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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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삶만큼 살고 싶다/김택만
2016년 05월 15일 12시 06분  조회:2108  추천:0  작성자: 아침은 찬란해

올해 어느 화창한 봄날,아내,딸을 데리고 룡정시 개산툰진 회경촌으로 향했다.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은 대지인양 어쩐지 마음은 마냥 설레이고 저으기 흥분되고 기대로 부풀었다.회경촌은 나한테 태를 묻은 고향도 ,언제 한번 가본적도 없는 그냥 낯선 타향이다.
그래도 찾아가는 마음이 잔뜩 부풀어오르는것은 옛날예적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한때 산적이 있는 ,조상들의 얼이 서려있는 곳이기때문이였다.게다가   할아버지께서 직접 짓고 생활하고 아버지가 태여나서 5살까지 살았다는 집이 아직도 그 고장에 있그곳에 있다는것이 가슴을 여울치게 하는 또 하나의 리유였다..올해로 90세 넘은 고모님의 아득한 회억에 의해서 몇번 걸음에 지금의 회경촌 제2촌민소조에 있는 옛집을 찾아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고 찾아가는 길이다.
개울을 지나고 시골의 달구지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마침내 집 한채가 지나온 력사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기라고 하는듯 고풍스럽게 안겨왔다.대략 100년이 되는 팔칸집이였다.지금 이 집을 소유하고있느 주인은 외국에 가고 빈집만 남아있었다.하지만 돌담장은 였것 그대로 오롯이 남아 이집의 지나온 세월을 말해주는듯싶었다.그런데 앞마당에 있었다는 석마간은 온데간데 종적이 없었다.두터운 널판자로 된 마루에 걸터앉아 명상에 잠겼다.그 옛날 할아버지,아버지의 그림자를 찾으며 그리고 어쩌면 당금이라고 풍겨나올지도 모르는 그 내음을 맡으며 지나온 력사의 장하에 고즈넉이 묻혀있는 옛일들을 상상해보고 진지하게 음미해본다.가지고 간 커피도 한잔 마시며 나는 저기 저 먼듯하면서도 가까이 우렷이 안겨오는 산자락에 시선을 팔며 깊은 사색에 빠진다.그렇듯 낯선 집이고 지금은 볼품없이 많이 낡은 집이지만 나에게 너무나도 다정하게 안겨지는 어머니의 태집처럼 따슷하고 푸근한 집이다.그래서인지 보면 볼수록 도저히 눈을 거둘수 없가ㅗ 가슴 깊이에서 울컥 치밀어오르는 감동,감격과 함께 묻어오르는 희한때문에 눈가가 젖어오는것을 어쩔수 없다.
증조할아버지,할아버지 세대에는 밭도 꽤 많이 차지하고있었고 생활도 어지간히 유족했단다.증조할아버지는 딸만 아흡을 보다가 열번째로 할아버지를 보셨단다.고모님이 10살 쯤 되였을 무렵에 할아버지는 집과 땅을 청산하고 조선 청진으로 이주하셨단다.
그뒤 몇년후 다시 안도현 차조구(지금의 석문진)로 이사하셨다가 이름모를 전염병으로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그래서 그때 12살이던 아버지는 당시 조선 청진에서 다니던 학교를 그만 두고 차조구로 돌아와서 가정의 중임을 짊어지게 되였다.
아버지는5남매중 항렬로 둘째였지만 누님되분은 이미 출가한 때였다.그 때 차조구에는 할아버지 명의로 된 땅도 있었는데 아버지외삼촌 되는분이 조선에 가서 살자며 땅을 몽땅 팔고 그 돈을 갖고 종적을 감춰버리는 바람에 아버지네는 하루아침에 빈털터리신세가 되였다.그 때로부터 가난이 시작되였다.하지만 그 화가 나중에 복이 될줄이야.그때 그 땅이 없었기에 아버지네는 “문화대혁명”때에 빈농으로 획분되여 화를 면하게 되였다.만약 그 땅이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성분을 나눌 때 부농이나 지주로 획분되였더라면 티끌이라도 끄집어내여 없는 죄도 만들어서 마구 족치던 “문화대혁명”때에 어떤 고역을 치를지 누구도 모를 일이였다.
아버지는 1945년에 참군하여 조국해방전쟁에 참전하였다.그뒤에는 인차 항미원조전쟁에 나갔다가 귀국했다.귀국후 조직에서는 아버지를 되시에 있는 직장에 배치하였지만 그 직장을 그만두고 여태껏 부모님께 하지 못한 효도를하려는 일념으로 할머니가 계시는 안도현 차조구 룡흥촌으로 외서 농촌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거기에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고 우리4남매를 보았다.아버지는 술은 잘 마시지 못하셨지만 노래와 춤에 장기가 있었다.하여 촌의 문예활동에서는 늘  선줄군이였다.술 좀 거나하게  마시면 노래를 부르고 춤판을 벌렸는데  저가락반주에 맞춰 구성지게 가락을 넘기는 “옹헤가”는 아버지의 “18곡”으로서 빠지는 법이 없었다.그래서 아버지의 별명이 “옹헤이ㅑ”였다. 어릴적에 그 별명을 들을 때마다 그렇게도 싫었다.아버지는 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아주 잘 그렸다.당시 어려운 살림에 화투를 살수 없는 형편에서 아버지는 직접 두툼한 종이에다 화투를 하나하나 그려서는 우리가 놀게 했다.아버지는 말수가 아주 적다못해 무뚝뚝했는데 자식들한테 “공부해라 ,숙제해라”는 말 언제 한번 한적이 없다.하지만 우리자식들은 다들 알아서 공부만은 잘했다.
대학입시가 회복된 첫해에 형님이 대학에 입학했다.그리고 형님이 졸업하는 해에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바로 그해에 세살 터울로 아래인 남동생이 현성에 있는 고중에 입학했다,
3년후 동생도 대학에 입학했다.그 때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전이라서 시골에서 얼마 안되는 수입으로 대학생의 뒤바래지를 한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그무렴에 안도현에서 삼형제가 모두 대학에 간것은 아마 우리형제뿐이였것이다.
지금 그때 당시에 아버지,어머니가 겪었을 마음고생,돈고생을  회억하노라면 가슴이 미여진다.변변치 않은 농사수입으로 우리 형제를 공부시키느라 아글타글했을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때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가.너나가 거의 엇비슷했을 돈고생은 제쳐놓고라도 마음고생으로 얼마나 시름겨웠을가?
지금 내가 안해와 나 두 사람의 월급으로 딸 하나의 공부뒤바라지를 하면서도 가끔 힘들다고 푸념할 때가 많은데 세 대학생을 그것도 평시에는 돈이 나올데도 없고 가을에 타작을 해야 쥐꼬리만한 수입을 쥘수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떻게 우리 셋을 공부시켰을가?
그 척박한 시골에서 세 대학생의 뒤바래지를 하며 꿋꿋하게 살아온 아버지와 어머니,두 분은 세상을 놀래울만한 큰일을 한것도 없다.하지만 너무나도 우러러 보인다.어릴적엔 시내에 있는 직장을 마다하고 시골에서 농사 짓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오늘날 되돌아보노라니 척박한 시골에서 살아온 생존능력,가난을 이겨내고 극복해온 지혜와용기, 그리고 가난속에서도 비관과 실망, 원망 없이 락관적으로 살아온 정신에 탄복하게 된다.나라면 그렇게 할수 있었을가?지금 같아서는 할수 없었을것 같다.전혀 자신이 없다.내가 아버지의 지혜와 능력만큼,그리고 그 삶만큼 살수있을가?더도 말고 덜고말고 아버지 삶만큼 살고 싶다.
 
<청년생활 2014년 10월호에 실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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