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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최동일 성장소설집-아직은 초순이야

아직은 초순이야
2012년 04월 24일 08시 39분  조회:1289  추천:0  작성자: 동녘해

 


 

거울속에서 둥글둥글한 까까머리가 내다보고있었다. 웅진이는 순간 자기의 머리통이 수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점을 잃은듯 퀭하니 자신을 바라보고있는 외까풀눈은 슬픈듯, 담담한듯 뭐라고 딱히 이름을 지을수가 없었다. 웅진이는 천천히 손을 올려 으스러지게 두눈을 비벼댔다. 약간 통증을 보이던 눈이 잠간새에 지끈지끈 빠지는듯 아파났다.
“왜? 마음에 안 들어?”
다른 손님의 머리를 깎다말고 불안한 표정으로 웅진이를 살피던 노랑머리리발사가 낮은 목소리로 짤막하게 물었다. 웅진이는 눈굽을 비벼대던 손길을 멈추고 소리나는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때까지도 노랑머리리발사는 웅진이를 지켜보고있었다. 웅진이는 노란 불티가 탁탁 튀는듯한 두눈을 슴뻑거리며 노랑머리리발사를 힐끗 쏘아보고는 인차 머리를 외로 탈며 “아니.” 하고 칼로 두부 자르듯이 대답했다.
“10원이야, 5원만 받을게.”
리발사의 목소리도 잘 드는 칼로 싹둑 무우를 자르듯이 간결했다. 웅진이는 호주머니에서 구겨진 5원짜리 돈을 집어내여 노랑머리리발사에게 던져주고는 머리를 푹 숙이고 볼부은듯 씨엉씨엉 미장원을 걸어나왔다. 층집들 창문으로 빠져나온 희미한 불빛들이 괴괴하게 미장원마당을 비춰주고있었다. 희미한 불빛만치나 마음에도 뽀얀 운무가 서린듯 침침하기 그지없었다. 웅진이는 오른 주먹으로 말없이 가슴팍을 두어번 툭툭 치다가 오른손을 쑥 올려 머리통을 쓸어보았다. 탐스럽게 한줌 팍 쥐여오던 머리칼은 오간데 없고 까칠한 느낌만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전률 같은 그 느낌은 오른팔을 타고 쑥 올라와 페부로 날아들더니 인차 가슴을 탁 치며 “흑―” 하고 한숨을 톺게 했다. 웅진이는 잠간 두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별 하나 없이 캄캄한 밤하늘에서 뿌연 초생달이 어디론가 유유히 흘러가고있었다.
(아직은 초순인가봐.)
삼검불같이 엉켜진 머리속으로 채 여물지도 못한 초생달이 비집고 들어오려는것이 웅진이로서도 야릇하게 생각되였다. 웅진이는 손등으로 번갈아가며 두눈을 비비다가 다시한번 쪼각달을 쳐다보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어디라 딱히 방향도 없이 거의 본능적으로 걸음을 옮겨놓으며 웅진이는 두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옴을 느끼고있었다. 무던히도 힘에 부치는것 같았다. 웅진이는 선채로 “후―” 하고 긴 한숨을 토해내고는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옮겨 가로수아래에 설치되여있는 간이의자로 다가갔다.
간이의자는 툭하니 무너져내리는 웅진이의 엉덩이를 아무 부담없이 받아주었다. 웅진이는 천근같이 무거워나는 엉덩이를 지그시 간이의자에 눌러 박고는 두손으로 넙적다리를 꾹 누르고 수박 같다고 생각되던 머리통을 무게 그대로 아래를 향해 떨어뜨렸다. 목이 빠듯하게 당겨졌다.
(내 머리통이 원래 이렇게 무거웠었나?)
그 와중에도 이런 유머스러운 생각이 스멀스멀 머리를 쳐드는것이 스스로도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웅진이는 픽 하고 허구픈 웃음을 날리며 입안에서 혀끝을 방향없이 굴리다가 척하고 머리를 들었다. 수박 같은 머리통에 고여있던 수박속같이 빠알간 피가 순간적으로 아래를 향해 흘러내려서인지 갑자기 눈앞이 까맣게 흐려졌다.
“찌릉찌릉―”
문뜩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넙적다리에서 전률 같은것이 느껴졌다. 까아만 공간을 타고 날아오는 그 전률은 웅진이에게 묘한 흥분을 던져주고있었다. 웅진이는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넙적다리에 가져갔다. 호주머니안으로 넙적다리우에 놓여진 핸드폰이 찌릉찌릉 진동을 하고있었다. 웅진이는 오른손을 호주머니안에 쑥 집어넣어 요동을 치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막에는 “깜찍이”라는 세 글자와 함께 예쁜 얼굴모형이 튀여나와 찌릉찌릉하는 박자에 맞추어 혀를 홀랑거리고있었다.
“은영이!”
웅진이는 신음 비슷이 핸드폰저쪽에 서있을 “깜찍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찌릉― 찌릉―”
핸드폰은 다시 웅진이를 불러댔다. 웅진이는 이번에도 선뜻이 핸드폰을 받을념을 못하고 애꿎게 오른손바닥으로 핸드폰소리입구를 막아 쥐고 툭툭 튀는 가슴쪽으로 당겨갔다. 끝없이 울어대던 핸드폰이 입을 다물었다. 웅진이는 “흑―” 하고 큰숨을 들이쉬고는 천천히 핸드폰을 내려서 보기 좋게 눈앞으로 가져갔다. 이때 핸드폰이 또 한번 “찌르릉” 하고 울렸다. 웅진이는 흠칫하며 어깨를 떨다가 정신을 가다듬어 핸드폰에 눈길을 주었다. 깜찍이로부터 문자가 날아와있었다. 웅진이는 약간 떨리는 손끝으로 문자함을 열었다. 막에는 달랑 “?”표만 찍혀져있었다. 웅진이는 한참이나 “?”표를 내려다보다가 핸드폰을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지그시 두눈을 감았다.
미장원 거울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있던 수박 같은 까까머리가 눈앞에 떠올랐다. 순간 웅진이는 확∼ 얼굴에 열이 오르는것을 느꼈다. 가슴이 툭툭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웅진이는 눈을 감은 그대로 지그시 아래입술을 깨물며 오른손바닥을 쫙 펴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꼭 눌러주었다.
“웅진아, 오늘저녁이다. 알았지? 내가 전화 할가? 아님 네가 전화 할래?”
은구슬 굴리는듯한 은영이의 목소리가 방불히 귀전에서 울리는듯싶었다. 웅진이는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렸다.

*

3학년 “제1차 학부모회의” 통지를 받은것은 오전 4번째 시간이 끝나서였다. 숨막히게 하는 1년간의 장거리달리기경주에서 첫 려정을 점검하는 순간으로 되는것이였다. 모두들 손에 땀을 쥐고 담임선생님의 약간은 촌스럽다고 생각되는 빠알간 입술을 지켜보고있었다. 안경너머로 작은 눈을 깜빡이며 한참이나 동학들을 참빗질하던 선생님의 입술이 드디여 열렸다.
“오늘은 토요일, 오전공부만 합니다. 대신 잊지 말고 부모들께 통지를 해야겠습니다. 학부모회의는 오늘오후 4시에 열립니다. 부모들중 한분은 꼭 와야 되겠습니다. 동무들의 현재정황을 부모들도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만 약을 써서 동무들을 구할수 있습니다. 우리 학급에서 절반을 휠씬 넘기는 동무들은 약을 써야 합니다. 약을 써도 상당히 써야 할듯합니다.”
여기서 선생님은 다시한번 작은 눈을 껌뻑이며 안경 너머로 동학들을 쓸어보았다. 마치도 어느 구석에 어떤 자세로 웅크리고있어도 단번에 찾아낼듯한 기세였다. 웅진이는 그 눈길이 싫어서 머리를 책상머리에 대고 숨소리마저 크게 내지 않으려고 고심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빠알간 입술은 금방 기름을 쳐서 잘 여닫기는 문접시마냥 너무도 자연스럽게 열렸다 닫혔다 하면서 가시있는 말들만 골라냈다.
“네, 얼굴이 붉어지면 그렇게라도 머리를 책상에 틀어박고 반성을 해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집에서 어떻게 동무들을 뒤바라지하고있고 또 어떤 희망을 동무들에게 걸고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시험성적이 부모들의 기대에 못미쳐도 너무나 못미치는 동무들이 참 많습니다. 얼굴이 붉어져야 합니다. 최저로 얼굴이 붉어져야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다. 고중입시가 1년도 못 남았는데 이런 정신상태를 가지고 이렇게 시험을 맞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3학년에서의 첫 월고를 이 지경으로 쳐놓고 얼굴마저 붉히지 않는다면 그를 어찌 사람이라 하겠습니까? 머리칼이 길다고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까?”
교실에서 폭소가 터져올랐다. 딱히 누구라고 이름은 거론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의 마지막 그 한마디는 예리한 갈퀴가 되여 웅진이의 가슴을 아프게 긁어댔다.
웅진이는 호주머니안에 손을 넣어 죽어라고 허벅지를 움켜잡았다. 진한 아픔이 느껴졌다. 머리에서 “웅―” 하고 소리가 나며 더는 선생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다.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들었다. 머리에서 “웅―” 하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 다음에 느껴지는 굳어진 증상이였다. 웅진이는 아래우 입술을 번갈아가며 죽어라 빨아댔다. 가슴이 턱턱 막혀왔다. 더부룩한 머리카락안으로 뽀질뽀질 진땀이 배여오르는것도 직감으로 알수 있었다. 고문이 따로 없었다. 선생님의 마디마디가 고문으로 느껴졌다. 웅진이는 빨리 이 고문에서 풀려나고싶었다.
“한칼에 한놈을 죽였다. 한칼에 두놈을 죽였다. 한칼에 세놈을 죽였다…”
웅진이는 잘근잘근 입술을 씹으며 속으로 이렇게 주문처럼 외워나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드디여 선생님의 고문도 끝나고 동학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웅진이도 채는듯이 가방을 집어들고 바람처럼 교실을 뛰쳐나갔다. 그렇게 교정을 벗어나서 큰길에 들어섰다.
9월치고는 찌물쿠는 날씨였다. 웅진이는 한 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자전거를 밀고 가로수 그늘을 찾아 길섶에 들어섰다. 약간 서늘함이 느껴졌다. 침침하던 가슴이 열리는듯했다. 웅진이는 호― 가는 숨을 내쉬며 머리를 돌려 오던 길을 돌아다보았다. 은영이가 잰걸음으로 쫓아오며 손을 흔들어보였다. 기분이 상쾌해났다. 괜히 가슴이 떨려왔다. 웅진이는 은영이를 향해 오던 길을 조여가며 사뭇 여유가 있는척 휘파람을 불었다.
“야, 머리칼이 길다고 사람이라 생각하니?”
스포츠머리를 한 길수가 은영이를 지나 자전거를 타고 씽― 하니 달려오더니 웅진이옆을 지나며 시까스르듯 한마디 했다. 웅진이는 곱지 않게 길수를 쏘아보며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머리칼에 가져갔다.
참빗이라도 사르르 흘러내릴듯이 함치르르한 탐스러운 머리칼이 부드럽게 손끝에 느껴졌다.
어깨에 닿일듯말듯 찰랑이는 머리칼은 웅진이의 자랑이였다. 어찌나 윤기가 흐르는지 녀자애들마저 “너 땋고 다니지 그러니?” 하며 괜히 질투를 하고 시비를 걸어왔다.
머리칼은 또 웅진이에게 시끄러움을 불러오기도 했다. 담임선생님만 해도 그랬다. 언제나 무슨 불쾌한 일이 있을 때면 웅진이의 긴 머리칼을 두고 시비를 했다. 그때마다 웅진이는 “날 죽여주쇼―” 하는 마음가짐으로 억지로 버텨왔다. 그래도 버티기 바쁠 때면 미장원에 가서 제딴에는 제일 솜씨가 좋다고 생각되는 노랑머리리발사에게 부탁해서 정성들여 몇번 가위질을 했던것이다.
“머리칼이 길다고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까?”
웅진이가 생각해도 오늘 선생님의 마지막 한마디는 너무한듯싶었다.
(사람이 아니면 그래 짐승이라도 된단 말인가? 어쩜 선생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수 있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입에서 겨불내가 확확 풍겨올랐다. 웅진이는 걸음을 옮기면서 한 손으로 으스러지게 머리칼을 움켜잡았다. 어찌나 손에 힘을 주었던지 두피가 빳빳하게 당겨지며 진한 아픔이 느껴졌다.



“왜 그래? 머리가 아프니?”
웅진이의 옆에 다달은 은영이가 손끝으로 웅진이의 팔을 톡 치며 물었다.
“아니.”
웅진이는 움켜쥐였던 머리칼을 놓으며 짧게 대답했다. 은영이의 입가에 고운 웃음이 맺혀 찰랑이고있었다. 언제나 봐도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웃음이였다. 하지만 그 순간만은 그 웃음을 바라볼수가 없어 눈길을 돌리며 다시한번 손가락을 쫙 펴서 자기의 머리칼을 훑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은영이가 맑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래? 머리칼에 무슨 이상이라도 생겼니?”
“아니.”
“그럼 왜 아까부터 머리칼을 움켜쥐고 그러니?”
“괘…괜히 그…그러지 뭐.”
웅진이는 자기의 불편한 심사를 들킨것 같아서 은영이의 눈길을 피하며 더벅거렸다.
“웅진이, 너. 크크크… 아까 선생님의 말을 듣구 맘이 불편해서 그러지? 맞지? 참, 넌 귀구멍이 너른것이 흠이라니까. 아까 선생님이 뭐 너의 이름을 지명한것도 아니구…”
“이번 월고, 너 성적 괜찮겠지?”
웅진이는 부끄러운듯 눈길을 내리깔며 슬쩍 화제를 돌렸다.
“나? 쳇. 노력한만큼 나오겠지 뭐! 넌 어떨것 같니?”
웅진이는 은영이의 물음에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자신없이 도리머리를 했다. 그러는 웅진이의 모습을 지켜보던 은영이는 어깨를 톡 치며 말했다.
“이러구보니까 너 정말 머리칼이 또 길었구나. 어깨를 넘으려네. 웅진아, 오늘저녁 너 머리를 깎지 않을래? 내가 함께 가줄게.”
“정말?!”
웅진이는 그러는 은영이를 고마운 눈길로 바라보며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참, 이제 시작이지 뭐. 월고, 월고. 이놈의 월고가 우리를 숨 못 쉬게 할거다. 으― 어쩜…”
은영이는 공부에 대한 말이 나오면 언제나 그러듯이 약간 볼부은듯한 목소리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웅진이는 그러는 은영이가 참 고맙다고 생각되였다. 은영이가 있어서 힘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만치 자기의 못난 모습을 은영에게 보이는것이 미안스럽기도 했다. 웅진이는 두손으로 머리칼을 빗어 넘기며 은영이를 향해 살짝 윙크를 보냈다. 은영이도 웅진이를 향해 주먹을 흔들어보였다.

*

학부모회의에 갔다 오신 어머니의 얼굴은 천둥번개전의 검푸른 하늘이였다. 웅진이는 속으로 “아차!” 하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곧 무슨 일이 터지리라는것은 어머니의 얼굴이 너무도 생동하게 말해주고있었다. 웅진이는 자신없이 머리를 푹 숙이며 “오셨어요?” 하고 한마디 하고는 잽싸게 몸을 돌려 자기의 침실로 들어갔다.
“어디로 들어가?!”
인차 어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뒤를 따랐다. 웅진이는 침대를 향해 가다말고 걸음을 멈추었다. 문이 거칠게 열려졌다. 어머니의 굳어진 얼굴이 침실안으로 쑥 들어왔다. 웅진이는 한발 왼쪽으로 비켜서며 어머니의 표정을 살폈다. 어머니의 왼쪽볼에 있는 입쌀알만한 검은 기미가 푸들푸들 떨리고있었다. 폭풍전야의 개시곡이나 다름없는 풍경이였다.
“어… 어머니.”
웅진이의 목소리는 불안하게 떨리고있었다.
“어머니? 무슨 낯으로 어머니를 불러? 나에게 언제 너 같은 아들이 있어? 뭐야, 40명에서 38등? 이 등신아. 남들이 공부할 때 넌 뭘 하고있었기에 이 모양이냐? 정녕 골이 둔한거냐? 아님 뒤구멍으로 호박씨를 까고 다니는거냐? 나쁜 놈!”
어머니의 사설은 끝을 볼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각 웅진이는 되려 그것이 마음의 위로가 되는듯싶었다. 웬 일인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쿵쿵 절구질을 하던 가슴에 평온이 찾아들며 이상하리만치 느긋한 기분이 느껴졌다.
“미안하지도 않아? 이놈아. 이 나쁜 놈아! 나는 그렇다손치더라도 한국에서 뼈 빠지게 일하는 너의 아버지에겐 좀 미안한것을 알아야지. 너도 알지? 아버지가 공지에서 허리를 상하고도 그 돈을 벌려고 억지로 일하러 다닌다는것을. 누구를 위해서니? 내 잘 먹구 아버지 호강하자고 그러니? 돈 좀 모아서 너를 류학이라도 보내보자고 그러지…”
어머니는 입에 게질게질 거품을 물면서 웅진이를 향해 죽어라 삿대질을 하고있었다. 그리고 눈굽에는 벌써 이슬이 맺혀 번쩍이고있었다. 좀만 흔들면 두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릴듯싶었다. 어머니의 정서가 도를 넘어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웅진이는 방금 느긋하던 기분이 차츰 가셔지며 은근하게 긴장이 갈마들었다.
(어머니, 제발 1절만 하세요.)
웅진이는 속으로 이렇게 사치한 생각을 굴려보았다. 언제나 이렇게 시작한 어머니의 사설은 1절을 하고 2절을 넘어 3절을 지나 4절 5절까지 갈 때도 있었다. 그쯤하면 어머니도 지치고 웅진이도 흥분을 하군 했다. 일단 흥분을 하면 웅진이로서도 걷잡을수없이 입에서 구렝이도 튀여나가고 호랑이도 뛰여나가군 했다.
(참자, 참는거야.)
웅진이는 어금이를 꽉 다물고 지그시 두눈을 감았다. 호주머니안에서 손가락으로 넙적다리를 톡톡 치면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한칼에 한놈을 죽였다. 한칼에 두놈을 죽였다. 한칼에 세놈을 죽였다. 한칼에 네놈을 죽였다…”
갑자기 어머니가 웅진이를 덮쳤다. 웅진이는 피할 사이도 없이 어머니에게 머리칼을 잡혔다.
“이 나쁜 놈아. 그래, 그래 넌 좋은것은 배울수 없는거냐? 이 머리도 그렇지. 나 원 낯이 뜨거워서. 너의 반에 너처럼 머리가 긴 애, 또 누가 있니? 선생님도 그렇게 너의 머리를 두고 말을 많이 했다면서? 그래도 그냥 이 모양을 하고 다닌다면서? 그렇지. 매일 아침 머리를 감을 때부터 알아봐야 하는건데. 내 오늘 이 머리에 콱 불을 질러버릴테다.”
어머니는 손에 힘을 넣어 죽어라고 웅진이의 머리칼을 흔들어댔다. 웅진이는 두피가 지끈지끈 당겨져 모진 아픔을 느꼈다. 어머니가 흔들어대던 그 맵시로 머리칼을 확 나꿔챘다. 어머니의 손에 머리칼이 한줌이나 뽑혀져나왔다.
“악!”
웅진이는 순간 저도 몰래 단말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웅진이로서도 자신을 걷잡을수가 없었다.
“왜 이래요? 왜 이러냐구요?”
“왜? 왜?!”
어머니의 매서운 눈길이 웅진이의 얼굴에 와서 꽂히고있었다. 활활 타는듯싶은 눈길은 웅진이의 모든것을 발기발기 찢어버릴것만 같았다. 웅진이는 발딱 일어섰다. 이어 문쪽으로 씽하니 뛰쳐나갔다.
“어디로 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등뒤로 남기며 웅진이는 벌써 신을 신고있었다. 어머니가 뛰여와 웅진이의 옷자락을 거머쥐였다.
“가긴 어디로 가? 못 간다. 오늘 나가면 다신 이집에 못 들어올줄 알아라.”
“안 들어올게요. 안 들어와요. 됐어요? 시원해요?”
웅진이도 어머니를 향해 건침을 탁탁 튕기며 소리소리 질러댔다.
“못 나간다. 못 나가. 못 나간다구! 이 나쁜 놈아. 이대로는 못 나간다!”
어머니는 웅진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옷섶을 거머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웅진이는 그러는 어머니를 멀거니 내려다보다가 다시한번 “악!”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힘껏 몸을 탈아 빼며 출입문을 쾅 밀어열고 뛰쳐나갔다.
“웅진아, 웅진아―”
뒤에서 어머니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처량하게 울렸다. 웅진이는 고통스럽게 머리를 흔들어대며 층계를 내렸다.
“찌릉찌릉―”
호주머니안에서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을 했다. 웅진이는 잰걸음을 멈추고 호주머니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집어냈다. 세차게 진동을 하는 핸드폰막에는 “어머니”라는 세 글자가 또렷이 찍혀있었다.
(어머니?!)
웅진이의 뇌리에는 어머니의 손에서 뽑혀져나오던 머리칼이 클로즈업되여 또렷이 떠올랐다. 웅진이는 죽어라 온몸을 떨었다.
어머니의 얼굴도, 뽑혀진 머리칼도 더는 생각을 하고싶지 않았다. 어딘가에 가서 조용히 죽어버리고싶다는 생각만 헝클어진 머리속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웅진이는 호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으며 잠간 주위를 둘러보았다.
층집사이의 한적한 공간이 보였다. 전에는 아무 생각없이 지나치던 공간이였지만 그 순간은 어쩐지 거기 가면 시원한 바람을 맞아 갑갑하던 가슴이 열릴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웅진이는 누가 부르기라도 하듯 잰걸음으로 그곳을 찾아 올라갔다.
건들바람이 불어와 헝클어진 머리칼을 날려주었다.
제법 시원하게 느껴졌다. 웅진이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두팔을 들어 자기의 머리를 부둥켜안았다. 방금까지도 “웅―” 하고 소리가 나던 머리속에 하얀 운무가 서려오기 시작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되여가는것일가? 내가 어떻게 이런 꼴이 됐단 말인가? 과연 내가 나쁜 놈이란 말인가?)

소학교때까지만 해도 웅진이는 괜찮은 학생이였다. 품질은 더 말할것도 없고 학습성적도 학급에서 중상등에서 오르내리군 했다. 선생님들도 그렇고 부모들도 그렇고 모두 “좀만 더 노력하면 앞자리에 설수 있을것”이라고 웅진이에게 힘을 실어주군 했었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와서 학과목이 많아지고 진도가 빨라지자 웅진이는 점점 공부가 힘에 부쳐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였다.
암송을 많이 하는 과목은 그런대로 따라갈수 있었지만 수학 같은 과목은 정말 어쩔수가 없었다. 1학년 첫 학기 기말시험에서 22점을 맞은 수학시험지를 집에 가져갔을 때 어머니는 너무도 충격을 받아 쇼크하기 1분 직전에 이르렀었다.
“이 못난 놈아, 너 뭘 하고 다니는거냐? 이것도 시험지라고 받아왔냐? 너의 머리는 돌대갈이더냐? 한 학기 얻어들은 풍월만 읊어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
그날 밤 어머니는 상처 되는 말만 골라서 웅진이의 가슴을 벅벅 긁어댔다. 얼굴이 푸르뎅뎅해서 입에 거품을 물며 자기를 향해 삿대질을 하는 어머니를 낯선 아줌마 보듯하면서 웅진이는 처음으로 자기가 못나보이고 세상이 싫어보이고 앞날이 암담해보였다.
어머니의 사설은 끝이 없었다.
“너 말해봐라. 한 학기동안 과연 뭘 하구 다녔는가? 설마 참답게 공부를 했으면 이 정도가 될리는 없을거구, 친구를 잘못 친한거냐? 아니면 련애를 한거냐? 말해보라니까 말해봐. 어이구!”
어머니는 물먹은 담마냥 자리에 무너져내리더니 꺼이꺼이 소리 내여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좋니? 어쩌면 좋아. 두메산골에서 자라면서 공부 못하던 한을 자식놈한테서나 풀어보자고 그렇게도 애를 썼건만. 제 애비는 저 등신을 뒤바라지하자고 외국에서 그렇게 소처럼 벌고있건만, 아이고 내 팔자야―”
평소 웅진이의 작은 잘못에도 엄하게 눈을 흘기는 어머니였지만 이 같은 추태는 처음인지라 웅진이는 숨소리마저 크게 내지 못하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날 어머니는 저녁밥도 드시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웅진이도 저녁밥을 먹을 엄두를 못 내고 자기의 침실에 들어가 이불을 덮어썼다. 생각할수록 공부가 두렵게 생각되였다. 그럴수록 웅진이의 학습성적은 떨어지기만 했다.
2학년 첫 학기초인가 시내의 사립예술학교에서 웅진이네 학교를 찾아와 무용학원을 모집했다. 웅진이는 담임선생님에게서 그 소식을 들으며 저도 몰래 흥분에 가슴을 떨었다. 어쩌면 지지리도 힘든 공부로부터 탈출할수 있다는 희망에서인지는 모르지만 1.80메터를 바라보는 자기의 호리호리한 체격이면 무난히 춤을 출수 있을것 같은 자신심이 생기기도 했던것이다.
그날 저녁 웅진이는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자기의 뜻을 밝혔다.
“뭐야? 세상에 남자가 춤을 춰? 딴따라를 하겠다구? 그짓을 하라고 어미 애비가 뼈 빠지게 뒤바라지를 하는것 같냐? 안돼 안돼! 악을 쓰고 공부해서 하다못해 전문학교에라도 가야지. 네가 대학생이 되는것을 보고야 엄마는 죽어도 눈을 감을거다.”
어머니의 견결한 태도는 웅진이의 싹터오르던 무용가의 꿈을 무참히도 밟아버렸다. 그 뒤로 웅진이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싶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접고 그냥 아침이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고 저녁이면 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오는 평범한 일상에 자기를 맡겨버렸다.
시험성적이 발표되는 날이면 웅진이는 가끔 이렇게 어머니와 한판씩 붙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땅을 치며 통곡을 하다가 지쳐갔고 웅진이는 웅진이대로 자기의 처지가 비참해서 가슴을 치다가 잠이 들군 했다.
숨막히는 일상속에서도 웅진이의 메마른 가슴에 단비로 되여주는것은 은영이의 해맑은 웃음이였다. 학습성적은 웅진이보다 좀 나은편이지만 역시 학급에서 중하등을 맴도는 은영이였다. 하지만 언제나 이슬 같은 미소를 함뿍 머금고 조용히 웅진이의 옆을 지켜주고있었다.
(은영이―)
웅진이는 나직하게 은영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오늘저녁 너 머리를 깎지 않을래? 내가 함께 가줄게.”
낮에 갈라질 때 하던 은영이와의 약속이 떠올랐다. 웅진이는 건듯 머리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로등 불빛이 처량하게 보여올뿐 주위는 고요한대로 있었다. 은영이가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은영이에게 전화 할가?)
웅진이는 핸드폰을 꺼내들고 손가락을 “1”자우에 가져갔다. 은영이의 이름을 1번에 입력시켜놓았던것이다. 웅진이의 입가에 반짝 미소가 스쳐갔다. 오른손 식지에 힘을 넣어 1번을 누르려던 웅진이가 갑자기 건반에서 손을 뗐다. 웅진이는 핸드폰을 두손으로 꼭 움켜쥐고 다시 스르르 두눈을 감았다. 집에서 쫓겨나 이 구석으로 쫓겨온 자기의 비참한 모습을 은영이가 본다면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할가? 하는 우려심이 가슴을 쳤던것이다. 웅진이는 이 시각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이 죽도록 싫어졌다.
“이게 아닌데, 정말 이게 아닌데.”
웅진이는 고통스럽게 두손으로 자기의 머리칼을 잡아쥐고 흔들어댔다. 어머니의 손에서 뽑혀져나오던 머리칼이 다시 갈퀴로 되여 웅진이의 가슴을 허비기 시작했다.
“머리가 길다고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까?”
낮에 있었던 담임선생님의 시까스름이 고름처럼 웅진이의 가슴에 녹아내렸다.
(머리칼, 머리칼이 긴데는 어떻단 말인가? 이 머리칼하고 나의 학습성적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머리칼이 짧아지면 공부성적이 쑥쑥 올라갈수 있단 말인가?)
웅진이는 처음으로 자기의 머리칼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정말 이 머리칼이 문제일가? 어머니도 선생님도 첨에는 학습성적이 낮다고 사설을 하다가도 나중에는 머리칼을 공격목표로 삼아 건달이라는둥, 나쁜 놈이라는둥 하지 않는가? 그래, 이 원쑤 같은 머리칼을 잘라버리는거야, 깨끗이 철저히 검질해서 그들에게 보여주는거야!)
웅진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웅진이는 반달음으로 미장원을 향해 뛰여 갔다.
“어서 오세요.”
노랑머리리발사가 로봇마냥 판에 박은 인사를 건네왔다. 웅진이는 의자를 찾아 씽하니 다가갔다. 노랑머리리발사가 웅진이에게 가운을 입혀주며 물었다.
“살짝 칠가?”
리발은 거의 이 미장원을 리용하기에 노랑머리리발사와는 허물없는 사이였다. 웅진이는 성가시다는듯 노랑머리리발사를 찔 째려보고는 자르듯 소리쳤다.
“아니. 빡빡 밀어.”
“뭐?”
“못 들었어? 빡빡 밀라니까.”
“설마… 꽝터우(까까머리)?”
“그래, 뺀지골. 알아? 빡빡 밀라니까. 밀라구!”
“진짜 꽝터우(光头)?”
“말이 많네!”
웅진이가 의자에서 빨딱 일어섰다. 노랑머리리발사는 얼굴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두팔을 올려 조용히 웅진이의 어깨를 눌러 앉히고는 전동리발기를 들었다.
잠간이였다.
“윙―”하는 소리와 함께 두피가 선뜻해나더니 윤기 흐르는 머리칼이 웅진이의 무릎우에 떨어졌다. 웅진이는 “윽!” 하고 신음소리를 내며 두눈을 꼭 감았다. 죽어라고 아래입술을 깨물었다. 전동리발기는 “윙윙―” 소리를 내며 웅진이의 머리칼을 밀어나갔다. 오른쪽을 먼저 깎는지 오른쪽이 더 허전하게 느껴졌다. 웅진이는 가까스로 눈을 뜨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아니나다를가 오른쪽이 허옇게 홀라당 깎여있었다. 나무 한대 없는 민둥산 같은 오른쪽이 함치르르한 머리칼이 남아있는 왼쪽과 대조를 이루면서 사뭇 우스운 장면을 연출하고있었다. 웅진이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두눈을 슴뻑거리며 거울속에서 내다보는 자기의 얼굴을 바라보고있었다. 웅진이의 표정을 읽었는지 노랑머리리발사가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아깝다. 아까와…”

*

“엄마, 저 형님이 나쁜 놈이야?”
웅진이는 그 소리에 맥없이 아래로 떨어뜨렸던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대여섯살쯤 되여 보이는 꼬마가 엄마의 손을 잡고 웅진이앞을 지나면서 종알거리고있었다.
“크크크… 그렇게 보여?”
엄마는 꼬마를 자기옆으로 살짝 당기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꼬마가 계속 종알거렸다.
“엄마가 말했잖아. 공부하기 싫어하면 커서 나쁜 놈이 된다구, 저렇게 뺀뺀대가리를 한다구.”
“얘, 듣겠다. 목소리를 낮춰. 크크크크…”
엄마는 꼬마를 끌고 잰걸음을 놓고있었다. 꼬마는 걸음을 옮기면서도 머리를 돌려 웅진이를 바라보고있었다.
웅진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두커니 서서 엄마의 손에 끌려가는 꼬마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엄마가 말했잖아. 공부하기 싫어하면 커서 나쁜 놈이 된다구, 저렇게 뺀뺀대가리를 한다구.”
꼬마의 목소리가 또랑또랑 웅진이의 귀속을 파고들었다. 수박 같다고 생각되던 자기의 까까머리가 눈앞에 떠올랐다. 아까 거울에 비쳐있던 자기의 모습이 과연 죄범 같았던가를 떠올려보았다.
웅진이는 문득 방금 그 꼬마만할 때 받았던 충격을 떠올렸다.
그날 웅진이는 어머니와 함께 복무대로옆을 지나고있었다. 그곳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사람들가운데는 십여대의 해방표자동차가 세워져있었는데 적재함우의 란간을 붙잡고 목에 이름표를 건 까까머리남자들이 줄줄이 서있었다.
“엄마, 저 사람들이 어째 저렇게 서있나?”
웅진이가 어머니의 손을 흔들며 물었다. 어머니는 자애로운 눈길로 웅진이를 내려다보면서 자냥스럽게 말씀했다.
“웅진아, 봤지? 저렇게 목에 ‘개패’를 메고 서있는 사람들은 나쁜 놈이고 옆에 두리모자를 쓰고 서있는 사람들은 경찰이란다.”
“나쁜 놈들의 목에는 왜 ‘개패’를 메웠나?”
“이 사람들은 나쁜 사람입니다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느라고 메웠겠지.”
“저 사람들은 어째서 나쁜 사람이 됐나?”
“음… 아마도 공부하기를 싫어해서 나쁜 사람이 됐겠지. 우리 웅진이는 학교에 가면 공부를 잘할수 있지?”
웅진이는 어머니의 기대어린 물음에 두눈을 깜빡이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뒤로 웅진이는 다시 그런 장면을 보지 못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진작 사라진줄로 알고있던 그 장면이 그렇게도 생동하게 기억에 남아있을줄은 웅진이도 생각밖이였다.
웅진이는 또다시 오른손을 들어 자기의 머리를 쓸어보았다. 어디라 없이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잡생각을 굴렸다.
(내 모습이 과연 죄범처럼 보이고있을가? 내가 과연 죄범이 될수 있을가? 지금 나는 죄범하고 얼마나 차이가 나있을가?)
사색은 헝클어진 삼뭉치마냥 머리속을 어지럽히고있었다.
“씨팔― 보기는 뭘 봐?”
웬 사나이의 거친 목소리가 어지럽게 귀청을 때렸다. 웅진이는 사색에서 뛰쳐나와 소리나는쪽에 머리를 돌렸다.
웅진이는 어느새 북안시장부근에 와있었다. 길옆으로 음식난전들이 줄느런히 앉아있었다. 난전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느라 분주했다.
“쌍년이, 오줌 싸…싸…싸는걸 못 봤냐? 왜?”
가로수아래에서 20대의 남자가 바지춤을 내리우고 소변을 보고있었다. 저만치로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녀자애 둘이 지나가면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있었다.
“씨팔― 재간있으면 참아봐라. 네년들이 어애냐…”
남자는 가로수에 오줌을 갈기면서 련속 뭐라고 궁싯거리고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사나이의 머리통이 유독 빛났다. 까까머리였다. 면도칼로 빡빡 밀었는지 두피가 퍼렇게 보였다. 웅진이는 버러지를 씹은듯 이마살을 찡그리며 본능적으로 자기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야! 뭘 봐? 오줌 누는것도 구경이냐?”
남자가 바지춤을 추스르다말고 또 소리쳤다. 웅진이는 머리에서 손을 내리우며 주위를 살폈다. 그 순간 주위에는 자기를 내놓고 아무도 없었다. 남자가 웅진이를 보고 시비를 걸어오는것이 분명했다. 괜히 그 남자가 미워지면서 부아통이 터졌다. 하지만 남자는 웅진이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지껄여댔다.
“구경이라도 났냐? 뺀뺀대가리, 널 그런다.”
“헉!”
웅진이는 순간 숨이 꺽 막혀오는듯싶었다.
(뭐? 나더러 뺀뺀대가리라구? 버러지 같은 자식.)
웅진이는 사나이를 향해 쏜살같이 뛰여갔다. 남자가 바지춤을 채 추스리기전에 오른발을 씽 날렸다. 남자는 저만치 나가 푹 쓰러졌다.
“어… 어! 얘들아―”
남자가 웅진이의 발길을 피해 두손으로 벌벌 기며 괴성을 뽑았다. 삽시에 어디선가에서 남자또래 청년들이 뛰여나오더니 웅진이의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쳤다. 웅진이는 길바닥에 큰대자로 너부러졌다. 어지러운 발길이 우박처럼 웅진이의 몸에 떨어졌다. 웅진이는 매집을 좁히려고 큰대자로 너부러진 몸을 가누어 한껏 옴츠렸다. 그리고 두팔로 수박 같다고 생각되는 그 머리통을 한껏 움켜잡았다.
한참이나 욕질에 매질에 열을 올리던 남자들은 직성이 풀렸는지 다시 길옆난전으로 들어가며 길게 호기를 뽑았다.
“까불고있네. 한줌거리도 안되는 놈이!”
웅진이는 두팔로 머리통을 움켜잡고 온몸을 새우처럼 옹송그린채 그 욕설을 듣고있었다. 온몸이 빠개지는듯 아파났다. 웅진이는 “으윽―” 하고 길게 한숨을 뽑아올렸다. 어디론가 둥― 떠나가는듯싶으면서 가물가물 묘한 기분이 머리속을 감돌고있었다.
“쯧쯧… 저 코피를… 건달들이 무리싸움을 했나봐!”
지나가는 녀인의 목소리가 아물아물 웅진이의 머리속을 파고들고있었다. 이상했다. “건달”이라는 말을 듣자 저도 몰래 쿡 하고 웃음이 터지는것이 이상스러웠다.
(내가 건달이였나? 내가 과연 건달이였나?)
웅진이는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폈다. 어머니들은 여전히 자식들의 손을 잡고 여유롭게 가로등아래를 걸어 지나고 련인들은 여전히 팔을 끼고 까르르까르르 웃음소리를 흘리고있었다. 나그네들은 여전히 길섶난전에서 맥주를 마시며 호기를 뽑아 올리고있었고 난전주인들은 여전히 양고기꼬치를 구우며 누런 이발을 들어내고 눅거리웃음을 팔고있었다.
웅진이는 머리를 숙여 자기의 몰골을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구을렀던지 온몸이 먼지투성이였다. 코등이 지끈지끈 아파났다. 웅진이는 코등을 눌러보았다. 코등은 퉁퉁 부어있었다. 손등으로 코밑을 쓱 긁어보았다. 손등에는 뻘건 피가 묻어졌다. 웅진이는 이윽토록 코피가 묻은 손등을 내려다보다가 맥없이 오른팔을 축 내리뜨렸다.
순간 어릴 때 복무대로앞에서 보았던 그 죄범들은 만인의 눈앞에 “개패”를 메고 서서 무엇을 생각했을가가 궁금해졌다.
웅진이는 후들후들 떨리는 두다리를 착 붙이고 서서 머리를 푹 숙였다. 어쩐지 그 순간 그렇게 서있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앞에 그렇게 서서 자기의 몰골을 적라라하게 보이고싶었다.
“찌릉찌릉―”
갑자기 넙적다리에 강한 전률이 느껴졌다. 웅진이는 와뜰 놀라며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막에는 “깜찍이”라는 세 글자가 또렷이 찍혀져있었다. 그리고 문자표식이 떠있었다. 웅진이는 약간 떨리는 손끝으로 문자함을 열었다.
막에는 “??”부호가 또렷이 찍혀있었다.
(은영이!)
맑은 웃음을 날리는 은영이의 하얀 얼굴이 클로즈업되여 웅진이의 눈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아까 은영이가 보내온 “?”표도 떠올랐다.
싸늘한 웃음이 웅진이의 얼굴을 스쳤다.
웅진이는 핸드폰을 다시 호주머니에 넣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행인들이 흘끔흘끔 웅진이를 여겨보고있었다. 저희들끼리 뭐라고 소곤소곤 귀속말을 건네기도 했다. 웅진이는 그들이 자기를 죄범 같다고 손가락질한다고 생각했다. 어쩜 자기를 소매치기나 좀도적일수 있을 거라고 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아니 강도나 강간범일수도 있을것이라고 씹어칠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였다.
(왜? 내가 왜? 저희들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보기는 뭘 봐? 쌈을 좀 했을뿐인데, 코피를 좀 흘렸을뿐인데, 몸에 먼지가 좀 묻었을뿐인데…)
웅진이는 푹 숙였던 머리를 천천히 쳐들었다.
(볼테면 보라지.)
생각을 고쳐먹으니 어딘가 당당해진듯싶었다. 웅진이는 손등으로 연신 피 묻은 코밑을 쓸며 씨엉씨엉 발걸음을 옮겼다.
하나 둘 셋 구령을
높이 부르며
머리를 숙이지 말고
새로운 인생 위해
개조의 첫발자국 내디디자
……
어디선가 우렁찬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웅진이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들었다. 철조망을 설치한 커다란 담장이 눈에 안겨들었다.
“아?!”
웅진이의 입에서 피 같은 신음소리가 짤막하게 터졌다. 분명 노래소리는 담장안에서 울려나오는것이였다. 웅진이는 말 못할 현기증을 느끼며 못박힌듯 굳어져서 커다란 담장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조명등이 괴괴하게 비추이는 담장은 웅진이에게 말 못할 공포를 던져주고있었다.

*

(저안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있을가? 저안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을가?)
문득 찾아들던 공포가 서서히 가셔지자 웅진이의 머리속에는 담장너머에서 일어나고있을 모든 일이 그렇게 궁금할수가 없었다.
일년전의 어느날 드라마에서 보았던 장면이 피뜩 머리속을 스쳤다.
음침하게 흐린 어느 아침인듯싶었는데 400여명의 죄수복을 입은 사나이들이 큰 마당에 줄지어 쪼크리고있었다. 하나같이 머리를 빡빡 깎았는데 그들이 줄지어 쪼크리고 앉은 그 마당이 여간만 번쩍이지가 앉았다. 웬 일인지 그래도 머리가 길다고 할수 있는 몇몇이 되려 닭무리속에 선 게사니처럼 눈에 유난히도 뜨이고있었다. 여러가지로 화면이 바뀌며 2분 가량 지속되던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만약 저 무리에 가서 앉는다면 어떤 심정일가 하고 막연한 생각을 굴린적이 있었다. 어떻다 할 답안을 찾지 못한채 그 장면을 지내보낸후 웅진이는 한번도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려본적이 없었다.
헌데 그 순간 그렇게도 담장너머를 살펴보고싶은 충동이 생기는것은 웅진이 스스로도 이상스러웠다.
(세상과 동떨어진 담장 저쪽에서 자유를 박탈당한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가?)
그것이 호기심에서인지 공포심에서인지는 몰라도 그 시각 웅진이는 그것이 꼭 보고싶었다.
웅진이는 흘끔흘끔 주위를 살피며 높은 담장밑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담장은 개미 한마리도 기여나갈수 없을만치 견고해보였다. 담장 네 귀를 두번이나 돌아보았건만 어디다 눈길을 박을만한 곳이 없었다. 저도 몰래 “호―” 하고 한숨이 터져나갔다.
웅진이는 희망을 접으며 몸을 돌려 천천히 큰길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멀지 않은 곳에 공공뻐스정류소가 있었다. 희미한 가로등아래의 정류소는 여간만 한적해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공공뻐스가 있나?) 하는 생각이 피뜩 스쳐지났다. 순간 공공뻐스에 앉아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웅진이는 공공뻐스정류소를 바라고 발걸음을 다그쳤다.
정류소에 도착해보니 자기또래의 남녀가 나란히 앉아서 무슨 말인가를 하고는 좋아서 못 참겠다는듯 까르르 웃음을 터치고있었다. 행복한 그들을 보노라니 저도 몰래 자기의 처지가 서글퍼났다. 웅진이는 그들과 떨어져서 간이의자의 제일 끝쪽에 가 어깨를 웅크리고 앉았다. 남자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게임을 할가?”
“무슨 게임?”
“재밌는 게임.”
“어떻게?”
남자애가 녀자애의 귀에 입을 대고 한참이나 뭐라고 소곤거렸다. 녀자애가 갑자기 몸을 당기며 주먹으로 남자애의 어깨를 북 치듯했다.
“얘가, 얘가 미쳤어, 미쳤어. 변태야. 나 인젠 널 안 만날래.”
“참. 누가 변태야. 재밌잖아.”
“뭐가 재밌어?”
녀자애가 남자애를 쳐다보며 물었다.
“딱 네가 진다는 보증도 없잖아? 가위바위보는 녀자애들이 눈썰미가 빨라서 더 잘 논다는데. 네가 이기면 오늘밤 내게 업혀 집까지 가는 호사를 할수 있잖아.”
“그러다 내가 지면?”
물어보는 녀자애의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져있었다.
“네가 질수는 없겠지만 그러다가 정말 네가 지면 그냥 못이기는척 속도를 내는거지 뭐?”
“으― 구렝이, 남자들은 다 구렝이야. 암튼 내가 질라구. 하자, 해보자.”
녀자애는 손가락이 배쪽에 닿게 하고 깍지를 걸어 신비스럽게 눈앞에 당겨다가 뭔가를 살피더니 한결 흥분된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싸― 죽어봐라. 집까지 단숨에 가기다. 죽었어!”
“그래 죽어보자.”
둘은 유치원마당에 앉은 짜개바지악동들처럼 손을 흔들며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가위바위보!”
두주먹이 운명을 결정하고있었다.
“아싸― 이겼다.”
남자애가 흥분에 들떠 벌떡 일어섰다.
“으악!”
녀자애가 새된 소리를 질러댔다. 남자애가 녀자애의 목을 와락 끌어안더니 녀자애의 입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녀자애는 남자애에게 입술을 점령당하면서도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고 그저 두팔을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웅진이는 눈앞에서 벌어지고있는 적라라한 드라마를 넋을 놓고 보고있었다. 가슴이 세차게 쿵쿵 뛰기 시작했다.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네가지가 없는 년놈들.”
이사이로 욕설이 터져나갔다.
“어때? 또 한번 할가?”
남자애가 녀자애의 목을 감았던 팔을 풀고 히쭉거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몰라, 몰라!”
녀자애가 얼굴을 싸쥐고 땅에 쪼크리고 앉았다.
“너 설마 우는거니?”
남자애가 오른손가락을 쫙 펴서 녀자애의 긴 머리칼사이에 꽂으며 능청을 떨었다. 녀자애의 어깨가 가담가담 떨리고있었다.
“괜찮아. 까짓걸 가지구 뭐. 내가 책임진다니까. 걱정 말아.”
“몰라, 몰라!”
녀자애가 발딱 일어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종종걸음을 놓았다.
“한칼에 한놈을 죽였다. 한칼에 두놈을 죽였다. 한칼에 세놈을 죽였다. 한칼에 네놈을 죽였다. 한칼에 다섯놈을 죽였다…”
웅진이는 눈앞에서 멀어져가는 자기또래의 남녀를 바라보며 자기만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악!” 하는 처량한 비명소리가 밤하늘을 가르며 들려왔다. 웅진이는 본능적으로 소리나는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자동인출기를 장치한 작은 영업청앞이였다. 한 녀인이 아래배를 부여잡고 무너지고있었고 손에 가방을 든 한 남자가 오토바이에 올라타고있었다. 녀인은 오토바이에 오르는 남자를 향해 손을 허우적거리더니 “악!” 하고 소리칠 때보다 한결 힘이 빠진 목소리로 “강도다― 강도를…” 하고 소리치다가 쓰러져버렸다. 사나이는 어느새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처럼 어디론가 사라졌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였다. 웅진이는 잠간 어정쩡해있다가 차츰 정신을 추스려 방금 본 장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답이 나왔다. 강도가 쓰러진 녀인의 가방을 강탈한후 녀인의 아래배를 흉기로 찔렀고 그다음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쳐버린것이였다.
(저 녀인은 지금 어떤 상태일가?)
긴급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치고들어왔다. 웅진이는 쓰러져있는 녀인을 향해 뛰여갔다. 녀인이 쓰러져있는 땅에는 뻘건 피가 흥건히 흘러나와있었다.
“괜찮습니까? 정신을 차리십시오.”
웅진이는 감히 녀인에게 손을 대지는 못하고 두손을 마주 비비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녀인은 간신히 몸을 탈아 웅진이를 바라보더니 띠염띠염 말했다.
“전화해주세요. 언니께요.”
“네, 번호는?”
웅진이는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며 말했다.
“1390443****”
“1390443****”
웅진이는 낮은 소리로 번호를 외우며 건반을 눌렀다.
“누구세요?”
대방에서 인차 전화를 받았다.
“사고가 났습니다. 녀동생이라고 하는데요. 감옥남쪽 자동인출기앞입니다.”
“네? 상했어요?”
“카… 칼에 좀…”
“알았어요.”
대방에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꺼버렸다.
“전화했어요.”
웅진이가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녀인은 못 들었는지 다시 몸을 땅에 착 붙인채 죽은듯 누워있었다. 상처자국에서 여전히 피가 흐르는듯싶었다. 이대로 그냥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웅진이는 허리를 꺾어 앉으며 녀인을 흔들었다.
“우리 먼저 병원에 갑시다. 제가 전화 받은 사람을 병원으로 오라 할게요.”
“가… 감사합니다.”
녀인이 반응을 보였다.
웅진이는 녀인에게서 손을 떼고 일어섰다. 달려오는 택시가 보였다. 웅진이는 길 중앙에까지 나가 손을 흔들었다. 택시는 “칙―” 하고 웅진이네 옆에 와서 멈춰섰다.
“병원, 병원에 실어갑시다.”
웅진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운전수도 사태를 파악했는지 인차 내려와 웅진이를 도와서 녀인을 들어 뒤좌석에 앉혔다.
“연변병원.”
웅진이가 짤막하게 말했다. 운전수는 대답도 없이 속력을 뽑기 시작했다.
녀인의 상처를 소독하고 긴급처치를 금방 끝냈을 때 언니라는 녀인도 들어섰다. 언니라는 녀인의 뒤로 40대의 나그네와 대여섯살쯤 되여 보이는 꼬마가 따라 들어섰다.
“옥녀야, 이게 웬 날벼락이냐? 어느 개새끼가 널 이렇게 만들었냐?”
언니라는 녀인이 칼에 찔린 녀인에게로 엎어질듯 달려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나이도 침대에 누워있는 녀인쪽으로 다가갔다. 의사가 종이에 뭔가를 쓰다말고 말했다.
“조용히 하십시오. 환자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몹시 놀란듯싶습니다.”
언니는 여전히 쿨쩍이며 넉두리를 했다.
“이 둔한것아. 어쩌다가 이렇게 됐냐? 무슨 큰일을 보겠다고 이 밤에 현금을 찾았냐? 정신 없는 년.”
“여보!”
나그네가 언니라는 녀인을 툭 쳤다. 언니는 몸을 돌려 나그네를 찔 흘겨보더니 두손을 쫙 펴서 얼굴을 가리우며 땅에 쪼크리고 앉았다.
“나그네도 없이 리혼하구 혼자서 외롭게 살더니… 봐라. 우리 옥녀를 어떻게 하면 좋니?”
“언니, 저… 저 사람에게…”
칼에 찔린 녀인이 언니라는 녀인의 말을 중둥무이하고 맥없이 손을 들어 웅진이를 가리키며 떠듬떠듬 말했다.
언니라는 녀인이 손등으로 찔끔찔끔 눈굽을 찍다말고 웅진이를 흘끔 쳐다보았다. 순간 웅진이의 눈길이 허공에서 언니라는 녀인의 눈길과 마주쳤다. 웅진이는 흠칫 몸을 떨며 머리를 돌려버렸다.
“어느 나쁜 개새끼가 우리 옥녀를 이렇게 만들었냐? 감옥쪽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감옥에서 도망쳐나온 죄범이 아니더냐?”
언니라는 녀인의 거친 욕설을 들으며 웅진이는 어쩐지 현기증 같은것을 느꼈다. 웅진이는 조용히 급진실을 나와 복도의 걸상에 몸을 실었다. 스르르 피곤이 몰려들었다. 웅진이는 살며시 두눈을 감고 몸을 벽에 기댔다.
“형님이 우리 이몰 병원에 데려왔나?”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웅진이가 눈을 떴다. 나그네뒤를 따라 들어오던 그 꼬마였다. 꼬마의 눈이 맑고 빛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웅진이는 벽에서 천천히 몸을 떼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놀랐지? 너의 이모니?”
“네, 한국 갔던 우리 이몹니다. 우리 이모는 나를…”
이때 언니라는 녀인이 웅진이네쪽으로 걸어오더니 소리없이 꼬마의 팔을 확 나꿔챘다.
“어―엄마.”
꼬마의 목소리가 떨리고있었다.
“들어가, 아무하고나 말하는게 아니야.”
언니라는 녀인이 몸을 픽 돌려 웅진이를 째려보았다. 웅진이는 흠칫 몸을 떨며 저도 몰래 손을 들어 자기의 머리를 만졌다. 꺼슬꺼슬한 느낌이 손바닥을 타고 왔다.
“엄마, 저 형님이 이몰 데려왔대. 저 형님은 나쁜 사람 같지 않아. 엄마 말이 틀려.”
“뭐가, 뭐가 틀려? 빨리 들어가지 못하겠니?”
언니라는 녀인이 꼬마를 급진실안으로 끌며 말했다.
“엄마가 말했잖아? 나쁜 놈들이 뺀뺀골을 한다구. 저 형님도 뺀뺀골인데, 이모를 데려왔는데… 저 형님은 나쁜 놈이 아니야!”
꼬마가 언니라는 녀인의 손에 끌려 급진실로 들어가며 머리를 돌려 웅진이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 눈길은 그렇게도 맑아보였다.
웅진이는 벌떡 일어섰다. 출입문을 향해 씨엉씨엉 발걸음을 옮겼다.
“형님, 가?”
어느새 또 나왔는지 꼬마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리고있었다. 병원출입구를 나서며 웅진이는 저도 몰래 코끝이 시큼해나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저 형님은 나쁜 사람이 아니야!”
꼬마의 목소리가 너무도 파랗게 살아서 웅진이의 아픈 가슴을 쓸어주고있었다.
웅진이는 두눈이 축축해짐을 느꼈다. 애꿎게 입술을 감빨았다. 두볼을 타고 물방울이 주르륵 굴러 떨어졌다. 웅진이는 손등으로 얼굴을 닦으며 어금이를 떡하니 깨물었다.
“찌릉찌릉―”
갑자기 넙적다리에 강한 전률이 느껴졌다. 웅진이는 얼굴을 닦던 손을 내리워 호주머니에 가져갔다.
핸드폰에 “깜찍이”라는 세 글자가 또렷이 찍혀있었다. 웅진이는 핸드폰덮개를 열었다.
“웅진이니?”
은영이가 급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웅진이는 입술이 파르르 떨려서 도무지 말을 할수가 없었다.
“웅진아, 말해봐! 뭔 일이 생겼니?”
“은영아, 나 뺀뺀골을 했다. 흑흑― 은영아, 그래도 난 나쁜 사람이 아니란다…”
말을 마친 웅진이는 핸드폰을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으며 선자리에 맥없이 무너져내렸다. 어깨가 세차게 들먹여지고있었다. 웅진이는 “꺽―꺽―” 흐느껴지는 소리가 입술을 타고 나오려는것을 억지로 누르며 천천히 머리를 들어 하염없이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별빛 한점 보이지 않는 까아만 밤하늘에서 뿌연 쪼각달이 처량하게 어디론가 미끌어져가고있었다.
(그래, 아직은 초순이야.)
웅진이는 문득 이런 생각을 굴리며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끌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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