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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건 / 고 한춘
2016년 11월 12일 03시 05분  조회:3128  추천:0  작성자: 죽림

비의와 생명의 비전
―도옥 김영건 시집《아침산이 나에게로 와서 안부를 묻다》를 읽고


 

한 춘(문학평론가, 시인)




머리말


도옥 김영건시인의 시집《아침산이 나에게로 와서 안부를 묻다》는 시인의 시적발견과 충동의 렌즈를 투과하면서 변형, 굴절, 해체의 과정을 거친 제재들로서 존재의 오의(奧意)를 함축하고 생명의 비전을 제시하는 작품이 주선을 이루고있다. 그에게 있어서 요긴한것은 이러한 작품의 주제를 생신한 언어문체의 혁신으로 이루었다는 이 점이다.

시는 시인의 체험을 고스란히 진술, 전달하는것이 아니다. 시인과 독자 사이에 시적언어라는 매개물이 있다. 이 매개물은 의미전달의 구조가 아니다. 의미형성을 위한 언어구조다. “시는 예술이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를 인정한다면 시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려 하거나 전달받으려고 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는 우리의 삶을 새롭게 말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삶을 체험하게 하는 언어예술이다. 김영건의 시를 읽으면서 이와 같은 생각을 했다.

존재의 비의(秘意)

김영건시인의 시는 그 상상력의 구조로 볼 때 존재와 부재, 자아와 대상의 동일성의 획득과 상실에서 출발하고있음을 보아낼수 있다. 먼저 “서시” 첫머리에 “숲의 언어는 말이 없다/ 모두가 움직이지만 움직이는것 하나 없다”라고 읊고있다. 부재의 실상을 그린 시인은 그러나 여기서 시상을 돌린다. “우리의 길이 거기에 있다/ 길로 내리면 고운 마을도 보이리라/ 새와 벌레와 별과 구름과 그리고 여기 나인/ 당신이 풀가지 하나에 기대고 서있다”라고 부재속의 존재를 길어올린다. 부재와 존재는 원래 량극의 불협화음이다. 이 량극이 충돌되고 마찰되고 모순되는 속에 시인의 자아와 대상의 동일성이 형성된다. 시인은 그러나 이 동일성속에서 불확실성을 깨닫게 되고 불확실성은 획득과 상실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시인은 마침내 “우리들이 부르는 무상의 노래가/ 거기에 바람으로 머물다/ 사라지다”라는 무거운 종결어를 쪼아내고있다.

시인의 시론적립각점을 보여준 첫 시 “락(樂)”은 산, 황토마을이라는 넓은 공간에 호랑이, 까치새, 로인, 발가숭이 아이와 같은 생명의 존재를 삽입시켜 “천년의 왕자”, “전설의 나무그늘”이라는 시간적이미지를 통해 력사의 음영과 현실의 실상을 단조하고있다. 김영건시인이 보여준 력사의 음영과 존재의 일상은 어떻게 전개되고있는가? “갈대의 이야기”에서는 “물오리의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비여간 세월을 읽어주고”, “하얗게 바람을 부릅니다”로 번져나갔고 “살구나무”에서는 “옛날의 고향 빈집”, “상처만큼 굴곡 이룬 살구나무”, “멀리 괴성으로 뼈골들이 앉아있는 곳”, “허물어진 뒤골방”, “온몸에 흰 붕대를 두른/ 얼굴 없는 시간”으로 고착되여 무의 세계, 죽음의 세계를 떠올리고 “빈 가족”에서는 “가족마을에는 색이 없다”, “인제는 까매 기다리던 사람도 없다”, “까치새의 둥우리만 댕그러니 앉아있다”라는 절망의 현실을 눈앞에 떠올린다.

시인은 그러나 부재의 절망에서 안주한것이 아니라 깊고 묵직한 력사의식을 그려낸 “하나야”에서 자기 연소와 극복의 몸부림을 보여주는것으로 역동적인 생명존재의 힘을 떠올리고있다.

손금안으로 강물이 흘러넘친다
하늘이 내려와 구름 딛고 넘실거렸다
바람이 오색의 꽃들을 불러내여 화려한 웃음을 피워낸다
세상이 너의 손에 꼭 차서 춤춘다
……
화사한 잎사귀만 활짝 피여난것이 아니다
하나야, 고운 가슴안에 내 웃음도 덩실 피여있다

딴딴한 긍정어로 부재의 세상(잎사귀만 피여내다)속에 꽉 차넘치는 현실적존재의 충일성을 노래하는것으로 화자의 웃음이 화사하게 피여난다. 부재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극복할수 있는 힘은 바로 시인의 맘속에 포근한 휴머니즘정신이 자리하고있기때문이며 따라서 시인의 그 휴머니즘은 랭철하고 명석한 자성이 밑거름으로 되여있기때문이다.

책표제를 시제목으로 쓴《아침산이 나에게로 와서 안부를 묻다》는 “사십 성상 많이도 헤매며 꿈쪼각들 뿌렸었다. 행복을 분바르고 헤맨 길 그끝이 여긴줄 그때는 정말 몰랐었다”라고 행복을 분바르고 헤맨 사십 성상을 자성하는 목소리에 진정이 담겨있다. 이러한 자성이 있기때문에 “아픈 상처의 잎사귀 따라 마침내는 곱고 환한 붉은 열매를 가지 휘게 흔들어”주게 되는것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따라 강물에 목을 씻고 굴러오는 새소리가 고맙다”는 불확실한 세상을 살며 길어올린 사랑의 마음이 있다. 이 자성은 “행복”에 이르러 “욕망과 두려움에서 깨여나/ 깨달음과 자각으로 우리 마주볼 때/ 행복은 내안에서 웃어주었다”라는 전개를 통해 개인적인 범위를 벗어난 자성으로 승화한다. 자아와 타자의 조화에서 “행복”을 만끽할수 있었기에 산문시형식으로 짜여진 “자전거 탄 풍경”, “이 아침은 참으로 상쾌합니다”, “내 지금 그때로 돌아가 살수 있다면” 등 여러 작품에서 너무도 풋풋한 휴머니즘과 만나보게 된다.

생명 비전에 대한 구축

개구리가 련꽃잎우에서
첨벙! 물속에 뛰여드네
천지를 깨우는 찬란한 목소리
(시 “뜰” 마지막 련)

개구리가 물속에 뛰여드는것은 너무도 일상적인 사물현상이다. 시인은 그러나 여기서 생명의 힘찬 박동을 체험했다. 그것이 단순한 개구리의 일상이 아니라 여기에 바로 생명 본능이 가져다주는 천리―그것이 바로 천지를 깨우는 목소리다. “첨벙”이라는 의성어에 감탄부까지 곁들어 강조된 운동감이 주는 충격은 이로써 시적긴장력을 충전하게 되며 이 시적긴장력이 이끌어주는 궤도를 따라 가다보면 자연히 “천지를 깨우는 찬란한 목소리”라는 엄청나게 거창한 지적판단에 이르게 된다.

한일자로 하늘 세우고
바다에 올라서 하늘 
차올리는 저 팔뚝사나이
바다를 찍어내리는 
저 발길에
천년의 고어(古魚)가 
꼬리를 치며 노을빛벼랑 타고

오천년의 근육질
파도의 팔에 쩌렁 쩌르렁 
쇠소리를 내며
놋쇠무궁화 한송이가 
툭! 한울 한 봉우리 붉게
터뜨린다. 한일자로
하늘 세운 저 팔뚝사나이야!
(시 “바다사나이” 전문)

힘있는 웅성의 초인적생명이 번쩍이는 작품이다. 서정시 전통의 아어주의(雅語主義)를 벗어난 시어에 생명의 힘이 실려있다. 작품 저변에 민족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받쳐준 이 작품이 전통적서정성의 유연한 목소리에 식상한 우리 독자들의 귀를 먹먹하게 울려줄수 있는것은 무엇때문일가? 그것은 바로 힘의 충격, 에너지의 충일, 생명의 약동이 넘쳐흐르기때문이다. 김영건시인의 시에서 보여준 성적인 힘을 보여주는 생명의 비전은 그 한 사람의 진정하고 개별적인 사회체험의 결실이라고 하겠지만 이것은 영원의 통시적인것과 닿는것이기에 또한 만인의 체험에 접근할수 있는것이다.

이와 같은 힘의 표현, 남성적인 초인정신은 “고구려벽화”에서 “불새 한마리가 대천으로 솟구쳤다”라는 충천의 기개를 보여준다. 그리고 바다를 소제로 한 일련의 시, 그 중에서도 “호랑이 하산”, “바다의 연분”, “야자나무숲에서”, “그리움(2)” 등에서 더 거창하게 넘쳐흐르고있다.

호랑이 가죽으로
산맥들이 푸들친다
호랑이 다리사이로
광풍이 불어치고있다
불을 켠 호랑이가
지금 산을 내리고있다
(시 “호랑이 하산” 마지막 련)

조기천의 “백두산”의 서시를 련상시키는 약동하는 생명의 률동이 쿵쿵― 가슴을 친다.

바람이 지친 파도의 돌담우에 나비가 잠시 내려앉았다
그 날개의 눈부신 그늘아래 바다의 젊음도 매달려있다
저 바다 멀리 섬록암에서 쿵쿵!
두개 반려암이 손잡은 소리가 시원히 들려와 좋다!
(시 “바다의 연분” 마지막 부분)

젊은 바다란 이미지 혹은 그 항아리에 담아올린 푸덕이는 생명의 충동앞에서 정신적인 자유를 지닌 격정적인 행동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공간의 속박에서 해방된 “날개의 눈부신 그늘”에 “매달린 젊음”이야말로 초인적인 자아의식의 충분한 현현이라고 할수 있다.

그때 심해에는 몰려오는
돌고래 집단반란이 있었다
부두로 돌아가는 하늘길 끊고
갈매기들의 집단추락이 있었다
하늘을 찢는 붉은 손수건
젊고 푸른 또는 붉은 바다눈물이 있었다
(시 “야자나무숲에서” 중간련 )

환각과 환영으로 엮은 세가지 부동한 이미지의 조합(“돌고래의 반란”, “갈매기의 추락”, “하늘 찢는 손수건”)이 하나의 대단한 견고체를 형성하여 “반란—추락”, “꽃수건—바다눈물”이라는 이률배반적인 고조우에 생명의 힘이라는 로고스적사유의 세계를 제시하고있다. 이와 같이 자유를 만끽하고 본능을 표현하려는 생명의 충동은 “그리움(2)”에서 돈호형은유를 통해 격정을 불러일으킨다.

삭지 않은 향기로운 뭇별들이 님의 젖가슴을 넘어 
태초의 문을 여는 소리
륙지의 끝에 나붓기는 검고 도고한 오오, 님의 기발이여
얼굴 없는 님의 천년을 넘어온 바람
구속에 견고한 사슬소리여 부수는 바다의 태동이여
모든 경계를 지우고 파도의 하얀 입술로 뿜겨져오르는
륙지의 마지막 밤 님의 찬란한 침묵이여

“경계를 지우는 파도의 하얀 입술을 밟고 님은 까맣게 내려섰어요”라고 서두를 뗀 이 작품은 마지막 부분에서 또 “모든 경계를 지우고”라고 중복하고있다. 이는 자유의 혼이 “견고한 구속의 쇠사슬”을 박차고 아무런 구애 없이 천애지각을 비상하는 파도의 양상이다. 어딘가 모르게 본능에 끌려가는 생명충동 그대로이다. 이 점은 제목이나 작중에 등장하는 님이나 그리고 “환락의 에덴동산” 등 이미지가 잘 암시해주고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감명 깊은것은 바다의 형상을 빌어 자유에 대한 갈말의 사상을 상징하고있으며 “님”을 통하여 생명약동을 전개한것이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기개를 다시한번 감지하게 된다. 가령 바다는 그 자체가 언제나 출렁이며 넘실대며 파도를 끌어 기슭을 때리는, 안정을 모르는 언제나 운동으로 넘치는 진실이 있어 바다에 자유의 갈망과 생명의 충동을 실어 항행하는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착각일수 있다. 시인이 바다에 부여한 이미지의 상징은 생명, 자유, 해방만이 아니기때문이다(단 이 점은 이 단문에서 전개할바가 아니여서 략한다).

김영건시인은 평정을 모르는 약동하는 바다에 대비하여 실질적으로 형체도 없고 말도 없고 행동도 없는 산그늘을 소재로 한 련작시에서도 생명박동의 굵은 가락을 읊조리고있다. “산그늘(1)” 첫시작에 “산그늘이 기침을 하며 부채질한다”를 서두로부터 활유법을 활용하여 산그늘에 생명을 부여하고 산그늘과 일체가 된다. 그리고 “산그늘(2)”에서는 산그늘에 “푸른색”, “붉은색”, “생명이 있다”, “우리 모두가 앉아있음”을 아는가 라는 반문을 통해 산그늘과 인간을 하나로 융합시켜놓는다. 여기까지 이른 다음 “산그늘 (3)”에 이르러 일련의 반문을 총알처럼 쏘아낸다.

산그늘에 앉아있던 바위는 하도
가슴이 답답한지 되게 기침 한번 한다, 그대는
내가 무엇인지 아는가 춤추고 노래하는 나를 보았는가
내안의 구름의 자유와 바다의 노래를 들었는가
내안의 옹골샘과 생명의 뿌리들을 만져보았는가
왜 오늘도 침묵하는지, 그
무늬 한점 읽었는가

이어 27개의 반문을 제기한다. 반문의 구체내용이 중요한것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반문법이란 형식론적 장치를 통해 답장은 하나도 없지만 또 모든것을 다 대답했다는 이 점에 맞추어볼 때 “춤추고 노래하는 나”, “내안의 구름의 자유와 바람의 노래”, “내안의 옹골샘과 생명의 뿌리”라는 생명의식을 “산그늘”에 기대여 전개했다는 이 자체가 너무도 돋보인다. 산그늘에 생명을 심어준 이 자체가 역설적이라는데 시적긴장감을 유발시킨것이다. “산그늘(5)”에서도 뒤산이 “사람이 보고싶어 산그늘로 마을에 내려왔다”라든가 “산그늘도 소매안에서/ 노을을 꺼내 마을에 풀어놓는다” 그리고 “산그늘(6)”에서 “산은 오늘도 산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늘로 덮어준다”, “산그늘은 먼저 저 산에 내려앉아/ 오는 그들을 기다린다” 등 이미지로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구가하고있으며 자연과 인간이 일체가 되여 생명의 찬가를 부르고있다. 이것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자연이 정신적고향으로 인지하여온것과 갈라놓을수 없다. 자연은 사람을 속이지 않고 괴롭히지 않고 사람을 편안하게 안아주는 존재이기때문에 자연과 인간은 다같이 생명으로 충만되여있다.
생명약동의 찬가에서 “하늘매의 사랑”은 대표적작품이라고 말할수 있다. “사계의 눈바람에 온몸을 떨며 항시 도고히 솟으려는 꿈 하나만으로 긴긴 어둠을 견뎌내고 폭풍의 세계에 날개를 키우며 하늘에 홀로 길을 꿈꾸는 슬픈 령혼”은 “하늘매” 생명 그 자체이다. 하늘매에게 무한대한 사랑이 있기때문에 그의 생명은 강대한것이며 그의 생명이 강대한것이기에 “태여난 보람과 그리고 나붓기는 생명의 모든것은 아름답다 흐르는 모든것은 맑고 순수하고 찬란하다” 그리고 “솟는 모든것은 푸르고 벅찬 감동의 치솟음”이며 “금잔화 피여나는 무덤가에도 비상하는 꾀꼬리가 노래하고” “죽은자의 혼은 다시 태여나 놀빛저녁하늘 쏘”는 존재의 리유를 전개하고있다. 매는 “매서운 발톱으로 천년의 침묵을 움켜쥐고 골짜기를 짜개는 이 시대의 아픈 눈물의 강을 굽어보며 님 오르실 길을 열어갈”수 있는것이다. 이와 같은 거대한 “하늘매”의 사랑이 있기에 작중화자는 강대한 힘의 생명의 화신인 “하늘매”에게 “님만은 해살이 내리는 곳으로 맑음이 춤추는 곳으로 따뜻함이 넘치는 곳으로 비둘기 나래와 꽃의 속삭임과 풀잎의 푸른 손에 끌려가세요”라고 축복의 메시지를 보내준다. 생명찬가는 이상에서 례로 든 작품을 제외하고도 “어떤 만남”, “사랑의 숲”, “침묵하는 산을 함부로 손가락질하지 마라”, “개안의 문”, “모자산에서”, “바다의 파문” 등 많은 작품에서 기본 주선을 이루고있다.

방법론적실험과 그 확대

김영건시인의 적지 않은 시편들은 표상의 내용이 낯설고 표상의 내용이 낯설기때문에 그에 따른 문체도 낯설수 밖에 없다. 여기에 방법론적실험의식 즉 문체의식에 대한 자각이 요청된다. 김영건시인의 문체의식은 주로 부재와 존재라는 2원적인 언어구조의 실험에서 두드러지게 보여진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거니와 시의 언어는 의미전달의 언어구조가 아니라 의미형성의 언어구조로 짜여져있다. 즉 언어가 실체에 대한 개념파악정도의 의미를 부여하는 단순한 존재적기능이 아니라 바람직한 정서획득을 목표로 하는 언어행위이며 실체인것이다. 이로써 개념적언어의 기호가 아닌 언어의 해방이 요청되고 일상의 언어에 가려진 내면적조합이 요청된다. 문체란 작품 자체가 가지고있는 세부의 기능이다. 작품을 하나의 자률적건축물로 볼 때에만 문체가 드러내는 작품의 형식론적개성이 해명된다. 문체는 작품에 특별한 세계를 지각하는 화자의 태도가 내재한다. 말하자면 문체란 결국 세계를 바라보는 특별한 태도라고 하겠다.

김영건시인의 많은 작품이 독자의 호기심을 끌게 되는것은 역설법에 따른 문체의 실험정신일것이다. 역설은 겉보기 다르게 그 바닥에 진실이 시인되는 경우로써 발견과 충격이 개입하고 상상력의 작용이 곁들여진다. “빈자리”는 첫 발단부터 마지막 종결까지 역설로 엮어진 작품이다.

해살은 내려앉아도 비여있다
어둠조차 길을 감추어도 투명하다
나무가지가 바람을 답새겨도 흔적이 없다
물은 골짜기를 채워도 천지가 들어있다
바위속에 해살로 들어가 보아도 화산의 열정과 이끼의 
작은 사랑과 간밤 별자리가 돋아있다
세상 모든 자리는 비여서 우주가 출렁인다

하나의 주제를 둘러싸고 직조되여있는 역설적인 언어 조합을 통해 화자가 전달하려고 하는 의미를 우리는 추적하여 낼수 있다. 없는것이 있는것이요, 비여있는것이 차넘친다는 서로 모순되는 량극의 통일이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即是空, 空即是色)”과 통한것이라는 실존적인 변증법적과정을 거쳐 삶의 허무감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나타내는 시적미학의 승화이다. 이것은 부정을 통해 긍정에 이르고 다시 부정함으로써 극복과 초월의 보다 큰 긍정에 도달한다. 역설은 먼저 의혹을 던져놓고 그것의 정반대의 상태 즉 수긍으로 돌변하게 만들어주는 힘을 간직한다. 화자가 일곱가지 역설을 푼 목적은 마지막 한구절에 귀착된다. “세상 모든 자리가 비여서 우주가 출렁인다”는 역설에서 “모든 자리가 비였다”는 정상적실존형태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시적형태는 독자들에게 의혹을 던져준다. 사물의 본질이 존재라 할 때 비여있다는것은 존재의 부정이라는 말이며 존재가 부재하기때문에 새로운 존재를 구축할수 있는 가능성이 있게 된다. 이때 우리는 먼저 정신적긴장을 맛보게 되며 이것이 해소되면서 즐거움을 획득하게 된다. 원유질서를 해체하여야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수 있다는 말로도 통한다. 여기서 시의 역설적인 방법론은 단순한 시적의미전달의 장치가 아니라 의미형성의 장치로 설정되여있다.

(1) 어둠을 부정했던 빛은 어둠에 의하여 더 빛났고/ 봉황은 잃은 능금알 자리에서 자기 이름을 부를수 있었다  (시 “물극필반”중에서) (2) 살아있는 이 도시의 죽은 눈물들에(“자전거 탄 풍경”중) (3) 유감은 산이 서있어도 간다는 사실이다 흐르면서도 한발자국 못 떠나는 강이다(“유감”중에서) (4) 바위안에 강물이 있다, 바위안에 마을이 있다, 바위안에 노래가 있다, 바위안에 전설이 있다(“바위의 전설”중에서) (5) 향기 없는 절벽의 웃음, 동공 없는 녀인의 침묵의 미소(“그리움(3)”중에서)

쉽게 골라낸 역설적시 구절이다. (1)은 부정의 부정을 통한 긍정이며 (2)는 존재와 부재의 변증법적통일이며 (3)은 존재의 부정을 통한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이요 (4)는 환유법을 통해 원유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였고 (5)는 차이성보다는 류사성에 따른 정서적역설이다.

기타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형식론적역설법은 이처럼 여러 양상을 보이면서 시인의 끈질긴 문체실험의식을 보여준다. 이것은 김영건시인에게 있어서 역설법은 바로 그의 변증법적안목의 내용을 표현한 동시에 그의 시가 현대적자각우에서 출발하고있다는것을 설명해준다. 김영건시인의 형식론적문체실험의식의 확대와 심화는 여기서 끝나는것이 아니다.

소녀시절 땅이 뿜어올린
열애이다, 신이 보내온 호흡이다
하늘이 떨어뜨린
입술이다, 별이 흘린 피방울이다
내가 돌아가누울
님의 절창이다, 내 아기
다시 태여날
하늘하늘 꽃자리
(시 “꽃” 전문)

단순한 병치법을 그대로 옮긴것이 아니라 특별분행법에 따라 리듬과 운률과 률동을 잘 살린 이 작품은 꽃이 열애, 호흡, 입술, 피방울, 절창, 꽃자리라는 은유법을 능란하게 활용하면서 화자가 꽃에 심어준 이미지를 화려하게 살려냈다. 이를 이미지의 병치법이라 하기보다는 이미지의 매트릭스(矩阵)법이라고 하는것이 더 합당할것 같다. 원 작품의 배렬을 고쳐놓으면 아래와 같다.

땅이 뿜어올린 열애이다
신이 보내온 호흡이다
하늘이 떨어뜨린 입술이다
별이 흘린 피방울이다
내가 돌아가누울 님의 절창이다
내 아기 다시 태여날
하늘하늘 꽃자리

수학에서의 매트릭스양식이다. 매트릭스양식은 수자를 규칙에 맞추어 헐어놓은 수자조각의 배렬이다. 이 양식적특점을 빌어 매트릭스문체를 파편체라고 할수 있다. 작품 “꽃”은 그 어떤 깊은 의미를 전달한것이 아니라 바로 꽃이라는 이 존재의 상황을 전달할뿐이며 이러한 화자의 상황체험을 작품에 옮겼을뿐이다. 이것이 또한 이미지시의 특점이라고 하겠다. 은유에 기대여 직조된 이미지 그 자체를 통해 많은 자유련상을 불러일으키고 이런 과정에 한차례의 미적감수를 경유한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보겠다.

숲에 길이 나있다 길에 새가 있다
새에 하늘이 열려있다 하늘에 구름이 있다
구름에 숲이 젖어있다
흰옷을 입은 바람은 숲의 이곳저곳 번지며
숲의 심장맥박을 짚어보고있다
(시 “숲”의 전반부)

숲→길→새→하늘→구름→숲→바람 이렇게 한층한층 파헤친 다음 바람이 숲의 건강을 진단한다는 중심에 이른다. 여기서 시적공간을 숲에서 출발하여 직선 상승하여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구름을 따라 숲으로 하강하는 포물선을 그린다. 건강진단결과 숲이 건강하다는 시적판단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우주만물이 동질성을 갖고있는 조화의 세계가 우주의 본질이라는 외연을 강조한것을 길어올릴수 있어 시적긴장에서 해방될수 있다. 20여년전 어느 한 시문학강좌에서 이와 비슷한 점층법에 관한 시를 소개받은 기억이 있다. 지구에 프랑스가 있다. 프랑스에 빠리가 있다. 빠리에 공원이 있다. 공원에 의자가 있다. 의자에 두 남녀가 있다는 내용인데 강의하는 선생은 그 두 남녀의 사랑이 우주만물의 본성과 동질성을 갖고있다고 시적의미를 설명해주었다. 시의 작자는 누군지 생각나지 않지만 하여튼 이 시가 큰 원으로부터 점점 축소되여 나중에 하나의 점에 이르는 점층법을 썼다면 김영건시인은 마치 태극의 도안마냥 닫혀있는것이 아니라 열려있는 상태인 포물선의 상태를 그려낸 점진법을 썼다. 다음으로 지적하고싶은것은 김영건시인에게 있어서 색채의 활용은 시인이 시적내핵을 구성하는 중요한 형식론적장치의 하나로 되여있다는 이 점이다. “가야금녀인”을 례를 들어보자.

빨간 원피스아래 하얀 종아리
유리잔안에 흑장미 가슴 붉다

초록숲 흰 비둘기
청청하늘에 치솟다

생(生)바다 재빛날개들
한꺼번에 끼루룩! 솟구치다

노을빛바다 하얗게 깨여지고
검은 돌고래무리 륙지로 몰려오다

하얀 다리물결 폭포되여
내 가슴안에 쏟아져내리다

빨간 원피스, 하얀 종아리, 초록숲, 흰 비둘기, 재빛날개, 노을빛바다, 하얗게 깨지고, 검은 돌고래, 하얀 다리물결 등 9개의 색상으로 현란한 무늬를 짜고있다. 첫련은 “가야금녀인”의 정물초상화를 그려낸다. 이어 두번째 련과 세번째 련에서 선률에 따른 움직이는 률동이 동감을 심어 “녀인”과 “가야금연주”의 효능을 구축한 다음 네번째 련에서 “하얀 물결 폭포” 되여 “쏟아져내린다”는 이미지를 통해 바다를 뒤번지는 거대한 변천과 만나게 되고 이로써 마침내 마지막 련에서 타자와 자아의 합일을 이루게 된다. 이 모든것은 색상의 변화와 조합이란 의미형성구조를 통해 이루어진다. 9개 색상중 흰색이 4개로서 다양한 색상의 중심색상으로 군림한다. 이는 가야금녀인의 청소함, 순백함, 정결함을 강조하는 시적효과를 발휘하고있다.

“계(界)의 령토”는 16행 시에 색상 14개와 색상 있는 사물 2개를 동원하여 시행마다 색갈로 시적분위기를 살려준다. 까만, 하얀, 붉은, 푸른, 노오란, 은빛 및 어둠과 오골계라는 눈부신 채색의 향연은 검은것과 하얀것, 붉은것과 푸른것, 노란것과 은빛, 어둠과 오골계 등 상반되는 색상과 상사한 색상을 조합하여 경계의 확정과 이로써 가져오는 “평화”와 조화의 세계를 펼쳐준다.

“나무그리기”에서 까만 나무, 파란 나무, 검은 해, 붉은 점, 푸른 반달, 재빛배경, 토색세월, 류황색뿌리, 청솔, 붉은 바위 등 색상과 사물의 폭력적인 조합은 전통적인 시적언어조합률을 해체하면서 하나의 독특한 풍경을 떠올리고있으며 이로써 작중화자가 념두에 둔 “검은 나무”라는 중심이미지의 존재적실상을 하나의 풍경화로 완성시킨다. 이밖에 “초록빛무늬”, “오로라”, “나무우에 마을”, “붉은 입술”, “초행가이드”, “나비의 평안” “사람과 새”, “산동네” 등 작품에서 다양한 색채의 조합을 통해 이미지를 펼치는 시적묘미를 보아낼수 있다.

맺는말

도옥 김영건시인의 새 시집《아침산이 나에게로 와서 안부를 묻다》를 읽으면서 존재와 력사와 현실을 인식하는 시인의 관점을 초보적으로 파악할수 있었다.

첫째, 김영건시인은 언어표상의 공통련관성을 파괴하는 표현주의, 형식주의, 초현실주의 등 여러 서방류파의 형식론적기교와 수법을 수용하고 접수하고 이에 근거하여 의식적인 창작실천을 시도하고있다.

둘째, 그는 모든 존재와 력사현상 그리고 현실을 창조적, 목적적 투영체로 인식하지 않고 현상적직감체로 인식하고있다. 그리하여 사물에 대한 직감적판단을 중시하는 현상학적 시의 방법이 시도된다.

셋째, 김시인은 존재와 부재 사이를 왕래하는 인간실존의 량면성을 정직하게 시인하고 인간의 존재를 우주의 존재와 동일시하면서 인간의 부끄러운 실상과 민족의 아픔실상을 묘파하는데 중시를 돌리고있다.

넷째, 시인 주체의 태도는 인생의 무상함을 깨달으면서 우주와 동일성을 찾는 과정에 범민족적휴머니즘을 고양하는 립장을 소지하기에 힘쓰고있다.

요컨대 그의 많은 시들은 감각적서정주의나 일반적회화적인 이미지의 제시에 머무는 모더니즘시의식에 도전적이다. 존재의 오묘한 의의와 생명의 건강한 약동과 자연과의 합일성을 추구하는 기록은 전통적인 서정시의 정감전달이라는 모식을 깨뜨리면서 형이상학적지성을 조명해내는 그의 시안은 앞으로 그의 시가 그려나갈 새로운 그라프가 지성적으로, 다의적으로, 립체적이며 현란한 색채조형으로 발전해가고있지 않을가 하는 예감을 가지게 된다. 


2008.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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