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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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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비운의 음영》

장편소설 《비운의 음영》(4)
2013년 10월 25일 14시 35분  조회:954  추천:0  작성자: 김남득
4
경수는 문화대혁명 전야에 열아홉살나이로 연길에서 고중을 졸업하고 최고지시를 받들어 사는마을인 태평촌으로 돌아왔다. 그때 당에선 전국적으로 청년일대들에게 학업보다 새농촌건설에 뛰여드는 열조를 더 부추켰는데 경수도 백지같이 깨끗한 마음이였기에 당이 시키는대로 한다는것이 그의 신조였다. 마을은 서쪽에 바람막이처럼 계관산이 솟아있었고  뒤쪽엔 팔도령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그사이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태평천이 마을턱밑을 씻어내리는 천혜의 그림같은 동네로서 조선족. 한족 백여가구가 싸리버섯같이 모여사는 고장이였다. 하여 경수는 벌써 학교를 졸업하기전부터 상급의 호소에 매혹되여 공부하는 시간에도 종이장을 펴놓고 고향산천을 다시 수놓는다며 그림을 그렸다. 한창 꿈에 들뜬시절이라 마치 농촌건설이란 그림그리기처럼 그렇게 생각대로 척척 되는줄로 여겼고 희망에 부푼때라 공부는 뒷전으로 환상에 들떠서였다. 마을은 민족습관 차이로 두개 자연부락으로 나뉘였기에 두개 생산대로 획분되였는데 조선족만 육십여가구로 경수또래의 젊은애들만도  칠십여명이나 되였다.

그것은 어떤집에선 자식들을 한두살터울로 내리낳다보니 한집에 젊은애들이 두셋씩 되는집들도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들은 거개가 소학교나 초중을 졸업하고는 아람이 벌어진 밤알처럼 제뿌리에 떨어져 숙명같은 농사일에 매달려야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정치적 열정은 그야말로 자가사리 끓듯했다. 하긴 정치열의가 낮다고만하면 사람값에 쳐주지 않았으니 말이였다 그때 마을엔 김춘화란 처녀애가 있었는데 생산대 부녀대장직에 공청단서기란 직무까지 겸하고 마을의 청년들을 떡 주무르듯 쥐락펴락했다. 그녀는 경수보다 한살 아래였지만 일찍 초중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탓으로 세상물정에 보다 밝았다. 그녀의 정치열정은 불같이 뜨거웠고 또 성격이 활달하고 붗임성이 좋은데다가 인물도 반반하여 사람들중에서 인기가 높았다. 경수는 그래도 처음엔 그녀를 눈에 차하지않았다. 그것은 학교때 같은반에 춘화보다 나은 여자들이 쌔고 버렸다는 데서였다. 그래도 그는 그녀들한테 눈한번 주지않았다. 앞으로 자기는 더 잘되여 더좋은 상대를 찾겠다는 데서였다. 춘화는 그가 마을로 돌아오자 사회 선배답게 그를찾아 담화도 나누고 앞으로의 혁명위업에 힘다할것과 함께 잘싸워 줄것을 주문하고 또 서로 다지기도했다. 그녀는 경수의 귀향에 대해 그 누구보다 속으로부터 못내 기뻐맞았다. 그같이 똑똑한 애가 자기같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수있게 되였다는 것은 실로 꿈같은 일이였기 때문이였다.

춘화가 알건대 경수는 어릴때부터 마을 어른들로부터 신동이라 불렸고 학교에서도 항상 최우등생으로 공부를 너무잘해 초중이나 고중까지도 학교에서 추천받아 시험없이 뽑혀간 인재였기에  일반사람과는 달리 앞으로 세상을 놀래울 큰인물로 될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와 함께 일하게 되였다는 데서였다. 그때는 남녀로소 막론하고  몰려다니며 낮이면 함께 일하고 밤이면 한곳에 불려가 매일같이 회의에 참가해야 되였기에 사춘기의 젊은애들은 좋았다. 매일 자기를 나타낼수 있고 또 제마음에 드는 상대한테 잘보일수 있기때문이였다. 춘화는 경수가 아는것이 많다는데서 사업을 토론하자며 밤낮 그를 찾아다녔고 생각이 단순했던 경수로서는 그녀의 불타는 혁명열정에 갈수록 감화되고 매료되기까지 했다. 그는 어릴때엔 공부를 잘해야만 하는줄로 여겼는데 인젠 지식분자는 고린내나는 아홉째로 된이상 그저 온몸을 혁명에 투신해야함을 느꼈다. 따라서 혁명이란 무엇인가는 알바없어 그저 당이 하라는대로 하는것으로만 이해할수밖에 없었고 또 이를위해 분발하면 된다고만 여겼다.

그는 한창때인지라 희망에 끓어올라 일잘하고 입당하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전국적으로까지 이름날리고만 싶은마음이였다. 그러한 그였기에 그역시 춘화의 도움과 지지가 절실했고 또 그녀와 함께 있는열정과 힘을 다하다나니 두사람은 자연 의기상투로 떨어질새 없었다. 하다보니 젊은남녀라 경수는 처음엔 그녀를 그닥잖게 보던데로부터 갈수록 자석같은 끌림으로 나중엔 하루만 그녀를 보지못해도 미칠지경으로 반하게까지 되였다. 그만큼 춘화는 역어빠져 그의 마음을 잘 휘여잡을줄 알았다. 그때 그들이 해야할 생산대일이란  밑도 끝도없이  쌓이기만하는 일들이였다. 집체화로  마을에 남녀로소 일떠나 밤낮 눈에 피발이 서게 일했다는게 집체재산은 늘어난건 한곳도 없었고 사원들은 해마다 춘궁을 면하기 어려웠고 입는것은 궁둥이에  살점이 보이지않으면 다행인 셈이였다. 그리고 쓰고사는 집도 닭우리같은 초가집을 면치못했다. 땅도 산꼭대기고 산비탈이고 모두 경작지로 일구었대야 워낙 사람이 많아  한사람당 경작지가 몇푼안되게 돌아갔지만 해마다 여름이면 두벌기음도 채 매지못해 밭을 묵일수밖에 없었고 가을은 미처 손을 쓰지못해 눈속에서 곡식을 거둬들여야 할때가 많았다. 경수는 그럼에도 잘해보려는 공명심의 작동으로 무슨일이든 남의 두세배로 짜장 죽을둥살둥 모르고 제몸을 내번지고 일했기에 현에까지 소문나 많은 영예를 받아안았고 어떻게 몸내번지고 일했으면 마을에 돌아온지 일년여만에 파격적으로 생산대장 중임까지 떠메게 되였다.

그러던중 한번은 밤중에 큰 홍수로 태평천 강뚝이 터져 문전옥답과 아래마을까지 위협받을때였다. 그가 선참 거센물에 뛰여들어 흙가마니를 쌓던중 갑자기 홍수에 떠내려오는 나무뿌리에 떠밀려 잃어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날밝을때까지 그를 찾아 헤맸으나 찾지못하자 그가 죽은줄로만 알고 추도식까지 열려고 서두를때였다. 그는 범람하던 물곬이 아래쪽으로 넓게 펴지며 수심이 얕아져  논밭중간 어느 배추밭에 떠밀려 중태에 빠졌는데 다행이도 뒤미처 아래마을 논물관리원한테 발견되여 구급받고 그의 집에 업혀가 살아난뒤 점심때에야 마을로 돌아왔다. 이는 과연 그때에도 희한한 일로 전 현을 들썩하게 이름날린적도 있었다. 그가 생산대장으로 일하며 보니 60여가구의 먹고 입고 살아가는 일을 책임진다는것 자체가 녹녹치 않음을 절감헀다. 하여 그는 어쩔수없이 죄짓는 일인줄 알면서도 죄를 범할수밖에 없었다. 그가 사원들을 동원하여 일년내내 등이휘게 일하여 오십여만근 이상의 소출을 냈는데도 삼백명이 넘는 사원들에게 나눠줘야할 정해진 식량은 춘궁기나 겨우 면할정도로 겉곡으로 십만근도 안되였다. 그리고 나머지는 몽땅 국가에 상납되고 지어는 된장용으로 분배되는 콩도 매인당 일년분 다섯근으로만 정해진 것이였다.

워낙 먹고살기 힘든세월에 고기맛이란 일년가야 한두번밖에 볼수없는 형편에 우리 조선족은 그나마 된장만이라도 그립지않으면 한여름 푸성귀도 뭏쳐먹고 된장국으로나마 배를 달랠수 있었는데 그것마저 산해진미같은 두부만 한두번 해먹으면 된장은 약에 쓰기도 어려울 판이였다. 하다면 새해에 어떻게 사람들을 집단생산에 힘다해 달라고 빌고 들겠는가? 경수는 고민하다못해 나중엔 삼수갑산으로 귀양살이 가더라도 하는생각으로 회계와 창고보관원과 비밀히 짜고들어 사람당 스무근이란 콩을 더 나누어주고는 회계장부에는 옥수수로 둔갑시켜 기입하게한 간머리 큰 이른바《양곡 사분죄》도 저질렀다. 그땐 이것이 발각만되면 즉석 감옥행이였다. 그는 또 집체일을 하면서 대장으로서의 마음이여서였던지 누구든 집체일을 직심으로 잘하는 사람이면 곱게 보이고 아무리 출신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함께 하는일에 베돌이질하는 사람이면 주었던것도 뺏아내고싶은 마음이였다. 그때 마을엔 송칠국이란 부농분자가 있었는데 아무리 성분이 나빠도 일에선 감농군이고 직심이였다. 그가 하는 논삶이는 아무리 석짐짜리 큰 논판이라도 그가 몇번만 번지를 끌고 다니면  수평이 짜장 유리판처럼 반듯하여 일도 축내고 품도 덜고 예니사람들이 쓸데없이 흙을 몰아가고 몰아오는 역사가 없이 소도 편했다. 그리고 그가 하는 한전후치질도 어떻게 묘하게 탑손을 잡는지 보습으로 흙을 떠서 귀신같이 이랑에 풀을 덮고 곡식은 씨속음처럼 남겨 그가 해낸 후치질 뒤는 허리를 펴고 기음매도 된다고들 했다. 그런 알배기 농군으로 일을 직심으로 해재꼈지만 회의때마다 붗잡혀 앞에나와 투쟁받았고 분배시엔 늘 차별대우를 받아야만 했다. 이를 가슴아프게 생각한 경수는 그가 대장으로 되면서부턴 춘화와 다른 간부들을 은밀히 설득하여 농망기엔 대비판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한번은 모철에 송칠국의 손을 봐야하는 어느날 아침 경수가 작업배치로 그를 찾아 그의 집으로 갔다. 그런데 푸성귀를 넣은 멀건 죽물을 마시는 그들의 식탁을 보고 가마뚜껑을 열어보고서야 그들이 식량이 언녕 떨어졌지만 성분때문에 말을 못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는 먹은소 똥눈다고 일하는 사람은 먹어야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소리없이 창고보관원을 찾아 그를 겨우 설득하고 후에 책임은 몽땅 자기가 지겠노라 담보한뒤 시내 모내기군들이 오면 밥해 먹이려고 남긴 식량부분에서  떼여내여 송칠국이네 집에 쌀 오십근을 은밀히 내여주는 범죄까지 저지르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면서 속으론 언감생심 주석의 계급성분 획분론이 때지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모주석의 중국사회 각계급분석은 몇십년전 제1차 국내혁명전쟁시기에 내놓은 이론인데 해방된지도  근 이십년이나 되는  지금 사람들의 권리와 지위가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음에도 옛날의 성분획분으로 계급을 쳐 갈라보는것은 틀리지 않는가? 하는 회의에서였다. 그럼에도 그런생각은 나름대로의 속생각이였지 감히 일언반구라도 내비쳤다간 태양을 반대하는 죄목으로 그자리로 맞아죽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였다. 경수와 춘화는 생산대장과 부녀대장으로 일하며 일은 암만 고되고 힘들어도 사랑은 거역할수없는 힘이여선지 그들은 피곤과 힘든줄을 전혀 모르고 회의가 끝난 한밤중이라도 경수는 춘화를 눈짓해가지곤 달빛이 흐르는 태평천 강뚝위를 걷기 좋아했다. 그리고는 버드나무밑에 앉아 여러가지 말들을 하다가도 그는 갑자기 생각난듯 팔을뻗혀 그녀를 끌어안고는 시간가는줄 모르고 쓰다듬고 애무했다

. 이어 나중엔 불타오르는 정욕을 누르지못해 넘지말아야할 방선도 허물었다. 물론 그들도 결혼전 피임상식은 알았기에 이에 대해서만은 경각성을 높였다. 미구하여 문화대혁명이 고조되며 계급대오 청리운동이 일어났다. 그런데 뜻밖에도 경수아버지가 일본헌병대 특무로 지목되였는데 단 사진한장 때문이였다. 경수아버지 박명호는 어릴때 지주집 말먹이로 일했는데 열여덟살때 어떤 사진관에서 견습공으로 일한적 있었다. 그때 말을 탄 일본군 기병 네놈이 사진관과 잇닿은 학교울안에 말을 매놓고 사진찍으려 들어왔는데 사진촬영이 끝나자 박명호가 그들에게 말을 타보자고 했다. 놈들은 어린놈이 말탈줄 안다며 큰소리치기에 말곁에나 갈만한 담이나 있는놈인가 하여 타보라고 응했다. 하여 박명호가 말을 타고 군도를 휘두르며 학교울안을 몇고패 뛸때 사진관주인도 이를 지켜보고 흥분되였던지 남은 필림으로 촬영한것을 박명호가  알고 현상해 두었는데 해방후에 그것도 기념이라고 집식구들이 사진액틀에 넣어 벽에 걸어둔 것을 마을사람들도 보았다. 그런데 이것이 정치운동에 화근으로되여 대대내에서 제일 첫패로 잠복된 일본군 특무로 둔갑되여 투쟁맞게 된것이였다. 하지만 경수는 사리를 따지지 않을수 없어 말했다. 사진기사로서 사진찍으려 들어온 일본놈들도 필경은 고객이고  박명호는 사진기사인만큼 놈들도 그때만은 박명호의 손을 빌어야하고 또 그가 말탈줄 안다기에 그들도 희한하게 여기고 잘타면 상까지 주겠다고 아버지한테서 들은적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가 본 그 사진에 아버지가 입은옷도 평상복이고 군도를 휘두른건 군마를 탄멋을 부리느라 한것뿐이라는데 그것이 어떻게 특무혐의 근거로 될수있는가? 하고 항변했다. 하지만 그때 풍조에서 아들말을 받아 들어줄사람은 누구도 없었고  그저 아들이니 애비를 감싼다는 죄밖에 돌아올것 없는때여서 도리여 물매세례만 받아 안을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때는 한사람이 붙잡혀 나오기만하면 온집은 쑥밭이되여 다른식구들도 사람취급을 못받았다. 그리고 그에따른 친인척과 그와 가까웠던 친구들까지도 잘못하면 “보황파”(무릇 붙잡혀 나온사람을 비호하리라 짐작되는 사람이나 그런마음을 지닌듯한 사람들을 몰아붙여 이르는말)행렬에 들수있었기에 사람들은 이를 면하려고 일부러 마음을 속여가며 투쟁에 더 앞장서느라했다. 그런데 경수는 아버지와 계선을 가르고 투쟁에 앞장설대신 감싼다는 이유로 함께  붙잡혀나와 투쟁받았다.  춘화는 너무도 뜻밖의 일로 경수까지 대대심사조에 불려가더니  이렇게 두 부자가 함께 군중들앞에 끌려나와 투쟁받자 대경실색하여 도대체 경수가 불려가서 무슨말했게 이렇게 되였는지 그 내막을 모르곤 도시 잠들수 없었다. 하여 그녀는 대회가 끝나고도 오래되여 자정이 지났을즈음 도둑고양이처럼 경수네집에 기여들었다. 경수는 그렇듯 험악한 환경임에도 남의 눈을피해 자기를 찾아준 그녀의 변함없는 애정에 목이메여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맞아들였다. 춘화는 경수한테  이틀사이 심사조에 가서의 일들을 다잡아 캐여 물었다. 그녀로선 다른사람의 일이였다면 자기가 직접 찾아가 알아볼수도 있으련만 자기와 경수가 가까운줄 누구나 모르는사람이 없기에 괜히 알아보려고 들었다간 함께 연루되여 투쟁맞을수 있는 일이여서 남들한테 감히 그런티조차 낼수 없었다. 경수는 대대에 불려간 일을 말하며 그녀의 마음을 안착시키려고 자기아버지 문제는 전혀 근거없는것으로 대대에서도 그런줄은 알면서도 지금은 운동초기여서 형세를 일으키느라 하는것이기에 얼마동안만 참으면 후엔 해결될걸로 암시하더라고 제생각을 보태여 말했다. 춘화는 그제야 얼마간 시름놓았다

. 경수는 이어 아버지의 사진 한장의 유래를 상세히 말해주며 만약 이런것까지 특무로 친다면 그때 일본놈 식민지하에서 그들의 옷이나 물건을 쓴사람들도 모두 특무인가? 그러면 온세상이 특무들뿐이고 우리는 없었겠으니 팔년항전은 어떻게 이겼는가? 하며 춘화를 설득시키느라 피루어 세세히 말했다. 그러자 그녀도 공감되여 일이 해결될때까지 참을수밖에 별수있냐며 맞아터진 경수의 얼굴을 어루쓸어주고 너무도 안쓰럽고 민망하여 눈물까지 떨구었다. 그러자 경수는 흥분될땐 워낙 하던 습관이라 그녀를 와락 끌어안고 그녀의 잔등을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드디여는 참을수 없었는지 그녀를 안은체로 눕히고는 그녀의 바지를 살살 끄러내렸다. 그리고는 거친숨을 몰아쉬며 벼락같이 제옷을 벗어 팽개치고 날랜동작으로 그녀위를 덮쳤다. 그녀는 이미 한두번도 아니였고 또 더구나 그가 얻어 맞은때여서 거부하기엔 너무나 안쓰러워 그런대로 내맡겼다. 그런데  다른때 같으면 그가 먼저 콘돔을 그녀에게 꺼내보이고 아부하듯 눈웃음을 살살치며 사정 구하듯 한뒤에야 그녀가 거부반응같은것이 없을것 같으면 그뒤를 이었는데  이번엔 숫제 그런절차들이 삭제되였다. 춘화는 그가 최후의 마지노선까지 넘으려들자 그제야  정신이 번쩍들어 하반신을 비틀고는  눈을 올롱하게 뜨고 놀란 눈길로 올려다보며 “콘돔은요?”하고 따졌다

. 경수는 일시에 온몸이 굳어져버린듯 급제동하고는 무참한듯 혀아래소리로 “쓰고 없어서 사려했는데 조사받다나니 흐—….”하고 허겁뜨게 얼버무렸다. 그녀는 이미 달아올라 수수떡처럼 익어번져진 그한테 찬물을 끼얹고 냉혹하게 거절할수 없었다. 이럴때의 그한텐 얼마나 따뜻함과 부드러움 섬세함과 다정함이 필요할가? 그녀는 차마 밀어낼수 없었다. 또 만약 이런때에 퇴박주면 남자의 원기가 상하여 발기 불능으로 이어질가봐 우려되기까지 했다. 에라 어쩌다 한번에 생기랴. 또 생기면 어떤가. 결혼하면 그만이지 자기도 인젠 스무살이 되였으니 그저 좀 이르다할뿐 문제될건 없다고 생각되였다. 하여 그녀는 다시 두눈을 감고는 수줍은듯 배시시 웃어주었다. 경수는 그제사 다시 열을 올려 몸을 달구며 숨가쁘게 욕정으로 혼신을 불태웠다.….


그후였다.  대대에서 첫패로 붙잡혀나온 경수아버지의 특무혐의는 벗겨지긴 고사하고 갈수록 철같이 굳어지고 경수에겐 더 큰죄명으로 특무애비를 보황하고 또 생산대장노릇하며 부농분자를 감싸고 양곡을 사분하고 마을을 자본주의 독립왕국으로 만들었다는 등 죄명으로“보황파”.“계급이색분자”란 두가지 간판을 목에걸고 투쟁받았다. 하여 누구든 경수와 그의 집식구들과마저 가까운 눈치만 보여도 경계대상으로 입에올라 지목되다보니 춘화도 남의 눈치때문에 그와 계선을 나누느라 이튿날부터 다시는 그의 집부근에도 얼씬못했다. 그때는 누구든 붙잡혀 나오기만하면 그사람과 가까웠던 사람들까지도 그사람을 감싸거나 동정하는 눈치는 없나를 의심하고 한사람이라도 “보황파” 란 모자를 들씌워 더 붙잡아 내지못해 애쓰는 무시무시한 때였다. 춘화는 경수의 말과는 딴판으로 운동은 갈수록 고조되고 경수아버지의 특무혐의는 벗겨지기는커녕 운동지휘부로부터 사실로 확정되였으며 경수도 잡귀신으로 매일같이 패쪽을 목에걸고 투쟁맞게되자 그에대한 실날같은 희망도 볼수없었다. 하여 드디여는 다같이 죽을순 없고 자기라도 새로운 출로를 찾아야 된다고 생각되였다. 하여 어쩔수없이 어느 조용한틈에 경수어머니를 보고 더는 그를 지킬수 없음을 말했다.

그때는 함께 살던 부부지간도 정치상의 견해차이만 생기면 나는 혁명이고 너는 반동이라며 갈라지고 이혼하는 일들이 비일비재였기에 투쟁대상으로 붙잡혀 나온사람을 믿고 살려는 사람은 전혀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하여 경수어머니는 자기들도 그럴수밖에 없는줄 알기에 좋은사람 만나 잘살라고 말은 좋게 하면서도 소리없이 울기만 했다. 이렇게 경수가 붙잡혀나온지 얼마안되여 운동지휘부 성원중의 한사람인 아래마을 강태욱이가 춘화를 불렀다. 강태욱은 조손삼대 머슴출신 가정에서 태여난 사람으로 소학교도 중퇴하고 사회에 나온후 나이들자 참군하고 입당하고 제대되여 지방에 돌아온뒤엔 출신이 좋다고 대대 후비간부로 점찍혀 단총지서기 민병지도원 직에 있었고 운동때엔 또 흠잡을데 없는 그였으니 대대내의 어떤 정치조직에든 그의 이름이 빠질때 없었다. 그런 그가 나이는 춘화보다 여섯살이나 년상이였지만 농촌에서는 남자가 녀자보다 일여덟살이상 차이라도 별문제 아닌것으로 여긴만큼 일찍부터 자기수하 단서기인 춘화를 탐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뿔난 경수가 마을로 돌아와 차차 그의 이름이 뜨기 시작하며 대대는 물론 공사 현에까지 그가 알려지자 강태욱이 이름은 무색해 질수밖에 없었다. 이어  춘화가 점점 경수쪽으로 돌아서는듯 하여 강태욱이도 자기능력의 한계를 느끼며 어쩔수없이 벙어리 냉가슴 앓틋 달리 어쩔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역시 생각밖으로 경수아버지와 경수마저 투쟁대상으로 지목되자 이는 실로 태욱이로선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닐수 없었다. 그리고 그땐 적을 최대한 고립시킨다며 이른바 입장이 견고하지 못다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한 사상담화란 것이 있었는데 태욱이가 자진하여 춘화에 대한 사상교육을 책임졌다. 그런때에  춘화한테는 몸에 이상증세가 생겼다. 하여 어쩔수없이 인민공사병원에 가서 보였더니 뜻밖에도 임신 합병증이라는 것이였다. 그녀는 일신이 섬뜩해나며 그제야 언제 생긴것임을 알았다.  그녀는 의사한테 애를 지우겠노라 했다. 그러자 의사는 그녀의 놀란기색에 호기심이 동했던지 남자가 함께와야 한다고했다. 사실 또 그땐 바람둥이들까지 계급의 적처럼 취급하여 사내들한텐 추궁도 없고 계집들에게 헌신짝을 노끈에 꿰여  목에 걸도록하고는 투쟁하는 때였으니 그럴만도했다. 그녀는 그만 당황했다. 경수를 부르려면 투쟁대상이여서 군 선전대와 운동지휘부에 알려야 했으니 그러면 소문이 날대로 날것이여서 애를 지우고도 머리도 못들것이고 자기의 명예는 일락천장으로 후에 시집가기도 어려울듯 했다.  또 경수를 부른다고 하더라도 그럴땐 경수로선 일후 장가도 못들터인데 이미 생긴애를 떨구려는데 동의하지 않을건 불보듯 번연했다. 애만있으면 춘화도 어쩔수없이 다시 자기한테 묶여 있으리라는데서 죽어도 애를 지우는데 동의할리 만무하기 때문이였다.  춘화는 이렇게 떨구기도 힘들바엔  경수의 씨이기에 낳고도 싶었다. 그녀가 경수와 갈라질수밖에 없은것은 인젠 그가 명은 살아있어도 죽은사람과 같아 앞으로 후대까지도 그멍에에 눌려 사람값에 못갈것이기에 어쩔수 없이 한노릇이였지 마음이 변해서임은 결코 아니였다. 그녀는 경수를 잊을수만은 없었다. 또 그가 얼마나 잘생기고 풍채좋은가

. 게다가 그는 어릴적부터 어른들한테서 대똑똑이로 불려 공부도 얼마나 잘했는가? 하지만 아무리 그의 씨가 욕심난다해도 경수이름으로  낳을수 있는가? 이는 자식에 대한 죄이고 무책임이였다. 살아있는 할애비부터 내리 사람값에 쳐주지않고 목에 개패를 메우고 조리돌림으로 투쟁하는데 이제 또 경수를 애비로 두고 배아프게 새끼를 낳은들 사람으로 쳐주지 않을세상에서 애가 자라며 사람값에도 못가고 세간의 멸시와 천대받는걸 지켜본다는건 부모로된 마음이 어떨가 하는것만 생각해도 춘화는 지레 몸서리쳐지며 차라리 낳기전에 없애버려야지 그꼴은 못본다고 여겨졌다. 그러니 갑을간  경수에겐 절대로 알릴수 없다는건 분명했다. 그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반나절이나 고민하다가 나중엔 엉뚱하고도 기상천외한 궁리까지 떠올랐다. 이 아까운 씨를 남의 이름으로 낳을순 없을가? 자기가 아직 임신한지 한달푼밖에 안되였으니 가능할듯 싶었다. 그녀는 자기한테 눈독들이는 사람들중 그나마 괜찮고 또 탈나지않을 사람들을 두루 따져보았다. 그녀는 이지경에 빠지고보니 그래도 그나마 강태욱이가 그중 그런대로 함께 살아갈만할것 같았다. 사람이 배운건 없어도 어지고 착하고 남을 잘믿고 잘생각해주는 남아의 호방함도 있다고 여겨졌기에 이런마당에 그가 싫은생각도 들지않았고 또 출신좋고 당원이여서 후대에게도 좋은배경이 될듯했다. 황차 그가 지금 은근히 자기마음을 움직여 보려고 애쓰고 있잖는가?

물론 이렇게 하자니 자기가 그한테 턱없이 오쟁이 지워주고 한늬 남의 새끼를  제새끼로 속아빠지게 한다는건 자기가 너무나 야비한 인간으로 사람으론 그죄를 씻기어려울듯 하기도 했지만 자기로선 또 달리 뾰족한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서 남몰래 애를 지우느라다간 자칫하면 제명도 무서웠고 또 잘못하여 후에 애낳이도 못하면 그것도 큰문제이고 또 류산에 실패하는날엔 그때엔 배속에 애가 커져 낳을수밖에 없겠으니 그럴땐 무조건 그애가 경수씨로 자라야 할터이니 그애가 자라며 인간능멸을 받을걸 생각하면 천하 못할짓같이 여겨졌다. 하여 그래도 모험삼아 강태욱이한테로 시집가는것이 자기한테나 애한테나 아무 탈없고 부담없어 좋을것같이 생각되였다. 또 내놓고말해 강태욱이도 자기같은 여자를 얻기만하면 자기가 그만한 죄를 들씌운다해도 크게 밑질일은 아니라고 여겨졌다. 그리고 살아가며 그가 애를 귀애하면 자기도 그만큼 알아주면 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이런 속생각이 굳어지자 우선 애를 낳는것으로 하고 병원에서  임신으로 인한 합병증 치료부터 하려고 일주일간 약을 사갖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마침 태욱이가 찾더라기에 그녀는 자기가 획책한대로 밀고나갔다. 그랬더니 파놓은 봇도랑에 물을 에워넣은듯 생각대로 풀려나갔다. 태욱이는 춘화의 요망함도 모르고 그저 경수가 인젠 《잡귀신》으로 되였기에 자기와 좋아하는 줄로만 알다보니  벙어리 예장받은 것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고 두사람의 관계는 급진전되여 몇달후엔 결혼식까지 올렸다. 따라서 춘화는 신랑을 따라 아래마을로 내려가다보니 그나마 경수를 덜보게되여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그래도 한대대내여서 어차피 경수의 불우함을 보게되고 또 듣게도 되니 어쩐지 저도모르게 그하고는 타남이 아닌것같이만 생각되였고 지어 때론 마음이 찢어지게 아파나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이상하다 싶었다. 이미 갈라진이상 남남지간인데도 말이였다. 아마 배속의 아이가 경수의 씨라는데서의 뉴대감에서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가 그런처지에서 죽지못해 살아가는데 자기는 좋다고 다른남자를 찾아 시집까지 갔으니 그가 얼마나 자기를 미워하랴 싶으며 혹시라도 그와 맞띄우면 그한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조차 몰랐다. 하여 그녀는 남편한테 외지로 이사가자고 졸랐고 남편도 그녀말을 들어주어 얼마안지나 그들은 태욱이의 형님이 살고있는 화룡현의 용암동이란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안되여선 딸 신애를 낳았고  신통히도 경수를 닮았었다.

  한편 경수는 춘화와 갈라지게 되자 자기신세로는 그럴수밖에 없을줄로 알면서도 한동안은 얼빠진 사람처럼 혹시 춘화가 어디에 보이는가에만 눈길을 허둥대기가 일수였다. 그런데 그뒤 겨우 몇달도 안지나 춘화가 태욱이와 결혼하여 아래마을로 시집간다는 소문을 들은 경수는 허탈한 와중에도 그래도 춘화를 이해하려고 들었다. 그것은 그녀로선 자기와 살수없음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기에 지금 자기가  그녀를 잃은것만으로도 그아픔이 비길데 없는만큼 그녀역시 못지않을것이다. 그러니 자기는 지금 사람값에 못가지만 그녀로선 그래도 어차피 결혼해야겠기에 아픈마음을 달랠길없어 어디든 마음을 돌려 의탁할곳이라도 찾느라 한일인듯 여겨졌다. 경수로선 또 그렇게밖엔 달리 생각할수가 없었다. 경수에게 덮쳐든 불행은 이뿐이 아니였다. 화불단행이라고 계급대오청리가 고조에 이를때였다. 그의 아버지가 아래 대대마을 우사에 갇혀 혹형을 받던 어느날 아침이였다.. 그의 어머니가 아침밥을 남편한테 이고 갔다가 감시가 소홀한틈에 우연히 우사안에 들어갔는데 그때 마침 남편이 피못에 쓰러져 얻어맞으며 공술받는 참경을 직접 목격했다. 하여 경수어머니는 미처 여러가지로 생각할 경황도 없고 물불을 가릴새도 없어 “왜 이렇게 자꾸 때려서 죄를 만드우—.…”하며 남편앞에 막아나섰다가 공술받던 자들에게 휘들려  머리를 우사벽 기초돌에 부딪혀 그자리에서 생죽음을 당했다. 이런 참변앞에서 경수는 제쪽에서 살인마들을 잡아내겠다고 광기를 부렸지만 누가 거들떠나 보겠는가? 그역시 당하고있는 처지라 그한텐 그럴권리도 없었기에 결국 제압당하고 도리여 물매만 얻어맞았다.

하다보니 경수는 실로 숨은 붙었어도 심신은 언녕 초주검이 되였다. 이렇게 그의 어머니마저 돌아가자 그의 동생들인 열두살난 경만이와 아홉살난 경철이 둘은 낮이면 《특무》아들로 제또래들한테 휩쓸리지도 못하고 따돌림 당하고 밤이면 어머니가 밖에서 도는것 같다며 문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경수의 품만 파고들었다. 아마 이것도 삶과 죽음의 다른길인가 보았다.… 이렇게 계급대오 청리로하여 숱한사람들이 연쇄적으로 걸려들고 무고하게 맞아죽어 나가며 사태가 심각해지자 그제야 핍박하여 공술받지 말고 증거를 중히해야 한다는 최고지시가 내려져 사태는 차츰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그때는 전국이 그저 최고지시 하나만에 의거하여 돌아가고 움직이고 했기에 다른 누구의 말도 값이 없었다. 하여 누가 말하든 꼭 최고지시로 자기말을 뒷받침하는것이 상식이였다. 그러기에 자다가도 최고지시만 내린다 하면 남녀로소 거리에 뛰쳐나와 만세를 부르며 환호해야 했고 이런데서 누가 약간이라도 태만하다간 남들에게 빌미잡히거나 의심받기가 일수였다. 달아올랐던 색출운동은 증거를 중히 하라는 최고지시 덕이였는지 아니면 너무 길게 시달려서 공황에 빠져서였는지 아뭏튼 차차 식어들기 시작하고 나중에  경수아버지는 하도 명이 질기여 그나마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우사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올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때 흉흉하게 발동되였던 문화대혁명도 숱한 재앙과 피해만 남기고 종당엔 맥없이 흐지부지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십년이나 지난뒤에야 정치투쟁에서 억울한 루명을 들쓴사람들에 대한 시정작업이 실시되여 경수아버지도 역사오명을 벗게 되였다. 시정대회에서 적지않은 사람들은 격동되여 《모주석만세》를 불러댔다. 물론 그땐 모택동이 사망된 뒤였지만 사람들은 무릇 상급에서 주최하는 경축행사때마다 너무도 판에박아 웨친구호였으니 어떤사람들은 무슨뜻인지도 모르고 하는 습관적인 웨침으로  그저 세상이 좋다는 의도로 풀이되기에 다소 이해는 되였다. 하지만 경수는 속으로 무엇이 잘되였다고 만센가 하는생각으로 저미는듯한 아픈마음을 짓누르며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그리고는 그저 술 한근을 사들고 어머니 산소로 찾아가 한바탕 구슬피 눈물만 쏟았다. 경수네는 후에 아버지 역사문제가 해명된뒤 마을사람들의 권유로 계모를 맞아들였다. 맨 거친 남자 식구들이라 가마목이라도 반들거려야 며느리라도 골라 맞아들일수 있다는 데서였다.. 이어 사람들은 경수를 도와 중매에 나섰다. 하여 그도 줄기차게 맞선보려 다녔다. 이쯤되면 경수로선 인젠 언녕 날아가버린 춘화에 대해선 잊어야 했지만 오히려 잊으려 할수록 옛날의 그녀가 해롱거리며 자기를 찾아오는 환영에 사로잡혀 마음은 마치 채 아물지않은 상처를 칼끝으로 그어대듯이 아프기만했다. 그는 맞선볼때마다 저도모르게 은연중 춘화가 떠올려지며 그녀를 모델로 상대를 평하게되니 누구를 대하든 지레 춘화보다 못하다는 선입견으로 그만두기가 일수였다.

하여 그가 숱한 맞선을 보았지만 이런 편집증으로하여 말도 건네보기전에 벌써 첫눈에 속으론 상대에 대해  퇴짜를 놓고있었다. 이렇게 많은녀자들을 만나다보니 그나마 그래도 그중에 경수의 눈에 걸리는 상대도 있기는 했다.  아래마을 대대회계가 나서서 자기 생질녀인 김순희란 처녀애를 소개했는데 경수는 그녀를 보자 그래도 그런대로 괜찮겠다 싶었다. 중매자에 따르면 그녀 부모들도 아버지가 일찍부터 우파분자로 몰려 가혹하게 시달리다 사망되고 어머니도 그영향으로 (정신병자로 되였지만 중매자는 병명을 꺼려서 다른병으로 말했음)앓다가 사망되여 그녀는 불구자 삼촌집에 얹혀 살다보니 금방 혼기에 이르자 형편이 너무도 궁색하여 이렇게 좋은자리가 있을때 일찍 시집보내 당자도 허리를 펴고 외삼촌인 자기도 한시름을 덜련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 당자만은 대단히 똑똑하고 엮빠르고 건강하여 아무 허물도 없다는 것이였다. 경수는 그녀의 부모가 있고 없는건 큰문제 아니고 그저 당자의 외모와 스타일이였다. 이런생각으로 그녀를 보니 비록 어수룩해보이고 촌스럽고 옷매무시가 스산하여 흩어진 느낌이 들긴했으나 그런건 나이들면 철들고 형편이 좋아지느라면 괜찮을듯했다.그만큼 그녀의 두눈은 춘화의 살구씨같은 눈과는 달랐으나 눈이 크고도  빛이 일렁이는듯 하여 신비롭게 느껴지며 매력적이라 싶었다.

물론 좀 아쉬운생각도 들긴했는데  삼촌집에 얹혀산다니 눈치밥을 얻어먹느라 잘 먹지못해 그런지 키가 큰데 비해 춘화같이 살집이 탐탁치 못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형편이 좋아져 잘먹이면 살도 오르리라는 생각에서 큰문제로 될것같진 않았다. 중매인은 여자쪽이 부모형제도 없는만큼 누구의 허락을 받을것도 없이 자기가 대신할수 있다고 하기에 약혼은 그자리로 이루어졌고 사돈상견레도 경수네가 하자는대로 이틀사이로 매듭지었다. 그때 경수는 그저 혼인이란 인생에서 응당 거쳐야할 절차로 남들의 눈에 순희가 춘화보다 더 나은여자란 소리만 들으면 족하다는 생각뿐이였다. 이렇게 순희와 약혼하고 그녀가 집으로 돌아간뒤 경수는 자기가 약혼했다는 것으로하여 기쁜 생각이라기보다 그저 해야할일을 했다는 시름놓은듯한 생각이 들며 춘화한테라도 나도 홀몸이 아닌 너보다 더 좋은녀자를 만났음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였다. 마치 여자를 얻는것이 춘화한테 시위하기 위해서인듯 했다. 경수는 순희와 약혼하고 갈라진뒤 가끔씩 그녀가 떠올려졌는데 귀엽고 사랑스럽고 신비하게 곱게만 느껴지면서도 딱히 또 어떻게 생겼던지 도무지 아리송하기만했다.  하여 결혼식전에 한번 보고싶다는 생각에서 모내기가 끝나면 한번 찾아가 보려했는데 마침 들을라니 그녀가 외심촌 생신일에 온다기에 경수는 모내기가 끝나는대로 지난해에 지은 새집에 석회칠을 내려고 서둘렀다. 집은 몇해전부터 그의 아버지가 문화대혁명때에 너무 횡액을 당하고나서 자꾸 집터탓으로 의심하며 집을 옮기지못해 성화를 하기에 지난해에야 셈평이 좀 트이자 풍수를 잡고 태평천 빨래터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육간초가집을 짓고는 손이딸려 흙벽 그대로 방치해둔 것이였다. 그런데 경수가 바깥벽에 회칠을 내려고 금방 발판에 올라섰을때였다. 빨래대야를 이고 아랫집 길목에 나타난 녀자가 동네사람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홀연 어-? 춘화!하는 느낌으로 온몸에 짜릿한 전률이 일며 가슴이 널뛰듯 활랑대고 눈길이 요동치며 걸음마저 갈팡질팡했다. 그는 제꺽 머리를 돌리고 못본척한채 돌아서서 무엇을 찾는척 어물거리다가 어쩐지 저로서도 어쨋으면 좋을지 몰라 별수없이 무엇을 찾는척 출입문을 열고는 슬쩍 집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창문으로 금방 눈에 띄였던 춘화쪽을 정신없이 엿보았다. 에누리없는 첫사랑 춘화였다.

사람의 직감이란 실로 무서웠다. 거의 오십여메터나  상거한 위치에서도 이미 여러해나 못본 춘화임에도 언뜻 보이는 눈길에서마저 그녀임을 알수있다는것은 실로 신기하였다. 그녀는 경수네집 울바자 앞쪽으로 미적거리며 오고 있었는데 눈발같이 흰 옥양목 반팔셔츠에 연두색 무늬간듯한 치마를 둘러입었다. 그녀 다리새에 감겨 펄럭이는 얇은 꼬리치마는 바람결에 깃발같이 나붓겼다. 경수는 집앞을 지나 개울가로 내려가는 춘화를 물끄러미 내다보며 혼자 착잡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저여자가 왜 왔을가? 아마 그쪽에서도 모내기가 끝나 한가한때라고 친정에 찾아와 집안일을 거드느라고 빨래하려 나오는 길인듯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녀가 자기가 왔음을 일부러 보이려고 빨래를 빙자하고 나온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하였다. 그는 뜻밖에 자기가 오매에도 그리면서도 정작 띄우게되면 못본척 피할수밖에 없는 춘화를 이렇게 지척에서 대하고나니 마음은 사뭇 기쁘고 흥분되면서도 어찌할 갈피를 잡을수없어 맴돌아쳤다. 저여잔 어떻게 살가? 재밋게 살가? 경수라는 자기를 생각하고나 있을가?… 엣. 생각지도 말자. 저여잔 이미 애까지 딸린 남의 여자잖아. 하면서도 먹어야할 마음과는 정반대로 지난날의 일들이 누에 실 토하듯이 줄줄이 환영으로 떠올랐다. 따라서 속마음의 아픈상처를 달래기 힘든 그였다. 그는 춘화와 갈라진지 벌써 여러해나 되였어도 여태껏 그녀를 어느날도 잊어본적이 없었다. 또 비록 그녀가  자기를 저버렸다지만 크게 그녀를 원망해본적은 없었다. 미쳐버린 세월에 비인간적으로 행해진 광란속에서 어느 누구든 그럴수밖에 없는일에 그녀만을 탓하랴는 데서였다.

그러니 오히려 원망보다 날이갈수록 절절한 그리움만 아프게 더해갔다. 한번이라도 찾아보고 말이라도 해봤으면 속에진 어혈이 풀릴듯했고 침침하게 막힌 가슴이 쾌청하게 푹 뚫릴듯했다. 하지만 그래도 정작 띄우면 너는 거들떠도 안본다는 식으로 대해야만 된다고 생각되는 그였다. 지난 언젠가 그녀가 결혼한 이듬해에 친정나들이로 왔을때였다. 그때 경수는 생산대 소사양원으로 일했는데 춘화 아버지가 집에 일로 소를 빌려쓴뒤 소를 돌려오는사람은 생각밖의 춘화였다. 이는 분명 그녀가 소를 넘겨주려 오는척하며 자기를 만나기 위함임을 넘겨짚은 그는 일부러 자리를 피하고 다른사람을 시켜 소를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그땐 그녀가 애까지 낳아업고 친정으로 온터라 남의 여자인 너는 상대도 하지않는다는 배심이였다. 하지만 그렇게 등을 돌리고난뒤엔 또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랐다. 그렇더라도 만났을걸. 말이라도 걸어보았을걸 하는 후회였다. 그는 가끔씩 혼자 있을때면 말짱 그녀와의 지난일들이 줄줄이 애잔하게 떠오르기만 했다. 그러한 그녀를 눈앞에 두고있는 그의 마음이 어찌 고요한 호수물 같으랴. 그는 집안에 붙박혀 있을수만은 없었다. 그녀에게 자기를 보이고 싶었다. 그녀도 자기가 이미 약혼했음을 들어서 알고있을 터인즉 자기는 지금 새집짓고 약혼녀와 알콩달콩 재밋게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음을 일부러라도 보여주고싶은 마음이였다. 하여 그는 대야에 물을 담아들고 밖에나가 그녀가 바라볼수 있는 집앞면 벽부터 석회칠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창문유리에 비낀 그녀의 동정을 주의깊게 살폈다. 아니나다를가 그녀는 빨래방치를 휘두르다가도 일어서서 빨래를 밟는척하며 돌아서선 그의 집쪽을 멀거니 쳐다보는듯 했다. 그는 워낙 일하며 개울물을 길어다 써야했으나 마치 일부러 그녀를 만나려고 개울로 가는듯싶어 물도 긷지못했다. 그녀는 한대야의 빨래를 반나절이나 주물럭거리고는 어쩔수없는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가 씻은 빨래임을 이고 둔덕으로 올라오려는 기미를 보이자 경수는 밖에서 일하다가 일부러 집안으로 피하고는 창문으로 몰래 내다보았다.

그녀는 둔덕에 올라선뒤 빨래임을 이고 얼핏 그의 집을 일별하였다. 그녀도 등신이 아닌이상 경수가 일부러 자기를 피하고 있음을  알고있었다. 그러니 그가 자기를 미워서라고 여겼다. 하여 그녀는 경수가 그렇게도 보고싶고 또 낳은딸 신애를 보더라도 단 한마디라도 말을 걸고 싶었으나 경수의 냉대에 어쩔수없이 뒤가 끌리듯 미적거리며 그의 집 울바자앞을 스쳐 지나칠수밖에 없었다.… 경수는 일하려고 밖에 나왔지만 일시 손에 일이 잡히지않아  마루에 걸쳐놓은 발판에 그대로 걸터앉아 자기가 금방 춘화를 피한것이 잘된일인지 못된일인지를 가늠해보며 저로서도 갈피를 잡을수없어 혼자 속이비게 웃고말았다. 그로서는 이미 순희와 약혼한이상 더는 자기를 떠나버린 옛연인을 생각지도 말아야 할 일이였지만 마음은 늘 생각과는 상반되게 그녀와의 지난일들이 압축된 용수철마냥 누를수록 머리를 쳐들며 떠들고 일어섰다.  경수가 이렇게 내내 실련의 늪에서 헤여나지 못하는데는 물론 춘화와의 사랑이 애틋했던것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그가 사랑을 제일 갈구할때에 그사랑을 잃어버린 때문이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그녀와 다시붙어 살고싶어서인가? 그건 결코 아닌듯했다. 그저 지난날의 모진아픔이 늘 잊혀지지 않아선지 그는 자기 스스로도 딱집어 말하기 어려워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왜 이렇게도 춘화를 못잊어 하는거지? 그래 내가 그녀와 살고싶어선가? 흠. 천하 바보같은 소릴. 그녀잔 벌써 애가 딸린 남의 여잔데. 하지만 난 아직도 생생한 숫총각으로 어디에 여자 없어 남과 사는 여자를 탐해? 하고 자신한테 을러메기도 했지만 그녀를 생각는 마음만은 자신도 막무가내였다

. 경수는 집안팎 회칠을 끝내고는 순희외삼촌 생일날 술과 고기근을 사들고 아랫마을로 찾아갔다. 마침 순희도 왔는데 손님접대로 밤늦게까지 분주히 돌아치다보니 두사람은 조용히 앉아 말할기회도 없어 경수는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때 그녀를 불러내고 말했다. 내일아침 자기가 찾아올테니 함께 연길구경을 떠나자고 말이였다. 그녀는 좋아는 하면서도 탐색의 눈길로 반쯤 웃으며 잠간 지켜보고는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튿날 그들은 기차로 연길역에서 내려 또 시내버스로 서시장에서 내려 공원쪽으로 걷느라니 경수의 마음은 생각던바와는 달리 어쩐지 개운치 못했다. 집에서 떠날땐 오느라 경황없이 별다른 생각을 못했는데 정작 시내에서 내리고보니 순희의 행색이 흰쌀에 겉뉘알같이 삐여지게 드러나보여 대처사람에 비해 시골뜨기의 궁색함에  눈살이 찌프려지기만 했다. 날씨는 무덥진 않았으나 그래도 삼복이 눈앞이여서 옷은 부득이 가릴데만 가려야 시원하게 느껴질텐데 순희의 행색이란 옷은 빨아입은것 같긴했으나 산골사람들이 나무속을 헤집고 다닐때 살점이 긁힐가봐 몸을 감싸는 모양새로 한여름임에도 찌득찌득한 곤색 장소매 웃옷에 무릎이 해져 덧대고 기워입은 검은색 바지는 마치 영화에서 천대받는 하층민들의 고난함을 시각적으로 두드러지게 하려고 분장시킨 행색과 구분하기 어려웠다

. 물론 그가 그녀의 옷차림을 처음 보는것만은 아니였다. 전이고 지금이고 여전히 그 행색이였지만 집에서 볼때엔 워낙 들은대로 그쪽의 형편이 어렵다기에 경수는 사람을 보는것이지 형편을 보는건 아니잖는가 하는생각이 앞섰기에 아예 차림새는 안중에도 없이 그저 인물에만 신경을 기울였다. 그런데 이렇게 그녀와 함께 시내에 나서고보니 우선 다른사람들과 비교되는것은 나들이 행색부터였다. 햇빛은 눈부시게 할랑대고 미풍은 쾌적하게 살갗을 무마해주어 주위에 오가는 여인들과 처녀애들은 잠자리 날개같이 옷을 가볍게 입고 몸과 얼굴을 한껏 뽐내듯이 활기에 넘쳐 으시댔다. 그럼에도 순희는 자기의 행색에는 아랑곳 없고 그저 여기저기를 두리번 거리기에만 여념없었다. 경수는 그녀가 너무도 철없음과 촌스러움으로 하여 함께 걷는것조차 부담스러웠다. 연길에서 공부까지 했던만큼 혹시 누가 알아보기라도 하면 체면이 구겨질가봐서였다. 경수는 기분이 잡쳐 울적한 마음으로 말없이 앞만보며 공원쪽으로 스적스적 걷기만했다. 그가 생각할때 한사람에게 있어서  옷매무시도 형상이고 두번째 얼굴이고 문명 의식의 가늠으로 여겨졌기에 보면 볼수록 그녀가 분수없고 무식하고 찌들어보여 쓴외같이 느껴졌다.  그는 이틀전에 보았던 춘화를 떠올렸다. 그녀의 흰눈발같던 옥양목 반팔셔츠가 눈이시게 보이는듯 했고 그녀의 두다리사이를 휘감고 펄럭이던 연두색 꽃치마.가  눈앞에서 나붓기는듯 했다 그런 그녀가 .혹시 자기들을 알아본다면 얼마니 비웃을가 싶기도했다. 그래 이게 어디 단 잘살고 못살고의 문제만인가? 그래 아무리 없고 궁하다 해도 굶어죽고 빌어먹게 생겼는가? 옛날부터 그래서 사람들은 굶은티는 안나도 벗은티는 난다며 아무리 없어도 자신의 옷매무시와 행색에는 각별한 신경을 써오지 않았는가. 또 그래서 옷이 날개란 말도 나왔고 젊은 여자들일수록 곱게 보이려고 여러사람들 앞에 나설땐 몸치례에 각별히 신경쓰지 않는가?

그럼에도 순희는 이런 미적 수양도 없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게까지 여겨졌다. 아무러기로 주위에 사람들만 봐도 제주제를 느낄줄 알아야 할텐데 그녀는 그러함엔 전혀 생각도 돌릴줄 모르고 보는데만 정신을 팔고있으니 어이없다는 생각에 한숨만 깊어졌다. 하지만 순희는 또 나름대로 경수를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짝 그의 곁에 다가섰다가도 그의 기색을 살필새도 없이 가끔씩 무엇에 끌렸는지 넋없이 머리를 돌려 지켜보다간 그래도 남자를 떨어지지 않으려고 또 정신없이 달음박질하여 남자를 쫓아오군했다. 그러는 약혼녀를 곁눈으로 지켜보는 경수의 마음은 착잡해지며 슬퍼났다. 하여 그는 그래도 자기를 떨어지지 않으려고 허겁지겁 뒤쫓아오는 그녀를 기다려 잠간섰다가는 걷고하며 여러번이나 참았다. 그러다가 드디여는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는듯 하자 그녀를 보지도않고 언짢은 표정으로 야유하듯 말했다.


“아니 뭘 세상못본 사람처럼 그렇게 정신없이 허둥대고 보는거요?”
그녀는 그제야 정신이 펄쩍 든듯 긴장해지며 남자의 표정을 주의깊게 살피는듯 했다. 그리고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말없이 남자를 따르며 그의 눈치만 살폈다. 그들은 공원안으로 들어갔다. 경수는 그래도 어쩐지 기분나지않아 어깨를 느러뜨린채 눈길은 그녀를 일별하여 다른녀인들의 몸에서 헤염쳤다. 그녀는 경수의 한마디말에 대번에 데친시래기같이 주눅이 들어 더는 아무데도 크게 보지못하고 앞만보고 걸었다. 따라서 경수와 한발 처져 걸으면서 가끔씩 힐끔거리며 남자의 눈치만 살폈다. 경수는 그녀의 행색이 오가는 사람들에 비해 너무 궁상스러워 그런지 그녀의 얼굴이나 몸매마저 빛을 잃고 찌들어 보이기만 했다. 씻은 대파줄기같이 멀끔하게 보이던 키큰 몸매도 잎이 시든 능쟁이대 같았고 워낙 크고 일렁이던 눈빛은 흘깃거리는 염탐질같아 정답기는 고사하고 차가운 촉수로  얼굴을 스치는듯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그래도 제 소신껏 책임껏 대하느라 공원도 들어가고 복무대청 냉면점에도 들어갔다. 하지만 소문난 진달래 냉면맛도 무슨맛인지 모르고 철사를 물어끊듯 억지로 씹어넘겼다. 점심을 먹고난뒤 순희는 경수한테 덕분에 잘구경했다고 말하고는 오후엔 집으로 떠나겠다고 말했다. 경수도 이미 기분이 잡쳐진이상 크게 붙잡고싶지도 않았다. 헤여질때 순희는 그래도 안쓰럽게 얼굴을 구기며《제가 너무 궁상스러웠죠?》하고는 여건의 한계요 뭐요하며 알아달라고 말하고는 후에 잘하겠으니 안심하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경수로선 그말도 잘 들릴대신 오히려 어쩐지 지글대며 역겨웁게 감겨들려는 속셈으로만 들려 말은 그래도 어물쩍하게 한다싶었다. 그러면서도 제속이 간파당한 느낌에서 어쩔수없이 얼굴에 웃음을 게바르고 급기야 변명처럼 발뺌하고는 먼길에 잘가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경수는 탐탁치않은 혼인으로 그만둬야 할지 그런대로 나가야 할지를 종잡기 어려웠다. 따라서 그저 지꿎게 춘화가 떠올려지고 자연 그녀와 약혼녀 순희가 대비되기만 했다

. 그럴수록 춘화에게선 그옛날에 매력으로 끌렸던 아름다움만이 눈부셨고 순희에게선 흘깃거리던 염탐질같은 눈길이 섬뜩하도록 느껴지고 따라서 촌스럽고 찌득찌득한 궁색한 옷차림만이  머리속에서 지렁이같이 꿈틀대는듯 하였다. 그래 이것이 단 경제여건의 한계뿐이란 말인가? 그는 이것이 내적 의식의 차이. 세상을 대하는 마음가짐으로 여겨졌다. 할진대 결혼은 원활한 감정소통으로 꿈과 미래를 열어간다고 할때 어떻게 이렇듯 판이한 의식의 차이로 두사람의 마음과 의지를 융합시켜 하나로 이어져 나갈수있게 할수있을가 하는 의구심으로 생각할수록 감정의 불통으로 이어질듯 어두운 그림자만 짙어져 가슴마저 갑갑해났다. 그는 이렇게 마음을 썩이던끝에 드디여는 유예없이 파혼하기로 결단했다. 그러면서 내 꼭 춘화보담 더나은 녀자를 안해로 맞아들일거야 하고 비장한 각오나 다지듯 주먹까지 내 휘둘렀다. 하다보니 아무런 주저나 일말의 회심도 없었다. 또 당자나 중매자를 어떻게 대하랴는 면구심이나 죄의식도 없었다. 마치 자기가 장한일이라도 해낸듯이 전혀 꺼리낌도 들지않는것이 이상스러울 정도였다. 이로하여 경수는 순희외삼촌인 대대회계한테 삿대질을 당하며 온동네를 웃기도록 개보다 못하게 욕을 얻어먹었다. 하지만 그래도 춘화보다 꼭 더좋은 여자를 얻고야 말겠다는 욕심만 앞서다보니 욕먹는 앞에서는 맞기보다 더 힘들었으나 그래도 그자리를 뜨면 그저 씁쓰레하게만 여겨질뿐이였다. 이렇게 순희와 갈라진뒤 경수는 한번도 그녀를 생각해 본적이란 없었기에 자기의 경박함으로 하여 그녀가 받게될 명예실추나 혹시 입게될 피해와 마음의 상처같은것도 생각해본 적이라곤 없이 그저 흘러간 구름장같이 여겨졌을 뿐이였다.

그런데 이렇게 꿈에도 생각지않은 그녀를 한공장에서 조우하게되니 이 눈앞의 궁색함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여 그가 순희한테 그때의 상황을 말할기회만 달라고 빌고 들었으나 그녀한테 매몰차게 퇴박당한뒤 무참한 나머지 그런대로 모른척하고 지날가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수도 없었다. 워낙 미모의 여인들이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환심을 사게 마련인데 그런 그녀한테 불신스런 망나니같이 보인다는건 그녀의 영향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인간으로 보이는듯하여 자기는 어디든 설자리마저 잃을듯했기 때문이였다. 그러니 무슨수로든 그녀에게 그때의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자기가 그런사람은 결코 아님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되였다. 그리고 그녀가 처음 자기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것도 이해는 되였다 어찌하면 사람으로서 하루 이사이에 보이는 느낌이 바꼈다고해서 엄연히 정해진 남의 인생대사까지 짓밟아 뭉개버릴수 있는가 하는 배신감과 증오심으로 말하면 그만해도 다행인 셈이였다. 하여 경수는 어쨋든 그녀의 멍든 속을 풀어주려면 그녀와 무조건 소통해야 함을느끼고 한번 안되면 두번 세번 다섯번까지 빌고들 잡도리로 그녀한테 지청구를 들이댔다

. 하여 순희도 드디여는 못이기는척하고 들어주기로하였다. 단 그녀로선 경수의 배신으로 인한 원한과 분노를 드러내기 위해 너따위놈의 말은 듣기도 싫다는 배심이였을뿐 그래도 한편으론 그의 말을 듣고싶다는 생각도 없진않았다. 그가 상사병으로 피를 흘릴때라니 자기보다 어떤 월등한 여인한테 미쳤기에 자기가 그덫에 치인 희생양이 되였는지 하는 시샘도 들었고 또 그의 지난날을 알고싶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였다. 경수는 그래도 큰짐이나 부리우게 된것만치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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