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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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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명주:‘집시’가 되여(수필)
2019년 07월 11일 14시 22분  조회:336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집시’가 되여

심명주

 

이사를 했으나 아직 많은 물건이 남은 낡은 집에는 정리할 물건들이 수두룩했다. 그래서 간만에 낡은 아빠트로 다시 갔다. 다시 마주한 아빠트는 못 본 사이에 늙어버린 사람 같았다. 

겉이 멀쩡한 밑층 대문은 여전히 묵직했고 여닫음이 자유로왔다. 2층을 오르고 3, 4층을 지나 5층까지 도착하는데 갑자기 쓸쓸함 같은 것이 훅 파고 온다. 드디여 7층에 다달아 숙련된 솜씨로 집열쇠를 틀었다. 때묻은 집안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은 이사짐으로 뒤죽박죽이 된 풍경이다. 신을 벗고 먼지 앉은 바닥에서 다시 끌신을 찾아 주방까지 직진하여 익숙하게 랭장고문을 열었다. 

연극이 끝난 무대인양 불 꺼지고 텅 빈 랭장고 안.

잠시 흐트러진 내 기억의 퍼즐에서 마음을 되찾아 객실로 나왔고 이리저리 널린 이사짐 사이에서 앉을 곳 없어 서성이다가 이번에는 내가 서버린 랭장고처럼 휑하니 비여있는다. 

꼬박 11년을 내 둥지로 삼았던 집에서 곧 완전히 이사를 나오게 되였다. 푸르른 나무들로 빼곡한 바깥풍경이 훤하게 트인 데다가 조용하기까지 하여 그야말로 내 세상 같던 다락층 이 소가에서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기를 얼마의 시간이였던가. 

이사를 앞둔 사람의 마음은 또 다른 류랑을 앞둔 ‘집시’이다. 낡은 곳을 털어 힘차게 새로운 곳으로 떠나야 하는데 마음은 웬 허전함과 막연함으로 에돈다.

이사짐 꾸미는 날 밖에서는 여름비가 내렸다. 이렇게 비가 온 날 저녁이면 방충망 내린 창문은 어김없이 저 아래 숲속에서 귀뚜라미 울음 한웅큼씩 건져 내 귀에 부어주군 했다. 그 때면 나는 귀뚤귀뚤 소리와 함께 창을 타고 밀려오는 청신한 밤공기를 어우러 낮동안 나른해진 몸을 추스르군 했었지. 헌데 이제 우리는 정말 리별해야 할 시간이다.

이사는 추억을 갈무리하는 한차례 들춤거림이다. 그리고 곧 내가 새롭게 자리잡을 또 다른 집. 집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내 몸을 맡길 믿음직한 지분 한쪼각 같은 것이라서 사람은 늘 그것에 의지하고 련련하는가.

그런 의미에서 지난 기억도 사람에게는 어떤 정신적인 단단한 지분 같은 것이리라. 수많은 그런 지분 중에 제일 오래고 낡은 것은 가장 어릴 때의 기억이다. 어찌하여 그 나날의 빛과 냄새와 슬픔의 온도까지 나는 아직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노란 전구가 빤히 드리운 밤, 초저녁에 이미 누워 잠든 엄마의 가슴을 헤치고 젖 먹으려고 입을 댔던 나는 갑자기 쓰디쓴 젖맛에 소스라치게 엄마 몸에서 떨어져나갔다. 엄마가 젖먹이 나를 떼여내려고 유두에 개열을 바르고 잤던 것인데 어린 나는 예고 없이 찾아온 쓰디쓴 맛에 입이 타는듯 기겁을 했고 잇달아 차오르는 엄마에 대한 배신감과 서러움이 슬픔으로 퍼져 울어번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울기를 얼마일가, 웃방에서 자던 대여섯살배기 오빠가 눈 비비며 깨여나더니 정주 쪽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잠도 못 깬 채 아무 말 없이 엄마젖을 힘차게 빨아서는 바닥에 가서 뱉어버리고 다시 빨아서는 또 달려가 버리기 시작했다. 드디여 쓴맛이 사라지자 우는 나를 보듬어 엄마 젖 물려주던 일…  

노란 전구와 노란 구들과 초라한 가마목과 온 하루 일밭에서 헤맨, 습습한듯 익숙한 엄마 몸의 냄새와 목 쉰 나의 울음소리와 오빠의 달램과 곁에 아무도 없는듯 서럽던 슬픔과 배신과 무기력함들… 지금껏 내 기억에서 그것들이 퇴색할 줄 모른다. 락인처럼 박힌 기억은 누구에게나 신비한 비밀처럼 더욱 또렷하게 남아있는 법인듯하다.

기억에도 분명 생로병사가 있음직한데 사람들은 죽어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혹처럼 혹은 지병처럼 지독하게 깊숙이 넣고 다닌다. 지금처럼 그 기억이 툭하고 튀여나오면 어쩔 수 없이 그 속에 풍덩 빠져서 허우적거리면서.

지워지지 않는 서럽던 엄마와의 그 기억 덕분에 로산으로 아들을 낳으면서 나는 31개월 동안 모유수유로 기꺼이 아들에게 내 가슴을 내여주었다. 또 지금 아들과의 그런 기억 하나하나가 다시 옛 생각처럼 곧 이사할 이 집에 고스란히 배여있고 나는 곧 다른 집을 터로 잡아 이사를 떠나야 한다. 

떠난다는 말은 늘 알짝지근한 말이다. 사춘기를 막 맞아 우울하던 그 때에 아버지도 그렇게 내 곁을 훌쩍 떠났다. 집안에서 아버지라는 기둥이 무너지던 소리는 집안 전체를 뒤흔드는 큰 울림 같은 것이였다. 생사의 예기치 못한 리별 만큼 아픈 것이 또 있을가. 아버지와의 리별은 우리 형제 모두를 단번에 훌쩍 커버리게 하였다. 

아직도 푸른 청포 같이 펴기만 하면 내 마음에서 후드득 일어서는 이런저런 어린 시절의 추억무늬들이다. 다 커버린 지금 이사를 하노라니 괜히 지난 추억이 줄레줄레 따라나오는 시간들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대나무가 마디로 이어지듯 인생 또한 한번 또 한번 리별과의 련속적인 만남이라고 가르쳐준다. 그런 의미에서 리별이란 나쁜 의미만이 아니다. 리별이란 곧 하나의 마디맺음이며 역시 새 마디의 시작으로 희망을 품은 아픔이라서 리별을 잘할 줄 아는 사람은 마디를 딛고 올곧게 서서 건실하게 성장하는 대나무처럼 싱싱해지리라. 

바로 집의 기억들과 추억들과 잘 리별해야 할 시간, 나는 집시인이 되여 다시 기꺼이 떠나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직 이 마음에 서린 저 소가에서 쌓은 놓지 못할 기억들과 그리움들은. 

곧 몸은 다른 곳에 정착할 것이나 마음은 한동안 이사 중일 것이리니.

출처:<장백산>2018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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