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찬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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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술주정 중
2018년 08월 11일 08시 38분  조회:326  추천:0  작성자: 아침은 찬란해
아버지는 술주정
 
                                    김택만
 
우리 마을에서는 해마다 추석이면 소를 잡았었다.래일은 추석이라 오늘은 소를 잡는 날이다. 아침부터 마을이 기쁨으로 들떠있었다.어제부터  어느 소를 잡는다고 입소문이 돌고 있었다. 아버지도 좋아하시고 어머니도 기뻐하시고 나도  기분이 동동 떠있었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숫돌에 식칼을 시퍼렇게 갈고 계셨다. 어머니는 소고기를 담아 함지부터 씻느라 분주하시고 나는 구수한 고기 생각에 잠겨있었다.그 당시 생산대에서는 추석에 소를 년말 총결과 음력설이면 돼지를 잡았으니 일년가도 고기를 몇번 먹어 못본 시절이였다.
오늘 술을 많이 마시지 맙소!
아침식사를 하면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신신당부를 하였다.
알았어,
아버지는 그냥 심드렁하게 대답하셨다.그러면서 칼를 들고 강변으로 걸어가셨다. 나도 아버지의  뒤모습을 보면서 제발 술을 많이 마시지 말았으면 하고 빌어보았다.
마을 강가의 풀숲은 도살장인 셈이다. 어른들은 소를 잡아놓자마자 술병을 돌리며 술을 마셨다. 콩팥이나 췌장같은 것은 불에 구워 안주로 했다. 간도 날것으로 소금에 찍어서는 입에 넣군하였다. 경사가 난것처럼 구경하는 우리 조무래기에게도 고기 한점씩 입에 넣어주고 오줌개(방광) 바람을 넣어줬다. 그러면 그것을 뽈처럼 차고 다녔다. 어른들은 소고기를 나누어주고 나서 아무개네 집에 가서 또 술추렴을 하였다.아마 그 날은 동네 남정들이 모두가 술이 거나하게 마이는 날이기도 하였다.하긴 일년에 한번만 소를 잡는 날이니 경사가 따로 없었다.
우리 조무래기들은 마당에서 실컷 뛰여놀다가 배가 촐촐해나고 때가 되였다 싶으면 집으로  달음박질쳐갔다. 어느 집에서나 연기가 몰몰 솟아올랐다. 나도 고소한 고기 생각에 가쁘게 달려가다가도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이면  오리걸음을 했다.소나 돼지를 잡는 날이면 아버지가 취하는 날이기도 하였다. 아까 강변에서 아버지가 마시는 보았고 술추렴하는 집에 가시는 것도 보았기 때문이였다.아버지가 술에 취한 날이면 대부분는  어머니하고 싸우는 날이기도 하였다. 집앞까지 거의 왔는데 그릇이 깨지는 소리인지 유리가 깨지는 소리인지 와닥닥 와닥닥 어지럽게 들려왔다. 가슴이 콩콩 뛰고 한줌만 해졌다. 다행이 우리집이 아니라 앞집이였다.우리앞집 아버지는 소문난 술주정뱅이였는데 그 집에는 반반한 집그릇이 없다싶이  하였다.
집마당에 들어서니 아버지의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기를 삶느라 불을 지폈기에 출입문도 창문도 활짝 열어 놓아서 고소한 고기냄새가 주린 창자를 자극했다. 어머니는 익은 고기를 썰어놓느라 여념이 없었다.불을 때여 고기를 삶느라 이마에는 땀이  흘려내렸다. 배가 고픈 것도 있겠지만 아버지가 깨여나시기 전에 빨리 먹어야 한다는 생각부터 앞었다. 일어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수 없기 때문이였다. 어머니가 퍼주는 소고기 국물에 볼이 미여지게 먹으면서 어머니의 낯색부터 살펴본다. 굳어지고 프르딩딩하시면 좋은 일이 없는것이다. 어머니의 얼굴 색갈과 직결되여 있기때문이다. 나는 어머니의 낯색갈을 보고 십중팔구는 맞출수 있었다. 아버지의 술냄새와 어머니의 낯색갈을 살피는 것이 나의 본능으로 되였다.그냥 아버지가 깨여나지 말고 주무셨으면 좋으련만.
아버지가 술에 취한 날이면 싫었다.우리 집에서는 아버지기 술에 취했을 때가 아니라 아버지가 술을 깨신 다음 다툼이 일어났다. 다툼도 항상 어머니가 먼저 걸었고 잔소리를 많이하기 때문이였다. 간혹 밖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오는데 집안에서 다투면 나는 울바자밑에서 고개를 숙이고 앉아서 나무가지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병아리도 그려보고 강아지도 그려보고 나비도 그려보고 비둘기도 그려보고 구름도 그려보고 아담한 집도 그려봤다. 비가 내리면 마루에 쫑그리고 앉아 비를 피했다. 어미닭의 날개속으로 병아리들이 파고 들면 어미닭은 따스하게 품어준다.
사실 아버지의 주량은 적었다. 아버지가 13살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할머니하고 동생의 가장이 되였다.
추석날이면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무덤앞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나는 죄인이야, 자식으로서 효도를 못한 못난 놈이지!
하면서 아주 침통해 하셨다.
 
1945 17살에 해방군에 참군하여 연변의 삼도만토비숙청전부터 장춘전역,료심전역 그리고  장강을 뛰여넘어 남경해방전역도,해남도해방전역도 참가하시였다.1949년 조직의 명령으로 조선인민군에 편입되였고 1950조선전쟁에도 참가하고 그해 10월 전략후퇴시기에 전쟁포로가 되여 전쟁협정이 체결되고 포로교환으로 돌아올때까지3년동안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보냈다. 그후 조직의 엄격한 조사를 받고 군에서 모든 직무를 해직당하고 고향시골에 돌아와 농군이 되였다.농짝에는 천으로 꽁꽁 싼 군공메달(해방전쟁군공 3.인민군공훈메달 1) 4개를 깊숙히 넣어두고 있었지만 언제 한번 깨내보지도 않았고 더구나 달고 다니지도 않았다.( 4개메달이 포로수용소를 거치며 어떻게 간직하여 왔는지 말씀하여 주시지 않아서 오늘까지도 모른다). 간혹 공사간부들이 찾아와서 조사를 할때면 그때 포로소용소에서 폭동사건으로 많는 포로들이 목슴을 잃었다는건만 귀동냥으로 들은적이 있다.
실면하시고 명절이거나 전쟁기념일같은 날이면 우울해 하시였다. 해마다 음력설이 되면 마을에서는 참군하였거나 혁명렬사유가족집앞에 붉은꽃을 달아주었지만 우리집앞에는 붉은꽃을 달아준적이 없었다.
동네 남정들처럼 밭갈이 논갈이 힘든 일은 못하여서 생산대에서 아낙네들과 함께 잡일을 하여 받는 공수도 항상 적었다.아낙네들 일하는 무리에는 아버지의 모습이 끼울때가 많았다.입쌀이 쎈 아낙네들로부터 놀림도 당하시였다.그 속에 있는 어머니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술을 크게 반가워하지는 않았지만 동네사람들과 마실 때면 권커니 작커니하며 마시였다. 남들이 권하는 술을 사양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쓰러지는 것도 아버지였다. 술좌석에서 남들과 다투는 일은 번도 없었고 주정을 부린 적도 없었다. 다른 분들은 술에 취해 얼굴을 붉히며 다투어도 말이다.
아버지는 취기가 오르면 옹헤야! 불렀고 구들에서 춤도 추셨다.
 
옹헤야 옹헤야 어절시구 옹헤야 저절시구 옹헤야
올해 대풍들어 옹헤야
아들에겐 운동화 옹헤야
딸년에겐 색동저고리 옹헤야
네편네겐 분통 옹헤야
 
술판에서 언제나 옹헤야”를 부르고 또한 부르셔서 별명이 옹헤야”가 되였다.
 술이 과하다 하면 주정을 부리기 전에 자리에 쓰려져  주무셨다. 술에 취하면 어디든지 불문하고 아무 곳에나 쓰려져 주무셨다. 남들은 술기운에 광기를 부리지만 아버지는 그냥 쓰려졌다. 그러면 남정들이 아버지를 부축해서 오거나  가끔은 아버지가 쓰려져 주무시게 되면 동네분들이 와서 알리기도 하였다. 어디서 쓰려져 잔다고. 그러면 어머니와 나는 녹초가 아버지를 겨우 모셔다 집에 눕혔다. 그날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는 날이기도하였다.그때 난 술을 증오하였고 나 어른이 되면 술을 안마일것이라고 맹세도 하였다.
 아버지가 취해서 들려오게 되면 술을 어머니가 싸움을 건다.농사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주제에 술에 취해 쓰러져 자는 꼴을 보기 싫어하시였다.어머니의 눈에는 남정으로 보이지않았었다.
싸움은 언제나 어머니의 승리로 끝났다. 아버지는 집을 나가거나 아무 없이 앉아 계셨다.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8 년상이신데 어머니가 20살에 시집을 왔었다.
병신아, 그렇게 꼬꾸라질 때까지 술을 퍼먹어? 동네가 창피해서 어디 살겠나?
어머니의 넉두리와 욕설에 참고 계시던 아버지가 욱하고 다투셨다. 말씀이 적고 착한 아버지가,동네 그 누구하고도 다투지않는 아버지가 어쩌다 흥분하면 성난 소처럼 크게 싸우는것인데 식장아니면 유리창이 깨질때가 있었다.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하려는 아버지의 팔을 내가 잡았다. 예전에도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려서 어머니의 얼굴이 퍼렇게 멍든 적이 있었다. 울면서 팔을 잡아 당겼다. 허름한 아버지의 속옷 어깨부위가 그만 찢어졌다. 서럽게 울었고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아버지의 옷을 찢어놓은 죄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찢어진 팔에서 흉물스러운 크나큰 흉터를 보았기때문이다. 전쟁터에서 파편에 맞은 흉터이였다. 불편해하시는 아버지의 , 아픈 손을 내가 아프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 흉터는 아버지의 자존심이였다. 아버지가 그토록 외롭고 불쌍해보였다. 아버지는 돌아서서 두툼하고 껄껄한 손으로 나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때 아버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았다.
아부지도 남자임더”
하고 나는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돌아서서 아무 없이 집을 나가셨다. 아마 집뒤 느릅나무아래에 앉아 계시리라. 그후 아버지는 술을 드시지 않았고 간혹 술을 드셔도 조금만 드셨고 쓰려져 자는 일도 없었다. 될수록 술자리를 많이 피하셨다.
그러시다가 일찍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력사책를 즐거본다.그 중에서도 해방전쟁과 조선전쟁에 관한 책을 많이 본다.혹 텔레비죤이나 책에서 그 당시 전쟁에 참여하였던 분들의 사적을 볼때면 저 속에도 아버지도 있었겠지하는 나름대로 생각을 하여본다.포로라는 그늘에 모든 공로가 파묻혀있었다.
농짝 깊숙히 있던 군공메달이 한번도 빛을 보지못했었다.
옛날 남들은 술상에서 전쟁터에서의 말들을 많이 하지만 아버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었다.가끔 어린 나하테는 술을 드시후면 조금씩는 하였다.전쟁터에서 보다 포로수용소에서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그리고
허약한 몸과 불편한 손으로 농사일을 하면서,자그막한 술잔의 포로에서 , 마귀처럼 따라다니는  그 그림자에서 뛰쳐나오기 싶어 몸부림쳤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도 나도 그리고 많는 사람들이 그것을 알려고도 하지않고 외면한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그리고는 ~ 잠이 들었다.
달콤한 꿈속에서 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옹헤야”를 성수나게 부르시며 너울너울 학춤을 추신다. 그러다가 그릇을 깨고 창문을 깨신다. 그리고는 아주 기뻐하신다. 속이 시원하고 거뿐한가 보다.
아버지는 오늘도 술주정 중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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