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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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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운의 음영》(15)
2013년 11월 27일 13시 41분  조회:1369  추천:1  작성자: 김남득
 15
어느 휴일 오후였다. 경수는 공회에 올라온뒤 일이 바빠 오래동안 찬이네집을 들여다 보지못한터라 그들의 형편이 어떤지 궁금하여 들려보려고 찾아갔다. 마침 찬이도 있었고 그의 아버지는 벽에 기대여 앉았는데 전에보다 기색도 좋아진듯 하고 옷도 깨끗이 입고 그린듯 앉아있었다. 그는 경수를 보더니 그저 반갑다고 “어— 어. 이 이 —.”하고 외마디 소리를 내며 손을 내저어 보였다.

경수는 그러는 영감의 손을 잡아주고 여러가지로 영감과 찬이를 번갈아보며 안부를 물었다. 그러면서도 집안을 두루 살피느라니 전혀 색다른 느낌만 짙게 들었다. 영감이 옷을 깨끗이 빨아입고 그저 대고 웃는 모습이라든가 빨래줄엔 씼어 말리는 옷들이 줄느런이 드리우고 집안은 질서있게 깨끗이 정돈되고 온돌바닥은 윤이 나도록 반들거렸다. 그리고 또 집안은 퍽 안온한 분위기여서 꼭 마치 어떤 여인의 손길이 스며든 색다른 느낌이 들기만 했다. “어—? 찬이가 대상이 어디서 생겼나?” 하는 생각으로 경수는 속으로 한동안 찬이를 찾아못봤더니 이눔이 이런 좋은일이 있었군. 하는생각으로 기뻣으나 또 한편으론 자기가 그래도 찬이를 친동생마냥 알아주고 생각해줬는데 이런 좋은일이 있었음에도 아무리 자기가 직장에서 나갔다고 해도 일부러라도 찾아와 알려야할 립장에 말도 없었다는 섭섭함도 들었다. 그것은 경수와 찬이지간은 보통사람 관계를 초월한 친 동기간에 뒤지지않았기 때문이였다. 찬이는 워낙 몇해전까지만 해도 늙은양주의 외아들로 장중보옥같이 세상에 근심걱정이란 전혀 모르고 온실에 화초같이 곱게 자랐다.

그런데 하늘의 풍운은 가늠키 어렵고 사람의 화복은 조석간에 떨어진다고 2년전 찬이가 스물일곱살나던해 여를 어느날이였다. 찬이 어머니가 어느 교외에서 불의로 교통사고를 당하고 사고운전자도 다른사람이 없는틈에 뺑소니쳐 도망친통에 한참뒤 길가던 사람의 신고로 병원에 실려왔다. 그때 직장장이였던 경수가 직장장을 찾는다는 전화가 왔기에 받아보니 허찬이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변을 당했으니 아들 허찬이를 급히 병원으로 보내달라는 급보였다. 경수는 너무도 뜻밖의 일이라 자기마저 온 일신이 섬뜩해나며 작업대에서 일하는 찬이를 조용히 불렀다. 이어 그가 다가오자 전화내용을 간약하게 알려주고는 그더러 너무 놀라지말고 함께 가보자며 서둘렀다. 찬이는 대뜸 얼굴색이 하얗게 질리며 두눈을 치뜨고 경수한테 어떻게 다쳤는지를 다그쳐 물었다. 경수는 환자가 위험한 상태인 줄로는 들었으나 그저 좀 크게 다친듯하다니 먼저 병원에 가볼일이라며 그더러 손씻고 옷부터 갈아입으라고 일깨웠다. 그리고는 직장일을 다른사람에게 부탁하고 찬이와 함께 택시를 잡아타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들어서니 환자는 크게 다쳐 구급을 거쳤으나 병원에 들어와 두시간여만에 명을 달리하였다. 이런 끔찍한 참변에 찬이와 그의 아버지의 슬픔과 비애는 더 말할것도 없었다. 그런데 화불단행이라더니 찬이에겐 불행이 이에 그치지 않고 얼마뒤엔 찬이 아버지마저 지나친 비애로 해서였든지 갑자기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여버렸다. 이렇게 연이어 들이닥친 재앙으로 찬이에겐 어머니가 생전일때 사귀여오던 연인마저 소리없이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다. 하다보니 워낙 고통과 쓴맛이란 전혀 모르던 찬이로보면 이보다 더 큰타격과 아픔이란 있을수없어 비애의 늪에서 인생의 막장같은 환멸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이럴때에 그를 건져낸 사람이 바로 경수였다.

물론 이는 우연이긴 하겠지만 찬이 아버지마저 드러눕게 되였을때였다. 하루는 일이 바빠 안날에 찬이네 집을 들여다 보지못한 경수는 이른아침에 집에서 일어나자 다른시간대엔 출근하여 일하느라 틈이 없을듯하여 차라리 이때에 그의 집에들려 밥도 찬이와 함께 해먹고 출근함이 좋겠다 생각되여 찬이네가 된장이 얼마 안남은것까지 아는터라 집에도 얼마 되지않는 옹배기에 된장을 갈라내여 갖고 자전거를 타고 찬이네 집으로 향했다. 그가 찬이네집에 이르러 찬이를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그는 찬이가 자느라고 대답이 없겠거니 하면서도 워낙 무상출입하던 집이라 안으로 잠긴 문을 당기며 그를 불러댔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이나 불렀으나  문이 안으로 잠긴것으로 사람이 있는줄 아는데도 아무 대답이 없기에 무슨일일가 싶어 곧바로 창문쪽에 가서 집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제야 그는 정주간에 누워있는 찬이의 꼴이 심상치않다는 생각에 대뜸 일신이 섬뜩해남과 아울러 경황없이 찬이를 불러대며 벽돌장을 찾아들고 창문유리를 부수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가스냄새가 물씬 안겨왔다. 찬이가 자살을 시도한 것이였다.

경수는 급기야 집안에 뛰여들어가 출입문을 열어제끼고는 가스통 밸브를 닫은뒤 찬이부터 마구 쥐여흔들었는데 다행이도 그가 죽지는 않고 겨우 눈을뜨고 몸을 움직였다. 실로 분초를 다투는 시간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그나마 가스통과 거리가 먼 안방에 있다보니 큰 피해는 없었다. 경수는 대뜸 택시를 불러 찬이와 그의 아버지를 싣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이렇게 아마 죽지않을 사람은 따로 있는듯했다. 경수는 어쩌면 자기가 찬이를 찾아가기 직전에 그가 이런길을 택했는지와 또 자기가 이토록 묘하게 이 시간대에 찾아올수 있었는지가 너무도 희한하게 여겨져 여기에도 혹시 어떤 감응전파 같은것이 생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했다. 하지만 이는 어떻든 경수가 찬이에대한 우환 공유의식이 저변에 깔려있었기에 가능했음만은 분명했다.  이번 교훈으로 경수는 저녁이면 직장내의 젊은친구들을 자기와 함께 윤번으로 당직같이 짜고 찬이를 동무하여 함께 밥도 먹고 잠도 자며 우정도 늘이게 하고 어려움도 나누게 하는 등으로 그래도 찬이의 제일 어려운 고비를 넘겨주었다. 한사람이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는 살아갈 앞날을 헤가르고 나가기 어려운 경우일것이다. 그러니 이런고비만 잘 넘겨주면 아무리 살기 어렵다해도 그래도 생이란 모질어서 죽기보다 살려는 본능이 앞서는 법이였다. 그런터에 찬이는 차차 시간이 지나며 현실에 적응하고 경수와 직장동료들의 관심으로 생활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겠다는 결심을 굳혀가고 있었다. 그러한 찬이였기에 그는 실로 경수를 생명의 은인으로 친형처럼 여기며 따르고 있었다. 또 경수로선 그러한 찬이임을 알고있었기에 그가 제집으로 드나들며 집까지 알뜰히 거둬주고 옷가지들까지 빨아주는 정도의 상대여자가 있음에도 자기가 찾아올때까지도 알리지 않고 있다는데서의 서운함이였다. 하지만 경수로서도 좌우간 마음놓게될 좋은일이였기에 그는 제입으로 성급하게 묻기보다 네놈이 나한테야 묻기전에 미안해서라도 이실직고하겠지 하는생각으로 일부러 집안에만 여기저기 눈을주며 제멋에 헤실거렸다. 찬이는 그러한 경수의 눈치도 모르고 제나름대로 경수에게 그동안 하지못한 말을 치하삼아 말했다.

“아니 형님. 온공장에 형님의 인기가 얼마나 치솟는지 아세요? 정말 대단해요. 전 형님같은분과 가까이 있다는걸로 해서 사람들앞에서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막 뽐내고 싶어요.”

 경수는 자기가 그렇게도 찬이의 상대여인을 고대하고 있는줄을 알고있을만한 그가 온 집안에 여인의 냄새가 푹푹 풍길정도로 여향을 가득채워 놓고서도 그것부터 자초지종을 털어놓을대신 왕청같은 치레말만 일부러 늘여놓아 남의 궁금증을 더해준다 싶었다. 하여 그의말엔 아랑곳없이 이놈이 이 막막한 형편에도 여자까지 꼬셔온걸 보면 그가 나름대로 어물쩍한 놈이다 싶기도했다. 따라서 어떤여자일가 하는생각이 궁금하기만 했다. 하여 대답도않고 그저 집안만 휘둘러 보며 비어져 나오는 웃음만 헤실거렸다. 찬이는 그러한 경수가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져 경수를 뜯어보며 “형님. 왜 그리 멋없이 웃기만 하셔? 무슨 좋은일이라두 있는가 보죠? 저한테야 안속이겠죠.”하고 무슨일인지 몰라 물었다. 경수는 그래도 네놈이 잘되니 마음이 놓이고 좋다는데서 그가 일부러 능청떠는 것으로 오해하고 제입으로 말해주기만을 기다리느라 넌지시 따지고 웃었다.

   “흠. 자식 딴청을 부리는거야? 내가 지금 네말을 기다리고 있는중이야. 좋은일은 혼자넣구 말두않구 흐흐—.”

    찬이는 어안이 벙벙하여 “형님 무슨말씀이셔? 흐흐—”하고 자기도 영문 모르고 덩달아 웃어주었다. 경수는 어쩔수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댔다.

“얘. 계속 모르쇠를 댈테냐? 이집에 금방까지두 여자가 앉았던자리에 암내가 물컹 코를 찌르는데 그래 계속 나한테까지도 속이려 든단말이냐? 괘씸한자식. ”
    경수는 악의없이 벼르는척했다. 찬이는 그제야 영문을 알아차리고는 제법 그런척 하고 빌고들었다.

    “아 — 그때문이군요. 정말 죄송하게 됐어요. 아까 점심먹고 떠났는데요. 원래 먼저 알리려다가 무슨 큰일도 아닌걸 갗고 떠드는것같아 결혼식에나 알릴가 해서 그만뒀는데요. 참 미안해요.”

        경수는 정말이구나 하여 짜장 놀라며 너무도 희한스러워 환성을 올리듯 찬이의 어깨를 와락 나꿔채며 마구 쥐여 흔들었다.
        “야 이눔아. 그럼 정말이구나. 어디 그런법있냐. 너한테 그보다 더큰일 뭐가 또있게. 그럼에두 나한테 말도 안해줬냐 나쁜자식.  그래 그여자는 어디있구 나이는 몇살이게?”

        찬이는 경수를 속이는것이 죄스러우면서도 그가 너무 기뻐하는통에 재미로 한마디 더 놀리고싶어 “우리공장에 있지요 뭐.”하고 웃음을 씹으며 대답했다.

        “뭐? 우리공장? 누구게?”
   경수는 두눈을 치떴다.
      “거 있잖아요. 생산부 통계원 순희아줌마.”

       찬이는 시물거리며 대답했다. 경수는 대뜸 김빠진 공처럼 풀이 죽으며 “이자식 누굴 놀리는거야?”하고 실로 성내며 찬이를 당금 잡아 먹으려는듯 노려보았다. 찬이는 겁에질려 경수를 붙잡고 진심으로 빌고들었다.

       “아니 아니 형님. 아까 형님께서 저보고 있지도 않는 좋은일을 속인다며 딴전까지 부린다니 어쩌겠어요. 그럼 형님 물으신대로 그런척해 보느라구 말하다 보니 너무 나갔군요. 제발 잘못했어요. 형님 용서해주세요 제발요.”

        경수는 너무도 싱겁고 어이없어 그저 코웃음치며 “흠. 됐다.”하고는 자리에 아주 벌렁 드러누운뒤 여전히 머리를 돌리며 집안을 눈빗질해 보고는 “그럼 네가 집을 이렇게 잘 거뒀단말이냐?”하고 의심쩍은 어투로 물었다. 찬이는 경수에게 담배를 권하고 불까지 붙여주며 자기는 그래 이렇게 반들거리게 해놓고 못사는가 고 하며 히들거렸다. 경수는 그래도 반신반의하며 담배를 길게 빨아 들이고는 한숨을 길게 뽑으며 “후—. 갑을간 너도 빨리 상대를 만나야 할텐데 난 너한테 제일큰 근심이 그거야. 나도 두루 암만 알아보느라 해도 어째 그리 신통치 않거든 참.…”하고 근심조로 외웠다. 찬이는 어차피 경수한테는 순희와의 관계를 털어놔야 겠다고 여겼다. 순희가 아무리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그래도 세상 어떤비밀이라도 경수한테만은 어느모로 보든지 속이고 싶지않았고 또  속여선 안된다고 여기는 그였다. 하면서도 순희가 자기와의 관계가 말이 새여나가면 관계단절이야! 하고 자기한테 으름장 놓으며 다짐받던 일도 생각되여 근심도 들었다. 그는 이렇게 잠간 갑자르다가 그래도 경수가 그렇게 알고싶어 하는 제속에 기쁜일을 혼자만 차지하기엔 벅찬듯했고 또 참으려해도 속에서 좀이쓸어 견디기도 어려웠다. 하여 찬이는 드디여 못참고는 “제가 언제 이렇게 거두고 살겠어요.”하고 잠간 생각는듯하다가 이어 “순희아줌마가 오전내 빨래하고는 점심드시고 아까 떠났어요.”하고 한마디 드러냈다. 경수는 어마지두 놀라며  벌컥 용수철 튕기듯 일어나 앉고는 믿기 어려운듯 연거퍼 물어댔다.

   “뭐? 순희아줌마? 그여자는 어떻게되여 너네집에 오는거야? 뭐 너네하고 친척지간이라도 되는거야?”

   찬이는 뭐 친척지간이라야만 돕는가며 아버지의 병환으로 자기가 아버지를 업고 병원에 갔을때 순희를 만난 이야기부터 늘여 놓았는데 찬이는 제마음으로 말했지만 기실 순희로선 결코 색다른 의미란 전혀 없이 순수하게 우러져나와 한일이였다. 어느 일요일 순희는 딸애가 감기에 걸려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병을 진찰시키고 혈액을 화험해야 한다기에 채혈시키고 화험단이 나오길 기다리느라 복도에서 서성거릴 때였다. 입구로부터 누군가 환자를 업고 들어왔는데 가까이 오는걸 보고서야 환자를 업은사람이 다름아닌 한공장에 다니는 사출직장에 기계수리공 허찬이임을 알았다. “아니 찬이구만 누구시게?” 하고 그녀는  놀라며 다가들어 거들어주는 한편 물었다. 찬이는 아버지가 열이 오르면서 편찮아서 왔다는 것이였다. 그녀는 사출직장에서 부품출고를 할때면 찬이가 자주 창고에 오고 또 와서는 살갑게 대하기에 그에 대해 꽤나 인상이 깊은편이였다. 따라서 그가 뜻밖의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반신불수의 아버지를 모시고 힘들게 보내고 있다는것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순희는 환자를 업은 찬이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보고는 가만있을수없어 다문 얼마라도 힘을 덜어주려고 함께 환자를 받들며 진찰실로 따라 들어갔다. 이윽하여 찬이아버지 차례가 되여 의사가 청진기를 걸고 환자더러 허리에 내의를 걷어올리라고 하자 환자는 보기싫은 살가죽을 드러내기 싫은듯 미적거리기만 했다. 이때 찬이는 아버지의 내의를 훌쩍 걷어 올리고는 한손으로  갈비뼈가 밭고랑같은 추한 잔등을 꺼리낌없이 손바닥으로 슬슬 어루쓸며 웃기였다.

“아이구 우리아빠 형편없이 축갔네요. 내가 돈 잘벌어야 대접 잘할텐데. 어이구 빨리 건강하셔야지. 그래야  우리아빨 새장갈 보낼텐데.…”

 그러자 그의 아버지가 중풍으로 언어장애가 온듯 말은 바로 못하고 그저 “이이 —이자시…히히—에이—”하고 단음절 소리만 내고 희뿌연 안정을 딴에는 지릅떠 보이며 히히 웃기만했다. 이어 의사가 환자를 병상에 눕히라고 하자 찬이는 아버지를 갓난애 끌어안듯 조심스레 받들어 안아다 반듯이 눕혀놓고는 의사가 진찰하는동안 갈꽃같이 희여버린 아버지의 머리털을 손가락으로 살살 빗어넘겼다. 의사가 청진기를 떼고는 찬이의 소행이 대견스러운듯“젊은인 이시대사람 같지않게 효자로군요.”하고 머리를 끄덕거렸다. 순희는 순간 코끝이 찡해나고 가슴에선 뜨거운 난류가 구비쳤다. 찬이의 그 어려움속에서도 자기에 대한 양육지은을 못잊어 제몸같이 아버지의 노구를 보듬어 드리는 기특한 덕성에 하늘도 감동하리라 생각했다. 따라서 자기도 아버지가 계셨더면 저렇게는 몰라도 다문 얼마라도 효성을 드렸을 것이고 그러면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구천에서라도 다문 얼마의 위안이라도 받으련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가슴저리게 안겨들었다. 아버지는 그 가혹한 세상의 천대속에서도 딸애에 대한 정신없는 안해의 무의식 침해를 우려하여 늘 딸애를 업고 공사장으로 일하려 다녔다던 이웃사람들의 말을 기억하며 자기는 아버지의 그토록 간절한 기대와 사랑을 받았음에도 티끌같은 효성도 갚아드리지 못했음에 속이 끌리도록 아파났다. 따라서 의사의 말마따나 지금의 젊은이들이 부모가 늙으면 제생활에 부담이 될가봐 누가 될가봐 되도록이면 멀리 피하고싶어 전전긍긍하는 배은망덕한 자기 위주의 향락만 탐하는 세태에서 그래도 세속에 물들지않은 찬이의 순금같은 효성에 깊이 감화되여 그녀는 저도모르게 찬이를 거들어주고싶은 충동이 밀물처럼 안겨왔다.

그녀는 제꺽 일어서서 찬이를 도와 늙은환자의 때국이 흐르는 내의와 비듬이 미끌대는 살가죽도 마다하고 진찰이 끝난뒤 옷을 내려주고 단추를 끼워주었다. 이어 그녀는 집에 안손도 없이 병든 늙은아버지의 뒤바라지를 하느라 또 출근하여 제앞에 맡겨진 일을 해야하고 얼마나 바쁘고 기막힐 찬이의 생활을 그려보며 차마 홀로 가볍게 제집으로 돌아설수 없었다. 하여 순희는 주사를 맞힌 자기딸을 택시에 앉혀 집으로 돌려보낸뒤 찬이가 치료를 마친 아버지를 업고 공공버스역까지 가려는것을 밀막고 택시를 불러 함께 그들부자를 차에앉혀 찬이네 집까지 동석해갔다. 옛말에 과부네 집은 은이 서말이고 홀아비네 집은 이가 서말이라더니 찬이네 집은 상상보다도 더 보기 민망할 정도로 궁색하고 숨이 막힐듯했다. 그래도 그녀는 벌써 그보다 엄청 더 무서운 가난을 떠메고 살아온터여서 남의 일같지만은 않았다. 또 이러한 형편에서도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찬이가 대견스럽고 기특하여 도와줘야한다는 의무감이 솟구쳤다. 하여 그녀는 팔을 걷어붙이고 집안을 거두며 황감하여 어쩔바를 몰라 쩔쩔 매기만 하는 찬이한테 바꿔서 주인처럼 시켰다.

  “찬이. 뭐하는거요? 빨리 씻을 옷가지들을 몽땅 내놓으라 하잖았소. 난 어차피 자주 올수는 없잖아. 그러니 왔던김에 친누나거니 생각하고 어려워 말랜대두. 날 믿으면 아무부담 갖지말고 내놓고. 그러잖으면 맘대루하우. 나두 못본척 할테니깐.… 시간없소 어서.”    
    그녀의 마지막 어조는 단연 명령조였다. 찬이는 워낙 이 미모의 아줌마를 가까이하고 싶었다. 어머니의 의외의 사망과 그에 따른 가정의 퇴락으로 연인마저 잃게되자 삶의 희망까지 잃어버린끝에 자살을 시도했다가 경수에 의해 살아나고 또 그의 간곡한 기대로하여 다시 꿈을 키우며 살아가려고 노력은 하나 어차피 현실은 적막하고 이성에대한 그리움은 기갈에 이를정도였다. 그럴때에 순희가 창고보관원으로 왔는데 찬이는 어쩌면 저리도 곱게생긴 녀인도 있을가? 하고 속으로 경탄했다. 그 일렁이는 커다란 눈빛은 사람의 마음을 휘여잡는 느낌이였고 얼굴은 옥돌로 다듬은듯 티없이 맑고 깨끗하고 투명하여 짜장 천사로만 느껴졌다. 찬이는 비록 그녀가 자기보다 여러살 위였고 유부녀라지만 어떤 점유욕을 떠나 가까이 바라보기만해도 또 몇마디 말만 건네보아도 기갈에 들었던 목을 추기는만치나 해갈이 되는듯싶었다. 그래서 천부적으로 아름다운 녀인은 뭇사람들의 이목을 다잡는가 싶기도했다.

그런데 그렇듯 신비하게만 보이던 녀인을 우연한 챤스로 만나 지성어린 도움까지 받게되고 또 친누이거니 알아달라는말에 이게 짜장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지경으로 황감하면서도 또 멀어질가봐 두려운 마음이여서 쩔쩔 맬수밖에 없었다. 그는 바꿔서 주인인양 시켜대는 그녀의 말을 들어주기도 난감하고 안듣자니 믿지않는 것으로 멀어지고 또 할일 없다고 훌쩍 떠나기라도 할가봐 그녀가 시키는대로 허겁뜨게 몸이 둥둥 떠다니듯 어쩔바를 모르며 돌아쳤다. 그는 순희가 빨래하는 틈에 뒷간으로 가는척 하고 슬쩍 몸을빼고 뛰여나와 정신없이 시장으로 줄달음박질 쳤다. 천사같은 그녀의 고마운 마음에 감격으로 목이 메였고 무엇으로든 마음을 표달하지 않으면 죄짓는것같이 마음을 놓을수 없어서였다. 시장에서 몇가지 떡과 순대 그리고 반찬들을 사들고 돌아온 그는 순희의 모진 책망을 들으면서도 그건 탄해들을 말이 아니였기에 겉으로만 잘못했다고 수긍하는척 했다. 한 집안에 여인의 손길이란 따뜻함과 부드러움 윤택함과 향기로움으로 돼지우리 같던 두칸방은 일시에 변해져 아늑하고 환하게 밝았다. 그녀가 빨래를 하고 집까지 거두고나니 저녁때가 이슥하여 일어서려고 했으나 찬이가 극성을 부려 차려놓은 음식을 맛도 안보고 떠난다는건 남의 성의를 무시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는것밖엔 안되기에 잠간 앉을수밖에 없었다. 찬이는 음식상을 차려놓고 순희를 붙잡아 앉힌뒤 두손을 땅에짚고 머리를 숙이고 그녀를 마주앉아 떨리는소리로 말했다.

  “아줌마. 뭐라 말씀드려야할지 모르겠군요. 저같은 사람을 알아주시는 것만해도 분에 넘치는데 이렇듯 진심으로 관심하고 도와까지 주시니 전 감격의 마음을 무어라 형언할수 없어요. 전 형제도 없고 가까운 친척도 없이 고독한 사람이라요. 그런데 아까 아줌마께서 친누이거니 생각하라고 하시니 전 너무도 놀랍고 감격에겨워 시장으로 가며 눈물이 났어요. 이런 분에 넘치는일이 또 어디있을가 해서요. 저같은사람도 흑흑… ”

   찬이가 울먹이자 순희는 코끝이 시큰해나며 눈앞의 이 젊은이가 가여워 보듬어 주고싶고 자기의 동년때와같은 은은한 아픔으로 마음이 저려나기도 하여 급히 말했다.

  “찬이. 찬이같은 사람이 어떻다고? 난 오늘 찬이가 이같은 환경에서도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의욕에 심히 감동됐소. 또 그보다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성에 인심이 박한 오늘에도 말이요. 이같은 갸륵한 마음도 살아있구나 하는데서 얼마나 진한 감동을 받았는지 모르겠소. 사실 나역시 부모형제도 없는 혈혈단신이였소. 내가 어릴때 겪어온 고생은 이루 말할데 없소. 그런 나로서 오늘 찬이의 형편을 직접 보고나니 남의 일같지않소. 정말 내집일같게만 여겨지오. 난 아까 병원에서 찬이가 아버지를 어를때 인간애란 뭔지를 느꼈소. 그리고 나도 찬이아버지보다 더 어려운  목숨만 살아있는 아버지라도 있었으면. 하는바람도 들었소. 그러면 한번만이라도 저렇게 효성해 봤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까지 일었던거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마치 자기가 아버지등에 업혀다닐때의 일이 기억되기라도 하는듯 찡하게 저려오는 가슴을 잠간 눅잦히며 코를“흐윽—”들이긋고는 이어 말했다.

  “난 아버지한테 티끌같은 효성도 못드리고 우리아버진 돌아가고 말았소. 앞으로 시간날때 우리집 가정사를 들려주면 찬이도 아마 눈물을 흘릴거요. 난 지난년대의 그런 모진아픔과 능멸을 직접 받았던 사람중의 한사람이요. 하긴 찬이의 지금형편이 얼마나 힘드오. 하지만 그래도 이세상은 어려웠던 사람들끼리 서로 알아주는 법이니깐. 찬이가 원한다면 날 친누이같이 믿어주오.”

    찬이는 대뜸 “누님.”하고 넙죽 엎드려 절을 올렸다. 순희가 찬이를 일으켜 앉히고는 음식을 갈라 먼저 윗방에 누운 찬이아버지한테 들여가고 알아듣기는 하나 바로 말을 번지기 어려워하는 그에게 살갑게 여러말로 안위를 주고는 다시 정주간으로 나와 찬이와 함께 떡을 먹으며 여러말을 나누었다. 말말간에 찬이는 자기인생의 제일 힘들때에 두분의 귀인을 만난것이 더없는 행운이라며 경수때문에 자기의 오늘이 있을수 있게된데 대하여 자기가 제일 어려울때마다 그가 발벗고 도와나섰고 또 자기가 앞길이 너무도 막연하여 자살을 시도했을때 그가 자기를 살려낸 눈물겨운 일들을 피력했다. 순희는 속으로 흠칫 놀랐다. 어쩌면 경수도 찬이의 어려움에 그렇게 발벗고 나섰는가 싶으며 경수의 인간성에 진한 느낌을 받았고 동류의식을 느꼈다. 한편 그러면서도 그녀는 찬이가 경수한테서 관심과 도움을 받은걸 자기한테 말하는걸로 봐서 자기가 찬이를 약간이라도 도움준걸 또 찬이가 경수한테 말할가봐 꺼렸다

. 그러면 혹시 경수로선 자기가 일껏 도와나선 찬이한테 순희가 또 오랍누이로까지 부르면서 도와나선데는 자기를 의식하고 한일로 다문 얼마라도 착각한다면 참으로 이것처럼 천하없이 치사스런 일은 없을듯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자기가 남에게 약간의 선의를 베풀고는 찬이가 그걸 말하도록 방임한다는것 역시 그걸 몰라봐 줄가봐 생색내고 싶어하는건 아닌지 하는 제마음을 짚어보며 그것 역시 너절한일로 여겨져 찬이의 입을 단속해야겠다고 여겼다. 하여 그녀는 찬이앞에선 경수에 대해서 전혀 아무런뜻도 생각도 없는 맹물갗이 무의미한 관계인척 보이고자 애쓰느라 경수에대한 찬이의 얘기를 듣고나서 일부러 마치 일깨워라도 주려는듯 말했다.

“하긴 글쎄 찬인 경수가 자기직장에 직장장이니까 감격할만도 하겠지. 하지만 그래도 사람은 오래두고 지내봐야 잘아는법이요.”
   찬이는 경수와 한직장에 있다보니 그와 순희지간에 구체적으론 무슨일인지는 모르나 일찍부터 어떤 알륵이 있는줄은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말투로 미루어 그녀가 경수에대해 그리 시답지않게 보고있음을 알고 그녀앞에서 더는 경수에대한 감동을 말할수없어 그저 수긍하는식으로 머리를 끄덕여주었다. 그러자 순희는 이어 말했다.

 “그리구 찬인 오늘 내가 왔다간 일을 도왔다고도 말할순 없겠지만 아뭏든 내가 왔다간거나 우리둘의 관계를 누구한테나 말하지 말아주 양. 난 그런말 듣기좋아 안할뿐아니라 시끄러워 하거든. 내말 무슨말인지 알아들을만 하겠지? 만약 이말이 약간이라도 나가기만하면 난  찬이와 단절이야 알았어?”

   “예. 누님 알겠어요.”
    찬이는 대답은 이렇게 했으나 듣기엔 어쩐지 미묘한 느낌이 들어 저도모르게 속이 들큰해나며 마음이 붕— 뜨는듯했다. 그가 듣기에 따라선 누님이 자기와 남녀지간 관계로 생각는것 아닌가 하는데서였다. 누님이 남들과 말하지 말라는건 남들의 의심을 살가봐 두려워하는것 아닌가? 아니면 남을 돕는다는건 너남없이 할수있는 일은 결코 아닌것으로 만사람들이 좋게 여길일일텐데 왜 누님은 그걸 싫어서 굳이 덧붙여 말하지 말것을 이토록 엄하게 당부하는가 하는데서였다. 그러니 누님은 우리지간의 일을 연하남자와의 관계로 생각는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사실 또 사회적으로나 텔레비 드라마 같은데서도 남녀간의 경제여건이나 형편차이로 하여 이런일들이 성행하고 있으니 말이였다. 만약 그렇다면 찬이로선 이보다 더좋을일이 세상 없을듯했다. 그뒤부터 순희는 찬이를 도움에 있어서 실로 말한대로 실천에 옮겼고 그를 친동기로 여겼기에 틈날때마다 허물없이 찬이네 집으로 드나들며 도와주고 보살펴주었다. 하지만 찬이로선 이것을 단 인간애로만 받아 안기엔 너무도 벅차서였는지 갈수록 순희에대한 짝사랑에 빠져들기만 했다.

하면서도 찬이는 그래도 경수앞에서는 제생각을 밝히기엔 너무 이른듯하여 저어되였다. 그것은 순희에게서 아직 확실한 그런말을 들어못본 형편이기 때문이였다. 하여 그는 그저 경수앞에서 자기와 순희가 서로 남매간의 의를 맺게된 사연과 그녀의 도움과 방조를 끝없이 받아오고 있음만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자기와의 관계를 누구한테든 말하지 말라던 소리는 외우지 못했다. 그것은 경수도 순희의 속마음을 들여다 볼가봐서였다.  경수는 들으며 더없는 감동을 진하게 받으면서 이런일이 있었음에도 자기마저 금시초문이여서 찬이를 꾸짖으며 나무랐다.

  “찬이 너 가만보니 감정이 없는놈이구나. 너 남한테서 그런 관심과 은혜를 받으면서두 그런 고마운일을 그래 다른사람들한테 널리 알리지도 못하냐? 나도 오늘 와서 내눈으로 봤으니 알지 네가 말하지 않으면 알턱이나 있냐? 이제보니 넌 너무나 몰상식하고 무정한 자식이군.”
    찬이는 감정이 없는 무정한 자식이란 경수의 실망어린 날카로운 비판에 자기는 누구의 방조와 도움을 받고도 아무런뜻도 모르는 목석같은 인간으로 경수한테마저 비쳐진다는건 참으로 있어선 안될일이였다. 하여 아무리 순희의 당부라도 얼마간은 내비치지 않을수 없었다. 하여 분만을 앞둔 암소처럼 한참이나 끙끙 갑자르다가 드디여 입을 열었다.

   “허참. 저라고 왜 말하고 싶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누님이 일부러 당부하더군요. 남들과 누구한테두 우리 두사람의 관계를 말하지말아 달라구요.”

     경수는 순희의 말을 그대로 믿고있는 찬이를 천진하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아둔한 인간으로 봐야할지 몰라 너무도 어이없어 숨이 넘어가는듯 말했다.
    “어이구 참. 이것아. 아니 거야 그사람이 너무 겸손해서 그런거지. 그렇다고 너까지 입을 봉하고 있으면 뭐가 되는거야. 지금 이세상은 너무나 이기적이여서 남을 해치면서까지 제잇속을 챙기지못해 광분하는 세월인데 그런 금싸락같은 마음들을 몰라주면 더구나 어떻게 되는거여?”
   “하긴 그것도 그렇긴 하군요.”
   찬이는 수긍하는듯 머리를 끄덕이고는 정작 속에싶은 말을 할려니 어쩐지 점직해져 잠간 동떳다가 별수없이 얼굴을 붉히며 이었다.
   《그리구 글쎄 그누님이 겸손한것두 있지만 그보다두 사람들에게 년하남자와 어쩐다는 그런 소리라도 혹시 들을가봐 저어하는것 같더군요.》
경수는 남의 고매한 마음을 추하게 매도한다싶어 버럭 역정을 내며 《뭐 누가 그따위 소리냐. 동에도 닿지않는 헛소리를.》하고 욕하고는 그렇게 말하는 찬이마저 야속하게 느껴져 더 할말을 못하고 찬이를 힐긋 쓸어보았다. 그런데 찬이는 무슨 할말을 못하고 있는듯 어색한 웃음을 참고 있었는데 얼굴은 어딘가 상기된 표정이였다.  경수는 불현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이자식이 뭐 제좋은 생각을 하는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덜컥 들기도했다. 하여 일부러 시탐하듯 시무룩히 웃으며 “넌 그래 어떻게 생각는거야?”하고 넌지시 물었다. 찬이는 “아니 저야뭐 어떻게… 하지만.”하고 발뺌하듯 하고는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는 힐긋 경수를 쳐다보며 눈길을 떨구었다. 이어 그는 제속심을 드러내야 할지 말지를 가늠했다. 생각해보면 순희는 날이 갈수록 자기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고만 느껴졌다. 아니면 어떻게 병원에서 자기딸애는 혼자 택시에 앉혀 집으로 보내고 곁에 다가서기도 싫은 늙은 환자를 제돈 팔며 택시에 앉히고 굳이 집에까지 따라와 집안까지 거두어주고 뿐만아니라 그 이후론 틈틈히 찾아와 빨래도 해주고 자기네는 셈평이 좋다며 먹을것도 사오고 그릇도 사오고 자기와 같이 아버지를 아버님이라 칭하며 속내의까지 사오군 할가? 이게 그래 아무리 마음이 선량하기로 남남이 일반관계로 할수있는 일인가? 하는 생각에 찬이는 그저 그녀만 보면 넋나간 사람갗같이 무턱대고 좋았고 어딘가 마치 믿는 구석이 생긴듯 든든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세상에서 제일 믿고있는 경수한테는 이런 내막을 속여선 안된다고 여겼지만 또 한편으론 아직 맺고끊지도 않은일을 제좋은 생각으로 말한다며 경수가 비웃을가봐 아닌척 해놓고나니 그래도 밝혀야겠다 싶어 다시 용기를 내여 어눌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런데 제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누님은 저를 확실히 좋아하거든요. 그러다나니 우리아버지한테두 얼마나 잘해드리는지 더 말할수 없어요. 그리구 우리집엔 전기밥가마도 없었잖아요. 그런데 저것도 글쎄 누님이 사왔어요. 그리구 또”

찬이가 찬장우에 얹혀진 전기밥가마를 가리키며 말할때 경수는 더 들을멋이 없어 속으론 어이없고 황당하면서도 겉으론 그런척하고 헤벙긋 웃으며 그의 마음을 알고싶어져 그가 하는말을 가로채고 따져물었다.
“글쎄 그럼 그여잔 널 좋아해 그런다치고 넌 그래 어떻게 생각는거냐?”

찬이는 계면쩍은듯 어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저야 뭐 마다할수도 없고 솔직히말해 제형편에 나무랄수도 없잖아요. 그누님 얼마나 인자하고 자상하고 부드러운가요. 저는 그 누님이야말로 이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녀자가 아닌가 싶거든요. 책에두 보니깐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덴 국경도 나이도 민족도 없다잖아요. 안그런가요?”

경수는 눈앞에 찬이가 늘 친동생같이 어리무던하고 천진하고 귀엽게만 여겨져 왔는데 어쩜 이토록 기괴망측하고 뻔뻔스러울수가 있을가 까지 느껴지며 어처구니없기 이를데 없었다. 하지만 그 말하는 어투가 너무도 진지하고 가식이란 전혀없어 욕이라도 퍼부으면 그 여린마음에 치유될수 없는 깊은상처라도 받을가봐 제마음마저 쓰려나서 차마 욕은 못하고 그저 완곡하고 부드럽게 그의 마음을 돌려놓아야 한다고 여겨져 간절한 어조로 어루듯 말했다.

 “얘 찬이야. 글쎄 네말마따나 그아줌마가 좋기야 더없이 좋지. 마음씨곱구 인물곱구 짜장 이세상에서 제일좋은 녀자일수도 있겠지. 하지만 너도 잘 생각해 봐야잖아. 그녀잔 애가 딸린 유부녀잖아. 이건 법적으로도 허용 안되는거야. 그리구 넌 지금 아무리 어려운 형편이라두 아직 새파란 총각이 아니야. 너하고 그아줌마 몇살차냐? 그래 맞아 다섯살이나 년상 아니냐. 왜 하필 너보다 그렇게 나많은 남의 펀펀한집 유부녀를 생각할수 있냐말이다. 그아줌마가 아무리 세상 좋기루 필경엔 남의 담장안에 핀 장미꽃에 불과한것 아니야? 옛말에 뭐 동네색시 믿고 장가 못든다더니 너 정말 그럴가봐 겁나는구나. 그리구 너 절대 그아줌마가 너를 생각해주는걸 너를 좋아 그러거니 생각지마. 그아줌마가 너를 생각해주는 그 깨끗하고 고매한 덕성을 네가 그런식으로  받아들이는줄 얼마라도 그아줌마가 알기만 하면 얼마나 실망하고 욕같이 생각하겠어. 네가 나한테 털어놓고 이렇게 말하는건 전적으로 날 믿어서 하는 소린줄 난 다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말을 다신 누구한테나 외워선 안되구 그아줌마한텐 더구나 내티를 보여선 절대 안돼 알았어? 또 그리고 이런 생각을 숫제 일절 접어라. 그아줌마가 널 생각해 주는걸 절대로 깨끗하게 받아 들여야지 다른 헛생각으로 대해선 절대 안돼. 알았어?”

경수는 찬이의 잔등을 토닥거려 주며 안타깝게 그를 쳐다보았다. 찬이는 들으며 낯색이 질리는듯 하고 무슨말을 하고싶지만 말하기 어려운 사람처럼 입만 움씰거렸다. 경수는 혹시나 그가 심하게 듣지나 않았는지 우려되여 그의 풀리지 않는 마음에 생각을 들어보고싶어 다시 부드럽게 물었다.

“그래 네생각엔 어때? 달통안되는 점이라도 있으면 우리둘이 잘 토론해보자. 나야 뭐 항상 네편이 아니야?”
찬이는 무슨 큰 울화를 참고있는듯 경수를 외면한채 여기저기에 눈길을 허둥대다가 이어 작심한듯 말했다.

“그럼 형님 묻기세요. 사랑은 깨끗하고 순결하다는건 뭘두고 하는 말인가요. 꼭 처녀총각의 사랑이구야 깨끗한 건가요? 어떤 텔레비드라마나 책에두 뭐 아름다운 주인공 여자들이 비정한 혼인에서 대담히 탈출하여 참다운 애정을 찾는 유부녀들이 많잖아요. 저는 누님이 안재규같은 사람을 만난것이 인생의 불행이구 아무때에라두 그들이 갈라질건 번하다구 생각해요.”

   경수는 또한번 화들짝 놀라며 찬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한참뒤에야 정신을 차린듯 물었다.
   “아니 순희가 재규를 만난것이 왜 불행이란 말이냐? 그리구 왜 그들이 꼭 갈라진다구 점치듯 예언하는거야? 뭐 어디 그런 기미라도 본게 있단말이냐? 난 네말은 듣고도 모를소리만 같다. 허참 어디 말해봐.”

   경수는 전혀 믿기질 않는 헛소리를 한다는 뜻으로 일부러 찬이를 자극했다. 찬이는 다소 활기를 찾으며 확신에 찬듯 말했다.
    “우선 누님이 재규를 만난것이 왜 불행인가 들어봐요. 재규가 어떤사람인가요. 저는 재규와 함께 있은시간이 형님보다 훨씬 오래잖아요. 하다보니 재규란 위인에대해 알고도 남음이 있어요. 사람이 진실이란 전혀없구 기회만 엿보는 양면 인간이거든요. 지금 최공장장이 우리공장에 오기전만 해두 재규는 공장에 일반 물자구입원으로 그때에 제일책임자였던 리선덕이한테 잘보이려고 얼마나 아첨했는지 아세요? 막 역겨울 지경이였어요. 그런데 후에 최수천이 라디오 록음기 생산항목을 갖고 시에서 파견되여 오니깐 수천이가 후에 어떻게 되리라는걸 점쳤는지 다시 또 그한테 아양떨며 착 달라붙어 얼마나 잘 발라맞춰요. 그러게 우리공장에 오래된 사람들은 재규를 뒤에서 뭐라는지 알아요? 최공장장의 발바리라고들 불러요. 사람을 발바리라고까지 부르게 됐으면 그인간의 인격이 어느 정도인줄 그만하면 모르겠어요?”

     경수는 듣다가 참기 어려운듯 “글쎄 그건 그렇다할세 넌 무얼보고 그들이 지금 잘살아가고 있는 부부지간을 미리부터 재수없이 갈라진다구 예단하는가 말이야.”하고 다우쳤다. 찬이는 웃으며 이었다.

 “글쎄 들어봐요. 지금 재규가 누님과 사는건 재혼인데 전에녀자와 살면서 어쨌는지 아셔요? 하루건너 다른녀자들을 끌어들이며 바람피워 얼마나 소문났게요. 지금은 글쎄 누님의 미모에 반해서 꼼짝 못하는지는 모르지만 개꼬리 묻어 삼년돼도 황모 못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인줄 진작부터 잘알기에 제가 누님과 가까워지게 되면서 속으론 그렇게 총명하고 똑똑한 누님으로선 그런 위인과 살아가는 누님도 불행이다 싶으며 누님한테 귀띔이라도 해주고 싶어요. 그런데 또 이건 고의로 두사람 사이에 쐐기라도 박는짓같은 오해라도 살가봐 이제 불원간 다 저절로 드러날일에 성급할게 뭐 있으랴 해서 그저 지켜보고만 있어요. 그리고 워낙 혼인 기초가 든든치 못한데다 두사람의 위인됨이 천양지차니 아무때에라도 갈라지고 말리라는건 불보듯 번하잖아요.”

    경수는 피식하고 웃고는 잠간 생각하다가 말했다.

   “얘. 혼인이라는건 두사람이 꼭 맞아서 사는건 결코 아니야. 그러게 혼인을 그물이라고도 하잖아. 이미 만난이상 이모저모 여러면을 생각해서 어쩔수없이 맞춰가며 사는것도 인생이란 말이야. 그러니 남의 혼인생활을 경솔하게 예단해서 생각하면 안되는거야. 넌 그래 그렇게 지레 짐작하고 오유월에 쇠불 떨어지면 구워 먹겠다는 생각이야?  허참. 그런 생각은 너무 어리석고 허황한거야. 나 아까도 이미 너한테 말했지만 순희아줌마가 너한테 기울이는 관심과 정성을 깨끗하고 순결한 누님의 동기사랑으로만 받아들이길 바란다. 난 진심으로 네가 그렇게 생각하길 간절히 바랄뿐이니 그리 알아라.”

   찬이는 경수가 웃지도 않고 너무도 준절하게 타이르듯 말하는지라 “예 알겠습니다.”하고 대답은 하면서도 혹시 이 형님도 집에 아줌마가 병태이니 누님을 엿보는건 아닌지 하는 의혹마저 들었다. 경수는 한창 나이의 찬이가 이성에대한 갈증으로 남의 성스런 도움마저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음에 그가 너무도 안쓰럽게 여겨져 빨리 그의 혼처찾기에 나서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를 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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