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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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학교
2019년 05월 15일 09시 52분  조회:1080  추천:0  작성자: 한영철
 세무학교
 
      세무계통에는 성세무학교 졸업생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다. 어찌 보면 세무계통의 황포군관학교 같은 곳이다. 큰령도 자리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층세무소에 근무하는 사람도 있다. 허나 공통한 점은 모두 세무학교교문을 나왔다는것이다. 입학 할 때는 여러지역의 서로 다른 학교를 졸업하고 입학했지만 졸업할때는 모두 가슴에 «중국세무»라는 네글자를 달고 졸업했다. 그리고 세무간부로 되였고 평생세금과 씨름하게 되였다.

 
     세무학교와 우리 학교는 그리 멀지 않았다. 두학교 사이에는 고향친구요 동창이요 하면서 거래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하긴 장춘에는 어느 학교에 가나 조선족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니 휴식일이면 친구들끼리 여기 저기 놀려 잘 다니였다. 그 덕분에 장춘에 자리 잡은 많은 학교를 가 보았고 장춘지리에 대하여 잘 알게 되였다. 만나면 친구요 술 한잔 하기가 십상이였다. 어찌어찌하여 한번은 한반급 친구와 같이 세무학교를 가게 되였다. 친구가 있다고 했다. 그날 숙소에서 술을 마시였는데 내 주량 가지고는 근본 헴에도 없었다. 가장 센  교하에서 온 친구는38도 짜리 한병을 하고도 꿈쩍하지 않았다.

 
      성세무학교는 1987년도에 첫기 학생을 모집하였다. 학교는 2년제 중등전문학교 였는데 졸업하면 성내 각지역의 새무국에 안배하여 주었다. 금년은 첫기 학생들이  졸업한지 꼭 30년이 되는 해이다.  그때 고중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세무학교에 입학하여 왔는데 지금은 어느덧 모두50세를 넘긴 장년이 되였다. 그들은 실로 우리성 각급 세무기관에서 중견역을 담당해온 공신들이다. 지금도 당시 세무학교 교정이 머리에 떠오른다. 건물이라고 해야 교실겸 숙사로 쓰이는 이층건물 한동과 보이라방이 전부였다. 허나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오늘 전성부문공작회의 참가차로 세무학교로 오게 되였다. 모든것이 변했다. 대문부터 변했다. 동쪽을 마주했전  원래 대문은 인쇄공장문으로 변했고 지금 학교대문은 북쪽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모든 건물은 새로 건축한 것이였다. 30년전의 흔적은 찿아 볼래야 볼수도 없다. 원래 숙사 건물이며 식당도 다 철거되고 대신 새건물이 들어섰다.

 
      세무공작하면서 딱 두번 세무학교에 와 본적이 있다. 한번은1992년도 였는데 당시 까지만 하여도 국가세무국과 지방세무국이 분리되지 않은 시절이였다. 전성 업무골간 학습반에 참가하게 되였다. 주요하게 공업회계와 소득세결산에 관한 학습반이였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젊은 축들이 성학습반에 뽑혀 온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 자호감이 들기도 하였다.  또 한번은1994년 가을이라고 생각된다. 국가세무국과 지방세무국이 갈라져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조직한 전성토지증가세 (土地增值税)학습반이였다. 그때 전성 지방세무계통의 업무골간들을 모아놓고 새 세종에 관한 정책을 학습하게 되였다.  그때 까지만하여도 당년에 짓은 학생숙사와 식당건물이 있었다.

 
 
 
    아침에 학교근처를 나가보니 화평대가(和平大街)만 알아 보겠다.  근처에는 금강공원이라고 잘 꾸려진 공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 섰고 큰 길들이 쭉쭉 빠져 있다. 더 희한한것은 학교앞까지 지하철2호선이 들어선 것이다. 당년에는 장춘의 변두리쯤이였는데 지금은 북경으로 말할라치면 3환정도쯤 되는 같다.
 

 
    지금 청도에서 사업하는 친구 동천이 다니던 상업전과학교도 이 동네다. 어제 가보았는데 문을 닫은것 같았다. 대문에는 상업학원이라는 글이 보였는데 타일이 다 떨어져 나가고 볼품없었다. 과거에는 여기도 곧 잘 다니던 학교였다.  숙사옥상에 올라가 기타를 치고 노래도 부른 적도 있었다.
 

 
      다음으로 우리의 아지트같은 작은 음식점이 저기 지금 금강공원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동천이는 친구들이 오면 곧잘 거기로 안내했다. 돈도 없는 가난뱅이 대학생들이 손님 접대한다고 식당에 안배하는 판이였다. 친구들 보내 놓고는 밥먹을 돈이 없어서 또 돈 빌리려 다녀야 했다.

 
       나도 돈이 없으면 다른 학교에가서 얻어 먹기도 했다. 한번은 길림대학가서 얻어 먹고 놀고하다 돌아 오게 되였다. 밤이라 친구들은 자고가라고 난리다. 술도 마시였는지라 나는 기어이 고집하고 학교로 온다 했다. 헌데 전철을 타려니 돈이 없다. 하여 동지거리(同志街)에서 홍기거리(红旗街) 록교(绿园)까지 걸어 올수 밖에 없었다. 그때 마침 장춘에서 총을 잃어버려 찿는다고 야단 할 때 였다. 캄캄한 밤에 철길따라 걷노라니 어디서 총을 든 괴한이 나오는 것 같아 무섭기도 하였다.

 
    장춘은 이런곳이다. 사업상 관계로 다른 곳 들은 자주 다니녔지만 세무학교 근처는 다닌 일이 적다. 세월도 흘렀다. 우리의 기백과 리상과 도전이 공존했던 동네 장춘 그리고 세무학교는정다운 곳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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