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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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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영웅
2013년 12월 08일 11시 34분  조회:4188  추천:1  작성자: 넉두리

단편소설


내가 만든 영웅


김희수

 
 
《석호, 그 녀석이 인물은 인물이야!》
동창회에 참석했던 동창들은 이구동성으로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석호를 칭찬했다. 석호가 자금을 내놓아 5성급호텔에 동창회파티를 마련해준 때문만이 아니였다. 석호는 전성에서도 손꼽히는 사영기업가로 그 명성이 높았고 양로원후원, 불우어린이돕기 등 자선사업과 동요콩쿠르, 조선족수필상 등 사회활동에 해마다 후원해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를듯 했기 때문이다. 《석호컵》으로 명명한 각종 음악상, 글짓기상만 해도 10가지는 되였다. 이번에도 그는 통이 크게 호화호텔에 동창회파티를 열었고 중도에서 급한 일이 있어서 나갔지만 3차까지 절차를 모두 안배하고 떠났던것이다.
《버릇없이 석호는 무슨 석호야? 석총재님이지!》
경일이가 이렇게 시정하자 명남이가 손을 휘두르며 반대했다.
《아첨 떨지 말라. 설사 석호가 국가주석이 됐다하더라도 우리에겐 여전히 석호지! 동창생인데 이름을 왜 못 부르겠니?》
《명남아, 너 학교 때 석호한테 맨날 얻어맞고도 정신 못 차렸니? 너 석호주먹이 무섭잖니?》
《야, 임마, 우리가 지금 주먹을 휘두를 나이야? 아무튼 난 그 녀석보다 공부는 더 잘했지만 그 녀석의 능력엔 탄복한다. 하여튼 난놈이야! 허허, 학교 때 한심한 개구쟁이던 그 녀석이 오늘 이처럼 대단한 인물이 될줄이야! 안 그래, 김기자?》
경일이와 입씨름을 하던 명남이가 이번에는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사실 석호가 굴지의 사영기업 《호랑이그룹》의 총재로 되기까지는 무엇보다 나의 공로가 컸다고 말할수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석호의 덕을 많이 보았으니 엎음 갚음이라고 할가. 여기 앉은 동창들은 모두 석호와 내가 가장 가까운 사이란것을 알고있다.
그랬다. 석호와 나는 서로 앞뒤집에서 살았고 학교도 소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5학년까지 줄곧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석호와 나는 성격도 다르고 취미도 달랐지만 가장 친하게 지내면서 늘 그림자처럼 붙어다녔다. 나는 나약하고 온순했지만 석호는 힘이 세고 우락부락했다.
석호는 늘 주먹을 휘두르며 동학들과 싸움질하며 말썽을 일으키는 문제아였고 수업시간에는 늘 옆에 앉은 학생을 건드리지 않으면 앞에 앉은 녀학생의 잔등에 락서한 종이장을 붙이는 등 장난이 심한 아이였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애들은 그애의 옆이나 앞에 앉기 싫어했다. 선생님이 몇번이나 석호를 불러다놓고 잘못을 타이르고 훌륭한 학생이 될것을 바랐지만 소용이 없었다. 선생님이 타이를 때는 당장 잘못을 고치고 새 사람이 되겠노라고 결심서(내가 대신 써주었다)까지 써서 바쳤지만 며칠이 지나면 또 옛버릇이 살아나서 수업시간에 장난질하고 휴식시간에는 동학들과 싸움질하군했다. 영순이는 우리 반에서 머리태를 가장 길게 기른 녀자애였다. 한번은 영순이의 뒤에 앉은 수남이와 바꿔 앉은 석호는 수업시간에 앞에 앉은 영순이의 머리태를 살금살금 걸상에 동여맸는데 수업시간이 끝나 기립할 때까지 영순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벌떡 일어섰다가《아앗》하고 비명을 질러댔다. 또 한번은 반장인 명남에게 다짜고짜로 주먹을 안겨 코피가 터지게 했다. 자기가 장난 쓴 사실을 선생님한테 고자질했다는 리유로. 선생님은 그런 석호를 타이르다못해 학급의 전체학생들 앞에 세워놓고 비판도 했지만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선생님은 방법이 없어서 석호를 제일 뒤에 앉히고 그애의 주위에 장난꾸러기 애들을 같이 앉게 했다.
그러나 그애의 장난은 점점 심해졌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흑판에 글을 쓰려고 돌아설 때마다 선생님에게 분필을 던지군했다. 명중률도 대단해서 그애의 손에서 날아간 분필은 꼭꼭 선생님의 등에 맞지 않으면 선생님의 뒤통수에 명중되군했다. 선생님이 돌아서서 《누가 한 짓이냐?》고 물어도 애들은 그애의 주먹이 무서워 말을 못했다. 한번은 수학선생님이 그애가 장난 쓰는것을 보고 교편으로 그애의 뒤통수를 탁 치면서 심하게 꾸중한적이 있었는데 온종일 분풀이 할 궁리를 하던 그애는 이튿날 수학시간이 시작되기전에 교편의 손잡이에 콜타르를 발라놓았다. 그것을 모르고 교편을 잡은 수학선생님은 손에 진득진득한것이 묻어나자 깜짝 놀랐고 다음순간 펄쩍 성난 얼굴로 우리를 쏘아보며 《누가 한 짓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대답하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자 수학선생님은 닉명으로 쪽지를 써서 바치라고 했다. 나는 석호가 한짓이라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누가 한짓인지 모른다고 써서 바쳤다. 대부분 아이들도 석호의 주먹이 무서워서 그렇게 써서 바쳤다. 하지만 닉명이라 대담한 아이들도 있었던가 보다. 수학선생님은 학생들에게서 거둔 쪽지를 통해 석호가 한짓이라는것을 알아냈다. 석호는 교무실에 끌려가 벌을 받았다.
이튿날 석호는 고자질 한자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닉명이라지만 고발자는 대번에 드러났다. 바로 학급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반장 명남이였다. 명남이의 뒤에 앉은 경일이가 석호한테 와서 가만히 알려줬다.
《명남이가 쪽지 쓰는걸 내가 가만히 엿봤는데 그앤 쪽지에 〈석호가 한짓입니다!〉하고 쓰더라. 내가 똑똑히 봤어.》
석호는 그 다음 수업시간에 경일이와 바꿔 앉았다. 종소리가 울리고 뒤이어 선생님이 들어오시자 명남이가 《기립!》하고 구호를 불렀다.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서자 선생님이 손을 저으며 《앉으시오!》했다. 학생들이 일제히 자리에 앉는데 갑자기 명남이가 《아이쿠!》하고 비명을 질렀다. 엉뎅이에 압침이 찔렸던것이다. 누가 한짓인지 뻔했다. 명남이가 일어설 때 석호가 슬며시 명남이의 걸상에 압침을 세워놓은것이다.
《네가 한짓이지?》
명남이가 고개를 돌리며 묻자 석호는 모르쇠를 잡았다. 선생님도 와서 따져 물었지만 석호는 그저 덮어놓고 끝까지 모른다고 잡아뗐다.
《왜 나만 의심합니까? 좌우 옆의 애들도 그럴수 있고 뒤에도 나 혼자만 있는게 아닌데…》
선생님이 주위의 애들과 물었지만 모두 석호의 보복이 무서워 말을 못했다. 학급엔 석호 말고도 말썽꾸러기들이 여럿이 되였다. 학교에선 이런 말썽꾸러기들을 다루는데 편리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진정 그들의 학습을 관심해서인지 제고반을 꾸렸다. 시험을 쳐서 학습성적이 차한 학생을 한개 반에서 9~10명씩 뽑아서 제고반에 보냈다. 그런데 1등 말썽꾸러기인 석호만은 그냥 우리 반에 남아 있었다. 그가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시험 칠 때 내가 몰래 모범답안을 적어주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이 커닝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댔지만 석호의 커닝수법이 고명했기에 발견되지 않았던것이다.
함께 맞장구를 칠 장난꾸러기들이 없어지자 석호는 공부를 잘하는 애들을 지껄였다. 애들이나 선생님이나 모두 석호를 모기나 파리처럼 싫어했다. 그런데 새로 온 최선생님이 반주임을 맡으면서부터 욕설만 듣던 석호는 날마다 칭찬을 받게 되였다. 최선생님이 말썽꾸러기학생을 다루는 방법은 아주 독특했다. 무조건 칭찬을 하는것이다. 석호가 수업시간에 장난을 쓰거나 옆의 애들을 건드려도 최선생님은 모른 체 하고있다가 시간이 끝날 무렵이면 《오늘 석호학생은 진보가 많습니다. 장난도 적게 쓰고요. 계속 잘해보세요.》하고 칭찬했다. 날마다 칭찬을 듣자 쑥스러웠든지 석호는 어느날 《좋은 일》을 해야겠다면서 나더러 집에서 망치와 못을 가지고 등교하라고 했다. 그의 말을 거절할수 없었다. 휴식시간에 그는 마사진 책걸상을 수리해놓았다. 물론 그 책걸상은 그가 마사놓은 것이였다. 장난이 심했던 그는 쩍하면 자기의 책걸상을 망가뜨려 놓고는 휴식시간이면 다른 애들의 책걸상과 바꿔놓군 했다. 그래놓고 지금 그 책걸상을 수리해 놓은것이다. 그 일을 알게 된 최선생님은 석호가 뢰봉을 따라 배워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하면서 전체학생들더러 박수를 치게 했다. 이것이 석호가 《출세》하게 된 첫걸음이였다…
 
동창들은 모두 술이 거나하게 되자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2차로 노래방에 간다고 떠들 때 나는 슬그머니 빠져 나와서 집으로 돌아왔다. 소학교 음악교원인 안해가 피아노를 치고 딸년이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나는 딸년에게 노래수준이 진보가 많다고 칭찬하고나서 석호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실화를 쓰기 위해 서재로 들어가 노트북에 마주 앉았다. 사실 피아노와 컴퓨터, 노트북은 모두 석호의 덕분에 차려진것이였다. 한번은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석호가 내 딸년이 노래부르는것을 보고 《네가 성악에 소질이 있구나. 그리고 네 엄마도 음악선생인데 피아노가 없어서야 되겠니? 우리 집 놈이 새 피아노를 사놓고 낡은 피아노는 자리만 차지하고있는데 낡았다고 꺼리지 않는다면 너한테 주마.》하고 말해놓고 그 이튿날로 사람을 파견하여 우리 집에 피아노를 실어왔다. 그리고 내가 그의 회사에 취재를 갔을 때《기자량반에게 노트북이 없어서야 되겠나? 내게 노트북이 2개나 있으니 하나 가져가.》하면서 즉석에서 선물하는것이였다. 내가 황송해하자 《네가 우리회사의 홍보에 큰 공헌을 했는데 그 만한 보답이야 못하겠니?》하면서 내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그후 나와 안해는 딸년이 동요콩쿠르에서 대상을 타는 모습을 TV에서 보면서 흥분되였다. 그날 우리는 대상으로 채색털레비죤을 받아안고 오는 딸년을 마중 나갔다. 석호가 보낸 차에 앉아오면서 딸년은 기뻐서 말했다.
《엄마, 아빠, 내가 상으로 탄 텔레비죤이 얼마나 큰지 알아? 영화화면만큼 돼.》
나는 속으로 기쁘기도 했지만 석호에게 자꾸만 은혜를 입는것 같아 불안하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 내 딸년보다 노래실력이 나은 애들이 서너명은 더 있었는데도 딸년이 대상을 받은것은 완전히 이번 동요콩쿠르를 후원한 석호의 덕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 엄마, 아빠 저기 석총재님의 사진이다!》
아이의 환성소리에 차창밖을 내다보니 광고판에 거폭의 석호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딸년은 석총재님이 친히 대상을 발급했다면서 뽐내듯 말했다. 나는 딸년의 손에서 영예증서를 받아쥐였다. 그 빨간 영예증서를 보노라니 석호가 모주석저작을 학습하던 지난 일들이 어제일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그 당시엔 모주석저작을 학습하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어른들뿐만아니라 학생들도 모주석저작을 열독하게 했다. 집집마다 모택동선집 1~4권까지 갖춰놓고있었고 어떤 집에는 매 사람 앞에 한질씩 돌아갔다. 그래서 누구나 간단한 모주석어록은 몇편씩 암송할수 있었고 로3편을 줄줄 내리 외우는 3살짜리 아이도 있었다. 나도 머리가 총명했던 모양인지 모주석어록을 40%정도는 줄줄 내리 외울수 있었다.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학습은 대충하게 하고 오후엔 붉은 가위를 씌운 모주석저작을 책가방에 넣고 와서 읽도록 했다. 사실 따분한 정치책을 골똘히 읽는 아이는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명남이나 나도 좀씩 읽다가는 싫증을 느끼군했다. 최선생님도 학생들이 저작학습을 하는 정황을 감시하고있었지만 학생들이 책에 집중하지 않아도 크게 나무람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석호가 매일 모주석저작을 열심히 탐독하는것이였다. 수업시간엔 책을 1분도 들여다볼 인내력이 없던 그가 매일 2~3시간씩 곁눈 한번 팔지 않고 골똘히 모주석저작을 탐독하는 일이 정말 놀라웠다. 붉은 보서에서 눈길 한번 떼지 않고 열심히 저작학습을 하는것을 보고 내가 이상해서 가만히 물었다.
《모주석저작이 그렇게 재미있니?》
《야, 임마, 누가 재미있어 읽니? 이건 정치학습이야. 모주석저작을 학습하고 두뇌가 명석해지자고 그래.》
그러면서도 내가 어느 페지를 읽는지 들여다보자고 하니까 제꺽 보던 책을 확 덮어버리는것이였다. 하여튼 재간은 재간이였다. 반년동안 그는 모주석저작을 1권부터 4권까지 얼마나 반복하여 읽었는지 모른다. 그가 이처럼 열심히 저작학습을 하는것을 보고 나뿐만아니라 다른 애들과 최선생님도 놀랐다. 최선생님은 전체학생들 앞에서 격동된 목소리로 석호를 칭찬했다.
《동무들, 석호동무는 뚫고 들어가는 뢰봉동지의 못정신을 발양하여 모주석저작을 고심하고도 참답게 그리고 열심히 학습하고있습니다. 우리 모두 석호동무를 따라 배웁시다!》
석호는 모주석저작학습적극분자로 선거되였다. 최선생님은 그에게 독후감을 쓰라는 임무를 주었다. 물론 매개 학생들에게 모두 독후감을 쓰라는 임무가 떨어졌지만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자》, 《혁명을 끝까지 진행하자》등의 교과서에 있는 내용에 국한해서였다. 하지만 석호에게는 1권부터 4권까지의 매개 문장을 학습한 체득을 쓰라고 했다. 그리고 먼저 1권을 학습한 독후감을 실제와 결부시켜 쓰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석호는 입을 딱 벌렸다.
그날 하교할 때 석호는 나를 불러 조용한 곳으로 끌고 갔다. 그는 울상을 한 얼굴로 말했다.
《야, 이거 큰일났다! 큰일났어!》
《왜 그래?》
《아까 선생님이 나더러 독후감을 써오라고 할 때 식은땀이 쫙 났어.》
《독후감을 써오라면 쓰면 되지. 왜?》
석호는 오만상을 찌푸린 얼굴로 근심에 쌓여 말했다.
《야, 너도 내가 말은 잘해도 글은 못쓰는걸 잘 알잖니? 네가 내 대신 써주렴.》
《니가 모주석저작을 1권부터 4권까지 통달했는데 뭘 막히는게 있겠니?》
《사실…난…난 모주석저작을 한페지도 읽지 않았어.》
《피-거짓말! 네가 모주석저작을 열심히 학습한건 선생님과 우리가 다 직접 목격하여 알고있는 사실인데 뭘.》
《그게 아니고 사실은…》
석호는 책가방에서 《모택동선집》 한권을 꺼내여 나한데 넘겨주며 말했다.
《너 이걸 펼쳐봐.》
그 책을 받아서 펼쳐본 나는 깜짝 놀랐다. 붉은 가위는 분명 《모택동선집》인데 안은 《수호전》이였다! 석호는 《수호전》책에 《모택동선집》의 붉은 가위를 씌워서 읽은것이였다.
《아니, 너…너…이거…반동이야!》
나는 오싹 소름이 끼쳤다. 이건 아주 엄중한 행위였다. 발견되면 반동이란 모자가 씌워지고 전교사생들 앞에서 비판대회를 열고 투쟁받게 되는것이다. 나의 귀에는 《반동분자 석호를 타도하자!》하는 구호소리가 들려오는듯 했다.
《쉿! 가만있어.》
《너, 발견되면 어쩌자고 그랬어?》
《그 재미도 없는 모주석저작을 2~3시간씩 읽을 생각을 하니 진저리가 났어. 그때 삼촌댁에서 가져온 〈수호전〉을 봤는데 정말 재미있더라. 그래서…》
《그렇다고 어찌…》
그 당시 《수호전》은 희귀한 책으로서 구하기가 힘들었다. 나도 그 책이 대단히 재미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때 처음 만져보았다.
《이제 날 구해줄 사람은 너밖에 없어. 독후감 써주렴. 부탁해. 그 대신 〈수호전〉을 빌려줄께.》
《정말?》
나는 정말 《수호전》을 읽고싶었다. 그래서 독후감을 써주는데 동의했다. 그후 석호는 매일마다 선생님과 동학들 앞에서 내가 써준 독후감을 읽었다. 그때마다 최선생님은 석호가 저작학습을 열심히 했을뿐만아니라 독후감도 잘 썼다고 칭찬했다. 최선생님은 곧 석호를 홍소병(소년선봉대)에 가입시켰다. 소문난 장난꾸러기 석호가 앞가슴에 붉은 넥타이를 매게 되리라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땐 반에서 아직 넥타이를 매지 못하고있는 애들이 절반이나 되는 때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석호는 얼마 안되여 전교의 모주석저작학습모범이 되였다. 학교에선 전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모두 학교마당에 집합시키고 모주석저작학습모범 석호의 사적보고를 듣게 했다. 학교 주석대에 오른 석호는 전교사생들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열심히 모주석저작을 학습했는가를 한바탕 열변을 토하며 이야기한후 또 격앙된 목소리로 내가 써준 독후감을 줄줄 내리읽었다.
《모주석저작을 학습하면 두뇌가 명석해져서 진짜 벗과 진짜 적을 식별할수 있습니다. 누가 우리의 벗인가? 전세계 압박 받고 착취 받는 무산자는 모두 우리의 벗입니다. 누가 우리의 적인가? 지주, 자본가, 제국주의, 일체반동파는 모두 우리의 적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벗과 단결하여 우리의 적과 싸워야 합니다!》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학생대표인 명남이가 구호를 웨쳤다.
《석호동무를 따라 배우자!》
그러면 전체 선생님과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따라 배우자!》하고 목청껏 따라 웨쳤다. 그날 석호는 전교사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모주석저작학습모범 상장을 받아 안고 너무도 기뻐서 싱글벙글 웃었다. 얼마후 석호는 현의 모범이 되여 전현 모주석저작학습모범표창대회에 참석하여 사적보고를 하게 되였다. 학교에선 줄을 서서 가슴에 붉은 꽃을 달고 돌아온 그를 박수로 환영했다. 석호는 또 체육위원이 되였고 3호학생까지 되였다. 3호학생 표준은 첫째로 품행이 좋아야 하고 둘째로 공부를 잘해야 하며 셋째로 체육운동을 잘해야 한다. 석호는 모주석저작학습모범이기에 첫째 조건은 단연히 합격이고 체육운동도 학급에서 따를 자가 없었기에 셋째 조건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두번째 조건이 문제였다. 원래 공부하기 싫어하고 학습성적이 낮은 석호가 아무리 날고 뛰여도 이 두번째 조건에 합격될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것은 사람이 하기에 달렸다. 최선생님은 석호를 내 곁에 앉게 했다. 그것은 또한 석호의 요구이기도 했다. 석호는 시험을 칠 때마다 내 답안을 보고 베꼈다. 최선생님은 그가 커닝을 한것을 눈치 챘지만 눈을 감아주었다. 덕분에 학습성적까지 우수를 맞은 석호는 무난하게 3호학생이 될수 있었다. 그가 모범이 된것도 3호학생이 된것도 모두 나의 공로였다. 석호도 이런 《은혜》를 잊지 않고 나를 잘 대해주었다. 신체가 허약했던 나는 늘 힘센 아이들에게 얻어맞지 않으면 놀림을 당하군했다. 하지만 석호가 나의 뒤심이 돼주면서부터 나를 깔보고 업신여기는 아이가 없었다.
공부를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던 당시는 수업시간보다 로동시간이 더 많았다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로동을 많이 시켰다. 학교 돼지 키우기, 겨울날 싸리나무 해오기, 방학기간 비료모으기, 학교밭에 거름내기, 생산대를 도와 모내기, 김매기, 가을하기, 제전만들기…나는 공부는 잘했지만 신체가 허약했던 탓으로 로동에선 언제나 점수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석호가 도와주었기에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고비를 넘길수 있었다. 싸리나무를 할 때면 나는 남의 절반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석호가 몇몇 힘센 아이들에게 한마디하면 그 애들이 자기가 베여온 싸리나무를 한줌씩 갈라서 나한테 주군했다. 싸리나무뿐만 아니라 다른 로동을 할 때도 석호는 힘센 아이들에게 나를 도와주도록 명령했다. 석호는 학급에서 힘이 최고였지만 로동을 할 때면 힘들이지 않고 꾀를 부리군했다. 비료모으기를 할 때면 슬그머니 남이 모은 비료를 도둑질해 왔고 김매기나 가을할 때면 자기는 앉아서 쉬면서 다른 힘센 애들을 자기 몫과 나의 몫까지 하게 했다. 그리고 눈치를 보면서 선생님이 보면 열심히 일하는척 했다. 그랬기에 그는 언제나 일을 잘한다는 선생님의 칭찬을 듣군 했다.
 
《아빠, 뭘해? 내리지 않고…》
딸년의 재촉에 추억에서 깨여난 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가 벌써 집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렸고 석호가 보낸 일군들이 딸년이 대상으로 탄 텔레비죤을 우리가 사는 아파트 6층으로 올려다주었다.
나는 석호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실화 《호랑이 같은 사나이》의 집필을 다그쳤다. 요즘 석호는 회사의 일로 분주히 뛰여다니느라 많이 초췌해져 있었다. 비밀이라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면서 석호는 회사의 경기가 좋지 못해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그렇게 잘 나가던 호랑이그룹이 불경기라니? 물론 국외에선 굴지의 그룹들이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있지만 눈앞의 석호의 회사의 불경기는 믿어지지 않았다. 석호는 내가 따라서 근심하자 《잠시겠지…》 하면서 되려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그가 이번의 난관을 꼭 뚫고 나가리라 믿었다. 그러면서 나는 짬만 있으면 집필을 다그쳤다.
어느날 저녁, 내가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동창생 명남이가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맡은 연구항목을 후원해달라고 석호를 찾아갔다가 거절당했다고 분하여 씩씩거렸다.
《학교 때 내가 자길 고발했다고 날 무시하는거지. 자식, 뭐가 잘났다고…》
나는 학교 때 명남이와 석호사이가 쥐와 고양이처럼 앙숙이였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석호가 그 때문에 손을 내미는 명남이를 거절한것이 아닐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석호가 돈을 좀 벌었다고 소문이 나자 친척친구, 동창생, 정부기관 관리 등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후원해달라고 손을 내밀었는데 석호가 아무리 부자라 하더라도 그들을 모두 만족시켜준다는것은 불가능했다. 더구나 요즘 회사의 경기가 좋지 못할 때 명남이를 도와줄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석호의 회사가 불경기란 비밀을 루설할수 없었기 때문에 《그게 아닐거야.》 하는 말밖에 할수 없었다. 하지만 명남이는 《그 녀석이 내 고발 때문에 입단을 못하던 일을 잊지 않고있을거야.》하면서 이를 갈았다. 분하여 씩씩거리면서 돌아가는 명남이의 뒤모습을 보자 나는 또 지난일들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소학교때 모주석저작학습모범이였던 석호는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반주임인 박선생님의 호감을 샀다. 그래서 그가 반장이 되고 명남이가 부반장, 내가 학습위원이 되였다. 잔꾀가 많은 석호는 중학교에 올라가자마자 날마다 아침 일찍 등교하여 교무청사의 복도와 계단을 반들반들 윤기나게 닦아놓고 다음에 또 교실청소를 깨끗이 해놓군 했다. 그리고 나무를 깎아 교편을 만들어오기도 하고 흑판에 먹칠을 까맣게 해놓기도 했다. 덕분에 그는 홍위병조직에 첫 사람으로 가입했다. 팔에 홍위병완장을 두른 그는 정말 위풍이 당당해보였다. 그는 중학교에서도 역시 내 옆에 앉아서 시험을 칠 때면 내 답안을 베끼군 했다. 그는 홍위병에 가입하는 그날 나보고 입단신청서를 써달라고 했다. 이튿날 등교하면서 나는 그의 이름으로 쓴 입단신청서를 넘겨주었고 그는 그것을 보고 다른 종이게 베껴써서 선생님께 바쳤다. 그런지 얼마되지 않아 선생님은 석호의 입단이 곧 비준된다고 했다. 모두가 부러워했고 석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우쭐거렸다. 그런데 그가 일을 치는 바람에 그만 그의 입단은 물거품이 되고말았다.
석호는 소학교때부터 담배를 피웠다. 선생님이 모르게 하교해서 가만가만 피웠기에 발견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오자 그는 대담하게도 호주머니에 담배를 넣고 다니면서 휴식시간이면 몇몇 애들과 함께 학교변소 아니면 뒤마당의 구석에 숨어서 가만가만 피워댔다. 그러다가 명남이한테 발각되였다. 석호한테 질투를 느꼈던 명남이는 석호가 담배를 피운 사실을 곧 선생님한테 고자질했다. 자기보다 공부를 못하고 장난꾸러기였던 석호가 반장이 되고 곧 입단까지 하게 된다니 질투가 나서 견딜수 없었던 모양이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속으로 석호를 질투하고있었다. 하지만 감히 고발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여튼 이때문에 석호는 선생님한테 불려가서 한바탕 꾸지람을 들었다. 여기서 가만히 있었다면 석호의 입단은 문제없었을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하고 가만있을 석호가 아니였다. 하교할 때 석호는 명남이를 구석진 곳에 끌고 가서 주먹과 발길로 사정없이 족쳐댔다. 늘씬하게 얻어맞은 명남이는 사흘동안이나 등교하지 못했다. 이 일때문에 석호는 전반 학생들 앞에서 비판받게 되였다.
석호가 입단하지 못한 대신 명남이와 내가 홍위병에 가입하고 또 이어서 입단까지 했다. 명남이와 내가 입단하는 날 석호는 분하여 씩씩거렸다.
《개새끼 두고보자!》
그는 명남이를 이를 갈며 미워했다. 그러나 벼르기만 할뿐 다시 때리지는 않았다.
 
나는 석호의 일대기를 써나가다가 자꾸만 난제에 부딪혔다. 어떤 일은 사실대로 쓸수가 없었던것이다. 모주석저작학습모범이 된 일도 그랬고 《대채전》을 만들 때의 일과 물에 빠진 나를 구할 때의 일도 그랬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반드시 삽일 되여야 할 재미있는 에피소드였다.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 석호의 《출세》길이 다시 열렸다. 학교에서는 《문을 열고 학교를 꾸리는》길을 따라 전교학생들을 충동원하여 《대채전》(제전)을 만들러 산골로 내몰았다. 우리는 이불짐을 등에 지고 청석골로 내려갔다. 학생들은 사원들의 집에 4~5명씩 나누어 들었다. 석호와 나 그리고 다른 2명의 애가 함께 생산대 대장의 집에 들었다. 이튿날엔 빈하중농의 쓰라린 과거사도 들었고 한줌도 못되는 몇몇 계급의 적들을 투쟁하는 대회에도 참석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로동열정을 높여주기 위한것이였다. 해방전, 헐벗고 굶주리던 빈고농들이 지주, 부농에게 압박 받고 착취 받던 눈물겨운 이야기는 우리의 눈물을 자아냈고 시시각각 복벽을 꿈꾸는 한줌도 못되는 계급의 적들의 하늘에 사무치는 죄행은 우리들의 격분을 돋궈주었다. 선생님은 전장에 나선 전사들처럼 우리에게 선서문을 써서 바치게 했다. 석호는 또 나에게 선서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넌 입단했기에 안 써도 괜찮아. 내걸 멋지게 써달라. 난 이번 기회에 꼭 입단하고야 말겠어.》
나는 그날 저녁 선서문을 써서 석호에게 주었고 석호는 그걸 베껴서 선생님한테 바쳤다. 이튿날 선생님은 석호가 선서문을 잘 썼다면서 학생들 앞에서 내가 써준 선서문을 랑독했다.
《…나는 빈하중들의 피눈물나는 과거사를 듣고 나니 오늘의 행복이 얼마나 어렵게 왔는가를 깨닫게 되였고 모주석께서 마련해주신 살기 좋은 사회주의세상에서 부러운것이 없이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한줌도 못되는 반동분자들의 죄행을 듣고 나니 계급투쟁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된다는것을 깨닫게 되였습니다. 모주석께서는 계급투쟁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교시하셨습니다. 한줌도 못되는 계급의 적들은 저들의 실패를 달가워하지 않고 어두운 구석에 숨어서 날마다 시퍼런 칼을 갈고있습니다. 하기에 우리는 시시각각 경각성을 높여 계급의 적들의 파괴활동을 막아야 합니다. 우리가 대체전을 만들러 여기로 온것도 사회주의를 더욱 잘 건설하기 위해서입니다. 동무들, 우리 모두 우공이 산을 옮긴 정신으로 앞사람이 쓰러지면 뒤사람이 이어가면서 결사적으로 가파른 산을 깎아 층층제전을 쌓아갑시다! 이는 우리의 기개와 혁명정신을 고험할수 있는 싸움터입니다. 나는 홍위병입니다. 더구나 입단신청서까지 써바친 몸입니다. 나는 이 싸움에서 앞장서 싸우겠습니다. 조직에서 나를 고험해주십시오. 나는 이 싸움터에서 쓰러지는 날이 있더라도 마지막 피 한방울 남을 때까지 싸우겠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의 투지를 고무하는 좋은 선서문이라고 석호를 칭찬하면서 결사적으로 싸우자고 구호를 높이 웨쳤다. 삽과 곡괭이를 들고 대채전만들기격전에 나선 우리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했다. 사처에 붉은 기발이 휘날리고 《농업에서 대채를 따라 배우자!》는 큼직한 글발이 한눈에 안겨온다. 모두가 부지런히 삽질하고 힘차게 곡괭이를 휘두른다. 우리는 가파른 산을 깎고 또 깎아 한층한층 제전을 쌓아갔다. 처음에는 성수나던것이 며칠이 지나자 허리가 시큰해나고 무릎마디가 쑤셔난다. 20여일이 지나니 약골인 나는 더 지탱할것 같지 않았다. 풀썩 주저앉고싶었다. 석호를 곁눈질해보니 그는 그래도 선생님의 눈치를 보면서 부지런히 삽질을 해댄다.
《자식, 입단하자고 정신없이 일해대는군!》
곁눈질하면서 삽질하던 나는 그만 삽으로 발등을 찔렀다.
《아…아…악!》
나의 비명소리에 선생님과 동학들이 달려왔다. 내 발등에선 피가 흐르고있었다. 적십자위생가방을 메고 달려온 학교위생원이 대충 지혈제를 발라주고 붕대로 상처를 감싸주었다. 나는 상처가 몹시 쑤셔나고 고통스러웠지만 이튿날부터 일하러 나가지 않아서 다행이였다. 석호랑 일하러 나갈 때 나는 주인집에 편안히 누워서 석호가 빌려준 《수호전》을 읽다가는 절뚝거리며 마을구경을 하군했다.
《이 자식, 팔자가 늘어지게 됐군!》
석호는 나를 몹시 부러워했다. 그러던것이 어느날 갑자기 일하러 나갔던 그는 중도에 애들에게 업혀서 돌아왔다.
《어찌된 일이냐?》
《너처럼 발등이 상했어!》
석호를 업고 온 경일이가 말했다. 경과는 이러했다. 열심히 곡괭이질 하던 석호는 갑자기 아앗! 하고 비명을 지르는 동시에 하늘땅이 핑글핑글 돌아가는듯 했다. 선생님과 동학들이 달려와보니 그의 발등에서 시뻘건 피가 흘러나왔다. 위생원의 처치가 끝나자 석호에게 호감을 갖고있는 박선생님이 관심조로 말했다.
《석호동무는 너무 무리했소. 돌아가 쉬오!》
《아니, 전 물러설수 없습니다. 마지막 피 한방울 남을 때까지 견지하겠다고 선서까지 했는데 어떻게…》
《석호동무, 신체는 혁명의 근본입니다. 우리가 동무의 몫까지 하겠으니 돌아가 휴식하오. 동무들, 석호동무는 상처를 입고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고상한 정신입니까? 우리 모두 석호동무의 정신을 따라배워 석호동무의 몫까지 해나갑시다!》
《석호동무의 몫까지 해나갑시다!》
모두들 따라 웨쳤다고 한다. 경일이랑 다시 일하러 나가고 둘만 남자 내가 물었다.
《아프니?》
《씨, 아파 죽겠다! 너처럼 편안한 팔자가 되자고 한 노릇이 쉽지 않다. 아이쿠!》
《나처럼 편안한 팔자가 되자고 그랬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씨, 일부러 곡괭이로 발등을 내리쳤다.》
《상한게 아니구 일부러?》
나는 깜짝 놀랐다. 일하기 싫어서 일부러 제 발등을 내리치다니?
《쉿,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석호는 내가 입이 무겁다는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부탁했다. 이보다 더 엄중한-《수호전》책에《모택동선집》의 붉은 가위를 씌워《모주석저작학습모범》으로 된- 사실도 내 입에서 새여나가지 않았던것이다. 아무튼 석호가 상하자 동무가 있어 좋았다. 우리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선생님도 푹 쉬라고 했다. 나는 상처가 아프고 하니까 집생각이 났다.
《아예 대채전이고 뭐고 그만두고 집으로 갈까?》
《야, 임마, 나도 집생각이 난다. 하지만 지금 한창 투항파 송강을 비판하는 이때에 물러선다면 혁명의 도피분자로 될꺼야. 넌 단원이란게 그만한 고생을 할 각오도 없니?》
《흥, 넌 각오가 높아서 저절로 상처를 냈니?》
《야, 누가 듣겠다. 난 입단소개인으로 널 찾았는데 네가 가면 난 어떻게 해? 난 꼭 이번 기회에 입단해야겠어.》
《네가 제1선에서 물러섰으니 여기서 벌써 점수가 깎였어.》
《글쎄 말이야. 지금 조직에서 날 고험하고있는데…씨! 어쩌면 좋아?》
우거지상이 되여 얼굴을 잔뜩 찌푸린 석호는 근심에 쌓여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두들 제1선에서 싸우고있는데 우리도 후근에서 무슨 일을 해놓아야 되지 않겠니?》
《여기서 무슨 할 일이 있니? 밥을 하겠니? 빨래를 하겠니?》
《내게 좋은 생각이 있다. 시를 쓰자!》
《시를?》
《너 글을 잘 쓰지 않니? 시한수 써달라. 제1선에서 싸우고있는 애들을 고무격려할수 있는 시를 말이다.》
석호는 당장 종이와 만년필을 가져다 내 앞에 놓았다. 나는 한창 머리를 짜며 궁리하다가 시랍시고 몇줄 썼다. 그것을 보던 석호가 다른 종이에 베끼더니 이튿날 아침에 선생님한테 바쳤다. 당장에서 쭉 훑어보던 박선생님은 연신《잘 썼소! 잘 썼소!》하고 칭찬하더니 식사하고있는 애들을 둘러보며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무들! 석호동무는 부상을 당하여 로동에 참가할수 없게 되자 전투적인 시를 써서 우리를 고무하고있습니다. 들어보십시오. 〈림표 공구 비판하니 삽날에 번개일고 대채정신 빛발치니 층층제전 높아가네…〉어떻습니까? 용기와 힘이 막 솟아나지 않습니까? 오늘엔 석호동무의 시를 읊으며 돌격전을 벌려봅시다!》
박선생님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애들은 집이 떠나갈듯 박수갈채를 보냈다.
열흘후 석호의 입단이 비준되였다. 석호는《대채전》에 꽂아놓은 단기아래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입단선서를 했다. 이 모든것은 석호가 잔꾀를 잘 부린 결과였지만 결국 나의 공로였다.
정말 석호의 잔꾀는 아무도 못 따른다. 졸업무렵이였다. 그때는 대학시험제도가 갓 회복되여서 대학에 붙을만한 학생이 학급에서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희망을 가지고 대학시험을 치렀다.
긴장하던 대학시험도 끝나자 석호와 나는 미역감으러 강변으로 나갔다. 시험을 잘 친 나는 이미 대학생이 된거나 다름없다고 자신하고있었다. 그러나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하는 석호는 졸업후의 장래를 근심하고있었다. 아빠엄마가 림시공이여서 다른 애들처럼 부모대신에 공장에 들어갈수도 없는 처지였다. 게다가 동생이 둘까지 있어 집이 몹시 가난했다. 그는 자기의 출로를 생각하며 자꾸만 머리를 굴렸다.
해란강은 어떤 곳은 무릎까지 올 정도로 물이 얕았지만 어떤 곳은 어른이 서서 두손을 쳐들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곳도 있었다. 수영을 잘 못하는 나는 물이 옅은 곳에서 놀았고 수영재주가 좋은 석호는 키넘는 깊은 곳에서 강을 건너갔다 건너왔다 하며 자유자재로 헤엄쳤다. 개구리헤엄도 치고 누운헤엄도 치며 재주를 부리던 석호가 나한테로 다가오며 정색해서 말했다.
《너 내 하라는대로 하겠니?》
《뭘?》
그는 내 귀에 뭐라고 소곤거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안돼! 그러다 내가 정말 죽기라도 하면…》
《그런 근심은 거둬라. 내 헤엄재주를 너도 알잖니?》
《그래도 그렇지.》
《겁쟁이같은게. 일없다는데!》
나는 겁이 덜컥 났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나더러 진짜처럼 허우적거리며 물밑에 가라앉았다 나왔다 하며 연극을 놀라고 부탁하고 강 저쪽으로 헤엄쳐 건너갔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류쪽 100여메터밖에 빨래하는 아낙네 몇이 있고 상류쪽 100여메터밖에 4~5명의 애들이 미역을 감고있을뿐 사방 100메터안엔 석호와 나 둘밖에 없었다. 두려웠지만 나는 석호를 믿고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겨우 개발헤엄밖에 몇보 칠줄 모르는 나는 물이 깊은 곳에 들어가자 저도 몰래 온몸이 떨리면서 허우적거렸다. 석호쪽을 보니 석호가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나는 일부러 두손을 허우적허우적하며 《사람 살려요!》 하고 고함쳤다. 그러나 석호가 오는 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순간 죽음의 공포가 밀려오며 맥이 단꺼번에 풀렸다. 나는 정말로 더 지탱할수 없었다. 가짜로 하자던 노릇이 정말로 물에 빠지고말았다. 나는 물밑에 가라앉았다가 겨우 솟아오르며 절망에 찬 비명을 질렀다.
《사…람 살…려…요!》
내가 몇번이나 물밑에 가라앉았다가 다시 나오며 허우적거려서야 석호가 다가왔다. 다는 구세주나 만난듯 다짜고짜로 석호한테 매달렸다. 그 바람에 석호도 함께 물밑에 가라앉았다. 석호는 다시 솟아오른후 나를 끌고 힘겹게 일보일보 전진하며 기슭으로 헤여나왔다. 그는 나를 안전하게 기슭에 떠민후 맥이 진했는지 그만 물살에 도로 밀려가고말았다. 나는 그의 머리가 물밑에 가라앉는것을 어렴풋이 보았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보니 나와 석호가 강기슭에 누워있었는데 숱한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고있었다. 누군가 석호를 인공호흡을 시키고있었다. 나는 별일이 없었으나 석호는 위급한 모양이였다. 사람들은 《안되겠어!》하면서 석호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나도 울면서 따라갔다. (석호, 저 자식이 가짜로 연극을 놀자더니 정말 죽는게 아냐?!) 나는 무서웠다. 그러나 병원의 구급실에 실려갈 때까지 죽은듯이 누워있던 석호는 의사가 몇번 배를 누르며 구급하자 곧 정신을 차리고 살아났다. 후에 안 일이지만 석호는 나를 구한후 사람들이 달려오는것을 보고 일부러 물살에 밀리는 척하며 물밑에 잠겨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고 사람들이 구해냈을 때는 일부러 죽은듯이 누워 있었다고 한다.
석호가 물에 빠진 나를 구하다가 목숨까지 잃을번 했다는 소식은 날개라도 돋친듯 삽시간에 펴졌다. 나의 어머니는 집닭이 낳은 닭알 한 광주리를 가지고 석호네 집에 찾아가서 내 생명을 구해준 석호에게 감사드렸다. 그리고 나는 석호의 요구에 따라 《생명의 은인》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써서 방송국과 신문사에 보냈다. 석호의 《영웅사적》이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면서 사회에 강렬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신문사와 방송국기자들이 학교에 찾아와서 석호와 나를 취재하면서 선생님과 우리반 애들 몇몇에게도 석호의 정황에 대해 몇마디씩 물어보았다. 석호가 소학교시절에《모주석저작학습모범》이였고 또 3호학생이며 공청단원이란 말을 듣고 기자들은 석호가 오늘날 생명의 위험까지 무릅쓰고 자기의 동무을 구할수 있은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영웅》의 화려한 과거를 렬거하면서 석호의 사적을 재차 크게 보도했다.
시에서는 석호에게 《모범공청단원》칭호를 수여했고 각 학교에서는 석호를 따라 배우는 활동을 기세 높게 일으켰다. 《영웅》이 되자 《출세》길도 활짝 트였다. 졸업하면서 그는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했고 교육국의 추천으로 백화공사에 들어가 선전간사로 있었다. 그러나 읽은 글이 짧아서 막히는 일이 많았다. 흑판보에 쓰는 짧은 한어문장도 쓰지 못해서 20리밖에 있는 삼촌댁에 자전거를 타고 가서 삼촌손을 빌려서 쓰군했다. 그때는 내가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던 때여서 나의 도움을 받을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동료들이나 이웃들에게 묻기도 창피하여 먼곳에 있는 삼촌을 찾아가군 했다. 그래도 그는 사상이 좋았기에 곧 공회주석으로 승급했다. 공회주석이 되여서도 막히는것이 많았지만 삼촌의 손을 빌기도 하고 신화자전을 찾기도 하며 겨우겨우 문서를 작성해나갔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에 들어갔을 때 석호는 《하해》한다고 사표를 쓰고 백화공사에서 나왔다. 그때만 해도 백화공사는 《철밥통》이였기에 모두들 그의 그런 거동을 반대했고 대학공부를 했다는 나마저도 리해하지 못했다. 그는 시장조사를 한다고 남방으로 들어갔다가 오더니 시가지 중심에 가게를 빌리고 싸구려 가전제품 판매를 시작했다. 그는 자질구레한 물건보다 주로 자전거나 텔레비전을 구입해다가 팔았다. 특히 남방에 연줄을 달아서 천연색텔레비전을 싼값으로 가져다가 고가로 팔아서 숱한 리윤을 보았다. 그는 졸부가 됐다. 나는 몇번이나 그를 찾아가 취재했다. 그의 사적을 신문에 냈을 뿐만아니라 실화로 써서 청년잡지에 발표했다. 나는 글에서 통이 크게 해내는 사나이라고 석호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런데 그는 더욱 통이 크게 해내려다가 결국 망하게 되였다. 그는 다른 사람의 돈까지 꿔다가 여러 곳에 분점을 세우고 천연색텔레비전을 대량으로 구입해들였다. 그런데 천연색텔레비전 시세가 갑자기 폭락하면서 그는 빚더미에 나앉고말았다.
그는 빚재촉을 피해 여기저기 다니다가 어느날,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그런데 그의 표정을 보니 전혀 빚돈 재촉에 시달린 사람같지 않았다. 오히려 내 쪽에서 근심하니까 그는 빙그레 웃으며 《그까짓 빚이 뭘 대단하다구 그래? 이제 내가 빚을 갚고 일어서는 걸 봐.》하고 내 어깨를 툭 쳤다.
그는 우리 집에 사흘을 묵은후 나갔는데 떠돌아다니면서 마른명태, 해삼 등 장사를 시작했다. 그의 청산류수같은 말재주 덕분인지 장사가 잘 돼서 1년후엔 빚을 다 갚고 3년 후엔 목돈을 손에 쥐게 되였다.
 
그렇게 석호는 일어섰다. 그는 다방, 노래방, 안마방을 꾸리며 치부의 길로 달렸다. 그의 덕분에 난생 처음으로 노래방이란 곳에 가서 노래를 불러보고 안마방이란 곳에 가서 안마를 받아보던 일들이 어제 일처럼 눈앞에 선하다. 나는 그의 치부사적을 써서 신문에 냈고 《청년》잡지에도 실화로 발표했다. TV방송국기자들도 그를 찾아와 취해했고 그 덕에 그는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됐다. 보도매체에서 춰주자 그의 장사는 점점 더 잘됐고 그는 호경기를 타고 경영범위와 규모를 넓혀 문화오락회사를 꾸렸다. 그는 저명한 청년기업가로 되였고 정부에서도 그의 회사를 중시하고 부추겨주었다. 모모한 지도자분들이 늘 그의 회사를 찾아와 고무해주는 장면이 늘 TV뉴스에 보도되였다.
그는 시장보다도 더 바쁜 인물이 되였다. 나마저도 그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분주히 뛰여다니다가 마침내 나를 불렀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패기가 넘쳐흘렀고 말마디마다 자신감과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지금 새항목을 내오고 회사규모를 대대적으로 확대했으니 회사도 그룹으로 바꿔야 하겠는데 너더러 그룹 이름을 좀 지어달라고 불렀어.》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내게 부탁해도 되겠니?》
한참 생각을 굴리던 나는 문뜩 떠오른 생각이 있어 말했다.
《좀 특수하면서도 순 우리말로 짓는게 어때? 례하면 〈호랑이그룹〉이라든지.》
《〈호랑이그룹〉이라…》
순간 석호의 얼굴엔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좋아! 호랑이는 동물의 왕이라 천하에 적수가 없지. 그리고 민족성도 있고. 그게 좋겠어. 치렬한 시장경제시대에 살아 남자면 호랑이처럼 강해야지! 하하하! 〈호랑이그룹〉!》
며칠후 《호랑이그룹》설립의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였다. 모모한 지도자분들과 사회각계인사들, 여러 신문, 잡지, TV방송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석호는 격동된 목소리로 그룹의 밝은 전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호랑이그룹〉은 이미 전국각지에 분회사를 세웠고 빠른 시일내에 한국, 일본, 미국에도 분회사를 세울 계획을 작성했습니다. 이제 제품이 대규모적으로 생산되면 판매는 문제없고 리윤은 천문학수자입니다.》
《야, 대단하다!》
회장엔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졌다. 보도매체에선 《호랑이그룹》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특히 내가 《호랑이그룹》에 대해 쓴 기사는 번마다 신문의 톱자리에 실렸다.
어느날, 석호가 나를 불렀다. 어딘가 피로하고 수심에 잠긴 모습이였다.
《너 몹시 지친 모습이구나. 회사의 일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휴식하면서 해야지.》
《일이 바쁜건 괜찮지만 한가지 근심이 있다.》
《회사가 잘 나가는데 뭐가 근심이야?》
《계획대로 하자니 자금이 많이 딸린다. 괜히 크게 벌렸나봐》
《너무 급히 서두른게 아니야? 급히 먹는 밥이 목이 멘다고…이제라도 회사규모를 축소해.》
《안돼. 여기까지 와서 후퇴할수 없어! 끝까지 밀고 나가야지!》
《그래 방법은 생각했니? 은행대부금은?》
《은행대부금을 바란다는것은 꿈이야. 아무래도 사회에서 모금해야 하겠어. 높은 리자를 걸고 모금하는거야.》
《그래 놓고 갚을수 있는거니?》
《너 〈호랑이그룹〉의 실력을 몰라서 그러니? 〈호랑이그룹〉이라면 모두 믿을거야. 네가 신문에 기사 좀 내라. 〈호랑이그룹〉에서 미국과 합자해서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는데 자금은 량측에서 절반씩 투자하기로 했다고. 그런데 자금이 좀 딸린다는 사정도 먹히게 좀 써달라.》
나는 돌아가자마자 《세계로 향해 달리는 〈호랑이그룹〉》이라는 기사를 써서 신문 톱자리에 실었다. 우리 신문사는 《호랑이그룹》의 후원을 많이 받고있기에 《호랑이그룹》의 기사라면 언제나 톱자리를 할애해주었다. 《호랑이그룹》의 후원을 받아온것도 내고 《호랑이그룹》의 영구성 광고를 받아온것도 나이기에 신문사지도부에서는 나를 황제처럼 떠받들었다. 나는 재빨리 고급기자로, 총편판공실주임으로 되였다.
《호랑이그룹》은 내가 쓴 기사가 나가자마자 모금활동을 벌렸는데 온사회가 떠들썩하게 반향이 컸다. 기업, 단체, 개인 모두가 높은 리자에 현혹되여 저금통장을 털어가지고 벌떼처럼 《호랑이그룹》으로 달려갔다. 어떤 사람은 반신반의하면서《이렇게 목돈을 내놓았다가 떼이지 않을가?》했고 그러면 옆에서 《아니, 이 사람, 〈호랑이그룹〉을 못 믿겠나? 석총재님이 어떤 분이신데. 그리고 신문사가 거짓말하겠나?》하면서 안심시켰다. 우리 집사람도 어느새 저금통장을 몽땅 털어서 《호랑이그룹》에 가져갔다. 이렇게 《호랑이그룹》의 자금은 해결되였고 《호랑이그룹》은 눈덩이 굴리듯 점점 커져서 굴지의 사영기업으로 발전했다. 석호의 이름은 점점 더 유명해졌고 그의 덕에 나는 에세이집을 5권이나 세상에 내놓을수 있었다. 나는 태산같은 그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그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실화 《호랑이 같은 사나이》의 집필을 다그쳤다. 그러는 가운데 그와 세번이나 만났는데 그는 회사의 경기가 좋지 못하다는 비밀도 터놓았다. 그는 회사청사의 24층 옥상에 올라서 도시를 바라보기를 즐겼다. 내가 그의 회사에 찾아갈 때마다 그는 늘 옥상에 혼자 서있었다. 그날도 옥상에서 나를 만난 그는 내가 따라서 근심하자 《잠시겠지…》하더니 다음에 만났을 땐 어두운 얼굴로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게 아니였는데…》하고 중얼거렸다. 그는 세번이나 《그게 아니였는데…》를 반복해서 중얼거리다가 나를 돌아보며 《내가 이 옥상에서 뛰여내린다면 어떻게 될가?》했다. 그 말에 가슴이 섬뜩해난 내가 《아니, 너 미쳤니? 무슨 할 생각이 없어 그런 생각을 다해?》하고 쏘아보자 그는 씩 웃으며 《롱담이야》했다. 그리고 나를 보고 정색해서 《너도 우리 회사에 돈을 빌려준게 있겠지? 소문내지 말고 어서 찾아가.》했다. 내가 《그렇게 엄중해?》하자 그는 《내 말대로 해》했다. 나는 더 묻지 않았지만 불안한 예감이 자꾸만 가슴에 덮쳤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어디서 비밀이 새여 나왔는지 《호랑이그룹》이 망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나와 석호의 관계를 아는 사람들은 나한테서 소문의 진가를 알려고 탐문했다. 나는 《나도 석총재님을 만나본지 오래돼서 잘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내가 외자로 취재를 나왔는데 석호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더러 자신의 회사에 와달라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 생겼을가? 회사경기가 좋지 않다더니 부도가 날 셈인가? 아니, 그럴수 없을거야. 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석호가 누군데 부도가 나겠어. 그런 일은 절대 없을거야. 나뿐만아니라 석호를 알고있는 모든 사람들이 믿지 않을것이였다. 그러나 만약에…만약에 그의 그룹이 망한다면 지진이 일어난듯 그 진동은 엄청날것이였다. 그의 회사에 거금을 밀어넣은 그 숱한 사람들의 아우성이 들리는듯 했다.
나는 취재를 부랴부랴 끝내고 급급히 택시를 불러 탔다.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그를 찾아을 때 그는 회사청사의 옥상의 바깥쪽에 목석처럼 서있었고 그의 뒤에선 예닐곱살 된 녀자아이가 혼자서 끈을 맨 고무풍선을 손에 들고 뛰여다니고있었다. 언젠가 내가 보았던 이 회사직원의 아이였다.
《석호야!》
나는 우리 둘만 있을 때는 《석총재님》이라 하지 않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다시 한번 큰 소리로 불러서야 그는 천천히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는 몹시 초췌해 있었다. 언제나 혈색이 좋던 그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고 어글어글하던 눈엔 정기가 없었다. 그는 다가오는 나를 보며 물었다.
《나의 전기는 마무리 돼가니?》
《응, 거의 다 썼는데 결말을 아직…》
《결말은 비참하다. 더 쓰지 말라. 그리고 쓴걸 다 지워버려!》
《아니, 언제나 락관적이던 네가 왜 그렇게 비관실망하니?》
《망했다! 이젠 완전히 망했다! 〈호랑이그룹〉은 망했다!》
석호는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쳤다.
《이제 난 이 세상을 볼 낯이 없다! 나는 무고한 사람들을 망하게 한 죄인이다! 내 회사에 거금을 밀어넣고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석호, 진정해라, 무슨 방법이 있을거야!》
《방법? 이제 방법은 없어! 아무런 방법도 없어! 방법이 있다면 죄인인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거야!》
절망에 차 참회하는 그를 보자 가슴이 몹시 아팠다. 그가 정말 마음을 잘못 먹을가봐 덜컥 겁이 났다.
《석호, 진정해라! 방법은 꼭 있을거야!》
《흐흐흐! 내가 일떠세운 회사청사의 24층 옥상에서 뛰여내리는것, 이것이 최후의 선택이야! 이것이 이 석호의 마땅한 끝장이야!》
《아니, 안돼!》
나는 그의 투신자살을 막으려고 달려가 그들 붙잡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힘을 당할수가 없었다. 그는 나를 콱 밀어 던졌다.
《내 자식을 부탁한다! 그리고 안녕히! 나는 간다!》
그 순간 나는 고무풍선이 옥상끝으로 날아가는것을 보았다. 고무풍선을 가지고 놀다가 끈을 놓쳐버린 녀자아이가 옥상끝으로 달려가다가 엎어지는것을 보았다. 하지만 석호는 녀자아이 쪽은 보지도 못하고 옥상끝에서 아래로 몸을 던지고있었다.
《앗, 안돼!》
하지만 늦었다. 석호는 벌써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녀자아이가 위험했다. 나는 쏜살같이 달려가 옥상끝에서 아슬아슬하게 엎어져 울고있는 녀자아이를 안고 옥상 중간으로 돌아왔다. 악몽을 꾸는것 같았다. 석호가 이렇게 가다니?
녀자아이의 울음에 다시 정신을 차린 나는 석호의 비참한 최후를 만회할 한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라 녀자아이를 보고 말했다.
《너도 보았지? 방금 옥상에서 떨어진 아저씨를? 저 아저씨가 너를 구하려다가 떨어진거다. 알겠니?》
아이는 머리를 끄덕였고 엄마가 찾아오자 석총재님이 자기를 구하려다가 옥상에서 떨어졌다고 말했다. TV방송국기자들이 왔을 때 아이 엄마는 석총재님이 아니면 자신의 아이가 죽을번 했다면서 《석총재님!》하면서 대성통곡했다. 그날 밤으로 석호의 영웅사적이 TV뉴스에 보도되였고 잇달아 내가 쓴 《어린 생명을 구하다가 목숨을 바친 〈호랑이그룹〉석총재》라는 기사가 이튿날 신문 톱기사로 나갔다.
얼마후 정부에선 석호에게 영웅칭호를 주었고 그의 회사가 망한 내막도 비밀도 덮어두었다. 그리고 내가 쓴 석호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실화 《호랑이 같은 사나이》도 해빛을 보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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