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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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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영: 파란 전화기(수필)
2019년 07월 11일 14시 27분  조회:292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파란 전화기

김광영

 

5월 14일 어머니의 날이다. 이제 전화할 데가 없다. 물론 생전에도 휴대전화 한번 못 써봤던 엄마지만…

호랑이 담배 피운던 시절의 이야기라 할가 내가 갓 입사했을 때는 90년대 초반이였으니까 고향에서 집에 전화가 있다는 건 사치였다. 우리 집 전화는 사무실 대선배님이 내가 평소에 엄마하고 자주 전화통화를 하라고 전화 가설비를 주어서부터 생겨났다. 그 때 돈으로 천원을 주면서 이번 설에 집에 가면 꼭 전화를 가설하라고 배려해주셨다. 그 때 나의 로임이 천원 미만이였으니 나에게는 많은 돈이였다. 나는 그 해 설에 집에 전화를 가설하게 되였다. 파란색 전화기였다.

그런데 우리 집은 아빠트가 아니라 단층집 구역에 있어서 전화선이 들어와있지 않았다. 선을 따로 늘이려면 또 우정국의 사람을 통해야만 했다. 마침 고중 동창이 사람을 찾아줘서 빠른 시간 내에 전화를 개통하게 되였다. 정상적으로 비용을 내도 관계를 찾아야만 가능한 이른바 관계가 소개신보다 나았던 시기였다. 

전화기가 있기 전에는 편지나 전보나 인편으로 소식을 전하고 받았다. 지금은 편지를 요구해도 받아보기 힘든 시대지만 중요한 사교수단의 하나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편지는 담기는 내용에 따라 사연도 많았다. 최근에 고향에서 녀자 동창들과 만나고 나서 중학교 때 얼마나 많은 남학생들의 련애편지가  선생님들 손으로 들어갔는지를 알게 되였다. 그 때 녀학생들은 련애편지를 받으며 첫 반응이 겁부터 났다고 한다. 애가 왜 나한테 이러지? 다른 친구들이 알면 어쩌지? 선생님이 아시면 큰일 날 텐데… 대개 이런 심리에서 편지를 받는 족족 성생님께 바쳤다고 한다. 어떤 편지는 아예 무슨 내용인지 보지도 않고 바쳤단다. 물론 아예 관심이 없는 남학생의 편지니 그냥 뜯지도 않고 바쳤을 것이다. 마침 얼마간 호감이 갔던 남학생이였다면 무슨 내용인지는 훔쳐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와중에 련애편지 한번도 못 받아본 녀학생들은 또 얼마나 허무했을가? 한번도 못 줘본 나도 마찬가지지만… 그런데 편지를 건네보지는 못했지만 못 써본 건 아니다. 설레는 마음을 눅잦히고 알심들여 쓰고 지우고 고치고 완성한 편지를 결국 주지는 못했다. 지금은 그걸 어디에 잃어버렸는지 기억이 안 난다. 부치지 못한 편지, 무슨 수필 제목에서나 볼 법한 사연을 내가 만든 것이다. 오히려 주기라도 하고 퇴짜를 맞는 게 나았을걸 그랬다. 후회는 항상 가장 아쉬운 부분에서 상처가 깊다.

그 뒤로 편지는 대학교에 와서 많이 써봤다. 그 사이 도와준 친척 친우들에게 고마움의 뜻을 전하는 것도 있겠지만 편지라는 것은 회신이 있어서 그 회답편지를 받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여기에 또 옹졸하게 회답편지를 유도한 작전이 한번 있었다. 중학교 때 호감이 갔던 녀학생 후배가 있었는데 각기 다른 도시로 학교를 가게 되였다. 타성의 벽을 넘어 편지가 오가며 지내던 중 어느 순간 저쪽에서 회답이 없어졌다. 회답편지가 기다려지기도 하고 받은 편지에 답장을 안하는 것이 불만스럽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답이 없냐고 편지를 써서 물을 법도 했건만 그냥 백지 몇장을 봉투에 넣어 부쳐보냈다. 뜻인즉 답장이 없는데 편지종이까지 받쳐줄 테니 답장은 하면서 살자는 대개 그런 뜻이였다. 아니나 다를가 금방 미안하다는 내용과 함께 답장이 왔다. 지금 생각하면 참 속 좁은 행동이였지만 그 때는 그러고 살았다. 학교 때 편지와 비슷한 또 하나의 재미는 년말에 친척친우들에게 엽서를 보내는 일이다. 누구에게 새해 엽서가 많이 오면 그것도 자랑이고 괜히 뿌듯해했다. 지금은 문자로 실시간 소통이 가능해 굳이 편지를 보내고 받을 일이 없지만 편지는 편지로서의 고유의 매력을 갖고 있고 소장의 가치도 있다. 특히 타이핑인 아닌 펜으로 직접 쓴 손편지는 지금 받아도 하나의 소중한 선물이다. 

그러던 중 통신수단의 혁신적인 돌파로 호출기가 출시된다. 일명 삐삐기라도 했던 이 작은 물건은 교환수나 자동시스템을 통해 련락을 바라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띄워준다. 나중에는 한단계 발전해 직접 문자가 뜨는 데까지 발전한다. 호출기는 당시 고가의 통신제품이였던 만큼 애지중지 아껴서 어디 부딪치거나 긁히는 것을 막아주는 씌우개도 했다. 씌우개 중에는 투명하게 비닐로 된 것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멋으로 100딸라짜리 지페를 끼워넣고 다니기도 했다. 졸업 전 실습기간에 허리춤에 호출기를 차고 다니며 우연일지라도 바지 주머니에서 미국 딸라가 삐죽이 나와있는 현상을 목격한 회사에서 이 학생들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학생들이 아니라고 판단해 아예 채용할 생각을 포기했다는 일화도 있다. 아직 널리 보급된 상황은 아닌 시점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호출기를 소지하고 다녔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 실습회사에도 호출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던 시기였으니까. 우리 시대에 우리 학교 조선족 학생들한테서만 볼 수 있었던 특수 현상이였다. 한달 생활비가 백원에서 백오십원였던 시절에 몇천원짜리 호출기가 정상적인 현상은 아니였다. 

그 뒤로 휴대전화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한동안은 휴대전화와 호출기가 병존했다. 주요 원인은 휴대전화 비용이 감당이 안돼서 호출기로 상대방의 전화를 받은 후 꼭 회답을 해야 할 전화만 휴대전화로 하고 급하지 않으면 유선전화를 리용했다. 이 때는 휴대전화를 들고 공공뻐스를 타면 그 수준에서 휴대전화는 왜 갖고 다니냐 하는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시기다. 자전거를 타면서 휴대전화를 사용해도 마찬가지로 의아한 눈총을 받았다. 그만큼 휴대전화는 부와 신분의 상징이였다. 특히 초기 아날로그 휴대전화 시절에는 벽돌 반장 만한 크기의 휴대전화기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거나 회식장소에서 테이블에 척 올려놓으면 그만한 위풍이 없다.  

그러다가 전화기는 작아지고 액정화면은 커지는 추세로 발전했다. 가격도 옛날처럼 그렇게 고가도 아니고 부의 상징도 아닌 시대가 도래한다. 이 때는 휴대전화을 잃어버리는 고봉기다. 나는 일편단심 노키아를 선호했는데 아마 일년에 십여대는 잃어버린 것 같다. 넘어진 김에 쉬여간다고 잃어버린 기회에 다른 기종도 써보고 싶었지만 잃어버렸다는 걸 집에 들키지 않기 위해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일년 내내 똑같은 기종을 사야 했다. 안타까운 건 갱신이 빠른 휴대전화는 똑같은 기종을 바꾸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기종을 사고 싶어도 파는 데가 없어서 결국은 전화기를 잃어버린 사실이 들통났다. 

스마트폰 시대는 예고 없이 쑥 들어왔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휴대전화에 매달려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휴대전화가 없으면 일상생활이 아주 불편한 시대를 맞이한다. 옆에 있어도 보고 싶다는 말이 더는 련인 사이 죽고 못사는 애틋한 장면이 아니다. 옆에 있어도 서로가 각자의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니 그만한 거리가 또 어디 있을가 싶다. 

무관심 만큼 살상력이 강력한 무기는 없다. 휴대전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의뢰심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결례를 범하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회의 중에 휴대전화를 뒤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회의 사회자에 대한 그 이상의 결례는 없다. 또 회식 장소에서 휴대전화를 끊임없이 들여다볼 거면 왜 그 자리에 나오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요즘 학생들은 기숙사 아래 침대에서 2층 침대 학생에게 위챗으로 통지를 전달한다고 한다. 

편지-유선전화-호출기-휴대전화, 통신수단으로서의 이 네개 중 호출기만 사라졌다. 휴대전화가 호출기의 모든 기능을 대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편지가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건 그 자체의 특유의 생명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손으로 쓴 편지, 글자마다에 새겨진 진심과 성의가 그의 매력이고 생명력이다. 그래서 나는 짧든 길든 나에게 손으로 적어준 편지들을 차곡차곡 보관해둔다. 창밖으로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울적한 날에는 이런 편지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아름다운 옛 추억들을 떠올리고 그 때 그 사람들을 그리게 된다. 

이제 휴대전화는 또 전화를 걸기보다는 음성메시지나 문자를 많이 활용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소통의 방식이 바뀌여가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은 역행할 수 없다. 이러한 소통방식이 마음에 들든 안 들든간에 적응해가야 한다. 

하지만 통신수단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가든간에 우리 집의 첫 전화기, 파란색 전화기가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엄마한테 전화를 하라고 가설해준 사무실 대선배님의 배려를 잊을 수 없고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전화기는 나도 대선배님이 했던 것처럼 후배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하는 상징체이기도 하다. 하늘나라에서는 무슨 전화기를 쓰시는지 모르겠지만 번호도 모르는 전화기에 마냥 걸고 싶고 목소리를 단 한번만이라도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그 파란 전화기를 더 그립게 한다.   


출처:<장백산>2018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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