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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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재봉침
2021년 07월 08일 08시 46분  조회:982  추천:0  작성자: 한영철
  어머니의 재봉침
 
 
   옛날에는 집에 재봉침 자전거 라지오 벽시계가 있으면 생활이 괜찮은 집으로 여기였다. 70년대 초에 우리가 살던 마을에서 한공에   70전좌우 했으니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허리휘도록 일해도 일년농사 수입이라고 해봐야 100원이 되나 마나 했다.  그러니가정기물을 갓춘다는건 너무도  힘든 일이 였다.
 
   우리 집에는 내가 태여나기 전에 재봉침이 있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발로 디딛는 재봉침이 였는데 어머니가 사용하기 불편하여 한마을에 사는 여느집과 손재봉침과 바꾸었다고 한다. 나는 성장하는 과정에 쭉 어머님이 손재봉침을 다루는것을 보아 왔다. 우리집 재봉침은  상해에서 생산한 비인표로서 아주 좋은 제품이였다.
 
   손재봉침은 덮개와 재봉틀로 나뉘는데 평소에는 덮개로 덮어 놓겠금 되여 있었다. 그리고 사용할때는 보통 재봉틀을 덮개위에 올려 놓는다. 어머님는 이재봉틀로 얼마나 많은 옷가지들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어머니가 재봉일을 하게된 주요 원인은 6명이나 되는 가족성원들의 복장을 손수 해결하기 위하여 서였다. 지금은 기성복이 너무 많아 오히려 돈 있는 사람들은 맞춤복을 선호한다만은 그때 세월에 기성복은 수입이 적은 집으로 말하면 사입기 힘들었다. 어머니는 한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복장을 손수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려서 기성복이라는걸 별로 입어 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재봉기술이 좋았다. 짬짬의 시간을 리용하여 재봉침으로  우리의 옷을 만들었고 또 해진  옷가지들도 기웠다. 특히 당시 복장들은 면직으로 된것이 많았는데 얼마 입지않아도 해 지기 일수 였다. 그리고 자식들은 키가 커가던 시절이라 바지는 얼마 안되여 가랭이를 잇어야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손길을 거치면 낡은 옷가지나 바지도 금새 보기좋은 옷과 바지로 탈바꿈 했다.
 
   어릴때 나는 어머니 따라 장에 자주 다니였다. 장에가서 팔것이라고 해야 집에서 자란 채소와 살구 같은 것이 고작이 였다. 장을 보고 나면 어머니는 당시 아래 개방지에 위치한 소영공사합작사 같은 곳에 들리여 천을 끊었다. 내가 처음으로 입은 비날론으로 짓은 바지는 소학교5학년때 어머니가 손수 재봉하여 만든것이 였다. 그런데 처음으로 입고 학교에 간날 그만 무릅에 구멍을 내고 말았다.
 
   그때는 아침에 학교에 등교하면 학급에 운동장애서 뛰여다니며 놀이 하였다. 우리 학교는 민족학교였는데 내가 한족애들과 장난치다가 번저져 새 바지를  땅바닥에 긁어 구멍낸것이다. 너무 분통하여 다짜고짜로 싸움이 붙었는데 두아이는 서로 엎치고 덮치고 하며 땅바닥에서  뒹굴었다. 결과적으로 분풀이는 했지만 바지를 판낸것은 기성 사실로 되고 말았다. 정심에 집에 돌아와 울럭거리며 어머니 한테 이야기 했더니 괜찮다며 어깨를 도닥여 주었다.
 
   내가 아까워 하는것을 알고 어머니는 인츰 바지 수선을 하였다. 안쪽에 천을 덫대고 손으로 기웠는데 찬찬히 보지않고서는 흠집을 발견할수 없었다.
 
   촌에는 재봉침을 빌려 쓰는 사람도 가끔 있었다. 비록 아끼는 재봉침이였지만 인품이 좋은 어머니는 기꺼히 동네분들이 집에와서 쓰도록 허락하였다. 그러다 보니 우리집에 와서 재봉에 대해 담론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어머니는 년세가 들면서 눈이 어두워 지기 시작하였다. 재봉실이 끊어지면 바늘에 실꿰기 힘들어 하였다. 그러면 내가 얼른 실을 꿰여 드리였는데 그러면 그토록 즐거워 하였다.
 
   어머니는 보통 일찍이 일어 났다.   일찍 일어나서 실광주리를 앞에 놓고 뭘 깁는다던가 가위로 천을 재단하기도 하였다. 어머니 한테 재봉침은 보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우리집으로 말하면 큰 기물이였다. 재봉침이 있으므로 하여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가 손수지은 의복을 입을수 있었다.
 
     어머니는 생전에 너무 많이 고생하여 60세를 일기로  일찍 돌아 갔다. 주인을 잃은 재봉침은 한동안 우리 집 웃방에 덩그라니 방치되여 있었다. 후일 누님이 어머니가 쓰던 재봉침을 가져다 다시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지금 가정에서 굳이 재봉할 필요가 적어지게 되였다. 누님도 이젠 재봉침을 쓰지 않는다.
 
    얼마전에 매부를 만난 자리에서 지금도 그 재봉침이 있는가고 물으니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너무도 기뻣다. 어머니가 애용했던 재봉침이 아직도 있다니 마치 갑자기 어머니의 사랑의 손길이 느끼여 지는듯 했다.
 
   이제 내가 재봉침을 마반산에 가져다 잘 보관하고 또 오래도록 간주할것이다.
 
울 어머니 재봉침
어머니의 손길에 닿아
반들반들 해진 손잡이
매번 새옷을 만들며
그토록 좋아하던 어머니
울집에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 주던
아. 울 엄마 재봉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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