보인단 말이야. 락후하고 정파답지 못하구…”

“쳇, 그건 무지막지한 사람들의 편견이야. 레닌동지께서는 ‘예술이 없는 사회는 도적의 사회’라구 말씀하셨어… 아무튼 누가 뭐라든 난 기어코 미술가로 되겠어… 그건 내 어렸을 때부터 품은 꿈이야. 그런 꿈이 없었더라면… 젠장! 너두 내 가정처지를 알겠지? 아버지는 일찍 세상 뜨구 어머니는 예수쟁이, 귀머거리에 변소청소부……”

“알구있어…”

“생활곤난은 둘째였어. 그때나 이때나 배급세월인데 남들이 잘살면 우리보다 얼마나 더 잘살았겠니? 견딜수 없는게 동네사람들의 천대와 멸시였어… 어느땐가 새벽녘에 우리 집 출입문에 구정물을 퍼붓고 달아나는 아낙네도 있었단다… 그 일은 죽을 때까지 잊을것 같지 않아… 어머니도 나도 그 누구한테 털끝만치도 잘못한 일이 없건마는…”

그는 새삼스레 솟구치는 비분을 이기지 못해 이를 악물었다. 녀자가 그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대였다. 그는 겨우 자신을 억제하고 입을 열었다.

“아마 그래서 내가 고중때 각별히 문학에 미쳐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두 학교때 문학을 좋아했어.”

“짐작은 했다.”

“어떻게 알아?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는데.”

“어딘가 마음이 통하는데가 있으니까…”

“글쎄, 나두 그래.”

“나보다 네가 지망을 바꿨으면 좋겠다. 예술학교를 가든지.”

“왜?”

“넌 춤두 잘 추구 노래두 잘 부르구… 그래서 유치원선생질 하는게 아니야? 얼굴두 집체호에서 제일 예쁘겠다…”
“망측한 소릴…”

녀자가 살짝 그의 손등을 꼬집었다. 방글방글 웃는것을 보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였다.

“영희, 너 나를 좋아하니?”

“응.”

“‘19세기’인데두?”

“응.”

“정말?”
“정말이야. 넌 나를 좋아하니?”
“응, 아니… 사랑한다.”

녀자가 다시는 “사랑”이란 말을 징그러워하지 않았다. 불현듯 야릇한 충동이 치밀었다. 꼭 껴안고 입이나 맞출가… 키스란 얼마나 짜릿한것일가… 서로 사랑한다는것, 아니, 좋아한다는것을 확인했는데 좀 안아보면 어떻단 말인가… 아니다. 참아야 한다. 둘이 련애를 한다는 사실이 탄로나면 집체호애들은 눈이 뒤집혀질것이다. 아니, 저것들이 제정신이야? 전도문제를 내젖히구 용속하게 련애부터 하다니. 섶을 지고 불구뎅이에 뛰여드는 저따위 멍청이들이 어디 있어… 조소… 멸시… 그리고 “병을 고쳐 사람을 구하는” 정치사상교육이 잇달을것이다.

그는 머리를 쳐들었다. 나무가지사이에 쪼각달이 걸려있었다. 시가 저절로 입밖으로 흘러나왔다.
 
한백옥 다듬어서 직녀빗 뉘 만든고
견우가 없을진대 단장은 해 무엇하리
허공에 던졌더니 반달인가 하노라.
 
녀자가 경이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누구의 시야?”
“황진이… 상상력이 얼마나 대단하니?”

“네가 더 대단해. 그림두 잘 그리구 시두 잘 읊구… 네가 금방 시를 읊을 때 보니까 두눈에서 광채가 막… 뭐라 할가. 나두 가슴이 찌르르하면서 감동된단 말이야… 아차, 이러다가 나까지 ‘19세기’가 되문 어떡해? 둘중의 하나는 정신을 차려야지. 얘, 애들이 의심하겠다. 어서 내려가자.”

“뭐가 무서워. 우리가 뭐 나쁜짓이라두 했니?”

“나쁜짓은 하지 않았더라두 애들의 눈치가 얼마나 빠르다구… 네가 정치사상발전에 뒤전이라구 말하는 애들이 있어.”

“젠장, 어느 간나새끼 그렇게 말하더니? 자원해서 농촌에 내려왔으문 그게 정치사상각오가 높은 표현이지 뭐야? 선전화두 그리구 표어두 쓰구 환등선전두 하구… 농촌의 문화사업에 나만큼 공로를 세운게 누구야? 간나새끼들이 아가리만 찢어놔선 안되겠어. 가랭이까지… 아가갸!”

녀자가 또 그의 손등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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