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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傘壽)에 이르고 보니
2023년 09월 07일 08시 42분  조회:1887  추천:0  작성자: 최상운
                                         산수에(傘壽) 이르고 보니
 
                                              최상운
 
   세월에 떠밀려 나는 어쩔수 없이 여든(傘壽)이란 산에 오르게 되였다. 여든이란 산에 올라서서 앞을 내다보니 구십이라는 산이 어서 올라 오라고 손짓하고 뒤돌아 보니 지나온 산들이 백세까지 살라고 축수하는것이였다.
   옛 사람들은 무엇때문에 나이 여든이면 산수(傘壽)라 하였을가? 뜻풀이를 하여보면 산(傘)은 우산 산자요 수(壽)는 목숨수자라 나이 여든이면 우산처럼 비를 막으며 살라는 뜻이 아닐가, 우산과 같이 비를 막아줄 그런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나이가 아닐가 생각된다.
    인명재천이란 말이 있다. 사람의 명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하는 뜻이다. 사람은 태여날때부터 한치의 앞날도 내다볼줄 모면서, 얼마를 살지를 모르며 산다. 각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길고 짧게 사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내 나이 여든에 이르렀는데도 하도 건강해 보이니까 누군가 나한테 이런 질문을 들이됐다.
   “선생님은 년세에 비하여 매우 정정하십니다. 건강 비결은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내 건강 비결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간추려 보면 첫째는 부모님들이 나를 건강하게 낳고 키워준데있고 둘째는 내가 자아관리를 잘한데 있으며 세번째는 좋은 세월을 만난데 있다고 봅니다. 지금 보면 세가지 중에서 좋은 세월을 만난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세상  사람이 사는 것이 제나름대로 이건만 사람들은 모든일이 자기의 뜻대로 되지않으면 조상탓을 한다. 나도 한때는 내 일이 잘 풀이지 않자 아버지를 원망했다. 어릴때 가정 경제란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닐수 없고 청년시절에는 아버지 력사문제로 인하여 심리적 고통을 받었다. 심지어는 나를 이렇게 고생시킬것이면 왜 나를 낳았습니까 하는 험한 말을 하기도 했다. 내가 부모가 되여서야 부모님들의 심정을 리해하게 되였고 부모님들을  탓한것을 후회했다.  알고보니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지 않을 부모가 없다. 단지 부모님들의 세월을 잘못 만나 본신도 고생하였으며 자식들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했을 뿐이였다. 나이를 먹고 보니 헴이 드는 것 같다. 이제는 부모님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부모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세월에 대한 말을 하였으니 말난김에 더 말하여야 할것이 있다. 내가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볼때 사람들의 수명이 길고 짧음은 시대와 련관되여있다고 본다.  가혹한 정치제도하에서, 전쟁이 빈번한 시대에는 인구가 감소되였다가 평화로운 시대에서는 인구가 증가하며 수명도 길어진다.
    50년전만하여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길지 않았다. 그 당시 내가 살던 마을에는 환갑을 넘긴 로인이 몇분안되였다. 남자 나이 50이면 “아바이”라는 말을 들었다. 61세가 되면 오래산 로인으로 취급하여 환갑잔치를 베풀었다. 나의 조부님과 부친은 60세 이전에 돌아가셨다. 아마 나는 조부님과 부친의 남겨 놓은 나이를 가졌는지 아무런 병고가 없이 여든이란 산에 올랐다.
    나이는 속일수가 없다고 한다. 나이 여든이면 속을 파먹은 떡호박 같아 보인다. 로인들의 모인 장소로 가면 몸이 아프지 않다는 사람이 없다. 다들 한다는 말이 어느병원 의사가 의술이 고명하다, 어느 약이 효과가 좋다, 보건품은 꼭 먹어야 한다. 등등의 말들을 한다.  나는 그런말을 들을 때면 먼산을 바라 본다.
   자신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겨 왔던 나한테 요즘들어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문밖을 나가면서 열쇠를 지니지 않고 나갔다가 헛 고생을 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나이를 먹으면 말 조심을 하여야 하는데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 줄 모르고 내 좋은 말을 했다가 나이값을 못한다는 피잔을 받기도 했다. 몇번 경을 치르고 나서 나도 이제는 내리는 <악재>를 막기위해 우산을 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젊어서는 꿈을 키우며 살고 늙어서는 추억으로 산다고 한다. 나도 이제는 추억으로 사는것 같다. 추억속에서 지나온 내 인생의 그라프를 그려보면 인생초기에는 그라프 “포물선” 지점이였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행복이 지수가 점차 높아 지는 것이였다. 그라프를 그리다 보니 이런생각이 들었다. 나한테는 무덤까지는 가지고 가야 할 말못할  사연은 없다만 내 인생 그라프속에 지워지지 않는 고마운 분이 몇분있다. 그분들은 다름아닌 네째 이모부님과 내가 다니던 공장에서 공장장 직을 맡고 있던 동봉률씨이다. 나는 그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었지만 아직까지 보답을 못한것이 가슴속에서 내려가지 않는다. 어쩌면 마음씨곱고 패기가 있어 보이던 두분다 오래 사시지 못하고 일찍 돌아 가시여 더 안타갑다.
   내 인생 그라프에는 50세를 기준으로 전 후 생활형편은 천양지차였다.  50세 이전에는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 동분서주 하면서 힘들게 보냈다. 그러던것이 50세를 넘기면서 일이 순조로이 풀려 나갔다. 환갑년에 이르자 운이 탁 트이였다. 부부가 정령퇴직을 하였고 누구의 단속도 제한도 받지 않는 자유인으로 되였다. 퇴직하여 얼마 안되여 외국 나들이를 할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외국 나들이를 하였다.
   외국 나들이를 하면서 려행자금을 장만하게 되자 나는 본격적으로 려행을 시작하였다. 10여년간 21개 나라를 관광하였으며 대만, 향항, 오문을 비롯한 국내의 여러지역과 명승지를 유람하였다. 려행을 하는 한편 기행견문을 부지런히 썼다. 기행문을 정리하여 책으로 묶었다. 기행문을 쓰면서 겸하여 시, 수필, 소설을 썼다. 내가 쓴 문학작품들이 문학지에 100여편 발표되였다. 나도 이제는 보람있게 글쓰는 작가로 되였다는 신심을 가졌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쓴 글들이 적지않게 문학지에 발표되였지만 한번도 문학상을 탄적이 없었다. 마음속으로 은근히 단 한번이라도 문학상을 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 내 속내를 읽기라도 하듯이 중앙인민방송국조선어부에서 나의 기행작품 “최상운, 세계를 돌아보다.”를 8개월간 련재로 방송하였다. 전 세계로 내 작품이 전파되자 나는 행복의 도가니에 빠졌다. 뒤이어 연변일보 문예부간에 “최상운, 세계를 돌아보다.”를 3년 동안 련재로 발표하여 주시였다. 나는 중앙인민방송국조선어부와 연변일보에서 내 작품을 방송하고 실어주자 큰 상을 받었다는 기쁨을 만끽하였다.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산수년에 올랐으니 이제부터는 남아있는 여생을 어떻게 보낼가 숙제로 제기되였다.
   남아있는 여생에 두가지를 꼭 견지하고 싶다. 하나는 걷기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늦깍이로 시작한 글쓰기이다. 나는 20여년간 꾸준히 걷기운동을 하였으며 15년을 매일과 같이 글을 썼다. 내 신체가 이만큼 건강한것도 걷기운동과 글쓰기가 보약이 되지않냐 생각한다. 하기에  남은 여생에 걷기운동과 글쓰기 두가지만은 꼭 견지 하겠다.
   고기를 먹어본 사람이 고기맛을 안다고 한다. 걷기 운동을 하면서  걷기운동이 내 신체건강에 얼마나 좋은가를 알게 되였고 글쓰기가 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의 신체조건으로는 90세, 백세까지도 걷기 운동을 견지 할 것 같다.
   글을 쓰다보니 이런 견해를 가지게 되였다. 글쓰는 사람 –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많이 하였다하여 작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작가란 평범한 일을 평범하지 않게 쓰는 특수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고 본다.
    글쓰기가 어렵다고 하며 나이 60이면 필을 놓는다고 하는데 나는  나이 60에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20년동안 글쓰기를 견지하여왔다. 이제는 하루도 글을쓰지 않으면 무엇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듯 손이 근질근질해 난다.
   년초에 어떤 글을 쓸가 고민하였다. 수기를 쓸까, 수필을 쓸까, 시를 쓸가, 소설을 쓸까 생각하다가 뭔가 떠 오르는 것이 있었다. 여지껏 써보지 못한 중편소설을 쓰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작가란 명예를 가진봐 하고는 장편소설은 몰라도 중편소설은 써야 하지 않을가 생각했다.
   정작 중편소설을 쓰자고 하니 애로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이전처럼 정신이 집중되지 않고 사유가 무디였다. 어떤 주제로, 어떤 형식과 수법으로 써야 할지, 단어하나 철자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했으니 머리가 복잡해 졌다. 그래도 무엇이나 시작하면 끝을 보는 끈질긴 성격을 가진 나는 시간을 쪼개가며 글을썼다.
   여든 나이가 인생 그라프에서 행복지수의 최고점이 아닐가 생각된다. 세월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산수년에 오르기는 했다만 이제부터는 좀씩 내리막길을 걸어야 할것 같다. 퇴직 전에는 당당한 사회의 주력군으로 존경을 받었다고 하면 퇴직후에는 성쌓고 남은 돌이되여 주눅이 들것만 나는 남은 여생을 의의 있게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라에서는 로인들에게 오래살라고 양로금을 발급한다. 나도 그 혜택을 받으면서 걷기운동과 글을 쓰면서 구십(卒壽)년을 지나 백세(上壽)년까지 가려는 욕심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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