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국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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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인간의 려정 8 - 연변의 문화
2014년 05월 25일 10시 27분  조회:854  추천:1  작성자: 최국철

제1장
인간의 려정


연변의 문화

연변의 문화는 이민들이 월강하면서 지니고 왔던 무형의 민족관습, 민족 동질성과 전통성이 민족집단생활운행기제를 고착시켰는데 그것은 문화성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하기에 이런 문화에는 타관땅을 개척했던 이주민들의 동질성확보와 정체성이 고집스레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초기 조선족농촌문화전통은 이런 측면에서 고찰할수 있다.

당시 동북지역에 거주한 조선인(족)들의 생활현실을 너무도 잘 료해했던 주덕해는 관성적인 민족문화에 기초하여 문화선전사업에도 커다란 중시를 돌렸다. 그것은 연안시기부터 정률성과 친구로 지내면서 문예창작을 지켜보았고 할빈에 진주하면서부터《전투보》를 꾸렸고 1948년 동북행정위원회 민정부 민족사무처의 기관지로《민주일보》를 창간하면서 실천적으로 표현되였다. 그후 연변에 진출하면서 특정지역 민족특색에 맞는 신문, 방송, 출판 등 기구를 규범적으로 만들면서 연변문화특색을 최대한으로 살렸다. 무릇 규범은 과학적인것이다.

제3지대출신인 연변대학 예술학원 전임 원장 김삼진은 “제3지대가 금방 성립되였을 때 주덕해정위에게는 처리해야 할 사무가 많았지만 그런 힘든 정황에서도 부대선전대를 내왔는데 이는 주정위의 가슴속에 자리잡은 문화사업체계이기도 했습니다. 그후 민족사무처에서 사업할 때 우리 부대가 전선에 나갔고 주덕해정위는 할빈에 남아있었는데 그때도 문예인재를 요구해서 문공단을 꾸렸습니다. 주정위처럼 정치를 하면서도 문화사업을 중시한분은 드물겁니다.”라고 밝혔다.

장만련은 “제3지대는 주덕해정위의 지시로 1946년에 선전대를 조직하였고 하반년부터 제3지대 선전대는 북만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문예 공연과 선전을 동시에 진행하여 농촌지역 군중들의 절찬을 받았다.”고 회억했다.

이 문화선전대가 현재의 문화예술의 모태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변에 부임되여온후에 주덕해는 또 인차 연변가무단을 창립하였다. 연변가무단은 공화국초창기 북경, 상해, 광주를 비롯한 중국의 대도시와 민족지구를 순회하면서 민족문화예술의 진수를 활기차게 자랑했다. 조선족의 중국관내진출은 사실 문화예술단이 선두에 섰고 이렇게 조선족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주덕해는 특히 문화인재에 대한 관심과 배양에 큰 중시를 돌렸다. 조득현은 저명한 무용가로서 주덕해가 제3지대에 있을 때 선전대에 있었고 그후에 민족사무처 문공단에서 사업하였으며 주덕해가 연변에 올 때 함께 왔다. 그후 병치료차로 조선에 나간후 조선전쟁으로 소식이 끊어지자 주덕해는 “조득현무용가는 100개의 교향악단과도 바꿀수 없는 존재다.”라고 하면서 조득현을 찾기 위해 조선으로 사람을 파견하면서 문화인재에 대한 지지와 성원을 아낌없이 보냈다. 조득현은 연변에 온후 연변가무단 부단장직을 맡아하면서 연변의 문예사업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1957년 “연변예술학교”가 창립되였는데 주덕해의 공로와 갈라놓을수 없다. 그때 전국적으로 지구급이 꾸리는 예술학교는 “연변예술학교”가 유일했다. “연변예술학교”는 연변가무단과 주내 각 현, 시 그리고 동북3성 예술단체들에 해마다 많은 인재들을 양성해주었다.

“연변이 노래와 춤의 고향으로 된 바탕과 기틀은 주덕해가 마련해놓았다고 평가할수 있습니다.” 박문일 전 연변대학 교장의 평가이다.
연변문화예술사업은 민족특색이 선명하고 변방지구의 문화예술발전가능성을 무한하게 시사하고있다. 뿐만아니라 문화대외교류의 현장도 마련되여 날이 갈수록 자신의 민족적, 지역적 특색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해나가고있다.

이 모든것은 주덕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17년 동안의 연변사업시기 주덕해는 정치적인 소속을 완성하면서 민족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 제반 건설을 정상적인 궤도에로 진입시키던 시기이기도 하다. 하기에 사실상 연변이란 특정지역에서 가장 큰 성과를 따내던 시기였고 따라서 공산주의자의 격조 높은 품덕을 구가하던 시기이고 주덕해라는 인간전설을 구가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완성된 주덕해는 이렇게 인간적으로 연변사람들의 기억속에 영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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