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활
http://www.zoglo.net/blog/jinbingkuo 블로그홈 | 로그인
<< 4월 2024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칼럼/단상/수필/기행

100세 현대작가들의 장수비결
2019년 01월 01일 10시 06분  조회:1298  추천:0  작성자: 김병활
 100 현대작가들의 장수비결
 
김병활
 
 중국에서 “5.4신문학운동” 이후부터 문학창작에 종사한 현대작가들 중 100세를 넘긴 작가는 아주 적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중국에서는 끊임 없는 전란과 정치투쟁으로 적지않은  문학가들이 불행하게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목숨을 부지하고 장수를 누린 작가들도 있으니 파금, 양강, 라홍은 100세를 넘도록 장수를 누렸고 빙심은 중국 나이(虚岁)로 100세까지 장수하였다. 개혁개방이후 물질적 생활이 풍부해져 유족한 생활을 할수 있기에 으례 장수해야 할것 같지만 새파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는 작가, 시인들을 심심찮게 볼수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시도때도 없이 욕심이 꼬리치며 유혹하는 오늘의 경쟁 환경에서 건강한 생할습관과 심리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아래에 중국의 100세 현대작가 네 사람의 장수 비결을 알아보고 우리 작가들의 문필 생활에 무엇이 문제인지 심사숙고하면서 모두 함께 건강장수를 누리길 바라는 마음이다.
 
차례

  1. 파금: 산책은 건강보조식품을 초월하는 장수 비결
  2. 양강: 양생 달인으로 소문난 녀작가
  3. 빙심: 주련에 내포된 양생 비결
  4. 라홍: 머리와 붓으로 글을 쓰고 손과 발로  건강 챙긴다
 



  1. 파금: 산책은 건강보조식품을 초월하는 장수 비결
 
 파금(巴金, 1904 - 2005)은 중국 현대 작가중에서 유일하게 100세 이상을 산 남성 작가이다. 그는 1931년에 창작한 장편소설《집》을 이어 1938년과 1940년에 《봄(春)》, 《가을(秋)》을 내놓았다. 이 세 장편소설을《격류3부작》이라고 했다.  항전시기에는 《제4병실(第四病室)》《추운 밤(寒夜)》 등 력작들을 발표했다. “문화대혁명”이 종식된후 파금은 1978년 74세되는 해부터 이 전대미문의 “혁명”을 고발하는 수필을 쓰기 시작하여 1986년 81세되는 해까지 150여편을 썼는데 이를 《수상록》이라고 총칭하였다. 그의 열정은 고령기에 들어선 것으로하여 식지 않았으며 엄숙한 사회비판과 자아반성에서 로예술가의 고매한 인격이 표현되였다. 그는 자신이 만년에 직접 체험한 력사적동란에 대해 서슴없이 간여하고 개입하는 태도를 가지였고 인간의 리성이 반드시 모든 것을 통제할수 있으며 인류의 리상과 전도는 밝다는 신념을 안고 있었다.
 파금은 만년에 파킨슨병, 척추압축성골절, 기관지염, 폐부감염 등 병으로 고생하다가   2005년10월17에 101세 고령으로 타계하였다. 사실 파금은 팔순을 넘긴 후에도 두눈에 광채가 빛났고 얼굴에 혈기가 피여 안색이 아주 좋았다. 그는 로화는 다리부터 시작된다고 하면서 매일 걷기 운동을 견지하였다. 매일 아침 기상한 후 그는 집밖에 나와 정원에서 천천히 달리기를 하고 우유를 한 컵 마신 뒤 또 나와 산책을 하곤 하였다. 파금은 젊은 시절부터 샌책을 즐겼는데 프랑스 유학시절은 물론  “문화대혁명”기간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견지하였다. 1967년 63세 되는 해에 홍위병들에게 붙잡혀 상해 강만에 감금되였는데 낮에 투쟁대회에 시달리고도 저녁에 구류소 문앞에서 산책을 하였다. 만년에 여러가지 중병에 걸렸으나 오전에는 약을 복용하고 휴식한 후 오후엔 로인전용 보행도움기(助步器)를 리용하여 산책을 하곤 하였다. 산책 외에 파금의 최대 애호, 취미는 독서와 글쓰기였다. 1982년 78세 이후에 파금은 수차 입원치료를 하면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파금문집》, 《파금번역문집》 등 방대한 저서를 수정하고 편집하는 작업은 모두 이 시기에 완성하였다.
 




2.
양강: 양생 달인으로 소문난 녀작가
 
 양강(杨绛,1911-- 2016)은 저명한 학자이며 작가인 전종서의 안해로서 젊은 시절부터 극작품, 수필을 발표해 명성을 날렸고 또 외국 명작품 번역에서도 큰 성취를 이루었다. 극작품으로는 1940념대에 창작한《흡족한 마음(称心如意)》,《롱가성진(弄假成真)》,《인생유희(游戏人间)》, 《버들개지(风絮)》등이 무대에서 상연되고 책으로 출판되였다. 양강의 《간부학교 수필 6편》은 작자가 1969년 말부터 1972년 봄까지 하남성 《5.7간부학교》에서 생활한 경력을 썼다. 양강의 다른 수필집 《차 마시기 将饮茶》는 부분적으로 “문화대혁명”시기의 불행을 썼다. 양강은 60세 이후에도 왕성한 기력으로 문학창작에 주력했는데 아래에 이 시기에 출판한 산문집과 산문 목록을 참조해 볼수 있다.
1:1981年,时年70岁, 《干校六记》
2:1987年,时年75岁, 《将饮茶》《记钱钟书与〈围城〉》《回忆我的父亲》《回忆我的姑母》
3:1994年,时年83岁, 《杂忆与杂写》《听话的艺术》
4:2004年,时年93岁, 《我们仨》、散文《我在启明上学》
5:2007年,时年97岁,《走到人生边上——自问自答》;
6:2009年,时年98岁,《丙午丁未年纪事》;
7:2013年,时年102岁,散文《忆孩时》。
 
 2016년 105세에 세상을 하직한 양강은 양생 달인이였는바 그에게 양생 관련 문제를 물으면 언제나 손금보듯 줄줄이 대답하곤 하였다. 양강은 만년에 팔단금(八段锦, 중국식 맨손체조의 일종)에 심취되였는데 매일 아침 남편 전종서와 함께 이 운동을 하곤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팔단금의 요령과 작용을 중의학적으로 설명하곤 하였다. 양강은 어느 한편의 수필에서 일년간 양로원에 가서 70-80세 되는 로인들에게 팔단금을 배워주었더니 많은 로인들이 혈압이 안정되였고 식욕도 좋아졌다고 썼다.
 양강은 식생활애서도 건강식품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였다. 그는 평소에 기름진 음식을 아주 적게 먹었는데 담백한 음식, 기름, 소금, 당분이 적게 들어간 음식을 선호했고 절대 배불리 먹지 않았다. 대신 제철 과일과 채소를 즐겨 먹었고 우유를 마시고 생선을 조금씩 쪄서 먹었다. 때로는 큰 뼈를 쪼개서 국을 끓여 먹기도 했고 검은 목이버섯을 끓여서 끼니마다 조금씩 먹었다. 콩물은 언제나 즐겨 먹었는데 어느 수필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내 손으로 콩물을 만들어 집식구들과 함께 마시는데 좋은 재료를 선택하고 아주 정성들여 가공하곤 한다. 나는 또 살구씨 장졸임을 만들기도 하고 콩물을 만들때 땅콩, 호두를 함께 넣는 방법도 발명하였다.”   양강은 로년에 건강하려면 심리상태가 아주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그는 한평생 “누구와도 다투지 않았고 남과 시비를 거는 일이 없었다. 남들이 그를 저명한 작가라고 치하하면 그는 “나에겐 그런 야심이 꼬물만치도 없어요.”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그의 작품집이 아주 잘 팔린다고 하면 그는  “해빛이 개꼬리를 비추듯이  그저 잠간일뿐이예요.”라고 대답한다.  그는 흉금이 넓어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고 보다 많은 정력을 자신이 즐기는 일에 집중하였다. 이리하여 그의 만년 생활은 아주 풍부하고 재미로 넘쳐나게 되였다. 그의 가사도우미(保姆)의 말에 따르면 양강은 만년에 서예와 글쓰기를 견지하였고 매일 책을 읽고 남편의 필기를 정리하거나 외국작품을 번역하곤 하였다. 양강이 87세 되는1997년에 유일한 딸 전원이 병으로 사망했다. 그는 대학교수였던 딸이 자신의 최고 걸작이라고 늘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60세밖에 안되는 나이에 늙은 부모를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하직한 것을 매우 슬퍼했다. 하지만 그는 비통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리 셋(我们仨)》이라는 산문집을 집필하였는데 그중 주인공은 사랑하는 딸이였다. 2004年 93岁되는 해에 이 책이 출판되였는데 수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 베스트셀러(畅销书)로 부상하였다.


 



 
  1. 빙심: 주련에 내포된 양생 비결
 
 빙심(冰心)(1900--1999)은 일찍 1920년대에 “문제소설”과 짧은 시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보다 산문의 성취가 더욱 크다. 빙심의 소설로는 《누구의 죄인가(誰之罪)》, 《이 사람만 홀로 초췌하여라(斯人獨憔悴)》《초인》등이 있고 수필로는 어문 교과서에 채용된《작은 초롱(小橘灯)》、《어린 독자들에게(寄小读者)》(발췌)가 있고 시집으로는 《뭇별(繁星)》、《봄물(春水)》등이 있다. 개혁개방 이후 빙심은 80세 고령으로 다시 필을 들고 왕성한 정력으로 300여편의 수필을 창작하였다. 만년의 그의 창작은 높은 예술 수준으로 강렬한 반향을 일으켰다. 자전체 수필 《나의 동년》 ,《나의 대학 생애》, 《나의 남편—오문조》등 작품들은 자신의 100세 경력을 주선으로 익숙히 알고 있는 20세기 지식인들의 생활을 우아하고 생동한 필치로 묘사하여 전기문학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빙심이 95세 되는 해에 한 언론매체에서 그의 양생비결에 대해 묻자 친필로“事因知足心常乐,人到无求品自高。” 라는 주련을 써 주었다. 그 뜻인즉 만족감을 안고 살면 언제나 즐겁고 욕심을 버리면 인격이 고상해 진다는것이다. 빙심은 일찍 29세 되는 해에 맹장염에 걸려 병원에서 수술하게 되였는데 “모든 근심걱정을 포기하고 자연이라는 대해속에서 치료를 받으면 된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빙심 일가 8명은 8개 지방에 산산이 흩어져 살게 되였는데 그도 농촌에 내려가 “소외양간”이라 불리는 숙소에서 어렵게 생활했지만 태연히 모든것을 받아들였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에겐 특별한 양생지도(养生之道)가 없다. 그저 마음을 활달하게 가지고 남과 시시콜콜 따지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괴롭히지도 않으며 지난 일로 언제나 자신을 죄스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에게 제일 무서운 병은 마음의 병이다!” 
  빙심은 마음을 다스리는 외에 만년의 양생에서 몇가지 중요한 규칙을 세웠다. 그중 하나는 바로 음식 량을 절제하고 편식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아침에는 우유거나 커피에 달걀을 하나 먹고 점심, 저녁에는 육식과 채식을 겸하되 채식을 위주로 하며 평소에 즐겨 먹던 홍소육(红烧肉),두부, 배추, 동과(冬瓜) 등을 골고루 먹는다는 것이다. 이밖에 빙심은 “의사의 분부대로 한다”는 준칙을 세웠는데 병이 있거나 어디가 불편하면 엄격히 정규병원의 의사 말대로 해야지 절대로 여기저기서 뜬소문을 듣고  “용한 의사”를 찾아가 병을 보지 않는다는것이다. 
 빙심은 자신의 양생법에서 빠질수 없는것이 바로 글쓰기라고 하였다.  “나의 양생법은 건강보조식품도 아니고 보약도 아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미소를 지으면서 글을 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장수 비타민’이다.”라고 말하곤 하였다. 빙심은 평생 아동문학창작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는 귀여운 어린이와 같은 밝은 사물을 묘사하는것을 선호했고 명랑하고 청신한 문구를 사용하는것을 즐겼다. 아마  일생동안 어린이들과 벗을 사귄것이 바로 만년에도 생기발랄한 동심을 보존하는 방도였을 것이다. 바로 이런 동심이 그로하여금 모든 어린 생명을 사랑하게 하였고 건강장수를 누리게 했을것이다. 빙심은 집에서 흰털 페르시아고양이를 키우고 있는데 빙심은 그 고양이가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볼때마다  너무 즐거워서 큰소리를 내며 웃곤하였다.  
 




 
  1. 라홍: 머리와 붓으로 글을 쓰고 손과 발로  건강 챙긴다
 
 라홍(罗洪1910 – 2017)은 장기간 문학사가들에게 소외당하여 별로 중시를 받지 못한 녀작가(最受文坛冷落的女作家)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그러나 전종서는 라홍이야말로 사회소설을 창작하는 “진정한 기재(真奇才)”이며 “진정한 소설가(真正的小说家)”라고 극찬하였다. 라홍은 1930년부터 박품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는데 첫 작품은 수필《심심할때면(在无聊的时候)》이다. 그후부터는 소설을 창작하였는데 《부등변(不等边)》, 《교장녀사(校长女士)》등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해방후 문예지 편집에 종사하다가 정년 퇴직하였다. 그후부터 라홍은 왕성한 정력으로 소설, 산문을 창작하였는데 선후로 《부서집(腐鼠集)》,《아동절(儿童节)》,《이 시대(这时代)》,《밟는 재미(践踏的喜悦)》등12부 단편소설집과 《춘왕정월(春王正月)》, 《고도시대(孤岛时代)》,《고도세월(孤岛岁月)》등 장편소설 3부를 창작하였고 또 수필집도 출판하였다. 2006년에는 《라홍문집(罗洪文集)》총3권을 출판하였다. 그의 소설은 주로 사회민중들의 군상을 묘사하였는데 필치가 섬세하고 인물성격이 선명하다. 2017년에 별세한 라홍은 중국 현대작가 중에서 최장수 녀작가로 되였다.
라홍은《나의 양생경(我的养生经) 》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의 양생법은 바로 평범한 삶을 추구하는것이다. 일상 생활을 평범하게 보내고 차분한 마음으로 생할을 대하며 너그러운 태도로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는것이다.”그의 이런 양생법은 양강과 비슷한 데가 있다. 
 이밖에 라홍의 장수 비결은 “움직이는것(动)”이다.
 첫째는 머리를 쓰는것(动脑)이다. 만년에 라홍은 매일 아침 5시에 기상하여 세수를 마친후 정한 시간에 아침 뉴스를 시청한다.   오전에는 신문을 읽고 책을 보며 점심 식사후에는 수십분 정도 오침을 취하는데 일반적으로 1시간을 초과하지 않는다. 기상한 뒤에는 작품 창작구상을 한다. 이렇게 그는 80년 문필생활에서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고  100세 되는 해에도 머리가 명석하여 단편소설 《련마(磨砺)》발표하였다.
 다음은 식생활에서 다음과 같은 몇가지 준칙을 지키는것이다. 식사 시 절대로 배불리 먹지 않고 70%정도만 먹는다. 아침은 죽밥이 위주인데 반공기면 족하다. 거기에 절인 채소와 기름에 볶은 땅콩을 곁들여 먹는다. 점심은 고기가 들어간 요리 2가지에 채소와 국 각각 한가지이며 밥은 역시 반공기면 된다. 저녁도 점심처럼 먹는다.  구기자차를  늘 마시면서 눈을 잘 보양한다. 눈 위생에 주의하면서 절대로 눈이 과로하지 않도록 한다... 라홍은 이런 준칙을 잘 지킨 덕에 줄곧 건강을 유지했고100세 넘도록 안경을 쓰지 않고 책을 보고 글을 썼다.
 두번째는 손발을 움직이는것이다(动手脚). 라홍은 한평생 동적인것(动)과 정적인것(静)을 잘 결합하였다. 책을보고 글을 쓰다가도 반드시 밖에 나가 운동을 하는데 매번 반 시간 정도 걷기를 한다. 그는 산책을 하는외에 또 태극권을 즐긴다. 라홍의 집에서 20여년간 가사도우미(保姆)를 한 림씨의 말에 따르면 라홍은 95세 되는 해까지 매일 태극권을 견지했다고 한다. 라홍의 수필 《태극권 배우기(我学太极拳)》에서는 자신이 어떻게 태극권 문외한으로부터 태극권의 진미를 터득하게 되였는지를 쓰고 있다.
 
2019년 1월 1일
 
부록: 양강 100세 소감



 
(杨绛一百岁感言:人生最曼妙的风景是内心的淡定与从容)
 
  我今年一百岁,已经走到了人生的边缘,我无法确知自己还能走多远,寿命是不由自主的,但我很清楚我快“回家”了。
  我得洗净这一百年沾染的污秽回家。我没有“登泰山而小天下”之感,只在自己的小天地里过平静的生活。细想至此,我心静如水,我该平和地迎接每一天,准备回家。
  在这物欲横流的人世间,人生一世实在是够苦。你存心做一个与世无争的老实人吧,人家就利用你、欺侮你。你稍有才德品貌,人家就嫉妒你、排挤你。
  你大度退让,人家就侵犯你、损害你。你要不与人争,就得与世无求,同时还要维持实力,准备斗争。你要和别人和平共处,就先得和他们周旋,还得准备随时吃亏。
  少年贪玩,青年迷恋爱情,壮年汲汲于成名成家,暮年自安于自欺欺人。人寿几何,顽铁能炼成的精金,能有多少?但不同程度的锻炼,必有不同程度的成绩;不同程度的纵欲放肆,必积下不同程度的顽劣。
  上苍不会让所有幸福集中到某个人身上,得到爱情未必拥有金钱;拥有金钱未必得到快乐;得到快乐未必拥有健康;拥有健康未必一切都会如愿以偿。
  保持知足常乐的心态才是淬炼心智、净化心灵的最佳途径。一切快乐的享受都属于精神,这种快乐把忍受变为享受,是精神对于物质的胜利,这便是人生哲学。
  一个人经过不同程度的锻炼,就获得不同程度的修养、不同程度的效益。好比香料,捣得愈碎,磨得愈细,香得愈浓烈。
  我们曾如此渴望命运的波澜,到最后才发现:人生最曼妙的风景,竟是内心的淡定与从容……
我们曾如此期盼外界的认可,到最后才知道:世界是自己的,与他人毫无关系。
 
(作者:杨绛(1911年7月17日—2016年5月25日),本名杨季康,江苏无锡人,中国女作家、文学翻译家和外国文学研究家,钱锺书夫人。杨绛通晓英语、法语、西班牙语,由她翻译的《唐·吉诃德》被公认为最优秀的翻译佳作,到2014年已累计发行70多万册等等。2016年5月25日,杨绛逝世,享年105岁。)

 

파일 [ 5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6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6 부처님처럼 인자한 허룡구 교수님 2019-11-30 0 1087
15 연변의 진달래 그리고 혁명렬사기념비 2019-06-12 0 1621
14 한락연—내고향 룡정의 자랑 2019-06-12 0 921
13 100세 현대작가들의 장수비결 2019-01-01 0 1298
12 연변대학 학생팀제작 마이크로영화축제 2018-11-29 0 1074
11 사진으로 본 나의 40년 인생변천사 2018-11-09 0 1442
10 고목나무의 생존 의미 2018-10-17 0 748
9 룡정은 오랜 혁명 근거지(革命老区) 2018-07-14 0 854
8 퇴역 사령원의 록수청산 꿈 2018-05-11 0 1472
7 아들 결혼에 바라는 것 2018-01-07 1 1129
6 연변 항일 <녀장군> - 허성숙의 발자취를 찾아서 2017-11-30 0 1269
5 건축공사장의 철학 2017-09-04 0 827
4 따예(大爷)’라는 호칭에 습관되지 못한 나 2017-09-02 0 960
3 1977년 - 대합입시를 회복하던 나날에 2017-08-13 0 1141
2 老伴喜欢养花 2014-11-08 0 1661
1 화이부동(和而不同) 2012-11-17 3 194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