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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전 2)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사나이
2023년 02월 17일 09시 24분  조회:708  추천:0  작성자: 최상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사나이
 
   사람들은 흔히 젊은 시절에는 도전하며 살고 늙어서는 추억으로 산다고 한다. 나이 여든이 넘어서도 여전히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유일한 조선족 고급양봉학자이며 양봉전문가라 불리우는 김한덕선생이다.
   김한덕은 1943년6월2일에 왕청현 동광향 동광촌에서 아버지 김병룡과 어머니 원애선의 사이에 삼남으로 태여났다. 위로 형들이 병으로 사망하자 그의 부모들은 그를 형제가 여럿이 있는 김씨집의 양자로 들여보냈다. 그집 형제들의 이름(漢)자 돌림에 따라 김한덕(金漢德)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김한덕이란 이름을 가지여서 그런지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건강한 몸으로 인생을 보내고 있다.
    김한덕은 어릴때부터 도전 정신이 매우 강하였다. 학생시절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 소질을 구비하고 있었다. 그는 초급중학교를 졸업하고 예술적기량을 닦기위하여 연변가무학교에 입학하였다. 연변가무학교에 입학한후 열심히 공부하였다.
   운명의 조화라할가 그가 연변가무학교로 간지1년이 되기전에 아버님의 병환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게 되였다. 워낙 생활형편이 어려운데다가 아버지가 입원치료를 받게되니 가정 생활형편은 매우 어려워졌다. 가정의 경제난으로 인하여 학비를 댈수 없게 되였다. 그는 부득불 눈물을 머금고 중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1964년부터 왕청림업국 산하에서 로동자로,기층간부로 있었다. 후에 왕청현 공농합판공장에 전근하였다가 다시 왕청현 사회복리공장으로 전근되여 공장장직을 맡아하였다.  2005년에 정령퇴직을 하였다.
   퇴직하고나서 무엇을 할가 생각하고 있는데 일본에 있는 딸한테서 초청장이 왔다. 김한덕은 부인과 같이 일본려행을 하게 되였다. 일본에 체류해 있는 기간에 일본의 이름난 도시, 해변가, 명산,  명승지를 돌아 보았다. 일본유람을 하면서 제일 인상이 깊었던 것은 다른 나라에서 볼수 없었던 일본식 음식문화였다. 여러 곳을 다니며 여러가지 지방 특색이 있는 음식들을 맛보앗는데 어느곳으로 가던지 그곳의 음식은 다 단맛이나는 것이 특징이였다. 어떤 조미료를 넣었기에 음식이 단맛이 나고 맛이 있을가? 궁금하여 가이드한테 물었더니 가이드가 이런말을 하였다. “과거 일본사람들은 설탕을 즐겨 드셨는데 지금은 설탕을 자시지 않고 설탕대신으로 꿀을 많이 드시고 있습니다. 설탕을 대신하여 꿀을 많이 드시게 되자 일본사람들의 설탕으로 인하여 생기는 고질병인 설사병을 치유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꿀을 많이 드셨기에 일본사람들은 세계에서도 손꼽을만하게 건강장수한 나라로 되였습니다.”
   김한덕은 일본사람들이 설탕대신 꿀을 많이 드셨기에 장수한 나라로 되였다는 말을 듣는 순간 우리 중국에서도 이제는 음식문화를 개변할때가 아닐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꿀을 많이 드시는 일본식 음식습관을 도입하여 중국의 음식문화와 접목한다면 건강장수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가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한번은 후지산을 유람하고 기진맥진하여 호텔로 돌아온 그들부부에게 호텔종업원이 봉교목욕을 해보라고 추천하였다. 봉교목욕을 하고나니 하루종일 쌓였던 피곤은 신기하게도 거뜩 가셔졌다. 알아보니 봉교는 신진대사에 필요한 여러가지 효능이 있는 꿀제품이라고 한다. 그는 봉교의 효능에 감탄하며 “귀국하면 양봉해야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귀국하여 양봉업을 해보기로 마음을 굳힌 김한덕은 귀국하기전에 꿀생산기지를 찾아가 양봉업을 하는 현지인들을 만나 그분들한테서 양봉기술을 초보적으로 배웠으며 양봉에관한 기술서적을 선물받았다. 귀국할때 양봉업에 필요한 자재와 도구를 한짐 샀다.
   귀국한후 양봉업에 관한 지식을 넓히기 위해 신화서점으로 달려갔다. 그당시 신화서점에는 양봉에 관한 조선문으로 된 책이 없었다. 그는 한어로 된 책을 사서 보면서 양봉에 관한 지식을 장악했다. 연후 양봉업을 하기 적합한 연길시 조양천진 부암촌에 터전을 잡고 1만5천원을 투자하여 벌통13개와 기자재를 사고 양봉업을 시작했다.
   일을 하다보면 일이 잘될때가 있고 못될때가 있다. 양봉업을 해본 사람들은 양봉업은 십년일득이라고 말한다. 그말뜻인즉 양봉업은 볼봐엔 간단해 보이고 수익이 높은 업으로 보이지만 정작 해보면 십년에 한번쯤 풍수를 거두는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다. 농사는 하늘이 맞추어 주어야 풍작을 따낼수 있듯이 양봉업도 하늘이 맞추어 주어야 잘된다고 한다. 다행히 김한덕이가 양봉업을 시작한 그해에 기온이 알마춤하여 그는 꿀풍작을 않아왔다. 당해에 800근의 꿀을 받아냈고 벌통도 20개가 늘어났다. 당해에 쓴 비용을 제하고도 만원수입을 올리였다.
    김한덕은 양봉업을 하는 한편 양봉업에 관한 리론적 연구를 하면서 양봉업에서 얻은 실천경험을 총화하여 론문을 썼다. 유관부분에서는 그의 론문을 보고 좋은 평가를 하였다.
    그는 양봉업을 더 확대발전하기 위하여 양봉업을 하는 사람들과 협상하여 자원적으로 양봉전문 합작사를 세웠다. 합작사 회원들은 상호협력하여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였다.
    양봉업도 과학기술이 필요하다. 거대한 국토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북방에는 눈이내리는데 남방에는 꽃이피는 다양한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다. 계절에 따라 피는 꽃이 있는가 하면 사시장철 피는 꽃도 있다. 꽃을 따라 사는 꿀벌은 민감한 동물이다. 꿀벌도 지방벌이 있는가 하면 외래벌도 있다. 자연의 리치에 따라 벌의 특징을 장악하고 관리를 어떻게 하는가? 하는 문제는 양봉업자들 앞에 놓인 과제였다. 우리 연변은 꽃이 피는 기한이 길지않기 때문에 꿀벌들의 월동기간이 긴편이다. 어떻게 하면 꿀벌들의 월동기한을 짧게하고 일년사시절 꿀을 채집하며 십년일득이라는 양봉업의 옛날 고정개념을 떠나 해마다 양봉업의 풍수를 따낼수 있게 할것인가 고심하였다.
   그는 양봉업을 하는 한편, 꿀벌의 월동기간을 리용하여 남방에 있는 양봉기지를 찾아가 견학하였으며 한국을 찾아가 한국의 양봉기술업자들 한테서 양봉기술을 배웠다. 열심히 공부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거쳐 김한덕은 양봉에관한 리론적지식을 장악하여 사람들로부터 조선족의 유일한 양봉기술전문가로 인정받게 되였다.
   어느날 김한덕은 신문을 보다가 중국벌침학회에서 학원들을 모집한다는 기사를 보게 되였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 하던차 그정보를 알게되자 그는 그 자리에서 신문기사에 실린 통신처에 전화하여 벌침연구소에서 개최한 학습반에 참가할것을 신청했다.
   2006년12월 김한덕은 석가장에서 열린 제4기 전국 중의양료림상인용기술양성반에 참가하였다. 양성반에서 저명한 벌침전문가들의 강의를 들었으며 벌침을 놓는 기술을 배웠다. 학습을 통하여 벌침이 인체에 주는 영향과 작용에 관한 리론을 습득하게 되였다. 학습반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성적으로 모범학생이란 영예를 안고 졸업증서를 받았다. 여러차려 벌침연구 학습반에 참가하여 상당한 수준의 벌침치료기술을 장악하게 되였다. 후에 의학부분의 검증을 거쳐 벌침을 연구하는 연구원 인증서를 받았다.
   그는 학습반에서 배운 벌침으로 병을 치료할수 있는 기술을 림상시험에 도입하였다. 부암촌에 있을때 한 마을에 살고 있는 류모는 코암으로 앓고 있었다. 류모는 무더운 여름철에도 솜옷을 입고 다니는 허약한 환자였다. 김한덕은 류모한테 벌침을 놓는 한편 봉교로 코를 씻게 했다. 수십차 벌침을 맞고 봉교로 씻자 류모의 코병은 기적처럼 가뭇 사라졌다. 또 한사람은 화룡시에 있는 김씨성을 가진 모단위의 간부였다. 그는 양성종양으로  고생하다가 소문을 듣고 김한덕을 찾아왔다. 그도 몇달간 벌침치료를 받어 종양을 기본상 제거하여 건강한 몸으로 사업하게 되였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김한덕이 벌침으로 병을 치료한다는 소문이 펴지자 가근방은 물론 외지에서도 많은 환자들이 찾아왔다. 
   어느날 연길시 모 병원 책임자가 김한덕을 찾아왔다. 찾아온 리유는 모 병원에서 김한덕을 벌침의사로 초빙하겠다는 것이였다. 김한덕은 모 병원의 초빙을 수락하고 모병원에서 6년간 벌침의사로 근무하였다. 그는 6년간 벌침으로 많은 고질병 환자들을 치료하여 좋은 호평을 받았다.
   김한덕은 벌침의사로 활력하면서도 꿀벌에 대한 연구를 늦추지 않았다.
   한번은 사과배 과원을 지나다가 꽃이핀 사과배 나무사이로 꿀벌이 날아다니며 수분하는 것을 보게 되였다. 그장면을 보는 순간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꿀벌로 사과배꽃에 수분하면 좋지 않을가? 그렇게 된다면 많은 경제적효과를 얻을수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이 실험을 하기 위하여 연변과학기술협회의 도움으로 연변사과배나무 선조촌인 룡정시로두구진소기촌에 점을 잡고 꿀벌로 사과배꽃 수분시험을 하였다. 꿀벌수분시험을 한후 소기촌사과배전문합작사 책임자는 꿀벌수분은 일손을 덜고 비용을 줄이는 등 여러가지 좋은 점도 있다면서 올해 이 실험기지의 400구루의 나무에서 인공수분용화분비용, 인건비 등을 3,000원 절약할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해에 꿀벌로 수분한 그 과원에서는 사과배 풍작을 따내였다. 꿀벌로 사과배꽃에 수분한 실험이 성공하자 많은 과원에서 김한덕을 초빙하여 꿀벌수분을 하였다.
   김한덕은 꿀벌로 사과배꽃 수분에 성공하자 또다른 실험을 하였다. 이번에는 겨울철 하우스안에서 꿀벌로 딸기를 수분하는 실험을 하였다. 딸기외에도 오이, 토마토에도 꿀벌수분실험을 하였는데 모두 좋은 성과를 따내였다.
   김한덕은 어느한 과학기술 잡지에 “불개미의 몸체에 사람의 몸을 보양하는 좋은 효소들이 들어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김한덕은 그 기사를 보고 흥미를 느끼고 불개미에 대한 연구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불개미 둥지를 채집하여 자신의 실험기지에 갔다놓고 불개미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그는 지금 불개미에 대한 연구를 거쳐 초보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다.
  김한덕은 자기의 실천경험을 토대로 하여300여편의 론문을작성하여 <중국봉업>등 각지의 신문잡지에 투고하였는데 100여편이 발표되였다. 발표된 론문들을 수록하여 책으로 묶어 출판하였다. 2010년1월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한 저서 <양봉기술과 봉산품의 리용>출판기념식이 연길에서 거행되였다. 책은 출판되였지만 누구도 30만자에 달하는 이 전문저서의 저자가 60세가 넘은 조선족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책의 출판으로 1985년 이후 중국에 조선문양봉전문저서가 없는 공백이 메웠졌다.
    김한덕은 2004년에 중국양봉학회로 부터 정식회원이라는 인증서를 발급 받었다.
   2010년에 중국과학기술협회와 재정부에서는 김한덕에게 <전국과학보급혜농봉사 대두인>이라는 칭호를 수요했다. 련이어 길림성과학기술협회, 연변조선족자치주과학기술위원회에서도 김한덕에게 성, 주과학기술보급 선진인이라는 영예증서를 발급하였다.
   김한덕 선생은 2015년에 대전세계양봉대회에 참가하여 양봉산업에 관한 론문을 발표하였으며 대회참가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대회기간에 세계아피몬디아 회원들과 문화교류를 하였다
  연길시조선족양봉전업합작사도 중국양봉학회로 부터  집체 회원 인증서를 발급 받었다.
  도전을 뭠추지 않는 김한덕선생의 황혼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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