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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엽* 종리화
2013년 05월 02일 06시 38분  조회:1807  추천:0  작성자: 동녘해
단편소설
 
황금엽(金叶)
 
종리화
 
 
1
 
선근이는 확실히 눈썰미가 좋았다. 그는 진작 엽아와 소만이의 일솜씨를 보아냈다.
엽아는 녀자지만 그가 살고있는 묘령에서는 손가락에 꼽힐만한 일군이였다. 엽아는 푼더분하게 생겼다. 얼굴이며 손이며 발이며 지어는 가슴, 엉뎅이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풍만하다”는 낱말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엽아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또 풍만하다고만 할수 없었다. 엽아는 몸뚱이가 크지만 피부가 탱탱하고 튼실했으며 행동도 여간 날파람이 있는것이 아니였다. 묘령사람들의 눈높이로 볼 때 녀자가 그 정도라면 더 이상 바랄것이 없었다. 남자들은 누구나 신부감으로 엽아와 같은 녀자를 점 찍을것이였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밭일이나 가무일이나 그리고 아이 낳이까지 막론하고 어느 한가지도 빠지는데가 없을것이니 말이다. 선근이는 몇년전부터 벌써 엽아의 일솜씨를 맘에 두고있었다.
그날 엽아는 해볕 좋은 마당에 앉아 열심히 담배를 장대에 걸었다. 이 일은 담배를 건조실에 넣기전의 환절이였는데 높은 기술이 필요한것이 아니였지만 나름대로 솜씨는 있어야 했다. 담배를 건조하여 꺼냈을 때 색갈이 좋은가 나쁜가? 한 장대에 걸려 있는 담배배렬이 성긴가 빽빽한가? 지어는 담배 수량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것도 모두 일군의 솜씨에 따라 달라졌다. 한 농촌녀자의 능력을 가늠하는 범위나 표준은 그렇게 까다롭지 않은것 같았지만 내속을 따져보면 섬세한 부분들이 많았다. 엽아는 그러한 범위나 표준에서 어느 누구와 비해도 출중했고 속도도 빨랐다. 어스레한 달빛아래에 앉아 잽싸게 일하는 엽아의 솜씨는 손에 익을대로 익은 일종 악기를 다루는듯했다. 따분하고 지어는 어지러운 일이지만 엽아의 얼굴에는 그 어떤 향수를 누리는듯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엽아는 왼손으로 줄을 단단히 잡아쥐고 오른손으로 담배를 두잎씩 주어서는 장대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붙인후 손목에 힘을 주어 쓱- 당겼다. 줄이 당겨지는 소리가 싹- 하고 나면 담배는 예쁜 꽃처럼 정연하게 장대에 묶어졌다. 그 동작들은 엽아의 손끝에서 흥겨운 가락처럼 절주있게 흘러나왔다. 담배를 다 매달아놓은 장대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지경이였다. 장대기사이에 꽃처럼 묶여진 담배는 마치 솜씨 좋은 재봉공의 손끝에서 완성된 일매진 바늘뜸 같았다. 엽아의 일솜씨를 한참이나 구경하던 선근이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엽아의 솜씨는 마치 수놓이를 하는것 같아요.
 
선근이는 소만이의 완력에 탄복하고있었다. 소만이는 말수가 적었지만 힘만은 무진장했다. 소만이는 마을에서 도시로  돈벌이를 가지 않은 몇이 안되는 청장년들중의 한 사람이였다. 묘령의 남자들중에서 소만이처럼 늘 집구석에 박혀있는 사람이 점점 적어졌다. 겨울에 집으로 돌아와 몸보신을 한 남자들은 보통 정월 대보름을 쇠고는 이부자리를 둘러메고 묘령 동산의 그 오솔길을 따라 산아래의 공로에 내려서서 각자가 목적한바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작은 묘령마을이지만 로무송출에서만은 다른 마을의 앞장에 섰다.  
사실 소만이도 로무송출에 나섰던 경력이 있었다. 하지만 웬 일인지 후에는 누가 죽인다고 해도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 소만이는 한 건축공지에서 일년간 일했지만 로임을 일전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도시의 건달들에게 한바탕 얻어맞고 병원에 입원까지 했었다. 그 일을 두고 묘령사람들은 한바탕 입방아들을 찧었지만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도 똑똑히 알지 못했다. 소만이가 그 일을 말하기 꺼려 했기에 누구도 감히 구체적으로 물을수 없었다.
묘령은 시골치고 꽤 큰 부락이였지만 인가는 여기저기에 분산되여있었다. 산골짜기에는 딱히 모서리라고 할만한 곳이 없어 두리뭉실 구릉이라고 하는것이 나을상싶었다.
선근이네 집과 엽아네 집은 두 산사이의 작은 평지에 자리잡고있었다. 그곳은 2, 30 가구가 살고있는 마을의 중심이라고 할수 있었다. 소만이네 집은 마을서쪽 산마루 뒤켠의 한 골짜기에 자리잡고있었다.     
엽아와 소만이는 선근이네 황연(黄烟)기지에서 삯일을 하고있었다. 황연은 묘령사람들에게 명줄이나 다름이 없었다. 마을주변의 토양은 황연을 재배하기에 아주 적합했다. 하기에 묘령사람들은 누구나 황연재배에 대하여 손금보듯 잘 알고있었다. 황연재배에서의 관건은 담배종자를 잘 선정하는것이였다. 그것은 기초중의 기초였다. 만약 담배종자를 제대로 선정하지 못하면 담배는 키만 크고 헛꽃만 피여 나중에 담배잎이 버들잎처럼 되였다. 황연의 성장기는 아주 짧기에 절대 게으름을 부리지 말고 부지런히 밭에 가서 어린애를 돌보듯 잘 돌봐야 했다. 이를테면 김을 매주거나 가지를 쳐주는것과 같은 일이였다. 더욱 중요한것은 담배에 해충이 생기지 않는가를 제때에 보아내야 하는것이였다. 건조해낸 담배는 색갈이 좋아도 작은 반점이라도 있으면 제 값을 받을수 없었다. 그것은 미녀의 얼굴에 몇개의 얽은 자국이 있는것과 마찬가지였다. 담배를 따서 건조시키는 과정은 기술이 필요했다. 어느때 불을 작게 하고 어느때 불을 세게 하는가를 잘 알아야 했다. 불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아무리 파아랗고 야드드한 담배도 색이 바래지게 되여 아무짝에도 쓸모 없게 되였다. 색갈이 좋은 담배를 만들어낸후에도  머리가 아픈 일은 어떻게 제 값을 받고 파는가 하는것이였다. 묘령사람들은 황연수매소의 사업일군들은 모두 오기가 충천하고 자태가 하늘을 찌르며 이마나 얼굴에 기름이 줄줄 흐르는듯이 보였다. 그들은 황연더미에 손을 넣어 그렇게도 쉽게 쑥- 뽑아내서 몇번 훑어보고는 값을 매겼다. 황연주인들은 수매소 일군들과 상론할 여지마저 없었다. 수매소 일군들이 매긴 가격이 황연주인들이 상상하던 가격과 큰 차이가 있어도 뒤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있기에 어쩔수 없었다. 만약 팔지 않는다면 별수 없이 담배를 메고 다시 령을 톺아야 했다. 하기에 묘령사람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황연수매소의 질량검사원이라고 생각했다.
황연을 수매하는데 얽히고 설킨 갈래들을 잘 알고있는 묘령사람들의 황연에 대한 감정은 사랑스럽거나 요염한 녀인을 대할 때와 같이 복잡했다. 그들은 황연을 잘 만들어 용돈을 벌려 하면서도 그 돈을 손에 쥐기까지의 여러가지 장애때문에  일종의 공포 같은것을 느끼고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많은 사람들이 황연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하지 않고 산을 넘어 도시로 들어갔다. 묘령사람들은 산너머 도시에는 곳곳에 돈이 널려있어서 손만 뻗으면 그 돈을 주을수 있다고 생각했다. 젊은이들은 남자든 녀자든 도시로 나가려고 했다. 작은 능력이라도 있거나 힘개라도 쓰는 사람이면 누구도 머리 한번 돌리지 않고 산을 넘어갔다.
남자들은 대부분 건축공지에서 일했다. 진종일 뜨거운 해볕아래에서 일하는 그들의 몸은 타서 거무튀튀해졌고 여기저기에 근육들이 불뚝불뚝 튀여나왔다. 
녀자들은 대부분 식당에서 접시를 씻거나 거리에서 삼륜차를 몰고 다니며 과일을 팔거나 페품을 주었다. 어떤이들은 묘령에서 만든 전병을 팔기도 했다. 하지만 몇몇 잔머리를 잘 굴리고 일처리에서 요사한 녀자애들은 머리방이나 나이트클럽 등에 들어가기도 했다. 묘령사람들은 처음에 그런 곳에 들어가는 녀자애들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머리방이나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녀자애들은 묘령으로 돌아올 때 옷차림이 깔끔해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묘령사람들도 그들의 눈부신 옷차림뒤에 숨은 비밀들을 알게 되였고 막무가내라는듯 순진한 애들을 버리게 되였다고 한숨을 내쉬였다. 사실 그런 녀자애들도 묘령이라는 시골에 대하여 그렇다 할 미련을 가지고있는것은 아니였다. 묘령에서 황연을 재배하는 사람은 나중에 선근이 한 사람뿐이였다.
선근이도 사실 산을 넘어볼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선근이는 가고싶어도 선뜻이 떠날수 없는 신분이였다, 그는 마을의 당지부서기였다. 선근이는 자기가 어떻게 몇 임기나 촌의 당지부서기를 련임해왔는지 알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선근이가 탁월한 지도자능력이 있는것도 아니였다. 묘령같은 산골에서 지부서기는 바로 닭갈비와 같은 존재였다. 묘령의 인구는 해마다 적어졌다. 일년에 한번씩 음력설을 쇨 때나 마을은 흥성흥성할뿐이였다. 평소 마을은 쥐죽은듯 조용해서 아무런 생기도 찾아볼수 없었다. 지어는 닭이며 게사니며 돼지며 개 등 가축들마저 대가리를 축 늘어뜨리고있어 온 마을 분위기가 괴괴했다. 선근이는 지부서기라고 하지만 사실 그저 마을에 남아있는 평범한 나그네에 지나지 않았다. 마을에는 대부분 로인이나 어린이 그리고 도시에 들어갈수 없는 몇몇 녀자들뿐이여서 선근이는 평소 얼굴을  맞대고  술잔을 기울일 친구마저 없었다.
어느 한번, 선근이는 진에 회의를 갔었는데 그 걸음에 진장네 집에 들어가서 돌아가지 않겠다고 주정을 부린 일까지 있었다. 그날 선근이는 진장을 보고 이렇게 애걸했다.
―제발 나더러 지부서긴지 무엇인지 하는 빌어먹을 일을 시키지 말아주시우. 우리 마을에서 내가 제일 생활이 구차하구 초라하게 산단말이우. 바깥사람들은 자가용승용차까지 굴리지만 우리 묘령사람들은 지어 뜨락또르마저 굴리지 못하니…
진장은 선근이를 보며 시무룩이 웃음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선근이, 자네가 우리 집에 엉뎅이를 들이밀 때부터 나는 무엇을 쏠것이라는것을 알았다네. 나더러 돈을 내라는거지? 고려해볼수 있네. 하지만 자네, 그 돈을 제 곳에 써야 하네. 그래, 그 돈으로 먼저 길을 닦읍세.
며칠후 선근이는 과연 진정부로부터 빈곤부축자금을 조달 받았고 그 돈으로 먼저 길을 닦았다. 길이라고 해야 그 너비가 녀자들의 허리띠만큼밖에 안되였다. 길은 산아래의 공로에서 갈라져나와 여러 골짜기나 산기슭을 따라 굽이굽이 갈라져나가다가 마을 동쪽의 구릉에서 합류되였다. 모두들 선근이가 마을사람들이 산에 올라가 밭농사를 편리하게 하라고 그 길을 닦는것이라고 짐작했다. 길을 닦은후 선근이는 먼저 그 길섶에다  집들을 지었다. 그후 부근 농가들의 밭을 모두 임대해들였다.  남포를 터치우고 밭을 파헤치며 며칠이나 분주하게 돌아치더니 어느새 그럴듯한 다락전이 생겨났다. 그후에 선근이는 담배를 말리우는 건조실을 보란듯이 지어놓았다. 이어 길섶에 큰 간판 하나가 세워졌는데 거기에는 “묘령황연기지”라고 씌여져있었다. 그제야 묘령사람들은 선근이가 황연농사를 크게 해보련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2
 
엽아는 집에서 셋째였다. 우로는 언니가 둘이 있었다. 도리대로라면 그의 부모들은 엽아를 낳은후 생육을 그만두어야 했었다. 하지만 엽아의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기어코 아들을 보고싶었다. 결과 엽아의 아버지는 과연 자기의 숙원을 이루게 되였다. 하지만 진에서 계획생육을 책임진 사업일군들은 그저 보고만 있지 않았다. 그들은 소문을 듣자마자 엽아네 집으로 찾아왔다. 그 기세는 실로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자칫하면 기둥뿌리마저 뽑힐 정도였다. 그때 엽아네 집은 살림이 구차하다 못해 그야말로 서발장대를 휘둘러도 거칠것 하나 없었다. 하지만 후에는 살림이 좀 나아졌다. 엽아의 두 언니가 산아래의 마을로 시집갔다. 엽아의 남동생도 고중을 마쳤다. 엽아는 어찌 보아도 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그렇게 많은 중매쟁이들이 엽아를 넘보고 혼사말을 걸었지만 누구에게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엽아는 높은 곳에는 오르지 못하면서 낮은 곳으로는 죽어도 가지 않으려는 녀자였다. 엽아는 점차 로처녀로 되여갔다. 하여 묘령사람들은 엽아를 두고 사유에 문제가 있다고 수군거렸다. 농촌에서 제 나이에 시집을 가지 않는 처녀들은 어딘가 특수한데가 있었다.
엽아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굽어보았다. 산기슭에 있는 담배밭에는 자람새가 좋은 담배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흐믓하게 해주었다. 엽아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크게 힘을 들여 호흡했다. 기분을 둥둥 뜨게 하는 신선한 담배냄새가 날아들어 온몸을 감싸는것 같았다. 엽아에게는 이렇게 담배냄새를 맡기 좋아하는 독특한 습관이 있었지만 누구도 모르고있었다. 엽아는 파아란 생담배잎에서 나는 냄새든 잘 건조된 황연에서 나는 냄새든 모두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은 또 엽아가 담배를 피운적이 있다는것도 모르고있었다. 사실 엽아는 담배를 몇번 피운적이 있지만 담배인이 박힐 정도는 아니였다.
엽아가 처음으로 담배를 피운것은 몇년전이였다. 엽아는 남자들의 본을 따서 노오랗게 건조된 황연을 부스러뜨린후 종이에 담아 나팔모양으로 말았다. 첫 모금을 빨아들였을 때 엽아는 자기가 누구에게 크게 속기라도 한듯 억울한 느낌마저 들었다. 엽아는 줄쳐 나오는 기침을 참을길 없었고 둘둘 굴러떨어지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하지만 엽아는 그처럼 참기 힘든 곤욕속에서도 이름할수 없는 일종의 흥분을 느낄수 있었다. 마치 구름속을 헤집고 다니는듯한 환각 같은것이였다. 그런 느낌에 엽아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 느낌때문에 엽아는 한번 또 한번 담배대를 입에 물게 되였다. 하지만 필경 녀자의 몸이라 남들앞에서 대담하게 담배를 피울수 없었다. 묘령에서 담배를 피우는 녀자는 필경 사람들에게 경박하다는 인상을 주게 돼있었다.
선근이의 2륜 모터찌클이 문앞에 있었고 모터찌클곁에는 검은 털을 가진 개 한마리가 매여져있었다. 개는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왕왕 짖어댔다. 엽아가 개를 향해 소리쳤다.
―이 개같은 물건짝아. 이 할미도 알아보지 못한단말이냐?
그 소리를 들은 선근이가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선근이의 모양새는 구질구질하기로 말이 아니였다. 그는 언제나  수염을 제대로 밀지 않아 꾀죄죄했고 코털은 코구멍으로 삐죽이 꼬리를 들어내고있었다. 엽아는 그런 선근이를 역겹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선근이의 녀편네가 웃방에서 머리를 내밀고 야릇한 눈길로 엽아를 내다보며 억지로 입가에 웃음을 지어보였다. 엽아와 비겨볼 때 선근이의 녀편네는 실로 과하다할만큼 몸집이 뚱뚱했다. 하여 걸을 때면 몸집에 붙은 고기덩이가 덜렁덜렁 춤을 추는것 같았다. 선근이의 녀편네는 그야말로 “표준적인” 시골아낙네의 몸매라고 할수 있었다.
엽아는 곧추 외종숙모인 그 “표준적인” 시골아낙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두 녀자가 히히닥거리고있을 때 소만이가 마당에 들어섰다. 해볕에 그을어버린 소만이의 피부는 검실검실했다. 웃통을 벗어제낀 소만이의 몸집에는 어디라 없이 불끈불끈 근육이 살아있었다. 소만이는 등에 메고있던 분무기를 벗어놓고는 수도가로 다가갔다, 소만이는 찬물이 콸콸 쏟아져내리는 수도꼭지아래에 머리를 들이밀고 푸푸- 소리를 내며 씻었다. 엽아는 세수하는 소만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무엇을 느꼈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급히 눈길을 다른데로 돌렸다. 그것을 눈치챈 선근이의 녀편네가 하하하 크게 소리내여 웃었다. 우람진 체구의 소만이는 어쩌면 튼실한 둥글소를 닮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것 같았다. 머리를 다 씻은 소만이는 콸콸 쏟아져내리는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꿀떡꿀떡 찬물을 마셨다. 하지만 소만이는 종래로 배탈이 나지 않았다.
소만이는 힘차게 머리를 흔들어 머리카락에 묻은 물방울을 털어버리더니 두 녀자를 향해 씨엉씨엉 걸어왔다. 그때 엽아의 눈길이 소만이의 눈길과 공중에서 부딪쳤다. 그 바람에 소만이가 흠칫 놀라는가싶더니 괜히 왼손을 들어 어쭙게 자기의 어깨를 쓸어댔다. 마치 웃통을 벗어버린 자기의 몸을 엽아에게 보이는것을 부끄러워하는것 같았다. 엽아는 그런 소만이를 향해 실웃음을 지어보이며 롱담했다.
―소만아, 듣자니 너 적반시장으로 가서 선을 봤다면서? 처녀가 마음에 들던?
엽아의 말에 소만이는 무엇이라고 대답하려는듯 입귀를 실룩거렸다.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머리를 푹 떨군채 자기의 집으로 들어가 수건을 찾아들고 머리를 마구 닦았다. 엽아는 소만이를 창문으로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소만아, 너하구 묻잖아? 왜 대답이 없니? 아무리 그렇다 해두 너와 나는 소학교동창이 아니냐?
엽아가 아무리 입방아를 찧어도 소만이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에 선근이가 끼여들었다.
―엽아야, 네가 하루에 소만이를 열마디이상 말을 시키면 내가 너에게 두 사람치의 일당을 주마.
엽아가 선근이의 말을 받았다.
―정말인가요? 소만아, 너두 방금 들었지? 어서 나하구 맞장구를 좀 쳐주라. 내가 돈을 벌면 너에게도 절반을 갈라줄게.
그 말에 소만이가 벙글서 입을 벌리고 껄껄 웃어댔다. 엽아는 잔뜩 이마살을 찡그리고 발을 동동 굴렀다.
―너 웃지만 말고 말을 해야지.
하지만 소만이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몸을 픽- 돌려 마당을 나가버렸다. 그 모양을 보고 선근이의 녀편네는 우스워서 죽겠다고 배를 끌어안고 돌아갔다. 선근이가 소만이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저 같은 자식을 두고 세다리를 다 흔들어도 방귀 한번 뀌지 못한다는거야.
담배건조를 책임진 일군은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질 무렵에 올라왔다. 성이 왕씨인데 별명은 왕절름발이였다. 그는 호적이 다른 마을에 있었지만 묘령에 집을 잡고있었다. 엽아는 한참동안 왕절름발이를 눈여겨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의 다리가 아무 이상도 없는데 왜 절름발이라고 부를가요?
선근이의 녀편네가 대답했다.
―사실은 절름발이가 아닌거지 뭐.
이어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말을 이었다.
―저 사람의 배속에 무슨 꿍꿍이가 숨어있는지는 누구도 모른단다. 전에는 보따리장사를 하면서 주변마을들을 주름잡고 다녔단다. 한번은 어느 집 새각시를 희롱하다가 그 각시의 남정에게 들켜 한바탕 개패듯 얻어맞았단다. 그 바람에 한동안 다리를 절게 되였던거야.
엽아는 왕절름발이의 반질반질한 머리통을 바라보며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이튿날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올 때 엽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배를 따는 일이지만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온몸에서 담배기름냄새가 확확 풍겼다. 엽아는 빨아놓은 옷을 갈아입었다. 검고 기름기 흐르는 엽아의 머리칼은 어깨를 스쳤는데 정말 아름다왔다. 그녀의 머리칼은 다른 녀자들처럼 푸수수한적이 없었다. 엽아는 세수비누로 얼굴을 싹싹 씻은후 선크림을 발랐다. 엽아는 시원한 아침공기처럼 자기 몸도 청신하다고 느꼈다. 이런 날에는 아침 일찍 밭으로 가는것이 좋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해볕이 그렇게 강하지 않을 때 많은 일을 해제껴야 했다. 하지만 해볕이 머리를 들지 않은 이 시각에는 밭에 이슬이 많아 옷섶을 즐벅하게 적셔 정말 귀찮았다.
선근이네 담배밭에는 벌써 8, 9명의 얼굴이 보였다. 그중 소만이와 엽아, 왕절름발이는 삯일을 온 사람들이고 둘은 선근이네 부부였으며 나머지는 선근이가 특별히 불러다 도움을 받는 친척들이였다. 맞은켠의 산언덕에 심은 담배는 모두 한가지 종류였다. 선근이는 그 담배를 황금엽이라고 불렀다. 엽아는 허리를 굽혀 부지런히 담배를 따며 생각을 굴렸다.
참으로 황금엽이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구나. 전에 어디 이렇게 좋은 담배를 본적이 있었던가?
황금엽은 잎이 컸는데 건조를 해도 그 색갈이 아주 고왔다. 잎으로 있을 때는 별로 냄새가 없었지만 손가락으로 살살 문질러 그 잎을 부스러뜨리면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엽아가 한창 제 좋은 생각을 굴리고있을 때 누군가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
엽아가 머리를 돌려보니 목소리의 임자는 왕절름발이였다.
 
 
작은 주머니 살랑살랑 흔들리네
처녀야, 주머니에 수를 놓으려마
신랑의 허리에 둘러주게
처녀야 주머니에 수를 놓으려마
신랑의 옆구리에 둘러주려마
작은 주머니에 작은 칼을 넣어두게
 
 
노래를 부르는 왕절름발이의 목에는 하아얀 수건이 둘러져있었다. 왕절름발이는 왼손으로 담배를 따며 오른손으로 수건을 흔들고있었다. 그는 하늘을 향해 머리를 저으며 흥이 나서 노래를 불렀다. 엽아는 노래소리에 깜짝 놀랐다가 차츰 입가에 실웃음을 물었다. 그녀는 왕절름발이가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지긋한 그가 밭에서 노래를 부른다는것이 어딘가 남달라보였다. 선근이는 못마땅한듯 왕절름발이를 쏘아보며 두덜거렸다.
―뛸데 없는 푼수라니까.
묘령에서 푼수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처리에서 참답지 못했다. 선근이의 말을 받아 선근이의 녀편네가 삿대질을 했다.
―왕씨, 이 사람아. 그 고질을 못 고치는구려. 승냥이가 고기를 먹는 버릇을 고치겠나? 개가 똥 먹는 버릇을 고치겠나?
그 바람에 여기저기서 웃음보가 터져올랐다.
이런 재미가 있어서였던지 엽아는 그날 아침 일이 참 인상깊다고 생각했다. 담배잎에 이슬이 많아 저마다의 옷은 푹 젖어버렸다. 엽아는 자기의 웃옷이 이미 가슴과 등에 착 달라붙었다고 느꼈다. 바지가랭이도 이미 허벅지에 착 달라붙었다. 엽아는 아예 바지가랭이를 둘둘 말아올렸다. 그러자 하아얀 종아리가 들어났다. 이슬에 젖은 옷이 몸에 착 달라붙어서인지 온몸이 시원하게 느껴졌지만 몸체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서 어딘가 민망한 감이 들었다. 특히 몸을 일으켜 눈길이 소만이의 눈길과 부딪칠 때면 더구나 몸둘바를 몰랐다.
아침에는 밀국수가 나왔다. 엽아는 소만이가 벌써 여섯그릇채 먹기 시작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엽아는 어쩐지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즐거움을 감추지 못해 시무룩이 웃음을 피워올렸다.
엽아는 문가에 쪼크리고앉아 밀국수를 먹고있는 왕절름발이를 돌아다보며 입을 열었다.
―왕아저씨, 아까 부른것은 무슨 노래인가요? 한번 더 불러주세요.
엽아의 말에 왕절름발이는 갑자기 못내 흥분했다. 그는 사발에 남은 밀국수를 후룩후룩 먹어치우고는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엽아야, 네가 나를 왕아저씨라고 하니 어쩐지 내가 늙어보이는구나. 아까 부른것은 “수놓이노래”이다. 너처럼 어린 녀자애들은 들어보지 못했을거다. 그리고 불렀다 해도 그 맛이 날수 없지.
왕절름발이는 왼손에 사발을 오른손에 저가락을 들고는 흥겹게 노래를 부르면서 가끔 엉뎅이까지 흔들어댔다.
 
 
기다리네 기다려 기다린다만
녀동생을 기다리는건 아니라네
누구를 기다리느냐
주머니를 수놓아 오빠를 주렴
오빠에게 편지를 전해주렴아
실을 사다줄게 편지를 보내주렴
실을 사다줄게…
 
 
엽아는 정색해서 노래를 부르는 왕절름발이를 보면서 깔깔 소리내여 웃었다. 선근이의 녀편네가 소리쳤다.
―저 홀아비가 또 발정을 한게로군. 
그 말에 선근이가 녀편네의 엉뎅이를 툭 걷어찼다. 그 바람에 선근이의 녀편네는 입속으로 뭐라고 우물거렸다.
아침밥을 다 먹었는데도 해볕은 그렇게 독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좀 자니자 해볕은 기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엽아네는 계속 담배를 뜯기 시작했다.
엽아는 시종 선근이의 녀편네와 나란히 서서 일했다. 그녀들은 누구도 입을 쉬우려고 하지 않았다.
―엽아야, 너 이미 로처녀 소리를 듣고있는데 왜 아직도 이러구있니? 나하구 말해보렴. 너 속으로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거지?
엽아는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것처럼 했지만 사실 남들과 정면으로 이 문제를 론하기 꺼려 했다. 더구나 선근이의 녀편네가 성격이 곧아서 무엇을 생각하면 그대로 말하기에 더구나 그와 이 일을 론하기가 꺼림직했다. 엽아는 짐짓 내숭을 떨며 말했다.
―남자는 무슨, 전 평생 남자를 안 찾을거예요. 혼자 살죠 뭐.
그 말에 선근이의 녀편네가 웬 일이냐는듯 아이구― 하고 길게 소리를 뽑았다.
―귀신이나 믿으라구 해라. 너 무슨 생각하고있는거니? 어느 녀자가 남자를 마다해?
선근이의 녀편네는 잠간 말을 끊고 혼자 키득키득 웃다가 아래말을 이었다.
―그래 너 한밤중에도 생각을 안한단말이니?
엽아가 얼굴을 붉히며 급히 선근이 녀편네의 말을 당겨왔다.
-숙모, 그만해요. 또 그러면 그 입을 이 담배잎으로 틀어막을거예요.
하지만 선근이 녀편네는 개의치않고 계속 키득거렸다.
―너두 인젠 알것은 다 알만한 나이지 않니? 남자와 녀자가 노는 그 유희를 정말 모른단말이니?
엽아는 담배대를 가운데 둔채 담배잎을 들어 선근이 녀편네를 후려쳤다. 선근이 녀편네는 몸을 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계집애하구는. 네년도 어느날 남정네를 끌어안구 물고 빨 날이 있을게다. 그날에도 오늘처럼 당당할수 있을가?
엽아는 아예 선근이 녀편네의 입담을 당할수 없던지 입을 삐죽해보이고는 다시 응대하지 않았다.
선근이 녀편네가 갑자기 엉뚱한 화제를 꺼냈다.
―어제밤에 내가 곰곰히 생각해보았는데 너하구 소만이가 배필인것 같다. 생각이 있으면 나에게 시원히 말해봐라. 내가 말하면 꼭 성사될수 있을게다.
엽아가 선근이 녀편네를 건너다보며 입을 필룩거렸다.
―소만이요? 그 검둥이를요? 석탄굴에서 기여나온것 같은 그놈을요?
엽아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면서 허리를 쭉 펴고는 몇고랑 밖에서 담배를 따는 소만이를 곁눈질했다.
소만이는 여느날보다 깨끗한 옷을 입고있었다. 선근이 녀편네가 입을 열었다.
―남자들 몸뚱이가 좀 검은게 무슨 허물이니? 너 저 몸뚱이를 좀 봐라. 얼마나 튼실해보이니? 너, 내 말을 들으면 랑패가 없다니까. 남자를 찾으려면 바로 소만이 같은 애를 찾아야 해. 우리 남정 같은 남자를 고르면 랑패지. 겉보기에는 그럴듯 하지만 침대에 올라가서는 영 부실하다니까. 보기 좋은 개떡이지.
그 말에 엽아가 일부러 퉥- 하고 침을 뱉고는 입을 열었다.
-숙모, 돌았어요?
선근이 녀편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너 설마 소만이가 돈이 없다고 그러는건 아니지?
엽아는 선근이 녀편네를 흘기며 말했다.
―그만하세요. 숙모하고는 통 말이 안통한다니까요.
해볕이 재글재글 끓기 시작했다. 담배잎에 내려앉았던 이슬들이 차츰 화끈화끈 열기로 변해 날아갔다. 그러자 담배잎에는 끈적끈적한 기름이 내배였다. 엽아는 그것이 좋았다. 담배잎에 돋은 기름때문에 손가락이 떡떡 들어붙었지만 그럴수록 담배잎에서는 더 짙은 냄새가 풍겼다. 엽아는 그 냄새가 자못  친근하게 느껴졌다. 엽아는 얼굴이 발그스름하게 상기되여 선근이 녀편네를 보고 물었다.
―숙모는 담배냄새가 참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선근이 녀편네가 이상하다는듯 눈동자를 키웠다.
―담배냄새가 좋다구? 세상에. 나는 담배냄새를 오래 맡으면 머리가 어질어질해나거든. 그런데두 넌 이 냄새가 좋다구? 이상하다 이상해. 엽아야, 너를 어쩌면 좋니?  
엽아와 선근이 녀편네는 집안으로 들어가 물을 마신후 초모자를 쓰고 나왔다. 문을 나서면서 엽아는 웬지 소만이를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만이는 수도가에서 찬물을 한소래 받아서 자기의 머리에다가 쏟아붓고있었다. 엽아는 자기가 되려 온몸이 오싹해나는것 같아서 입을 쩝쩝 다셨다. 하지만 소만이는 되려 시원하다는듯 아― 하고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엽아는 흠칫하면서 몸을 옹송그렸다. 어쩌면 그 한소래의 물이 몽땅 자기의 머리에 쏟아지는듯한 느낌이였다. 소만이는 진작 엽아의 눈길을 감지한듯싶었다. 소만이는 갑자기 몸을 돌려 초모자밑으로 드러난 엽아의 하아얀 얼굴을 바라보고있었다. 소만이는 힘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 바람에 수많은 물방울들이 사처로 튕겨나갔다.
저녁식사는 풍성했다. 선근이 녀편네가 닭까지 한마리 잡았다. 저물어가는 석양속에서 싱그러운 닭고기냄새가 절반 산기슭을 덮고있었다. 밭에서 일하고있는 사람들은 진작 그 닭고기냄새를 맡고있었다. 왕절름발이는 자못 흥분해하면서 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끝낸 왕절름발이는 선근이를 보고 저녁에 술이 있는가고 물었다. 밭머리에 쪼크리고앉아 담배를 피우던 선근이가 통쾌하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취토록 마시라구. 오늘은 첫날이니까. 하지만 다음날부터는 없을걸. 마시고싶으면 자비로 사다가 마시든지. 나는 더 이상 관계치 않겠으니까.
왕절름발이가 선근이를 건너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 말일세, 작은 모병이 있거든. 술을 마음껏 마시지 못하면 재간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니까.
그 말에 선근이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자네 재간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면 난 자네를 건조실에 넣어 담배와 함께 쪄버릴거네.
옹근 하루 동안, 소만이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엽아도 확실히 소만이가 입을 여는것을 보지 못했다. 엽아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소만이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니까. 벙어리도 아니면서 왜 진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을가? 말을 하지 않으면 얼마나 속이 갑갑할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친해질가?
손을 씻을 때 엽아가 소만이의 곁에 서게 되였다. 엽아는 가까이에서 소만이를 눈여겨보았다. 하지만 이미 날이 어두워진후라 소만이의 얼굴표정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소만이는 그때 웃옷을 벗으려고 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머리를 들어 엽아를 한번 훔쳐보고는 팔소매만 둘둘 감아올렸다. 엽아가 입가에 웃음을 피워올리며 물었다.
―웬 일이니? 나를 보고 부끄러워 그러니? 계집애들처럼.
소만이는 머리를 들어 엽아를 건너다보더니 벙그레 웃으면서 그제야 웃옷을 벗었다. 그러자 되려 엽아쪽에서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져 황급히 눈길을 다른데로 돌렸다. 소만이가 세수를 끝내자 엽아가 소만이에게 수건을 건네주었다. 소만이가 수건을 받아 몸을 닦을 때 엽아는 급급히 세수하기에 바빴다. 소만이가 수건으로 몸을 닦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선보러 간게 아니구, 장보러 갔던게요.
엽아는 한참이나 돼서야 소만이가 무슨 말을 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러자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세상에, 어제 내가 물었는데 오늘에야 그 대답을 하다니.
엽아는 애써 웃음을 참으면서 소만이가 건네주는 수건을 받았다. 수건을 넘겨준 소만이는 벌써 집쪽으로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엽아는 소만이의 거동에 놀라 멍해있다가 천천히 수건을 들어 코밑에 가져다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순간 엽아는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라 급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날 밤, 남자들은 과연 취토록 술을 마셨다. 엽아는 기어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나누웠다. 하지만 선근이의 녀편네가 강권하는 바람에 입술에 약간 술을 댈수 밖에 없었다.
엽아는 자기의 주량을 알고있었다. 어느해 음력설날, 몇몇 친구들이 모였는데 흥이 나자 술을 마시기로 합의했다. 그번에 엽아는 근 한근에 가까운 술을 마셔버렸다. 하지만 머리는 여전히 말짱한대로였다. 그에 엽아는 스스로도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날 저녁에 마신 몇방울의 술은 사실 엽아에게 있어서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기어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것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술을 마실줄 안다는것을 들키기 싫어서였다. 아직 시집도 가지 않은 로처녀가 남자들과 한자리에 앉아서 통이 크게 술을 마신다는것은 누가 알아도 좋은 일이 아니였다. 
소만이는 술자리에서도 없는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다. 술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차츰 소만이의 존재를 잃어버린듯싶었다. 엽아는 술자리를 피해 옆에 나앉아 해바라기씨를 까면서 흘끔흘끔 소만이를 훔쳐보았다. 술자리에 앉은 몇몇은 이미 흥이 도도해있었다. 특히 왕절름발이는 기분이 둥둥 떠서 손발이 춤을 추고있었다. 선근이는 우뢰와 같이 큰소리로 옆에 앉은 나그네와 화권(划拳)놀이를 했다. 하지만 소만이는 돌덩이처럼 듬직하니 앉아서 연신 술잔만 기울였다.
엽아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선근이가 말했다.
―너도 여기서 자렴. 밤길이 험할텐데.
엽아가 대답했다.
―언제는 뭐 밤길을 걷지 않았나요? 괜찮아요.
그 말에 선근이의 녀편네가 동을 달았다.
―엽아의 몸매를 보세요. 웬간한 남정네들은 어쩌지 못할거예요.
그 말에 술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쳤다. 엽아는 힐끔 소만이를 건너다보며 입을 열었다.
―흥, 내가 되려 덮치지 않으면 다행인줄 알라 하세요.
집으로 돌아와서도 엽아는 웬지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세수를 하면서 흥얼흥얼 코노래까지 했다. 그녀는 자기의 방에 들어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전등도 켜지 않고 그렇게 앉아 한참동안 골똘히 뭔가를 생각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도무지 잠을 청할수 없었다. 엽아는 낮에 왕절름발이가 부르던 노래를 떠올렸고 소만이의 튼실한 몸매를 그려보았다. 소만이가 물방울이 맺힌 머리칼을 털어대던 모습이 참 멋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엽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등을 켜고 자기의 풍만한 젖무덤을 내려다보았다. 엽아의 머리속에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까 소만이는 왜 그렇게 말했을가? 하루가 지나서 왜 그 한마디를 던진것일가? 내가 그래 그가 장보러 갔었다는것을 정말 모르는줄로 알았을가? 
그날 엽아는 숱한 사람들 건너로 소만이를 바라보았었다. 그때 소만이는 혼자서 허둥지둥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엽아는 소만이의 어릴적 모습을 그려보았다. 소만이는 어릴 때 겨울이면 늘 큰 솜외투를 입고 다녔는데 남들이 입다가 물려준것이였다. 늘 외투소매로 코물을 닦아서 반들반들했다. 그때도 소만이는 말수가 적었고 마음씨가 어졌다. 하여 엽아마저도 내키지 않으면 마음대로 소만이를 못살게 굴었었다.
엽아는 엇갈려 올라간 자기의 두손이 젖무덤을 꼭쥐고있다는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3
 
선근이의 녀편네가 엽아를 보자마자 입을 열었다.
―어제밤에 말이다. 네가 가자마자 나그네들이 너를 두고  입방아를 찧었다.
그 말에 엽아가 입을 삐쭉거리며 한마디 했다.
―흥, 내 그럴줄 알았어요. 참으로 좋은 물건짝이 없다니까요. 뒤에서 입방아질이나 하구.
선근이의 녀편네가 말을 이었다.
―모두들 말하던데 네가 이상하다는거다. 나이가 이렇게 들었는데 시집을 가지 않으니 말이다. 조건이 남보다 못한것도 아니구. 하기야 이제 어떤 나그네가 너를 품에 안고 복을 누릴지.
엽아는 얼굴을 뜨겁게 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 밭에는 선근이와 왕절름발이 그리고 소만이만 나와있었다. 엽아와 선근이의 녀편네는 담배를 따기 시작했다.
산더미같이 무져진 담배잎을 한잎한잎 장대에 엮는 일은 그렇게 쉬운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엽아는 진작 이 일에 손이 익어있었다. 일손을 놀릴라치면 손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솜씨가 빨랐다. 엽아 혼자서도 다른 녀인네 두섯은 담당할수 있었다.
선근이 녀편네는 엽아를 건너다보면서 야릇한 웃음을 피워 올리다가 목소리를 한껏 깔면서 말했다.
―아침에 말이다. 왕절름발이, 그 사람이 글쎄 우물가에 앉아서 한참이나 몸단장을 하지 않겠니? 수염을 깎고 머리를 감고 지어 하얗게 씻어놓은 적삼까지 꺼내 입는거 있지. 호불아비가 언제 제 몸을 그렇게 가꾼적이 있었니? 발정이 날 때를 말구는.
엽아가 다잡아물었다.
―무슨 뜻이예요?
엽아가 선근이 녀편네를 돌아다볼 때 그는 허리를 굽혀 담배를 줏고있었다. 선근이 녀편네는 그날 선근이가 입던 낡은 적삼을 몸에 걸치고있었다. 게다가 브래지어도 하지 않아서 주글주글한 두개의 젖무덤이 축 처져내린것이 다 보였다. 그 모양을 보면서 엽아가 되려 민망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줄도 모르고 선근이 녀편네가 또 입을 삐쭉했다.
―남정네들은 말이다. 하나같이 그 모양이라니까. 오래동안 잠자리에서 녀자맛을 보지 못하면 단가마에 오른 개미처럼 안절부절한다니까.
그 말을 듣고난 엽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라잖으면 령감줄에 들어설 나그네들도 그런 생각을 해요? 
선근의 녀편네가 말했다.
―그 나그네 그렇게 나이 많은게 아니다. 생긴게 늙다리 같아 그렇지. 그리고 또 늙었다고 해서 그 생각이 없다고는 할수 없지.
엽아는 믿지 못하겠다는듯 살래살래 머리를 저었다.
왕절름발이가 물 마시러 왔다. 그는 자기는 평생 끓이지 않은 물은 마시지 않는다고 하면서 보온병에서 뜨거운 물을 한고뿌 받았다. 그는 고뿌를 들고 엽아네 곁에 앉아서 후룩후룩 뜨거운 물을 마셔댔다. 왕절름발이가 물을 마시는 소리를 들으면서 엽아는 웬지 자꾸 웃고싶은것을 참을수 없었다.
왕절름발이는 과연 하얗게 씻은 적삼을 입고있었는데 제일 웃단추까지 꼭 채웠다. 반들반들한 정수리와는 달리 옆부분에 성기게 난 머리칼들은 반반하게 빗겨져있었다. 적삼호주머니에는 원주필 한대가 꽂혀져있었다.
왕절름발이의 모양새를 이윽히 지켜보던 엽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깔깔 웃었다. 왕절름발이는 모르겠다는듯 엽아를 건너다보며 물었다.
―엽아야, 너 왜 그렇게 웃지?
엽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선근이의 녀편네는 웃느라 젖무덤이 달랑달랑 춤을 추는것도 모르고 입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자네, 왕씨. 엽아가 있잖아, 엽아가 그러는데 자네가 기실은 아주 젊어보인다네. 몸단장을 하면 멋도 나구말이야.
왕절름발이는 후룩- 하고 물 한모금을 마시고는 아― 하고 길게 소리를 뽑더니 말을 이었다.
―딱히 말할수는 없지만 내가 한 10년만 젊었다면 엽아의 말을 믿을수도 있지.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야, 정말 괜찮게 생겼다고 할만 했었지. 내가 적반시장에 척 뜨면 처녀들이구 새각시들이구 모두 나를 돌아보고 침을 흘렸다네. 어느 핸가 현 연극단에서 사람을 보내와 나를 보고 리옥화역을 맡아달라는거야.  나는 기어코 사절해버렸어. 그까짓 역을 해서는 뭘 하겠는가 하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거든. 하지만 지금은 좀 후회된다니까. 내가 만약 그때 극단에 갔더라면 지금쯤은 중남해에 들어가 연극을 놀지 누가 알아?
그 말을 듣고 선근이 녀편네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흥, 모양새 하구는, 토비역이나 맡으면 그나마 어울릴가?
―아니, 제수. 그래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거여? 내가  한번 몸을 움직여볼가?
왕절름발이는 손에 들고있던 고뿌를 내려놓고 가슴을 쑥 내밀며 “홍등기”에서 나오는 리옥화의 형상을 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무슨 일에나 막힘이 없다네
고난한 집 아이가 먼저 헴이 든다네
……
 
 
선근이가 밭에서 소리쳤다.
―이봐, 왕씨. 난 자네를 불러다 일을 시키려는게지 노래를 부르라는게 아닐세.      
그 말에 왕절름발이는 노래를 멈추고 엽아와 선근이 녀편네에게 물었다.
―어떤가? 내 노래수준이.
선근이 녀편네가 말했다.
―당나귀소리 비슷하구려.
그 소리에 엽아가 입을 싸쥐고 키득거렸다. 왕절름발이가 억울하다는듯 두덜거렸다.
―흥, 내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것이 아니라 자네들이 들을줄을 모르는거야.
왕절름발이는 다시 고뿌를 들고 한참 후룩거리다가 흥얼거리며 밭으로 갔다. 
 
 
사랑하는이, 천천히 날게나
앞에는 가시가 가득 박힌 장미가 있다네
 
 
왕절름발이의 노래소리가 바람에 날려왔다.
담배를 매단 장대를 건조실에 들여가기전에 왕절름발이는 못내 흥이 났다. 엽아는 분명 왕절름발이의 허리가 꿋꿋이 펴진것을 발견했다. 왕절름발이는 자기의 일솜씨를 보여줄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는 건조실문어구에 서서 이것저것 지시를 해대는것이 마치 전쟁터에 나선 장군을 방불케 했다.
―이것은 내가 오래동안 연구해온 새로운 방법일세. 담배를 다는 이 방법을 가지고 전매특허를 신청할가고도 생각했더랬지. 자네들 아는가? 나는 팔괘도를 연구한후 이 방법을 고안해냈다네. 자네들은 그저 건조실에 담배장대를 거는 일이 아닌가고 코웃음을 칠수도 있을걸세. 하지만 그게 아닐세. 여기에는 많은 학문이 숨어있다네. 나의 연구에 의하면 한 담배대에 자란 잎도 우의잎과 아래잎은 거는 방법이 다르고 말리는 방법도 다르다네. 
선근이가 그에 역정을 내며 욕했다.
―제밀할, 바빠죽겠는데 그까짓 큰소리는 왜 치는겨? 내가  큰 돈을 주고 당신을 청해온건 실제적인 일을 하라는거야.
건조실에 담배가 가득찼다. 그러자 왕절름발이는 또 한차례 사람들의 눈이 희뜩 번져지게 했다. 그는 건조실에 제사를 지낸다고 납떴다. 왕절름발이가 말했다.
―건조실에도 령적인것이 존재한단말이요. 그러니 불을 지피기전에 반드시 화신에게 제사를 올려야 하는거요. 세상에서 제일 신성한 물건이 바로 불이란말이요. 옛날에도 병기를 만드는 장인들은 용광로에 불을 지피기전에 화신에게 큰 제사를 올렸단말이요.
건조실앞에는 진작 제사상이 차려져있었는데 우에는 여러가지 료리며 술이 올라있었다. 왕절름발이는 어디서 먹 한병을 얻어왔다. 그는 손에 먹을 묻혀서는 얼굴에다가 괴상한 도안을 그렸다. 얼굴에 그림을 그릴 때 왕절름발이의 기색은 매우 엄숙해보였다. 곁에 선 사람들은 입을 헤- 벌리고 왕절름발이를 바라볼뿐 숨도 크게 내쉬지 못했다. 왕절름발이는 경건하게 제사상앞에 꿇어앉아 건조실을 바라보며 뭐라고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다가 벌떡 일어섰다. 그는 천천히 손발을 놀리기 시작하더니 신들린듯 너울너울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빙글빙글 돌아가던 왕절름발이는 다시 제사상앞에 꿇어앉았다. 그는 향을 피우고 종이를 태운후 선근이를 보고 폭죽을 터치우라고 분부했다.
묘령사람들은 모두 선근이의 황연재배기지에서 터져오르는 폭죽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이어 선근이네 건조실에서는 뭉게뭉게 연기가 피여올랐다.
그날 밤 사람들은 모두 흥분에 들떠있었다. 선근이는 전에 다시는 술상을 벌리지 않겠다고 말한적이 있었지만 그날 저녁 또 술상을 마련했다. 사람들은 선근이가 왕절름발이를 고무하기 위해서 술상을 벌린것을 알고있었다.
그날 저녁 식사도중에 한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그때 엽아가 마당으로 나갔는데 왕절름발이도 조용히 엽아의 뒤를 따랐다. 왕절름발이는 수도가에서 갑자기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엽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엽아야, 선근이네 일이 끝나서 삯전을 받게 되면 내가 너를 데리고 북경유람을 가마.
그 말에  엽아는 너무 놀라서 굳어졌다. 어쩌면 마른 하늘에서 날벼락이 치는듯한 느낌이였다. 엽아는 미처 뭐라고 반응하지 못하고 멍하니 왕절름발이를 건너다보았다. 잠간 지나서야 엽아는 솟구치는 분노를 느꼈다. 엽아는 정말 왕절름발이의 면상을 한대 갈겨주고싶었다. 한심했다. 왕절름발이가 제 주제도 모르고 덤벼들다니. 다 늙어가는 신세가 돼가지고 감히 처녀에게 그같은 주문을 걸다니?
엽아는 아무리 해도 참을수 없었다. 그야말로 묘령사람들의 말처럼 “늙은 소가 야드르르한 풀만 찾는 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엽아는 차츰 왕절름발이로부터 씻지 못할 굴욕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엽아는 머리를 저으며 사색을 정리했다.
그래, 이것은 저 절름발이의 하잘것 없는 롱담일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엽아는 웬지 모르게 일종의 달콤함을 느끼게 되였다. 사실 로처녀로 불리우는 그날까지도 엽아는 어느 남자에게서 그같은 말을 들어본적이 없었다. 소만이는 죽어도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그런 말을 할수 없을것이라고 엽아는 생각했다. 하기야 엽아가 롱담으로 한 말도 하루가 지나서야 겨우 대답하는 소만이였으니 말이다.
엽아는 왕절름발이가 한 말을 누구에게도 옮기지 않았다.  엽아는 그 일을 영원히 비밀로 해두리라고 생각했다. 엽아는 늘 자기에게서 일어나는 하나 또 하나의 비밀을 소중한 보물마냥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운 엽아는 또 생각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북경은 어떠한 도시일가? 북경! 아, 그곳은 북경이야!
엽아는 그런 생각을 굴리는 자신이 어떤 병에라도 걸린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까지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자기가 점점 요사해지기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이 안되는 사이에 자기 생각에 그렇게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것이 두려웠다.  어쩌면 자기가 선근이 녀편네가 하던 말처럼 자신을 수습하지 못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위구심이 스멀스멀 머리를 쳐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래, 내가 설마 지금 남자를 그리고있단말인가?
 
 
4
 
담배가 건조실에 들어갔다가 말라서 나오기까지는 닷새가 걸렸다. 그 닫새사이, 엽아는 선근이네 집으로 일하러 가지 않았다. 닷새후, 황연이 건조실에서 나온후 다시 선근이네 집으로 가서 황연을 급에 따라 조리하여 묶어놓으면 되였다. 그 일까지 마무리하면 황연에 관계되는 일련의 일들이 기본상에서 끝났다고 할수 있었다. 엽아는 그 닷새를 채 채우지 못하고 선근이네 집으로 갔다. 엽아는 자기가 먼저 선근이네 집으로 찾아갈 리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엽아는 선근이네 집을 자기의 집보다도 더 좋아하는것 같았다.
세번째날, 왕절름발이가 건조실아궁이에 불을 가하려고 할 때 엽아가 갑자기 왕절름발이앞에 나타났다. 왕절름발이는 너무도 좋아서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엽아가 왔구나.
엽아는 얼굴을 찡그리고 왕절름발이를 찍어보며 물었다.
―그날 나에게 한 말이 롱담인가요? 아니면 진담인가요?
하지만 엽아는 말을 마치자마자 괜한것을 물었다고 후회했다. 사실 건조실을 찾아올 때까지만 해도 엽아는 근본 이 문제를 물어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무슨 귀신에게라도 홀린듯 왕절름발이를 보자마자 참지 못하고 그렇게 물었다. 왕절름발이가 두눈을 껌쩍거리며 모르겠다는듯 되물었다.
―무슨 말을 그러니?
엽아는 가슴속에서 뭔가가 철렁하고 떨어지는듯싶었다.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실망 비슷한것이 밀려왔다. 엽아는 약간 골이 난 기색으로 말했다.
―그날 나를 데리고 북경유람을 간다고 했던 말.
왕절름발이는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절대로 거짓말이 아니다. 문제는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거지.
엽아가 다시 그루를 박았다.
―똑똑히 말하세요. 롱담이 아니죠?
왕절름발이가 가슴을 치면서 말했다.
―너에겐 이 오빠가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으로 보였니?
엽아는 대충 왕절름발이의 진심을 안것 같아서 그곳을 떠날 때가 되였다고 생각했다. 엽아가 막 몸을 돌리고있을 때 소만이가 담배밭에 있는것이 보였다. 소만이는 허수아비처럼 한곳에 서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엽아는 소만이가 진작 자기를 보고있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엽아는 속에 모래가 가득 차있는듯 쓰리고 무거워났다. 하지만 잠간 시간이 지나자 엽아는 일종의 말 못할 쾌감을 느꼈다.
엽아는 소만이에게 보복하고싶었다.
그때에 와서야 엽아는 자기가 무엇을 생각하고 바라고있었다는것을 알것 같았다.
소만아, 소만. 너 참  그 개눈깔이 멀어도 한참이나 멀었구나. 너 그래 내가 무엇때문에 선근이네 집에 와서 삯일을 하는지 정말 모른단말이냐? 그래 너는 내가 선근이가 주는 하루에 십여원되는 돈을 보고 여기로 왔다고 생각하느냐? 그날 장마당에서 나는 너를 오래동안 지켜보았는데 너는 정말 아무 느낌도 없었단말이냐? 너 참, 못난이로구나. 그래 내가 처녀의 몸으로 먼저 너에게 청혼해야 한단말이냐?
엽아는 자기가 진작 소만이에게 자기의 마음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엽아는 자기가 소만이를 좋아하고있다는것을 승인했다. 그것은 요 며칠사이에 일어난 감정이 아니였다. 엽아는 또 소만이도 은근히 자기를 좋아하고있다는것을 느끼고있었다. 하지만 소만이는 시종 주동적으로 자기에게 그 감정을 털어놓지 않았다. 엽아는 소만이가 구차한 자기네 집살림때문에 그럴것이라고 생각했다. 묘령사람들은 소만이네 집을 채우기 힘든 함정이라고 일러왔다. 소만이네 부모는 장기환자였다. 하기에 소만이네 집에서는 일년 사계절 중약을 달이는 냄새가 풍겼다. 하기에 묘령사람들은 소만이네 집에 시집 오는 녀자는 정말 눈이 멀었을것이라고들 말했다. 하기에 소만이는 평생 장가를 들수 없을것이라고 했다.
소만아, 맞지? 너 구차한 가정살림때문에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는것이지? 참, 이렇게 안타까울변이라구야. 네가 입만 벌리면 나는 너의 가정이 얼마나 구차해도 다 받아들일수 있는데. 나의 힘까지 합한다면 너 혼자 가정을 떠메고 나가기보다 쉬울텐데…
엽아는 자기의 마음을 소만이에게 보여주고싶었다. 하지만 엽아는 그렇게 할수 없다고 생각했다. 로처녀라고는 하지만 필경 그에게는 처녀의 자존심이 남아있었다.
그래, 소만아. 내가 이렇게 너의 말을 기다리고있는데 너는  그것마저도 들어주지 못하는거니?
엽아는 소만이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선근이 녀편네가 멀리서 엽아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엽아야, 왜 그냥 가버리는거니?
엽아는 그 소리를 들었지만 머리를 돌리지 않았다. 건조실마당에서 흥얼거리는 왕절름발이를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선근이 녀편네의 얼굴에 검은 구름이 덮이기 시작했다.
그날 밤, 선근이 녀편네는 자기의 근심을 선근이에게 털어놓았다. 그때 선근이는 두손으로 열심히 녀편네의 젖꼭지를 주무르고있었다. 녀편네의 말에 선근이는 깜짝 놀라면서 손길을 멈추었다.
―이 미친년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 엽아가 왕절름발이에게 속히운다구? 말두 안되는 소리.
녀편네가 급히 선근이의 말을 중둥무이했다.
―소리는 왜 질러요? 의심스럽단말이예요. 엽아가 요 며칠 우리 집에 오지 않다가 오늘 직접 왕절름발이를 찾아가 뭐라고 정색해서 지껄였어요. 그리구는 인차 돌아갔어요.
선근이는 여전히 못믿겠다는듯 말했다.
―그럴수 없소. 만약 그게 소만이라면 믿겠지만. 그들은 누가 봐도 배필이라니까. 하지만 왕절름발이는 안돼. 말라빠진 곶감같이 생겨가지구는.
녀편네가 말을 받았다.
―그 나그네를 그저 쉽게 봐서는 안돼요. 녀자를 꼬시는 수단이 보통이 아니라구요. 당신보다 열배는 나을걸요.
그 말에 선근이가 발딱 일어나앉았다.
―그 늙어빠진 개뼈다귀 같은것이 당신에게 직접거렸어? 단칼에 푹 찔러버릴가?
녀편네는 급히 몸을 돌리며 유들유들한 등짝을 선근이에게 돌리고 두덜거렸다.
―당신, 그래 녀편네도 못 믿는거예요?
선근이는 그 말에 대답도 않고 분해서 두덜거렸다.
―령감탱이, 감히 내 녀편네에게 집적거려? 내 녀편네가 아니라 엽아에게 집적거려도 가만놔두지 않을거다.
그 말에 선근이 녀편네가 머리를 돌리고 깐죽거렸다.
―세상에, 당신도 그래 엽아를 마음에 두고있었어요?
그 말에 선근이는 갑자기 녀편네의 엉뎅이를 향해 주먹을 날리며 소리쳤다.
―이 녀편네, 담이 바깥으로 나왔나? 좀 사람소리를 하지 그래. 정말 당신 말대루 엽아가 그 령감태기에게 속히운다면 내가 어떻게 엽아네 부모들 얼굴을 본단말이요? 엽아는 우리 집 일을 거들어주러 왔단말이요. 정말 엽아가 왕절름발이에게 안기는 날이면 우리도 묘령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수 없단말이요.
선근이 녀편네도 그 말이 옳다는듯 “그럼요.” 하고 동을 달았다.
그후 이틀간 엽아는 선근이네 집에 얼굴을 들이밀지 않았다. 그제야 선근이와 녀편네는 약간 시름을 놓는 눈치였다. 어쩌면 자기들이 괜히 놀랐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그리고 엽아의 일보다는 처음으로 건조실에 넣은 담배가 색갈이 어떻게 나올지 더 근심되였다. 선근이나 그 녀편네는 사실 왕절름발이가 담배건조에서 솜씨가 좋다는것을 소문으로만 들었을뿐 직접 보지는 못했다. 닷새째되는 날 밤에 담배를 건조실에서 꺼내게 되였다. 건조를 마친 담배는 보통 아침이나 밤에 꺼내는것이 상례였다. 금방 건조실에서 꺼낸 담배는 바짝 말라서 조금만 어디에 부딪쳐도 부서졌다. 하기에 담배를 꺼낼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했고 인차 누기를 주어야 했다. 엽아는 저녁밥을 먹은후 건조실로 왔다. 왕절름발이, 선근이, 선근이 녀편네, 엽아, 소만 모두가 건조실문앞에 서서 중요한 시각이 도래하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선근이가 손에 열쇠를 들고 왕절름발이에게 물었다.
―문을 열가?
왕절름발이가 대답하지 않고 눈을 쪼프리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 모양을 지켜보며 엽아는 참지 못하고 키득키득 웃었다. 하지만 왕절름발이는 웃지 않고 정색해있다가 드디여 소리쳤다.
―시간이 됐소.
열쇠를 든 선근이의 오른손이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했다.
이들은 건조실을 가득채운 황금엽을 진짜 황금으로 생각하고있었다. 하기에 선근이는 이 황연기지를 일떠세우기 위하여 수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시간만 나면 밭을 고르고 집을 짓는 일을 했다. 다년간 모아두었던 돈도 다 이 일에 쏟아부었다. 그래도 모자라 이런저런 인맥을 통해서 대부금도 맡았다. 만약 황연재배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선근이의 노력과 쏟아 부은 돈은 바다에 돌 던진격으로 될것이였다.
문이 열렸다. 선근이는 감히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다른 사람들도 감히 안에 들어서지 못했다. 먼저 환성을 지른이는 왕절름발이였다. 그는 애들처럼 껑충껑충 모두뜀을 했다.
―보라구, 어떤가? 선근이, 엽아야. 인젠 내 솜씨를 승인하겠지? 탄복하지?
선근이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등신 같은것이, 솜씨 하나는 괜찮네.
건조실을 가득 채운 담배는 “황금엽”이라는 이름처럼 노오랗게 색갈이 좋았다.  
문을 열어젖혔는데도 건조실안의 온도는 매우 높았다. 잠간후 왕절름발이가 소리쳤다.
―빨리 담배를 꺼내야 하오.
왕절름발이가 먼저 웃옷을 벗어내치고 웃통을 들어낸채 건조실안으로 들어갔다. 갈비뼈가 아룽아룽한 왕절름발이의 앞모습이 엽아의 눈앞으로 쓱 스쳐갔다. 소만이가 두번째로 건조실에 들어갔다. 엽아는 놓칠세라 소만이를  바라보았다. 소만이가 두다리를 쩍 벌리고 두개의 란간우에 올라섰을 때 엽아는 소만이의 종아리에 불뚝 일어선 단단한 근육을 보았다.
색갈이 좋은 담배들이 한장대 또 한장대 밖으로 들려나와 땅우에 곱게 누웠다. 선근이는 차츰 시름을 놓고 얼굴에 웃음을 피워올렸다. 선근이는 종래로 이처럼 색갈이 좋은 담배를 본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엽아는 크게 들숨을 쉬며 한번 또 한번 담배냄새를 맡았다. 코구멍을 자극하는 그 싱그러운 냄새는 엽아로 하여금 또다시 온몸이 둥둥 뜨는듯한 흥분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진정으로 좋은 담배에서만 나는 냄새였다. 구수하면서도 맵싸한 담배냄새는 청신한 느낌까지 더했다. 왕절름발이와 소만이는 몇번이나 건조실을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했다. 한번씩 건조실에서 나올 때마다 그들의 온몸은 땀으로 하여 물참봉이 되였으며 머리카락은 이마에 찰싹 들어붙었다. 엽아는 왕절름발이와 소만이의 몸뚱이를 번갈아보았다. 소만이의 몸은 근육으로 단단하게 굳어져있었지만 왕절름발이의 몸은 근육 한점 없이 축 처져있었다. 엽아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실웃음을 피워올렸다. 엽아는 속으로 자신을 미쳤다고 욕했다. 머저리, 천치라고 어이없어했다.
어쩌면 내가 그런 아둔한 생각을 할수 있었단말인가?
소만이가 다시 건조실에서 나왔을 때 엽아는 소만이에게 수건을 내밀었다. 소만이는 수건을 받아 온몸으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건조실을 꽉 채웠던 노오란 담배는 한참만에야 마당에 모두 옮겨졌다. 밝은 전등불아래에 촘촘히 가려진 담배는 마치 마당을 가득 메운 황금바다 같았다. 선근이는 자못 흥분된 기색으로 녀편네를 보고 폭죽을 터치우라고 분부했다. 선근이의 녀편네는 실팍한 엉뎅이를 삐뚤거리며 급히 폭죽을 가지러 갔다. 선근이는 인차 폭죽을 걸 참대가지를 주어왔다. 소만이가 참대가지에 폭죽을 걸고 불을 달았다. 폭죽소리는 산꼭대기에서 요란하게 울렸다. 소만이는 귀를 틀어막고 탁탁 터져나가는 폭죽을 바라보았다. 소만이 역시 성공의 희열에 푹 젖어있는듯싶었다. 마지막 하나의 폭죽까지 다 터지자 소만이는 천천히 머리를 돌려 엽아를 바라보았다. 얼굴에 어렸던 웃음이 차츰 굳어지기 시작했다. 소만이는 분명 왕절름발이와 나란히 서있는 엽아를 보았다. 소만이는 왕절름발이가 담배를 꼬나물고 불을 붙이는것을 보고있었다. 엽아도 담배에 불을 붙여 빨고있었다.
엽아의 입에 물려있는 담배대에서 빨간 불빛이 반짝였다. 전등빛에 보이는 엽아의 모습은 무엇엔가 푹 빠져있는듯싶었다. 선근이며 그의 녀편네며 왕절름발이며는 엽아의 그 모습에 주의를 돌리지 못하고있었다. 오직 소만이와 엽아만이 밤하늘아래에서 전등불빛을 빌어 서로를 바라보고있었다. 사실 엽아는 소만이의 눈길에서 이글거리는 불꽃을 보지 못하고있었다.  그때 엽아는 진작 은은히 풍겨오는 담배냄새에 취해있었다. 엽아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발끝이 둥둥 뜨는듯한 기분을 느끼고있었다. 소만이를 바라보는 엽아의 심정은 여간만 복잡한것이 아니였다. 끝내 소만이로부터 관심을 끌어냈다는데서 오는 흥분 그리고 끝내 소만이에게 보복했다는 만족감을 느끼고있었다.
그래, 소만아. 멋져. 나한테로 와. 네가 만약 이 시각 나를 끌어안을수만 있다면 나는 오늘밤 통쾌하게 너를 따라갈것이다. 너와 나만 향수할수 있는 그 행복을 만끽할것이다.
소만이가 천천히 엽아의 쪽으로 다가왔다. 엽아의 얼굴에 어렸던 미소가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엽아는 그때에야 소만이의 눈에서 반짝이는 그 불꽃을 보았다. 엽아는 그 불꽃이 분노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얼굴에 어린 절망과 막무가내의 빛도 보아냈다. 엽아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곁에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이제 곧 무슨 일이 발생할것을 느낀듯싶었다. 엽아의 앞에 다달은 소만이는 갑자기 손을 내밀어 엽아의 손에 들려있는 담배대를 나꿔채 던지고는 죽어라고 짓밟았다. 엽아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소만이, 너 뭘 하는거야?
소만이는 말 한마디 없이 몸을 돌려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소만이는 수도가에 다가가 찬물 한소래를 받아 들었다. 소만이는 며칠전에 엽아가 보았던 그 모습대로 찬물을 머리로부터 쭉 내리부었다.
 
 
5
 
어쩌면 그날 밤에 무슨 일이 꼭 일어나게 되여있었는지도 모른다.
술상은 선근이가 즉흥적으로 벌린것이였다. 사실말이지 술상을 벌려놓고서야 선근이는 무언가 후회되였다. 그날 밤 술을 마시면 누군가에게 꼭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술상에 모여 앉은 다섯 사람 모두 그날 밤 자기의 속궁리가 따로 있었다. 그래도 선근이와 그의 녀편네가 제일 기분이 좋았다고 할수 있었다. 그들은 한 건조실 가득채웠던 황금엽을 성공적으로 말려냈던것이다.
엽아가 주동적으로 술을 마시겠다고 나섰다. 엽아는 무서움도 없이 꿀떡꿀떡 빠른 속도로 술을 마셔댔다. 이미 자기의 주량을 알고있는 엽아는 어쩌면 자기가 도대체 얼마만한 술을 마실수 있는지를 시험해보려고 작정한것 같았다. 차츰 술자리가 흥성거리기 시작했다.
소만이는 여전히 얼굴에 아무 표정도 없이 앉아있었다. 선근이 녀편네는 근본 술을 마실줄 몰랐다. 몇방울만 마셔도 얼굴이 벌개나고 손발이 허공에서 놀았다. 왕절름발이는 평소 술을 잘 마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역시 인차 나동그라졌다. 선근이, 소만이 그리고 엽아가 마지막까지 술상앞에 앉아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근이도 너부러지고 소만이와 엽아만 술상에 남았다.
술에 만취한 엽아는 어렴풋이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였다는것을 느꼈다. 엽아는 간신히 일어나서 몸을 후들후들 떨면서 걸음을 옮겼다. 소만이도 일어나 말 없이 엽아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노오란 담배들이 잠들어있는 마당을 지나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엽아는 여전히 자기의 머리가 맑은 상태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그때 엽아의 머리는 놀랍게도 맑았다. 엽아는 소만이가 천천히 자기의 뒤를 따라온다는것을 직감했다.
엽아는 그만 돌멩이에 걸려 밑둥 끊어진 나무처럼 앞으로  쿵- 하고 넘어졌다. 그 소리와 함께 은근히 뒤를 따르던 소만이가 뛰여와 엽아의 곁에 허리를 굽혔다. 소만이가 손을 내밀어 엽아를 부축하려고 할 때 엽아가 별안간 소만이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아무런 방비도 없었던 소만이는 그 맵시로 엽아의 품에 안겨들었다. 엽아는 끝내 소만이를 안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소만아, 이 곰탱이 같은것아. 너 나를 기를 채워 죽일 생각이지?
소만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엽아는 소만이를 꼭 끌어안았다. 소만이는 마치 침대우에 누운듯 편했다. 엽아가 말했다.
―내가 왜 만나는 남자마다 퇴자를 놓았는지 너 알어? 바로 네놈이 와서 청혼하기를 기다린거다. 헌데 넌 왜 여직 안왔던거야? 똑똑히 알아둬. 내가 뭐 네가 아니면 시집을 못 갈줄 알아? 네가 계속 나를 기 채우면 아무 남자나 만나 도망갈거다. 너 내 말을 믿니? 
엽아는 소만이의 두팔이 자기의 몸뚱이에 힘을 실어옴을 느꼈다. 소만이가 엽아를 힘껏 끌어들이고있었다. 그제야 엽아는 소만이가 자기의 입술을 찾는다는것을 의식하게 되였다. 엽아는 주동적으로 자기의 입술을 소만이의 입술에 가져갔다. 소만이의 입술이 엽아의 입술우에 포개졌다. 엽아는 자기의 입술이 끝내 행복의 대안에 닿았다고 생각했다.
소만이가 입을 열었다.
―누가 너에게 집적거리면 내가 죽여버릴거야.
머리가 진정 맑아서야 엽아는 그날 소만이에게 “누가 감히 나에게 집적거려? 너를 내놓고.” 하고 한마디 안심을 시킬것을 그랬다고 후회했다. 하지만 그날, 엽아는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여서 소만이의 감수에 대해 크게 중시를 돌리지 못했다.
엽아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소만아, 너 그래 누구도 나를 집적거리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하니? 닷새전에 왕절름발이가 나를 보고 같이 북경유람을 가자고 했거든.
엽아는 벌써 그 말을 그렇게 롱담으로 할수 있었다. 엽아는 세상일이란 이렇게 우스운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굴리고있었다.
그래, 하늘이 얼마나 높은줄도 모르는 물건짝 같으니라구. 북경유람이 아니라 세계유람을 시켜준다 해봐라. 네까짓것을  소만이와 비길수 있는가?
하지만 그때 엽아는 소만이의 기분이 가라앉는다는것을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소만이가 천천히 일어섰다.
―소만아, 웬 일이니?
소만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기더니 갑자기 앞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엽아는 저도 몰래 일종의 두려움을 느꼈다. 엽아는 자기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것을 느꼈다. 엽아는 벌떡 일어나서 소만이가 사라진 방향을 따라 쫓아갔다. 아차, 엽아는 또 한번 발을 헛디디며 앞으로 넘어졌다. 엽아는 엎어진 그 맵시로 왕왕 소리내여 통곡했다.
소만이를 내놓고는 누구도 그후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정확히 해석할수 없을것이다.
그날 밤, 경찰들이 와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파출소로 데려갔다. 그들이 술에서 깨여난후 한 사람 한 사람 심문했다.
경찰이 먼저 선근이에게 물었다.
―소만이가 벙어리요?
선근이가 대답했다.
―아닌데요. 절대 벙어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말하기 싫어했습니다.
경찰은 사건의 경과를 상세하게 물었다. 하지만 선근이도 사건의 시말을 상세하게 말할수 없었다.
―무슨 감투끈인지 나도 잘 모릅니다. 그날 나는 담배를 건조실에서 꺼냈거든요. 당신들도 보고있지 않습니까? 왕씨가 불을 보았습니다. 담배색갈이 참 좋지요. 나는 기뻐서 그날 밤에 술자리를 마련하고 경축하려 했지요. 그런데 모두들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실줄이야.
경찰이 또 물었다.
―그들 둘이 싸움한다는것을 당신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소?
―나는 그저 귀신이 곡하는듯한 소리만 들었을뿐입니다. 그 소리에 너무 놀라서 일어나려고 해도 다리가 떨려 도무지 일어날수 없었지요. 간신히 일어나서 마당에 나가보니 왕씨가 마당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소만이가 한쪽에 서있었구요. 그도 못박힌듯했습니다. 손에는 괭이자루를 꽉 잡고서 말입니다. 괭이자루는 대추나무로 만든것이였습니다. 대단히 든든한것이죠. 며칠전에 내가 시장에 가서 사온것입니다. 나는 왕씨가 죽은줄로 알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선근이 녀편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실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지 않았더랬어요. 하지만 나는 워낙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요. 나는 하늘을 째는듯한 소리에 놀라 와들와들 떨었어요. 먼저 우리 나그네를 흔들어 깨웠어요. 우리 나그네는 술에 취했는지라 죽은 돼지처럼 동정이 없었습니다. 나는 감히 혼자서는 밖으로 나갈수 없었지요. 그때 밖이 아주 어두웠으니까요. 나는 우리 나그네의 몸뚱이를 발로 차서 겨우 깨웠습니다. 밖으로 나갔던 나그네가 헐레벌떡 집으로 뛰여들어와 소리쳤습니다. 큰일 났소. 소만이가 왕씨를 때려죽인것 같소.
엽아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 내가 입이 싼 탓이예요. 정말이지 나는 지금 나의 입을 찢어버리고싶어요. 그때 나는 발을 헛디디고 넘어져 근본 일어날수 없었어요. 그렇게 한참 쓰러져있는데 갑자기 산꼭대기에서 괴성이 들려온거예요. 나는 종아리가 부들부들 떨려서 더구나 일어설수 없었어요. 그래도 나는 이를 옥물고 간신히 일어났죠. 하지만 몇걸음 걷지 못하고 또 쓰러졌어요. 한참후 또 일어나서 걸음을 옮겼지만 역시 몇걸음 옮기지 못하고 넘어졌어요. 나는 그렇게 무진 애를 써서야 마당에 들어섰어요. 소만이가 마당에 앉아있었어요. 몽둥이는 소만이의 옆에 놓여져있었구요. 왕씨가 마당에 쓰러져있었어요. 나는 왕씨가 죽은줄로 알았어요. 선근이가 핸드폰을 꺼내들고 신호가 통하는 곳을 찾느라 헤맸어요. 선근이는 끝내 신호가 통하는 곳을 찾아 경찰에 신고했어요.
왕절름발이도 경찰의 심문을 받았다.
―나는 그때 금방 자리에 들었습니다. 잠결에 누군가 나를 허궁 들고있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나는 누가 나와 롱질을 하는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소만이였지요. 소만이는 워낙 말하기 싫어합니다.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워낙 무서운데가 있지요. 소만이는 나를 끌고 어디론가 갔습니다. 나도 그게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술에 녹초가 되여있었거든요. 나는 거기에 누워 또 잠이 들었습니다. 어슴프레 기억나는것은 소만이가 몽둥이를 휘둘렀다는것뿐입니다. 아마 나의 다리를 향해 내리친것 같습니다. 나는 그때 나의 다리가 끊어져나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진짜 절름발이가 되는거지요. 나는 너무 무서워 마구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진짜 몽둥이가 어디엔가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니까요. 소리로 보아서는 몽둥이가 끊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아픔을 느낄수 없었습니다. 나는 후에 또다시 잠에 곯아떨어졌으니까요…
 
종리화(宗利) 1971년 출생. 로신문학원 제13기 청년작가고급연수반 수료. 중국작가협회 회원. 150만자의 소설을 발표. 여러편의 작품이 《소설선간》, 《문화발취》 등 잡지에 수록되고 영어, 한국어로 번역, 출판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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