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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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밥상 변천사
2022년 11월 18일 11시 01분  조회:973  추천:0  작성자: 최상운
                                     우리집 밥상 변천사
 
    세월과 더불어 우리집 밥상은 옛날 부자집 밥상이 부럽지 않으리만치 풍성해지고 있다.
    요즘들어 나는 풍성한 반찬 덕분에 반주를 겉들이는 습관까지 생겨났다. 특히 고기반찬을 안주 삼아 마시는 술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나는 식사때마다 먼저 밥상을 쭉 훑어 보고는 밥상에 고기반찬이 있으면 술병을 가져온다. 형편이 좋아진 근래에는 끼니마다  밥상에 고기반찬이 오르다보니 자연히 반주를 마시는 일이 잦아졌다.
   40년전만 해도 우리 집 밥상에는 고기반찬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명절때에만 고기점이 올랐을 뿐 평소에는 장국과 김치가 위주이고 어쩌다가 밥상에 닭알이 오를 때도 있는데 그 날은 에누리 없이 누구가의 생일날이였다. 그토록 귀하던 닭알도 지금은 거의 끼니마다 밥상에 오르다싶이 한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하였다. 부자와 빈민을 가려 내려면 그들이 입고 다니는 옷을 보아서는 구별하기 어려우나 고기와 부식물을 사는것을 보면 알수 있다고 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안해의 소비관이 바뀐 것을 발견하였다. 예전에 안해는 고기나 부식물을 살때 값 싼 것을 골라 사느라 신경을 썼는데 지금은 품질이 좋은 물건을 사고 흐뭇해 하는 안해의 모습을 보면서 안해도 이제는 아끼고 모으는 고유의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 방식을 추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생을 살아 오면서 어머니와 안해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살아 왔다. 사람들이 나한테 어머니와 안해가 만든 음식중에서 누가 만든 음식이 더 맛이 있었더냐고 묻는다면 안해가 해준 음식보다 어머니가 만든 음식이 더 맛이 있었다고 대답 할 것이다.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27년간 어머니가 해준 음식을 먹었다. 그 당시 우리집은10여명 식구가 사는 대 가정이였다. 어머니는 매일마다10여명 식구들의 밥상을 갖추느라 로심초사하시였다. 고기붙이는 없었지만 여러가지 김치와 각종 나물들이 밥상에 올라 늘 푸짐하였다. 어머니는 계절에 따라 들나물과 산나물을 캐다가 밥상에 올렸는데 봄에는 달래김치와 민들레무침, 여름철에는 미나리, 고사리, 더덕, 버섯으로 만든 반찬들이 올랐다.
   어머니는 아무리 일이 힘들고 고달파도 아침밥을 잘  먹어야 힘이 난다면서 아침에는 꼭 밥을 지어주었다. 저녁은 옥수수죽에 감자, 호박을 곁들어 먹는 것이 보통이였다.
   나는 여짓껏  어머니가 어느때 주무시셨고 어느때 일어 났는지 기억 못하고 있다. 단지 어련푸시 떠 오르는것은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보면 어머니는 어느새 일어 나 아침 준비를 하시던 모습이 우렸히 떠 오른다.
   어머니는 늘 저녁이면 다음날에 쓸 음식 재료들을 미리 준비해 놓으셨다. 밥을 지을 때 가마솥에 먼저 넙적하게 썬 감자를 펴고 그 우에 옥수수쌀을 얹은다음   입쌀을  살짝 펴고 나서 물을 부었다. 어머니가 밥 지을 준비를 마무리 짓고 가마뚜껑을 덮으면 아버지는 부억 아궁이에 불을 지피였다. 한참지나 가마가 달아오르고 뜨거운 김이 솟구치면서 가마뚜껑이 드르렁 소리를 내였다. 뜸을 들이고  어머니는 가마뚜껑을 열고 밥을 골고루 저어 놓는다. 가마에서 풍기는 구수한 밥 냄새는 우리들의 군침을 돋구었다. 
   지금 같아서는 순 옥수수밥이나 다름없는 밥이 무슨 맛이 있었으련만 그 때 그 시절에는 그 밥이 어찌도 맛 있었던지 별미중의 별미였다. 어머니는 밥을 큰 그릇에 듬뿍 담아 밥상우에 올려놓고 나서 장국과 김치, 고추장, 장졸임, 야채볶음, 싱싱한 나물을 차례로 올려놓는다. 어머니가 밥상을 차려 놓으면 우리는 밥상에 빙 둘러 앉아 구수한 장국에 밥을 말아서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밥그릇을  비워버리군 했다.  밥을 다 먹은 뒤에는  누룽지와 슝늉을 먹게 되는데 그 맛이 또한 기가막히였다. 지금도 가끔 그 시절 어머니가 차린 밥상을 떠올리면 군침이 돈다.
   결혼하여 새 살림을 꾸리게 되자 이번에는 어머님의 손길을 떠나 안해가 지은 음식을 먹게 되였다. 새 살림을 꾸리게 되자 깨알이 쏟아 질둣이 달콤하게 살리라 생각 했다 그런데 그런것이 아니였다. 여러 식구가 큰상에 둘러 앉아 음식을 먹을 때에는 뭐나 다 맛이 있었는데 달랑 두 사람이  작은 밥상에 마주 앉아 음식을 먹자고 하니 무엇을 하나 잊은 것처럼 허전해 나며 밥맛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더구나 어머니는 음식을 좀  슴슴하게 만들었는데 안해는 좀 짜게 만들어 음식맛이 제대로 나지 않아 얼굴을 찌푸릴때가 있었다.
   내가 어머니가 만든 장국을 즐겨 먹었는데 안해가 만든 장국은 어머니가 만든 장국보다 맛이 달라 잘 먹지 않았다. 내가 안해가 만든 장국을 즐겨 먹지 않자 안해는 시어머니를 찾아가 맞있게 장국을 만드는 비결을 배워 왔다. 어머니는 장국을 만들때 먼저 장과 시래기를 기름에 튀운다음 물을 부었다.
   수 십년간 안해가 차려준 밥을 먹고나니 이제는 안해의 음식맛에 길들어져 군소리가 없이 달게 먹는다.
   개혁 개방후 우리 가족의 주거생활은 큰 변화를 가져 왔다. 초가집에서 벽돌집으로 이사를 했고  벽돌집에서 아빠트단지로 이사를 했다. 아빠트단지로 이사 온 후 우리집 밥상도 변하기 시작하였다. 작은 밥상으로 부터 여러 사람이 앉을수 있는 큰 상으로 되였다. 채식의 위주던 밥상이 고기와 해산물이 많이 밥상에 올랐다.  안해는 로년기에 들어서자 로년에는 손바닥 1/4 만큼한 고기를 매일 자세야 건강에 리롭다는 의사들이 말을 듣고 때마다 고기 반찬을 올리였다.
    한가지 고기도 많이 먹으면 고기 맛을 잃게 된다. 안해는 며칠에 한번씩 돼지고기,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 해어를 번갈아 가며 밥상에 올렸다. 나는 매일 이다싶이 변하는 밥상을 보면서 우리집 밥상이 부자집 밥상이나 다름 없다고 하면서 안해의 음식 솜씨가 일품이라고 칭찬 하였다.  내가 안해 음식 솜씨가 일품이라고 창찬하자 이튼날 새로운 음식이 상에 올랐다.
   아빠트 단지로 이사 오고 보니 새로운 페단이 생기 였다. 단층집에 있을 때에는 터밭에서 남새를 가꾸거나 겨울에 먹을것을 저장하느라 바삐 돌아 쳤다. 아빠트 단지로 이사를 오고 보니 그런 번거름이 없어서 좋기는 한데 몸이 불편한 안해가 매일 힘들게 계단을 오르 내리며 시장에 가 물건을 사야 했으니 부담이 되였다. 힘들어 하는 안해를 보면서 내가 당신이 시키는 대로 물건을 사 오겠으니 당신은 시키기만 하라고 했다. 안해는 내가 사온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며 기어이 자신이 사는 것이 였다. 나는 할수 없이 안해의 충실한 짐군으로 되였다.
   요즘은 근심걱정없이 보내면서 매일 산해진미를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지만 옛날에 먹던 움김치가 문득문득 생각났다. 아빠트 단지로 이사 온 후 김치가 옛날 김치처럼 맛이 나지 않았다. 안해는  집적 김치를 담그지 않고 명성이 높은 “금강산”김치를 사왔다.  “금강산”김치도 첫 맛은 좋았는데 몇 때 먹고나니 그 김치도 그 김치라며 젓 가락이 김치쪽으로 가지 않았다. 왜서 같은 배추로 같은 조미료를 가지고 같은 방식으로 김치를 담그었는데도 옛날이 김치 맛이 나지 않을가? 분석하여 보니 집에서 담근 김치나 시장에서 산 김치는 움 김치처럼 제대로 발효되고 숙성되지 못한데 있다고 생각 되였다.  
   흥안촌에서 살때 우리집 김치는 움 김치여서 유별나게 맛이 있었다. 습도와 온도가 알마춤한 움에 저장된 김치는 초저름 김치 맛이 따로 있고 움에서 일정한 정도로 숙성된 묵은 김치 맛이 따로 있었다. 잘 숙성된 움김치는 새큼하면서도 싸한 맛이 돌아 밥 도둑이란 말을 들을 만큼 맛이 있었다. 시내에 살고 있는 사돈이 우리집에 왔다가 김치를 먹어 보고는 세상 별미라고 칭찬 하였다. 후에 사돈은 고기를 사가지고 와서 우리집 김치를 바꾸어 가기도 했다.
   며칠전에 연길 교외에서 사는 처제가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것 처럼 움 김치를 한 박스 가지고 왔다. 안해가 처제가 가지고 온 박스를 헤치자 특유의 싱그러운 김치냄새가 물씬 풍기였다.  군침을 삼키는 나를 보던 안내는 바로 배추김치 한잎을 찢어서  내 입에 넣어주었다. 배추김치는 칼로 썰어서 먹기보다 쭉쭉 찢어서 먹는게 더 일품이였다. 씹을수록 새큼하고 싸  한것이  옛날 그 맛이였다. 그 날 저녁에는  움 김치에 수육을 싸서 안주를 하니 술이 술술 잘도 넘어갔다.
   처제가 가지고 온 김치를 다 먹자 나는 고기를 사들고 체제네 집으로 가서 주기적으로 고기와 김치를 바꾸어 먹자고 약속 했다.
   작은 물방울이 태양빛을 반사할 수 있듯 한낱 우리 집 밥상 변천사에서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나날이 향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질생활이 더없이 풍요로워진 오늘날 밥상의 변천은 인민들의 생활이 갈수록 아름다운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가 싶다.
   부부가 오래 살려면 서로가 존중하며, 칭찬해 주며, 보듬어 주며 알콩달콩 맛나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도 장수 비결이 아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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