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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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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산이 아프다(수필)
2019년 07월 11일 14시 28분  조회:281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산이 아프다

김명숙

 

나는 홀로 걷고 있다. 어디까지 걸었는지 모른다. 얼마 동안 걸었는지도 모른다. 바람 따라 발길 따라 몸을 맡겨버렸다. 대화가 사무치게 그립고 어딘가에 잠간 몸을 기대고 싶다. 하지만 바람소리만 점점 기승을 부리고 눈앞이 희미하게 흐려지더니 이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강물과 대화를 걸었더니 쉴 새 없이 중얼거리던 모습도 어디론가 종적이 묘연해졌고 하늘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눈개비마저 보내주지 않는다. 정처없이 앞을 향해 무작정 걷고 걷는데 멀리서 희미한 륜곽이 내 시야에 어렴풋이 들어온다. 눈을 비비고 다시 뚫어지게 그 곳을 응시했다. 확실하게 뭔가가 보인다. 순간 내 눈이 반짝 빛났다. 나는 힘을 얻고 발걸음을 재우쳤다. 륜곽이 점점 뚜렷해지더니 우람진 체구 하나가 내 앞에 나타났다. 어느덧 내 발길도 그 곳에 닿았다. 하늘을 치받아 고개를 번쩍 쳐들고 병풍을 휘둘러 천하를 휘감은듯한 웅위로운 그 모습!

산! 산이다. 산만이 지치도록 몸부림치며 방황하는 나를 위로해줄듯 싶다. 그래서 내 정처없는 발길이 이곳까지 왔을가? 내 목적지가 여기였는지 나 자신도 모른다. 내가 산을 흠모한 적 있었던가? 그래서 여태 산을 찾아 이토록 애타게 헤매였을가? 대바른 사나이 같이 무게 있는 품위는 내 가슴에 맺힌 이루다 말할 수 없는 하소연들을 속속들이 들어줄 것 같았고 그 거대한 몸체는 가냘프고 무너질듯한 내 육체를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방패 같이 느껴졌다. 

내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찬바람이 기승을 부리고 뼈속까지 찌르던 추위를 어느덧 잠재워놓고 산은 따뜻한 기운으로 나를 맞아준다. 방대한 식솔들을 동원하여 푸른 바탕의 무대를 펼쳐놓고 그 우에 인간의 령혼을 싹 앗아갈듯 아름다운 대자연의 미인들을 풀어놓는다. 각양각색의 미녀들이 푸르른 무대 우에서 살랑대는 그 모습에 허공에 뜬 고무풍선마냥 방향 없이 허둥대던 내 마음이 소리없이 끌려든다. 내 눈에 눈물이 고인다. 누구도 반겨주지 않고 누구도 받아주지 않던 나를 산은 그토록 따뜻하게 그토록 열정껏 맞아준다. 내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하는데 대자연의 온갖 예리한 시선들이 산의 인기에 매혹되는 순간 질투로 약이 오른 태양이 뜨거운 열기를 토하며 지꿎게도 그의 몸체를 지져가기 시작한다. 산은 어쩔 수 없이 미인들을 퇴장시키고 용맹하게 불덩이 같은 열기를 내뿜는 태양의 기세에 맞서 몸속의 온갖 에네르기를 동원하여 신선한 산소를 뿜어가면서 무서운 폭염에 대처해나간다. 어느덧 그처럼 기세를 부리던 태양도 맥이 진했는지 뜨꺼운 열기를 슬며시 거둬들인다. 

그 무섭고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고 공포에 젖어 덜덜 떨고 있는 나를 보더니 산은 어느덧 수다쟁이 녀인마냥 우람진 체구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자기 몸을 울긋불긋 꽃무늬로 단장시킨다. 어데라 없이 빨갛게 노랗게 타오르는 저녁노을 같은 한폭의 수채화가 내 눈앞에 펼쳐진다. 주위의 분위기를 재치 있게 완화시키는 산의 그 실력은 또 한번 내 마음을 움켜잡았다. 산의 그 익살스런 모습을 보면서 세상일이 마뜩잖아 여태 옹졸하게 닫겨있던 내 마음이 이젠 좀씩 풀리기 시작한다. 때를 같이 하여 산은 또 소중히 간직해오던 보물들을 하나하나 풀어놓기 시작한다. 나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한다. 귀중한 약재며 달콤한 열매 그리고 개암버섯들… 이처럼 보잘 것 없는 나에게까지 아낌없이 베풀어가는 산의 훌륭한 성품을 바라보노라니 어느덧 내 아픔들이 하나 둘 사라진다. 순간 부질없이 흘러보낸 소중한 시간들이 안타까와지면서 하루속히 내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친다. 

떠나려는 나를 바래주려고 산은 어느새 꽃무늬옷을 벗어버리고 요술쟁이마냥 하얀 옷으로 몸을 감싸버린다. 자기를 그토록 흠모하고 사랑하는 내 마음을 알아주는듯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으로 나를 배웅한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선녀를 보는듯한 내 마음은 무난하기 그지 없다. 헌신과 베품을 천직으로 수없이 모습을 바꿔가면서 세상을 다루는 그의 뛰여난 실력에 나는 스스로 고개가 숙어진다. 마지막 작별을 고하려고 다시 몸을 돌리는 순간 나는 백설 같이 아름다운 드레스 밑으로 흘러나오는 그의 간간한 신음소리를 들었다. 미약하던 신음소리는 점점 높아갔다. 갈길을 재촉하던 나는 우뚝 멈춰섰다. 내 발길이 그의 신변에 닿는 순간 나는 소스라쳐 놀라고 말았다. 신음소리가 울부짖음소리로 변한다. 산은 고통을 이기지 못해 심하게 휘청거린다. 살을 에여내는듯한 무서운 엄한이 사나운 광풍을 몰고 와 그의 식솔들을 괴롭히는 바람에 산은 그 많은 식솔들을 일일이 잡아주느라 천하가 떠나갈듯 고함을 치기도 하고 땅이 뒤집힐듯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의 가까이에 닿고서야 나는 세상을 독차지한듯 부럼 없는 산에게도 이처럼 큰 아픔이 있다는 걸 알았다. 

산이 아프다! 산이 심하게 아픔을 겪고 있다. 산은 사시절 극심한 아픔을 겪는다. 봄이면 수많은 새 생명들이 고고성을 울리며 그의 몸을 꿰뚫고 뛰쳐나오는 바람에 산은 산모로서의 무서운 아픔을 겪는다. 여름이면 심한 폭염에 견디느라 또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사정 없는 홍수에 살점이 뜯기여나가고 식솔들이 쓰러져나가는 바람에 산은 피눈물을 흘린다. 가을이면 멋진 그의 모습에 반하여 찾아오는 고객들 그리고 보물에 눈독을 들여 자연의 재부마저도 무참히 짓밟는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성화에 산은 심하게 지쳐가고 몸이 망가지기도 한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가을계절도 산은 이처럼 말 못할 고통을 삼키며 또 힘든 겨울을 맞는다. 하지만 이처럼 모진 아픔에도 산은 용케 참고 버텨간다. 헌신과 베품을 천직으로 살아가는 산의 심한 아픔을 느끼는 순간 내 마음이 못견디게 아프다. 나는 지금 산의 신변에서 그의 아픔을 함께 겪으면서 그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다. 

심한 아픔으로 고통을 겪는 나날이 오니 그의 신변에 수없이 찍혀있던 발자국들은 하나 둘 사라진다. 미녀들에 반하여 내내 웃음을 멈추지 못하던 이들도, 꽃무늬옷이 이쁘다고 엄지를 내들고 걸탐스레 보물들에 눈독을 들이던 이들도 더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산은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실망하는 기색이란 조금도 없다. 하냥 그 자리에서 강의한 의력으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자기 모습을 지켜간다. 심하게 아파하는 그의 곁을 매몰차게 떠나버린 발자국들을 바라보며 그가 아닌 내가 그들을 원망하고 불만을 토로하고 보니 내 옹졸한 마음이 더더욱 부끄러워진다. 자신의 아픔과 고통은 깊이 감춰버리고 타인을 위한 헌신과 베품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산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 가슴의 작디작은 아픔도 감추지 못하고 세상일을 마뜩잖아하면서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만 하던 자신이 참으로 수치스럽다. 나는 항상 내 보잘 것 없는 실력을 모르고 내 설자리가 없다고 상대를 원망하면서 작은 가슴에 불만만 쌓아갔다. 힘들고 가파로운 길을 걷다 보면 크고 작은 돌멩이에 걸채여 넘어질 수도 있다. 넘어지면 피가 흐르고 상처가 생길 수도 있는데 나는 내 스스로 그 상처들을 치유할 대신 비겁하게 뒤걸음만 치면서 도전에는 담을 쌓고 허무한 나날들을 속절없이 보냈었다. 비록 내 모습이 작고 못났지만 목표 없이 허둥대는 마음부터 바르게 강하게 다스리고 날마다 내 볼품 없는 모습이라도 부지런히 열심히 가꿔간다면 부족한 틈서리들이 언젠가는 메워지지 않을가? 비록 산처럼 크고 멋진 인격은 갖추지 못했지만 작고 담찬 모습으로 현실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내 욕심과 욕망을 앞세우기 전에 타인의 아픔과 상처들을 먼저 헤아려주고 보듬어준다면 볼품 없는 나에게도 내가 다가가기 전에 산처럼 멋진 누군가가 다가올 수 있지 않을가?

나는 오늘 명지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하냥 썰렁하게만 느껴지던 대지가 따뜻이 나를 포옹한다.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고 내 생애에 조미료를 듬뿍 뿌려준 고마움들을 떠올리니 텅 빈듯한 허허벌판이 어디론가 멀리 종적을 감춘다. 바람도 자고 대지도 그림 같이 아름답다. 도란도란 강물은 모습을 찾았고 하늘에는 하얀 꽃구름들이 수없이 흘러간다. 산과 작별을 고하고 오는 내 마음은 오직 하나의 걱정만으로 마음이 조여진다. 산! 산이 아픔을 겪고 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명시 한구절이 떠오른다.

 

태고 적 전설들을 가슴 속 깊이 묻고

무수한 풍상风霜들을 온몸으로 삭이면서

웅지雄志를 한껏 펼치려 벽공碧空으로 치솟았나.


출처:<장백산>2018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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