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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소사전] - "팝 아트"란?...
2017년 01월 29일 16시 25분  조회:3887  추천:0  작성자: 죽림

요약 팝 아트라는 용어는 영국의 미술 평론가 로렌스 앨러웨이가 처음 사용하면서 유래했으며 영국의 리처드 해밀턴이 선구자이다. 
팝 아트는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다. 추상표현주의가 추상적·개인적인 작품을 추구했다면 팝 아트는 보다 객관적·보편성을 중요시했다. 팝 아트는 순수예술이 주장하는 우월성과 전위미술의 허식을 모두 거부함으로써 전통을 파괴했고 현대생활에 강한 충격을 주는 대중문화의 모든 현상을 가리지 않고 특징적으로 묘사했다. 
재스퍼 존스, 로버트 로젠버그 등이 큰 영향을 끼쳤으며, 유명한 작가들로는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클레이즈 올덴버그, 데이비드 호크니, 피터 블레이크 등이 있다. 
팝 아트는 20세기 중반 매스 미디어와 고도의 산업사회에 적합한 대표적인 미술양식으로서 인정을 받았다.

 
팝 아트(Pop art)
팝 아트(Pop art)

팝 아트라는 명칭은 미술 평론가 로렌스 앨러웨이가 이 경향의 회화와 조각의 서술적인 표현양식에 대하여 언급한 데서 유래했다.

영국 팝 아트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인 리처드 해밀턴에 의하면 팝 아트는 "통속적이고, 일시적이고, 소비적이고, 값싸고, 대량생산적이며, 재치 있고, 관능적이고, 선동적이고, 활기차고, 대기업적인…… 미술 양식"이다. 특히 미국의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클레이즈 올덴버그, 톰 웨셀먼, 제임스 로젠퀴스트, 로버트 인디애나, 영국의 데이비드 호크니, 피터 블레이크 같은 팝 미술가들은 작품에서 현대생활에 강한 충격을 주는 대중문화의 모든 현상을 가리지 않고 특징적으로 묘사했다.

그들은 긍정도 부정도 담지 않고 노골적·직접적으로, 또한 그림 자체를 있게 한 매스 미디어에서 사용된 정확한 상업적 기법을 수단으로 도상학적인 측면(텔레비전이나 만화책, 영화, 잡지 및 모든 형태의 광고에서 고안됨)을 뚜렷하게 객관적으로 드러냈다. 미국과 유럽에서 매우 개인적인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의 물결이 가라앉을 무렵 팝 아트는 보다 객관적·보편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미술 양식으로 되돌아가고자 했다.

이와 더불어 과거의 순수예술이 주장하는 우월성과 당대의 전위미술에서 볼 수 있는 허식을 모두 거부함으로써 전통을 파괴했다. 팝 아트는 특정한 사회적 상황을 충실하게 반영했으며 매스 미디어에 의해서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이미지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고 이용했기 때문에 문화적인 대사건이 되었다. 통속적·선정적·반미학적인 대사건이 농담으로 평가되어왔지만, 생활에 직접 반응하는 미술, 즉 전문가와 훈련받지 않은 관람자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민주적·비차별적인 미술로서 평가되었다.

팝 아트는 당대의 파리풍 미술에서 볼 수 있는 진지함과 좀더 넓게는 유럽에 전쟁을 몰고온 정치적·문화적 상황을 조롱한 1920년대의 허무주의 운동인 다다이즘의 후예로 볼 수 있다.

당대의 대량생산물을 찬양함으로써 미술과 생활의 간격을 좁히려고 한 미국 다다이즘의 대표자인 마르셀 뒤샹은 팝 아트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팝 아트에 영향을 준 다른 미술가로는 스튜어트 데이비스, 제라드 머피, 페르낭 레제 등이 있는데 이들은 기계공업시대의 정밀하고 대량생산적·상업적인 물건을 그렸다.

직접적인 선조로는 1950년대에 비록 회화적이고 표현적인 기법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깃발과 맥주깡통 등을 그린 미국의 미술가 재스퍼 존스, 래리 리버스, 로버트 로젠버그 등이 있다.

특히 인상적인 작품으로는 상업 인쇄물에서 사용하는 색점에 이르기까지 연속만화를 충실하게 복제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과 수프 깡통의 상표와 비누 상자, 나란히 배열된 청량음료병을 있는 그대로 정밀하게 그리거나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찍어낸 앤디 워홀의 작품, 욕실의 붙박이 설비와 타자기 또는 거대한 햄버거 등을 부드러운 플라스틱재로 제작한 클레이즈 올덴버그의 작품, 얼굴 없는 인물의 섹스 심볼을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그린 톰 웨셀먼의 〈미국의 거대한 누드 Great American Nudes〉, 그리고 폐품처리장에서 주워온 실제의 환경물(간이식당의 식탁과 버스 등)에 실물 크기의 석고 인물을 설치한 조지 시걸의 구조물 등이 있다.

대부분의 팝 미술가들은 작품에서 비개성적·도시적인 태도를 추구했다.

그러나 미묘한 표현으로 사회를 비판한 것도 있는데 예를 들면 올덴버그의 늘어진 오브제와 워홀의 똑같은 평범한 이미지의 단순한 반복은 명백히 혼란스러운 효과를 일으킨다. 시걸 작품의 신비하고 고독한 분위기는 공공연하게 표현주의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미국의 팝 아트는 상징적·익명적·공격적인 반면 영국의 팝 아트는 주관적·직접적이며 그들로서는 비교적 거리감이 있는 팝 문화에 대해 다소 낭만적인 태도를 보인다. 영국의 팝 미술가들은 주로 과학기술과 대중문화를 다루었는데 미국의 몇몇 팝 미술가들은 이러한 생각을 직접 실천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워홀은 "나는 모든 사람이 일종의 기계라고 생각한다"라는 것을 자신의 모토로 삼았으며 실제 작업에 있어서도 기계가 하듯 작품을 제작하려고 노력했다. 팝 아트는 일반대중에게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20세기 중반 서양의 산업국가에서 발생한 매스 미디어와 고도의 산업사회에 적합한 대표적인 미술양식으로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팝 미술가들이 스스로 내건 목표는 바로 생활과 구별할 수 없는 미술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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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가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조류 중 하나임을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다. 팝아트는 만화 · 광고 등으로 대중성을 얻은 이미지를 사용해 대중문화의 한 단면을 그려낸다. 해밀턴의 〈오늘날 가정을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는 팝아트의 시작을 알렸다. 최신 가전제품과 생활도구로 가득한 현대 가정의 모습을 콜라주 기법으로 표현했다. 보디빌더 남자가 쥔 사탕 포장지의 ‘POP’이란 글자에 착안하여 비평가가 ‘POP-ART’라는 말을 사용한 후 이러한 경향의 미술을 팝아트로 부르기 시작했다. 해밀턴(Hamilton, 1922~2011)을 비롯하여 존스(Johns, 1930~ ), 올덴버그(Oldenburg, 1929~ ), 릭턴스타인(Lichtenstein, 1923~1997), 워홀(Warhol, 1928~1987) 등이 활발하게 활동했다.

〈오늘날 가정을 색다르고 멋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날 가정을 색다르고 멋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해밀턴, 1956년

근육질의 남자와 늘씬한 몸매의 여성이 자신을 뽐내듯이 정면을 응시한다. 마치 도색잡지에 등장할 듯한 남녀가 성적 매력을 발산한다. 남성은 “당신도 강해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여성은 “당신도 저처럼 날씬해질 수 있어요.”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구석구석으로 눈을 돌리면 현대문명의 산물이 가득하다. 텔레비전, 소파 위에 펼쳐진 신문, 녹음기 등이 보인다. 계단에서는 가정부가 진공청소기로 청소한다. 한 쪽에는 포드자동차 휘장이 걸려 있다. 벽면에는 전통 액자에 그림인지 사진인지 모를 인물이 있는데 그것보다 거의 네 배나 커 보이는 만화 표지가 걸려 있다. 창문 밖으로는 대형 극장 간판도 보인다.

팝아트는 ‘고상한’ 미술에 대한 도전이었다. 흔히 문화를 순수예술과 대중예술,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로 분류한다. 보통은 저급문화에 대중예술을 등치시킨다. 이러한 분류는 다수 대중과 자신을 구분하려는 엘리트주의적 발상의 표현일 것이다.

해밀턴은 대중이 공유하는 감성과 이미지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 나름의 방식으로 시대의 단면을 무심히 드러내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래서 팝아트 작품에는 자본주의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상징을 보여주는 온갖 상품이 등장한다. 텔레비전 · 라디오 · 녹음기와 같은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통조림 ·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 음식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포드 시스템에 의해 대량 생산되고 보급된 자동차가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어딜 가나 깜빡이는 신호등, 교통 표지판도 현대를 상징하는 소재 중 하나다. “찾고 있던 소재는 유행 · 변조 · 소비성 · 기지 · 색정 · 글래머 등이었다. 저렴하고, 대량 생산적이고, 젊고, 대규모 사업적인 것이어야만 했다.”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해밀턴은 자기 작업의 의미를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세 개의 국기〉
〈세 개의 국기〉

존스, 1958년

팝아트 화가들은 평소 대중에게 익숙한 디자인을 그대로 빌려 쓰기도 하는데, 존스의 〈세 개의 국기〉도 그중 하나다. 전 세계 사람이 다 알고 있을 법한 미국 국기를 그대로 차용했다. 전통적 재료인 왁스에 용해된 염료를 사용해 성조기를 삼단으로 쌓아올린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몇몇 성조기 연작도 내놓았는데, 국가를 대표하는 권위의 상징을 마치 하나의 진열된 상품처럼 취급하고 있다. 미술작품과 사물의 경계, 예술적 이미지와 상품 이미지의 경계를 허물어뜨림으로써 전통적 예술관에 반기를 들었다. 숫자, 과녁, 지도 등도 그가 즐겨 다룬 대중적 이미지였다.

올덴버그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두 개의 치즈버거〉도 현대사회의 대표적 상품을 그대로 미술작품으로 전환시켰다. 치즈버거가 두 개 있다. 작품 제목에 ‘모든 것이 들어 있는’이라고 적혀 있듯이 햄버거에 들어갈 주요 재료가 다 들어가 있다. 일단 햄버거 빵이 입을 벌리고 있고 맨 밑에 야채가 있다. 바로 위로 치즈가 있고 토마토 조각도 보인다. 재료를 부드러운 햄버거 소스가 감싸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실물 햄버거의 크기보다 훨씬 커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하드보드, 석고 등의 재료를 사용해 일상용품을 묘사한 많은 조각을 발표했다. 주로 타자기 · 선풍기 · 햄버거 · 아이스크림 · 담배꽁초 등을 소재로 사용한다. 하지만 다른 작가와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확대시킨 작품의 크기다. 과장을 통해 일상용품을 낯설게 만든다. 가공할 크기 때문에 감상자들은 작품을 보면서 일종의 괴리감을 느낀다.

앤디 워홀은 특히 현대 소비사회 특성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작업을 한다. 포스터 · 만화 · 통조림 · 전기제품 · 자동차 등 대량 소비 시대의 기성품을 주요 소재로 한다. 대량 복제가 가능한 실크스크린을 이용하여 다양한 색채로 반복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품을 주로 제작했다. 만화의 한 컷, 신문 보도사진의 한 장면, 영화배우의 브로마이드 등 대중적 이미지를 실크스크린으로 캔버스에 전사(轉寫) 확대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자신의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를 거부했다. “기계처럼 어떤 작업을 하든지 간에, 내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싶다면, 내 그림과 영화와 그리고 나의 겉모습을 그냥 보기만 하면 그곳에 내가 있을 것이다. 감추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릴린 먼로〉
〈마릴린 먼로〉

워홀, 1967년

워홀의 〈마릴린 먼로〉는 미술과 복제 기술의 밀접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실크스크린 기법은 대량 복제가 가능한 인쇄 방법을 이용하여 미술품의 대량 생산을 효과적으로 실현했다. 표현 방법뿐만 아니라 표현 대상에서도 철저히 소비사회의 논리와 문법에 충실했다. 당시 가장 인기 있던 할리우드 스타 마릴린 먼로가 사망하자 대중의 시선이 쏠렸고, 언론은 연일 그녀의 삶을 소개했다. 대중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자 워홀은 그녀를 작품에 끌어들인다. 실크스크린으로 얼굴을 연속적으로 병렬하거나 하나씩 독립적으로 제작했다. 유명인을 그리면 자신도 유명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마릴린 먼로 이외에도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인 폰다, 존 F 케네디 등 미디어가 주목하는 할리우드 스타와 유명 인사의 얼굴을 활용한 작품을 집중적으로 쏟아냈다.

‘미술의 상업화’와 동시에 ‘상업의 미술화’를 추구했다. 물론 현대 문화 중에 상품 아닌 것이 있겠는가? 하지만 단지 미술에 바코드를 붙이는 데 머물지 않고, 철저히 상업적인 것을 미술 영역으로 끌어들여 성공한 화가다. 어떤 면에서는 자신에게 솔직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상업미술가로 시작했는데 이제 사업미술가로 마무리하고 싶다. 사업과 연관된 것은 가장 매력적인 예술이다.”라고 할 정도로 미술과 상품의 경계를 허물어버렸다.

릭턴스타인은 〈키스〉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 만화나 만화영화의 정지 장면을 자주 사용한다. 비행기 폭격 장면이 나오고 원더우먼이 등장한다. 마치 텔레비전의 한 장면이 툭 튀어나온 듯 하고, 길거리를 거니는 청소년의 티셔츠에서 본 듯한 느낌도 준다. 그는 《뉴욕 타임스》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형편없는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평론가의 호평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만화 속 인물이 아닌 직접 유명한 사회 인사를 다루기도 했는데, 작업을 통해 결국 만화 주인공으로 둔갑한다. 중국혁명의 선두에 서서 승리를 이끌어낸 마오쩌둥을 묘사한 작품도 내놓았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마오쩌둥은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같은 미국 영화의 주인공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어디에서도 험한 대장정 과정에서의 비장함이나 고뇌는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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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자본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설명해 보자. 미술의 가치는 생산 과정에서도 그렇지만 소비 과정에서 판단된다. 오늘날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미술품은 극소수 부자들에 의해 향유된다. 물론 중간 정도의 자산을 소유한 사람들도 이에 동참하지만, 그들의 몫이란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미술을 생산해 내는 사람들, 오늘날 이들은 예술가라는 가히 듣기 나쁘지 않은 명칭을 부여받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의 노동을 통한 미술 생산이 그 명칭에 상응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미술의 생산이 전적으로 한 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도층의 미각에 호소하는 까닭이다. 더욱이 그들은 자신들을 사회의 문화적인 지도층쯤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미각이 대중적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의 미각이 형성해 놓은 미술은 한 시대의 주류로서 구가된다. 예술에 대한 미각은 지식과 더불어 철저하게 계급화되어 있다. 가령 부유층이 고급 오페라를 즐기고 노동자층이 값싼 영화관을 찾는 것은 대중적 취향이 다름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고급문화는 교육받은 것이며 이 기회는 결코 균등하지 않다.

약간 빗나간 비유이지만, 명품과 짝퉁으로 구별되는 소비의 차이가 또 다른 예가 될지도 모르겠다. 미술품은 매우 품위 있는 명품들이다. 희소성이 있다는 점과—대체로 미술작품들은 유일하다—손으로 직접 만들어졌다는 점—기술에 의한 복제품이 아니라는 점도 내포한다—그리고 무엇보다 값이 비싸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인 면만이 구별의 기준은 아니다. 미술로 그려진 혹은 미술에 담겨진 내용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다니엘 뷔렌(Daniel Buren), 무제, 1972년, 개인 소장
다니엘 뷔렌(Daniel Buren), 무제, 1972년, 개인 소장

고급한 미술은 그 내용도 교양을 지닌 소비층의 미각에 알맞은 것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철학적인 해석이나 사유가 필요한 현대의 추상회화들은 고학력이 아닌 일반 대중에게는 호소력이 없다. 그래서 모더니즘 미술은 원래 그것이 출발했을 때에 지녔던 유토피아적이고 전(全) 민중적인 성격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미술작품에 상응하는 환경, 즉 현대적으로 지어진 미술관에 걸리고, 그곳을 찾는 교양 있는 자산가들에 의해 전시되고 팔리며, 그들이 소유한 집의 넓은 벽에 걸린다. 사실 잘 살펴보면, 현대의 미니멀 아트(Minimal Art)나 개념미술(Concept Art) 작품들은 대부분 현대식 건축물 내부에 걸려 있다. 그 크기나 형태마저도 그런 용도를 의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팝아트(Pop Art)라 불리는 현대적인 미술 사조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것들에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팝아트가 그려 내고 있는 것은 교양과 자본을 소유한 상류층에게는 너무 속물적이며 일상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코카콜라나 캠벨수프 캔 그리고 연예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타들의 모습은 상류층만 향유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매우 대중적인 소재들이며, 나아가 대중적인 소비경제를 전제로 존재한다.

대중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을 현대미술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역사는 한참이나 위로 올라간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나 정물화는 대중적인 의식을 배경으로 태어난 것들이다. 그림 속 과일이나 사람들의 일상은 역사화나 초상화 등에 비교하여 '의미'있는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려 냈던 도시 풍경이나 사람들이 모인 술집, 세잔이 그린 정물화 같은 것도 비슷하게 설명될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의 미술과 다르게 팝아트 예술가들은 현대적인 특수한 상황에서 대중의 일상과 사회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피터 아르스텐(Pieter Aersten), 마리아와 마르타의 집에 머문 그리스도, 나무에 유화, 1552년, 빈 미술사 박물관
피터 아르스텐(Pieter Aersten), 마리아와 마르타의 집에 머문 그리스도, 나무에 유화, 1552년, 빈 미술사 박물관
에드가 드가, 압생트, 캔버스에 유화, 1876년 파리, 루브르 미술관
에드가 드가, 압생트, 캔버스에 유화, 1876년 파리, 루브르 미술관

그럼 팝아트는 무엇인가? 팝아트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것은 1950년대 말이었다. 미술 용어 겸 개념으로서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이는 로렌스 알로웨이(Lawrence Alloway)라는 영국의 미술비평가였다. 그는 화가였던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의 콜라주 작품에 들어간 P.O.P라는 단어에서 착안하여 위와 같은 개념을 만들어 냈다. pop이라는 단어가 popular의 약자라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다. 해밀턴과 그의 동료들이 추구했던 미술을 포괄해서 부르는 이 말은 미술이 담고 있는 형상적인 내용의 특징을 알려 준다. 즉 그림이 표현하는 대중적인 내용과 소재를 말한다. 이 그림은 그리기보다는 사진들을 오려 붙여 조합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콜라주(Collage)라고 한다. 콜라주는 20세기 초반에 입체파 화가들과 다다이즘 화가들이 사용한 매우 현대적인 미술 방식이다.

그래픽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이미지들을 절묘하게 혼합해 내는 오늘날의 시점에서 리처드 해밀턴의 그림은 조악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조악함도 엄격한 의미에서 팝아트의 미술 의도였다는 사실을 감안해 보면, 팝아트가 얼마나 도전적이었나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해밀턴이 그림으로 가져온 이미지들은 대중적인 잡지, 이를테면 성인 잡지, 상품 광고가 잔뜩 들어간 주간지나 월간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더 나아가 이 이미지들은 영국의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수많은 구호물품과 군수용품에 섞여 건너온 대중매체들이었다. 이것들은 영국 사람들의 시각을 자극했으며, 화가들에게는 낯설지만 새로운 이미지들이었다. 그때까지도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이러한 상업적인 사진 이미지들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해밀턴의 그림은 그런 이미지들을 조합한 가상의 실내를 보여 준다. 현대식 가구로 꾸며진 거실에 옷을 벗은 남녀가 있다. 남자는 육체미 선수를 연상시키는 자세로 커다란 사탕을 들고 있다. POP라는 알파벳이 사탕을 포장한 종이 위에 찍혀 있다. 오른쪽에 있는 여자는 이상한 모자를 쓰고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댄 채 매우 관능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방 안에는 텔레비전과 녹음기 등 첨단 기술이 이루어 낸 가전제품들이 놓여 있다. 왼편으로 난 긴 계단 위에는 빨간 옷의 여자가 이상하리만큼 긴 흡입관을 가진 진공청소기로 계단을 청소하고 있다. 그리고 창밖에는 뉴욕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간판이 번쩍거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미국 사회에 대한 동경과 비판을 동시에 보여 주고 있다.

리처드 해밀턴, Just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homes so different, so appealing?, 1956년, 종이 위에 콜라주, 튀빙겐 미술관
리처드 해밀턴, Just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homes so different, so appealing?, 1956년, 종이 위에 콜라주, 튀빙겐 미술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은 경제적으로 매우 낙후되어 있었고, 마셜 플랜으로 불리는 미국의 경제 원조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군사적, 경제적으로 강대국이 되어 버린 미국의 대중문화도 유럽으로 흘러 들어왔다. 미국은 당시 영국인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의 나라로 비쳤다. 미국의 현대적인 기술과 대중매체는 유럽인들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배경으로 한 미국의 화려하고 대중적인 상업 이미지들은 유럽인들이 미국을 현대적이고 거대하고 자유로운 미래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해밀턴의 그림은 바로 이러한 이상향을 조금 희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의 그림은 소비적이지만 편안하고 폼 나는 미국식 생활 방식(The American Way of Life)의 단면을 보여 주는데, 해밀턴은 이에 대해 사뭇 조롱하는 태도를 취했다.

해밀턴은 피터 블레이크(Peter Black), 에두아르드 파올로치(Eduard Paolozzi) 등과 더불어 1950년대에 영국에서 활동한, 당시로 보면 신세대에 속하는 예술가였다. 이들로부터 시작된 팝아트는 이후 미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팝아트는 미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영국 화단의—당시 영국은 유럽 대륙의 주류에도, 미국의 신흥 화단에도 끼지 못하는 주변에 불과했다—낙후성을 벗어나고자 했던 국가적 예술 사업의 일환으로, 여러 가지 제도와 전시를 통해 그 존재를 알린 예술가 집단이었다. 또한 왕립 미술학교를 갓 졸업했거나 지방에서 나름의 작업을 해 온 신인들이기도 했다.

팝아트 예술가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경제적, 사회적으로 변화된 일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고, 특히 미국에서 유입된 새로운 생활문화에 대한 자신들의 반응을 그렸다. 이들의 의도는 1956년에 런던의 화이트 채플 갤러리에서 열렸던 전시 'This is Tomorrow(이것이 미래다)'를 통해 일반에 공개되었다. 이 전시는 총 열두 개의 테마로 나뉘어 열렸는데, 회화와 조각, 건축을 아우르는 다양한 미술 형식들이 동원되었다. 여기서 해밀턴은 존 맥해일(John McHale) 그리고 건축가였던 존 벌커(John Voelcker)와 함께 특별한 환경을 구성하였다. 이 공간에 해밀턴은 인기 있는 대중매체 이미지들을 이용하여 약간은 혼잡한 전망대를 만들었다. 공간 외벽에는 젊은 여성을 안은 로봇이나 마릴린 먼로의 사진들을 전시하였다. 한마디로 첨단의 이미지로 요지경을 만들어 놓았는데, 해밀턴은 자신의 전시 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의미로 가득 찬 상징들의 정의가 아니라 우리의 지각 능력의 발전이다. 시각적인 물질이 계속 증가되는 것을 우리가 수용하고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이들 작품의 특징을 대략 정리해 보면, 자본과 기술의 발달로 나타난 그리고 미래에 야기될 현상을 보여 주고 있는데, 해밀턴의 작업처럼 싸구려 잡지에서 오려 낸 이미지들을 콜라주라는 형식으로 묶어서 소비 지향적 현대 생활을 보여 주거나 로봇과 같은 존재가 등장하는 미래 사회를 보여 주었다. 이 모든 형상은 무에서 창조해 낸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여러 가지 매체에 나타난 동시대의 이미지들을 엮어 놓은 것으로,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들을 미술에 수용하고 활용할 눈과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해밀턴이 동료였던 피터와 앨리슨 스미스(Peter & Alison Smith) 부부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팝아트의 성격을 조목조목 잘 알 수 있다. 자신들의 예술은 "대중적(즉 익명의 다수를 위해 만들어진 것들처럼)이고, 유통기간이 길지 않으며(즉 순식간에 소비되어야 하고), 빨리 잊히는 것이어야 하고, 값싸고 다량으로 생산되며, 젊고(즉 젊은 소비층을 위한 것이고) 웃기며 섹시하고 조잡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미술이나 고급문화가 구축했던 모든 기존의 원리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그것들에 대한 반란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값싸고 도회적인 사물들을 그려 내는 배경에는 20세기 중반부터 세계적으로 확대된 미국식 소비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팝아트는 그런 소비문화의 특징을 담아낸 예술이다. 팝아트 예술가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눈을 돌렸다. 추상미술이나 초현실주의 미술이 인간 내면의 심리와 심오한 철학적 원리를 탐구했던 것과는 달리, 팝아트 예술가들은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비재에서 그들의 미학을 발견했다. 대중매체와 소비사회에서 넘쳐나는 광고나 상품의 포장이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었다. 그런 환경이 만들어 낸, 어떻게 보면 키치(Kitsch)에 가까운 이미지들이 그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들은 그 이미지를 복제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사실 '키치'는 원작을 조악하게 모방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팝아트는 그런 유치한 모방을 한 번 더 모방함으로써 전통적인 모방이론에 반항한 것이었다.

영국의 팝아트는 시대와 환경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이었다. 그러나 조금 늦게 시작되었지만 더 영향력 있는 사조로 발전한 미국의 팝아트는 그 성격이 달랐다. 이제 미국의 대표적인 팝아트 예술가들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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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 1963년
가격 $56,123,750(588억 8000만 원)1)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
 
로이 리히텐슈타인, 〈꽃 모자를 쓴 여인〉, 캔버스에 마그나 물감 / 127×101.6cm
로이 리히텐슈타인, 〈꽃 모자를 쓴 여인〉, 캔버스에 마그나 물감 / 127×101.6cm
“피카소는 언제나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
만화 그림을 그리면서 피카소에게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피카소의 그림을 내 스타일로 그리는 작업도 사실은
나에게 남은 그의 영향을 지우기 위한 작업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우리나라에서 그림 한 점을 둘러싸고 나라가 뒤집어지게 시끄럽던 적이 있다. 2007년 11월 터진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사건이다. 삼성그룹의 전 법률팀장이던 김용철 변호사가 어느 날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의 미술품 구매 목록’이라며 미술품 약 서른 점의 목록을 공개했다. 당시 삼성그룹의 미술품 구매를 담당하던 서미 갤러리가 뉴욕 크리스티에서 2002년에 낙찰 받은 미술품 목록이었다.

그 목록에서 가장 비싼 작품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었다. 특별 검사까지 동원된 수사 결과 이 작품은 삼성그룹이 구매한 게 아니라고 밝혀졌지만, 일반인들의 관심은 이 그림의 ‘억’ 소리 나오는 가격에 있었다. 〈행복한 눈물〉은 2002년 11월에 당시 환율로 86억 5000만 원인 715만 9500달러에 낙찰됐다.

〈행복한 눈물〉은 빨간 머리의 여자가 눈물을 글썽이며 미소 짓고 있는 아담한 크기(96.5×96.5센티미터)의 그림이다. 이 그림 덕분에 1960년대 미국의 팝 아티스트 리히텐슈타인이 2007년 말 한국에서 갑자기 유명해졌고, 갤러리마다 갑자기 리히텐슈타인 작품을 찾는 손님이 많아지기도 했다.

2013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5612만 달러(588억 8000만 원)에 팔려 세계 미술 시장을 다시 들뜨게 한 이 그림도 바로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다. 도대체 싸구려 만화처럼 그린 그의 작품이 왜 이렇게 비쌀까? 리히텐슈타인의 미술사적인 위치와 그가 등에 업고 있는 미국의 힘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리히텐슈타인은 워홀, 올덴버그와 함께 1960년대 미국 팝 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다. 워홀이 코카콜라와 매릴린 먼로 같은 대중문화 이미지를 변형해서 썼듯이, 리히텐슈타인은 광고, 만화, 신문, 잡지 등으로 이미 대중의 눈에 익은 이미지를 변형해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만들었다. 이 그림처럼 대가들의 초상화나 정물화를 소재로 택해 자기 방식으로 재해석한 작품도 많이 남겼다.

인쇄할 때 색과 농도를 결정하는 미세한 점을 망점(網點), 또는 벤데이 닷(Ben-Day Dots)이라고 하는데,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은 마치 인쇄 품질이 낮아 벤데이 닷이 커진 것처럼 그려져 있다. 현대인이 의존하는 인쇄 기술이 사실은 망점 여러 개가 찍힌 ‘눈속임’이라는 것, 그리고 자세히 보면 색깔도 촌스럽다는 것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인쇄물을 그대로 확대 복사한 것 같아서 작가의 손이 안 들어간 듯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그 인쇄물에게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작가가 완전히 주물러서 새 생명으로 다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싸구려 인쇄물 같지만 사실은 작가가 하나하나 그려 넣은 것이다. 작가가 손을 안 댄 듯하면서도 세심하게 공을 들인 것이다.

이 그림은 한눈에 보기에도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잘 알려진 대가들의 명작을 놓고 자기 방식으로 재해석하곤 했다. 특히 1962년에서 1963년 사이에 피카소의 여인 초상화를 재해석한 그림을 네 점 그렸는데 이 그림이 그중 하나다. 피카소가 1940년에 그린 애인 도라 마르 초상화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이 원화를 소장하고 있던 모튼 노이먼이라는 미국의 컬렉터가 리히텐슈타인에게 이 그림을 재해석해 리히텐슈타인 방식으로 그려 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도라 마르는 스페인 출신의 사진작가로 지적이고 개성 있는 여성이었다. 피카소의 초상화에서 하도 강한 성격으로 그려져 때로는 괴팍해 보이기까지 한다 (파블로 피카소, 〈고양이와 있는 도라 마르〉 항목 참조). 리히텐슈타인은 이런 대가의 심오한 초상화를 아주 심플 하고 기계적인 인쇄물 모양으로 만들었다. 당시 싸구려 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 사진이나 카툰처럼 노란 머리에 빨간 입술로 단순화함으로써, 도라 마르를 1960년대의 미학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고급 예술’의 상징인 피카소를 감히 ‘저급 예술’인 싸구려 만화와 같은 선에 놓고 ‘무엇이 고급이고 무엇이 저급한가?’라고 묻는다. 팝 아트가 던지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의식이다.

이 그림은 좋은 전시 기록이 가격을 올리는 데 한몫을 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1966),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패서디나 미술관에서 열린 리히텐슈타인의 첫 회고전(1967), 런던 테이트 미술관의 리히텐슈타인 회고전(1968), 뉴욕 휘트니 미술관의 미국 팝 아트 기획전(1974),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리히텐슈타인 회고전(1993~1994) 등에 전시되었다. 그만큼 중요한 작품이다.

폴록과 드 쿠닝 등 추상 표현주의 작가들을 언급할 때 미국 컬렉터들의 구매력 이야기를 했는데, 팝 아트도 마찬가지다. 워홀과 리히텐슈타인의 그림 값이 오른 것은 20세기 후반 들어 미국 컬렉터들이 돈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컬렉터들의 구매력이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면서 미국 미술을 대변하는 팝 아트의 거장 워홀, 리히텐슈타인 작품의 가치도 치솟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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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 1961년
가격 $43,202,500(453억 3000만 원)1)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
 
로이 리히텐슈타인, 〈방이 다 보이는데!···아무도 없어!〉, 캔버스에 마그나 물감 / 121.9×121.9cm
로이 리히텐슈타인, 〈방이 다 보이는데!···아무도 없어!〉, 캔버스에 마그나 물감 / 121.9×121.9cm
“팝 아트는 세상을 향해 있다. 그것은 무엇을 그린 것이 아니라, 세상 그 자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에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네 점 나오는데 모두 만화 스타일이다. 리히텐슈타인 작품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고 인기 있는 스타일이다. 그가 만화 원본을 변형해 만든 작품에는 말풍선을 뺀 것도 있고 넣은 것도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말풍선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말풍선의 대사 ‘방이 다 보이는데!···아무도 없어!’가 바로 현대 미술 자체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작가들 중에는 ‘보는 관객’과 ‘보이는 작품’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가가 많다. 시각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21세기에 활동하는 작가들도 이 주제에 관심이 많지만 이미 1960년대부터 작가들은 이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 그림의 제목이자 말풍선 대사인 ‘방이 다 보이는데!···아무도 없어!’를 보면, 꼭 그런 관심사가 말로 표현된 것 같다. 우리가 현대 미술 작품을 볼 때 그런 느낌이 아닐까? 분명히 미술 작품을 보고 있는데,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는 느낌. 그리고 우리는 이 남자를 보고 있는데, 이 남자는 방 안을 보면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이 남자는 보이는 대상인 동시에 보는 주체이기도 하다.

이 그림에는 리히텐슈타인의 개인적 경험도 담겨 있다고 한다. 그의 대학 시절 은사는 ‘플래시 방(Flash Room)’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학생들에게 그 방을 구멍으로 들여다보게 했다. 깜깜한 방 안 앞쪽 벽에 스크린을 설치하여 수많은 이미지를 아주 빠른 속도로 보여 주었다. 구멍을 통해 스크린을 보면 깜빡깜빡하며 불빛이 왔다 갔다 할 뿐 정확히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구멍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면서 황당해하는 남자의 이미지는 만화에서 따온 것이지만, 동시에 리히텐슈타인이 학생 때 겪은 경험을 재생산한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재미있고 간단해 보이는 이미지를 통해 리히텐슈타인은 현대 미술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20세기 후반 들어 미술 작가의 역할이 바뀌었듯이 그림과 관객의 관계도 바뀌었다. 관객이 일방적으로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미술 작품을 통해 관객 자신을 보는 형태로 바뀐 것이다.

이 그림을 처음 전시한 곳은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였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국 현대 미술의 주요 작가 대부분을 키운 딜러 한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아마 많은 이가 레오 카스텔리를 꼽을 것이다. 워홀의 유명한 〈캠벨 수프 깡통〉을 제일 먼저 판 딜러도 레오 카스텔리다. 그가 발굴해 낸 작가들이 바로 재스퍼 존스, 워홀, 로젠퀴스트, 리히텐슈타인, 스텔라, 도널드 저드, 모리스, 댄 플레이빈 등이다. 이들은 모두 서양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대가들이니, 딜러로서 레오 카스텔리의 역량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에서 이 그림을 산 사람은 레오 카스텔리만큼이나 유명한 컬렉터인 에밀리 트레메인, 버튼 트레메인 부부였다. 이 작품은 리히텐슈타인이 만화 스타일을 막 시작한 1961년에 그린 것이다. 트레메인 부부는 당시 너무나 앞서 가는 이상한 그림인 이 작품을 단돈 450달러(47만 2000원)에 구입했다. 트레메인 부부가 뛰어난 안목을 지닌 컬렉터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다. 트레메인 부부는 이 작품을 평생 소장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내 에밀리 트레메인이 죽고 난 뒤인 1988년 처음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이 작품이 나와 210만 달러(22억 원)에 팔렸다. 그때 이 작품을 구매한 소장자가 13년 만인 2011년 같은 경매에 내놓았고, 그가 구입한 가격보다 무려 스무 배나 오른 가격인 4320만 달러(453억 3000만 원)에 낙찰됐다. 유명한 컬렉터를 거친 그림은 가치가 올라가게 마련인데, 트레메인 부부의 손을 거친 리히텐슈타인의 초기 작품이라는 사실이 이 그림에 프리미엄을 얹어 주었을 것이다.
========================이런 작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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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는 영국의 비평가 알로웨이(Alloway, Lawrence)가 사용했다. 팝아트의 세 가지 사회 양상으로는 포스터나 만화의 대량 생산, 대중문화의 대량 전달, 사회의 대량 소비이다. 주제는 대중 매체의 저급한 상업 미술과 사회나 대중 사회를 다루고, 특징으로는 역동성, 유선형, 이동성을 들 수 있으며, 기법은 실크스크린이나 판화, 상업적이거나 기계적 기법을 사용한다. 대표적 작가는 워홀(Warhol, Andy)과 로이 리히텐슈타인(Lichtenstein, Roy)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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