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찬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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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돌의 빈자리
2017년 04월 22일 08시 19분  조회:1219  추천:0  작성자: 아침은 찬란해
                        
                                           못난 돌의 빈자리

                                                                   김택만
 
      여름날의 어느 오후,석양빛속에서 연변대학 뒤산의 숲속길을 걷고 있는데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류봉석을 알지?
     언뜩 떠오르지 않았다.
    “거..우리앞집에 살던 봉석이 말이다”
    “아,예…”
    “봉석의 아버지 류서기가 풍 맞았어,그래서 내일 너를 찾아갈거야.연길에 도착할무렴 너한테 전화할거니까 역에 마중 나가거라”
      “예,알겠습니다”
      그전에도 고향사람들이 내가 의사라고 잘 찾아온 적이 있었다.
      봉석이네와 우리는 앞뒤집에서 살았다.그런데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봉석이네 집에 마실을 간 적이 한번도 없었다.다만 일년에 두세번 봉석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우리 집에 놀러 왔을뿐이다.혹시 맛나는 음식이 생기면 어머니는 그릇에 담아 나에게 주면서 앞집에 가져다주라고 하였다.그래서 나는 봉석이네 집에 몇번 가보았다. 봉석이네는 사냥개를 길렀는데 꽤나 사나웠다.(봉석 아버지가 사냥을 좋아해서 사냥총도 있었음).내가 다가가면 왕~왕~ 짖어댔는데 너무 무서워 머리카락이 쭈삣이 곤두섰다. 그리고 집안에서 퀴퀴한 냄새가 지독하게 났는데 땀냄새인지 발똥냄새인지 아니면 썩장냄새인지 코를 찔렸다.
 
       봉석 아버지의 이름은 지금까지도 모른다.그냥 “류서기”로 통했다. 마을 어른들이 그렇게 부르니 우리 조무래기들도 따라서그렇게 불렀다.봉석 아버지는 신문도 읽을줄 몰르는 까막눈이였지만 정치를 어찌나 잘 론하는지 빈하중농대표도 울고 갈 정도였다.그래서인지 ‘문화대혁명’때 투쟁이나 비판을 받지않았다.아마 정치를 입에 달고 살아서 ‘류서기’라는 별명이 붙지 않았나 싶다.텁수룩한 수염, 희뿌연 머리카락 그리고 채양 있는 모자를 항상 옆으로 삐딱하게 쓰고 다녔는데 오른쪽 태양혈에 어릴때 불에 덴 흉터자국이 있었다.그것을 가리우느라 머리를 항상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빗어넘겼고 신은 언제나 뒤축을 꺾어 끌신으로 만들어 신고 다녔다.
       봉석의 아버지가 술에 취해 공소부(공급판매합작사)마당에 나타나면 우리 조무래기들은 좋다서 란리였다. 멋진 구경거리가 생기기 때문이였다.
      공소부는 대대사무실, 위생소, 로인독보실, 청년활동실과 함께 같은 벽돌집을 사용하였다. 그 옆에는 “ㄴ”자형으로 된 담배건조실이 두채 있었다. 앞마당은 운동장이였는데 꽤나 넓어 대대운동회도 영화도 거기서 상영했다.또 동네애들이 망아지처럼 뛰여노는 장소이기도 했다.
      공소부와 담배건조실 사이에 몇십년 되는 느티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  가지가 무성하여 여름이면 선선한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그곳은그 동네의 휴식터였고 어른들의 모여 한담하거나 술추렴을 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봉석의 아버지는 외상으로 술을 받아놓고 마당에서 뛰여노는 조무래기들에게 소리쳤다.
      “얘들아, 거 마늘 뽑아오거라”
     그러면 우리는 마당 옆에 있는 강가의  채소밭에 가서 마늘을 한움큼 뽑아서 내물에 훌훌 씻어 가져다 드렸다. 그 마늘밭이 누구네 것인든 상관없었다.가끔 거기에 우리아버지도 끼이군 했다.
      봉석의 아버지은 쯥쯜한 미역 한 쪼각과 풋마늘을 안주로 술 얼큰히 마시고는 동네어른들과 큰 소리로 떠들어대다가 뜬금없이 노래를 부르군 했다.우리 조무래기들이 우르르 쓸어가서 빙 둘려서면 봉석 아버지는 더욱 신이 나했다.누런 이발에서 입냄새가 나고 침방울이 튕겼지만 우리조무래기들은 개이치 않고 재미있어 키득키득 웃었다. 봉석의 아버지는 엉덩이까지 축 처져내려온 허술한 바지의 가랭이를 무름까지 걷어올리고 맨발으로 춤을 추었다.
 
옹헤야 어절씨구 옹헤야 저절씨구
옹헤야 잘도 논다 옹헤야
철뚝넘어 옹헤야 메추리란놈이 옹헤야
보리밭에 옹헤야 알을낳네 옹헤야
두리둥실 옹헤야 밝은달이 옹헤야
휘영청 옹헤야 높이떴네 옹헤야
 
      손바닥을 짝짝 마주치며 흥이 나서 타령에 맞춰 허리춤,엉덩이춤,닭춤을 추었는데 그 모양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그리고 손으로 아래입술을 잡고 휘파람도 불고 참새소리,앵무새소리도 흉내냈는데 아주 청아하고 높았다. 때로는가락을 폈다굽혔다하며 일본어로 “이찌니산시고로…”하고또 로어로“빠쓰까드또끼…”하면서 아라비아수자를 외웠다.그러다가도 “바가야로” “또쯔께끼” “우라우라”를 웨쳐댔다.
      어쩌면 저렇게 우리말, 일본말, 로씨아말을 잘 할수 있을가 부러워했다.언젠가 궁금해서 아버지한테 “저 봉석의 아부지는 어느 학교를 졸업했기에 외국말을 저렇게 말합두? ”라고  물어보았다.하지만 말수가 적은 아버지는 대답대신 담배만 피웠다.
      봉석의 아버지는 아프다는 핑계로 생산대의 집체로동에 별로 참가하지 않고 집에서 술만 마시는 술주정뱅이였다. 그래도 생산대의 일에 적극 나설 때가 가끔 있었는데 바로 소나 돼지를 잡을 때였다.그런 날이면 시퍼렇게 날이 선 식칼과 도끼을 들고 동네의 도살장격인 운동장 옆 강가 풀숲으로 제일 먼저 나와있었다.동네에서 소나 돼지의 목줄에 칼을 박는 사람은 언제나 봉석의 아버지였다.
       소도 도살당할 걸 아는지 퉁방울같은 눈을 뜨부럭뜨부럭 굴리 뿐 음메~하는 영각소리도 내지 않았다.다만 느침을 질질 흘리며 헉헉 입김만 내뿜고 있었다.소의 도살과정은 그다지 번거롭지 않았다.먼저 소의 네 발목에 바줄을 걸고 앞뒤에서 량쪽 방향으로 잡아당기긴다.그러면 다리가 한데 모여진 소가 평형을 잃는데 그때 한 사람이 다가가서 소의 오른쪽 옆구리를 밀어 왼쪽으로 넘어뜨리면 옆으로 벌렁 번져졌다.소는 왼쪽으로 넘어지면 다리만 허우적거릴 뿐 자기절로 일어나지 못하는 단점을 갖고 있다. 소가 널부러지면 사람들이 욱 달려들어 소를 깔고 네 다리를 바줄로 꽁꽁 묶었다. 그 다음 식칼로 목줄기에서 대동맥을 찾아 찌르면 흉심에서 빨간 피가 샘처럼 흘러나온다.
       피는 큰 대야로 받았다.봉석의 아버지는 손으로 따끈따끈한 피를 훌훌 들이켰다.
       “거 맛 참 좋다”
       손이며 입이며 온통 피로 얼룩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소의 가죽을 벗기는 것도 봉석의 아버지의 몫이였다.사냥꾼의 솜씨는 남달랐다.
       소을 잡을 때만큼은 대장노릇을 하였다.모두가 그의 지휘에 따랐으니 말이다.소의 내장을 들어내기 시작하면 벌써 어른들은 울대뼈가 꿈틀댔고 우리 조무래기들도 입안에서 군침이 돌았다.
       “에라,술충이 올라와 못 참겠다,”
       술병을 먼저 잡는것도 봉석의 아버지였다.벌렁벌렁 들이키고는 간을 날것으로 칼로 쑥 베여서는 소금에 푹 찍어 먹었다.그때부터 가담가담 술을 마셔가면서 일했다.
      “이봐,거 술을 그렇게 랭수를 들이키듯 먹으면 어쩌나?”
      “아따 씨팔,목젖이 방아을 찧어대는데 어쩌겠나?애 젖을 빨듯 하겠나?”
      “그러게 말이오,그렇게 들이키면 우리 먹을게 없잖소?
      “씨팔,먼저 먹는게 임자지 무’
      봉석의 아버지는 누가 뭐라하든 개의치않고 술을 쭉~쭉 들이켰다.
소의 내장을 다 들어내고 나면 콩팥과 취장은 버들나무가지에 꿰여서 장작불에 구웠다.우리 조무래기들은 빨리 구워지기를 눈이 까매서 기다렸다.콩팥과 취장이 익으면 우리에게도 한점씩 나눠준준다는것을 알고 있었기때문이였다.봉석의 아버지는 콩팥과 취장이 노랗게 구워지자 한점씩 베여 소금에 찍어서 애들의 입어 넣어주었다.마치 어미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먹여주듯이.우리 조무래기들이 그보다 더 애타게 기다리는것이 또 있었는데 바로 오줌깨(방광)였다.봉석의 아버지는 오줌깨의 끄터머리에 입을 대고 훅 불어서 뽈처럼 크게 만들어주었다.그러면 우리조무래기들은 “우야-!”하고 웨치면서 뽈처럼 차고 다녔다.그런 날에는 너무 많이 뛰여다녀 밤중에 자다가 이불에 지도를 그려놓군 하였다.
       봉석의 아버지는 동네애들하고도 잘 놀아주었다.얼음강판에서 쪽발구도 같이 타고 공치기도 같이 하였다.또 강변의 자갈우에 마른 나무가지를 주어다 놓고 모닥불을 지펴주기도 하였다.우리는 모닥불가에 빙 둘려앉아 봉석의 아버지의 구수한 이야기를 들었다.선생님의 강의보다 더 재미 있었는데 너무 우스워서 깔깔거리며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봉석네 집 앞뒤마당에는 자두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등 여러가지 과일나무가 참 많았다. 늦여름, 과일이 무르익어 갈 무렵이면 봉석이네 뒤울안의 과일나무 가지가 울바자를 타고우리 집 앞채소밭에 넘어와 있었다.나는 탐스러운 그 과일이 먹고 싶어  살금살금 다가갔다.그런데  키가 모자랐다.에라,모르겠다.먹다 죽은 귀신을 때깔도 곱다고 나는 바자를 타고 올라갔다. 사실 봉석이네와 우리 집 사이의 거리가 지척이여서 마당에 나가면 앞집에서 방귀 뀌는 소리도 다 들렸다.
      “거긴 왜 올라가?다리 부러지려구!”
      나는 그만 봉석의 아버지한테 들키고 말았다.내가 올라가지도 못하고 내려가지도 못해 어정쩡하게 울바자에 매달려 있으면 “얼른 내려 못 와?”하고 호통치며 몽둥이를 들고 달려왔다.평소에도 주정뱅이인 봉석의 아버지를 많이 무서워한 나는 겁이 나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다.내가 울바자에서 멋적게 내려오면 봉석의 아버지는 몽둥이로 우리집 쪽으로 넘어온 과일나무가지를 툭 툭 쳤다.
       “그 건 너네거다.먹어”
       그러고는 뒤집을 지고 집으로 들어가버렸다.나는 신나게 주어 먹고도 모자라 옷섶에 가득 담기까지 하였다.
봉석의 아버지는 사냥도 좋아했다.어느해 겨울, 봉석의 아버지는 산을 타고 한정없이 가다 나니 웃마을의 뒤산에까지 이르렀다. 까만 돼지가 산에서 먹이를 찾고 있었는데 살집이 아주 좋았다.봉석이 아버지는 살금살금 돼지 가까이에 다가가 총을 겨누었다.돼지는 먹이를 찾는데만  열중하다 나니 방어에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땅!드디여 방아쇠를 당겼다.명중이였다. 총알을 맞은 돼지는 쓰러지지 않고 마을쪽을 향해 줄행랑을 놓았다.봉석의 아버지는 메돼지를 잡았다고 좋아서 그 뒤를 쫓아갔다. 그 당시 시골에서는 겨울이면 돼지를 우리에 가두지 않고 방생하였다.겨울에 좁은 우리에 가두어 놓으면 돼지가 추위에 시달려 살이 찌지 않아지만 방생하면 곡식을 거둬들인 밭에서 자기절로 먹이를 찾아 먹을수 있었던것이다.헌데 봉석의 아버저의 총에 맞은 돼지는 메돼지가 아니라 새끼를 밴 집돼지였다.돼지값을 보상해줄 돈이 없어 할수없이 돼지임자한테  집에서 기르던 돼지를 갖다주고 마무리 지었다. ”산돼지 잡으러 갔다가 집돼지를 잃는다”고 결국 봉석의 아버지가 그 꼴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봉석의 아버지는 여전히 총을 메고 사냥을 다녔다.
      “메돼지 잡으려가니 집돼지 잡으려 가니?”
      “메돼지인가 집돼지인가 물어보고 총을 쏴라”
      “이번에는 사람을 잡겠다.”
       그런 봉석의 아버지를 이렇게 놀려댔다.
       봉석 어머니는 키가 작달막하고 감실감실했다. 일자무식이라 돈 계산은 물론 돈의 액수도 모르는 녀자였다.    그리하여 도회지에 남새같은 걸 팔려가면 동네아낙네들의 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물건을 팔고사는것은  옆에서 다 계산해 주었다.얼마를 벌었는지도 몰랐다.그래서 봉석의 아버지가 두부 썰썰이가 날때마다  “래일이 내 생일이오”하면 콩을 갈아 두부를 앗군 했다. 아무튼 봉석의 아버지는 일년에 생일 몇번 쇠였는지 모른다.
한번은 봉석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동네아낙네들과 앉아서 잡담을 하였는데 그만 찢어진 바지틈사이로 남자의 거시기가 빠금히 나왔다. 넉살 좋은 아낙네들한테 한바탕 놀림을 당했지만 봉석의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걔도 답답해 바람을 쏘일러 나온 모양이요”하고 능청을 떨었다.하여 아낙네들은 마을길에서 봉석의 아버지를 만나면“바람 쏘일러 나왔슴두?”하고 놀려주었다. 그때부터 봉석 아버지는 팬티를 안 입고 다닌다는 소문이 났다.
그 넉살 좋은 아낙네들 정희라는 녀인도 있었다.바로 봉석이네 옆집 아줌마였다.그녀는 타향에서 시집을 왔는데 남편이 고자였다.그래서 결혼한지 십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었다.정희는 키도 크고 몸도 실팍하고 엉덩이도 펑펑짐하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요즘 봉석의 아버지는 낫을 들고 뒤산 골짜기로 뻔질나게 다녔다.그 뒤로 사냥개가 따랐다.
어느날,나는 산딸기를 따려  뒤산 골짜기로 올라가었다.산언덕을 오르는데 봉석이네 사냥개가 난데없이 나무숲 속에서 꼬리 저으며 달려나왔다.
     ”엉?봉석이네 개가 왜 여기 있지?별 일이네…”
     나는 궁금해서 개의 뒤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갔다.아!나무그늘 아래에 봉석의 아버지와 정희아줌마가 나란히 누워있었다. 옷은 벗어서 깔았는데 두 사람 다 알몸이였다.나는 무더위에 옷을 모두 벗어나 보다하고 생각하였다헌데 봉석의 아버지는 거친 손이 정희아줌아의 하얗고 큰 젖무덤을 만지고 있었다.여자의 몸은 참 예뻤다.어린 나이에 여자의 몸을 처음 훔쳐봤고 또 이성지간의 정사도 목격하였다.야릇하고 신기해서 심정이 콩콩 뛰였다.문득 인기척에 고개를 든 봉석의 아버지하고 눈길이 딱 마주쳤다. 정희아줌마는 당황해서 얼른 옷으로 몸을 기리우며 어쩔바를 몰라했다.나는 그만 조용히 돌아섰다.이런 일을 아버지, 어머니하고 말을 할수도 없었다.그렇게 비밀이 되여 지금까지 지켜왔다.
      언제가부터 정희아줌아는 배가 좀씩 아파나고 토하기 시직했다.입맛도 없다면서 밥도 먹지를 못했다.도회지 병원에 몇번 다녀오더니 병도 치료하고 보약도 쓰겠면서 타곳에 있는 친정집으로 떠나갔다.정희아줌아는 근 일년만에 다시 돌아왔는데 태여난지 서너달 되는 여자애를 품에 안고 있었다.말로는 양딸을 입양했다고 했다.근데 정희의 젖통이 해산을 한 녀자처럼  사발만큼 부풀고 녀자애도 입양한 남의 자식치고는 “양엄마”를 많이 닮았었다.그 여자애를 봉석의 아버지가 남달리 고와했다.아마 자기 자식보다 더 고와하는것 같았다.동네의 군일에 갔다가도 사탕을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와서 쥐여주군했다.
       그러던 어느 날,고사리를 캐러 갔던 정희아줌마가 손잡이뜨락또르를 타고 오다가 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쳐  운신이 힘들게 되였다.봉석의 아버지가 들락거리는 차수가 많아질수록 정희아줌아네 부부간의 싸움도 잦아졌다.때로는 우리집까지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나중에 부부가 리혼하였는데 정희아줌마는 애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가버렸다.정희아줌아가 떠나는 날,마을사람들이 바래주었다.배웅하러 나온 사람들속에는 봉석의 아버지도 있었는데 두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있었다.그날 술에 취한 봉석의 아버지는 여느때와 달리 주정을 부리지 않고 조용히 집으로 들어갔다.
       후에 봉석이네는 마을의 제일 뒤쪽 작은 언덕우에 새집을 짓고 이사를 갔다.집주위에 자두나무 살구나무등 과일나무를 가득 심었는데 채소를 심을 땅도 남기지 않고 창문앞까지 점하였다.집 주위에 울바자를 둘려 세우지 않아 닭과 개들이 자유로이 드나드는 곳이 였고 여름더위를 피해 가는 곳이기도 하였다.바람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봄이면 꽃이 만개하여 집이 마치 꽃속에 들어 앉은것 같았다.몇년이 지나자 과일나무숲에 가리워 아예 집이 잘 보이지 않았다..무더운 여름날이면 과일나무  그늘아래에 돗자리를 펴놓고 낮잠을 자는 봉석의 아버지를 자주 볼수 있었다.언제부터인가 하모니카 소리도 들려왔다.그다지 잘 불지는 못했지만 어딘가 구슬픔이 묻어있었다.
봉석네는4형제였는데 그 어느 누구도 중학교을 졸업하지 못했다.
       봉석이는 나보다 한살 더 많았지만 나와 한 반을 다녔다.그는 공부를 못해 늘 같은 또래의 애들한테 따돌림을 당했다.하지만 나보다 키는 한 뽐이나 더 커서 주먹으로나 힘으로 나는 그의 상대가 못되였다.
소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이였다. 문득 봉석이가 자기네 집에 아버지가 마시다가 남은 술이 있다고 했다. 어른들이 마시는 술이 도대체 무슨 맛인지 궁금했던 차라 우리는 술을 마져보기로 했다. 봉석이가 집에 가서 집의 술을 훔쳐오고 나와 경수는 자기 집 터밭에서 오이며 도마도며 마늘이며를 가득 가져왔다. 마침 닭우리에 들어가니 닭알도 두알 있었다. 우리 셋은 술과 안주를 챙겨가지고 강변으로 달려갔다. 동네형들이 하는것을 본따서 닭알에 진흙을 두텁게 발라 모래에 살짝 파묻었다.그리고는 마른 나무가지를 주어다가 그우에 불을 피웠다.
       닭알이 익기를 기다리는 사이 우리는 강물에 풍덩풍덩 뛰여들어가 미역을 감았다.한참 물속에서 노닐다가 나와서 불 꺼진 모래를 파헤치고 진흙속의 닭알을 꺼내보니 신통히도 잘 익었다. 우리 셋은 알몸뚱이로 빙 둘려 앉아 어른들이 하는식대로너한모금 내 한 모금씩 병나발을 불었다.
       “이보게, 빨랑빨랑 들라우”
       “쭉~쭉~ 마이우”
       “거 술 맛 좋구만”
       “요럴 때 류서기(봉석이 아버지)가 있었으면 영 좋겠다이”
       “킥~킥~”
       훔쳐온 초담배도 한대씩 물고 연기를 푸푸 뽑아댔다. 술맛이 그렇게 달콤하지않고 쓴것임을 처음 알았다.
얼마간 마시니 머리가 뗑해났다. 우리 셋은 뜨거운 모래우에서 널부러져 얼마나 오래 잤는지 몰랐다. 청개구리가 사타구니의 알쪽을 물어도, 메새가 알쪽을 부리로 쪼아대도 모르고 정신없이 잤다. 깨여나니  해가 이미 서쪽으로 기울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였다.우리의 몸뚱이는 해빛에 감실감실하게 그을었다.
그 일로 봉석의 아버지한테 욕을 먹을가봐 두려워했는데 오히러 허허 웃었다.
        “술맛이 어떻더냐?술 먹으니 좋더니?털도 안 난 빨간 놈들이 벌써부터 술을 쳐먹고,못된 자식들!,술이란 말이야,좆이 발가진 다음 먹는거여”
        그후 나는 외지에 가 고중을 다니고 대학을 다니게 되면서 오래동안 봉석네를 보지 못했다. 가끔 풍문으로 소식을 들었을 뿐이였다. 봉석의 어머니가 돌아간 이듬해에 정희아줌마가 딸을 데리고 고향마을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얼마전에 돌아간 고자남편의 묘지에도 갔다 왔는데 그날 봉석 아버지는 또 취했었다고 한다. 이것은 오랜전의 일이 아니였다…
       이튿날, 나는 차를 가지고 역에 마중을 나갔다. 봉석의 아버지는 반신이 마비상태여서 운신이 힘들었다. ”택…택…” 하고 내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발음이 잘되지 않아 떠듬거렸지만 반가워서 한 손으로 내 손목을 꽉 잡았다. 그리고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반가움 때문였을가, 아니면 그 옛날 내가 정희아줌마와의 비밀을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였을가? 봉석의 아버지는 입은 삐뚤어졌지만 한줄기 미소를 띠고 있었다. 텁수룩한 수염 사이로 누런 이발을 드러내고 말이다.
       어제 신경내과에 근무하는 동창생한테 부탁해놨더니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앞뒤로 뛰여다니며 검사와 입원수속을 해드리고 나니 점심시간이 다되였다. 나는 신세를 졌다면서 식당으로 가자고 팔목을 잡아끄는 봉석이를 만류하고 돌아와 직장의 구내식당에서 혼자서 늦은 점심식사를 꾸역꾸역 하였다.
며칠후 봉석이가 찰옥수수쌀 한자루를  낑낑거리며 메고 왔다.
      “옥수수죽을 해먹어, 맛 좋을 거야.”
       봉석이는 이마에 돋은 땀을  훔치며 어눌하게 말했다.
       나는 봉석이를 데리고 병실로 찾아갔다. 가는 도중에 구내상점에 들려 과일을 한 바구니 샀다. 그리고 꽃바구니도 샀다. 문득 예전에 봉석네 자두, 살구가 참 맛이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만 굳어지고 말았다.  나에게 가장 먼저 여자의 알몸을 보여 주었던 여자 – 정희아줌마가 와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매우 반가와했다. 얼굴에 고된 세상살이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지금 연길의 근교에 살고 있는데 외국에 가서 몇년 있었다고 한다. 봉석의 아버지는 머리결도 말끔하고 텁수룩하던 수염도 깨끗이 밀었다. 병실에는 생화향기가 풍겼다.  옛날 마당밭의 꽃향기를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봉석의 아버지의 눈에서는 실날같은 정기가 돌았다.
     나는 병실을 나오면서 병상에 누워있는 봉석의 아버지한테 작별인사를 하였다.
     “치료를 잘 받고 얼른 일어납소. 건강을 되찾아서 반기던 술도 드셔야 합지.”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떡이며 손가락으로 오케를 내밀었다. 봉석의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백합꽃 같았다. 옛날에 술을 마이고 노래하면서 허리춤, 엉덩이춤, 닭춤을 훨훨 추던 봉석의 아버지를 보는 듯 했다. 문득 봉석의 아버지아 정희아줌마가 정을 나누었던 그 나무숲이 떠올랐다. 내 손목을 잡고 있는 봉석의 아버지 – 류서기도 옛날을 갈망하고 애원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 날이 다시 올 수 있을는지? 그의 가냘픈 웃음 뒤에 숨겨진 게슴츠레한 눈빛에서 나는 분명히 엿보았다. 퇴색하기 싫어하는 희나리 같은 마음을…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요즘은 로인회관이 썰랑한 게 별나다. 그래도 류서기가 있을 때는 화투치기라도 해서 웃을 일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웃을 일이 없어. 재미 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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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5 엄마꽃 2018-11-13 0 59
24 학교에는 왜 가야하는가 2018-10-12 0 156
23 아버지는 술주정 중 2018-08-11 0 398
22 시작이 절반 2018-01-26 0 456
21 못난 돌의 빈자리 2017-04-22 0 1219
20 가을 향기/김택만 2017-03-17 0 539
19 푸른 들에 가을이 온다/김택만 2017-03-17 0 504
18 꽃의 맛/김택만 2017-03-09 0 428
17 그리움이 머문자리/김택만 2017-03-09 0 371
16 집을 지으렵니다/김택만 2017-03-09 0 467
15 꽃송이같은 어머니 손목 잡고/김택만 2016-10-30 0 1455
14 비가 내리는 날 창가에는 2016-05-26 0 591
13 아버지 삶만큼 살고 싶다/김택만 2016-05-15 0 1400
12 어머님의 청춘 2016-05-03 0 653
11 강물에 뜬 달/김택만 2016-04-14 0 583
10 나만의 하늘/김택만 2016-04-14 0 592
9 나는 어머니의 꽃다운 청춘을 도둑질 했네 2016-01-21 0 910
8 우리 서로 마주보는 찻잔이 되자 2016-01-21 0 749
7 눈이 온 날/연이 2016-01-20 0 1062
6 心好不如德好 2016-01-20 0 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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