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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최동일 성장소설집-아직은 초순이야

노란것
2012년 04월 24일 08시 43분  조회:1202  추천:0  작성자: 동녘해
 

 

 


령이는 “득―” 하고 성냥을 그었다. 하지만 성냥개비에 누기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손이 떨려 성냥개비를 제대로 부시에 치지를 못해서인지 기대하던 불꽃은 일지 않았다. 맹랑하게도 첫번에 불꽃을 얻지 못한 령이는 괜히 가슴이 후둑후둑 떨리기 시작했다.
(웬 일일가? 왜 성냥개비에 불이 일지 않을가? 그 노란것을 가져오지 않아서가 아닐가? 노란것은 과연 어디에 있는것일가? 혹시 아버지가 가지고 간것이 아닐가? 그렇다면… 아버지에게 무슨 불상사라도… 아니 그럴수가… 먼저 이것들이라도 태워버리는거야, 그래 태우는거야…)
령이는 괜히 삼검불처럼 엉켜지려는 사색의 끈을 좁혀 쥐고 온몸의 신경을 성냥가치에 집중하며 다시 성냥개비로 부시를 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성냥개비는 부시종이를 쭉 찢으며 빗나가더니 툭하고 허리가 불거지고 말았다.
(안좋아, 성냥개비에 불꽃이 일지 않다니? 이건 분명 좋은 징조가 아닐거야. 아직도 엄마의 혼이 나의 어깨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질을 치고있는지도 몰라. 과연 그런것이라면… 그 노란것은 과연 어디에 있는것일가?)
령이는 더 이상 생각을 굴리고싶지 않아 성냥을 쥔 오른손을 들어 내려오지도 않은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천천히 머리를 쳐들었다. 망망한 밤하늘 여지저기에서 껌뻑이는 별들이 어지럽게 보여왔다. 그 별들 사이로 뿌연 쪼각달이 어디론가를 향해 미끌어지듯 흘러가다가 먹장구름에 가리워버렸다. 아직은 여물지 못해서 그렇다할 빛을 주지 못하던 쪼각달이였지만 정작 구름에 가리우니 주위가 캄캄하게 변한듯싶어졌다.
령이는 쪼각달이 빨리 구름속에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쪼각달이 구름속에서 빨리 얼굴을 내밀어야 성냥가치에 불꽃이 일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아리숭하게 머리를 쳐들고있었다. “호―” 령이는 실날 같은 한숨을 내쉬고는 쳐들었던 머리를 맥없이 내리뜨리며 자기의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쪼각달이 구름에 가리워 주위가 캄캄하다고 생각되였지만 그래도 멀리서 비쳐지는 가로등불빛에 땅우의 물체를 헤아려볼수가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되였다. 자기의 어깨를 타고 앉은 엄마의 혼이 발밑에 무둑하게 쌓아놓은 돈을 볼수가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갑갑한 마음을 달래주었던것이다.
(그래, 엄마는 지금쯤 종이돈을 향해 달려오고있을지도 몰라. 성냥을 그어 종이돈에 불만 붙이면 엄마는 마음껏 종이돈을 안고 훨훨 천당으로 올라갈거야. 그러면 나는 엄마의 령혼에서 해방될수 있을것이고 아버지는 그 깊은 술바다에서 헤여나올수가 있을거야. 그래, 한개비면 돼. 많이도 필요없이 꼭 한 개비만 제대로 그으면 되는거야. 그 한개비의 파아란 불꽃이 내 어깨에 찰싹 달라붙어 놓지를 않는 엄마의 령혼을 위로해서 천당으로 올려보낼거야. 천당으로 가는 엄마의 뒤길에 그 노란것도 던져주면 엄마는 이승에서의 모든 번뇌를 던져버리고 훨훨 날아갈수있을거야. 그러면 모든것이 좋아질거야…)
령이는 “후욱―” 하고 길게 들숨을 들이쉬고는 다시 성냥개비를 꺼내들었다. 령이는 성냥개비를 부시종이에 치려다말고 머리를 쳐들었다. 구름송이에 가리워 얼굴을 내밀것 같지 않던 쪼각달이 빠끔히 얼굴을 내밀고 가던 길을 재촉하고있었다. 령이의 입가에 가는 실웃음이 피여올랐다. 령이는 성냥개비를 득하고 부시종이에 쳤다. 순간 빨간 불꽃이 팍 하고 피여났다. “호―”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빨간 불꽃은 승무를 추는 무당의 손에 들린 빨간 부채처럼 너울너울 춤을 추고있었다. 령이는 허리를 굽히며 날름거리는 불꽃을 조심조심 발밑에 무져져있는 빨간 종이돈에 가져다댔다. 종이돈에서 불꽃이 튀더니 삽시에 확하고 피여올랐다. 잠간 새에 불꽃은 종이돈무지를 감싸 안으며 뻘건 불룡을 만들어 하늘에 올렸다. 령이는 불룡으로부터 한발뒤로 물러서서 기둥을 이루며 솟아오르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령이의 얼굴이 불꽃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령이는 두손을 합장하여 쥐고 날름거리는 불룡을 바라보며 열심히 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떠나가요, 떠나가요 울 어머니 떠나가요
억울한 일 힘든 일들 다 걷어 안으시고
이 돈으로 로자 삼아 태평세상 찾아가요

누가 배워준적도 없고 어디서 들은적도 없는 노래였다. 그런 노래가 그렇게도 거침없이 입에서 술술 풀려나오는것이 령이로서도 놀랍게만 생각되였다. 노래소리가 익어갈수록 령이의 기분은 날듯이 가벼워졌다. 령이는 합장하여 쥐였던 두손을 풀어서 너울너울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사위는 익어가고 화염을 토하던 불꽃은 사그라졌다. 령이는 두눈을 꼭 감았다. 머리속에서 아물아물 뭔가가 정처없이 하늘로 날아오르는듯한 환각에 사로잡혔다.
아득한 머리속 저쪽 끝에서 거친 노래소리가 날아왔다.

한강수야 깊으나 옅은 물에
한강선 띄워놓고 얼씨구 놀아나 보세

령이는 꼭 감았던 두눈을 반짝 떴다. 방금까지도 가벼워서 날것 같던 기분이 살얼음우에 놓여진듯 섬뜩해졌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가 혀꼬부라진 소리로 한강수야 를 부르며 령이를 향해 다가오고있었다.
허허허… 우리 령… 령이구나. 네가 여기서 웬 일이냐? 웬 일루 여기 있느냐? 아빠를 기다리는거냐? 그래그래… 딸이 있어야 한다니까, 한강수야 깊고 옅은 물에… 아버지는 또다시 “한강수야”를 불러댔다.
“아버지!”
령이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단말적으로 소리쳤다. 그 소리에 아버지는 불르던 한강수타령을 끊고 입을 떡 벌린채 령이를 바라보았다.
령이의 두볼이 푸들푸들 떨리고있었다.
“계집애가 왜 소리는 지르고 란리야? 애비가 죽었어?”
“왜 이래요? 왜 이렇게 살아요?”
“뭐야? 이년이 미쳤나? 애비하구 웬 말대답질이냐? 간이 부었구나, 배밖으로 밀밀 나오는구나. 에익―”
아버지는 령이를 때리려고 주먹을 꼬나멘채 비칠거리며 령이를 향해 다가왔다. 령이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아버지 쪽으로 다가가며 이사이로 한마디한마디 씹어뱉었다.
“왜 이래요? 어디 가서 또 이렇게 술을 마셨어요?”
“그래 ,마셨다. 속이 타서 강술을 마셨다. 안돼? 의견 있어?”
“아버진 안보여요? 나는 살자구 별짓을 다 하고있는데. 아버진 왜 이렇게 살아요?”
“하, 이년이 정녕 미쳤구나.”
아버지는 령이를 향해 후둘후둘 떨리는 손을 쳐들었다.
“그래요. 내가 미쳤어요, 미쳤다구요.”
령이는 쓸어질듯 다가오는 아버지를 피하며 피터지게 소리를 쳤다.
“쌍년… 썩 가서 죽어버려!”
아버지는 끝내 령이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래요. 죽을게요. 내가 죽는다구요!”
령이는 아버지의 팔을 확 잡아채서 한옆으로 밀쳐버리고는 종주먹을 부르쥐고 앞으로 뛰여가기 시작했다. 저쪽으로부터 택시가 쏜살같이 달려오고있었다. 운전수가 달려오는 령이를 보았는지 빵빵 하고 경적을 울렸다. 하지만 령이는 조금도 서슴치 않고 길에 뛰여들면서 분명 뭐라고 소리치고있었다. 모음과 자음을 감지할수 없이 기괴한 소리였다. 소리에 엄마라는 부름이 섞여있는듯 했다. “삑―” 택시가 힘들게 급정거를 하고있었다. 령이의 몸은 택시에 부딛쳐 기둥 뽑힌 나무처럼 넘어졌고 어둠속에서 검붉은 피가 천천히 땅우로 흘러내렸다.


“령이야, 우리 같이 죽자. 죽어 버리자. 무슨 락을 보자구 이렇게 사냐. 령이야―”
령이는 시장바닥이라도 되는듯 웅성웅성 하는 속에서 분명 누군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있었다. 그 소리에 령이는 천근같이 무거운 눈을 힘들게 떴다. 첫눈이 내린 허허벌판처럼 하얀것이 망막에 비쳐들었다. 령이는 눈이 시리다고 생각되였다. 그래서 다시 두눈을 감고 어금이를 꽉 깨물었다. 전신으로 모진 동통이 느껴졌다. 집에서 한겨울 날 시루떡을 쪄낼 때 가마에서 푹푹 뿜어대던 뽀얀 김 같은것이 서리서리 머리속을 감돌고있었다. 령이는 그 속에서 헤여나오고싶다고 생각되였다. 령이는 힘겹게 헉헉 숨을 톺았다. 머리가 빠개지는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령이는 애써 오른 손을 들어 머리로 가져갔다. 분명 손이 머리에 닿은듯한데도 손끝으로 느껴지는 감각은 머리칼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감싼 보자기를 만지는 느낌이였다. 머리속에 꽉 찬 뽀얀 김 같은것을 뚫고 “뭘가?” 하는 막연한 생각이 머리를 쳐들었다. 령이는 애써 천근같은 두눈을 다시 떴다. 역시 첫눈에 허허벌판 같은것이 보여지더니 차츰 그 가운이 벗겨지며 하얀것의 실체가 망막에 박혀들었다.
천정이였다. 실날 같은 금이 가닥가닥 나있는 하얀 천정이였다.
(여기가 어딜가? 내가 왜 여기에 누워있는것일가?)
하얀 백지우를 달리는 개구쟁이의 연필끝처럼 삐뚤삐뚤 두서없는 생각이 머리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령이는 몸을 일으켜 구경을 보고싶었다. 생각 같아서는 가뿐하게 일어설수 있을것 같던 몸이 천근 돌을 달아맨듯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령이는 온몸으로 통증을 느끼며 가까스로 아래입술을 사려물었다.
“령이야, 우리 같이 죽어버리자. 이렇게야 어찌 살겠니? 혼자 죽으려 해도 네가 눈에 밟히지, 아이구― 내 팔자야― 아이구― 령이야―”
잘 부르지도 못하는 석쉼한 목소리의 타령 같은 소리가 다시 어지럽게 울렸다. 그 소리는 눈덮힌 허허벌판을 달리는 달구지소리처럼 불안스럽게 령이의 머리속을 파고들었다.
“누구세요, 누가 절 불러요? 여기가 어디예요?”
령이는 꽉 막혀버린듯한 성대에 힘을 주어 높게 소리쳤다.
“깨났구나. 이 계집애야?”
피곤기가 섞였지만 무딘 칼날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 같다고 생각되였다. 령이는 목소리에 힘을 담아 또박또박 소리쳤다.
“누구예요? 여기가 어디냐구요?”
“이년아. 정말 죽지 못해 환장을 한거냐? 차라리 이 애비를 잡아먹지 그러냐? 이 곰통같은 년아.”
차츰 날을 세워가는 목소리로 욕설을 퍼부으며 수염투성이의 거친 얼굴이 령이의 눈앞에 다가왔다.
“아버지…”
령이는 신음비슷하게 소리쳤다. 아버지의 얼굴이 차츰 또렷하게 령이의 눈확에 안겨들었다. 턱에 말라붙은 느침자국이 우묵하게 들어간 아버지의 눈귀에 말라붙은 누런 눈곱과 조화를 이루며 지치고 힘든 로숙자의 몰골을 연출하고있었다. 초점 없는 아버지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디루룩 구을다가 령이의 얼굴에 와서 박혔다.
그때 아버지의 손에는 반쯤 남은 술병이 들려져있었다.
“아버지…”
“이년아, 네년이 죽는가 했다. 저레 죽어버리지 왜 살아난거냐? 내 원, 이년을 병원에 데리고 오지 말것을…”
아버지가 신경질을 가득담은 목소리로 문안인지 욕인지를 가릴수 없게 웅얼거렸다. 령이는 그러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두눈을 꼭 감아버렸다.
(여기가 병원이라구? 그럼 내가 병원에 누워있는건가, 무슨 사고라도 난것일가? 노란것은 어디에 있을가?)
령이는 애써 기억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김서린듯 뽀얀 머리속을 헤집었다.


4년전 령이가 우수한 성적으로 소학교를 졸업하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어코 령이를 마음껏 공부하게 하겠다며 시골의 집을 처분하고 무작정 연길로 올라왔었다. 시골의 모든것을 포기해도 아깝지 않을만치 령이의 공부실력은 훌륭했던것이다.
아버지는 연길에 와서 먼 친척의 도움으로 건축공사장을 뛰였었다. 하지만 내지에서 밀려나온 민공들 틈에 끼여 건축현장의 막로동을 한다는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였다. 어느 한번 현장에서 자그마한 일로 내지에서 온 민공들과 멱잡이를 한후부터 아버지는 자존심이 상한다며 건축현장을 나가지 않았다.
공부를 못하고 배운 재간이 없는 아버지는 며칠이나 고민을 하다가 삼륜차를 사가지고 짐실이를 시작했다. 맡아 놓고 하는 일이 아니여서 그것도 입살이를 하기 힘들었다. 대소한 때는 온 하루를 나가 추위에 떨어도 5원 벌이를 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는 같은 짐실이군들과 함께 상점에서 몸을 녹인다고 다마톨이를 했다. 안주도 없이 해바라기씨 한줌을 앞에 놓고 강술을 마시면서 소태 같은 일생을 통탄할라치면 술이 술을 불러서 일어날 때 쯤이면 걸음도 옮겨놓기 힘들었다. 몇번인가는 삼륜차마저 상점앞에 두고 왔다가 이튿날에 가서 찾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는 아버지의 자존심을 껌 씹듯이 잘근잘근 씹어대군 했다. 능력도 없는 남자, 제 노릇도 못하는 남자가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평가였다. 처음엔 아버지도 죽여줍소사 하고 머리를 숙이고있던것이 어머니의 욕설이 심해질수록 변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잔사설이 시작되기만 하면 아버지가 먼저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나중에는 손찌검까지 했다.
령이는 차츰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아버지는 더 자주 술을 마셨고 마실 때마다 어머니와 전쟁을 했다.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어머니도 차츰 두려움을 느꼈던지 멀리서 아버지의 발자국소리만 들리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것처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의 이불을 벗겨버리고 다가앉으며 “내가 또 술을 마셨다. 이년아, 왜 욕을 안하냐?” 하고 선창을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버지는 한국에라도 나가 돈벌이를 하겠다며 첫패로 실무한국어능력시험을 쳤다. 아버지에게는 한국으로나가는것이 유일한 구명환이나 다름없었다. 과연 첫 시험에서 아버지는 점수가 요구선에 도달하게되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앞길은 그 무엇에 꽉 막혀버린것인지 두번이나 추첨명단에 이름이 없었다. 두번째로 자신이 추첨 못되였음을 확인하던 그날 밤 아버지는 또 어디 가서 술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여 집에 들어왔다.
“아이구, 내 팔자야, 난 어떻게 살라오.”
아버지는 문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바닥을 치며 넉두리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말없이 아버지를 부축하여 구들에 올리려고 아버지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버지는 활 풀려버린 눈을 거슴츠레 뜨고 한참이나 어머니를 올려다보더니 흐흐흐 히스테리적으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러지 말구 어서 올라 가세요.”
아버지는 어머니의 재촉에도 끔쩍하지 않더니 갑자기 또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흐흐흐… 알았다. 내가 왜 이렇게 재…재수 없는지를… 네년의 이…이마에 난 사…사마귀가 마귀처럼 내 앞…앞길을 막는게로구나. 흐흐흐…”
그 말에 어머니는 아버지의 손을 놓고 급기야 이마에 난 사마귀를 움켜쥐였다. 어머니도 어느때 났는지를 모르는 사마귀였다. 맘이 편할 때면 참 없어도 될것이 보기 싫게 났구나 하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아버지도 언제 한번 “언제 났소?” 하고 묻지도 않던 사마귀였다. 그 사마귀를 아버지가 거들어 자기의 앞길을 막는다는것이다.
령이도 아버지의 그 말에 무척이나 신경이 씌였다.
(정말일가? 간대로사 사마귀때문에 집안 일이 안 풀릴라구? 아버지가 취해서 하는 소리겠지.)
령이는 상심해서 앉아있는 어머니를 위로하자고 입을 열었다.
“엄마, 신경쓰지 마시요. 술먹은 사람이 헛소리를 치는걸 가지구.”
그때 어머니는 살 맞은 토끼처럼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연신 손으로 이마의 사마귀를 만지작거리고있었다.
“에잇, 때…때려 죽일 년, 에…에잇, 마귀 같은 년…”
아버지는 령이에게 질질 끌려 구들에 올라오면서도 입으로는 연신 어머니에게 욕지걸이를 해댔다.
어머니의 이마에 있는 사마귀는 그렇게 아버지의 총알이 되였고 어머니는 사마귀에 대한 말만 나오면 정말 총 맞은것처럼 온몸을 와들와들 떨면서 가슴을 조이군 했다.

숨막히는 기분속에서 시간은 하루하루 흘러갔다.
그날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전쟁판을 벌렸다.
아버지가 동네상점에서 술을 마시고있는것을 어머니가 간장 사러 갔다고 보고 집으로 가자고 조른것이 자기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게 원인이였다.
“재수가 없어서. 재수에 옴이 붙은거지. 네년의 그 사마귀가 내 청운을 막은거야, 내 청운을…”
아버지는 술냄새를 팍팍 풍기는 입으로 침방울을 탁탁 튕기며 고래고래 소리질러댔다. 매양 그러하듯이 어머니는 살 맞은 토끼처럼 온몸을 와들와들 떨면서 이마에 파란 피줄을 세우고있었다.
“보라니까. 봐, 그 사마귀가 온 집안을 말아먹지 않는가구. 나두 잡아 먹구 딸년두 잡아 먹구… 에잇, 마귀 같은 년이.”
아버지는 비칠비칠 어머니앞으로 다가와 후둘후둘 떨리는 손을 들어 어머니의 이마에 난 사마귀를 툭툭 치면서 악담을 퍼부었다.
갑자기 어머니가 와닥닥 뛰쳐일어났다. 전에 없던 행동이였다.
“이… 이 년이 미쳤나? 뚱포 맞은 미친개처럼 어쩌라구 설치는데?”
아버지가 깜짝 놀라 허공에 삿대질을 하며 소리 질렀다.
“그래, 내가 죽을게. 네놈앞에 내가 죽어보일게!”
어머니의 목소리는 무엇이라도 갈기갈기 찢어버릴것 같았다. 그 서슬에 아버지도 놀라 한발 뒤로 물러섰다.
“내가 죽을게. 네놈이 혼자 잘 살아봐라. 배터지게 복 누리며 실컷 살아봐라.”
어머니가 아버지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욕을 퍼붓다가 문을 박차고 나갔다.
“엄마―”
식장앞에 등을 대고 앉아 아버지와 어머니의 전쟁을 묵묵히 지켜보던 령이가 뛰여일어나 덴겁하여 소리치며 어머니를 쫓아갔다.
“놔둬라, 나둬. 어디 가서 뒈지라구 해라.”
령이는 아버지의 악담을 등 뒤로 남기며 젖 먹던 힘을 다해 어머니를 쫓아갔다. 어머니는 머리를 수굿하고 앞을 향해 달리고있었다. 쏜살같다는 말이 실감나는 장면이였다. 정말 그 대로 뭔가 일이 날것 같았다. 령이는 단말마적으로 소리쳤다.
“엄마, 서쇼. 서시요.”
하지만 어머니는 뛰여가던 그대로 달려오는 차를 덮치고있었다. 령이가 차앞까지 뛰여갔을 때 엎어져있는 어머니의 머리밑으로 검붉은 피가 쉼없이 흘러내렸다.
“엄마, 엄마!”
령이는 무서운 감도 없었다.
“엄마, 왜 이래? 정신을 차려. 엄마…”
령이는 소리치며 어머니의 머리를 들어 한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어머니의 검은 눈동자는 이미 사라지고 흰자위만 숨막히게 망울을 덮고있었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머니를 병원에 모셔갔을 때는 어머니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어머니의 액사현장을 두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난 후부터 령이는 열병을 앓는 사람처럼 고열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눈만 감으면 어머니의 머리에서 흘러내리던 검붉은 피가 눈앞을 덮쳐왔다. 그 피는 흘러서 령이의 젖가슴이며 신다리며를 흥건하게 적시는듯했다.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령이는 으스스 몸서리를 치며 단말마적으로 악악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집에는 그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도 그 소리에 놀라하는 사람도 없었다.
어머니를 화장하고 난 그날 밤으로 아버지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렸던것이다.
그렇게 사흘째 되던 날, 이웃집에 사는 할머니가 조용히 문을 밀고 들어섰다.
이웃집 할머니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령이네 집을 드나드는분이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생전에 속 탄 일이 있으면 곧잘 할머니를 찾아 아픈 마음을 토로했고 할머니도 어머니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는 이래라 저래라 하고 충고도 해주었다.
그 며칠 사이에도 할머니는 하루에 서너번씩은 문을 열고 들어와 령이에게 밥을 먹어라, 밖에 나가 바람을 쐬라 하며 여러모로 마음을 써주고 계셨다
“얘야, 아직도 누워있니? 정신을 추슬려야겠는데. 이렇게 넋을 놓으면 쓰겠니?”
그날도 할머니는 구들에 올라오며 따뜻하게 걱정을 해주셨다. 하지만 령이는 할머니를 멍하니 바라보면서도 몸을 움직일수 없었다. 사흘째나 음식을 전페하다싶이 했으니 그럴만도 할 일이였다. 령이는 모든것이 그대로 굳어져버리는듯 함을 느끼며 초점 없는 눈길로 할머니를 바라보기만 했다. 할머니께서는 령이의 곁에 다가와 앉은후 가슴우에 놓여져있는 령이의 왼손을 잡아 꼭 쥐여주었다.
“애비는 아직 안돌아 왔냐?”
“……”
“쯧쯧쯧, 세상도 무심하지. 이 노릇을 어찌 하누?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고…”
할머니는 쯧쯧 혀를 차더니 호주머니에서 노란 천으로 만든 작은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얘야,이걸 베개밑에 깔고 자거라.”
할머니는 말씀을 하면서 손에 꼭 쥐고있던 노란 주머니를 령이에게 넘겨주었다. 령이는 그러는 할머니를 목석처럼 쳐다보면서도 손을 내밀어 그 노란 주머니를 받으려고 하지 못했다. 할머니께서 휴―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얼마나 놀랐을가? 그 못볼것을 그림처럼 똑똑하게 보았을테니… 이걸 베개밑에 깔고 자거라. 그러면 혹시 마음이라도 편해질지…”
할머니는 말씀을 하시며 노란 주머니를 손수 령이의 베개 밑에 넣어주었다. 순간 령이는 온몸으로 전률 같은것이 느껴지며 머리칼이 쭈볏이 솟구치는것 같았다. 령이는 누구에게 멱살이라도 잡혀일어나듯이 움쭐 일어서며 새된 소리를 질렀다.
“뭐예요?”
할머니께서 령이의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팥주머니다. 예로부터 붉은 팥이 액을 막아준다 했거든.”
“할머니―”
령이는 별안간 할머니의 품을 파고들며 울음을 터뜨렸다.
“울어라, 울어. 실컷 울어라.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릴 때까지 실컷 울어라”
할머니는 소리없이 령이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그날 밤 령이는 꿈에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소복단장을 곱게 하고 령이를 향해 달려오고있었다. 그때도 엄마의 머리에서는 검붉은 피가 쉼 없이 흘러내리고있었다. 령이는 엄마의 머리에서 흐르는 그 피가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게 느껴졌다. 하건만 엄마는 령이의 목을 끌어안더니 령이의 어깨에다 머리를 박으며 어이어이 곡을 했다. 령이는 엄마를 떠밀며 악 소리를 지르다가 깨여났다.
창문으로 비쳐드는 괴괴한 달빛속에서 검은 형체가 눈에 안겨들었다.
“악!”
령이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뛰여일어나 스위치를 당겼다.
아버지가 옷을 입은채로 한껏 몸을 옹크리고 누워있었다. 술냄새가 코를 진동했다.
(어디 갔다가 왔을가? 할머니가 만들어준 노란 주머니가 아버지를 불러온게 아닐가?)
령이는 이런 생각을 굴리며 선자리에서 무너져내렸다. 아버지는 꿈에서도 누구를 향해 삿대질을 해대는지 웅얼웅얼 하며 손을 저어댔다. 령이는 갑자기 가슴이 턱턱 막혀오며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났다. 당금 집 천정이 문어져내릴듯한 공포가 엄습해왔다.
령이는 자기가 누웠던 곳을 향해 벌벌 기여가서 베개를 들었다. 이웃집 할머니께서 베개 밑에 넣어준 노란 주머니가 보였다. 령이는 주머니를 주어 가슴에 꼭 가져다 대고 두눈을 꼭 감았다. 눈앞에서 노란 오각별 같은것들이 란무하더니 어디론가 동동 떠가는듯한 환각이 생겼다. 령이는 두눈을 감은채로 날아가는 오각별을 향해 머리를 쳐들었다. 저도 모르게 후- 하고 긴 한숨이 터져나갔다.
가슴이 뻥 뚫리는듯싶었다. 령이는 두눈을 번쩍 떴다. 꼬부리고 누운 아버지의 모습이 한눈에 안겨들었다. 푸푸 입김을 뿜어대는 아버지의 입가에서 걸찍한 느침이 줄줄 흘러내리고있었다. (이 사람이 나의 아버지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도 머리속을 치고 들어왔다.
(나의 몸에서 이 사람의 피가 흐르고있구나. 그런데 난 왜 이 사람이 이렇게 싫고 무섭게만 느껴지는것이지?)
령이는 생각하면서 가슴에 가져다 붙혔던 노란 주머니를 내리워 두손으로 꼭 감싸쥐였다. 손바닥이 따뜻해나는것 같았다. 그 느낌때문인지 얼음물에 잠긴것처럼 뼈속같이 얼어들었던 가슴속 밑자락이 따뜻해지는것 같았다.
(지금쯤 엄마는 어디에 계실가? 정말 저승이라는것이 있을가? 이승에서는 아버지때문에 마음고생도 많이 하시더니 저승에 가서는 부디 행복하게 살으셨으면…)
령이는 생각을 하면서 소복단장을 한 엄마가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는 환영을 보고있었다.
“령이야, 아버지를 미워하지 말아라. 아버지도 힘들게 사는분이다. 원망 말구 아버지에게 효도해라. 아버지는 유일한 너의 가족이니까.”
환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자냥스러운 목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으며 령이는 으쓱 몸서리가 쳐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엄마―”
령이는 소리치며 두눈을 번쩍 떴다.
아버지는 추위를 느끼셨던지 왜소한 몸을 더욱 옹크리고있었다. 령이는 발딱 일어나 아버지의 머리에 베개를 베워드리고 이불도 덮어드렸다. 아버지는 령이의 체취를 느꼈던지 손을 흔들며 뭐라고 웅얼거리더니 잠잠해졌다. 령이는 베개우에 놓았던 노란 주머니를 다시 주어들었다.
(하느님, 하느님이 정말 계신다면 울 아버지가 마음을 잡게 해주세요. 나쁜 술버릇을 던지고 나와 함께 별고없이 편하게 살게 해주세요.)
령이는 노란 주머니를 싹싹 쓸면서 보지도 못한 하느님을 향해 진심으로 소원을 빌고 또 빌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불속에서 몸만 쏙 빠져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어디로 갔을가?)
집이라 해야 손바닥만한 단칸방이라 어디 찾아볼 곳도 없었다. 령이는 발딱 자리를 차고 일어나 신을 찾아 신고 출입문을 열었다. 혹시 마당에라도 나가있는지 찾아보고싶어서였다.
마당을 다 돌고 뒤울안에도 들어가 보았지만 아버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살아진 아버지가 아리송하게만 생각되였다. 혹시 꿈이라도 꾼것이 아닐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몸이 쏙 빠져나간 깃이 들려져있는 이불은 분명 어제 밤에 아버지가 왔었음을 말해주고있었다. 령이도 아버지가 엄청 술을 많이 마셨댔고 손을 저으며 뭐라고 웅얼거렸고 잘 튀겨진 새우처럼 몸을 옹송그리고 누워있던 기억이 생생했다.
(어제 밤에 그렇게 하느님께 소원을 빌었건만 아버지는 또 나가셨구나. 그래, 내 정성이 부족했던가? 내 정성이 부족해서 아버지가 아직 마음을 잡지 못하신걸가?.)
착잡한 생각이 가슴을 괴롭혔다. 령이는 집안으로 들어가 베개밑에 곱게 넣어놓았던 노란 주머니를 찾아들었다. 긴 밤을 베개밑에 놓여져 있어서였던지 노란 주머니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래, 이거야. 이 주머니가 더 용해지게 다시 만드는거야, 엄청 용해지게 해서 아버지를 집에 잡아두는거야.)
령이는 노란 주머니를 손에 들고 급히 문을 나섰다.
마침 이웃집 할머니도 마당에 나와 손채양을 하고 서서 빨갛게 타오르는 일출을 바라보고계셨다. 전에도 몇번 본적이 있는 그림이였지만 그때는 무심히 흘러버린 령이였다. 하지만 이날은 할머니의 얼굴이 여간만 경건해보이지 않았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불타는 일출에서 뭔가를 찾아 내려는듯한 신비감까지 어려 있었다. 령이는 할머니를 향해 발볌발볌 다가갔다. 할머니는 령이의 접근을 감지하지 못하셨는지 손채양을 하고 선채로 요지부동이였다. 령이는 미동도 없이 할머니를 지켜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너, 나왔구나. 그래, 잘했다. 이렇게 나와서 바람이라도 쐬야지.”
할머니께서 손을 내리우며 머리를 돌리더니 반색하여 령이를 맞아주었다. 령이는 입을 열지 못하고 할머니를 빤히 쳐다보며 머뭇거리기만 했다.
“얘야, 너 내게 무슨 할 말이 있구나. 주저하지 말고 어서 해라. 이 할미가 다 들어줄거니까.”
령이는 자신없어 머리를 푹 숙이고 애모쁘게 발끝으로 땅을 차다가 큰 결심을 내린듯 천천히 머리를 들며 잦아드는듯한 목소리로 “할머니―” 하고 불렀다.
“왜 그러니? 얼른 말해보라니까. 할미하구 뭐 못할 말이 있겠냐?”
“할머니, 노란 주머니를 더 크게 용하게 만들어 주면 안됨까?”
령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며 기대에 찬 눈길로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할머니는 깜짝 놀라시는듯 령이를 바라보더니 호―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주머니라니? 오― 그 노란것을 말하는구나. 애두, 그건 그저 할수 없어 해보는 수작이지, 그걸 더 크게 만든다구 용해지겠냐?”
령이의 기대와는 달리 할머니는 너무도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령이는 그렇게 쉽게 이야기를 하시는 할머니가 못내 서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는 령이의 마음을 알아차리셨는지 할머니는 령이앞으로 한발 다가서서 꺼슬꺼슬한 손으로 령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얘야, 너 또 무슨 속 타는 일이라도 생겼냐?”
“아버지가 어제 밤에 왔었는데 깨나 보니 보이지 않슴다. 아버지가 또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함까? 할머니, 난 이 주머니를 손에 쥐고있으면 가슴이 따뜻해 남다. 나에겐 이 주머니가 정말 효험이 있는것 같슴다. 그러니 이 주머니를 더 크게 만들어서, 더 용하게 만들어서 울 아버지를 집에 맘을 붙이게 하구 술을 적게 마시게 하구 나랑 별 탈 없이 조용하게 살수 있게 해주시요. 네 할머니.”
“얘야, 이 불쌍한것아.”
할머니는 령이를 당겨다 가슴에 꼭 대고는 손으로 령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령이는 한동안 할머니의 손에 머리를 맡기고있다가 천천히 머리를 들어 할머니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정말 방법이 없음까? 빨간 팥을 넣은 노란 주머니를 더 크게 만들어 지니고있으면 아버지가 마음을 잡을수 있지 않겠슴까? 할머니, 도와주시요. 네?”
령이의 애절한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있던 할머니가 얼굴에 흐린 기색을 띠우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얘야, 이 할미가 주책을 부렸구나. 네가 너무 안돼보여서 내가 주책을 부린거구나. 그 주머니가 무슨 쓸모 있겠냐? 옛날에 미개할 때 정말 마음을 기댈 데가 없어서 하던 노릇이지. 너의 어버지가 정신을 차려야 하는건데. 얘야, 거기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말고 너절로 정신을 차려야 하니라. 아무도 도움이 안되는거지. 저절로 일어서야 하는거지.”
“할머니, 아님다. 전 속이 갑갑하다가두 할머니가 만들어준 노란 주머니를 손에 쥐고있으면 손바닥이 따뜻해나구 가슴이 활 열리는듯 편안했음다. 나에겐 이 주머니가 꼭 효험이 있슴다.”
“얘야.”
할머니는 힘들게 령이를 한마디 불러놓고는 잠간 말끝을 흐리셨다가 후― 한숨을 내쉬시며 말끝을 이었다.
“정말 내가 공연한 짓을 했구나. 이러는게 아니였는데. 늙은게 도와줄 방법은 없구, 마음은 급하구 해서 주책을 부린거지. 손바닥이 따듯해나구 가슴이 편해지는것같은것은 아무 기댈 데가 없다고 생각하던 너에게 작은 언덕이라도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게다. 그까짓게 무슨 효험이 있다구그러니. 밥이랑 꿍꿍 많이 먹구 너절로 힘을 내야 하는기라.”
“아버지가 영 안 돌아오면 난 어떻게 살람까? 할머니―”
령이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가 설레설레 머리를 저으셨다.
“왜 안돌아오겠냐? 애빈데, 너의 애빈데. 잠간 힘들어서 어딘가 바람 쐬러 나갔을게다. 얘야, 가자. 우리 집에 가서 아침이나 둬 술 뜨구 애비 찾으러 나가 봐라.”
말을 마친 할머니가 령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계실가?)
령이는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시골에서 올라와 계절계절 노가다현장을 뛴 아버지는 사실 따로 찾을 만한 친구도 갈만한 곳도 없었던것이다. 간혹 가는 곳이라 해야 힘들고 지쳤을 때 찾군 하던 동네 상점뿐이였다.
(아, 상점.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가?)
령이는 순간 뭔가 짚이는 데가 있었다.
령이는 곧추 아버지가 다니던 상점을 향해 걸음을 재우쳤다. 아니나다를가 멀리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여왔다.
“아버지―”
령이는 아버지를 부르며 상점쪽으로 달려갔다.
“아버지, 아침부터 왜 여기 있슴까?”
아버지는 령이의 소리에 머리를 들고 초점 없는 눈으로 한참이나 령이를 바라보더니 힘이 빠진 목소리로 떠듬거렸다.
“이…이것들이 나에게 수…술을 안준다. 나에겐 외…외상을 안준단다.”
실망에 꽉 찬 아버지의 목소리는 모기소리처럼 가냘프게 들려왔다. 아버지는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꽥꽥 구역질을 하고있었다.
“아버지, 이러면 안됨다. 가기쇼. 집으로 가서 아침을 잡수쇼. 내가 장국을 끓이겠슴다.”
령이가 아버지를 부축하며 애절하게 간청했다.
“이것들이 나에게 술을 안 판단다. 외상을 안 준단다.”
아버지는 또 그 소리를 반복하며 사탕을 먹고싶어 애간장이 타하는 어린애처럼 쩝쩝 입을 다셨다.
령이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다. 1원짜리며 2원짜리 부스럭 돈이 몇장 쥐여졌다. 세여보니 흰술 한병은 살수 있을것 같았다.
“아버지, 내가 술을 한병 사겠슴다. 집으로 갑시다.”
그 말에 아버지는 혀끝으로 입술을 감빨며 령이를 올려다보더니 입가에 헤벌쭉 웃음을 피웠다.

령이는 감자를 깎아 넣고 장국을 끓여 상에 올렸다. 김치도 들여다 곱게 썰어 상에 올렸다. 아버지는 령이가 부르기도 전에 상에 다가앉아 술병채로 마시기 시작했다.
“아버지, 제가 따라드리겠슴다. 천천히 마시쇼.”
령이가 술병을 뺏으려고 하자 아버지는 두손으로 술병을 검어쥐고 령이를쏘아보았다. 우멍하게 패인 피발이선 아버지의 눈에서 퍼런 빛이 툭툭 튀여나오는듯싶었다. 령이는 오싹 몸을 떨며 움찔 손을 당겨왔다. 그새 아버지는 또 술병을 입에 가져다가 꿀떡꿀떡 마셔댔다. 령이는 팔딱팔딱 뛰는 가슴을 손으로 꼭 누르며 애써 부드럽게 말했다.
“아버지, 그게 다 아버지가 마실 술인데 좀 천천히 마시면 안됨까? 안주도 잡수면서 말임다.”
“빌어먹을 놈들이 나에게는 외상술을 안준다는거다. 나 원 더러워서… 내 한국에만 가봐라. 돈을 벌면 걔네 상점 술을 다 사버리겠다.”
아버지는 잠간 말끝을 흐리우며 또 술병을 쳐들었다. 술병은 단번에 반나마 비워졌다.
“아버지―”
령이는 애원하다싶이 애절하게 아버지를 부르며 아버지의 손에서 술병을 나꿔챘다. 아버지는 령이가 당기는 대로 술병을 놓아버리더니 입을 떡 벌린채 한동안 멍하니 천정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왕―” 하고 황소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소리는 령이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내리는것 같았다.
“아버지, 왜 이램까? 아버지가 이러니 난 무서워 죽겠슴다.”
아버지는 그 소리에 잠간 제 정신을 찾았는지 뚫어져라 령이를 바라보더니 갈린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령이야, 네 엄마 사실은 영 불쌍한 사람이다. 어느때 한번 호강도 못해보구 고생만 죽게 하더니… 죽기는 왜 죽은거야. 내가 한국 가서 돈 벌어오면 잘 살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의 뿌연 눈에 이슬이 맺히더니 주르륵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버지는 주먹으로 찔끔찔끔 눈확을 누르더니 흐흐흐 청승스럽게 웃기 시작했다.
“흐흐흐… 그 사마귀가 네 엄마를 데려간거다. 그 사마귀귀신이 네 엄마를 데려갔다구…”
아버지는 한참이나 중얼거리더니 그 자리에 훌렁 누워버렸다.
령이는 밥술을 뜰 생각마저 잊어버리고 잠이 들어버린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애들처럼 입귀로 느침을 줄줄 흘리며 단잠이 든 아버지를 바라보며 령이는 아버지도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른 아침에 상점으로 외상술 마시러 가셨을가? 아버지를 지켜드려야 한다. 내가 아버지를 보살펴드려야 한다. 아버지니까. 내 가족이니까. 어떤 방법을 대서라도 아버지의 마음을 잡게 하는거야, 아버지가 마음을 잡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하는거야.)
령이는 생각을 굴리다가 베개 밑에서 노란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그 노란것이 아버지를 술독에서 건져낼수 있는 유일한 부적처럼 생각되였다. 령이는 주머니를 손으로 싹싹 만지다가 아버지의 머리 밑에 베워드렸다. 아버지는 딴딴 팥알이 불편했던지 인차 노란 주머니를 밀어버렸다. 령이는 인차 베개를 내리워 노란 주머니 우에 놓고 다시 아버지에게 베워드렸다. 잠간 베개를 베고 누워있던 아버지가 몸을 모로 돌리자 머리는 다시 베개우에서 굴러 내렸다. 자꾸 노란 주머니와 떨어지려는 아버지의 머리를 보면서 령이는 어느새 불안한 상념에 빠지고 말았다.
(웬 일일가? 왜 아버지의 머리가 자꾸 노란 주머니와 떨어지려 할가? 설마 저 주머니가 아버지에게 맞지 않는것일가? 그럼… 아버지에게 맞는것이 따로있지 않을가?)
령이의 머리속에는 접대 학교에서 오는 길에 보았던 전선대에 붙은 전단지가 떠올랐다. 그 전단지는 사람의 일생을 점쳐준다는 광고였다. 귀신처럼 사람의 전생을 알아맞추고 미래를 점쳐주며 액운을 미리 방토 해준다는 내용이였다. 전에는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무심하게 보아오던 그 전단지가 새록새록 령이의 머리속을 파고들었다.
(그래, 그 점쟁이를 찾아보는거야, 그 사람을 찾아가 아버지의 미래를 점쳐보고 우리 집 액운을 방토 하는거야.)
령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지는 그때까지도 입가에 느침을 줄줄 흘리며 잠들어있었다.
령이는 학교로 가는 길을 따라가며 전선대들을 살폈다. 아니나다를가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전선대에서 그 전단지를 찾을수 있었다. 그새 바람에 찢겨지기는 했어도 내용과 전화번호는 똑똑하게 알아볼수 있었다. 령이는 급히 핸드폰을 꺼내 전단지에 찍혀져 있는 전화번호를 눌렀다.
“뚜―뚜―”
신호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대방이 전화를 받는 동정이 알려졌다.
“이보시요, 광고를 보고 전화 드리는건데 거기가 점치는 집이…”
령이가 말끝을 맺기도 전에 대방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년아, 전화 올 줄 알고 기다리고있었다. 무슨 큰일을 당하려고 그러구 있는거냐? 빨랑 오지 않구 ”
“네?”
“뭐하고있는거냐. 빨랑 와서 액땜을 해야지?”
“네? 울 아버지가 위험해요?”
“위험하다뿐이냐? 그 꼴을 해가지구… 빨랑 와라.”
대방에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령이는 심장이 밖으로 튀여나오는것 같았다. 령이는 전단지에서 주소를 살폈다.


점쟁이네 집은 거기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령이는 종주먹을 부르쥐고 점쟁이를 찾아 잰걸음을 놓았다.
점쟁이네 집은 들쑥날쑥한 널판자로 울타리를 두른 보통 단층 벽돌집이였다.
40대의 아주머니 한분이 소복단장을 한 녀인의 앞에 공손히 앉아있었다. 령이는 소복단장을 한 녀인이 점쟁이일것이라고 생각했다.
점쟁이앞에 앉은 아주머니가 쿨적이고있었다. 점쟁이가 시끄럽다는듯 손을 홰홰 내저으며 소리쳤다.
“울지 말라니까, 제 남정두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년이 쿨쩍이기는 왜 쿨쩍여? 여태 뭐하고있었는데… 벌써 와서 그놈의 아래도리가 제 노릇을 못하게 방토를 해야지…”
점쟁이는 두눈을 지긋이 감더니 입속으로 뭐라고 념불을 시작했다. 한참 지나자 점쟁이는 쿨쩍이는 아주머니에게 빨간 주머니 같은것을 던져주고는 소리쳤다.
“이것을 그놈의 이불에 꽁꽁 달아줘라. 아래도리가 닿을만한 부근에 달아야 한다, 알지? 그놈 몰래 해야 하는거야, 그놈이 아는 날에는 더 기승을 부리며 날칠거니까. 그리구 보름만 지나봐라. 쫓아도 그놈이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할걸.”
령이는 점쟁이가 무엇을 말하는지 다는 알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 아주머니의 일이 제대로 풀려나가는 소리를 듣는것만 같았다.
(저렇게 방토를 하고 우리 아버지도 주정하는 버릇을 뚝 떼버렸으면… 집에 마음을 붙이고 열심히 살았으면…)
령이는 나름대로 소원을 빌어보며 아주머니가 일어난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년아, 어쩌고 왔냐?”
점쟁이가 갑자기 손바닥을 쫙 펴서 탕 하고 상을 내리쳤다. 령이는 와닥닥 놀라 몸을 옴츠리며 머뭇거리다가 기여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워 잠든것을 보고 왔슴다.”
“잠이 들었군. 무엇을 베워줬니?”
“베… 베개를…”
“베개를?”
“네 그 밑에 이웃집 할머니가 만들어준 노란 주머리를 깔아드렸슴다.”
“이런, 이런 죽일 년을 봤나? 그게 뭐라고 그걸 베워드려? 큰일을 치자고 환장을 했구먼.”
“엄마가 차사고로 돌아간 후 침침하고 아프던 가슴이 그 주머니를 베고 잔 다음부터 나아지는것 같길래…”
“이년아, 패끼(팥) 몇알을 베고 자서 귀신이 떨어졌으면 사람마다 패끼 뒤주에서 살아야겠다.)
“네? 그 주머니에 패끼(팥)가 들어있는걸 어떻게 암까?”
“이런, 이런 죽일 년을 봤나? 그것도 모르면서 내가 자리를 깔았을가? 네 애비도 불쌍쿠나. 천당에 못가 떠돌아다니던 너의 할애비 술시중에 항상 머리뚜껑이 훌렁훌렁 해 하더니 또 억울하게 죽은 녀편네까지 끌어안게 됐구나.”
“네? 그게 무슨 말임까?”
“네 애비한테 물어봐라. 워낙 너의 할애비가 유명한 술뒤주였거든. 그 술버릇을 저승까지 가지고 갔다가 신령님 눈에 나서 천당에 못간거야. 그래서 아직도 이승에 떠돌며 네 애비에게 붙어서 술충이나 달래는 판이였지. 그래서 네 애비가 술주정을 부리는거야.”
“설마요, 시골에 살 때는 아버지도 술주정을 하지 않았거든요.”
“요런, 요런 괘씸한 년을 봤나? 그때야 신령님이 너의 할애비를 눈여겨 살펴볼 때니까 그랬지. 아직 너의 애비에게 얹히지않았을 때니까 그런거지.”
“그럼 언제 부터…”
령이는 말끝을 흐리우며 점쟁이를 흘끔 쳐다보았다. 그러자 점쟁이가 또다시 손바닥으로 책상을 탕 하고 내리치며 입에서 침을 튕겼다.
“요런, 요런 그 주둥이가 제법 야물었네. 언제부터는 언제부터야, 너희들이 시내로 게바라들어온 그때부터 잘못된거지. 쯧쯧쯧… 네 에미는 딸년이 불쌍한것도 모르고 제 남정이 불쌍한것도 모르는 년이구나. 너 하구 네 애비한테로 왔다갔다 하며 머리를 풀어헤치고 날뛰는것을 보니… 이년아, 무겁지? 두 어깨가 천근같이 무겁지? 그래 안 무거우면 이상하지. 차에 치워죽은 네 에미가 동네귀신들을 한무리나 끌고 와서 팔자 좋게 척하니 너의 어깨 우에 올라앉아 헤벌써 웃고있는데 어깨가 안무거우면 이상한거지. 여보소― 놀라 죽은 귀신, 물러가소, 억울해서 죽은 귀신도 물러가소. 동에 귀신 서에 귀신 마음 곱게 잡수시고 이 년 어여삐 여기시고 물러가소, 물러가소.”
한폭의 커다란 승무도가 두려움에 떠는 령이의 머리속에 펼쳐지고있었다.
“진짜 울 엄마가 나의 어깨 우에 앉아있나요?”
령이는 반신반의 하며 점쟁이에게 물었다. 점쟁이의 두눈이 홱 꼭뒤에 올라가 붙었다.
“요런, 요런 맹랑한 년을 봤나? 네 에미 하나가 아니구 뭇귀신들을 끌고 올라앉아있다니까.”
“그럼 제가 어쩌면 좋아요?”
“이년아 그 뭇귀신들을 쫓아야 하지. 에미귀신을 쫓지 못하면 아무 일도 뜻대로 안될거다. 이년아, 왜 인제야 찾아오는거냐? 이럴 줄 알았지, 알았어. 요즘 어쩐지 내 머리가 소란스럽더라니까. 이런 귀신들을 목마 태우고 다니니까 그렇지. 물러가라, 물러가라. 놀라 죽은 귀신아, 물러가라. 억울해서 죽은 귀신도 물러가라. 동에 귀신 서에 귀신 마음 곱게 잡수시고 이년 어여삐 여기시고 물러가라, 물러가라.”
점쟁이는 갑자기 자리를 차고 일어나 빨간 부채를 펴들고 신내린듯 덩실덩실 춤을 춰댔다. 령이는 동그렇게 바람을 먹으며 돌아가는 점쟁이의 하얀 치마자락을 멀거니 바라보며 무서워서 잔뜩 어깨를 옹크렸다.
그날 령이는 돈 200원을 내고 누런 종이돈을 한아름 가져왔다. 밤 10시가 지난 후에 어머니가 차사고로 돌아간 그 자리에서 종이돈을 태우라는것이였다. 억울하게 죽은 어머니가 그 돈을 로자로 해서 천당에 간다는것이였다. 그리고 이웃집 할머니가 만들어준 노란 주머니도 함께 태워버리라는것이였다. 한 집안에 집지킴이가 둘이 있으면 서로 다투기에 큰 사고가 난다는것이였다.
그날 령이가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는 또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령이는 점쟁이의 말대로 밤에 태워버리려고 이웃집 할머니가 만들어준 노란 주머니를 찾았다. 분명 아버지의 베개 밑에 넣어두었던 노란 주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왜 없을가? 혹시 아버지가 가지고 간것이 아닐가? 그럼 어쩌지? 태워버리지 않았다가 정말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령이는 근심에 쌓여 가슴을 조이다가 종이돈을 안고 어머니가 사고를 당하던 마을 길로 나갔던것이다…


령이는 차츰 어제 밤에 있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머리속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차에 뛰여들었댔구나. 정말 내가 죽으려 했을가? 아닌데, 정말 죽고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어제 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하도 어이없게 놀길래 치미는 분을 누르지 못하고 무작정 뛰여가다가 달려오는 차에 치인거야. 그래, 그런거야. 죽으려고 생각했다면 내가 점쟁이를 찾아가 방토를 하고 종이돈을 태웠겠어? 그래, 맞아. 점쟁이는 이웃집 할머니가 만들어준 노란 주머니도 함께 태우라고 했는데… 맞아 그것을 태우지 않아서 내가 사고를 당한거야.)
령이는 또 노란 주머니를 생각하게 되였다. 한 집안에 집지킴이가 둘이 있으면 서로 다투기에 큰 사고가 난다던 점쟁이의 목소리가 귀전에 들리는듯싶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노란 주머니를 태우지 않아서 귀신들이 서로 다투다가 내가 사고를 당한거야. 그것을 태우지 않으면 우리 집에 또 어떤 액운이 닥칠지 몰라. 그 노란 주머니를 태워버려야해.)
령이는 한시 바삐 그 노란 주머니를 불속에 집어넣고싶었다. 령이는 애써 숨을 고르고는 바싹 말라터진 입술을 감빨다가 나직하게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는 그때까지도 손에 술병을 들고있었다. 령이의 부름을 들었는지 아버지는 입가에 가져갔던 술병을 내리우고 령이를 찔 가로보며 웅얼거렸다.
“이년아, 죽지 못해 환장을 했더냐? 차에는 왜 뛰여들어? 에미가 어디 천당에라도 갔는줄 알았어? 네가 에미를 찾아가느라고 차에 뛰여들었지?”
“아버지, 그러지 마쇼. 나 힘듬다. 아버지, 그 노란것을 어쨌슴까? 아버지가 가져갔지 예?”
“노란것이라니?”
아버지가 다시 령이를 가로보며 물었다. 령이는 잠간 숨을 고르다가 말했다.
“아버지의 베개밑에 있던 노란 주머니 말임다. 그 주머니를 어쨌음까?”
“아,”
아버지가 술병으로 자기의 신다리를 탁 내리치며 알은체를 했다.
“그 패끼(팥)를 넣은 주머니를 그러지? 그게 뭐야?”
“어쨌음까?”
“흐흐흐… 난 그안에 돈이라도 넣구 꿰맸는가 해서 호주머니에 넣고 나와 길에서 뜯었봤는데 그 잘난 패끼가 와르르 쏟아지길래 그대로 던져버렸다. 흐흐흐…”
아버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청승스럽게 웃어댔다.
“아버지!”
령이는 가슴이 꺽 막혀오는 감을 느꼈다. 눈앞에서 무수한 별찌들이 탁탁 튀면서 머리가 흐릿해났다. 령이는 흐릿한 그속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노란것을 보았다.
령이는 노란것을 잡고싶었다. 잡아서 활활 타오르는 불에 태워버리고싶었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의 나쁜 술버릇이 떨어지고 아버지가 가정에 마음을 붙일수 있다면 천번이고 만번이고 그렇게 하고싶었다.
령이는 노란것을 따라 허위허위 날아가는 자기의 환영을 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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