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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최동일 신작

단편소설 * 별은 그 자리에 있었다
2013년 03월 15일 06시 35분  조회:1750  추천:1  작성자: 동녘해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꽉 막힌듯싶었다.
은희는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평소 병원하고는 담을 쌓고 살던 은흰지라 선뜻 병원에 발걸음을 옮기기가 싫었다.
온 시내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었는지 초저녁이 훌쩍 지났는데도 병원은 환자들로 가득했다.
“콜록콜록…”
“쿨룩쿨룩…”
여기저기에서 기침소리가 터졌다. 앉을 자리가 없어 맨 바닥에 앉아 “오호호― 머리야―” 하고 앓음소리를 내는 할머니도 눈에 띄였다. “남녀로소 모두 다 모여들었네.”라는 노래의 한 구절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은희는 가슴이 갑갑해나고 얼굴에 열기가 확확 돋쳤다. 은희는 목깃까지 올렸던 쪼르래기를 아래로 내린후 오른손바닥을 펴서 얼굴에다 부채질을 해댔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괜히 짜증이 일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돌아나오고싶었지만 당금 뻥 터질것처럼 아파나는 머리때문에 그렇게 할수도 없었다. 은희는 굼벵이 길 건너듯 한없이 늘차게 줄어드는 순서를 울며 겨자 먹기로 기다릴수밖에 없었다.
바람이라도 쏘이고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밖으로 나가자니 바람이 너무 찰것 같았다. 은희는 현관에 서있는 사람들을 지나 유리창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은희는 본능적으로 유리창을 마주하고 섰다.  유리창에는 성에가 두텁게 끼였는데 뿌연 먼지까지 우에 올라 시선을 막고있었다. 꽉 막힌 자기의 가슴처럼 침침해났다. 무엇인가를 가지고 가슴도 뻥 뚫고싶었고 시야를 가로 막는 유리창문도 쿡 깨버리고싶었다. 은희는 머리를 유리창에 바투 가져다 댔다. 그후 입술을 동그랗게 오무리며 “호―” 하고 크게 입김을 뿜었다. 유리창에 꼈던 성에가 입김을 못이기고 차츰 색이 죽어갔다. 은희는 그 맵시로 연신 유리창에 입김을 불었다. 유리창의 성에가 녹기 시작하더니 이어 거짓을 모르는 아기의 눈망울처럼 동그랗게 맑은 유리가 드러났다. 은희는 익살궂은 악동처럼 동그란 유리에 오른 눈을 가져다댔다.
누르끼레한 가로등빛이 괴괴하게 내리 비추는 거리는 쌩쌩 몰아치는 서북풍에 한결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택시 한대가 은희의 눈길을 스쳐갔다. 검은 비닐봉지가 바람에 날려오더니 은희의 눈에서 사라졌다. 등산복에 달린 테두리에 흰 털이 보시시한 모자를 이마까지 폭 내리쓴 남자애가 은희의 시야에 들어왔다. 얼굴이 갸름한 닭알형이였다. 등산복을 입었지만 몸집이 쭉 빠져보였다. 남자애는 점점 은희의 시야에 다가들고있었다.
(쟤도 병원에 오는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남자애는 은희의 시야에서 휙 사라졌다. 하지만 은희의 머리속에서는 그 남자애가 사라지지 않았다. 남자애의 닭알형얼굴이며 잘 빠진 몸매는 은희로 하여금 걸이를 떠올리게 했다.
“걸이!”
부르기만 해도  울고싶은 이름이였다. 가슴으로 키워 온 이름이였다. 갑갑하던 은희의 가슴을 밝혀주는 별 같은 이름이였다.
 
남편이 자기의 짐들을 꿍져가지고 집을 나간것은 2월말이였다. 떠나가는 겨울이 슬퍼서인지 그날따라 지붕으로 눈석이물이 뚝뚝 떨어져내렸다.
“아빠, 가지마. 가지 말란 말이야.”
걸이는 아빠의 옷자락을 움켜 쥐고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남편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자기의 짐들을 날라다 차에 실었다. 걸이는 그러는 아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가지 말라.”고 호소했다. 은희는 그러는 걸이를 바라보면서 억장이 무너지는듯싶었다.
(어떻게 일궈낸 가정인데, 어떻게 지키려고 아득바득 애를 써 온 가정인데…)
걸이가 여덟살을 잡는 그해까지 걸이에게 아빠 없는 설음을 주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 은희였다. 하지만 남편은 그러한 은희의 진정도 몰라주고 다른 녀인을 품에 안았다.
남편의 짐이 빠져나가고 어수선한 집안에 남겨진 은희는 눈앞이 캄캄해났다. 당금이라도 그 자리에 잦아들고싶었다. 하지만 아빠를 내놓으라고 발버둥질을 치는 걸이를 보면서 은희는 자기에게 맥을 놓고 앉아서 숨을 고를만한 여유마저  없다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일어서야 한다. 내가 일어서서 걸이를 받쳐주어야 한다.  내 숲이 커야 걸이에게 비를 가리워줄수 있고 볕을 막아줄수 있다.”
은희는 한구들 가득 널려진 물건들을 치운후 소래에 물을 가득 담아 가루비누를 풀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걸레로구들을 빡빡 문질러 닦기 시작했다. 은희는 청소가 끝날 때까지도 어깨를 들먹이는 걸이를 달래여 품에 껴안으며 말했다.
“괜찮아, 걸이야. 엄마가 있잖아? 엄마가 걸이를 지켜줄거야!”
걸이는 여전히 은희의 품에 머리를 틀어박은채 바들바들 떨고있었다. 은희는 그러는 걸이를 더 으스러지게 껴안으며 말했다.
“걸이야, 이제부터는 더 용감해야 한다. 아빠가 가버렸거든. 그래서 이 세상에 걸이와 엄마 두 사람만 남게 된거야. 하기에 옛날보다 더 용감해야 하는거지. 그래야 아빠가 지켜주지 못하는 그런 두려움도 이겨낼수 있는거야. 그리고 자기 일은 자기 절로 하는 습관도 키워야 하구. 우리 걸이, 그렇게 할수 있지? ”
은희는 너무도 때 일찌기 상처입은 어린양 같은 걸이를 내려다 보며 한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걸이가 살풋이 얼굴을 들고 은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걸이야, 시름 놓으렴. 엄마가 있잖아. 엄마는 우리 걸이의 눈빛이 하냥 별처럼 반짝이게 할거다. 엄마는 우리 걸이에게 세상에서 제일 맛나는 음식을 먹일거구 세상에서 제일 멋진 옷을 입힐거구 세상에 제일 좋은 대학에 보낼거다.”
은희는 오래도록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시각 은희는 하고싶은 말이 그렇게도 많았다. 하지만 그로서도 그 말을 여덟살에 나는 걸이에게 하고싶은건지 아니면 남편을 떠나 보낸 자기에게 하고싶은건지 알수 없었다. 한참이나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품에 안긴 걸이가 동정이 없어 내려다보니 걸이는 입가에 느침을 줄줄 흘리면서 잠들어있었다.
이튿날, 은희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학교로 가는 걸이에게 아침밥을 끓여 먹이려는 생각에서였다.
“얘는 지금도 자고있겠지?”
은희는 그렇게 생각하며 걸이의 침실문을 열어보았다. 순간 은희는 목구멍이 꺽 막혀왔다. 걸이는 넥타이까지 단정하게 매고 책상앞에 앉아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있었다.
“걸이야, 너 뭘하고있는거니?”
“학교갈 시간을 기다리고있슴다.”
“너 어떻게 이리 일찍 일어났니?”
“엄마가 나에게 자기 일은 자기절로 하는 습관을 키우라고 했잼까? 아침에 일어나지 못할가봐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았슴다.”
걸이의 목소리에는 피곤이 가득 묻어있었다. 하지만 은희를 바라보는 두눈만은 반짝였다. 별을 떠올렸다. 은희는 그 별이 바로 자기가 살아가는 전부의 리유라고 생각했다.
생각 같아서는 와락 걸이를 끌어안고 볼이라도 뿌벼주고싶었지만 은희는 애써 자기의 감정을 억제했다.
“걸이야, 우리 걸이 참 장하네!”
“내 일은 내 절로 하겠슴다.”
걸이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힘이 들어있었다. 그 말을 들으며 은희는 여덟살에 나는 아이가 하루밤 새에 그렇게 클수있다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은희는 하루 새롭게 변해가는 걸이를 믿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 나이또래의 어린애 같지 않게 음식타발도 하지 않았고 놀이감에 대한 집착도 하지 않았다
속에 작은 령감이라도 들어 앉은듯 너무도 일찌기 셈이 들어가는 걸이를 보면서 은희는 자기가 못나 걸이의 동년을 다 갉아 먹는다는 죄의식이 가슴 한구석을 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걸이의 동년을 보상해줄수 있을가?)
정신적으로는 어쩔수 없는 형편이였지만 물질적으로만은 자신의 조건이 허용되는 범위에서 최고로 만족을 주고싶었다.
손바닥에 쥐면 보이지 않을만치 작고 깜찍한 핸드폰을 산것도 그런 생각에서였다. 그날 출근길에 그런 핸드폰을 목에 건 걸이또래의 한 남자애를 보면서 은희는 그 핸드폰을 꼭 걸이의 목에 걸어주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핸드폰이 있으면 어디에 가서든지 수시로 걸이와 련락할수 있어서 생활에 매우 편리할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저녁, 은희는 핸드폰을 받아 들고 좋아서 퐁퐁 토끼뜀을 할 걸이를 그려보면서 집에 들어섰다. 걸이는 책상앞에 앉아 숙제를 하고있었다. 은희는 걸이의 침실에 들어서면서 기쁘게 소리쳤다.
“걸이야, 봐. 핸드폰이다.”
“핸…핸드폰?”
걸이는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고 올롱한 눈으로 은희를 바라보았다.
“그래, 핸드폰이야. 핸드폰이 있어야 우리 걸이가 어디에 가도 쉽게 련계할수 있지.”
“내가 어디로 감가? 날 어디 보내려구 그럼까? 엄마.”
걸이의 목소리는 무서움에 파르르 떨렸고 얼굴색은 파랗게 질려가고있었다.
“아!”
은희는 가슴에서 철렁하고 돌멩이가 떨어져내리는것만 같았다. 은희는 걸이를 와락 당겨다 한품에 끌어안았다.
“걸이야, 너…너 왜 그렇게 생각하니?”
“모르겠슴다. 문뜩 그런 생각이 듬다.”
속삭이는 걸이의 두눈에 이슬이 맺혀 반짝이고있었다. 은희는 걸이의 얼굴에 자기의 얼굴을 부비며 목메인 소리로 떠듬거렸다.
“거…걸이야, 절대, 절대 그런 생각을 하면 안돼. 주…죽어도 살아도 엄마는 걸이와 함께 할거야!”
“네.”
걸이는 은희를 향해 어른스럽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그러는 걸이를 보면서 은희는 걸이의 가슴속에 자리 잡아가는 그늘을 지워주고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잘 되지 않았다. 회사의 중견으로 뛰고있는 은희는 회사의 일로도 힘들었던것이다. 은희에게 있어서 사업파트너들과 술자리를 하는 일도 밀어버릴수 없는 일과였다. 저녁 늦게까지 자기를 기다릴 걸이가 불쌍해서 될수록 일찌기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는것이 아니였다.
그날,  2차로 노래방을 끝내고 3차로 죽집에 가자는 동료들을 뿌리치고 은희가 집에 돌아온것은  10시를 금방 넘겨서였다. 그때까지 걸이는 자지 않고있었다.
“걸이야, 양뤄촬(羊肉串).”
은희는 포장마차에서 사가지고 온 양고기뀀을 걸이앞에 내밀었다.
“감사함다, 엄마.”
걸이는 양고기뀀을 받아들고 깍듯이 인사를 올렸다.
“걸이야, 엄마하구는 그렇게 인사하지 않아도 되는거야. 우린 가족이니까.”
“네.”
걸이는 몸을 돌려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손에 물컵을 들고 나왔다.
“엄마, 마시쇼. 꿀물임다.”
걸이는 두손으로 물컵을 들어 은희앞에 내밀었다. 전에도 은희가 늦게 올 때면 자지 않고 기다리기는 했지만 그렇게 미리 꿀물까지 풀어 랭장고에 넣고 기다리기는 처음이였다. 은희는 떨리는 손으로 컵을 받으면서 입을 열었다.
“감사하다, 걸이야.”
“아니요, 엄마. 우린 가족이잼까.”
은희는 와락 걸이를 끄러안고 약간 떨리는 손으로 걸이를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었다.
 
아프다고 그대로 멈추어 있는 시간이 아니였다. 아픔을 안고도 걸이는 무럭무럭 잘도 커갔다. 늘 새물새물 웃으며 “엄마, 엄마.” 하고 불러주던 걸이의 세계에 새로운 무대가 펼쳐지고있었던것이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걸이의 입에서는 “엄마”라는 호칭이 뜸해졌고 새물새물 웃던 웃음도 사라졌다. 은희가 벼르고 별러대화를 하려고 입을 열면 걸이는 “아니요.”, “네”, “별거 아님다.”로 대화를 대체했다. 사춘기를 앓고있는 걸이를 두고 은희는 별로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은희에게도 힘들게 사춘기를 넘어온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이나 동료들의 입에서 자식들이 힘들게 사춘기를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은적도 있었다. 은희는 조용히 걸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어릴 때처럼 그렇게 밝은 모습은 아니지만 걸이는 그래도 용하게 사춘기를 넘기고있었다. 코밑이며 두볼에까지 수염이 자라나 하루라도 면도를 하지 않으면 이웃집나그네를 방불케 했다.
은희는 가끔 꿀물을 타서 랭장고에 얹어주던 어린 시절의 걸이가 그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또 하늘이 무너져도 떠받칠수 있을듯 튼실하게 자라난 걸이로 하여 가슴속 한구석이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걸이는 그렇게 무난히 초중을 졸업하고 고중에 들어갔으며 대학에 입학했다.
걸이를 싣고 떠나가는 기차를 향해 손을 저으며 은희는 두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제할수 없었다. 좋은 날에 눈물을 흘리지 말자고 마음 먹었지만 눈물은 멈출줄을 몰랐다.
은희에게 있어서 리혼후의 십여년 세월은 그야말로 걸이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세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쥐면 부서질가 불면 날아날가 애지중지 보듬어 오던 그 자식이 어엿한 대학생이 되여 그의 품을 떠나는것이였다. 자랑스러웠다. 세상에 두려울것이 없을것 같았다.  하늘이 무너지면 그 놈이 한모퉁이를 든든히 받쳐줄것 같았다.
걸이가 첫 겨울방학을 맞아 집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던 그날밤, 은희는 긴긴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지나간 하루하루가 영화필림마냥 은희의 눈앞을 스쳐지났던것이다.
이튿날부터 은희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걸이가 돌아올 날을 기다렸다. 구석구석 먼지도 털어내고 어지럽지도 않은 이불도 뜯어 빨았다.
걸이가 차에 앉았다는 전화를 받던 그 순간부터 은희는 가슴이 활랑거려 도무지 진정할수 없었다.
그날, 은희는 렬차 도착시간을 한 시간이나 앞당겨 역전으로 나갔다. 떠나는 사람, 바래는 사람 그리고 마중나온 사람들로 대합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혼탁한 공기로 하여 머리까지 뗑해났다. 역에 나가 시원한 바람이라도 쏘이며 기다리는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함께 개찰구를 나왔던 사람들을 렬차에 실어보낸 역에는  찬바람만 쌩쌩 몰아칠뿐 사람그림자도 얼마 보이지 않았다. 은희는 으스스 몸을 떨면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5시 10분이였다. 렬차가 역에 들어설 시간까지는 30분이 남아있었다.
(어디까지 왔을가?)
은희는 걸이를 그려보면서 머리를 들었다.
까아만 밤하늘에서 별무리들이 숨박꼭질이나 하듯 깜박이고있었다. 분명 그 자리에 있는 별을 본듯한데 잠간 딴눈을 팔고나면 그 별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잘 못 보았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른 별을 살피다가 다시 그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또다시 그 자리에 별이 나타나 반짝이고있었다.  (저 별은  원래 저 자리에 있었던건가?) 은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무룩히 입가에 웃음을 피워 올렸다. 
차츰 발끝이 시려왔다. 찬바람이 뼈속까지 스며드는것 같았다. 은희는 선자리에서 동동 발을 굴렀다. 30분이 지났건만 렬차는 역에 들어서지 않았다.
(웬 일일가?)
은희는 초조한 마음을 안고 사업일군에게 사연을 물었다. 렬차가 30분 연착되였다고 알려주었다.
“호― 하필이면 오늘 렬차가 연착될건 뭐람!”
은희는 얼어서 남의 살갗처럼 되여버린 입술을 감빨았다.아래턱이 덜덜 떨려나 좀처럼 진정할수 없었다.
그날밤, 걸이와 함께 택시에 앉아 집으로 돌아온 은희는 온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역전에서 바람을 맞아 그렇겠지. 저녁후에 감기약이나 먹어야겠다.)
은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정성다해 저녁밥상을 차렸다. 걸이가 좋아하던 갈비찜이며 동태탕도 상에 올렸다. 은희는 저녁을 먹으면서 걸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싶었다.
하지만 걸이는 오랜 시간 차에 치워 오느라 피곤했던지 겨우 은희의 말에 응부하면서 수걱수걱 밥술만 입으로 날라갔다.
“걸이야, 이 갈비찜을 먹어봐라. 아침부터 삶은것을 엄마가 방금 조미료를 넣어 가공했단다. 고기가 많이 붙었거든. 살짝 당기기만 해도 뼈가 술술 빠질거다.”
은희는 큼직한 갈비 하나를 집어 걸이의 밥사발에 놓아주었다.
“됐어요. 저 절로 먹을게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걸이는 은희가 집어준 갈비를 집어들었다. 뼈에 붙은 두툼한 고기를 쑥 빼서 우물우물 씹는 걸이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묻어 있지 않았다. 하다못해 “맛있슴다.” 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해도 좋을것 같았다. 하지만 걸이는 고기를 다 씹어 꿀꺽 소리나게 삼킬 때까지도 말 한마디 없었다. 은희는 자기의 노력이 보상을 받지 못하는듯한 생각이 갈마들면서 어딘가 좀 서운하게 느껴졌다.
(얼마나 보고싶었는데. 하고싶은 말은 또 얼마나 많았구.)
하지만 너무도 덤덤한 얼굴로 밥만 먹어대는 걸이에게 뭐라고 말을 건다는것이 부담스럽게 생각되였다. 은희는 기계적으로 입에 음식을 날라가는 걸이를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딱히 어떻다고 음식에 대한 평가는 없었지만 걸이는 이것저것 잘 먹어주었다. 은희는 갈비 하나를 또 집어 걸이의 밥사발에 놓아주며 넌짓이 물었다.
“맛있지? 갈비.”
“네.”
“학교식당에서도 갈비랑 하니?”
“네, 가끔.”
“자주 사먹어야지.”
“비싸죠.”
“애두, 비싸다구 먹고싶은것을 참겠니?”
은희는 걸이와의 화제를 찾은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걸이는 몇술 더 뜨는것처럼 하다가 수저를 내려놓았다.
“왜, 벌써 다 먹었니?”
“배 불러요.”
걸이는 짤막하게 한마디 하고는 걸상에서 일어섰다.
“왜, 더 먹지.”
말끝이 떨어지기도전에 걸이는 은희의 시야에서 휙 사라졌다. 은희도 그러는 걸이를 따라 객실로 나갔다. 걸이는 그러는 은희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 쿵 하고 방문을 닫아 버렸다. 순간 문소리와 함께 은희의 가슴도 꺽 막혀버리는듯싶었다.
그날밤, 은희는 온몸에 열이 오르고 목이 아파 도무지 잠을 이룰수 없었다. 은희는 가까스로 일어나 감기약을 주어 먹고 다시 자리에 들었다. 은희는 긴긴 밤을 악몽으로 모대기다가 새벽녘에야 쪽잠이 들었다.
얼마 잔것 같지 않은데 자명종이 울렸다. 걸이만 없다면 그대로 누워있다가 그 맵시로 출근하고싶었지만 걸이의 아침밥때문에 일어나지 않을수 없었다.
은희가 밥상을 차려놓고 불러서야 걸이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침은 안 먹어도 괜찮은데요.”
걸이는 잠기 어린 두눈을 뿌비면서 밥상앞에 마주 앉았다.
“얘를 봐라. 아침을 안 먹다니. 속을 버린다. 너 학교에서 자주 아침을 굶는것이 아니니?”
“네, 보통 안 먹어요.”
“쯧쯧쯧… 객지 밥을 먹는 사람들은 그래서 위를 버린다니까. 피곤해도 아침은 꼭 챙겨먹어야 한다.”
“네.”
“집을 나가면 고생이지. 엄마곁에 있었으면 아침마다 따끈따끈한 밥을 먹겠는데.”
“모두들 그렇게 살아요.”
“하긴, 모두가 너 같은 도개비들이겠으니까.”
은희는 말하면서 걸이의 얼굴을 일별했다. 걸이는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수걱수걱 밥술만 뜨고있었다. 그러는 걸이를 보기만 해도 은희는 배 부른것 같았다. 은희는 수저를 들 생각마저 잊고 뚫어져라 걸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안 잡수세요?”
“먹어야지. 먹는다구… 아이참, 그런데 왜 내 얼굴에 이렇게 열이 오르지…”
은희는 얼굴에 대고 큰 동작으로 손부채질을 하면서 말했다.
“감기에 걸린거 아니예요? 약을 잡수세요.”
“그래, 약 먹어야겠다. 너 밥 더 줄가?”
“아니요. 배 불러요.”
말을 마친 걸이는 수저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벌써 다 먹었니? 좀더 먹지.”
“됐어요.”
말을 마친 걸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맵시로 침실에 들어가 덜컹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남자애들은 참 도틀이 없다니까. 녀자애들 같았으면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랑 하면서 시시콜콜 수다나 좀 떨어줄건데…”
은희는 아쉬운 생각에 끌끌 혀를 차다가 밥맛이 돌지 않아 그대로 일어섰다.
은희는 천근같은 다리를 끌며 출근길에 올랐다. 간신히 사무실에 도착했지만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은희는 그렇게 진종일 우왕좌왕 하다가 퇴근시간을 맞춰 일어섰다.
집에 들어서자 걸이의 침실문이 열렸다.
“왔어요?”
걸이가 내복바람으로 나오며 인사했다.
“오, 너 어데 놀러 안 나갔댔니?”
은희는 애써 얼굴에 웃음을 담으며 걸이를 바라보았다.
“네. 집에 있었댔어요.”
말을 마친 걸이는 다시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버렸다. 뭔가 더 말하려고 입을 벌리던 은희는 탕 하는 문소리에  실망하고입만 쩝쩝 다셨다. 순간 웬지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걸이의 침실과 객실을 막아놓은 그 침실문이 은희에게는 산처럼 느껴졌다. 그 산이 너무 높아 도무지 넘을수 없을것 같았다. 은희는 자신이 걸이에게서 완전히 잊혀진 사람으로 되는것 같아 서럽기까지 했다.
은희는 옷을 벗어 옷장에 대충 걸어놓고는 무너질듯 침대에 쓰러졌다. 저녁이고 뭐고 관계 없이 그대로 잠들어 버리고싶었다. 은희는 이불을 당겨다가 머리까지 푹 덮어썼다. 눕자마자 잠이 쏟아질것 같았지만 정작 눕고보니 머리만 지긋지긋 아파나면서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말뚱말뚱해지는 눈앞으로 수걱수걱 밥술을 나르던 걸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자기가 일어나지 않으면 걸이도 저녁을 먹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이들었다.
(안되지, 나는 아파서 그렇다손 쳐도 몸이 펀펀한 걸이야 저녁을 굶길수 없지.)
가까스로 일어나 앉아 숨을 고르고 난 은희는 객실에 나가 걸이의 침실쪽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걸이야, 저녁에 뭘 먹고싶니?”
“아무거나.”
걸이는 나오지도 않고 자기의 침실에서 한마디 했다.
“삼겹살을 구워줄가?”
“맘대루.”
이번에도 걸이는 그렇게 외마디 대답만 할뿐이였다.
“알았다.”
은희는 잦아드는 목소리로 한마디 하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저녁밥상을 마주하고 앉았지만 은희는 온몸에 열이 팔팔 끓어 도무지 밥알을 넘길수 없었다. 은희는 들었던 수저를 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밥맛이 없네. 걸이야, 너 혼자 먹어라.”
“감기 심하게  걸렸네요.  병원에 가서 링겔이라도 맞으시오.”
“아니다. 잠간 누웠다 일어나면 낫겠지.”
은희는 천천히 몸을 이르켜 두어걸음 걷다가 머리를 돌렸다. 걸이는 머리를 수굿한채 부지런히 입에 밥을 퍼넣고있었다.
(참, 내가 밥맛이 없다한다구 한번 더 권하지도 않네.)
은희는 서운한 생각에 “호—”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자기의 침실로 들어갔다.
너무 힘들었던 탓인지 은희는 용하게도 잠이 들었다가 목에서 겨불내가 나는것 같아 깨여났다. 은희는 물을 찾아 주방으로 갔다. 걸이가 쓰던    밥사발과 수저가 가시대에 들어가 있는외에 나머지 반찬그릇들은 그대로 밥상우에 놓여있었다. 은희는 정수기에서 물을 뽑아 꿀꺽꿀꺽 마셨다. 타는것 같던 가슴이 잠시나마 시원해지는듯싶었다. 은희는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면서 침실로 들어가려다가 문뜩 머리를 돌려 걸이의 침실쪽을 바라 보았다. 침실문은 여전히 굳게 닫친대로였다.
(걸이는 진종일 침실에 들어박혀 뭘 하고있을가?)
은희는 침실문을 확 밀어열고 들어가 걸이가 무엇을 하는가를 보고싶었다. 하지만 걸이의 침실쪽으로 두어걸음 옮기던 은희는 문뜩 걸음을 멈추었다.
(그래, 봐서는 뭘 하지? 그만두자, 설마 걸이가 침실에서 나쁜짓이야 할라구? 제 하고싶은 대로 하라지.)
은희는 주방으로 돌아가 밥상앞에 마주앉았다. 밥을 몇술이라도 떠넣어야 감기약을 먹을수 있을것 같았던것이다. 걸이가 먹다 남긴 반찬그릇을 그대로 마주하고 앉아 모래알처럼 느껴지는 밥알을 세여 입에 넣노라니 저도 몰래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쩌면 자기가 사람그림자 하나 없는 불모지에 던져진듯한 외로움이 갈마들었던것이다. 은희는 저도 모르게 걸이에게 의지하고싶어지는 자신이 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지할수록 그만치 걸이가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것도 사실이였다.
(그래, 그게 아니야. 곧 내 품을 완전히 떠날 자식인데… 그 애에게 기대려고 생각하는 내가 틀린거지. 내 몸은 내 스스로 챙기는거야.)
은희는 애써 밥을 입에 퍼넣으며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시침이  7시를 가리키고있었다.
은희는 침실로 들어가 옷을 찾아 입었다. 병원에 가 링겔이라도 맞으려는 생각에서였다. 은희는 옷을 다 입은후 그냥 나가려다가 걸이가 자기가 없는것을 발견하고 근심할것 같아 알리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걸이의 침실쪽으로 다가갔다.
걸이가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된다는데. 정말이지 그럼. 우리 엄마가 와늘 열이 펄펄 끓는다. 그래, 자식이라구는 나 하나밖에 없는데 내가 지켜드리지 않으면 누가 지켜드리겠니. 그래, 다음날 보자. 우리 집 ‘로친’이 감기를 다 앓고난 후에 만나자.”
그 말을 들으며 은희는 가슴이 후더워 났다.
(내가 병원에 간다고 하면 혹시 나와 함께 병원에 가주겠다고 하지 않을가? 그래도 그건 아니지. 이 추운 날씨에 괜히 따라나섰다가 그 애가 감기에라도 걸리면 어쩔라구. 아니지, 내가 혼자 갔다오면 될걸 가지구.)
은희는 그렇게 흐뭇한 생각을 굴리면서 걸이의 침실에 대고 소리쳤다.
“걸이야, 엄마 병원에 간다.”
“네?”
소리에 이어 침실문이 열렸다.
(아니, 얘가 정말 함께 따라나서려는게 아닌가?)
은희는 가슴마저 후둑후둑 뛰였다.
“엄마가 병원에 가서 링겔을 맞고 올테니 너 먼저 자거라.”
“네, 갔다 오세요.”
말을 마친 걸이는 아무 일도 없는듯 몸을 돌려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 은희는 우두커니 서서 쿵 하고 닫기는 침실문을  바라보다가 한풀 꺾여 힘겹게 다리를 끌며 출입문쪽으로 다가갔다.
(어쩌면 인사말로라도 “함께 가줄가요.”라고 한마디 못하는가? 그렇다면 아까 제 친구들과 한 말은 저녁에 나가기 싫어서 나를 방패로 내세운것이란 말인가? 그줄도 모르고 나는 괜히 감동까지 먹지 않았는가?)
떡줄놈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신다고 속에 엄마라는 개념마저 없는 자식에게 짝사랑을 하는것 같아 은희는 괜히 부아통이 터지려고 했다.
 
생각같아서는 하루쯤 쉬고싶었지만 하루만 견지하면 토요일, 일요일인지라 은희는 힘들게 기여 일어났다. 겨우 아침밥을 지어놓았지만 기름냄새까지 맡고보니 좀처럼 식욕이 돌지 않았다.
은희는 상우에다 가지가지 반찬들을 곱게 차려놓은후 조용히 출근길에 올랐다.
저녁편이 되자 또 온몸이 펄펄 끓어 올랐다. 은희는 퇴근하는 길로 병원에 가 링겔을 맞을가고 생각하다가 그래도 집에 돌아가 걸이에게 저녁을 지어 먹인후 병원으로 가는것이 순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희는 간신히 공공뻐스에 올랐다. 퇴근시간이라 뻐스안은 시루속처럼 사람들로 빼곡했다. 그런데도 정거장마다에서 손님들이 올랐다. 내리는 사람이 적고 오르는 사람이 많아 뻐스안은 점점 더 비좁아졌다. 은희는 지탱하기 힘든 몸을 완전히 인파에 맡겨버렸다. 차가 덜컹 하고 들추자 사람들이 하나같이 뒤로 쏠렸다. 은희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깐센마(干什么)?”
뒤에서 찢어질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은희가 깜짝 놀라 머리를 돌려보니 뚱뚱한 몸매의 아줌마가 은희에게 눈을 부라리고있었다. 은희가 자기의 발을 밟았다는것이였다. 은희는 애써 얼굴에 웃음을 띠우면서 사과했다. 하지만 아줌마는 되려 기고만장해서 소리쳤다.
“메이짱 얜징아(没长眼睛啊?”
“네년은 뒤에도 눈이 달렸냐?” 하고 소리라도 치고싶었지만 제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지라 은희는 “나 죽었소.” 하는 식으로 두눈을 지그시 감아버렸다. 아줌마는 계속 뭐라고 궁시렁거리다가 제풀에 입을 다물어버렸다.
은희는 뻐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면서 사는게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덜컹 하고 출입문소리가 나면 침실문을 열고 내다보기라도 하던 걸이가 웬지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어데 나갔는가?)
신을 벗어놓는 바닥을 내려다보니 걸이의 신은 그대로 있었다. 아마도 귀에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라도 듣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은희는 침실로 들어가 되는대로 가방을 침대에 훌렁 던져버리고는  웃옷을 벗었다. 불시에 집안의 더운 공기가 몸을 감싸서인지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은희는 잠간 침대머리에 주저 앉아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터지는것처럼 아픈 머리속으로 뻐스에서 만났던 뚱뚱한 몸매의 아줌마가 떠올랐다.
“메이짱 얜징아(没长眼睛啊)”
아줌마는 얄밉게도 연신 소리치고있었다. 은희는 생각할수록 괜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은희는 몸에서 열이 더 끓는것 같아 우에 입었던 실내복을 벗으려고 목깃에 채운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손이 떨려 단추가 잘 벗겨지지 않았다. 은희는 신경질적으로 목깃을 확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단추가 떨어져나갔다.
(왜 이래, 참 재수에 옴 붙었네.)
은희는 궁시렁거리며 실내복을 벗어 옷장에 넣은후 잠옷을 입고 주방으로 나갔다.
청국장에 고추가루를 팍 넣어 끓여 먹으면 속이 개운해질것 같았다. 은희는 배추김치잎이며 감자며를 썰어 냄비에 넣은후 청국장을 푹푹 떠넣고 물을 부었다. 그후 가스레인지를 틀어놓고는 랭장고에서 콩나물을 꺼냈다. 콩나물을 데쳐 랭채를 무치려는 생각에서였다. 은희는 왼손을 얼굴 가까이에 가져다 손부채질을  하면서 오른손으로 콩나물을 다듬었다.
(괘심한 년, 공공뻐스가 그렇지. 그래 네년은 뒤에 눈깔이라도 달렸는감? 왜 나보고 “메이짱 얜징아?” 하고 욕하는거야?)
몸매가 뚱뚱한 그 아줌마가 지궂게도 은희의 머리속을 헤집고있었다. 은희는 고추가루 팔러 갔다가 서북풍을 만난 아낙네처럼 보이지도 않는 그 아줌마에게 궁시렁궁시렁 줄욕을 퍼부었다.  
그때 갑자기 청국장냄새가 코를 찔렀다. 은희는 감짝 놀라며 가스레인지에 눈길을 돌렸다. 팔팔 끓던 청국장이 넘쳐나 가스레인지에 쏟아져내리고있었다. 은희는 급히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는 청국장냄비를 들어내렸다.
은희는 행주로 가스레인지에 흘러내린 청국장을 닦아냈다. 밥맛을 당길것 같던 청국장냄새가 페부에 스며들자 구역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은희는 두손에 행주를 움켜쥔채 그 자리에 폴싹 주저 앉았다. 한번 시작된 구역질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은희는 왝왝 구역질을 하면서 급히 화장실로 뛰여갔다.
“왜 그램까?”
그 소리에 은희는 머리를 돌렸다. 걸이가 잠옷바람으로 뒤에 서서 초조한 눈길로 은희를 바라보고있었다.
순간 은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였는지도 모를 분노가 터져올랐다.
“너, 너 진종일 집에서 무슨짓을 하고있는거니?”
너무나도 돌연적인 공격에 걸이는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두눈을 퀭 하니 뜬채 은희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건 말건 은희는 젖먹던 힘까지 다내서 바락바락 소리질렀다.
“너무하다, 너. 에미가 다 죽어간다는데도 아픈가 한마디 물어두 안 보니? 아예 에미가 죽어 없어져야 시름이 놓이겠구나.”
말을 마친 은희는 그 맵시로 바닥에 풍덩 주저앉아 어깨를 들먹이며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냈다.
“왜, 왜 이램까?”
“됐다. 나…나, 너 없는셈 치겠다.”
말을 마친 은희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급히 부축하려는 걸이의 손을 쳐버리며 은희는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 쾅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걸이가 인차 따라 들어왔다.
“나라고 왜…왜 어머니가 감기로 힘들어하는걸 모…모르겠슴까? 그런데 알면 또 어떻게 하람까? 같이 앓을수도 없구.”
걸이가 불안한 목소리로 꺽꺽 말을 더듬었다.
“누가 너보구 같이 앓아달라구 했니? 아픈가고 물어도 못보는가 말이다.”
“참, 그래서 나두 ‘약을 잡수쇼.’, ‘링겔을 맞으쇼.’ 하고 문안하지 않았슴까?”
“야, 그렇게 의무적으로 한때 한번씩 물어보는것두 관심이냐?”
은희는 오른손을 들어 식지를 쭉 펴보이며 크게 소리쳤다.
“그럼 어떻게 하람까? 한때에 두번씩 물어보람까? 도움도 안될것을. 혹시나 엄마가 심부름이라도 시킬것 같아 친구들이 밤낮으로 놀러 가자고 전화 오는것도 내가  나가지 않고있잖슴까? 다른 애들은 집에 온날부터 뭉쳐다니며 놀고있슴다. 혹시 낮에 엄마 전화 올가봐 집을 지키구있었는데… 엄마는 그래 내가 녀자애들처럼 시도 때도 없이 ‘아픔까?’, ‘열이 남까?’, ‘목이 아픔까?’ 하구 물어봤음 좋겠슴까? 내 도움이 필요하면 시원히 말하쇼. 엄마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내 어떻게 암까? 왜 말 못하구 속으로 끙끙 앓기만 함까? 내 엄마 아들임다.”
말이 없던 걸이였지만 정작 입을 여니 말이 술술 잘도 나왔다. 련주포를 쏘아대는 걸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은희는 잠시 뭐라고 할 말을 찾을수 없었다. 걸이의 마디마디가 그른게 없다고 생각되였다. 하지만 무너지는 체면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은희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바락 소리 질렀다.
 “듣기 싫다, 듣기 싫어. 그 잘나게 에미를 생각하면서.”
은희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둘둘 굴러떨어졌다. 그러는 은희를 바라보던 걸이가 입가에 시무룩히 웃음을 담으며 말했다.
“알았슴다, 엄마. 저녁 먹구 나랑 병원에 가기쇼. 앞으로는 진짜 ‘잘나게’ 엄마를 생각하겠슴다.”
걸이는 휴지를 쑥 뽑아 은희의 눈가에 그렁그렁 맺혀있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어 큼직한 손바닥을 은희의 어깨우에 올려놓더니 힘있게  툭툭  다독여주기까지 했다.
“쉬쇼!”
말을 마친 걸이는 몸을 돌려 침실을 나갔다. 훤칠한 키꼴이며 떡 벌어진 어깨가 은희의 눈확을 파고들었다.   
걸이가 다독여준 어깨가 뜨끔뜨끔해났다. 이어 그곳으로부터 달콤한 난류가 온몸으로 퍼져나가는것 같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당금 터져버릴것 같던 머리가 어깨로부터 퍼져오는 그 난류때문에 한결 가벼워졌다.
은희는 창문가로 다가가 한겨울이라는것도 잊고 창문을 열어젖혔다. 찬바람이 휙 불어들어와 화끈화끈 달아오르던 은희의 얼굴을 쓸어주었다.
“후욱―”
은희는 길게 들숨을 끌었다.
가슴이 탁 트이는것 같았다.
캄캄한 밤하늘에서 뭇별이 반짝이고있었다. 자기가 몸 담그고있는 도시에 그렇게 많은 별이 있었다는것이 놀라울따름이였다. 그랬다. 별은 분명 그 자리를 지키고있었다. 은희는 자기가 그 별들을 보아내지 못했을뿐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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