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张学奎文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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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프로필 댓글:  조회:2210  추천:2  2014-11-08
장학규 필명 리지 1964년 8월 5일 현 목단강시 서안구 해남향 사호촌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조문전업 졸업. 흑룡강성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리사,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 선후 ‘료녕조선문보’,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흑룡강신문사’에서 편집 기자로 근무. 2000년 3월 청도 진출. 흑룡강신문사 산동지사 편집. “신인평론문학응모” 최우수상, 흑룡강성 소수민족문학상, 한국 해외문학상 대상, 김학철문학상 등 다수  수상 수필집 “머리 잃은 곤혹”, "연장된 아빠", 소설집 “청도로그인” , 평론집 "문학, 자타의 시각속에 내세우다" 등 출간. E – mail: 1277676963@qq.com QQ: 1277676963
55    연장된 아빠 댓글:  조회:1081  추천:3  2014-10-30
수필 연장된 아빠 장학규 딸애가 아파 병원으로 갔다. 한여름 감기가 쉽사리 낫지 않는다. 꼬박 이틀동안 링겔을 맞고 겨우 3일만에야 딸애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래도 방심하기엔 이른 시점이였다. 하루종일 쉴새없이 재잘거리던 입이 아직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링겔 약을 호사 아가씨에게 전해주고 차례를 기다리고있는데 바로 앞에 선 대여섯살되여보이는 머슴애가 문득 돌아서면서 나에게 뭐라고 말을 걸어왔다. 잡생각에 파묻혔던 나는 애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꼬마야, 이제 뭐랬지?” 미안하다는듯 머슴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으니 이넘이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나 오늘 차 타구 왔어.” “오, 그랬구나. 대단해.” 애를 잔뜩 띄워놓고 돌아서는데 아까부터 나를 건너다보던 딸애가 오래간만에 입을 열었다. “아빠, 그 애가 첫마디 뭐랬는줄 알아?” “뭐랬는데?” “할아버지.” 나는 그만 머쓱하여 입을 다물고말았다. 하긴 거리에 나갔다가 간간히 “할아버지” 소리를 듣긴 한다. 바로 얼마전에도 딸애한테서 볼멘 소리를 들은적이 있었다. “아빠, 머리 좀 염색해. 친구들이 내 할아버지인줄로 안단말야.” 이제 겨우 열살난 딸애가 나를 많이 안쓰러워하는 눈치다. 내 머리는 삼십대 중반부터 희여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거의 쉬임없이 두달에 한번꼴로 염색을 해왔다. 자칫 늦춰지거나 잊어서 시간을 넘기면 바로 희끗희끗한 로인의 몰골이 된다. 근년에 와서는 인터넷을 통해 머리 염색약에 발암물질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괜히 속이 졸아들어 염색을 자꾸 뒤로 미루기도 했었다. 솔직히 옛날같으면 쉰이 된 내 나이가 넉넉히 “할아버지”소리를 듣고도 남음이 있었을것이다. 좀 드물기는 해도 요즘 세월에도 그런 젊은 할아버지를 가끔 보게 된다. 실제로 얼마전에 청도에 있는 딸집으로 놀러온 친구와 술 한잔 하면서 킬킬거린적도 있다. “당신은 손녀인데 난 딸이유.” “아빠 오래하면 좋지. 난 자식들과 어울릴 일이 없어졌소.” 친구는 이젠 “할아버지” 역할만 남았다며 별로 맥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그러고보니 친구는 어느새 아들딸로부터 “아버지”로, 며느리사위로부터는 “아버님”으로 격상되여있었다. 어느 누구도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돈 떨어지자 배고픈 경우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이런 때를 두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는지 알수 없다. 여하튼 그날따라 딸애가 내 주위를 빙빙 돌며 “아빠, 아빠” 그렇게 불러주어 나는 한껏 부풀어오른대신 친구는 많이 부러운 모습이 되여있었다. 따져보면 부모자식간의 연이 어느 한 선을 두고 쭉 갈라지는 법은 없다. 죽어서도 음과 양으로 나뉘여 그리움으로 회억으로 마냥 이어가는게 부모자식간의 정이다. 나는 자식 하나를 사고로 잃은 사람이다. 아들을 앞세운 고통과 참회의 긴 터널을 지나 어렵사리 다시 만난 자식이 지금 열살난 딸애다. 마침 그때가 연해도시 진출 내또래 조선족들중에서 둘째를 낳는 바람이 일어났을때이고 그 바람에 편승하여 마음이 죽어버렸던 나도 소생하여 “아빠” 직업에 다시 복직하게 되였다. 새로 등업하고보니 이 직업이 철부지일때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있다는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였다. 신성함과 위대함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이 인내하고 양보하고 자상해야 하는 역할이 덧붙혀진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한없이 커지고 끝없이 작아지는 그 공간을 부지런히 오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흔히들 중년의 나이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사회에서 중층이여서 우아래로 샌드위치처럼 짓이겨져 스트레스가 만만찮다. 그렇다고 어디가서 해소할데도 없다. 누구처럼 직장이나 사업을 쉽게 때려치울수 없다. 젊은 친구들은 혈기가 왕성하여 바로 새로운 직업에 적응하고 두려움없이 창업을 시도할수 있다. 중년은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핍박감에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한번 넘어지면 자칫 다시 일어설수 없다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혀있다. 그만큼 인생을 다시 리모델링하기에는 넉넉한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그렇게 마음에 화가 쌓여있을때 아이가 곧 약이 된다. “아빠” 한마디에 온몸을 짓누르던 스트레스가 어느새 훌쩍 날아가버린다. 후줄끈해서 들어서는 아빠의 품속에 뛰여들기라도 하면 난데없는 새힘이 부쩍 솟아나기도 한다. 연장된 아빠는 그래서 좋다. 멋있다. 그리고 참말 보람차다. “아빠”만큼 큰집은 없다고 알고있다. 자식들이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큰집이다. 우산처럼, 나무처럼 그늘을 만들고 보호막을 쳐서 어린 자식들을 한뺌한뺌 키워서 사회에 내놓아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아빠이다. 그런데 자식을 다 키워놓고보면 아빠는 자식들로부터 멀어지는 존재가 된다. 자식을 지키려는 본능이 어느새 자식들에게 코미디처럼 다가가고 한사코 손을 잡고 가르치려는 행동이 많이 부담스러워진다. 그리고 습관적인 타이름이 벌써 잔소리로 굴러떨어진다. 교감이 적어지고 시각차이가 심해지면서 점차 “아버지”로 멀어지게 된다. 이제 “아버지”에 비해 “아빠”의 우점이 한결 선명해보인다. 아빠는 아직도 자식과 스킨쉽을 시도해도 거정당하지 않는 단계이다. 스킨쉽을 통해 혈육의 정을 듬뿍 느껴받을수 있는 행복한 당사자이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어쩌면 연장된 아빠한테는 자식이 큰집일수도 있다. 퇴근하자바람으로 집으로 달려오게 하는 흡인력이 있다. 자식에게 사랑을 구걸하느라고 별의별 개그를 다 펼치게 되고 자식에게 이끌려 어디론가 가고싶어진다. 자식이 큰 선심을 써서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한입 크게 물려준다면 평생 행복으로 간주하게 된다. 거기에 키스 하나를 선사해준다면 그대로 금상첨화로 새삶을 찾은 기분이다. 한번 “아빠”를 연장해볼만 하다. 여기에 핑계나 구실을 앞세울 까닭이 없다. 내가 보람차고 자식이 배로 사랑을 받는 윈윈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54    칭다오조선족작가협회 대표단 한국 방문 댓글:  조회:790  추천:0  2014-10-18
칭다오조선족작가협회 대표단 한국 방문 중· 한 수교 제22주 기념 문화교류 펼쳐       대전에 본부를 둔 한국해외문화교류협회(공동대표 이동규, 김청호)의 초청으로 칭다오조선족작가협회(회장 이문혁)소속 시인 작가 15명이 지난 10월 9일부터 13일까지 4박5일간 한국을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지난해 8월 한국해외문화교류회 대표단 21명이 칭다오를 방문한테 따른 답방 형태로 이루어졌다. 대표단 일행은 한국에 도착한 첫째 날인 9일 오후 충남 아산에 도착, 이순신 장군을 모신 현충사와 신정호 유원지를 관람한 후 환영만찬과 더불어 청도조선족작가협회에서 충남신문 아산주재 이강부 국장에게 '청도문학상'을 시상했다. 행사가 끝난 후 일행은 도고온천에서 숙박하며 한국 작가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만남의 첫 여정을 풀었다. 다음날인 10일에는 대전으로 이동하여 대덕연구단지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간단한 연수를 마친 후 경북 경주로 이동, 유네스코에 등재된 양동마을을 돌아보고 이어 경주 인교동에 자리한 삼국사기 문무왕 때 유적지 안압지(雁鴨池)를 탐방하고 숙소 경주 콩코드 호텔에서 숙박하며 이틀째 한국에서의 밤을 지냈다. 세번째 날은 월성원자력발전소를 방문하고 주상절리와 불국사 등 문화재를 구경한 후 오후에 대전으로 이동하여 이번 방한 목적인 중·한 수교 22주년을 맞아 제6회 중· 한 문화교류행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중국측 장학규 이홍철, 한국측 임채원 김정에게 한국해외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  한국 한진호, 김현중, 김완수씨에게 신인상을 발급했다. 연후 중국측에서는 한국측 전원에게 문학상 및 문화상, 감사장을 전달하고 한국측에서도 중국측 전원에게 문화상과 감사장을 시상했다. 행사 마지막엔 두 단체가 발간한 회원지 '해외문학'과 '갯벌의 하얀 진주'의 공동 출판회를 진행하고 시낭송과 악기 연주 및 노래자랑 등 순서로 이어갔다. 특히 초대가수 허진주씨와 성악가 김명환, 박부도김 및 김애경씨 등이 무대에 올라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했다. 이날 밤은 한국 작가들의 자택에서 홈스테이를 체험했다. 마지막 날인 12일에는 대전의 명소 뿌리공원과 대전 오월드 동물원을 둘러본 후 오후 서울 종로 인사동으로 이동, 시가연(詩歌緣)카페에서 한국해외문화교류협회 서울회원들과 더불어 우정과 친분을 맺는 장이 마련되었다. 이로써 4박5일간 한국방문 일정을 원만히 소화했다. 한국해외문화교류회는 2007년 3월 창립, 대전 광역시 중구에 본부를 둔 비영리 정식 등록 문화단체이다. 한편 청도조선족작가협회는 2008년에 출범, 현재 자체의 카페를 운영중에 있으며 해마다 회원작품집 '갯벌의 하얀 진주'를 발간하고 있다.   / 장학규 기자
53    벽소설가 김군과 그의 문학세계 댓글:  조회:769  추천:0  2014-10-07
  평론 벽소설가 김군과 그의 문학세계      김군의 벽소설집 "사랑의 외연"이 출간되였다.알알이 꽉 여문 59편의 벽소설로 묶어진 작품집은 그만큼 무겁기만 하다.낯도 코도 모르는 한 한국인에 의해 출판되여서인가? 그렇찮아도 한번쯤 김군을 곁들며 무언가 말하려고 하던 참이였는데 마침 출판 소식이 전해져 다행이라 생각된다.     김군이 누구냐?    물론 이런 질문도 따져보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그만큼 문단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니깐. 언론이나 문예지에 몸 담은 그런 직계가 아니니깐.료녕성 신빈현의 한 교원에 불과한 그를 중시해줄 사람이 없는것도 해괴할리 없다.   필자는 좀 괴벽한 사람이다.남들이 서로 올리추고 내리출 때 나름대로 "방계부대"에 눈길을 돌리고 자료 수집에 나서게 되였고 그러는 와중에 발견한 사람이 바로 김군,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에 예고도 없이 차를 여러번 바꾸어 타면서 문뜩 찾아갔었다.   김군을 면대해보니 여러모로 삐여진 사람이였다.180에 가까운 훤칠한 키에 준수한 얼굴을 가졌었다.50대의 사나이에게 "준수"라는 단어 사용이 좀은 억지에 가까운 느낌이 들지만 실지로 김군은 그런 형용에 부끄럼 없이 젊고 생기있는 모습을 하고있었다.본명도 아이러니하게 김진수(金真秀)이다.   소주 한근쯤은 숭늉 마시듯 례사롭게 굽내는 김군은 필자와의 10년 년령차이도 불구하고 너나들이로 망년지교를 맺자고 접어드는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편벽한 신빈현의 교육부문에서 사업하면서 20여년간 주로 벽소설을 꾸준히 창작해온 무명인물이기도 했다.지금까지 그가 발표한 벽소설은 저그만치 200여편,이외에도 단편소설 수편과 1편의 중편소설,그리고 100여편의 수필과  20여수의 시가 있다.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으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수자였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여직껏 김군을 잘 모르고있었을가? 우리 문단에서 벽소설가로 이미 작고하신 박은선생과 아직도 창작에 무비의 정열을 쏟고있는 박일선생은 꼽고있지만 유독 김군만은 빠드리고 있는것이다.작품수와 수상경력이 상기 두분에 손색 없는 김군을 말이다.그 원인은 주로 아래와 같은 몇가지에 있다고 본다.   우선 지역성이다.김군의 활동범위는 주로 료녕성에 국한되여있다.료녕에는 공개간행물이 없기에 망각된 구석으로 될수밖에 없는것이다.   다음은 김군작품의 70프로이상이 신문의 문예부간지에 발표된것이다.주지하는바 우리의 평론계는 종래로 신문문예부간지따위에는 눈길도 돌리지 않는다.물론 종합간행물에 실린 글도 작품 취급을 받지 못한다.   끝으로 활동성이다.재야계 문인들은 언론지나 문예지를 찾아다니며 안목을 익히는것이  자신을 알리는 아주 중요한 환절인데 김군은 소탈한 성격과는 달리 그런데는 또 숙맥이였다.   김군의 처지는 한두마디로 말하기 어렵다.애처롭다면 너무 비감적인것 같고 서글프다면 어딘가 비중이 경감되는 느낌이다.아무튼 그를 동정하기에 앞서 그의 작품세계를 파헤침으로써 공정한 평가를 기대해보는것이 더 좋을것이다.     넓은 사색의 공간을 주는 여운미     어찌보면 우리 사회는 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농후한것 같다.당연히 실력이 모자라니까 어디서 두루 얻어들은 소리로 눈가림을 하거나 자신의 "유식"함을 뽐내려는것이 우리 문인들의 고루한 인습인것 같다.그래서 대수라도 알고있는것을 모두 쏟아놓아야 남들이 긍정해줄줄로 알고 대서특필하기를 즐긴다.마치도 독자들은 멍청이인듯 모든것을 글쓴이가 혼자서 이야기하기에 읽고나면 남는것이 꼬물도 없다.기실 작자가 말한것은 독자들도 알고있는 일이기때문이다.   김군은 위인이 그렇듯이 좀체로 뽐내는 법이 없이 언제나 겸손하다.경상도 사나이답게 호매롭기는 하나 비위 거슬리는 호기는 도무지 없다.술 한컵을 부어놓고 "먹어라"가 아니고 "먹는다"하는 단마디로 먼저 굽내는 스타일이였다."안 먹으면 어쩔란다"라는 억지도 전혀 없다.   때문에 그의 글에서도 이래라 저래라 또는 이렇다 저렇다는 식의 서술이 없이 독자 나름대로의 리해나 해석에 스스럼없이 맡겨버리는 어른다운 멋이 있다.바꾸어 말하면 김군의 작품은 확 드러나는 주제가 없다.독자의 감상수준을 충분히 긍정한다는듯 많이는 주제선행의 전통에서 벗어남으로써 깊은 여운미를 풍기고있다.   수상작이며 역시 대표작이라고도 할수 있는 "사랑의 외연"은 남새장사를 하는 녀인이 자신의 첫 련인과 동명인 고객에게 덤으로 채소를 안겨주는 간단한 사실을 쓰고있다.작자는 "그녀"의 동기에 아무런 설명도 가하지 않았다.그리고 그녀의 배경도 설정하지 않았다.하기에 독자들은 제가끔 상상의 나래를 펼칠수밖에 없다."그녀"가 너무도 다정다감한 녀인이여서 시종여일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있다는것,또는 "그녀"가 이미 리혼하고 애타게 첫사랑과의 파경중원(破镜重圆)을 기대한다는것,혹은 인젠 바람날 나이가 되여 첫사랑과의 밀회를 그리고있을지도 모른다는것,아무렇게나 뜻풀이가 가능해진다.   사실상 인류가 수천년 사랑을 영위해오면서 그 내포에 대한 정의는 벌써 규명해놓은지 옛날이다.그러나 사랑이 복사하는 외연은 폭이 너무도 넓어서 도무지 종잡기 어려운것이다.두말할것 없이 거기에 작자의 주장이나 의도 같은것을 삽입하는것은 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만이 할수 있는 일이다.거꾸로 풀이한다면 작자의 동기가 베일에 가리워져 있을수록 독자들에겐 사색의 공간이 그만큼 넓어지고 작품은 새김할 여운미가 더욱 진하게 풍기기 마련인것이다.여하튼 "그녀"의 소박한 행위와 절절한 마음을 통해 독자들은 진한 사랑의 내음을 맡게 되고 따라서 아름다운 동양화 한폭을 머리속에 우렷이 떠올릴수 있는것이다.   "여름 타는 녀인"도 인물체격이 쭉 빠진 미모의 녀인이 무더운 한여름철에도 치마 입기를 거절하는 장면만 쓰고있다.멋 부리기를 즐기는 젊은 녀성들의 공성이랄가."그녀"도 여름이 오면 다른 녀인들처럼 슈펴에 가서 치마 한견지쯤은 쇼핑한다고 한다.그러나 종래로 입지 않는단다.남들이 보지 않는 자택에서도 입을념을 하지 않는단다.왜서일가? 궁금하다.그녀의 종아리에 생채기가 있을것이다.아니면 음특한 남성들이 날씬한 다리에 매료되여 따라다닐가봐 두려워서이다.여러번 그런 일이 있어 인젠 두렵다.그렇지도 않으면 무작정 치마를 배격하는 심리병이 있을것이다.작자가 설명하지 않고 알려주지 않았기에 독자들은 나름대로 짐작할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현대파적 창작수법을 도입한것도 아니다.자연주의 냄새가 얼마간 풍기는것도 사실이나 그것과 등호를 치기에는 사실주의 성분이 너무도 많다.슈제트 자체가 한코한코 이어졌고 장면이 놀랍도록 진실하다.그리고 인물의 행동이 엉뚱한데가 없이 질서정연하고 대화도 론리성이 강하다.그런데도 작자가 노린 점이 은페되여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지 도무지 잡혀지지 않는다.단지 영문 모를 녀인의 영문 모를 행위가 마그네슘 섬광에 의해 재현되듯 우리의 눈앞에 커다랗게 클로즈업될 뿐이다.물로 그녀는 아름다왔다.   이처럼 독자가 완전한 피동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는 아마도 김군의 작품에서 처음일것 같다.주제 선행의 고루한 인습에 물젖은 우리 문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여직껏 우리는 현대파냐 사실주의냐 하는 문제에만 쟁론의 초점을 모았을뿐이였지 사실주의 자체도 계속 파고들수 있는 여지와 계기가 있다는것은 의식하지 못했었다.아니,전혀 거기에 관심이 없었던것이다.   사물은 내부의 끊임 없는 모순투쟁으로 라선식발전을 한다고 철학은 말하고있다.이것이 진리라고 전제할 때 사실주의 전통도 개변의 여지가 다분한것은 두말이면 잔소리이다.말하자면 전통이란것은 요지부동한 개념이 아닌것이다.전통은 수시로 변할수 있으며 전통은 또한 수시로 창조할수 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언젠가 김군은 이렇게 말한적이 있었다.   "인간은 특별한 리유가 없이 발큰 성을 낼수도 있는 사유론리를 가지고있다.따라서 자기의 사상을 한사코 은페시킬수도 있는 보호의식을 가지고있는것이다."   풀이해 말한다면 문제는 하나이지만 답안은 여러개일수도 있다는 말이다.3원 3차 방정식 같다고나 할가.그 어느 답안이나 모두 정확하다는 얘기가 되겠다.     함축과 진실에 받쳐진 독특한 심미관     최대한으로 숨긴다는것과 최대한으로 줄인다는것은 모름지기 김군의 창작풍격이다.하긴 편폭의 제한을 받고 있는 벽소설 자체의 특성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김군과 얘기해보면 오히려 그의 성격기질에서 유인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알수 있다.   김군은 자신의 창작성과를 그의 글쓰기처럼 간단하게 "운이 좋았다"라는 한마디로 귀결시켰다.그의 인생길은 퍼그나 순탄했다고 한다."문화대혁명"때의 초중졸업생으로 고향에 돌아간 그는 철자는 물론 띄여쓰기도 잘 모르는 형편에서 민영교원으로 채용되였고 그뒤 사범학교에 추천되는 영광이 차례졌으며 졸업후에는 소학교,중학교,현 교원연수학교로 두루 전전했었다.그사이에 연변대학 통신학부에 입학하여 1986년에 졸업증을 타기도 했단다.이런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오늘의 창작성취도 있을리 만무하다는 귀납이다.   "운"이란 운수의 간칭이다.사전을 들춰보면 운수란 이미 정해져 있어 인간의 힘으로써는 어떻게 할수 없는 천운과 기수라고 한다.그러니까 숙명론적냄새가 다분히 풍기는 단어인것이다.기왕 하늘과 땅 그리고 돌아가는 운명의 조화였다면 인간의 노력은 마땅히 무시되여야 할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김군의 생애를 다시 들추어보지 않을수 없다.그 세대 사람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김군도 십여세의 한창 나이에 배움의 길을 잃고 귀향한다.가령 운의 작간이 제대로 되였다면 그는 곧장 대학으로 진입했어야 할것이다.그리고 민영교원으로 초빙되고 사범학교로 추천되는 오직 김군만이 선택될수 있는 그 조건과 노력을 우리는 간과할수 없는것이다.   우리 앞에 김군은 이런 형상으로 나타나고있다.천자도 아니되는 짤막한 글을 쓰기 위해 수권의 책을 읽는다.벽소설에 취미를 붙여서부터 벽소설에 관한 잡지와 책자를 주문 또는 구매하여 탐독한다.그의 책상머리에는 20여년간 줄곧 "벽소설 선간"이 놓여있다.그는 비록 볼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직접 생활과 부딪쳐서 글감을 발굴하군 한다.   설날에 우편물을 받고서 감수했다는 "보람",우편물을 받은 당사자가 우편물을 배달하는 주인공으로 달랑 신분을 바꾸었을뿐 자기가 직접 겪은 진실한 사실을 간단하게 쓰고있다.물론 글속의 "김선생"도 작자 자신임은 두말이면 잔소리이다.제목만 없었더라면 우편물을 전달한 그 행위결과를 "보람"과 이어주기에는 모자라는 장치가 너무도 많다.고루한 사유모식으로 추리를 한다면 아무리 벽소설일지라도 "수위실 아바이"는 비오는 날  우전국으로 전보 가지러 가기전에 두루 심리전을 거쳐야 하고 또 "김선생"에게 그 전보를 전달한 후엔 뿌듯함을 느껴야 정상적일법도 한 일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사실을 스케치하고 카피를 떠버린 거기에는 작자의 고의가 숨어있다."왜?"라는 되새김을 부추기도록 의경속에 생명반성을 직접 담아버린것이다.   실생활과 찰나의 령감을 그대로 적고있는 이런 작품을 례로 들자면 적지 않다.   "어느 하루"에 등장하는 구두닦이 동창생도 진짜 모델이 있다.틀림 없는 김군의 동창이였고 신빈현성에서 구두닦이를 하고있었다.김군의 소개로 필자가 구두발을 내밀고 앉아 직접 취재를 하여 신문 1면 톱기사로 올린적까지 있는 사람이였다.한국바람이 몹시 불어치던 20세기 90년대말,한 조선족사나이가 코리안드림에 흔들리지 않고, 그것도 타향이 아닌 친인들이 지켜보는 고향땅에서 떳떳하게 구두닦이를 하고있었다.그때 그분이 한 말 "한국바람에 조선사람들 코풀 힘이라두 생긴건 사실이지만..."이 그대로 벽소설 "어느 하루"에 등장하는것만 봐도 김군의 창작태도가 아주 해학적이란걸 알수 있다.나아가서 작가가 어떤 심미효과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선히 느껴진다.   이외에도 로인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 옮긴 "할머니의 사랑이야기", 밥을 먹다가 주었다는 "밥상머리에서 주은 이야기" 등이 있다.   "운이 좋았다"는 단마디 짧은 대답에 너무 긴 해석을 했다.기실 문체는 되도록 소박하게 처리하고 짜임새는 반대로 정교하게 꾸미기에 집착하는 김군의 스타일은 이번 출판된 소설집의 앞부분에 작가의 말 제목을 "혀 짜른 소리"로 단것만 보아도 대강 짐작을 할수 있을것이다.아마도 숙명같은것이 따라다니는가부다.     흑색유머와 과장으로 이루어낸 환상미      분량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많다고 해야 할것이다.김군의 성격 및 김군의 개성과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일것이다.   김군은 여유를 잃는것을 대가로 하는 그 어떤 일도 할념을 않는다.현소학교 교장 자리도 시간을 잡아먹는 일감이라고 선뜻 벗어버리는 "패기"를 가진 사람이다.남들은 그 자리를 서로 다투느라고 혈안이 되지만 김군은 히쭉 웃고 뒤로 물러났다.그 이유는 역시 글쓰기이다.담배 한대 느끗하게 피워물고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작품을 발굴,구상,완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러한 김군을 만나게 된다.주방일을 돌볼 필요없는 중년 남성이 할 일 없이 채소시장에서 빈들빈들 돌아다닌다.괜히 매일 먹는 채소를 만지작거리거나 불량한 마음을 품은 사람같이 장사군 아줌마들을 뚫어지게 살펴본다.그렇게 거기서 "사랑의 외연"과 같은 소재를 주었단다. 남자가 백화점에 자주 다니는것도 드문 일이다.사지도 않으면서 실없이 판매원아가씨와 가격흥정하는것도 싱겁기만 하다.김군이 로천시장이나 슈퍼나 백화점에 다니는것은 "여름 타는 녀인"과 같은 이야기를 줏기 위해서라고 한다.그래도 김군이 제일 즐겨 찾는곳이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환담하는 자리이다.독보조던 길거리던 또는 아빠트단지내의 공원에서던 그런건 상관없다.그런 자리라면 천하기문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오니깐.그런 자리에서 걷어낸것들을 굳이 라렬하자면   우선은 "심양사람"이다.난생처음 도회지 그것도 심양 구경을 간 "달광"이가 심심하던차 호텔을 쳐다보다 낯선 젊은이 둘과 맞닥뜨린다.상대가 뭘하냐고 묻자 "달광"이는 몇층이나 되는가 세여보는중이라고 대답했고 심양에선 층집을 세려면 매층에 돈 2원씩 내야 한다는 협박을 받게 된다. 그래서 "약삭빠른" "달광"이가 17층까지 센걸 5층을 셌다고 거짓말 하여 10원을 내게 된다.그로써 "심양사람도 그저 그렇구나" 하는 결론을 도출해낸 "달광"이는 퍼그나 으쓱해진다.동네방네에 많이 떠돌아다니던 과장된 이야기이다.재미로 소일거리로 읽을만한 작품이다.   다음은 꽤나 심각한 "외지녀자"이다.마촌장의 작풍문제를 밝히려고 현규률검사위원회의 장씨가 파견된다.자신의 신분을 농업국 직원으로 숨기고 마촌장과 대작을 하게 된 장씨는 예기치 않게 마촌장과 렵기적인 내기를 하게 된다.장씨가 나가서 들고온 팬티 냄새만 맡고 어느 집의 누구거란걸 두번이나 마촌장은 대뜸 알아맞췄다.억이 막힌 장씨는 가게에서 새 팬티 하나를 사가지고 와서 마촌장네 암소 궁둥이에 둬번 비벼대고 들어왔다."이번에야 흥!" 냉소했지만 마촌장은 "이건 우리 집 냄새 비슷한...외지녀자의것이 분명해!"라는 "정확한 판단"을 한다.그 내기가 본질 겸 자백 겸이 되여서 마촌장은 직에서 나떨어지고 장씨도 도덕적인 멍에로 내부 비판을 받게 된다는 야싸한 이야기이다.육담마당에나 들어갈상 싶은 이야기이지만 우리 사회문제가 저 정도로 심각하고 위험한 경지에 이르렀다는걸 감안할 때 유머보다는 경종으로 받아들이는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작가도 한번 웃고말자는 쪽으로 타이밍을 맞춘것은 아닐것이다.   "속죄"도 좀은 과장되고 좀은 유머화된 그런 쪽으로 맥락을 같이 한다.림종을 앞둔 령감이 량심 발견인듯 전에 바람 피웠던 사실을 고백하고 마누라의 용서를 빈다.저 세상으로 가는 령감이 심리평형이라도 이루라고 마누라는 자기도 바람 피웠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다섯째 딸의 아버지가 령감이 아니란것이다.결과는 생각밖에 속좁은 령감의 명을 재촉하였다.첫돐 제사날에 마누라는 그런 일 없었다는걸 밝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였다.이 소설은 인성이 상당한 깊이로 다루어진 작품이다.자기의 잘못은 남의 용서를 받기를 원하면서도 남의 차실은 쉽사리 량해할수 없는 인심의 량극을 블랙유머를 통해 또렷하게 표현하였다.작가는 마누라의 입을 빌어 령감을 속좁은 사람으로 타매하지만 실지로 인간으로서 참말로 극복하기 어려운것이 바로 남 말 하기 쉽다는 것이다.한치 눈앞도 캄캄한게 인성이고 그런 인성앞에선 누구나 우렬이 없다고 보면 역시 극단일가?     맺는 말     책을 받고 단숨에 읽었다.오랜만에 독서의 취미를 느껴보는거 같다.벽소설집이라는 테마가 흥미로왔던 점도 있었지만 바쁜 세월에 바로바로 읽기에 편한것이 벽소설이라는 설명을 실감하는 현장이기도 했다.     특히 작가와는 10여년 사귀여왔었기 때문에 그 내역을 비교적 잘 아는 편이여서 작품론에 작가론을 곁들었음을 정중히 밝힌다.        어
52    여인상의 항주인 댓글:  조회:832  추천:1  2014-09-28
수필 여인상의 항주인 장학규   항주에 발을 붙인지도 어언간 5년,그간 관광지만 돌아다니다보니 당지인과 교류할 시간을 거의 가지지 못했다.그러다가 문득 어느날 많은 항주인들과 상대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 되였다."세종식품"이란 가게를 내면서부터였다.우리와 너무 다른 그들만의 사유모식,성격기질을 발견하게 되여 무척 당혹스러웠다.     충돌은 가게방을 찾는데서부터 생겼다.면적이나 지리위치같은것은 차제이고 우선 주인의 태도부터 문제거리였다.옷가게면 된다 서점이면 더욱 좋고 이런 식으로 집주인이라는 사람들이 장사거리를 만들어주는 고약한 버릇들이 있었다.세상에 이런 법이 어딧냐고 펄쩍 뛰며 나와도 다시 상론하자며 말리지도 않았다.환장하겠네를 수십번 곱씹던 끝에 겨우 그런 규제를 하지 않는 집주인을 만나 계약을 맺기에 이르렀는데 전형적인 강남사나이인 이 양반에게는 더 희한한 메뉴가 있었다.신분증은 물론 회사 주소 ,집 전화 등을 상세히 적어둘 뿐만 아니라 호적부,결혼증 같은 것도 카피를 떠서 달라는 것이였다.     "이 자식 까께베 아니야?"   내가 우리 말로 투털대는데 옆에 있던 안해가 한술 더 뜬다.   "까께베보담 시에미가 제격이예요."   양도비에 보증금에 내라는 돈은 다 내고도 "까께베"내지 "시에미"가 내놓은 요구를 만족시키느라고 보름이란 시간을 훌쩍 흘러보냈다.하느님 맙소서!     그러나 이 정도는 약과였다.가게를 정식 운영하면서 매일 매일 짜증스러운 일에 부딪쳐야 했다.가게를 들르는 사람들은 거개가 흔히 일컽는 그런 짠돌들이였다.분명 세트로 된것들도 개수로 팔라는 사람들이였다.한국 커피가 좋다는 말은 들었다.그러나 만에 하나 맛이 없으면 세트로 샀다가 어쩔건가? 먼저 터뜨려 하나만 달라. 맛 있으면 또 오는거다.한둘도 아니구 거개가 이런 식이니 나중엔 열이 받쳐 터쳐버렸고 평균치보다 곱으로 되는 가격으로 팔았다.그러나 거기서 끝이다.다음에 와서는 다른 물건을 그렇게 팔라는 요구를 제기해왔다.절강사람들의 경제머리가 뛰여나다는 말은 많이 들어왔지만 이 정도로 심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어느 이벤트행사에서 무료 선물이 있다는 소문만 돌면 새벽 2시부터 비오는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였다.무더운 여름철엔 전기세가 나간다고 서점 상가 또는 싸구려 식당에서 빵 하나에 음료 한병을 주문해놓고 하루 종일 보내는 사람들이다.아이구 기가 질려!     항주인들은 이렇게 계산적이다.마치도 자로 잰듯이 치밀한 계산을 앞세우기에 실수가 거의 없고 손해를 자초하지도 않는다.     항주의 거리에서는 북방에서 흔히 보게 되는 칼부림의 장면을 거의 볼수 없다.깡패무리들도 없는상 싶다.우리 주변 가게들은 거개가 외지인들이 경영하지만 소위 보호비 명색을 가지고 다니는 놈팽이들을 전혀 볼수 없다.집법자들도 뗑뗑거리는 법이 없고 점잖고 문명한 편이다. 그렇다고 싸우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실제로 싸움을 질기게 하는 편이다.모순이 생긴 두 사람이 오히려 관객이 열을 낼 지경으로 몇시간씩 허비하면서 입싸움을 벌리는 것이 보통이다.싸우는 상대보다 구경군을 더 의식하면서 서로 약자인체 피해자인체 가장하는것을 보면 막 기가 질린다. 나같이 세부에 둔하고 해석에 약한 사람은 그저 입만 하 벌리고 있어야 한다.     항주인들은 스스로 "북방에서는 남편을 섬기고 남방에서는 안해를 섬긴다"는 말을 꺼리낌없이 하고 있다.그만큼 항주는 많이 여성화된 도시이다.앞에서 구구히 말한 것을 내놓고도 우선 생김생김부터 그랬다.미인의 도시답게 눈을 주는 곳이면 버들가지처럼 늘씬한 여인들이 보인다.몸매가 호리호리하여도 납작하지는 않다.튀여나올데는 다 튀여나왔다는 얘기이다.북방에서 흔히 보게 되는 웅장하고 거쿨진 사내보다 왜소하고 아리한 남자가 대부분이다.그래서인지 가지런히 다니는 남녀를 보면 남자쪽이 많이 기운다는 느낌을 진하게 받게 된다.이런 외모상의 차이때문에 남자들이 많이 움츠러든다는 말을 당지인들을 통해 직접 확인한바 있다.딴에는 그럴듯하다.그러니까 남자들이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애를 봐야 하겠지.안해를 섬겨야 하니까.주부 아닌 주부가 되여진 항주의 남자들은 그래서인지 목소리마저 가늘고 챙챙하다.     항주를 한번 다녀간 사람들은 깔끔하게 다듬어진 도시의 모습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섬세한 항주인들은 손바닥만한 공지가 나져도 그대로 놔두는 법이 없고 곧잘 화원 또는 풀밭으로 다듬어낸다.엉뎅이 들이댈 자리도 안될 것 같은 공지에 잔디를 깔고 오솔길 내고 정자를 세우는 것을 보면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재래로 항주는 강소성 소주시와 더불어 정원의 도시로 알려졌다.서호에서 가장 큰 인공섬인 소영주-삼담인월이라고도 함-는 말그대로 정원예술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호수속에 섬,그속에 또 호수가 4개,그 가운데가 또 섬이다.물과 육지가 4겹으로 이루어져 절경을 자랑한다.팔뚝만한 잉어들이 두려움 모르고 정자밑을 유유히 헤염쳐 다니고 실실히 늘어진 수양버늘이 미풍에 하느작거린다.그속에 몸을 담고 있노라면 여유있고 풍류스럽게 인생을 영위해온 항주인들의 과거가 되새겨진다.     물론 현재도 그들은 다심하다할 정도로 모든 지혜와 재능을 동원하여 고향을 다듬고 있다.서호의 면적은 5.6평방킬로메터,고국인들이 바다로 착각하듯이 가히 작다고 할 수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300년전의 모습을 회복한답시고 수천금을 들여 서호 확장공사를 진행,수만평의 땅을 호수로 판 동시에 여기저기 올망졸망한 건물을 지었다.나무를 옮기고 다리를 놓고 갈대를 심었다.그런 세부미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중국 10대 명찰중의 하나인 영은사를 보아도 그렇다.조형이 각이하고 대소가 부동한 비래봉의 470존 석굴 조상,점토로 20메터 높이에 150존 불상을 조각해낸 "53참배" 바다섬 입체칼라군조 등은 항주인들의 섬세와 인내, 끈질긴 미덕을 그대로 반영해주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영은사로 통하는 길도 오솔길을 방불케 하는 2차선이다.그래서 휴일이나 불교명절 때면 차가 몇시간씩 밀리기가 일쑤여서 어지간히 짜증나지 않는다.자가용이 기하급수로 늘고 있는 항주이고 보면 도로개조가,특히 관광지의 도로개조가 시급한 문제로 대두한 듯 싶은데 항주시 정부에서는 소위 왕래 차량을 소통시킨답시고 많은 자금을 허비하면서 주변 산들에 터널을 뚫으면서도 시원하게 대통로를 뽑아 차들을 씽씽 빼내올 궁리는 죽어도 하지 않는다.역사문화도시의 판도를 깨서는 아니되고 더우기 관광지로서의 깊숙하고 아늑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망가버려서는 아니된다는 속셈이 숨어있다.     항주인들의 군상은 대개 이렇다.단체나 개인이나 모두 잘 다듬어져 있고 세련되여 있다.틈서리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이 쇼핑을 나선 귀부인의 모습과 방불하다.무엇 하나 허투루 대하는 것이 없고 쭉 신경을 모아서 매사에 임한다.깨끗하고 질서정연한 것이 또한 일솜씨가 잰 가정주부의 타입이다.총체적으로 여인상인만큼 소심하고 잘고 다사하고 우유부단한 약점도 가지고 있어 더러 성깔이 나는 구석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정부가 이런 스타일이면 백성에겐 그 이상의 복이 없을 것이며 백성이 이런 양상이면 살림살이가 윤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실제로 항주인들은 복된 삶을 누리고 있다.  
51    시골길 댓글:  조회:595  추천:1  2014-09-28
  시 시골길 장학규   선택된 주정뱅이 구부정하게 누워있다 재 넘어 소음에도 귀는 막고 차례진 아픔을 동그랗게 삼키며 굴러가는 지구도 주머니에 다져넣는다 나그네의 지친 발목에 창자를 찢어 매질하며 파아란 지평선과 취미로 흘레한다 륵골이 드러난 활등에 하늘을 손바닥만하게 반사하고 애오라지 정열을 뒤뚱거리는 환영에 소모한다 올것은 오더라도 갈데까지 가면서 동전이야 있든말든 신음을 곤두세우며 영원을 안주한다는거 나름대로 천상지하에 둘도 없는 삶이란다
50    전설 댓글:  조회:558  추천:0  2014-09-28
시 전설 장학규 나는 전설을 물었다 락엽이  너펄대더라도 죽순앞에서 죽는 시늉을 해본다 어느 때는 암석에 우는 상을 지으며 나는 조용히 북두성을 가르킨다 저기 록이 울려퍼져도 난 차가운 드라마에   안주하면서 살고프다
49    2014칭다오조선족민속축제 축구예선전 개시 댓글:  조회:609  추천:0  2014-09-16
2014칭다오조선족민속축제 축구 예선전 개시 노래자랑 예선전도 인기몰이 다가오는 10월 1일부터 3일까지 진행되는 “칭다오조선족향우연합회 2014’치치할컵’민속운동회”가 개막 보름이상 남겨두고 벌써 화끈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9월 14일 칭다오시 청양체육훈련기지에서 운동회 최고인기종목인 축구 예선 경기가 진행되었다. 이날 예선 경기는 1,2,3번 경기장에서 동시에 시작, 도합 10껨의 경기가 치러졌다. 재칭다오조선족향우연합회 산하 21개 향우회중 오상, 해림, 왕청 등 17개 팀이 축구경기에 참가, 4개 조로 나뉘어 리그전을 펼치게 된다. 올해는 외지 선수를 영입하지 않고 순수 칭다오에 거주하는 고향인들의 축제로만 개최하려는 주최측의 의지에 따라 선수 선발에도 엄격한 조건을 제시했다. 매 팀에는 40대 이상 선수가 반드시 2명이상 있어야 하고 20대는 4~6명내로 제한했다. 아울러 참가팀이 많아 축제기간에 소화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여 축제 개막전에 19껨의 예선 경기를 치루기로 결정했다. 이날 예선전 10껨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경기는 해림팀과 화룡팀의 경기였다. 가목사, 왕청과 함께 ‘죽음의 조’로 알려진 A조에 든 두팀의 경기는 결승경기에 맞먹는다는 평가를 받으며 치렬한 공방전을 펼쳤다. 결국 해림팀의 한 선수가 엘로카드 두장을 누적하여 퇴장당하면서 형세는 기울어져 화룡팀이 3대2로 힘들게 이겼다. 나머지 경기 결과 계서팀이 5대1로 상지팀을, 안도팀이 2대1로 밀산팀을, 왕청팀이 6대5로 가목사팀을, 길림팀이 3대0으로 녕안팀을, 철려팀이 2대1로 상지팀을, 통화팀이 6대1로 철려팀을, 서란팀이 8대1로 치치할팀을, 계서팀이 2대0으로 연수팀을 이겼고 오상팀과 교하팀은 5대5로 빅었다. 다음 예선전은 한주일후인 21일 여전히 체육훈련기지에서 진행된다. 이날은 예선전인데도 불구하고 수천명 관중이 모여들었으며 칭다오한국인병원과 청양병원 국제부에서 전문 의료인원들이 나와서 만일의 상황을 대비했으며 조선족대학생연의회에서 자원봉사에 나서서 찬사를 받았다. 한편 민속축제의 꽃으로 불리우는 노래자랑 예선전도 이보다 하루 앞선 13일에 개시, 중청년은 물론 노인과 어린 학생들도 참가하여 만만치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48    못 말리는 유전인자 댓글:  조회:1515  추천:1  2014-09-16
못 말리는 유전인자 장학규   조깅에 재미를 붙인지도 꽤나 된다. 젊었을때는 새벽까지 책을 보고 늦잠 자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지금은 열시만 되면 눈꺼풀이 저절로 내리덮여서 도무지 이겨낼수가 없다. 대신 새벽 4시가 좀 넘으면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을수가 없다. 아무리 눈을 감고 숨을 죽여도 잠이라는 물건이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하는수 없이 어슬렁 기어 일어나 식구들이 덩달아 깨날가봐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늙지도 않은 몸이 지금 난시부르스를 하고 있는셈이다. 고작 조깅을 시작하게 된 동기설명이 좀 길어졌다. 그런데 이건 좀 심각한 문제인데 매일 조깅하러 나갈때마다 눈쌀이 찌프려지는 일이 하나 있다. 간밤까지 멀쩡하던 아파트 앞의 쓰레기통이 아침만 되면 널부러져서 '내장'을 산지사방에 헤쳐버리고있는것이다. 처음에는 동물들의 짓거리일 것이라 의례 짐작했었다. 요즘 뉴스에서 메돼지 수가 불어서 피해가 막심하다는 소식을 가끔 들어오는 중이였다. 게다가 아파트 단지내에 벼라별 형형색색의 강아지를 키우는 업주들이 많았다. 솔직히 그 메돼지류나 강아지류들의 짓거리일지 누가 안단말인가? 그러다가 오늘 아침 그 '동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었다. 아주 멀쩡하게 차려입은 쉰나마 됨직한 아저씨였다. 쓰레기 통을 뒤져서 병사리나 종이따위를 챙기고 있었는데 진짜 메돼지처럼 쓰레기통에 사람 머리가 다 들어가다싶이 하고있었다. 일전 반도도시보에 희한한 기사가 떠서 나는 그걸 보고 하루종일 속이 더부룩했었다. 청도 이촌의 어느 강 하나가 늦가을 비로 하여 불어서 거기에 빠져죽은 사람 하나가 있다는 기사였다. 좀 랭혈적인 말일지도 모르지만 별로 관심이 가는 소식은 아닌상 싶다. 강물이 불어서 사람이 빠져죽는 일은 어느 동네서나 예사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는 불감증에 절어있는 사회에서 산다. 매일 이 동네 저 마을에서 사건사고가 다발적으로 터져 인명이 파리 목숨처럼 죽어나가는것을 목격하고 듣는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마비되어 무감각적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솔직히 좀 부아통이 돋아나는 그런 사건이었다. 발단은 물이 불어나면서 강으로 여러가지 륙지의 물건들이 떠내려오는것이었다. 사고를 친 사람은 그 떠내려오는 물건들중에 쓸만한 것이 보여서 그걸 주으려다가 발을 헛디뎌 강물에 밀려간것이다. 아주 허황한 희생임에 틀림없다. 그 기사를 쓴 기자라는 인간도 참 재미있었다. 사고 현장에서 생방송을 하고있었는데 자기가 취재하고 있는 와중에도 여러 사람이 강물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널판자나 플라스틱박스 같은 이런 저런 "보물"을 건지고 있었다고 덧붙인것이다. 보물? 세상에! 거리나 강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것을 '보물'이라고 형용할 수 있는 기자가 있다니 같은 기자로서 그저 얼굴이 뜨끔해난다. 하기사 내가 필요하지 않는걸 남이 유용하게 쓸수 있다면 그게 그 남한테는 보물일수가 있겠다. 그러나 어쩌면 주인도 쓸려고 챙겨두었던것이 폭우에 쓸려 떠내려왔을지도 모를 남의 물건을 공짜로 챙기려고 목숨까지 내거는 그 행위는 어쨌던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을 할수는 없겠다. 행여 주어서 원주인한테 돌려주려고 했다면 또 모를까 기자의 취재에서 보다싶이 그런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우니 아무튼 이래저래 정당하지도 깨끗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한 조소거리행위라고 할수밖에 없다. 산동사람들의 위생관념은 말하지 않아도 세상사람들이 다 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밥 먹는 자리에서도 꺼리낌없이 휭하고 코를 풀고 그 손을 씻지도 않고 만두를 쥐어 된장에 찍어먹는 일은 다반사이다. 남에 대한 배려심이 전혀 없이 자기 몸만 빠져나갈수 있다면 아파트 계단이고 입구고 아무렇게나 쓰레기들과 물건들을 쌓아둔다. 물론 공용장소나 공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온통 쓰레기 천지다. 내가 살고 있는 백사하 강변만 해도 그렇다. 정부에서 숱한 돈을 들여 강변을 공원처럼 꾸며놓았다. 그런데 매일 수백명의 낚시군들이 모여들면서 강변에는 별의별 오가잡탕들이 버려져서 쓰레기장을 방불케한다. 낚시군들이 낚시를 하면서 낚시밥 봉지나 이것저것 군입질하면서 생겨나는 쓰레기들을 바로 옆에 그대로 버리기 때문이다. 이틑날 그 자리에 와서 또 낚시질 할것이 분명한데도 오늘만 편하면 만사대길이라는 인간족속들이다. 그래서 느닷없이 미국 인디안인들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글로벌시대를 맞이했는데도 인디언들이 계속 원시생활을 고집하니까 미국 정부에서 한번 강제적인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고 한다. 토굴 같은 것들을 다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고층아파트를 지어준 것이다. 몇달이 지나서 이 사람들이 아파트 생활 어떻게 하냐고 찾아가보니 아파트엔 돼지나 닭 같은 동물들을 키우고 자기들은 숲속에다 초막집을 다시 지어놓고 지내더란다. 이것은 어느 학자의 글에 게재된 내용이다. 결코 타민족이나 타국민을 비하하려는 생각은 없다. 내가 말하고저 하는것은 대를 이어오는 유전인자는 그래서 말릴수 없다는것이다. 어렸을 적에 한족들이 애 돍잔치를 하면 우리가 애에게 의식적으로 연필이나 책을 쥐도록 유인하는것처럼 한족들은 쥐꼬리를 쥐도록 애를 닥달하는것을 많이 보아왔었다. 쥐처럼 뭐나 집으로 끌어들이라는 고심이였다. 그런 문화속에서 인성이 자사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법이 있는가?! 그런게 몸에 배겨지면 인디언들처럼 아파트가 초막집보다 불편해지게 되는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사회는 발전한다. 거기에 맞추어 사람도 적응하면서 탈피를 거듭해야 하는것이다.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는것이 나쁜 문화라면 고치는 노력을 해야 하고 조상이 초막집에서 딩굴었다고 그 후손들이 살기 편한 아파트를 거부한다면 인류는 퇴화되고 말것이다. 요즘 청도 민족사회도 많이 변모되여가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모진 가난에 찌들렸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정말 억세게 일하고 벌었었다. 그런데 이제 주머니에 몇푼 담겨지기 시작하니까 점차 고향에서의 나쁜 버릇들이 되살아나고있는것 같다. 술도박이 머리를 쳐들고 허풍떨기가 다시 성행하고있다. 니 잘났니 내 못났니 다투기가 또 시작되고 너나없이 얼굴을 빳빳이 쳐들고 안하무인으로 거리를 쓸기 시작하는 모양새다. 역시나 유전인자란것은 못말리는구나 하는 막무가내와 더불어 더 늦기전에 이제라도 고향을 어렵게 떠났던 초심을 되새기며 각자가 자신의 유전인자를 고쳐나가는 노력을 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47    나약함은 선이다 댓글:  조회:915  추천:1  2014-09-11
  수필 나약함은 선이다 장학규   요즘 사람들은 나약함을 별로 존경하지 않는다. 아니, 인류가 진화해서부터 나약을 많이 타매했던거 같다. 그리고 근래에 와서 한술 더 떠서 나약한 사람을 실컷 짓밟다가 아예 그대로 시궁창에 처넣고있다. 그만큼 세상은 나약을 부정의 대상물로 인지하고있는것이다. 사람들은 다시 되돌아올수 없는 무시무시한 루비콘강을 서슴없이 건너는 우직한 인물을 용사라고 칭찬할지언정 반면에 그 강가에서 사나흘동안 신발을 흠뻑 적시면서 이해득실을 꼼꼼히 따지는 소심한 인간을 못난이라고 질타한다. 알프스산마냥 거대한 골리앗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미는 다윗을 영웅으로 치켜세울지언정 송태조 조광윤에게 무모한 저항을 하지 않고 그대로 나라를 들어 바침으로써 백성들을 도탄속에 빠뜨리지 않은 오월국 마지막 임금 전숙은 핫바지 정도로 멸시한다. 어쩌면 인성에 동물적인 본능이 바이러스화되여 유전인자로 고착되지 않았나싶다. 인간은 태초부터 다분히 호전적이였다. 자연과의 거친 싸움에서 강하고 적극적이고 주동적일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대로 물려져 수천년이 흘러 전쟁이 없어진 지금도 폭력게임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애들도 지칠줄 모르고 할아버지 세대마저 귀동냥으로만 들어온 싸움놀이를 열심히 한다. 액션이나 범죄같은 스토리는 마냥 베스트셀러다. 하긴 나약함의 대착점에 있는것들은 참으로 대단하고 존경스러운것들이다. 악행과 부조리에 대항하는것은 이 사회가 한결 안전하게 진화하는데 도움이 되였고 세상과 선뜻 부딪치고 적극적으로 거기에 부응해가는것도 인류가 융합과 조화를 이루어가는 지름길이였다. 물론 우점이 두드러진것만큼 그와 맞먹게 역효과도 작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한번의 열혈에 천하가 요동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평시 생활상에서도 참고 넘어가면 또는 주책없이 끼여들지 않으면 그대로 조용했을 일이 엉망진창이 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사람들은 궤춤이 좀 불룩해지거나 또는 한소리를 좀 낼수 있거나 아니면 성격적으로 납뜨기를 좋아하기만 하면 무조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한다. 왜 꼭 그래야만 하는가? 나약도 존재할 권리가 있는것이다. 인간이 성격적으로 꼭같을수가 없고 또 같아서는 아니되는것처럼 나약도 나름대로 필요한 기질이고 가치이다. 우자자 모두가 들고 일어나고 누구라없이 자기 주장만 편다면 세상은 그만 질서를 잃고만다. 말없이 조용히 따라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리더가 비로서 빛을 낼수 있는것이다. 그러니까 나약은 억울하고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있는셈이다. 꽃을 받쳐주는 푸른 잎이 짓이겨진 한심한 경우와 같다. 나약함에 응당한 존경이 따라야 한다. 나약은 꼭 나쁜 말만은 아니다. 많은 경우 이 세계의 평화는 나약이 가져다주는것이다. 따라주는것도 나약이지만 한편으로 바지 궤춤을 잡고 한사코 따라가지 않는것도 나약함이다. 그래서 많은 모순을 소리없이 순화시키고 따라서 피비린내나는 충돌을 미연에 방지한다. 나약의 지혜는 자신의 앞길을 설계하지 않는데서도 엿볼수 있다. 일찌감치 부자가 될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그 꿈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많은것을 잃는다. 나중 성공했다해도 돌아보면 가진건 ‘부’밖에 없다. 그러나 나약한 사람은 우유부단때문에 거의 자기 갈 길을 그려내지 못한다. 가다가 그려보고 다시 수정하고 그러면서 인생경험을 루적한다. 사실 인생의 종착점을 미연에 그려놓는건 참으로 피곤할 일이다. 그 포인트 하나만 보면서 헐레벌떡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약함에는 그런 부담이 없다. 나약함에 자랑을 느껴도 무방하다. 적어도 그 나약함때문에 이 세상은 많이 조용해지고 많이 조화로워지고 또 많이 많이 따스해지기때문이다. 떳떳하게 나약해야 할 리유가 참으로 많다. 자신의 나약함때문에 속상하지 말자. 나약은 하나의 선이고 나약은 어찌보면 하나의 미덕이기도 하다.  
46    프레임의 착시 댓글:  조회:626  추천:2  2014-09-11
  수필 프레임의 착시 장학규 자잘한 일상생활에서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세면을 하고 손을 들어 타올을 더듬다가 헛다리를 짚을때가 가장 울화가 치밀때다. 별로 큰 일도 아닌데 슬슬 슬그머니 부아통이 작동하는게 스스로 돌아봐도 꽤나 한심한 일이다. 대개 그럴때는 열에 아홉번은 안해가 원래 걸어두었던 타올을 빨면서 새 타올을 바꿔두지 않았을 무렵이다. 천날 만날 볼부은 소리를 해도 여전히 그 식이 장식이다. 장롱속에는 새 타올 수십장이 포장도 풀지 못한채 잠자고있다. 행사장 같은 모임에 가면 타올이 선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안해는 그걸 관속에 넣고갈 궁리인지 웬간해서는 손을 댈 생각을 않는다. 집에서 내가 자주 놀림을 받는 일이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쓰레기통때문이다. 우리 자랄때는 주방 봉당에 일명 바께쯔라는 물통 하나를 놓고 모든 쓰레기를 거기에 버리군 했었다. 그런데 아파트에 올라간 지금은 주방은 물론 거실, 침실, 서재 등 방마다 쓰레기통을 비치해놓고있다. 편하기는 한데 귀찮은 일이 하나 있다. 갖다버리기 쉽게 쓰레기통에 비닐봉지를 덧씌우는데 그 일이 불행하게도 내몫이 되여버린것이다. 사람이 워낙 술덤벙 물덤벙이라 비닐봉지를 대강 걸쳐놓으면 그만이다. 그때문에 안해는 지겨운줄도 모르고 매일과 같이 “비닐봉지가 쓰레기통에 목맸다.”고 시까스른다. 그런데도 나는 그 일본새를 고쳐내지 못한다. 같은 넉두리를 꾸준히 반복하는 안해나 나자신이나 웃기기는 매일반이다. 그러니까 습관이란게 참 무섭다는 말이 되겠다. 한번 어떻게 버릇되면 쉽게 고쳐지지 못하는게 사유의 관성이고 행위의 모델이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내남이 모두 그게 잘못된, 그리고 나쁜 행실이라는 점은 분명히 알고있다. 남한테 떳떳히 내놓고 자랑할수 없는 일이란것도 틀림없이 인식하고있다. 단지 하나의 고질로 굳어져버려 고쳐내지 못할뿐이다. 따라서 별로 큰 해악을 불러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씨익 웃으면서 흘러보낼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프레임은 사회 구성원 전반의 발목을 랍치하는 낡은것이지만 전혀 버려내지 못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일례로 전에는 전통적인것에 목매여 새로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게 흠이였다면 요즘은 새로운 포퓰리즘에 물젖어 옛것을 외면하는게 또한 문제로 부상한다. 도대체 우리는 극단이 아니면 갈곳이 없나본다. 얼마전 화백 한분을 우연히 만났다. 새로운 기법을 추앙하는 그분의 작품은 측면에서 비스듬히 보아야 비로소 무슨 그림인지 알수 있었다. 정면에서 보면 조잡한 점과 선들로 얼룩져있었다. 착시의 효과를 활용한 교묘한 수법이였다. 여직껏 그림을 정면에 서서 보는데 습관되였던 나는 소스라치듯 놀랐다. 그리고 한가지 진리를 갑자기 돈오했다. 알고보면 사물은 나름대로 여러가지 각도에서 리해할수 있는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꼭 ‘나’의 시각으로만 사물을 인식해야만 했을가?!  ‘내’가 세워놓은 프레임이 능사인것처럼 그렇게 확신에 차서 모든것을 한뺌한뺌 나름대로 재고 또 쟀던것일가?! 거기에 어긋나면 무조건 부정하고 매장했었다. 사실 조금만 시각을 바꾸면 세상은 바로 크게 넓어진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둘러보면 프레임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나’의 시선을 한결 해방시켜준다.  그리고 ‘나’의 시선과 더불어 플러스가 되면서 파급효과도 배가될수밖에 없는것이다. 물론 비켜갈수 없는것이 한가지 있다. 프레임이 프레임으로 고착될수 있는데는 전반 사회적인 공성이 한몫한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어떤 한 현상. 한 관념, 한 행위를 긍정적인 가치로 인식하게 되면 그에 걸맞는 프레임은 곧바로 형성되고 따라서 거기에 모든 규범을 세트로 묶어두게 된다. 또 솔직히 세상이 질서와 평화와 발전을 꾀하려면 프레임은 반드시 필요한 가치표준이기도 하다. 그걸 기피하거나 무시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단지 프레임도 착시가 되여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리고싶어서이다. 다양한 관념과 풍부한 시각과 부동한 가치관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파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나’만 고집하지 않고 ‘남’도 념두에 두면서 프레임을 수시로 재조립하면서 한결 성숙에로 나아가는 세상에 적응해가자는 말이다. 상급자, 실권자에 아부하고 회뢰를 일삼으면서 그것이 출세의 프레임으로 착각했다가 천길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부패분자들의 오늘날의 종말에서도 프레임이란게 백프로 절대적인것은 아니란것을 다시 알수 있다.    
45    칭다오조선족작가협회 야외시낭송대회 개최 댓글:  조회:865  추천:0  2014-09-02
칭다오조선족작가협회 야외시낭송대회 개최   지난 4월 17일 칭다오조선족작가협회에서는 경치가 수려한 청양구 부가부과일품관광원에서 새봄맞이 야외시낭송대회를 개최했다. 칭다오조선족작가협회는 2007년 12월에 설립된 동북삼성외 유일한 조선족작가들의 모임으로 중국조선족문단에 화제를 불러오고 있다. 초기 11명으로 출발한 이들은 현재 칭다오를 중심으로 옌타이, 웨이하이 등 지에 30여 명 회원을 가지고 있으며 300여 명 회원을 가진 자체의 카페(http://cafe.daum.net/yhkorean)도 운영하고 있다. 칭다오조선족작가협회에서는 문학창작을 줄기차게 진행해오는 동시에 국내 형제문학단체 및 한국을 비롯한 해외동포문학단체와의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 동시에 해마다 회원작품집 ‘갯벌의 하얀 진주’를 펴내고 있다. 이날 모임에는 시간과 날씨 관계로 칭다오지역내에서 활동하는 13명 회원이 참가하여 회원 자작시 위주로  중국조선족유명시인의 시작품을 낭송했다. 평심결과 최균필 시인이 자작시 낭송으로 1등상을, 김재룡, 정순금씨가 2등상을, 이문혁, 전향미, 홍걸씨가 3등상을 따안았다. 이문혁 칭다오조선족작가협회 회장은 총화발언에서 “전국 각지에서 기성문인들이 쉬임없이 수혈되어오고 있는 상황에 재칭다오조선족대학생들이 합류하는 좋은 형세가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여러 가지 문학활동을 활발하게 조직하겠다.”고 밝혔다. / 장학규 기자
44    제12회중국(라이저우)국제석재전람회 9월 중순 개최 댓글:  조회:600  추천:0  2014-09-02
  제12회 중국(라이저우)국제석재전람회 9월 중순 개최 역대 한국 최대 바이어 올해 테마 ‘신제품 신기술 새 설비’     중국국제석재(石材)전람회가9월 19일부터 21일까지 중국석도(石都) 라이저우(莱州)에서 개최된다. 라이저우시 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하게 되는 제12회중국(라이저우)국제석재전람회는 옌타이시인민정부와 라이저우시인민정부가 주최하고 라이저우 위퉁(宇通)국제물류유한회사에서 주관, 산둥하오앤(豪岩)석재무역주식유한회사에서 후원한다. 산둥성은 중국의 건축자재 대성(省)으로, 특히 ‘중국석도’로 일컬어지는 라이저우시는 전반 중국 북방지역 석재산업의 발전방향을 좌우지하고 있다. 현재 중국 석재 저장량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라이저우의 석재산업은 우월한 지리위치와 편리한 교통 조건에 편승하여 신속한 발전을 가져오고 있다. 2003년에 석재업계 인사들의 한결같은 요구로 라이저우시에서는 전문적으로 석재교류를 진행하는 ‘라이저우국제컨벤션센터’를 건설, 동시에 ‘제1회국제석재전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이 전람회는 10여 년간의 발전을 거쳐 이미 유명 브랜드 전람회로 부상했으며 국내는 물론 멀리 한국, 일본, 미국, 유럽까지 교류의 폭을 넓혀왔다. 지난해까지 이미 11회 진행한 이 전람회는 총 거래액이 13억 위안 인민페에 달했다. 그중 한국 석재구매상과 한국 석재관련기업과의 거래액만 5억 위안에 달해 3분의 1이상을 차지, 전람회때마다 한국 제품과 기술이 전시되어 중한 석재산업 교류에 크게 기여했다. 이 전람회는 해마다 한차례씩 진행되는바, 올해의 테마는 ‘신제품, 신기술, 새 설비’이다. 즉 각지 석재산업의 상호 뉴대를 강화하여 특색있는 석재제품이 더 빨리 시장의 인정을 받게 하고, 효율적인 석재광산 개발설비와 석재 가공, 운수, 시공 설비를 선보이며, 석재자원 개발과 가공생산의 선진적인 기술 성과를 전시하는 것이다. 한편 총 부지면적이 25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라이저우 컨벤션센터는 이번 전람회에 2개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5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전시관은 상, 하 2층으로 되어있으며 3,000여 개 국제표준부스를 용납할 수 있다. 내부에는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다공능청을 포함하여 비즈니스센터, 네트워크센터 및 음식서비스센터 등이 갖추어져 있으며, 선진적인 에스컬레이터, 화물수송엘리베이터는 물론 소방, 모니터링, 안전 시스템, 통신 네트웍 등도 구전하다. 이와 별도로 6.6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광장은 3층 테라스로 구성, 전체 낙차가 18미터에 달하며 전부 천연화강암으로 건설되어 컨벤션센터와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다. 주최측에서는 이번 전람회를 통해 더 많은 국내 및 국제 교류와 합작이 이루어질 것을 희망,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기술은 물론 새로운 벗을 더 많이 사귀어 믿음직하고 장구적인 전략파트너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고 표시했다.    /장학규 기자
43    칭다오조선족노인총협회 성립 10주년 기념행사 성대히 개최 댓글:  조회:637  추천:0  2014-09-02
칭다오조선족노인총협회 성립 10주년 기념행사 성대히 개최 5개 지회 29개 분회 900여 명 회원으로 발전 민족사회의 선줄군, 자선활동에 앞장서, 청도 유일 종합잡지 운영       칭다오조선족노인총협회가 열돐 생일을 맞았다. 지난 7월 16일, 칭다오시 청양구에 위치한 겔럭시예식장(佳乐喜婚庆)5층 웨딩홀에서 칭다오조선족노인총협회 성립 10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히 개최되었다. 이날 행사에는 재 칭다오 한겨레단체 대표와 노인협회 회원 도합 800여 명이 모여 명절의 분위기를 한껏 돋구었다. 칭다오조선족노인총협회는 2004년 4월 18일 성립, 당시 이창협회 김재룡 회장을 위시하여 김원, 리영, 조대규 등 멤버들이 모여 각자 도생하던 12개 노인협회를 묶으면서 첫 스타트를 떼게 되었다. 10년간의 발전을 거쳐 현재 이창, 지아오저우, 라이시핑두, 지머, 황다오 등 5개 지회, 29개 분회에 900여 명 회원을 가진, 칭다오에서 가장 큰 민족 단체로 자리매김하였다. 이 단체의 출범에 주도적인 역할을 논 김재룡 제1대 회장은 요녕성 무순시 출신으로 1964년도에 선양중의학원을 졸업하고 의사직에 종사하다가 1995년 칭다오로 이주하여 줄곧 노인협회 일에 전념, 2010년에는 산둥반도조선족노인협회친목회 회장으로, 중국조선족노인협회 부회장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노인총협회는 성립후 줄곧 솔선수범으로 현지 민족사회의 좌표가 되어왔으며 각종 민족행사에 적극 참여하면서 화합과 협력을 주도하였다. 아울러 당지인들과의 융합에도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사천지진때 칭다오조선족노인총협회는 각 분회에 사랑의 마음으로 이재민 돕기에 나설 것을 호소, 10여일간 성금 40,020위안을 모아 각 분회별로 소속 지역의 통전부, 민정국, 연의회, 거주위원회, 촌민위원회 등 부문에 전달했다. 통계에 따르면 이번 자선활동에 651명의 노인이 참가하였다. 칭다오조선족노인총협회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산둥지역에서 유일한 비영리성 종합잡지를 자체의 힘으로 꼬박 9년간 운영해왔다는 사실이다. 총협회가 출범한 이듬해인 2005년 4월에 협회 내부간행물로 창간된 “꽃노을’잡지는 그간 27기, 근 3,000부가 발간되어 노인들의 문화생활을 풍부히 하였을뿐만 아니라 상업잡지만 난무하는 칭다오에서 문화기갈을 해소하는 역할도 톡톡히 놀았다. ‘꽃노을’은 타자, 편집, 디자인, 발행까지 노인들 스스로 해왔으며, 인쇄비를 이어댈 수 없어 어떤 해는 단 1기도 내지 못하는 어려움도 겪었지만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다행히 명백을 이어왔고 너도나도 원고를 제공하면서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단순히 노인들의 생활상만 반영하던데로부터 시, 수필, 실화 등 문학작품과 역사지식, 자연과학, 문화현상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종합성적인 내부간행물로 발전했으며 멀리 베이징, 텐진, 연변 등 지역에까지 발행되고 있다. 이외에도 칭다오조선족노인총협회는 회원 친선과 교류 및 건강을 위해 1995년부터 자체의 운동대회를 개최, 2012년 5월 현재까지 10회 운동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경축행사에서 현임 여덕선 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노인총협회가 걸어온 10년 여정을 감회 깊게 돌이키면서 앞으로도 노인총협회는 민족사회의 본보기로, 코기러기로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귀빈들의 축사에 이어 김재룡 전임 회장에게 공로패, 리윤근 고문에게 감사패, 김원 등 8명 원로들에게 기념품이 전달되었으며, 모범협회, 모범회원, 화목가정을 표창하였다. 이어 각 지회 및 협회별로 준비한 문예공연이 막을 올렸다. 무용, 독창, 중창, 코미디 등 다양한 절목들이 무대를 장식한 가운데 아리랑예술단과 같은 전업성을 띤 프로팀의 공연과 여성협회에서 특별히 준비한 협찬공연도 있어 장내는 시종 뜨겁게 달아올랐다. 무대 마지막으로 총회 문예공연단에서 ‘농악무’로 클라이막스를 장식, 이 절목은 다가오는 8월에 칭다오원예박람회에 초청되어 공연하기로 되어있어 관중들의 더욱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이날 행사에는 재칭다오한국인(상)회, 칭다오조선족기업협회(김창호 회장), 흑룡강신문 산둥지사, 기업협회 청양지회, 여성협회, 향우연합회, 교사협회, 작가협회, 백두산양로원, 서원장학교, 해란강민속궁, 밀산향우회, 가목사향우회, 화룡향우회 등 단체와 전동근, 김철, 차철, 태성남, 권혁만, 오진호 등 개인이 축의금을 전달했다. 특히 이날 행사에 겔럭시예식장(佳乐喜婚庆)의 이광동 이사장이 장소와 60여 개 테이블에 달하는 식사(술 포함) 전부를 무료로 제공해주었다. 흑룡강성 계동현 출신인 이광동 이사장은 칭다오피터얼피혁제품유한회사를 운영, 조선족 기업인 3명과 더불어 합자 형식으로 3,000만 인민폐를 투자하여 홀 면적만 4천여 제곱미터에 달하는 칭다오 일류의 예식장을 시운영하면서 장안의 화제가 된 인물이다.    /장학규 기자
42    김학철 작품의 문체론적 특성 댓글:  조회:631  추천:0  2014-09-02
평론   김학철작품의 문체론적 특성   장학규          현재 우리 문단에서 어느 작가가 가장 독자들의  환영을 받느냐 묻는다면 그 대답을 염두에 두고 진행된 흑룡강신문사의 한차례 조사에서 -김학철 한분만 추천합니다-는 한 독자의 글이 힘있는 답복일 것이다.비록 그것이 지나치게 어리고 감정적이기는 했으나 종래로 한 작가가 독자-일개인일지라도-의 마음을 통채로 독차지했다는 사실이 드물었다는 걸로 미루어보면 김학철선생에게 남다른 신통한 재주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이것이 필자가 김학철선생의 문체를 연구하게 된 시초의 동기였다.     옹근 작품에 일관된 작가의 개성(스찔)은 주로 언어를 통해 표현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문체는 언어학에서 연구하는 과제이고 문학작품에서의 언어는 형식의 범주에 속한다.그러니까 필자의 이 글은 제목 자체부터 사상성보다 그 예술성을 더 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지난날 우리는 형식의 내용에 대한 의뢰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그만 형식의 독립적인 심미적의의와 가치를 홀시하고 말았다.모종 견지에서 말할 때 문학의 흥성은 형식과 내용이 똑같은 분동으로 작용한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중국 문학사에서 백화문이 일대 문학혁명을 가져왔다면 조선에서도 신소설이 문단을 활기띠게 하였었다.그렇다는 역사가 또한 필자가 속이 켕김이 없이 한 문학위인의 문체를 진일보 탐구하게 된 필연적인 근거였다.     그러면 김학철선생의 작품에서 구경 어떤 문체론적 특성들이 표현되었는가를 분석해보자.     가장 돌출하게 표현되었고 또 다른 작가들과 가장 구별되는 특성은 어음수단의 사용에서 나타난다.선생은 모든 작품에서 의식적으로 생활과 밀착된 인민어,구두어를 골라 썼다.말체의 색채를 가진 문법수단의 사용은 두말할 것 없이 독자와의 거리를 단축시키고 친절감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형상성과 생동성을 기한다는 각도에서 그리고 언어를 파악함으로써 상상으로 재창조한다는 언어예술의 특점에서 볼 때 언어는 생활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표현적 효과는 더 빠르고 더 좋은 것이다.일례로 큰 파문을 일군 잡문 "동서남북풍"의 서두를 보기로 하자.   "풍향기는 바람이 부는대로 나붓기기 마련이다.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나 다 순응만 하면 되니까.팔자치고는 상팔자이다.그러나 사람은 필경 풍향기가 아니므로 바람이 부는대로 분주살스레-이리 나붓기고 저리 나붓기고만 할 수 없다./   지난 세월 동풍에 돛을 달고 만부부당의 기세로-장비야 내 배 다칠라-내닫던 양반들이 요즘에 와서는 또 서풍에 신바람이 나서-콩엿 사먹고 버드나무에 올라가는 개모양-기염만장하는 것을 보면/   '이 좋은 구경을 놔두구...곡마단구경을 갈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욕지거리가 절로 난다..."      미사려구라곤 한마디도 없이 지문을 꾸몄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통해 반영된 작가의 증오의 감정이 남달리 진실하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다.물론 그 진실성을 안받침해준것은 숙련된 대중어란 것은 자명한 일이다.이런 특성은 어느 한편의 작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닭알파문", "쪼로르기", "심상찮은 소경력", "사색하는 동물"을 비롯한 선생의 모든 잡문에 관통된 것으로서 작자는 그것으로 독자와의 호흡의 통일을 이룩하였으며 훌륭한 심미적가치를 창조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토사용에서 있어도 좋고 없어도 무방한 대격토 "를/을"과 복수토 "들"을 희한하게 많이 썼는데 주로는 소설에서 강조의 표현적효과를 위해서였다."네번째총각"에서 필요없이 사용된 복수토 "들"이 27개였고 "를/을"은 24개였다. "고민의 표준"도 7:17의 비례로 씌어졌다. 장편소설 "격정시대"는 더구나 "들,를/을" 천지인데 미처 통계해낼 방법이 없어 흑룡강신문 진달래부간(1985년 4월 6일부)에서 발췌한 대목을 보았는데 만자남짓한 글에 놀랍게도 그 비례가 23:30이였다.이외에도 "를"대신 "들을"을 -례하면 세면주머니들을,삐라들을 등- 쓴 곳이 5곳이나 되었는데 이런 "군더더기"는 글체를 의식적으 로 말체의 형태로 꾸며놓아 강조외에도 예상밖의 표현적효과를 거두었으니 이를테면 작자와 독자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듯한 화기애애한 기분을 이룬 것이다.자명한바 이런 심리적접근은 독자들을 끌고 나아가서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도록 유혹하는 것이다.작품은 우선 읽을 멋이 있어야지 그렇찮으면 실패작이라 할수 밖에 없다.모름지기 선생은 읽을 멋에 상당한 공력을 들인 것이다.     다음은 형상어의 대량적인 사용이었다.문학예술작품은 전형적인 사실과 인물을 형상화의 수법을 통하여 독자의 정서에 미학적으로 작용하게 하는 것이다.아무리 생신한 재료라 하더라도 형상어를 떠나서는 독자들의 공명을 자아내기 어려운 것이다.따라서 독후미감도 운운할 화제가 못되는 것이다.선생은 "노신의 방향"에서 "우리는 노신선생댁 문앞에 다다르자 몸속에 꼴딱 채워가지고 온 '연료'가 다 들나서 단 한치도 앞으로는 더 나갈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았다."는 표현으로 권위를 앞두고 의지가 나약해진 인간을 맥맥한 기계에 비유함으로써 생동성을 배로 끌어올렸으며 "오염된 양심"에서 "국민당군대가 온 것을 꺼리여 자란이들은 슬슬 다 피해버린 까닭에 (나는 국민당군대가 아니요 하고 웨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우리를 환영한 것은 네댓살에서 열두어살까지의 어린 공민들뿐이었다."처럼 "어른"을 "자란이"로 , "어린 애들"을 "어린 공민들"로 바꾸어 씀으로써 마치도 그 장면이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듯 만들었다.이밖에도 형상적이고 우습강스러운 표현을 통해 작가의 애증을 토로하기도 했다.형상어에 의한 웃음의 화폭은 선생의 일대 특점이다.독자들은 웃음속에서 심미적감수를 받게 되고 따라서 한차례 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이것은 일부 작가들이 마치 선교사인듯 분장하면서 화려한 언사들을 지루하게 마구 내뿜는 현실과 완전히 대립되는 김학철적인 개성 내지 문체이다.     선생은 인물묘사에서도 장황한 서술체를 회피하고 형상적인 대화를 통하여 그 인물의 성격과 심리를 그려내기를 즐겼는데 그렇게 그려낸 인물들은 완전완미형의 냉혈동물인 것이 아니라 생기가 넘치고 피와 살이 있는 생활적인 인간이었다.특히 대표작 "격정시대"를 보면 거의 모든 장절마다 실없는 "말장난"이 있었다.지어 싸움마당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이런 "말장난"은 어디까지나 속되고 용속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생활적인 진정한 인간을 창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이제 그 예 하나를 들어보자.    "트럭이 다시 달리기 시작하였을 때 신명이 난 '오셀로'가 저도모르게 뛰어일어나 '오-이!' 하고 웨치며 두손을 흔드니 적재함우의 놈이 돌아보고 마주 손을 흔들며 굽인돌이로 돌아갔다.'저 자식이 나를 보구 좋아하지 않는가!'   '오쎌로'가 신기로와 하며 감탄 비슷이 말하였다.   '마점산장군을 알아본게지.' 마점산은 '오로'의 성명이다.   '아니야,초록은 동색이야.그놈두 먹자주의가 틀림없어.'   '오로'의 먹자주의는 유명하였다.   '그 왜놈의 새끼,왜 한방 갈길 생각을 안하구...손을 흔들어.'   '오쎌로'가 전장귀신이 되면 그 계집애가 좋아서 펄펄 뛰라구?'   '어느 계집애가 좋아서 펄펄 뛰여?'    '아,맥주병 찜질당한 계집애지 어느 계집애여?'   귀대하는 길에서 여럿이 받고 차기로 이와 같이 '오쎌로'를 시달구었다.     보다싶이 비단 "오쎌로"의 용감성과 먹자주의가 생동하게 묘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혈기방장한 의용군 대원들의 낙관적인 정신도 동시에 표현되었다. 이런 묘사수법은 필묵을 많이 들이는 지문에 비해 오히려 더 생생하고 활약적이다.그래서 그런지 선생의 작품은 우선 인물부터 진실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 다음은 구성상의 특징을 들 수 있는데 특히 잡문에서 돌출하다.잡문은 노신의 발명이라고 할 수 있다.노신의 잡문은 거개가 1원1차식으로 되었는데 "원"을 논점이라고 한다면 "차"는 논거인 것이다.노신은 일반적으로 한가지 사실,혹은 거기서 파생된 사건들을 부동한 측면에서 해부하면서 논점을 논증하지만 그와는 달리 김학철선생은 병렬적인 풍부하고 다양한 재료와 실례를 들기 좋아했는데 작은 것,엷은데로부터 점차 큰것,깊은데로 전개되었다.어느 잡문이나를 막론하고 적어서 두개이상의 논거가 있는데 "동서남북풍"은 그중 많은 것으로서 6개가 들어있다.다양한 실례의 인용은 잡문의 실용성을 크게 확대하였으며 잡문으로 하여금 더욱 예술적이 되게 함으로써 일반적으로 잡문은 문학이 아니라고 인정하던 편견을 바로잡고 그것의 문학적지위를 공고히 하였다.     끝으로 다양한 수사법의 사용이다.물론 이 점은 모든 작가가 회피하지 못하고 갖추어야 할 전제조건이지만 선생은 유별나게도 생략법과 중단법을 많이 쓴다.어찌보면 깊은 여운을 깔아주자는 속셈인 것 같지만 수사학은 문체론과 다른 것이어서 여기서 더 깊이 파고들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된다.     이로써 없는 재간이나마 김학철선생의 작품에서 나타난 문체론적 특성을 살펴보았다.능력과 재료의 제한으로 수박 겉핥기로 되었으니 이것을 필자의 연구성과라고 하기에는 짜장 부끄러운 일이다.허나 필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초학자들에게 얼마만한 도움이라도 될 수 있게끔 김학철선생의 작품을 애독하면서 느낀 점들을 숨김없이 그대로 적었다.한편 자신이 아직 젊었으니까 앞으로 연구할 시간이 많다는 것,그래서 여기에 나타나는 부족점을 능히 미봉할 수 있다는데서 얼마간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41    윤림호 소설의 미, 륜리학적 취향진단 댓글:  조회:797  추천:1  2014-09-02
평론   윤림호소설의 미,윤리학적 취향진단                                                                     장학규       머리글     오늘날 북방소설문단에서 윤림호는 변론할 나위도 없는 당당한 스타이다.문학년령의 각도에서 보면 아직은 청년작가행렬에 서야 하는 41세의 나이에 2권의 개인작품집을 펴내였고 여러권의 다인작품집에 오른 윤림호이다.뿐만 아니라 "은하수", "송화강","도라지","아리랑","천지" 등 잡지들의 수상대에 여러번 올랐었고 성소수민족문학상,연변작가협회상,해외에서 날아온 불교법왕상 등 큼직한 성과도 올린 윤림호이다.또 "투사의 슬픔"과 같은 작품들은 한문으로 번역되어 전국에까지 소개되었었고 작품 발표총수의 3분의 1남짓이 평단에서 운운하고 있다.이러한 성과는 북방은 물론 연변문단에서도 드문 일이다.그러니까 우리는 당연히 윤림호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윤림호의 창작방법은 물론 사실주의수법이다.유구한 역사와 휘황찬란한 전과를 이어온 사실주의 수법은 여전히 효과적인 창작방법중의 한가지로 공존공영을 제창하는 시대에서 절대 비난거리로 되지 말아야 한다.그러나 본 글은 그런 시비에는 걸려들념을 않고 오로지 사실주의 수법을 통하여 표현된 윤림호의 부동한 창작년대의 미학 및 윤리학적 취향을 진맥하고저 한다.   여러 독자층의 감독,연구에 편리를 주고저 본 글은 작가의 2권의 개인작품집만 참고자료로 삼았음을 밝힌다.   1,전단계: 전통적 윤리도덕에 뿌리를 둔 작품이 대다수     현재까지의 윤림호의 창작활동은 1985년을 분계선으로 하여 전후 두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즉 첫 개인작품집의 출판이 횡적가름선이 되었다는 말이다.   주지하다싶이 윤림호의 창작초기는 전국 여러 분야에서 좌경 노선의 흑운을 몰아내고 반성과 극복,나아가서 재기를 시도하던 시기였다.문단도 예외없이 스스로의 점검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하여 자연 상처문학과 같이 지난 시절에 대한 성토가 이루어질 수 있었고 따라서 그간 냉대되고 멸시되었던 인성이 새롭게 큰 화제거리로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윤림호는 물론 시대의 관성에 밀리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하여 그의 전단계 작품들은 주로 빈번한 운동세례를 걸치면서 비틀어지고 뒤범벅이 된 윤리도덕관념을 둘러싸고 진행된 것이다.   히트작품 "투사의 슬픔"은 참회의식을 다룬 작품이다.염창록이는 사랑에 충실한 인간이었다.문벌관념이 엄격했던 낡은 사회에서 부자집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과감히 여염집 계집애를 추구하는 새 사상의 소유자였다.그래서 부자간에 대판 싸움까지 벌어졌고 나중엔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감옥에서 영옥이와 희극적인 재상봉을 한 창록이는 옛사람이 되살아나 순사의 직분도 불구하고 지하당에 정보를 날라주고 또 영옥이를 구원하는 실제 행동으로 사랑의 심정을 표달한다.마침내 영옥이의 꼭 닫쳤던 마음의 문을 열어제치고 사랑을 획득한다.그러나 그 대가가 너무나도 엄청났다.사랑하는 이의  총에 맞아 불구로 되었는가 하면 동란의 년대에는 반혁명으로 몰려 심한 투쟁도 받았다.그에 비해 영옥이는 너무너무 행복했다.단란한 가정을 소유했고 항일 여투사로 대접받고 있었다.그러니까 옛연인의 죽음을 두고 흘리는 투사의 눈물은 단지 창록이가 불쌍하다는 차원에서 흘리는것 만이 아니었다.창록이의 홀몸에 대비한 양심 발견이 그 밑바닥이었고 창록이의 생존함을 안 후에도 모종 원인으로 찾지 못했다는 가책이 그 둘러리였다.두말 할것 없이 투사 역시 피와 살이 있는 보통 인간이었던 것이다.작가는 이 글에서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생소했던 영웅형상을 창조했던 것이다.돌부처같이 정감이란 전혀 없는 영웅형상에 아주 습관되었던 독자들에겐 자식앞에서 과거지사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참회할 줄 아는 영옥이란 이 인물은 그렇게도 생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이 당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도 여기에 있었다.한편 주인공의 양심 발견을 통하여 체현된 순수한 애정미가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준다.창록이는 오직 사랑을 위하여 직업도덕마저 버리고 연락원 노릇을 했으며 평생을 장가 들지 않았으며 억울한 누명을 썼을 때도 영옥이와의 관계를 밝히지 않았다.성분이나 사상 따위를 사랑에 융합시켰던 그때나 돈,가정을 사랑에다 연계시키는 지금에 비기면 진정한 사랑의 이미지가 확 안겨오는 마당이었다.이 점이 또한 이 작품으로 하여금 성공의 길로 닫게 한 미적요소가 아닌가 생각된다.     성과작 "개를 잡은 사람"은 작가 사상경개의 그대로의 표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구체적인 해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이 작품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태양은 내일 또 뜬다"에서의 염라왕의 말을 한단락 먼저 인용해보자.   "...첫부류는 지상나라에서 창생을 위하여 공덕을 쌓다가 불행히 이사오게 되었거나 만창생이 우러르는 부류로 12층대의 첫층에 받들어 모시옵고...12층대 지옥에 있는 무리는 악을 덕으로 삼던 무리오이다..."   보다싶이 "덕은 쌓은대로 가고 죄는 지은대로 간다."는 전통도덕관념이 강하게 엿보이고 있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단순한 인과보응에만 얽매이지 않고 그런 경지에 빠져들어간 주인공들에게 반드시 새로운 길을 제시해주고 있는데 그것은 호인인 작가의 개성과 맞물리는 것이라 생각된다.   "개를 잡은 사람"에서 조봉규는 자기밖에 모르는 위인이다.고향다리 건설할 때 일전한푼 내지 않는가 하면 최과부 남편이 죽었을 때 급히 수요되는 관널을 팔아먹으면서 주지 않는다.뿐더러 이웃 문서방네 집이 무너지게 되어도 일손을 도우기는커녕 시까스르기만 했고 나무 몇가지를 빌리는 것마저 거절한다.마침내 하늘이 크게 노하여 덩실하던 기와집이 일조에 재더미가 되고 조영감 자신은 그만 병석에 눕고만다.그래도 마을에는 동정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명절 분위기에 휩싸인다.좌상 아닌 좌상 오영감의 환갑잔치를 온 마을이 일떠나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인간공동체에 외면당한 조영감은 질식할 듯한 외로움에 모대긴다.물론 결말이 희극적으로 반전이 되면서 조영감의 새 출발을 암시하고 있으나 인과보응의 범주에 들기에는 별로 방해가 되지 않는다.   이 소설은 그 시대배경을 빼거나 바꾸어놔도 마찬가지로 이해되고 접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윤리도덕이란 것이 실제 인간사회에 적용된다는 말이 아닐가.최소한 인간행위의 준칙으로도 될 수 있고 사회질서의 보장에도 유익할 것이다.모름지기 작가의 초점도 그런 쪽으로 돌려진 것이 분명하다.그로써 인간의 행위미를 규명한 것이다.     "삼자경"은 "사람은 본래 착했다."는 말로 시작된다.선량한 인성은 고금을 막론하고 모두가 감동하고 선호하는 바이다.대표작 "호박꽃"은 인간공성으로서의 선이란 구경 어떤 것이며 그것이 파급시켜주는 사회적 공감은 어떠한 것인가를 형상적으로 밝혀주었다.거기에 사회미로 통한 인격의 미를 유기적으로 조합시킴으로써 심미주체로 하여금 고도의 예술적 미감을 갖게 하였다.   자식 낳이도 못해본 장모는 수수한 농촌 여인이었다.하지만 장모의 몸에는 만사람의 심금을 울려줄 수 있는 신비한 매력이 있었는데 그것인즉 자기 희생을 전제로 한 선량한 마음이다.이붓 딸의 남편이 대학에서 꾸리는 문학강습반에 추천 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장모는 불편한 몸으로 진둥한둥 40리 길을 달려온다.가정의 끌끌한 일군인 영수를 사위 대신 남겨놓고 장모는 병약한 몸으로 집안팎 일을 돌본다.그래도 언제나 환한 얼굴로 "천벌" 소리를 외우고 닭모가지를 비틀 것을 추긴다.대학에 가게 된 영일이에게 새옷을 갖춰주려고 연 닷새째나 점심을 굶어가면서 장마당을 오르내렸고 약값을 공부하는 영일이와 사위의 용돈으로,그리고 아버지의 술돈으로 내놓는다.장모의 약궤를 열었을 때 주인공들은 물론 독자들도 깜짝 놀란다.장모의 이러한 행위들은 친어머니 못지 않은 혹독한 모성애가 그 출발점이었다.자신의 생명을 걸어야만 하는 막부득이한 사정이라면 계모라는 입장은 왜소하고 애매하다.물보다 진한 것이 피이기 때문이다.그것마저 서슴치 않았다면 물론 선량한 덕성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그러한 행위미가 자사자리한 아버지의 형상과 격렬히 충돌되면서 공명대가 강한 장모의 인격미가 형성되게 된 것이다.나아가서 그러한 인격미가 일종의 사회미로 통하고 인정되는 것이 인간사회의 어쩔 수 없는 도덕관념이라는 해석이기도 한 것이다. 또 사실상 장모의 형상은 방대한 위력을 과시하면서 이붓 사위뿐만 아니라 석고같은 아버지마저도 끝내 울렸으며 따라서 수천의 독자들도 감동시켰던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윤림호 전단계 작품의 주요한 취향성문제를 살펴보았다.두말할 것 없이 이 시기 모든 작품들을 상술한 부류들에 억지로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이를테면 수상작 "자취"가 그렇다.이 소설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개혁개방자태가 바로 다음 단계의 주류로 되는 것이다.   2,후단계: 비판의식의 앙양과 새로운 시각의 윤리관     80년대 중반을 전후하여 중국대지에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농업구에서는 도급제를 기본상 실현했고 공업구에서는 연해개방도시,경제특별구들을 확정하고 가동했다.국문이 서서히 열림과 더불어 장기간 페쇄되고 구속되었던 사상이 활기 띠기 시작했고 백가쟁명,백화만발의 분위기가 새롭게 조성되었다.이런 시대의 변모에 가장 빨리 합세한 분야가 곧바로 문단이었다.지성적이고 양심적인 문인들은 한결같이 일떠나 시대와 동조하면서 비판적인 안광을 가지고 인간의 본질과 개성을 까밝히기 시작하였다.   윤림호는 들끓는 시대격정을 피부로 느끼고 소위 문제작,반향작,파문작들을 연달아 내놓았다.물론 창작은 작가 개인의 사유활동인만큼 역사를 가르듯 그 어느 한 시각을 확정해서 가를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우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윤림호는 전단계에서 이미 "자취"와 같은 탐구적인 작품을 발표했었다.그 맹아가 이쯤에 와서 합리적인 계승과 발전을 가져왔던 것이다.     "깊섶의 들국화"는 당시에 상당한 호성을 받았던 작품이다.   소설은 두 여인의 동일한 운명그라프를 통하여 사랑이란 권리로도 강박으로도 얻을 수 없음을 알려주고 있다.그러나 이런 주제보다도 인간심리,인간생리에 대한 진실한 반영이 퍽 돋보였다.최형근은 항일비밀연락원, 새사회지도간부의 신분에서 선후로 월향이와 계모를 강간하여 손에 넣는다.그리고 사랑의 적수에게 추호의 사정도 없이 호된 강타를 안긴다.작가가 즐겨 부각했었던 도의적이고 이상적인 인물형상과는 너무나도 판이했다.월향의 형상도 약간 빗나가는 실정이다.한번 마음을 주면 평생을 변치 않는다는 전통 사유모식에 굳어진 월향이지만 여자는 한 남자만 알고 죽는다는 윤리관념을 무시하고 서습없이 수수밭에서,오두막집에서 옛연인과 정을 나눈다.계모는 더욱 노골적이다.달아오른 욕정을 식히려고 거리낌없이 군사내들을 끌어들이는가 하면 이붓 자식에게도 분별없는 정열을 쏟아붓는다.그녀들은 낡은 정조관념의 배반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그녀들을 대함에는 동정과 지지를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그 행위들이 정주제에 충실하게 복무할 수 있기 때문이다.최형근에게 본능이란 기댈 언덕을 마련했다면 월향이나 계모에겐 인지상정을 부여하고 있다.그래서 우선 인물부터 진실하다는 감각이다.다른 일면으로 윤리도덕이란 자기 희생을 전제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잡혀온다.그리고 남녀간의 사랑은 심령의 공명과 육체적향수가 같은 분동으로 작용한다는 역설이 당금 안겨온다.이 점은 우리 소설이 애정주제를 다룸에 있어서 인간육정을 의식적으로 외면해버렸던 현실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된다.     단편소설 "천치 빵덕이" 역시 인간본질을 파헤친 작품이다.은원관념이 공공연히 멸시되는 삶의 현장에 착안점을 두고 날따라 메말라가는 인정세태를 시사하고 있다.   빵덕이는 그 자신이 천치였던 관계로 피동적인 인생을 영위하게 된다.좁쌀 한자루에 팔리워 서캐 서말이라는 장외톨의 안해가 되는가 하면 철부지 방국이의 고집에 넘어가 안해된 책임과 의무를 무시하기도 한다.장서방이 넘겨주는 쌀과 돈을 납작납작 받아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추호의 후회나 가책도  없이 장서방을 밖으로 내몬다.반면에 싫다는 방국이를 한사코 붙쫓으며 눈먼 사랑을 퍼붓는다.그에 비해 사유가 건전한 방국이는 고의적인 배반을 한다.천치누나가 힘겨웁게 펼쳐주는 그늘밑에서 탈없이 자라고 공부했건만 자기를 보고파 찾아온 빵덕이를 더러운 송충이 피하듯 한다.뿐더러 누나와 함께 살게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장외톨의 소 네마리를 끌고 가서 감옥에서 놓여나왔지만 그것이 장외톨이나 빵덕이의 덕이 아니라 친구들의 신세로 일축해버린다.그때에야 빵덕이는 천치의 감각에서도 "세상에서 누가 제일이야? 그래도 내 서방이지..." 하는 체득을 얻고 장서방을 찾아나섰지만 그는 이미 타역의 객이 된 뒤었다.   이 소설은 경제시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표면화된 인간의 자사자리한 본질적 측면을 생동하게 그려내였다.그로써 복잡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구경 어떤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넓은 사색의 공간을 두고 던지고 있다.한편 인간의 개성이 고도로 발휘될 때 윤리도덕이란 얼마나 무맥한 것인가를 예술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단편소설 "산촌의 단풍"은 윤리도덕이 즐겨 타매했던 제3자를 정면으로 내세우고 있어 한때 큰 물의를  일으켰었다.그러나 곰곰히 파보면 작가의 도전적인 자세보다도 낡은 관념을 짓부신 동시에 새롭게 구축한 작가 나름의 새 윤리관이 퍽 심각하다.   소설은 서로 교차되고 평행되는 다층차적 철리구조를 설계하였다.   우선 가정 윤리가 사회윤리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남달리 독특하다.영송이는 안해있는 몸으로 장옥이와 정을 나누고 임신까지 시킨다.재래의 관습대로 보면 영송이는 정파답지 못한 패덕한이며 타락된 인민교원의 형상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송이는 사후 덕골 사람들이 "신성한 영지로 받들고 주인을 선택하여 모시"는 사뫼산을 오뫼산으로 개칭할만큼 위신이 높았다.여기서 우리는 공공사업과 가정 생활 이 양자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고 있지만 또 각자가 완전히 틀려진 개념이라는 판단을 쉽사리 터득할 수 있다.바꾸어 말하면 산촌의 교육사업을 위하여 안일한 도회지 환경도 마다하는 영송이의 정면형상은 그의 사생활의 어두운 면에 의하여 압도되거나 말살되지 말아야 한다는 작가의 변론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이 점은 우리 사회의 고루한 인습에 대항한 것으로 된다.   다음은 영송이의 사생활을 어떤 입각점에서 해부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얼핏 보기엔 영송이의 논리는 자리잡을 바탕이 전혀 없다.을녀는 현처량모형의 여인이다.굳고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외모 또한 아름답다.반면에 장옥이는 "잠이 다닥다닥 핀" 못난 얼굴의 여인이었고 자연을 대비한 생존력이 형편없이 미약했다.그러나 사람은 어디까지나 가정울타리에만 인생의 낙취와 삶의 가치를 부가할 수 없는 것이다.낙후한 덕골의 교육사업에 일생을 바치려는 영송이를 좁은 안광을 가진 을녀로선 지지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영송이는 심한 고뇌속에서 모대긴다.부부간의 감정이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점차 멀어져가고 소실되어갈 때 나타난 장옥이는 동정과 사랑으로 영송이의 얼어드는 마음을 녹여주었고 영송이로 하여금 계속 산촌의 후대교양에 헌신하게 하였다.이러한 성애에 도덕멍에를 씌우기는 어려운 일이다.오히려 사랑의 진실한 함의가 노출될뿐이고 인생의 참뜻이 전달될 뿐이다.   끝으로 장옥이의 형상이 가장 인간 본성에 접근한다는 얘기이다.못생긴 인물로 하여 남성세계에서 축출당한 장옥이는 독신주의를 신봉하게 된다.하지만 그녀 역시 7정6욕이 있는 싱싱한 인간이었다.그리고 마음 심처에 모성애를 간직한 정상적인 여인이었다.장옥이의 본능의 부활은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인 영송이를 만나서였다.용모가 단정할뿐만 아니라 고상한 정신세계마저 갖춘 영송이앞에서 장옥이의 도고한 마음가짐은 와그르르 무너지고 따라서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는 것이다.그렇다고 누구처럼 꼭 결혼을 전제로 하는 사랑은 아니였다.오로지 마음의 기탁을 찾은 것이며 그로써 영송이를 본받아 덕골의 후대양성에 전력할 것을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장옥이의 성격발전은 그 계기가 미덥기에 타매할 수 없고 영송이를 구했다는 사실적인 후과를 초래했기에 적극적이다.     상기한 작품외에도 대표적인 것들로 "낙엽","할미꽃" 등을 들수 있다.물론 한결같이 낡은 윤리도덕관념들을 질타하고 새로운 정조관,절개관,효성관을 제시하는 작품들이지만 지면상 제한으로 더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총적으로 윤림호의 두번째 단계의 작품들은 주로 비판성격을 띠면서 비극을 이루고 있는데 감각주체인 독자의 정서파동을 통한 미적감수가 상당히 효과적이다.또 남들이 건드리기 무척 저어하는 처녀지를 과감히 개간하면서 보여준 시대조류보다 앞선 작가의 심미시각이 탄복된다.   맺는말     윤림호작품에 대한 전면적이고 체계적인 평론은 아마 이 글이 처음일것이다.그렇다고 이 글이 정론으로 되어진다는 말이 아니다.한 작가에 대한 평가는 토론과 쟁명을 거치게 되며 종당엔 역사가 판단을 내리기 마련이다.단지 이런 기회가 너무 늦게 온 것이 서글프다는 느낌이며 "재야계" 문인에게도 얼마만한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하여 서툰 글이나마 엮어서 내놓는바이니 평론계뿐만 아닌 여러 선생님들의 기탄 없는 지적과 가르침을 바라마지 않는다.                                                                                        1995년 7월 18일 해림에서  
40    구겨진 현실사회와 대응되는 황당한 인물형상들 댓글:  조회:593  추천:0  2014-09-02
평론   구겨진 현실사회와 대응되는 황당한 인물형상들 -박향숙작품집 "꿈속의 누각"의 인간상 고찰 장학규   1     "여사장의 이야기"의 작자 박향숙씨가 최근 소설집 "꿈속의 누각"을 출판하였다.박향숙 하면 소설가로보다는 기업가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그만큼 기업성공의 노하우로 각광을 받아왔던 여기업가로 세상에 더 인기적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향숙씨는 전업작가들이 혀를 내두를 지경으로 창작에도 무비의 정열을 쏟아붓고 성과를 올리는 실정이니 그에 대한 연구도 불가피한것이 아닌가 싶다.   소설집 "꿈속의 누각"에 수록된 전반 작품들을 분석해보면 대체적으로 잡혀지는 인상들이 있다.우선은 슈제트구성이 아주 단순명료하다는 것이다.간단하다 못해 어떤 작품은 그대로 시정거리의 만담얘기와도 흡사하다.회사의 규장제도와도 통하는 데가 있어 한번 스쳐지나가면 금방 작자가 전달하고저 하는 내용이 잡혀온다. 직업상 특점이라 할가.무의미한 것을 걸러내는 필터링능력이 문학창작에도 적용되었다는 느낌이다. 다음은 언어구사에서 소박하고 생활에 발붙인 구어체가 잘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미사려구가 없이 생활을 바로 퍼포먼스 해버린 패턴이다.박향숙의 작품은 일단 한편만 접촉하면 다음부터 태그를 붙이지 않아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만큼 언어상태가 원시적이라 할 수 있다. 끝으로 인물형상이 의식적인 변형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이 부분이 바로 본 글에서 특별히 언급하고저 하는 박향숙작품의 주요 특점이다.    2     "언 감자꽃"의 주인공 연이는 어쩌면 남의 손에  잘 다듬어지는 인형과 같은 존재이다.출국유학을 떠나는 남편이 그녀의 웃음을 독차지하고싶어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 말에 연이는 신고도 바다하지 않고 시골에 언 감자꽃을 찾으러 떠나며 그로써 "성세호대"한 웃음 끊기운동을 벌린다.눈물 겨운 그녀의 정성과는 달리 5년만에 돌아온 남편은 송충이 대하듯 그녀를 외면한다.   "기다리는 전화"는 어딘가 모르게 러시아의 "관리의 죽음"을 닮은 코미디같은 작품이다.선전과장 김철수는 잘못받은 전화 한통때문에 무척 고민한다.그는 자신의 차실을 미봉하려고 여러곳에 찾아가나 그들은 전화를 건 사람이 아니었다.나중에야 알게 되지만 전화는 청소부 마상철이 걸어온 것이었다.   "뱁새의 로맨스"에서 용구는 논문집을 천권만 팔아주면 저자명단에 오를 수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나중에 그가 제 돈을 내어 2천권을 주문하지만 부쳐온 책에는 그의 이름이 없었다.성정부과학기술서적 편찬기금회의 후원으로 이교수가 독자출판한다는 기이한 아이디어였다.   "인생유희"에서도 과학연구일군인 복만이는 뜻밖의 방조와 저자 이름 배렬문제라는 괴이한 현상에 직면한다.    "천당입장권"은 이승과 저승에 갈라져있는 두 주인공이 등장하여 더욱 해괴하다.윤리도덕적인 냄새가 다분하지만 정호라는 인간의 언행을 미루어보아 양심의 가책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저승사자가 직접 복수작전을 펼치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것이다.   "꿈속의 누각"은 그대로 꿈속의 현장이라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임재수가 소설창작회사를 꾸린다는 것부터가 천방야담에 가까운 소리이다.그리고 백일몽이 아니면 되려 궤변이라 할 지경으로 그의 사업은 번창한다.뿐만아니라 동시에 세 여인의 몸을 향수할 수 있는 행운이 차례진다.임재수의 발상은 언제나 새롭다.김치공장의 생산과정으로부터 흐름식소설창작이라는 기발한 착상을 하게 되며 소재를 구매 또는 판매한다는 아이로니한 행위가 있게 된다.꿩 먹고 알 먹기로 인계가 적용되며 판매를 촉동하기 위해 명인효과를 등장시킨다.어쩌면 기업가다운 제스처라 할 수 있겠다.임재수의 실패도 따져보면 문화자질이 낮다거나 투기적이라든가 하는 합리적인 요소가 배제된 반면 시장판단착오와 실수적인 투자에 돌려지고 있는 것이다.   3     우에서 우리는 박향숙작품의 대체적인 윤곽을 살펴보았다.자명한바 작자는 독특한 창작개성을 이루고 있는것 같다.필자는 나름대로 박향숙씨의 창작개성을 황당성,풍자성,비판성으로 귀납했다.   그럼 이제 돌아서서 작자의 창작개성을 뒤받침해주는 인물형상을 해부하기로 하자. 황당한 인물들을 내세운 그 기저에는 구겨진 현실사회에 대한 풍자 및 비판이 깔려있는것이다. 개혁개방이 중국에 가져다준 혜택과 번영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페단을 초래해온것도 역시 현실이다.중국인들은 곧잘 "세기말"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말 그대로 세기말적인 광란이 지금 도처에서 발발하고 있다. 권력에 대한 끈질긴 집착과 날따라 탐오,회뢰 등 비리가 살판치고 투기가 성행하고 생활풍조가 난잡해지고 방탕해졌다. 이런 사회적인 페단앞에서 법은 상대적으로 무기력해졌고 도덕과 윤리는 속수무책이 되어있다. 언어로써 생활을 재반영한다는 나약한 문학이 할수 있는 작업이라면 고작 어떻게 하면 더 직관적으로 현실사회를 재생시키는가 하는 문제뿐이다. 물론 황당파적창작수법만큼 적절한 방법도 없을 것이다.   순수한 황당소설이 아닌, 변태속에 사회생리를 이접하고 부조리에 현실골격을 맞춘 예술의 진실 즉 제2자연을 작자는 창조한 것이다. 두말할 것없이 그가운데는 어리광대적이고 비정상적인 인물들이 서있는것이다.   4     연이는 자기희생정신이 아주 강한 인물이다. 남편을 위해서라면 웃음도 직장도 모두 내버릴수 있는 심리적준비가 되여있는 인물이었다. 어쩌면 인륜의 논리에 부합되어 존경의 대상으로 될 것도 같지만 작품의 전반 과정을 아무리 훑어보아도 동정과 타매가 방울져 있을뿐 긍정의 흔적은 조금도 없다. 바꾸어 말하면 작자는 연이를 비판적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해방을 부르짖은지도 한세기가 되어오는 이 마당이 아직도 남성이 독자 주도하고 따라서 여성은 그 비위를 맞춰서 미용도 하고 옷맵시도 차려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웃음도 팽개쳐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는 것이 아닐가.   김철수의 형상에서 우리는  하층관리들의 누추한 몰골을 엿볼 수 있다. 우로 바라오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회주의자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널려 있다.김철수도 그중의 일원일뿐이며 다르다면 이 인물을 통해 비판되는 것이 현실인사제도라는 것이다. 능력과 열정에 관계없이 오로지 당권다들의 말 한마디에 승급여하가 결정되기에 아첨과 예물이 흥성하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하층관리들의 고충도 더해지고 나아가서 매일 전전긍긍한 상황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용구는 투기분자의 전형이다. 물론 햇내기라고 꼭 뱁새일 것은 아니지만 업무수준이 아직은 밑바닥인 용구가 어벌 크게 교수의 논문집에 이름을 올리려고 발버둥치는데는 그로서의 이유가 있었다. 이를테면 직함평의에 밑천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든든한 밑천"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는 현실이다.  직함평의나 승급시에 사업년령이요 논문이요 수상증서요 하는 따위의 문제에 부딪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이런 현상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형식주의를 절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신출내기가 논문집에 집념하는 것을 타매할 수 없는 입장이다.   복만이는 관료주의에 반항하는 인물형상이다. 실력파인 그는 실권파들의 틈새에 끼어 숨도 바로 못쉬고 매사에서 여의치 못하다. 그러던중 한번의 히트로 대뜸 인기인물로 부상한다. 노비도 결산받고 직함도 해결받을 가는성이 있게 된다. 물론 관료들의 상투적인 수법에 걸려 고민속에서 허덕이게도 된다. 관장(官场)의 생생한 재현이라 하겠다. 문외한들이 어떤 도경 또는 어떤 수단을 통해 영도직위에 올라 업무에 정통한 인재들을 이래라 저래라 하며 마구 지휘하는 것은 중국의 일대풍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도 많이 보아온 풍경이라서 복만이의 고민에는 별로 무감각했고 나중에 결말이 희극적으로 반전이 될 때에는 야릇한 쾌감도 느낄 수 있었다.   정호는 개방시기가 만들어낸 방탕아라 할 수 있다. 어느 시기나를 막론하고 대개 풍류객은 모두 있는 법이지만 오늘에 사는 외도군들은 정상을 벗어난 행위들이 많다. 밥 먹듯이 아내를 갈아대는가 하면 딸같은 여자와 살을 섞고 동시에 여러명의 이성과 접촉하는가 하면 오락장소에서마저 거리낌없이 성행위를 감행한다. 소위 "형세에 발맞춤"하는 것이라든가, 아무튼 복만이는 인간본성에 대한 질타보다는 사회병집의 수술에 더 치중된 인물이다.   임재수는 불공평한 분배방식에 도전을 건 영웅이다. 자기가 그토록 흠모했던 이정수주필이 그 지명도와 재능과 꼭 반비례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 소위 박사, 교수, 작가들이 소학교도 졸업 못한 기업가 앞에서 사맥을 못쓰는 것을 놀랍게 보았을 때 우리의 영웅 임재수는 비애와 절망을 느꼈고 추호의 미련도 없이 자신의 이상 방향을 변경시킨다. 임재수는 또한 얼기설기 엉켜진 관계망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득죄할 수 없는 부문들에서 손길을 뻗쳐와 그의 회사는 어느새 "처제회사"로 전락되며 그때문에 끊임없이 오작품들이 생겨나 회사의 정상적인 운영에 영향을 끼친다.이 땅에서 일을 벌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해본 일이다.임재수란 인물이 풍자의 대상이 되었든 어쨌든 이 인물이 우리에게 던져준 사색의 여운은 한이 없다.그만큼 적시적이고 가치가 큰 인물이라 할가.   5     소설 문체를 어떻게 써야 한다는 격이 없다.박향숙씨의 경우는 슈제트를 단선적이고 평면적으로 진행시켰고 언어는 미사려구를 피면하고 평범한 언어를 사용하였다.창작수법상에서는 물론 과장법을 인용하였고 황당성을 돌출시켰다.그러나 한마디 부언하고 싶은 것은 박향숙씨의 소설은 결코 황당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사실주의와 황당파의 가운데 속하는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편할 것이다.아니,사실주의 수법과 황당수법이 동시에 개입된 수법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아무튼 보귀한 시도를 해주어 무척 반갑다.아울러 문단에 신선한 바람을 넣어주어 다행스럽고 행운스럽다.   그러면서 이런 풍격을 보다 성숙시키면서 새로운 탐구와 성취를 거두기를 바란다. *주:본 평론은 1999년 6월 ,연변인민출판사 아리랑특간 제64호에 실린 글임.           
39    예스 위 캔 댓글:  조회:495  추천:1  2014-09-01
예스 위 캔 장학규       지난 1월 20일 버락 오바마가 미국 제44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세계적인 인기를 몰아온 오바마때문에 무드가 억망인 세계가 요즘 그나마 너무 고루하고 심심한 편은 아니라고 형용할 수 있을 거 같다. 무엇무엇해도 미국은 참으로 위대한 나라란 생각을 감출 수 없다. 탄복하다 못해 막 엎드려 절하고 싶은 심정이다. 숭양이라 해도 무방하고 미외라 해도 달갑다. 아버지가 케냐 출신, 그러니까 오바마는 케냐 이민 2세인 것이다. 유색인종인데다가 이민 2세인 오바마가 한 나라의, 그것도 지구상 유일한 초강대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다니 정말 말이 나오지 않는다. 미국 문화의 흉금과 도량에 찬사를 아낄 수 없다. 물론 오바마의 개인적인 카리스마를 간과할 수 없다. 그의 매력은 분열과 대립의 분계선에 선 미국을 하나로 통합하고 그 어떤 세력이나 관념을 모두 수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현재의 미국은 다양한 문화의 융합이 시급하고 거침없이 무너지고 있는 경기를 부추겨야 하는 시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모로 특이하고 신비하고 생신한 오바마란 캐릭터가 꼭 필요한 미국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계에 각인되는 오바마의 파워는 아무래도 그의 뛰어난 연설재주가 아닐가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오바마가 선거에서 이기고 당선 연설을 하던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오바마가 얼마나 선동성이 강한 연설가인가를  승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장편의 연설을 원고지도 없이 거침없이 구사하는 것을 보고 괜히 폼을 잡으며 느릿느릿 원고지를 읽어내려가는 지도자들의 모습에 익숙해진 중국인들의 경우라면 가히 메가톤급이 아닐 수 없다. "예스 위 캔!" 그 연설에서 오바마는 자기의 선거구호이기도 한 이 말을 여러번 곱씹었었다. 수만의 현장 청중들이 합창하기도 한 이 말은 우리 말로 직역하면 아마 " 그렇다. 우리는 된다!" 일 것이고 문맥을 맞추어 번역하면 " 그래, 하면 된다!"가 아닐가 싶다. 더 알맞은 번역은 나름대로 스스로 하는 것으로 하고 우선 "예스 워 킹!"의 메시지를 파보기로 하자. 글로벌 금융위기로 하여 세상은 억망진창이 되고 있다. 사람마다 전전긍긍하고 도처에서 아우성이다. 이럴 때 "우리는 된다." 또는 "하면 된다." 는 구호는 정신력을 분발시키는 힘을 발휘할 것이 틀림 없다. 솔직히 우리는 여직껏 피동적인 삶의 모식에 젖어있었다. 어떤 장애물에 부딪치거나 의도적인 방해에 직면하거나 또는 무슨 위협에 마주서면 곧바로 단념하고 포기해버린다. 이런 의미에서 인종차별경향이 아직도 남아있는 미국에서 오직 "하면 된다."는 집념으로 모든 불평, 불공, 불신과 떳떳이 마주하여 투쟁하고 성공한 오바마의 정신은 우리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예스 위 캔!" 우리도 이런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한다. 대가나 희생이 없이 저절로 성사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올 한해는 오바마와 더불어 이 구호를 웨치고 실천해보자. "예스 위 캔!"   
38    언제까지 떠올아야 할까 댓글:  조회:502  추천:0  2014-09-01
언제까지 떠돌아야 할까 장학규 일전 야채시장에 갔다가 조선족장사군들 사이에 오가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쪽 아주머니의 남편이 방문취업 추점에 걸려 한국에 가게 되어 장사를 거두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시정에서 시도때도 없이 듣게 되는 얘기여서 별로 시답지 않았으나 아이러니한 것은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저쪽 아주머니의 화들 반응이 더 흥미 있었던 것이다. "그 집은 좋겠네!" 좋겠네? 시골서 농사를 짓는 집에는 정말로 좋은 소식일지도 모른다. 해종일 하는 일 없이 집구석에 들어박혀 요행수로 한국행을 바라는 백수들에겐 진짜로 흥부박이 굴러온 희사일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근데 이건 다른 상황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태를 묻고 나서 자란 정든 고향을 떠나 수천리 이역 타향에 와서 어렵사리 창업의 터전을 마련한 그들이다. 언론의 조사에 의하면 청도의 조선족 식품장사는 불경기 상황에서도 그나마 장사가 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몇년씩 꾸준히 장사를 해온 집들은 거의가 아파트를 구입했고 차를 장만했다. 금방 자리를 튼 집들도 어려움보다는 창창한 앞날을 기대할 수 있는 스타스선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불안한 한국취업을 선망하다니 억이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묻지마 한국행은 우리 몸속에 깊숙히 자리잡은 떠돌이의식의 작간이 아닐 수 없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인해 현재 한국의 경기도 꽁꽁 얼어붙는 상황이다. 더우기 한화 가치의 지속적인 하락세로 인하여 그나마 일자리를 얻은 취업자들도 소득이 급감하여 고통을 하소연하고 있다.경제 불황에 배기지 못해 매일 수백의 조선족 귀국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또 매일 수백 수천의 출국행렬이 줄서는 이런 풍경은 중국 조선족을 내놓고 세계 어디서도, 어느 민족에게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옛말에 자주 움직이면 먼지도 앉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생계 마련이 약속된 터전에서 지속발전이 가능한 포인트를 벗어나 굴곡적인 길을 걸으려는 것은 어디까지나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다. 언제까지 우리는 먼지마저 회피하는 떠돌이 삶을 영위할 것인가?  
37    여인상의 항주인 댓글:  조회:409  추천:0  2014-09-01
여인상의 항주인 장학규   항주에 발을 붙인지도 어언간 5년,그간 관광지만 돌아다니다보니 당지인과 교류할 시간을 거의 가지지 못했다.그러다가 문득 어느날 많은 항주인들과 상대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 되였다."세종식품"이란 가게를 내면서부터였다.우리와 너무 다른 그들만의 사유모식,성격기질을 발견하게 되여 무척 당혹스러웠다.     충돌은 가게방을 찾는데서부터 생겼다.면적이나 지리위치같은것은 차제이고 우선 주인의 태도부터 문제거리였다.옷가게면 된다 서점이면 더욱 좋고 이런 식으로 집주인이라는 사람들이 장사거리를 만들어주는 고약한 버릇들이 있었다.세상에 이런 법이 어딧냐고 펄쩍 뛰며 나와도 다시 상론하자며 말리지도 않았다.환장하겠네를 수십번 곱씹던 끝에 겨우 그런 규제를 하지 않는 집주인을 만나 계약을 맺기에 이르렀는데 전형적인 강남사나이인 이 양반에게는 더 희한한 메뉴가 있었다.신분증은 물론 회사 주소 ,집 전화 등을 상세히 적어둘 뿐만 아니라 호적부,결혼증 같은 것도 카피를 떠서 달라는 것이였다.     "이 자식 까께베 아니야?"   내가 우리 말로 투털대는데 옆에 있던 안해가 한술 더 뜬다.   "까께베보담 시에미가 제격이예요."   양도비에 보증금에 내라는 돈은 다 내고도 "까께베"내지 "시에미"가 내놓은 요구를 만족시키느라고 보름이란 시간을 훌쩍 흘러보냈다.하느님 맙소서!     그러나 이 정도는 약과였다.가게를 정식 운영하면서 매일 매일 짜증스러운 일에 부딪쳐야 했다.가게를 들르는 사람들은 거개가 흔히 일컽는 그런 짠돌들이였다.분명 세트로 된것들도 개수로 팔라는 사람들이였다.한국 커피가 좋다는 말은 들었다.그러나 만에 하나 맛이 없으면 세트로 샀다가 어쩔건가? 먼저 터뜨려 하나만 달라. 맛 있으면 또 오는거다.한둘도 아니구 거개가 이런 식이니 나중엔 열이 받쳐 터쳐버렸고 평균치보다 곱으로 되는 가격으로 팔았다.그러나 거기서 끝이다.다음에 와서는 다른 물건을 그렇게 팔라는 요구를 제기해왔다.절강사람들의 경제머리가 뛰여나다는 말은 많이 들어왔지만 이 정도로 심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어느 이벤트행사에서 무료 선물이 있다는 소문만 돌면 새벽 2시부터 비오는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였다.무더운 여름철엔 전기세가 나간다고 서점 상가 또는 싸구려 식당에서 빵 하나에 음료 한병을 주문해놓고 하루 종일 보내는 사람들이다.아이구 기가 질려!     항주인들은 이렇게 계산적이다.마치도 자로 잰듯이 치밀한 계산을 앞세우기에 실수가 거의 없고 손해를 자초하지도 않는다.     항주의 거리에서는 북방에서 흔히 보게 되는 칼부림의 장면을 거의 볼수 없다.깡패무리들도 없는상 싶다.우리 주변 가게들은 거개가 외지인들이 경영하지만 소위 보호비 명색을 가지고 다니는 놈팽이들을 전혀 볼수 없다.집법자들도 뗑뗑거리는 법이 없고 점잖고 문명한 편이다. 그렇다고 싸우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실제로 싸움을 질기게 하는 편이다.모순이 생긴 두 사람이 오히려 관객이 열을 낼 지경으로 몇시간씩 허비하면서 입싸움을 벌리는 것이 보통이다.싸우는 상대보다 구경군을 더 의식하면서 서로 약자인체 피해자인체 가장하는것을 보면 막 기가 질린다. 나같이 세부에 둔하고 해석에 약한 사람은 그저 입만 하 벌리고 있어야 한다.     항주인들은 스스로 "북방에서는 남편을 섬기고 남방에서는 안해를 섬긴다"는 말을 꺼리낌없이 하고 있다.그만큼 항주는 많이 여성화된 도시이다.앞에서 구구히 말한 것을 내놓고도 우선 생김생김부터 그랬다.미인의 도시답게 눈을 주는 곳이면 버들가지처럼 늘씬한 여인들이 보인다.몸매가 호리호리하여도 납작하지는 않다.튀여나올데는 다 튀여나왔다는 얘기이다.북방에서 흔히 보게 되는 웅장하고 거쿨진 사내보다 왜소하고 아리한 남자가 대부분이다.그래서인지 가지런히 다니는 남녀를 보면 남자쪽이 많이 기운다는 느낌을 진하게 받게 된다.이런 외모상의 차이때문에 남자들이 많이 움츠러든다는 말을 당지인들을 통해 직접 확인한바 있다.딴에는 그럴듯하다.그러니까 남자들이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애를 봐야 하겠지.안해를 섬겨야 하니까.주부 아닌 주부가 되여진 항주의 남자들은 그래서인지 목소리마저 가늘고 챙챙하다.     항주를 한번 다녀간 사람들은 깔끔하게 다듬어진 도시의 모습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섬세한 항주인들은 손바닥만한 공지가 나져도 그대로 놔두는 법이 없고 곧잘 화원 또는 풀밭으로 다듬어낸다.엉뎅이 들이댈 자리도 안될 것 같은 공지에 잔디를 깔고 오솔길 내고 정자를 세우는 것을 보면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재래로 항주는 강소성 소주시와 더불어 정원의 도시로 알려졌다.서호에서 가장 큰 인공섬인 소영주-삼담인월이라고도 함-는 말그대로 정원예술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호수속에 섬,그속에 또 호수가 4개,그 가운데가 또 섬이다.물과 육지가 4겹으로 이루어져 절경을 자랑한다.팔뚝만한 잉어들이 두려움 모르고 정자밑을 유유히 헤염쳐 다니고 실실히 늘어진 수양버늘이 미풍에 하느작거린다.그속에 몸을 담고 있노라면 여유있고 풍류스럽게 인생을 영위해온 항주인들의 과거가 되새겨진다.     물론 현재도 그들은 다심하다할 정도로 모든 지혜와 재능을 동원하여 고향을 다듬고 있다.서호의 면적은 5.6평방킬로메터,고국인들이 바다로 착각하듯이 가히 작다고 할 수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300년전의 모습을 회복한답시고 수천금을 들여 서호 확장공사를 진행,수만평의 땅을 호수로 판 동시에 여기저기 올망졸망한 건물을 지었다.나무를 옮기고 다리를 놓고 갈대를 심었다.그런 세부미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중국 10대 명찰중의 하나인 영은사를 보아도 그렇다.조형이 각이하고 대소가 부동한 비래봉의 470존 석굴 조상,점토로 20메터 높이에 150존 불상을 조각해낸 "53참배" 바다섬 입체칼라군조 등은 항주인들의 섬세와 인내, 끈질긴 미덕을 그대로 반영해주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영은사로 통하는 길도 오솔길을 방불케 하는 2차선이다.그래서 휴일이나 불교명절 때면 차가 몇시간씩 밀리기가 일쑤여서 어지간히 짜증나지 않는다.자가용이 기하급수로 늘고 있는 항주이고 보면 도로개조가,특히 관광지의 도로개조가 시급한 문제로 대두한 듯 싶은데 항주시 정부에서는 소위 왕래 차량을 소통시킨답시고 많은 자금을 허비하면서 주변 산들에 터널을 뚫으면서도 시원하게 대통로를 뽑아 차들을 씽씽 빼내올 궁리는 죽어도 하지 않는다.역사문화도시의 판도를 깨서는 아니되고 더우기 관광지로서의 깊숙하고 아늑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망가버려서는 아니된다는 속셈이 숨어있다.     항주인들의 군상은 대개 이렇다.단체나 개인이나 모두 잘 다듬어져 있고 세련되여 있다.틈서리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이 쇼핑을 나선 귀부인의 모습과 방불하다.무엇 하나 허투루 대하는 것이 없고 쭉 신경을 모아서 매사에 임한다.깨끗하고 질서정연한 것이 또한 일솜씨가 잰 가정주부의 타입이다.총체적으로 여인상인만큼 소심하고 잘고 다사하고 우유부단한 약점도 가지고 있어 더러 성깔이 나는 구석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정부가 이런 스타일이면 백성에겐 그 이상의 복이 없을 것이며 백성이 이런 양상이면 살림살이가 윤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실제로 항주인들은 복된 삶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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