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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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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춘각: 참 고운 발(단편소설)
2019년 07월 11일 14시 06분  조회:392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참 고운 발

살춘각

 

상  편

그녀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듯 슬슬 뒤걸음질치고 있었다. 

이게 누군가! 

그리고 이게 얼마 만이란 말인가?! 

“너 정말 계, 계, 계경숙이야?” 

초중 2학년 때 보고 못 보았으니 30년도 넘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럼. 경숙이가 맞지. 나 계경숙 맞아. 호호호…” 

“‘5·7농장’의 그…” 

“그러엄! 룡문중학교 3반을 다니던.” 

“아…” 

나의 입에서 드디여 비명 비슷한 탄성이 터졌다. 

맞구나. 

그녀가 맞구나! 

“야, 반갑다야, 계경숙. 얼마 만이야? 설마 이게 꿈은 아니겠지?” 

“30년도 넘었지. 꿈은 무슨. 하늘이 새파랗구만.” 

그래서 쳐다본 하늘은 정말 쥐면 묻어날듯 새파랬다. 

“너 지금 어디야? 우리 당장 만나자!” 

“급하기는… 나 지금 공항이야.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너한테 전화부터 치는 거야. 알겠어?” 

“공항? 어디서 오는데?” 

“한국. 일이 있어서 잠간 들어온 거야. 오늘 밖에 시간이 없어. 래일은 일 마무리짓고 나가야 돼.” 

“그리 급히? 그럼 당장 만나지 않으면 안되겠네. 나 지금 공항에 갈게. 기다려!” 

“그래. 뛰여와. 기다릴게. 나도 널 빨리 보고 싶기는 너만 못지 않을 거야. 호호호…” 

전화 저켠에서 그녀가 파란 하늘에 금이 실리도록 맑게 웃어제꼈다. 

나는 손목을 들어보았다. 시간은 열한시를 가리키려 하고 있었다. 택시를 타면 어림잡아 20분이면 도착하리라. 

나는 내 옷차림새를 스윽 훑어보았다. 반소매에 반바지였다. 그리고 슬리퍼. 

동켠에 있는 성자산성을 한번 바라보고 나는 히쭉 웃고 나서 그대로 택시에 뛰여올랐다. 

 

그녀는 연한 살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채양이 너른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늘이 얼굴 전체를 다 가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유표한 건 원피스 치마자락이 나팔꽃처럼 들려있어 허벅지부터 종아리가 다 보인다는 것이다.  

그녀는 나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공항 정문에 서있는 그녀를 보고 머뭇거리는 나한테 그녀가 두팔을 활짝 펼쳐보였다. 

“용하게 알아보네?” 

“당연하지. 누군데 못 알아봐.” 

“난 널 못 알아보겠던데…” 

“넌 옛날 그대로야. 어쩜 늙지도 않냐? 나 많이 늙었지? 실해지고?” 

“실해진 건 모르겠는데 얼굴이 많이 변했어. 길에서 그냥 보면 모르고 지나치겠다야.” 

“그래? 할망구가 되였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혹시 너 소녀 적 내 모습을 기대했던 건 아니야? 실망했겠네. 하하하…” 

그러면서 그녀는 또 한번 하늘을 쳐다보며 해바라기처럼 터지게 웃어주었다. 

그녀의 행장은 단촐했다. 쪽걸상 만한 캐리어 하나가 다였다. 

“팬티 두장 밖에 없어. 궁금해하지 마.” 

택시에 앉자 그녀가 캐리어를 훔쳐보는 내 눈을 의식했는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쿡 웃었다. 

“콘돔이라도 한박스 담아왔나 생각해보았지. 크크크…” 

그녀가 내 옆구리를 찌르더니 눈을 석자나 빨았다. 

“속은 파래가지구… 누나보고 못하는 소리 없네.” 

계경숙은 나보다 한살 더 많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말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 때 우리 반 애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한살이나 두살 더 많았었다. 당시엔 락제제도라는 게 있어서 시험에서 급제를 못하면 가차없이 한학년 내려앉혔기 때문이였다. 초중에 붙지 못해 한해 더 다니고 이듬해 다시 올라오는 애들이 많았다. 우리는 그런 애들을 ‘묵은 돼지’라고 불렀다. 

“묵돼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모양이구나?” 

“묵돼가 뭐야? 아~ 야, 나 묵돼가 아니야. 아홉살에 늦게 학교에 입학해서 그래.” 

“그래? 뻥 까는 거 아니야?” 

“믿든지 말든지. 근데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야?” 

“호텔 간다 왜? 30년 만에 만났는데 묵은 회포부터 풀어야제?” 

“야, 나 지금 배고퍼. 시간을 봐. 열두시가 넘었어. 밥부터 먹자.” 

“그건 한국시간이고 여긴 아직 열두시가 안됐어. 조금 참어.” 

“야, 안된다는데두. 야, 차 돌려. 경숙이가 배가 고프다구!” 

택시는 옛날 체육장을 뒤에 떨궈놓고 혁명렬사릉원을 흘겨보며 발전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고 있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딘데?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경숙이가 짐짓 울상을 하고 내 무르팍을 종주먹으로 쥐여박았다. 

“그냥 가만있어봐. 원래 절에 가면 중이 하라는 대로 하는 법야.” 

“니가 중이가?” 

“오늘만은!” 

“켁.” 

“쿡.” 

갑자기 계경숙이 고개를 숙이더니 쓰러질듯 웃는 것이였다. 그녀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은 내 사타구니였다. 내 사타구니가 엄청 부풀어있었다. 

“야, 너 지금 선 거야? 내가 옆에 있는 데도?” 

내 얼굴이 붉어졌는지 어쨌는지 보지 못하는 나로선 알길이 없다. 다만 망신스럽다는 생각은 좀 들었다. 그러나 이내 아닌 보살 하고 저으기 화끈거리는 낯을 그녀 쪽에 던지며 깐죽거렸다. 

“그러게 누가 너더러 팬티가 다 보이는 치마를 입으라던.” 

“어머머!” 

그녀가 반사적으로 치마자락을 끄당겨 허벅지를 가렸다. 그러더니 나한테 속히운 줄 알았는지 꽤나 정색한 낯빛으로 말했다. 

“장난도 그런 장난 치지 마. 나 그런 녀자 아니거든.” 

“다 왔어. 내려.” 

택시에서 내리자 그녀가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여가 어디야? 호텔은 아닌데?” 

“발전이다.” 

“발전? 아버지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인 못 산다던 그 발전?!” 

“응. 그래. 그 발전이 지금 이렇게 코리안타운이 돼버렸다. 맛집거리로.” 

“와~ 발전이 빠른데! 발전이 그 이름값을 한다야.” 

뭘 먹을가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갈비집으로 아퀴를 지었다. 

“젤 잘하는 집으로 가! 오늘은 이 누나가 쏜다!” 

‘마포갈비’, 내가 자주 찾는 곳이다. 주인장하고도 면목을 튼 지 오래다. 한국에서 돈 벌어가지고 여기에다 가게를 차린 지 7년째라고 했다. 

“환경이 좋은데? 인테리어도 근사하고.” 

경숙이가 자리에 앉더니 들어오길 잘했다는 어조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면서 보니까 간판들이 한국인지 중국인지 안 알릴 정도로 한국을 그대로 떠옮겨왔데?” 

“그니까 코리안타운이라는 거지.” 

그녀는 기어이 소갈비 4인분을 시켰다. 칠레와인 한병과 함께. 

“그래봤자 한국에서 한끼 먹는 반값 밖에 안돼. 걱정 말고 먹어. 나 그만한 돈은 있어.” 

그녀는 내 의견 따위는 아예 무시하고 있었다. 

“오늘은 실컷 먹자. 30여년 만에 너를 만났는데.” 

“그래. 먹고 죽자.” 

“강산이 세번 변했는데 너는 그대로네.” 

“지금은 하루밤이면 강산이 변해. 어느 옛날 소리를 하냐. 나도 늙었어. 반백이야.” 

“그런가?” 

우리는 쨍그랑 잔을 부딪쳤다. 

“근데 너 날 어떻게 찾았지?” 

아까부터 궁금했던 물음을 나는 이제서야 묻고 있었다. 

계경숙이 나를 뜨아하게 바라보았다. 마치 그것도 물음이냐고 묻기라도 하는듯이. 

“넌 알려진 사람이잖아. 인터넷에 검색해도 나타나는 사람.” 

“그래도…” 

“니 소설은 꾸준히 읽고 있어. 니가 쓴 모든 글을 다 봤다고 감히 장담할 정도로 말이야. 이러면 믿겠노?” 

“잘 믿어 안 지는데?” 

갑자기 그녀가 소리내여 웃었다. 그러더니 부끄러운듯 량볼을 싸쥐며 말했다. 

“너와 나 그런 사이 아니잖아. 잊은 거야 아니겠지?” 

“참…” 

그러면서 나도 살짝 어깨를 비틀었던가 말았던가. 와인잔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녀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근데 너 그 때 나한테 왜 그랬어? 설마 정말로 날 좋아했던 거야?” 

“소녀의 순정을 의심하다니! 그래갖고도 작가냐?” 

15살의 어느 날, 막 하학하여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나를 불러세웠다. 그녀, 계경숙이다. 

“너 좀 나를 집에 데려다줄래?” 

나는 잠간 머뭇거렸다. 그녀와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이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집으로 곧추 가는 길을 놔두고 그녀는 산등성이를 타고 가자고 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걸었다. 

내가 15살이였으니 그녀는 16살이였을 것이다. 

그 때 나는 멀리 고모벌 되는 녀자애가 한반에 있었다. 그런 연고로 나는 학급 녀자애들과 잘 섞여놀았다. 그러나 계경숙하고는 처음이였다. 

산등성이에서 내려와 약수동에 들어서자 그녀가 말했다. 

“사실은 전학철이가 나한테 련애편지를 보내왔어. 그래서 너보고 데려다달라 한 거야. 무서웠어.” 

그러면서 그녀 계경숙이 내 곁에 딱 붙어섰다. 

“아 …”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한 전류가 발끝으로부터 등골을 타고 머리 우로 치달아오르고 있었다. 

“2반의 전학철이가 너한테 련애편지를 썼다고 했지, 아마?” 

“응. 기억하고 있네.” 

그녀가 쿡 웃었다. 

“편지내용도 단마디명창이였어. ‘우리 약혼하자’. 우스워. 웃겨. 하하하…” 

무서웠다는 그 말에 나는 묘하게 흥분되였을 것이다. 그 때의 그 전률을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짜릿하면서도 달콤했던. 

‘5·7농장’으로 들어가는 마을어귀 우물가에 우리는 나란히 앉았던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숨소리를 통해 콩닥콩닥 뛰는 가슴소리를 듣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가 반짝 얼굴을 들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너 혹시 녀자 손 잡아봤어?” 

나는 덴겁해서 손사래를 쳤을 것이다. 그 때 나는 확실히 많이 놀랐었다. 그녀가 그런 어뚱한 물음을 제기해오리라곤 전혀 상상도 못했으니깐. 

“잡아볼래?” 

나나 그녀나 얼굴이 빨개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녀자의 손이라는 걸 쥐여봤다. 작고 보드라운 손을. 

“젖은 더구나 못 쥐여봤겠구나?” 

나는 하마트면 심장이 밖으로 튀여나올 번했다. 가슴이 뛰다 못해 아팠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쥐여볼래?” 

수전증환자의 손이면 그럴가. 사시나무가 떨면 그렇게 떨가. 

더듬더듬 …

더듬더듬…

장님 코끼리 만지기. 

어둠 속에 길 찾기. 

“어땠었어? 그 때 그 감각이?” 

그 날 묻지 못했던 것을 경숙이가 30년도 더 지난 지금 와서 묻고 있다. 그것도 부끄러움이 전혀 없이. 얼굴이 다소 붉어진 건 술기운 탓이리. 

“어떻긴. 심장이 터져서 죽는 줄로 알았구만.” 

“아니 그거 말고. 만져본 느낌.” 

“밤알 만하대. 크크크. 손바닥 안에도 안 차. 크크크…” 

“그렇게 작았어? 난 큰 줄로. 풉~” 

“브래지어도 없이.” 

“시대가 워낙 그런 시대였잖아. 나 그 때 생리를 시작한 지도 얼마 안되였었다.” 

“그렇게 귀한 몸을 내가 만지는 영광을 지녔었나? 너 어떻게 그렇게 용감할 수가 있었지?” 

“나도 몰라. 니가 너무 좋아서였겠지.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어. 니가 첫 남자야, 나한테는.” 

“자지도 않았는데?” 

“꼭 먹어봐야만 맛이야?” 

그러더니 카운터 쪽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언니! 여기요, 언니!!” 

“네에~” 

아가씨가 다가오자 경숙이가 눈초리에 힘을 주었다. 

“아까부터 벨을 눌렀는데 못 들었어요? 이 집에선 장사를 어떻게 하는 거예요? 손님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거예요?” 

“얘, 그러지 마. 손님이 많으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래. 고만한 걸 갖고 야단치지 마.” 

“재수없잖아. 한국에선 이러면 안돼.” 

경숙이가 복무원보고 말했다. 

“와인 하나 추가하구요, 갈비살도 더 내주세요. 그리고 사장님하고 물어봐요, 서비스가 있나 없나.” 

“니가 말 안해도 서비스가 나와. 나 여기 단골이야.” 

“그런 기본적인 거 말구.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 돈을 더 쓰잖아.” 

경숙의 얼굴에 달이 뜨고 있었다. 달이 빨갛게 머리를 얹고 있었다. 달무리. 

“근데 너 연변말을 잘한다? 한국에 간 지 몇년 됐다 했지?” 

“20년 거의 돼. 글고 사람은 자기 고향버전은 안 잊어먹게 돼있어. 연변에 오면 자연적으로 연변말을 하게 돼. 몇번 오지는 않았지만.” 

오,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버지가 현성으로 전근하는 바람에 너와 떨어졌지만 난 널 잊은 적이 한번도 없었어. 물론 한동안 지나니까 자연스럽게 잊혀졌지만 그래도 널 많이 생각했어. 갑자기 문득문득 니가 떠오르는 거야. 그러다가 한국에 왔는데 그 때부터는 니가 미치게 그리운 거야. 그런데 너한테 련락할 엄두는 못 내겠는 거야. 내게는 훌륭한 남편에 좋은 아들이 있었거든.” 

“그래? 축하한다야! 좋은 남편에 좋은 아들. 난 리혼하고 외토리 신세인데.” 

“글쎄 그렇더구나. 왜 리혼했냐. 그냥 살 거지. 그래도 처음 만난 사람이 최고야. 다시 만나봤자 그 놈이 그 놈이고 그 년이 그 년이야. 더 더러운 꼴만 보게 돼.” 

“재혼할 생각은 없다. 나 자유로운 지금이 좋아.”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걸 보고 그렇게 생각했어. 얘가 편하게 사네, 하고.” 

그녀의 눈이 풀리고 있었다. 와인이 두번째 병도 반나마 내려가있었다. 

안주는 불판 우에서 앗뜨거를 열창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비스로 나온 꽃게무침과 과매기는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난 니 글을 다 읽었어. 인터넷에 널 검색할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였어.” 

“보러 올 거지.” 

“오면 안되지.” 

“왜 안되는데?” 

경숙이가 고개를 들고 몰라 묻느냐는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몰라서 그래. 왜 안되는데?” 

“젖까지 만져봤으니 이번엔 아래를 탐할 게 아니야. 이 바보야.” 

“아, 그렇구나…” 

나는 내 머리를 쿡 쥐여박았다. 

“나 바보 맞네. 근데 어떻게 이번엔 어려운 결심을 하게 된 거야?” 

“사실은…” 

경숙이가 의미심장한 얼굴을 만들어가지고 나한테 보내왔다. 

“아들이 일본에 있거든. 일본에 가게 하나 차렸는데 힘든가봐. 우리 량주보고 들어오래. 아마도 일본에 갈 것 같아서…” 

“아, 잘됐네. 축하한다야, 경숙아.” 

나는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뜻으로 술잔을 쳐들었다. 

“이번이 아니면 너를 영영 보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어. 그래서 불문곡직 련락한 거야. 나 잘했지?” 

“잘했어!” 

“잘했다니까 기분 좋네.” 

우리는 나머지 와인을 두잔에 똑같이 나누어 부었다. 

경숙이가 약간 비틀거렸다. 

“가자. 우리 이 잔 쭉 내고 2차 가자. 오늘은 죽도록 마시는 거야!” 

“2차는 무슨. 너 술도 된 것 같은데 호텔 가서 자.” 

“안돼. 어떻게 만든 기회인데! 너 오늘 하루를 나한테 바쳐야 돼. 각오해라. 오늘 우리 3차, 4차까지 간다! 잘하면 5차까지 갈 수도 있어. 다시 보지 못할 텐데 영원한 추억을 남겨야지. 안 그렇냐, 이 바보야?” 

결국 나는 그녀에게 끌려 2차, 3차, 4차까지 가게 되였다. 

그녀는 마치 돈을 쓰지 못해 신들린 사람 같았다. 

4차 커피숍에서 나와 보니 밤은 이미 시커먼 날개를 땅 우에 널어놓고 있었다. 

“5차는 못 가겠다. 내 몸이 술을 받지 못하네.” 

“그래. 호텔에 가서 푹 자. 덕분에 오늘 너무 잘 놀았어.” 

“오히려 내가 고맙지. 옹근 하루 시간을 나한테 할애해준 니가.” 

“니 돈을 너무 많이 썼어. 그게 마음에 걸린다. 날 좀 쓰게 할 거지. 미안하게스리.” 

“괜찮아. 나 돈 많잖아. 우리 둘을 위해 쓴 건 안 아까워. 흐흐흐…” 

그녀가 나를 향해 돌아섰다. 

“한가지 청이 있는데 들어줄래?” 

“열가지라도!” 

“내 이름 한번 불러줘? 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내 이름을 직접 두귀로 듣고 싶어.” 

안아달라는 뜻이구나.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그녀의 통통한 어깨를 그러안으며 내가 조용히 불렀다. 

“경숙아~ 우리 경숙, 고맙다. 이렇게 날 찾아줘서. 계, 경, 숙.” 

 그녀 계경숙이 내 허리를 두팔로 감싸안고 있었다. 얼굴은 내 가슴에 묻은 채. 

“호텔에 데려다줄가?” 

“아니. 안돼.” 

그녀가 내 몸에서 화들짝 떨어져나갔다. 

“그것만은 하지 말자. 난 널 내 기억 속에서 가장 멋진 남자로 남기고 싶어. 내 남자로 만들고 싶지 않아. 되지? 그렇게 해줄 거지? 계경숙 인생의 가장 멋진 남자. 응?” 

“그래.” 

나는 경숙의 머리칼을 가만히 만져주었다. 

“춥겠다. 얼른 가.” 

치마 아래로 그녀의 하얀 발이 눈에 들어왔다. 샌들을 신은 발이였다. 웬일인지 그녀는 양말도 받쳐신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뒤걸음으로 택시를 향해 다가가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밤의 무릎 사이에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떠나고 있었다. 

 

이튿날 오전. 

열시가 되자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지금 공항.” 

“응, 그래. 잘 가라. 만나서 즐거웠어.” 

“나도 좋았어. 잘 있어라.” 

이제 한시간 뒤면 그녀는 떠나리라. 핸드백 만한 캐리어를 끌고서 떠나가리라. 그리고 두시간 뒤면 인천공항에 내릴 것이다. 그녀는 한국에, 나는 중국에 서로 다른 하늘을 떠이고 살아가리라. 혹은 아들이 있는 일본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자는 인사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하  편

쇼허룽에 동래사라는 절이 섰다. 개관식 때 가려다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못 가고 동창들 모임을 핑게로 동래사에 올랐다. 세그루 천년송은 용하게 보존돼있었다. 

점심은 성자산성이 내다보이는 토닭집으로 자리를 정했다. 

성자산성을 넘겨다보며 나는 잠간 동하국과 거란의 영웅 포선만노를 떠올렸다. 1233년 몽골군에 포위되여 포로될 때까지도 포선만노는 저 산성 안에 있었다지. 왕후 리선아는 몽골군에 겁탈당할가 겁나 산성 남쪽 벼랑 아래로 몸을 던졌다고 하였으니 해란강과 부르하통하가 합쳐지는 바로 그 여울목이였으리라. 천년을 두고 흐른 로리커호에서 발원한 해란강은 그렇게 저 곳에서 자기 사명을 다한다. 

동창이라 해봤자 네명 뿐이였다. 다들 외국에 돈벌이로 나가있었기 때문이다. 

밖에 나와 담배 한대 꾸질려니까 경철이가 따라나왔다. 

“야, 나 며칠 전에 이상한 일을 목격했다?” 

“뭔?” 

“경숙이 비슷한 사람을 봤어.” 

“경숙? 계경숙?” 

“응.”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걔 지금 한국에 있거나 일본에 있을 텐데 어떻게 여기에 있어?” 

“아니야, 진짜야. 내가 왜 경숙을 못 알아보냐? 수상시장 끝자락에서 선지를 팔고 있더라구. 마스크를 했지만 난 대번에 걔를 알아보았지. 학교 때 나 걔 좋아했거든.” 

“미친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나 몇달 전에 경숙이를 만났었다. 일본에 있는 아들한테로 갈 거라 그러던데? 아마 지금 쯤은 일본에 있을 걸. 근데 너 걔를 좋아했다는 건 좀 뜻밖이다?” 

경철이가 키득키득 웃었다. 가뜩이나 작은 눈이 아주 붙어버렸다. 

“창피해서 말 안했지. 이젠 나이 먹으니까 부끄러운 것도 사라지고… 흐흐…” 

“뻔뻔해지고?” 

“그런데 계경숙이 왜 너한테만 련락하냐? 너 둘이 무슨 일이 있어? 걔 누구도 안 만나는 애야. 동창들 중에 아무도 걔를 만났다는 애가 없다?” 

경철이가 의뭉스런 눈을 만들어왔다. 

나는 담배 한대 꼬나물며 짐짓 그 눈길을 피했다. 

“그렇다구?” 

“아무래두 수상해.” 

하긴 수상하긴 했다. 경철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경숙이가 수상시장에서 선지를 팔고 있다니? 

내 앞에서 호기를 떨던 천하의 계경숙이가 수상시장 끝자락에서 선지나 팔고 있다니?! 

나는 경철이의 말을 믿지 않기로 했다. 

자식, 말도 안될 소리를! 

나는 허청 한번 웃고 나서 다 피운 담배꽁초를 발로 비벼끈 다음 그래도 남은 불씨가 있을가봐 침을 찍 뱉어주었다. 

경숙이가 나한테만 련락을 했다고?! 

 

며칠 지나면 7일 련휴 국경절이다. 어떤 이에겐 좋고 어떤 이에겐 나쁜 그런 긴 련휴가 될 것이다. 

대충 장이라도 봐와야 할 터. 

국거리감이라도 몇줌 사와야 할 터. 

그러나 그보다도 나는 경숙이를 보았다는 경철이의 말이 귀에 걸려서 좀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안 그랬다간 귀에 나무가 자라나서 가지를 칠 것 같았다. 

급기야 나는 참지 못하고 아침 5시를 겐또하여 수상시장을 찾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경철이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수상시장은 컸다. 연길시 아침시장 중에서는 가장 클 것이다. 경숙이는 그 끝자락에 앉아있었다. 그러니까 북쪽 끝자락, 사범학교 쪽으로 말이다. 아마도 집이 그쪽 방향에 있지 않을가 싶다. 

그녀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자기 앞에 선 나를 올려다보면서도 추호도 놀라거나 하는 기색이 없었다. 마치 이런 일이 있을 줄을 미리 예상이라도 했었던듯이 말이다. 오히려 놀란 쪽은 나였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너무나 당당한 경숙이 앞에서 내사 허둥대고 있었으니. 

“왔구나~” 

드디여 경숙이가 입을 열었고 마스크를 내렸다. 

나는 이 국면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몰라서 손만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같은 연길의 하늘 아래서 30여년을 함께 살아왔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코딱지 만한 연길에서. 말이나 되나 말이다. 

“저쪽에 가서 담배나 피면서 기다려봐. 나 이 선지를 마저 팔고 갈게. 몇덩이 안 남았으니까 잠간이면 돼.” 

나는 그녀로부터 여나문 걸음 물러서서 담배 한대 꼬나물고 섰다. 

그녀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여있었다. 옷차림부터가 할망구다. 몇달 전에 보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그녀가 선지를 파는 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속은 텅 빈 채 하나도 정리가 안되고 있었다. 조금 뒤면 그녀가 내 앞에 말뚝처럼 설 터인데 그러면 나는 이 난국을 어떻게 파헤쳐나가야 한단 말인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가자.” 

그녀가 다 팔고 난 짐을 머리 우에 이더니 내 앞에서 쥉쥉 걸었다. 

나는 그 뒤를 지떡지떡 따라갔다. 

사범학교 쪽이 옳았다. 

“며칠 전에 경철이를 봤었다. 순간 니가 찾아올 줄 알았지. 그리고 기다렸어.” 

“말하더라, 경철이가. 믿지 않았어.” 

사범학교를 지나자 무장경찰부대 건너편으로 새길이 나졌다. 그녀는 그 길로 나를 인도했다. 

놀랍게도 거기엔 굴뚝이 있는 단층집이 있었다. 그녀가 그 집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 이런 곳에서 산다.” 

미닫이로 웃방 하나를 만든 그런 집이였다. 

나는 아직도 잠이 덜 깬 기분이였다. 

그녀가 서둘러 구들을 정리하더니 아직도 아래에 서있는 나를 올라오라고 손짓했다. 

단촐한 술상이 차려졌다. 

“사는 꼴이 이렇다 보니 먹을 것도 없구나. 그런대로 먹어.” 

황당했다. 모든 게 황당했다. 그러나 그녀 앞에서 황당하다고 대놓고 말할 순 없었다. 

달랑 김치 뿐인 술상 옆에서 계란이 삶겨지고 있다. 

“근데 너 혼자 사냐?” 

술 한모금 훔치고서 내가 물었고 

“아니, 남편이 있어.” 

경숙이가 턱짓으로 웃방을 가리켰다. 

어, 하면서 일어서는 나를 그녀가 제지시켰다. 

“인사 안해도 돼. 산송장이야. 중풍에 걸려 드러누운 지 7년째야. 아참, 기저귀를 갈아야겠구나. 미안하지만 잠간만 기다려.” 

미닫이문이 열리자 눈이 한뼘은 되게 들어간 산송장이 나타났다. 온몸에 눈 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녀가 재빨리 기저귀를 갈아채우더니 드르륵 웃방문을 닫았다. 

“먹는데 냄새를 풍겨서 미안해.” 

“괜찮아. 인간의 생리인데 뭐.” 

세번째로 맞은 중풍이라고 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그 남편이란 사람이 바로 경숙이한테 련애편지를 썼던 화제의 주인공 전학철이란 것이다. 

내가 어마지두 놀란 눈길을 웃방에 던지자 채 닫혀지지 않은 미닫이 틈새로 전학철의 퀭한 눈이 내다보고 있었다. 

“상관하지 마. 듣기만 할 뿐… 숨만 붙어있는 송장이야.” 

그녀가 술을 씹고 있었다. 잘 삶겨진 계란도 옷을 벗고 올라왔다. 

그녀는 전혀 안주를 집지 않고 있었다. 

“나는 술이 없인 살지 못해. 너를 만나기 위해 이틀 동안 안 마신 게 아마 최고의 기록일 거야.” 

먼지 쌓이듯 그녀의 과거가 술상 우에 차곡차곡 내려쌓이고 있었다. 그 속에서 그녀는 자기의 아픈 이야기들만 골라서 양파껍질 까듯이 까고 있었다. 그리고 껍질과 함께 토해내고 있었다. 

그녀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고 했다. 거의 강제로 이뤄진 결혼이 행복하면 얼마나 행복할가. 아버지의 전근으로 현성에서 학교를 다니던 그녀는 얼마 뒤 그 학교에서 전학철을 만난다. 전학철의 아버지도 현성으로 전근되여왔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전학철의 협박이 이어졌다. 친구들을 데리고 길을 막는가 하면 집 문앞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말 안 들으면 경숙네 가족을 전멸시킨다는 말까지도 서슴지 않았다고 했다. 전학철이 두려웠던 그녀는 결국 반강제에 가까운 수락을 하고 만다. 수락과 함께 그녀는 자기의 인생을 포기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기를 아는 사람은 누구도 만나기 싫었다고 한다. 그저 아들 하나만 의지하고 믿고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20여년을 키운 그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두다리를 잃었고 두다리를 잃은 아들은 어느 날 끝끝내 5층 베란다에서 뛰여내려 자결을 하고 만다. 그 충격으로 남편 전학철은 몇번이나 쓰러졌고 그녀 경숙은 반정신병자가 되여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마신 술이 오후 늦게까지 갔고 술상도 거두지 못한 채 한켠에 널부러졌다. 술상도 거두지 못한 채 널부러졌다는 것은 눈을 떴을 때 본 광경이 그랬기 때문이다. 

내가 눈을 뜬 것은 누군가의 손이 내 몸을 더듬었기 때문이였다. 

경숙이닷! 

내 몸이 순간적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경숙이닷. 그런데 이건? 하면서도 내 몸은 아무런 거부감없이 경숙의 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래도 되나…

얼굴을 만지던 경숙의 손이 아래로 내려와 가슴에 멈추고 있었다. 그다지 매끄러운 손은 아니였다. 가슴팍을 어루쓸던 손이 차츰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헙~ 나의 근육들이 펄떡펄떡 살아나고 있었다. 

그녀도 내가 깨여난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그녀의 눈길과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엔 온갖 회환 같은 것이 담겨있었다. 그녀의 손이 내 팬티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경숙은 내 얼굴에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불끈 일어선 내 양물을 그녀는 거칠게 부여잡았다. 나는 가늘게 신음소리를 냈다. 

그녀의 눈길은 마치 해도 되냐고 묻는듯했다. 나도 눈으로 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다. 묵인. 

그것을 읽었을가. 그녀가 내 가슴팍을 핥기 시작했다. 

그녀는 오래 동안 굶주렸을 것이다. 걸신 들린듯 걸탐스레 핥고 있는 모습만 봐도 알겠다. 애무가 거의 광적이였다. 그럴 것이다. 그녀는 많이 허기져있으리라. 

나는 그녀를 와락 끌어안아 뒤로 눕혔다. 그리고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허겁지겁 쳐들어갔다. 그녀는 이미 푹 젖어있었다.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몸을 짓이기던 내가 뭔가를 느낀 것은 그 때였다. 뭔가 이상한 감촉이 뒤통수를 찌르는 것 같아서 머리를 돌려보니 웃방 조금 열려진 미닫이 틈새로 전학철의 우멍한 눈길이 형형히 내다보고 있었다. 

살아있었구나! 

소름이 순식간에 등골에 쫙 퍼져나갔다. 하지만 나는 그 눈길을 피하지 않고 맞받아보며 경숙이를 짓이기는 걸 멈추지 않았다. 

드디여 삽질은 끝났고 나는 경숙의 몸 우에 널부러졌다. 널부러져서는 전학철의 눈길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전학철도 눈길을 돌려가지는 않았다.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였다. 경숙이도 아마 알았을 것이다. 

서둘러 뒤정리하고 경숙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때 나는 들었다. 샤워소리와 함께 그녀의 간간한 흐느낌 같은 것을. 두귀를 쫑긋 세우고 그것이 정말 울음소리였는지를 확인하려 하자 그 소리는 마치 내 행동이나 생각을 알기라도 하듯이 더 들려주지 않았다. 나왔을 때 그녀의 눈언저리는 살짝 붉어져있었다. 

“가자.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보여줄게.” 

전신무장을 하고 나서 그녀가 말했다. 팔에는 기다란 토시를 했고 발에는 두꺼운 장화를 신었다. 

시계를 보니 열두시를 조금 넘어서서 반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 새벽에?” 

그러면서도 나는 어정쩡 따라 일어섰다. 

“응. 내 일이란 게 이렇다.” 

밖은 추웠다. 나는 오싹 몸을 떨었다. 

달빛이 째듯했다. 

그녀는 자전거를 끌었다. 자전거 짐받이에 커다란 네모난 통이 두개 달려있었다. 

우리는 이름도 모를 실개천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연길에서 그렇게 오래 살면서도 이런 개천이 있다는 것을 나는 왜 몰랐을가. 

“어디로 가는 거야?” 

“도살장.” 

“도살장?” 

“응. 돼지랑 소랑 잡는 곳.” 

그렇게 나는 모르던 데로부터 알고 있었다. 연길에 이런 실개천이 있다는 것과 그 실개천을 따라 가노라면 돼지랑 소랑 잡는 도살장이 나온다는 것을. 

그녀는 소의 피를 받으러 다니고 있었다. 즉 다시 말해서 선지. 

피를 끓는 물에 넣어 익히면 선지가 된다. 

“선지가 맛이 있자면 피를 받기 전에 통에 소금을 좀 넣어줘야 해. 그러면 선지가 비리지도 않고 나긋나긋해져서 맛있어. 

“한통에 보통 40모 정도 나와. 썰면서 한통에서 5장 정도가 깨진다고 생각하면 두통에 70장이 나온다고 보면 돼. 한장에 1원씩 팔면 70원이야. 이런 마른 벌이가 어디 있어? 

“도살장에서 피는 버리는 거니까 받아오는 건 공짜야. 근데 피가 돈이 된다는 걸 알고 도살장 측에서 5원씩 받으려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웃기지?” 

그런데 나는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웃기다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았다. 그냥 경숙이 그녀가 안스럽기만 했다.   

도살장에는 소들이 자동차로 실려 들어오고 있었다. 거의 다 흑룡강성에서 들어온다고 했다. 료녕 쪽에서도 혹간 온다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먹는 연변황소고기가 기실은 대부분 안쪽 소고기였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속혔다는 느낌이 든다. 

마당에는 소 십여마리씩 실은 자동차들이 수태 서있었다. 이제 곧 죽을 소들이였다. 늙어서 이발이 빠진 소부터 몇달 안된 송아지까지 별별 소들이 다 있었다. 

소를 잡는 방법도 흐름식이였다. 뒤다리를 묶은 다음 걸쇠로 걸어서 형틀에 달면 소들은 거꾸로 매달려서 자동으로 흘러나온다. 그런 것을 전기방망이 한대로 기절시키고 목에 한칼을 넣는다. 그러면 선지가 대번에 콸콸 쏟아지는 것이다. 

일렬로 나오는 소의 대렬 사이에 가이드라인이 있다.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그녀는 잽싸게 팔을 뻗어 선지를 받았다. 선지 받는 사람은 어림잡아 20여명. 소가 움직이면 그녀도 같이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몇걸음만 따라가며 받다가 안 받는 것이였다. 

“처음에 나오는 피는 안 좋아. 물이 많이 섞여있어. 나중에 나오는 피는 찌꺼기가 많아. 그래서 가운데 거로 조금만 받는 거야. 소가 많으니까 조금씩 조금씩 받아도 반시간만 받으면 두통 골똑 채울 수 있어.” 

녀자가 하기엔 거친 일이였다. 선지 받는 사람 중 유일한 녀자였다. 그런데 녀자 하나가 남자 스물보다 더 억셌다. 그녀는 몸에 피가 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피를 두려워하면 이 일을 못해. 조금 뒤로 물러설래? 넌 피가 튀면 안되니깐.” 

그녀의 말대로 반시간 되니까 선지가 골똑 찼다. 

집에 오니 새벽 네시. 

경숙은 물부터 끓였다. 

물이 끓자 통을 들어 조심스레 쏟아넣었다. 네모반듯한 선지 두덩이가 물속에서 익고 있다. 

선지는 오래 익었다. 무려 반시간. 

다 익은 선지를 그녀는 맨손으로 썰고 있었다. 그 뜨거운 선지를 손바닥 우에 올려놓고 칼질하는데 용하게 손이 베이지 않고 있었다. 가히 달인 수준이였다. 잽쌌고 가쯘했다. 

두께는 대략 5cm. 

길이 15cm. 

너비 10cm. 

“뜨겁지 않아?” 

던져놓고 보니 바보 같은 물음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뜨거운지 어떤지 감각도 없다, 이젠.”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마지막 한장이 손바닥 우에 남았을 때 그녀가 나를 돌아다보았다. 

“먹어볼래?” 

약간 깨져있었다. 귀퉁이가. 

양념간장과 귀 떨어진 선지 한모를 상 우에 올려놓고서 그녀가 말했다. 

“이로써 너는 나의 일상을 다 보았어. 더 이상 나에 대해 볼 것이 없다. 난 너한테 나의 모든 것을 발가벗겼어.” 

“음~” 

선지가 어떤 맛인지 모르겠다. 아니, 그녀 앞에서 먹는 선지가 어떻게 맛이 알리랴. 

“다 보았으니 이젠 됐다. 가라. 난 지금 한통 배달하고 남은 건 시장에 내다 팔아야 돼. 빨리 가.” 

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다시 날 보러 오지 마. 니가 오면 난 여기서 못산다. 그리고 내 말 누구하고도 하지 말아줄래. 빨리 가.” 

빨리 가 를 복창하면서 손에 든 칼을 휘둘렀다. 마치 말 안 들으면 죽여버리기라도 하겠다는듯이. 

그녀의 눈길은 서늘했다. 전에 못 보던 눈빛이였다. 그 눈빛엔 아무런 감정도 실려있지 않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와 영원히,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느꼈다. 일종 말 못할 서글픔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나오면서 보니 경숙은 나한테 등을 돌려대고 양말을 갈아신고 있었다. 

발. 

그리고 보았다, 나는. 경숙의 어깨 너머로 그리 못나지 않은 하얗고 조그마한 발을. 

“간다?” 

“…” 

경숙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로써 우리는 영원한 리별인가. 

손목을 들어보니 시간은 아침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한민국 서울시 강남구 양재동이다. 

나는 지금 다이소에 있다. 다이소에서 생활용품 몇가지를 사다가 한곳에 뚝 머물렀다. 

‘참 고운 발’.

발크림이였다. 

나는 그 앞에 이윽히 서있었다. 세상에…

크림은 얼굴에만 바르는 줄 알았더니… 손에만 바르는 줄 알았더니… 발에도 바르는구나… 하고 있었다. 나로선 놀라운 발견이였다. 그리고 모르던 데로부터 알게되였다. 크림은 얼굴이나 손만 아니라 발에도 바른다. 

발. 그렇다. 인간의 온몸을 받쳐주는 지탱점이 발이 아닌가.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발이 건강해야 하리라.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발부터 건강해야 하리라. 그리고 이뻐야 하리라. 비록 양말 속에 감춰져있다 하더라도. 신발 속에 숨겨져있다 하더라도. 발이 건강해야 인간도 건강하리라. 

나는 저도 모르게 ‘참 고운 발’을 손에 집어들었다. 

그녀 경숙의 발이 어떻게 생겼던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럴 것이다. 나는 그녀의 발을 상세히 보지 못했으니까 생각 안 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참 고운 발’. 

샀다. 

그녀를 주려고 산 건 아니였다. 

내가 바르려고 산 것도 아니였다. 

그냥 산 것이였다. 

이 시각 그녀는 연길에 살고 나는 한국에 산다. 서로 다른 하늘 아래.

출처:<장백산>2018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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