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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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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반디불 댓글:  조회:3019  추천:0  2019-01-11
                               반디불  /윤동주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쪼각을 주으러 숲으로 가자.   그믐달 반디불은 부서진 달쪼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쪼각을 주으러 숲으로 가자.         맑은 영혼의 시심으로 우리 민족은 물론 일본의 사람들에게까지 널리 사랑받고 있는 윤동주 시인. 그가 본격적인 시를 쓰기에 앞서 여러 편의 동시를 쓰고 발표도 했다고 한다. 윤동주 동시집 『산울림』이 출간되어 그의 동시를 반갑게 읽었다. 동시「반딧불」은 윤동주의 시「또 다른 고향」의 어투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여름날 그믐밤의 반딧불이 어둠 속을 날아다니는 풍경을 3연 10행으로 짧게 노래한 이 동시는 간단하다. 그러나 1연과 3연이 단순 반복으로 된 이 동시가 갖는 의미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두 번이나 반복된 “달 조각을 주우러/숲으로 가자”는 것이 시의 핵심적인 내용이지만, 시 창작의 시발(始發)은 “그믐밤 반딧불은/부서진 달 조각”이라고 본 2연에 있다. 사물을 새롭게 보는 데서 모든 창작의 첫 출발이 이루어진다. 한 달의 마지막 날인 그믐밤은 달이 없어 깜깜한 밤이다. 깜깜한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반딧불은 부서진 달 조각이니 동무들아 저 달 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 가자고 시적 화자는 노래한다. 달 없어 깜깜한 그믐밤의 이면적(裏面的) 의미는 무얼까? 또 달 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 가자, 가자,”는 윤동주 시인의 외침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일제 식민지 시대 순결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했던, 그리하여 끝내 민족의 식민지 상황을 외면하지 못하여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외롭게 죽어간 윤동주의 삶과 연관지어 이 시를 자꾸 읽게 된다. 어두울수록 더욱 빛나는 밤하늘의 별처럼 식민의 시대에 순결한 삶을 지키려했던 젊은 영혼의 몸부림으로 남은 그의 시편들은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솟아난 별이다. -이종암(시인)   ///경북매일신문
4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만돌이 댓글:  조회:2724  추천:0  2019-01-11
  윤동주 /만돌이     만돌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전보대 있는 데서 돌짜기 다섯 개를 주웠읍니다.   전보대를 겨누고 돌 첫개를 뿌렸읍니다. ---딱--- 두개째 뿌렸읍니다. ---아뿔사--- 세 개째 뿌렸읍니다. ---딱--- 네 개째 뿌렸읍니다. ---아뿔사--- 다섯 개째 뿌렸읍니다. ---딱---   다섯 개에 세 개...... 그만하면 되었다. 내일 시험 다섯 문제에 세 문제만 하면-- 손꼽아 구구를 하여봐도 허양 육십 점이다. 볼 거 있나 공차러 가자.   그 이튿날 만돌이는 꼼짝 못하고 선생님한테 흰 종이를 바쳤을까요   그렇잖으면 정말 육십 점을 받았을까요     이 동시는 공부하기 싫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의 마음이 잘 표현된 동시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돌이가 내일 시험을 앞두고 시험공부를 안 하고 놀고 싶어서 돌멩이 다섯 개로 전봇대를 맞추는 것으로 다음날 시험을 찍었을 때에 정답을 맞추는 비율과 동일시하는 생각으로 돌멩이를 다섯 개 던져서 3개를 맞추자 다음날 시험에 나오는 다섯 문제 중 세 문제를 맞추어 육십 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공을 차러 가는 상황을 화자가 보고 그 다음날 시험에서 만돌이가 전날 생각대로 육십 점을 받았을까? 아니면 한 문제도 풀지 못하고 냈을까를 궁금해 하는 문제의 답을 독자에게 묻는 내용이다. ///전한성 ========================/// 이 동시는 시험을 본다는데도 공부하기가 싫은 어린 소년의 요행 심리가 유머러스하고 노련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으로 윤동주가 중학생(21세) 시절에 쓰여진 것이라네여.  무거운 주제의 윤동주만 생각하다 이 동시 끝부분을 읽다보면 그의 장난스러움에 웃음이 절로 납니다.~☆     
3    [그것이 알고싶다] - "말모이" = "조선어사전"... 댓글:  조회:3819  추천:0  2019-01-11
요약 최초의 한국어사전.   개화기 이후 국한문 또는 국문 중심의 문자생활이 이루어지면서 국문의 정리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언어생활의 규범이 될 만한 사전을 편찬해야 한다는 요구가 증대되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 주시경·김두봉·이규영·권덕규 등의 4인이 참여하여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1911년부터 〈말모이〉의 편찬에 착수했다. 1914년 주시경이 세상을 떠나고 〈말모이〉 편찬의 바탕이 되는 〈조선말본〉을 간행했던 김두봉이 상하이로 망명하자 〈말모이〉 편찬은 거의 완성 단계에서 중단되어 책으로 발간되지 못했다. 현재는 그 첫째권으로 보이는 'ㄱ~걀죽'까지의 표제어가 포함된 1권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말모이〉는 〈알기〉·〈본문〉·〈찾기〉·〈자획찾기〉의 4부분으로 짜여져 있으며 각 표제어는 '외래어 표시부호-표제어-한자·영자-문법용어-전문용어-의미풀이'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모이〉 편찬자는 용언의 어미와 체언의 조사를 포함하는 이른바 '토'를 독립된 품사로 설정했기 때문에 용언의 표제어는 체언의 표제어처럼 그 어간만이 제시되었다. 예를 들어 '가다', '까다' 등은 '가', '까'로 올라 있다. 현재 고본(稿本)으로 전하는 〈말모이〉에는 고유어 및 외래어, 전문용어가 표제어로 올라 있는데 어원의 제시 등이 없는 실용적인 성격의 사전이라 할 수 있다. 〈알기〉와 〈본문〉은 1986년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에서 간행한 〈한국문화〉 제7집에 소개되었다. ======================///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저작자 주시경, 김두봉, 권덕규, 이규영 창작/발표시기 1911년 성격 국어사전 유형 문헌 분야 언어/언어·문자 요약 1910년대 편찬된 현대적인 국어사전.   내용 최남선(崔南善)이 설립한 조선광문회에서 주시경(周時經)과 그의 제자들인 김두봉(金枓奉)·권덕규(權德奎)·이규영(李奎榮)이 민족주의적인 애국계몽의 수단으로 편찬하였다. 1911년부터 편찬이 시작되어 거의 원고가 마무리되었으나 편찬자들의 사망·망명 등으로 출판되지 못하고 현재는 그 일부의 원고가 남아 있다. 현전하는 『말모이』는 표제가 ㅁㅏㄹㅁㅗㅇㅣ로 가로 풀어쓰기로 되어 있으며, ‘알기’·‘본문(本文)’·‘찾기’·‘자획(字劃)찾기’로 짜여져 있다. 청색 원고지에 붓으로 쓴 이 원고본은 판심서명이 ‘말모이’로 되어 있고, 240자의 원고지로 모두 153면이다. ‘알기’에는 6개 항목의 범례와 어법용어 및 전문용어의 약호가 포함되어 있는데, 범례에서는 사전임을 우선 밝히고서, 동의어의 배열 및 그 풀이, 동음이의어의 풀이·배열·높낮이 및 외래어의 표시방법이 제시되었고, 어법용어 및 전문용어의 약호가 제시되어 있다. ‘본문’에는 ‘ㄱ’부터 ‘걀죽’까지 포함되어 있는데, 표제항의순서는 ‘첫소리’와 ‘받힘’은 ㄱ(ㄲ)·ㄴ·ㄷ(ㄸ)·ㄹ·ㅁ·ㅂ(ㅃ)·ㅅ(ㅆ)·ㅇ·ㅈ(ㅉ)·ㅊ·ㅋ·ㅌ·ㅍ·ㅎ, ‘가운데소리’는 ㅏ(·)·ㅐ(ㆎ)·ㅑ·ㅒ·ㅓ·ㅔ·ㅕ·ㅖ·ㅗ·ㅚ·ㅛ·ㆉ·ㅜ·ㅟ·ㅠ·ㆌ·ㅡ·ㅢ·ㅣ·ㅘ·ㅙ·ㅝ·ㅞ로 삼았다. ‘찾기’는 표제어에 대한 색인이며, ‘자획찾기’는 표제 및 본문 속의 한자어들에 대한 획수 색인이다. ==========================/// 근대 이전의 사전들은 대부분 한자사전일 수 밖에 없으나 훈몽자회나 천자문 등에 적혀있는 한자 훈음은 그 자체로 일종의 대역사전 역할을 했다. 조선관역어(15세기 초)는 한자어를 조선식 한문으로 뜻풀이한 일종의 대역사전이었다. 이미 '-다' 용언의 형태를 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사역원에서 역관들을 위해 만든 교재인 역어유해, 몽어유해, 동문유해, 왜어유해 등은 초보적인 대역사전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외국어사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특기할만한 것으로 사류박해(事類博解, 1839 이전)가 있는데 대역사전의 구성이지만 관련있는 항목들끼리 모아두는 배열을 시도하였다. 언음첩고(諺音捷考, 1846)는 가나다 배열을 시도했다는 측면에서 주목할만 하다.   근대적 사전의 출발은 외국어 학습과 선교를 위한 대역사전이었다. 쁘띠니콜라의 나한사전(1864, 유실), 불한사전(1869, 필사본), 뿌찔로의 로한사전(盧韓辭典, 1874), 리델의 한불자전(韓佛字典, 1880), 한어문전(1881), 언더우드의 한영사전(1890), 다블뤼의 나한사전(羅韓辭典, 1891), 스콧의 영한사전(英韓辭典, 1891), 게일의 한영사전(1897), 알레베크의 법한자전(1901) 등이 그러하다. 국한회어(1895)는 한중사전이지만 종종 명확한 뜻풀이를 위해 영어도 병기하여 다국어사전을 지향한 것이 독특하다.   말모이(1911~미출간)는 광문회에서 주시경과 김두봉이 주축이 되어 만든 초기형태의 사전이다. 해방공간의 혼란 속에서 출간되지 못하고 계명구락부를 거쳐 조선어학연구회로 넘어가 조선어사전의 근간이 되었다. 조선총독부의 조선어사전(1920)은 한한일 형태의 대역사전이었는데 출간 직전에 한일사전 형태로 변경되었지만, 이것도 국어사전으로는 볼 수 없다. 최초의 국어사전은 경성사범학교 교사 심의린(沈宜麟)이 펴낸 《보통학교 조선어사전》(1925년)이다.[2]   조선어사전편찬회는 말모이의 원고를 넘겨받아 1929년부터 조선어사전을 편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36년 조선어학회로 이관되고 42년에 초고가 완성되어 인쇄준비를 하였다. 그러다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져 원고도 상당수 유실되고 국어학자들이 고초를 겪거나 죽었다. 이 원고가 서울역에서 1945년 해방직후에 발견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1947년에 이름을 조선말큰사전으로 바꾸어 1권을 간행했다. 간행의 주역은 이극로, 정태진, 김병제 등으로 이후 김병제는 월북하여 조선말대사전(1962)의 완간을 주도하기도 했다. 조선말큰사전은 1957년에 한글학회에 의해 완간되면서 이름을 큰사전(1957)으로 바꾸었다. 큰사전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첫 번째 대사전으로, 한국인의 손으로 한국어를 처음 집대성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큰사전이 고초를 겪을동안 조선어사전편찬회의 회원이었던 문세영은 조선총독부 조선어사전을 기초로 재편집/재서술해 조선어사전(1938)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이윤재가 1933년부터 집필하던 표준조선말사전은 결국 1947년에 출간되어 해방직후에 상당히 읽혔다. 큰사전은 1991년에 개정판이 나왔으며 45만 표제어를 담있다.[3]   국어학자 이희승이 민중서관에서 출간한 국어대사전(1961)은 최초의 상업사전으로 32쇄(1982)를 찍을 정도로 성공한 사전이다. 42만 표제어를 담고 있었으며 2012년 현재도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신기철, 신용철 형제가 편집한 새 우리말 큰사전(1974)은 31만 표제어를 가지고 있었으며 삼성출판사에서 출간하였다. 김민수의 국어대사전(1991)은 금성출판사에서 출간되었으며 각종 한국어규범들이 반영된 첫 번째 사전이었다.   큰사전 완간 후 한글학회는 1967년부터 새로운 대사전 간행을 준비하지만 예산상의 우여곡절 끝에 우리말 큰사전(1991)으로 간행되었다. 비규범어, 고어, 방언들을 두루 살려서 고유어의 경계를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학작품에서 표제어와 예문을 선택한 것도 중요한 성과이다.   한국의 어문규정을 전담하는 국립국어연구원이 1992년부터 준비하여 표준국어대사전(1999)을 간행하였다. 50여만 항목을 가지고 있으며 이후 언론, 출판의 기준 역할을 다해왔다. CD롬도 함께 발간된 이 사전은 2008년에 웹사전 형태로 개정했다. 그리고 위키백과처럼 사용자 참여를 반영하는 개방형 한국어 지식 대사전을 2016년에 공개했다.   연세대학교에서 발간한 연세한국어사전(1998)은 5만 어휘를 담은 소사전이지만 말뭉치언어학의 방법론을 적용한 첫 번째 사전이다. 고려대학교는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2009)을 발간하였으며 이는 2012년 현재 가장 최신의 한국어 연구성과를 담고 있는 대사전으로 39만 표제어를 담고있다.   현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공동으로 《겨레말 큰사전》 편찬을 진행하고 있으며, 2019년 발간을 목표로 잡고 있다.[위키피디아] ======================///     출생 경남 동래, 1890 사망 미상 국적 북한 요약 8·15해방 후 북한에서 조직된 북조선노동당 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지냈으며 한글학자로도 유명하다.  1908년 보성고보를 졸업하였고, 중앙·보성·휘문 고보 등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주시경 밑에서 한글을 연구하고 광문회에서 조선어사전 〈말모이〉 편찬사업에 참여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상하이로 망명하여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1924년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에 선출되었고, 상하이 인성학교 교장을 맡기도 했다. 8·15해방 이후 북한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 북조선인민회의(최고인민회의의 전신) 의장 겸 상임위원장, 임시헌법제정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으면서 북한의 정권 창출에 관여하였다.   김두봉(金枓奉) ⓒ Pandira/wikipedia | Public Domain 8·15해방 후 북한에서 조직된 북조선노동당 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지냈으며 한글학자로도 유명하다. 1908년 보성고보를 졸업하였고, 중앙·보성·휘문 고보 등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주시경 밑에서 한글을 연구하고 광문회에서 조선어사전 〈말모이〉 편찬사업에 참여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1924년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에 선출되었고, 상하이 인성학교 교장을 맡기도 했다. 1935년 민족주의자 김원봉(金元鳳)이 조직한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을 맡았다. 이후 후베이 성[湖北省] 장링[江陵]·충칭[重慶]을 거쳐 1942년 옌안[延安]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여기서 조선독립동맹에 가담했으며, 1942년 7월 주석에 취임했다. 8·15해방 이후 1945년 12월 평양에 들어왔고, 1946년 2월 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조직되자 부위원장을 맡았다(위원장은 김일성). 1946년 2월 조선독립동맹이 조선신민당으로 개칭되었고,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1946년 8월 조선신민당이 북조선공산당과 합당, 북조선노동당이 조직되자 중앙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하였다. 그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 북조선인민회의(최고인민회의의 전신) 의장 겸 상임위원장, 임시헌법제정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으면서 북한의 정권 창출에 관여하였다. 북한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조선노동당 상무위원을 맡는 등 북한정권의 핵심적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지지기반이던 연안파의 종파주의적 행동과 관련하여 1958년 3월에 열린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의의 결의로 당으로부터 제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2    말과 글은 민족의 정신을 담는 그릇... 댓글:  조회:2960  추천:0  2019-01-11
“말과 글이라는 게 민족의 정신을 담는 그릇인데, 사전을 만들어야죠.”(영화 《말모이》 중)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을 향한 염원은 무력투쟁으로만 발현되지 않았다. 망각에 저항하는 일, 우리 민족의 정신을 말살하려는 일제에 맞서 정체성을 지켜내는 일, 즉 독립운동은 민족의 혼이 담긴 말과 글을 지키려는 ‘정신적 투쟁’을 통해서도 일어났다. 《말모이》는 ‘총’ 대신 ‘말’로 엄혹한 시절을 통과한 이들의 이야기다.    ‘말모이’란 우리의 말을 모은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최초로 편찬이 시도된 국어사전의 이름이자 우리의 말을 모으는 운동, 이 일의 중심에 조선어학회가 있었다. 조선어학회는 1921년 한글을 연구하기 위해 만든 한국 최초의 민간 학술단체인 조선어연구회가 모체다. 일제의 탄압에 맞서 이들이 우리말을 지키려 한 이유는 명백했다. 언어 안에 국가와 민족, 사람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일제가 조선어학회 관련자들을 체포하고 투옥한 ‘조선어학회 사건’(1942년)이 발생한 것도 같은 연유였다. 《말모이》는 1942년 벌어진 ‘조선어학회 사건’에 상상력을 더해 탄생했다. 《말모이》는  어깨에 힘주지 않고 담백하게, 투박할지언정 정직하게 달린다.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자세가 ‘말모이’를 위해 모인 이들의 자세와 닮았단 생각이다. 《말모이》는 ‘말’을 다루는 영화다. 그러나 정작 영화의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인 김판수(유해진)는 까막눈이다. 그는 글을 쓸 줄 모른다. 읽을 줄도 모른다. 조국 독립의 원대한 꿈을 가진 인물도,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자식들이 조금 더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길 바라는 마음을 지닌 보통의 아버지일 뿐이다. 그런 인물을 중심으로 끌어올린 영화의 선택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것이 《말모이》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영화 《말모이》의 한 장면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조선어학회 사건 배경으로 스토리 전개  이 영화가 다루는 큰 사건은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는 과정이지만, 진짜 감동은 “돈을 모으지, 왜 말을 모으는지 모르겠다”던 판수가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윤계상)을 만나 사전 편찬의 의의를 알아가는 순간들에서 나온다. 기역, 니은, 디귿, 리을…. 한글을 하나둘 터득한 판수가 거리의 간판을 읽을 수 있게 됐을 때,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보며 눈물 쏟게 됐을 때 새삼 언어가 지닌 힘을 돌아보게 된다. 판수가 개인적인 안위를 지킬 수 있는 기회를 뿌리치고, 위기에 놓인 학회 사람들을 향해 발걸음을 돌리는 장면은 그래서 더 힘을 얻는다. 양심에 따라 움직인 그의 용기는 결국 역사를 바꾼다.   판수는 여러모로 뜻하지 않은 계기로 역사적 사건에 휘말린 평범한 사람 《택시운전사》의 만섭(송강호)을 연상시킨다. 먹고사는 데 바빴던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은 광주라는 공간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현대사의 비극을 마주하고 이를 통해 성장했다. 판수도 이와 다르지 않다. 두 인물의 유사성은 우연이 아니다. 《말모이》는 《택시운전사》 시나리오를 집필한 엄유나 감독의 작품이니 말이다.   영화가 역사를 그려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역사에 잘 알려진 실존 인물의 삶을 재구성해 시대를 돌아볼 수도 있고, 비범한 능력을 지닌 허구의 인물을 창조해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도 있으며, 보통 사람들의 시선을 빌려 공감을 줄 수도 있다. 이 중 마지막 방법을 사용한 《택시운전사》와 《말모이》는 말한다. 역사란, 보통 사람들의 힘에 의해서도 전진할 수 있음을.  한국 최초의 사전이 편찬될 수 있었던 배경에, 전국 각지에서 우리말과 글을 모아 보내준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점 역시 이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역사를 바꾸는 건 뛰어난 한 명의 열 걸음이 아닌, 보통 사람의 한 걸음이 모여 나온다”는 정환의 대사는 《말모이》를 정확히 관통하는 말이다.  ‘착한 영화’라는 뜻이 딱히 있는 게 아니지만, 《말모이》는 그 의미가 얼추 이런 모양새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어깨에 힘주지 않고 담백하게, 투박할지언정 정직하게 달린다.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자세가 ‘말모이’를 위해 모인 이들의 자세와 닮았단 생각이다. 쉽게 미워할 수 없는 지점이다.  전반적으로 밋밋, 아쉬움 남아 그러나 이것이 《말모이》의 약점이기도 하다. 캐릭터들 변화가 너무 쉽게 감지되고, 인물들 갈등과 화해가 전형적인 설정 안에서 일어나면서 전반적으로 밋밋한 인상을 준다. 가족애와 웃음, 우정을 너무 안전하게 배합한 탓에 소재가 지닌 장점 그 이상을 터뜨려 보이지도 못한다.  좋은 의도가 꼭 좋은 결과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 영화 창작자들의 조심스러운 태도가 장르적으로 작품이 더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붙들어 맨 느낌이 든다. 그동안 독립을 위해 노력한 의병이나 독립군을 다룬 영화는 많았으나, 《말모이》처럼 언어, 우리말이라는 주제에 집중한 사례는 드물었다. 새로운 시도가 주는 기대감을 생각했을 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소재를 돌파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결론;= "인간문제"... 댓글:  조회:3291  추천:0  2019-01-11
지구에 제2의 달이 생기면 어떤 일이?  2019.01.11.  자동요약   음성 기사 듣기   번역 설정   공유   글씨크기 조절하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中 인공 달과 차원 다르지만 실제 달 추가되면 '대재앙' 태양 앞을 지나는 달의 뒷면과 지구 [NASA/NOAA 제공]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지구에 제2의 달이 등장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시가 지난해 10월 가로등 대신 도시의 밤을 밝히겠다며 2020년까지 지구 궤도에 인공 달을 띄우겠다고 발표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음직한 의문이다. 미국의 온라인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드(Business Insider)'가 이런 과학적 호기심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실제 달과 같은 질량을 가진 제2의 달이 생겼을 때를 가정한 것이라 청두시 측이 구상하고 있는 인공위성급의 달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 결과가 상당히 흥미롭다. 달의 인력으로 해수면이 상승해 해안도시들이 물에 잠기고 궁극적으로는 달까지 충돌해 대재앙이 닥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지금의 달과 같은 제2의 달이 지구의 중력에 잡혀 원래 달과 지구 사이에 놓이면 달의 인력으로 해수면이 주기적으로 높아졌다가 낮아졌다 하는 조석(潮汐) 현상이 더 뚜렷해진다. 만조 때 수면은 지금보다 6배나 더 높아져 뉴욕, 싱가포르 등과 같은 주요 해안도시가 물에 잠기게 된다. 제2의 달도 온전하지는 못한다. 지구의 중력과 원래 달의 인력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이뤄지면서 표면이 뒤틀려 엄청난 화산활동이 촉발되고 뜨거운 용암으로 넘쳐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현재 달은 지구에서 1년에 3.8㎝씩 멀어져가고, 이는 지구의 자전 주기를 늦춰 4만년에 1초씩 하루의 총 시간을 연장하게 된다. 현재로선 미미해 보이지만 달이 추가되면 그 시간도 더 빨리 늘어나게 된다. 수백만년 뒤에는 하루가 28시간 이상이 될 수 있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이에게는 희소식일 수도 있지만 제2의 달이 원래 달 쪽으로 흘러가면서 진짜 문제가 초래된다. 천체 충돌 상상도 [NASA/JPL-Caltech 제공] 두 달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이 충돌은 너무 강력해 두 달의 중심부까지 찢겨 나가면서 용암은 날계란처럼 우주로 흐르고 파편은 사방으로 튀게 된다. 그중 일부는 지구에도 떨어져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대형 충돌구를 만들고 6천600만년 전 공룡 멸종 때처럼 지구의 생명체에 대재앙을 안기게 된다. 지구 표면에 떨어지지 않고 지구 중력에 잡힌 파편들은 적도 주변에 토성과 같은 고리를 형성하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단일 천체로 뭉치게 된다. 그때까지 살아남은 생명체는 아마도 이를 달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라고 BI는 밝혔다. 지금의 달은 질량이 지구의 81.3분의 1, 부피는 49분의 1에 달해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청두시가 계획하는 인공 달은 약 3만6천㎞ 상공에 원형 반사체를 펼쳐 놓고 태양 빛을 반사해 보름달의 8배에 달하는 강한 빛으로 10~80㎞ 지역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그나마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아 얼마나 구체적인지, 실제 그런 기술력을 가졌는지는 불투명하며, 중국 내에서도 터무니없는 계획이라는 비난이 쏟아진 바 있다. 인공 달은 앞서 러시아 과학자들이 1990년대에 처음으로 도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으며, 이후 노르웨이 등도 추진했지만 아직 성공한 사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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