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국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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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인간의 려정 1 - 소년시기와 청년시기
2014년 04월 26일 14시 38분  조회:1050  추천:1  작성자: 최국철
 

 

차   례

 

CONTENTS

 

 

 

 

 

 

 

 

제1장 인간의 려정                                    1

제2장 메카—연안                                    36

제3장 북방대륙에서                                  92

제4장 연변의 하늘과 땅(1949—1967년)               205

제5장 고향산기슭에서 노래하리                       247

제6장 주덕해와 민족공업                            384

제7장 주덕해와 문화                                404

제8장 가슴이 시린 “문화대혁명”                      486

제9장 연변으로 돌아온 영령                          526

주덕해프로필                                       534

참고문헌                                           537

참고문장                                           541

제1장

인간의 려정

소년시기와  청년시기


주덕해의 원명은 오기섭(吴基涉)으로서 1911년 3월 5일(음력) 로씨야 원동지구의 한 시골마을에서 출생했다.

1920년 3월부터 길림성 화룡현 수동촌1)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청년기부터 선후로 흑룡강성의 동녕, 동경성, 림구, 밀산 등 북만2)일대에서 항일에 투신하면서 1930년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했고 1931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32년 흑룡강성 녕안현 동경성 우가툰공청단 특별지부 서기, 밀산현 전촌 당지부서기사업을 하고 1933년 8월 서대림자지부 서기, 1935년 2월 동북인민혁명군(항일련군) 제3군 신편 2퇀 류수처당지부 서기를 맡아하면서 후날 항일련군출신이라는 금빛경력을 쌓았다.

그후 1936년 제3공산국제(코민테른)에서 쏘련 수도 모스크바에 꾸린 “동방로동자공산대학(동방로동대학이라고도 함)”을 거치고 1939년에 다시 중국혁명의 중심인 연안, 동북의 할빈, 다시 연변으로의 회정(回程)을 보이면서 격조 높은 인생원정을 마쳤다고 하면 무난하련만 “문화대혁명”시기 실각하면서 무한이란 타관땅에서 불운한 생을 마감했다. 이것이 그의 비운의 프로필이기도 하다. 혁명가, 정치가, 교육가, 민족의 지도자로서 정립(挺立)된 주덕해의 비운은 그 시대가 산출한 비장함 그 자체였다.

주덕해의 인생려정을 축약해보면 대체적으로 몇개 단계를 거쳐 오기섭이란 원명으로부터 주덕해(1934년부터)라는 전사(战士)로, 인간으로, 혁명가로 거듭나고 완성하는데 이 몇단계에서 주덕해의 정치사상과 신념 그리고 민족사랑은 단계를 거듭하면서 승화되였고 종국적으로 인간 주덕해와 공산주의자 주덕해를 재탄생시켰다. 이는 격조 높은 중국혁명실천과 밀접하게 련계되고있다. 말하자면 중국혁명이란 이 실천의 장(场)은 수많은 주덕해를 산출했고 품덕이 고상한 인간들을 육성한것이다. 하기에 주덕해의 성장과 완성은 혁명력사와 민족지구라는 큰 그림에서부터 찾아야 할것이다.

그 첫번째 단계가 대체적으로 1922년부터 1936년 4월까지의 소년기, 청년기이다. 이 시기는 주로 오기섭으로 불리웠다. 소학교를 다니면서 룡정에서 김광진3)에 의해 초기공산주의를 접수하는 과정이 인생행로에서의 첫번째 전환점이기도 했다. 1917년 로씨야 10월사회주의혁명은 중국, 조선의 민중들을 각성시키는 거대한 사변으로 다가왔다. 1920년 초기부터 맑스—레닌주의가 여러 경로를 거쳐 중국, 조선에 파급되였고 연변지역으로 전파되였다. 이런 사회운동은 먼저 매체가 전위대로 등장했는데《공산당선언》을 필두로《로씨야공산당정강》,《우리 무산계급의 진로》,《빠리꼼뮨》 등 서적들과《공산》,《서광》,《새 세계》 등 신문잡지들이 룡정일대로 흘러들었고 그중에서도 선진사상을 가장 빨리 접수하는 대성중학교, 동흥중학교, 사립명동중학교로 먼저 흘러들었다.

당시 룡정일대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활동무대였다. 엠엘파4)는 1926년 조선공산당 형성이후 화요파가 대세를 잡자 그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분파로 조선공산주의운동은 한동안 엠엘파, 화요파, 서상파의 3파전이 진행되였고 연변지구에서는 대개 화요파와 엠엘파들이 활동했다. 엠엘파의 주요인물로는 김근, 안광천, 양명, 한위건, 고경흠 등이 있었는데 조선공산당이 와해된 이후에도 엠엘파는 만주활동을 재개, 당재건을 위해 노력했다.

룡정일대에는 엠엘파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는데 여기에는 김광진, 황기범5), 오원서(주덕해 숙부)가 있었다. 이 세 사람은 주덕해가 계몽을 거쳐 초기공산주의사상에 입문하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한 “정치적인 멘토”로 알려져있다. 1927년 16살에 난 오기섭은 소학교를 졸업하면서 운명적으로 김광진을 만난다. 당시 김광진은 학교를 꾸리면서 반일애국사상을 널리 섭렵하고있었다. 김광진은 김약연6)이 창립한 사립명동중학교출신이다. 명동중학교는 수많은 반일민족독립운동가들과 사회주의운동가들을 배출했는데 “김광진은 시인 윤동주, 영화배우 라운규 등과 함께 유명한 반일애국주의자들이였다.”7) 김광진은 조선공산주의자, 후기에 항일련군에 참가했는데 주덕해에게 가장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로 알려지고있다. 김근, 김현으로 변성명하기도 했던 김광진은 룡정일대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로서 고려공산당인들이 조직한 반제애국단체인 청년회에 가입하면서 반일민족교육가로 성장했다. 1928년에 김광진은 룡정 대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이 시기부터 김광진과 주덕해는 충실한 사제관계로서 주덕해는 김광진에 의해 공산주의사상을 섭렵하게 된다. 당시 김광진은 뜻이 맞는 7명의 청년들과 련계를 달아 “철혈단”을 조직하였으며 일본의 군정요인, 특무 및 친일주구들을 암살하려고 가만히 무기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 시기 김광진은 이미 중공녕안현위와 련계가 있었으며 북만지구의 일본 경찰과 헌병의 세력이 비교적 박약하여 항일무장을 조직, 건립하는데 편리하다는것을 료해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주덕해 등 6명의 청년에게 가짜“가정”을 이루어 녕안현 화련구에 가서 자리를 잡게 했다. 주덕해의 북만행은 김광진에 의해 행해졌고 이 길은 한층 더 치렬해지는 항일의 길이기도 했다.

그다음은 황기범이다. 중공만주성위의 직접적인 령도를 받은 황기범은 “붉은5월투쟁 행동위원회”지도부에 편입될 정도의 당골간으로서 몇년후 북만땅에서 주덕해의 직접상급으로 항일련군 정치위원으로 사업하기도 했다. 그리고 숙부 오원서가 있다.

“…오원서는 교통이 편리하고 적들의 이목이 잘 미치지 않는 승지촌(당시 화룡현 용신사 수동골 동량어구)에 자기 친척의 이름으로 세집 한채를 맡고 투도구방면의 폭동지휘 최형익과 차정숙(친척사이)을 가짜부부로 살림을 차려주어 사람들의 이목을 흐려놓게 하였다. 집은 승지촌에서 좀 떨어진 독립가옥이여서 지하활동으로 쓰기가 편리했다. 이리하여 이곳은 당시 연변특별지부와 ‘붉은5월투쟁’지휘부 성원들의 비밀거점으로 되였다. 1930년 4월 24일, 승지촌 오원세(서)네 집에서 ‘5.1’에 대한 사업결의를 집행하러 연변에 파견되여온 중공만주성위 특파원 박윤서와 마준, 중공연변특별지부 서기 왕경(일명 리완룡), 위원 이복해(伊福海), 조선공산당(엠엘파) 동만도 책임자 김근, 원 조선공산당 당원 김철, 엠엘파계렬의 고려청년회 동만도책임간부 등이 참석한 련석회의가 열리였다.”8)

이 회의에 오기섭의 삼촌인 오원서외에 황기범도 참가했다…

이런 생활환경으로 미루어보면 주덕해의 소년시기와 성장시기에 주변인물들이 끼친 영향력을 알수 있다. 그후 동녕과 밀산을 거쳐 주덕해는 점차 각성한 혁명청년으로 성장된다. 이 시기 지하항일투쟁의 수요로 반일전사들이 다 변성명하듯 오기섭도 주덕해라고 이름을 바꾸었고 미구하여 제3공산국제(코민테른)의 결정에 의해 조선공산당이 해산되면서 일국일당의 원칙에 의해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리고 지하항일활동에 투신했다.

주덕해의 청년시기는 항일, 항전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우리에게 현재화되여있는 근대성이 배태된 공간이다. 주덕해는 청년시기의 삶을 북만이라는 공간에 헌신하고 항일실천으로 투쟁의 진리를 이야기했다.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중국공산당가입은 중국혁명에 직접 참가하는 동시에 조선혁명의 완성을 념두에 두어야 하는 2중사명을 부여하기도 했다.

후날 주덕해의 프로필에서 이 시기의 한 단락의 력사로 인해 “문화대혁명”시기 반역자라는 억울한 루명을 쓰기도 했다. 반면 이 단락의 력사로 하여 프로필 첫장에 항일련군출신이라는 락인을 찍어주었고 항일련군계렬로 분류되기도 했다. 연안출신, 조선의용군앞에 항일련군출신이라는 주석이 따라붙은것이다. 당시 조선인 재중 혁명가들의 출신과 성분이 대개 비슷했지만 주덕해는 황포계, 태항산(의용군)출신은 아니였다. 하기에 주덕해의 일생에서 이 과정이 주덕해라는 인간의 사상과 신념을 주입하는 가장 전환기적인 과정이고 중국의 소수민족—조선(민)족 지도자로, 정치가, 혁명가, 교육가로 성장되는 기초적인 정치생활의 바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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