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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인 - 스즈키 히사오
2017년 02월 19일 10시 47분  조회:3160  추천:0  작성자: 죽림

하나마키(花券).도요사와가와(豊澤川)를 건너 - 스즈키 히사오

 

 

 

 

아침 안개 속

하나마키 역부터 한 시간 걸어서

그리운 도요사와 다리를 넘어

나스지인협회가 있었던 곳에

'비에도 견디어내며'의 비(碑)를 향한다

 

밝아오는 주홍색 하늘에

어렴풋이 빛이 산란하며

남색 비구름이 흘러간다

 

하늘에서 빛 알이 되어 내려오는 아침 안개와

강수면에서 오르는 김이 섞여서

도요사와가와 부근은 새하얀 서운의 한복판이다

 

피안의 꽃과 보라빛 클로버들은 적색, 적자색에 물들어

75년 전에 이 다리를 건너간 사람의

뒷모습을 따라 나는 시모네코 부근까지 걸어왔으나

이곳에서 솔밭을 볼 수 있을까

 

2

솔밭 오솔길을 빠져나가면

화톳불을 피었던 광장이 나온다

비석은 아침 안개에 젖어 서 있다

그 밑에 갠지의 분골과 전집이 놓여 있다

 

이틀 전에 있었던 갠지제의 기억이 되살아나

화톳불이 타는 붉은 빛깔이

어둠속에서 무수히 서로 다른 붉은 빛들을 잇달아 낳고 있다

나는 그 불 숙에 뛰어들어가고 싶었다

 

솔밭이 바람에 흔들려 새들이 요란스로워져

잘못 분 피아니카처럼 젖어지면서

'아래 밭에 있습니다' 그 사람의 목소리가 마침 들려와

솔밭 속에 빠져 내려갔다

 

3

노란 이삭 논이 보인다

냉해에도 견디어내는 리크우 132호 비료를 설계한 사람은

이삭 꺾는 끝을 보면서 어디서 생각에 잠겨 있었을까

백성으로서는 못 먹어

가뭄에 눈물을 흘리던 사람은

날품팔이로 전락해가는 백성들을

이곳에서 어떤 생각으로 지켜보고 있었을까

 

논 근처의 들판에는

열매를 많이 단 사과나무가 있었다

사과식중독으로 죽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새긴

유니크한 시인의 밭이란 여기였을까

땅위에 떨어진 사과 두개를 주워 주머니 속에 넣었다

나는 타듯이 목이 말라

사과 배탈이 나더라도 괜찮아

걸어가면서 싹까지 다 먹었다

 

그 사람의 뒷모습은 어느새에

논의 노란 이삭 끝에서 떨어져

오륜 고개를 넘어

이와태산 쪽으로 사라졌다

 

 

 

 

스즈키 히사오 
1954년 도교에서 출생.
시집으로 '불의 기억'등이 있으며 시론집으로 '시적 반복력' '시가 쏟아지는 곳'들이 있음.
현재 도쿄에서 시와 시론 전문지 '콜삭' 편집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에서 온 편지

 ‘원고향(原故鄕)’을 찾아가는 길

-「시평」 창간 10주년 축하 편지

스즈키 히사오(鈴木比佐雄)

한성례 옮김

 

 

                                   1

 

 한강 물은 여전히 도도하게 흐르고 있겠지요. 지금 3월의 강변에는 봄의 야생초가 싹을 틔우고 있겠지요. 2003년 가을에 본 한강이 떠오릅니다. 강물 가까이까지 내려가 보았는데, 바로 앞에는 갯강아지풀, 왕고들빼기, 개망초 등의 야생초가 나 있었습니다. 그 풍경이 왠지 낯익었고, 언젠가 이곳을 지나간 적이 있는 것처럼 아련하고 신기한 감각에 사로잡혔습니다.

  백제 멸망 시의 도읍인 부여는 아니지만 백제의 첫 수도가 서울(漢山)이었다고 들은 적이 있어서, 어쩐지 제가 고구려와 신라의 군세에 쫓겨, 천 몇 백년 전의 한반도 바닷가에서 배를 타고, 백제의 한 청년으로서 일본을 향했을 것 같은 환상입니다. 저는 들꽃을 바라보면서 산책하기를 좋아하는데, 한반도에서 산과 들에서 즐기던 가무가 제 몸속에 흐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1999년 도쿄에서 있은 행사에서 혼다 히사시(本多 壽) 시인의 소개로 고형렬 시인을 만났는데, 그 후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시아 편집기획 여러분들이 일본, 중국, 베트남, 몽고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시를 10년간이나 지속적으로 소개해올 수 있었던 것에 경의를 표합니다. 10년 전 도쿄에서 시인으로두터 아시아 시인들에 대한 시야를 넓힐 시문학지를 구상 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그 스케일에 놀랐고, 깊이 공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저는 장시 『리틀보이』를 제가 만들고 있는 시문학지 『콜삭』에 소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7년간이나 한성례(韓成禮) 시인의 번역으로 연재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 8월에 혼다 히사시 시인의 도움을 받아 콜삭사에서 『리틀보이』간행을 계기로 콜삭사를 출판사로 만들어 본격적인 출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4년 동안 많은 책을 냈습니다. 

 2006년 8월에 시인을 히로시마에 초청해서 원폭 돔과 작품 배경지를 안내했고, 일본 전국에서 축하하러온 시인들과 원폭 기원일 전날에 출판기념회를 열어 우정을 키운 일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07년에는 10년 이상 준비해온 『원폭시 181인집』(일본어판, 영문판)을, 2009년에는 『대공습 310인 시집』을 간행해서, 국가는 달라도 시운동을 공유할 수 있었고, 고형렬 시인의 작품을 수록할 수 있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2

 

 올해 2010년은 한일합방에서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일합방 1년 전에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安重根)에 의해 암살당했습니다. 안중근은 “한국, 일본, 청나라가 힘을 합하면, 구미 열강의 힘을 배제하고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는 세계 시민적인 발상을 가진 사상가”라고 현재는 일본학자들로부터도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100년 중에서 전반기 50년은 한일에 있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행한 시대였습니다. 특히 아시아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 8월6일의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에 의해 피폭 당한 35~40만 명중, 한반도 사람이 5~7만 명이었고, 그 중 약 3만 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서도 당시 약 2만 명이 한국의 합천 등지로 귀국했는데, 친일파라고 낙인이 찍혀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고생했다는 것을 관계자의 증언으로 들었습니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서 왜 한반도 사람들이 가장 비참해야 했는지 진심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 의미에서 『리틀보이』는 한·미·일의 20세기 역사를 토대로 해서, 합천 출신 일가족의 피폭 피해를 장대한 8천행 서사시를 썼다는 것에 일본인들은 높이 평가하고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통치에서 해방된 후에도 한국전쟁이 있었고, 약4백~5백 만 명에 달하는 한국, 북한, 중국, 미국 등 유엔군과 민중이 사망하였으며, 천만 명에 달하는 이산가족이 생긴 한반도 분단의 역사는 냉전이 초래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인 사망자는 310만 명으로 일컬어지는데 500만 명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전쟁의 특수에 의해 일본은 패전 후 경제에 가속도가 붙었고 경제대국이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이런 불행한 반세기 속에서도 한일의 본원적인 관계, 본연의 모습을 실천하려 한 일본인도 존재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사는 치바현 카시와(千葉県 柏市)시에는 데가누마(手賀沼)라는 주위 20 km의 길다란 늪이 있는데, 그 가까이의 아비코시(我孫子市)에는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라는 종교철학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영국 낭만주의의 신비적 종교시인 윌리엄 브레이크의 영시 등을 통해 종교철학을 연구해서 대학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차츰 동양의 노장사상이나 대승불교에도 눈뜨게 되었고, 종교적 진리와 예술적인 미의 공통점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친우들과 동인잡지「시라카바파(白樺派)」를 만들었고, 일상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민예품의 미를 발견해서 민예운동을 제창하고 실천했습니다. 아비코시의 그의 자택 주변에는 도예가 버나드 리치라든가 소설가 시가 나오야(志賀直也) 등도 옮겨와, 예술가 마을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야나기 무네요시는 아사카와 노리타카(浅川伯教), 아사카와 다쿠미(浅川巧) 형제에게서 감화를 받아. 조선 공예의 탁월함을 발견했고, 수많은 서적을 집필, 기획, 출판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1919년에 ‘3·1 독립운동’을 위해 서울 파고다공원에 모인 30만 명을 탄압한 조선총독부를 비판하면서 “반항하는 그들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압박하는 우리다”라고 발언했습니다. 그 사건에 호응하듯이 중국에서도 ‘5·4 운동’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야나기 무네요시는 같은 해 5월에 「조선인을 생각한다」라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요미우리신문에 발표했습니다.  “일본은 불행하게도 칼날을 휘둘렀고, 모욕을 가했다. 이것이 과연 상호이해와 협력으로서 결합을 완성하는 길인가. 아니다. 조선의 전 인민이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한없는 원한, 반항, 증오이다.” 이처럼 한반도 민중의 입장에 섰던 야나기 무네요시 같은 양식 있는 문화인들이 그 외에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와 군부는 조선과 중국에 대한 침략을 그만두지 않았고, 아시아 민중을 비극 속에 몰아넣었습니다. 일본이 범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침략 행위를 일본인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일본의 국가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20세기 중반부터 지금까지 양식 있는 일본인들이 평화국가의 길을 모색하며 분투하고 있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그 후에도 일본의 조선정책을 계속 비판하면서 1924년에는 뜻을 같이 하는 아사카와 노리타카, 아사카와 다쿠미 형제와 함께 ‘조선민족 미술관’을 개설해서 조선인들의 미의식을 높이 평가하고 경애했습니다. 그들은 조선공예의 미의 독자성에서 배워, 일본공예의 미를 보다 깊게 발견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원폭시인 181인집』의 서문을 쓴 일본의 현역시인이며 의사인 미쇼 히로미(御庄博実) 씨도 의로운 일본인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히로시마에서 대학을 다니던 중에 피폭이 있었으나, 자택에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히로시마에서 약혼자라든가 은사, 친구들을 찾아다녔기 때문에 방사성 노출로 인해 피폭당한 것과 같은 증상으로 고생했습니다. 그 후 의사가 되어 피폭 의료에 종사했고, 지금도 히로시마 병원의 명예회장으로서 후진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피폭자의 치료를 위해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한국인 피폭자들에게 자신의 역사를 쓰라고 권해서 피폭 체험을 후세에 남기게 했습니다. 미쇼 씨는 최초로 『원폭 시집』을 간행한 도우게 산키치(峠三吉)와 함께 피폭 관련 동인지를 내기도 했습니다.

 

                                       3

 

 기억하건대 제가 처음으로 부산을 방문한 것은 2005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호사카 유지 교수(세종대)의 소개로 저는 제4회 이수현(李秀) 추모회에 초청되었습니다. 온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없어지지 않는 한, 자신의 행복은 있을 수 없다는 일념으로 실천과 문학 활동을 실행한 일본의 시인이자 동화작가인 미야자와 겐지처럼 이수현 씨는 똑같이 살신성인의 정신을 가진 인물입니다. 저는 마음속에 고향과 타향의 근저에는 훨씬 광대한 ‘원고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수현 씨의 살신성인의 정신에 대해 몇 차례 진혼시를 썼습니다. 그를 진혼하는 시에서 한일의 근저에 흐르는 인류적인  ‘원고향’의 정신이 많은 분들의 마음에 전해지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2010년 8월에 천 수백년 전의 일본 진혼시에서부터 제가 존경하는 신동엽 시인의 한국전쟁 진혼시 「진달래 산천」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진혼시(鎭魂詩) 400인집』을 간행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양국간의 문학적 교류가 올해를 기점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 활발해지도록 함께 기획하고 노력하도록 합시다.

 저는 2007년 「사자(死者)가 살아 있는 곳, 히로시마」(『시평』 2007년 겨울호)를 쓰면서 시인을 생각했습니다. 고형렬 시인, 우리는 들판에 핀 꽃처럼 미약한 존재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한, 시와 평론 그리고 출판을 통해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의 ‘원고향’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시평』 10주년을 축하드리며,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스즈키 히사오(鈴木比佐雄)
1954년 도쿄에서 출생. 시인, 평론가.
1987년부터 시전문지 『COAL SACK』(石炭袋, 현재 66호) 창간 편집인.
시집 『바람의 기도』 등 다수. 

 


봄 하늘
 
 




                                                                                                                           - 스즈키 히사오
 
 
 
안녕하십니까?
저는 우주의 먼지입니다.
옛날 제 이름은 캄파넬라 였답니다.
어서오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전철에 깔려서 숨진 학생입니다.
李秀賢(이수현) 이라고 합니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지구의 봄으로 가려고 하는데요.
여기서 내리면 됩니까?
 
예, 여기서 내리세요.
 
알겠습니다.
제가 물에 
빠지고 나서 아주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랜만에 봄의 들판에서 꽃을 보고 싶답니다.
옛날에 할미꽃이랑 개나리가 피어 있던 그 봄의 들판으로
같이 가지 않으시렵니까?
 
아닙니다. 갈 수 없습니다.
저는 우주로 가야 한답니다.
 
은하철도의 역은 조금 더 위에 있습니다.
다음엔 함께 들판으로 놀러 갑시.
어서 가십시오.
안녕히 가세요.
 
꼭 돌아오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봄 하늘’ 시평
 
2001년 1월 26일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취객이 선로에 떨어졌고, 반대편에 있던 한 청년은 망설임 없이 취객을 구하기 위해 선로로 뛰어들었다. 그 청년은 바로 故 이수현 씨다. 이 일은 가깝지만 항상 서로를 편견으로 바라보고 거리를 두던 한국 · 일본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고인의 의로운 죽음은 ‘봄 하늘’이라는 시로서 표현됐다.


이 시의 특징 중 하나는 대화체의 문장을 일본인 작가가 직접 한국어를 배워서 썼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이 우주 혹은 봄의 들판이라는 이정표로 떠나는 모습에서 한국인들이 보기에 약간은 어색해 보이는 표현도 있다. 하지만 그런 서툰 표현이 고인과 캄파넬라와의 대화를 직설적이고 자신감 있어 보이게 한다. 그들의 죽음이 헛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시에서 캄파넬라에 대해서 언급을 한다. 캄파넬라는 『은하철도의 밤』에 나오는 주인공으로, 친구를 구하려다 자신의 목숨을 잃은 의로운 인물이다. 많은 이들은 아름다운 희생을 한 고인도 캄파넬라처럼 큰 우주의 주인공이 되길 바랬을 것임을 작가가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시를 읽으며 느낀점은 시 속에서 고인과 캄파넬라의 짧은 대화가 고인의 용기가 큰 의미를 가진 것이며, 일본인들에게 한 청년의 살신성인의 자세를 일깨워줬다고 생각한다. 또 그가 철로로 뛰어든 잠깐의 시간이 그에게 아름다운 영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10년 전의 이야기지만 다시 들어도 고인의 희생정신과 용기에 대해서 다시 되새기게 된다. 그의 선행은 일본과 한국 양국의 관계를 다시 한번 환기 시킨 계기가 되었다. 그만큼 그의 희생이 절대 헛된 것이 아니며 이러한 시를 통하여 많은 이들에 의해 기억돼야 할 것이다. 더불어 그의 의로운 희생을 떠올리며 ‘나에게도 고인이 겪은 상황이 닥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그처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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