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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인"이나 "실험시인"이나 독자를 외면하면 안된다...
2017년 03월 29일 20시 55분  조회:1947  추천:0  작성자: 죽림

멋진 시를 쓰는 법:
현대 심리 사회론을 통한 인생 관찰서

 

1.  시를 잘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분명히 있다.

 

   빵을 잘 만드는 유명한 제과사가 있고, 연을 잘 만드는 연제조사가 있다. 강의를 잘 하는 교수가 있고, 설교를 잘 하는 목사가 있다. 그림을 잘 그리는 만화가가 있고, 연극을 잘 하는 배우가 있다. 이렇듯이, 시를 잘 만드는 시인도 확실히 존재한다. 세상 모든 구석에는 ‘잘 만든다’와 ‘잘 못 만든다’의 구별은 분명히 존재한다. 작은 기술의 기능공에서부터 정신세계를 제도하는 전문직업인들에 이르기까지 ‘잘 한다’와 ‘잘 못한다’의 차이(변별력)는 분명히 존재한다.

 

   여기서 ‘잘’과 그렇지 않은 차이의 범주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느 세계, 부문, 분야에서든지 실제로 잘 하지만 발굴되지 않는 능력자가 있고, 그다지 잘 하지는 못 하지만 항상 남보다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이 존재한다. 모든 능력에는 줄서기가 가능하다. 객관적으로(물론 여기서 객관적이라는 용어에 대한 정의가 더필요하지만) 능력이 없는 사람도 능력 이외의 장식물, 인연물, 보조물을 잘 동원하여서, 남보다 능력 있게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 특히 현대사회처럼 한 개인에 대한 정확한 평가지수, 평가기회, 면대할 기회가 거의 없는 사회에서는 자기 드러냄의 효과성이 더욱 중시된다.  

 

   이런 사회적 조건과 변수 속에서 잘 한다와 그렇지 않다는 구분은 사실 불가능할 수 있다. 시인의 개인적 자기 평가에서는 잘 한다와 못한다의 겸허함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의 평가에는 항상 주변 조건과 변수가 따른다. 이는 서양의 문학 풍토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정서적 유대관계가 어느 나라보다도 더 강한 나라이기에, 인간적 변수가 선결조건이 될 수 있다. 인간적 부대 조건에서는 잘 한다와 그렇지 않다의 구분은 더욱 애매한 만화경을 통과한다. 

 

     그렇지만, 어느 사회에서나 진정한 잘한다와 그렇지 않다는 존재한다. 서구사회에서는 인구와 등단조건이 우리보다 조금 더 객관적이기에 어느 정도나마 경쟁력을 통해 잘 구분될 듯하다. 그러나 이들은 조직과 기계적 사회 조건 때문에, 실제로 수많은 경쟁조건 이후에 선발된 사람들 이외에는 잘과 못 잘의 구분이 사실 더 애매모호하다. 그 애매성은 개성이라는 비켜가기로 더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예 처음부터 인간적 관계로 정확한 후견인만 잘 만나면, 능력 여부를 미리 인준받는 결과성을 갖지만, 서구에서는 모든 경쟁관계에서 앞으로 튀어나오는 놈도 있지만, 대개는 고만고만한 객관성으로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서구 문학 풍토에서 시를 잘 쓰는 방법은 두가지 방향이 있다; 

 

   첫째는 아주 전통적 재능이 출중한 경우다. 서구 사회는 지능, 지성, 이치가 중요되는 사회다. 단일 문화성보다는 복합 문화, 다종 인간 간의 모여살기가 중시되는 사회다. 따라서, 각자의 전통을 타자와 잘 조화시켜야만 된다. 동시에 자기 전통을 더욱 드러내야만 자기 개성을 더 강조할 수 있는 모순적 상황이 많은 사회다. 자연히 학문이나 시쓰기에서도 전통적 역사의 흐름을 모두 꿰차야만 남보다 힘이 있는 시를 쓰게 된다. 문학사에 남을 정도의 위대한 시를 모두 섭렵하는 단계를 거친 시인이 강한 능력의 소유자로 성장하는 것은 당연하리라. 이런 전통적 재능을 잘 발휘하는 시인은 어느 곳에서나 진정한 능력있는 시인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래서 이들의 시단은 전통적 흐름이 아주 면면히 흐른다. 

 

   둘째, 이런 전통적 시성의 사정거리를 모두 흩어내는 능력이 없으면, 새로운 실험적 능력을 더 궤뚫으려 한다. 물론 이런 분들도 일반적 전통성을 훤히 꿰뚫는 능력이 뛰어나기에, 새로운 변화를 추구할 능력을 가질 수 있다. 이들의 실험성이나 변화성을 보면, 단순히 치기나 즐거움으로 만족해서는 얻지 못할 전통성과의 접합성이 항상 드러난다. 이들에게 실험성이란 항상 줄기차게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진보요, 성장이다. 이들의 진보는 전통을 잇고 일어서는 새로움이다.

 

   이 때 시를 잘 쓰는 경향은 분명히 다른 평가 요소를 안게 된다. 전자의 전통성은 이미 평가할 가늠자가 존재한다. 시의 전통성, 즉 시인의 임무에 충실한 시인이 두각을 나타낸다. 이들에게 시인은 여전히 사회의 이념이나 사유의 힘을 이끌어가는 선구자, 예언자, 변화를 주는 인물로 인정된다. 이들의 전통적 시인관은 바로 이런 메시야적인 힘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전통시인이라고 하면, 단순히 시적 재능, 즉 표현력이나 수사적 능력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전통성은 인생의 성찰력을 제공해주는 시적 지혜를 잘 드러내는 시인을 훌륭하다고 말한다. 

 

   후자의 실험성은 전통주의자들의 일정한 스텝을 뛰어넘고 싶은 시인들의 기질, 성향을 반영할 뿐이다. 이들도 시인의 권능과 의무는 거의 동일하게 요구된다. 왜 시를 써야 하는가에 잘 답할 수 있는 시인이 바로 실험시인의 전위부대가 된다. 실험시인은 전통시인보다 기능적일 수 있다. 즉 울머(Ulmer) 교수가 말하는 대로, 기술(테크놀로지), 제도(Institution), 주관성(subjectivity)의 삼 요소 중에서 일단 주어진 시적 재료인 언어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대한 기술적 접근과, 자기 중심으로 자주 지적 교류를 할 수 있는 같은 부류의 제도권 형성, 그리고 자기만의 개성있는 표현력, 수사적 재능을 할 수 있는 시인을 실험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시적 미래성은 역시 새롭고도 강한 표현력을 들을 수 있다. 

 

   이런 전통시인과 실험시인의 두 부류의 시인 군에서 시를 잘 쓰는 기준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서, 한국시단에서는 전통적 시를 잘 쓰는 시인을 만나기가 어렵다. 이는 곧 시적 퍼스펙티브가 웅대하거나 자기 정신을 배울만 하거나, 교류할 만한 내용을 깊이있게 드러내는 시인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우리 시인들은 대개 실험시인 군의 기술적 능력이나 표현적 능력만 조금 다독거릴 줄 아는 시인들이 많다. 이들의 시적 지평선, 정신의 내면지도를 보면 거의 황폐할 정도로 텅 비어있다. 자신이 무엇을 쓰는지를 잘 알지 못하고 시를 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직언해도 괜찮을까? 정말, 정말 그런 것 같다.

 

우리의 전통시적 능력을 발휘하는 시인군은 외적 평가로 하면 이미 6-70년대로 끝나지 않았을까 싶다. 자연 서정시를 중심으로 한 서정시인 이외에도 사회적 서정시나 노동시적 사회시인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할 정도다. 그러나 사회참여시에서는 이미 전통적 요소나 실험적 요소를 모두 빼앗긴 정말 알맹이 없는 구호시나 비산문 정도의 시형태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80년대에 전통시인들이 노년의 무딘 표현성에서 그나마 유지되는 듯하면서, 완전히 사회시로 넘어가는 현상이 더욱 더 우리의 전통적 글쓰기는 죽어나간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정신의 황폐성을 그대로 반영해준다. 

 

그렇다고 이런 사회적 변화에 따른 포스트모던적 글쓰기가 실험시로 연결되었는가는 과히 의문스럽다. 더 나아가서 이런 일반 전통적 리터러시(Literacy)가 전자매체적 변화에 따라서 전자글쓰기 (Electracy)로 연결되었는지는 더욱 의심스럽다. 우리의 실험시는 자기 흥취와 경험에 따른, 즉 지적인 노력보다는 체험적 자기 게발에 의한 변화성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곧 시적 수월성, 즉 잘 쓴다는 것보다는 좀 다르다는 정도로  다가올 때가 많다. 

 

그나마 우리의 전통 시의 명맥을 유지하는 경향이 불교나 향토적 시성을 잘 드러내는 시인들에게서 발견되곤 한다. 외국에서 우리 시를 돌아볼 때, 과연 저들의 시와 우리 시를 비교할 수 있는 소재나 비교 우월성이 어디에 있는지 회의할 때가 많다. 그 때마다 그나마 다행히도 우리의 것이 불교적, 자연적, 토속적 소재에서 실험성을 같이 겸하는 내용이 밝게 다가온곤 했다. 이 점에서 잘 쓰는 시는 역시 우리 것을 우리 나름대로 잘 드러내며 시적 기능과 기술을 잘 이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초 자료에다가 시인 개인의 개성적 감수성을 질감있게 잘 쓰는 시인이 좋은 시라고 평해도 무난할 듯하다. 

 

여기서 개인별 시인의 이름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까닭을 이해바란다. 그러나 요즘 시단에서 새로 전통성과 실험성을 잘 조화해서 쓰는 시인들을 몇 분 읽을 때마다, 즐거운 미소를 살풋이 떠올리곤 한다. 그들의 언어성에서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마음 구조를 같이 공감하게 되고, 그 언어 찾기 이면에 들어있는 지식이나 생의 지혜의 지형학을 살며시 공감할 수 있으면, 좋은 시라고 같이 읽게 된다...

 

 

////////////////////////////

 

 

■ 시 읽다

 

아름다운 서정시의 산실

―서정시의 도래인가

 

 

시를 움직이는 작금의 내놓으라 하는 시인들의 시는 어렵다고 한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쓴 것이 아니라 전문 평론가 시인의 위주로 구미에 맞게 썼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문가 집단이 아닌 일반 독자들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종종 상 받은 작품에 평 쓴 것을 보면 전문가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의 글이 있다. 전문가에 의해 상을 받고 전문가에 의해 좋은 작품이라고 칭송받는 작품이 전문가도 어렵다면 독자들은 시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어 시집을 외면한다.

잘 나가는 시집이나 유명한 시는 쉽고 이해하기 좋다. 생각을 짜내면서 이해하기를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다가온다. 좋은 시는 단순하다고 한다. 스테디셀러의 작품을 보면 이해하기 편하게 다가온다. 독자들에 의해 상을 받고 독자들에 의해 읽히는 시가 좋은 시이고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독자들이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독자를 위해 쓰고자 하는 열의와 시인들의 자성이 있어야 한다. 이 병폐가 살아지지 않는 한 독자는 없다. 동서고문을 막론하고 명시는 어려운 시가 없다.

‘시를 왜 쓰느냐’고 묻는다면 시인은 이렇게 대답해 주고 싶다고 했다. ‘내 필요에 의해 내 마음을 대변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 시를 쓰고 있다’고 사석에서 한 적이 있다. 마음의 자화상을 남길 수 있는 글이 되고 상처를 위로 받고 사랑과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값진 모노드라마처럼 자신을 그려놓은 시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자화상을 드러낸 전문을 보면,

 

경험이다

또는 간접 경험이다

이상과 상상의 나래를 폈다

마음을 다 드러냈다

시는 내 얼굴이다

어떤 관계로든 내 자화상이다

알몸을 가로수에 세운다.

― <치부恥部> 전문

 

시인의 말과 같이 시는 시인의 자화상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시인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시를 보면 마음이 성격까지 보인다. 朴佳月 시는 잔잔하게 너울지는 물살처럼 가슴을 젖어드는 시가 많다. 그는 20대 후반에 시집을 냈고, 그때 쓴 시는 부끄러워 남에게 보여 주지 못한다고 한다. 30년 동안 써온 주옥같은 시를 모아 시집을 내는 것이다. 4부로 각 16편씩 실었는데 특별한 장르를 구분한 것은 아니고 정리하게 좋게 나누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그대 오지 않아도 좋다

기다림의 신분은 가난한 것이니

잃을 것이 없어 좋다

그대 오며는 좋은 거지만

오지 않아도 그만이다

사는 것은 기다림의 연속이니

안달하지 않는 마음이다

언제 올 줄 모를 기대 속에

정을 듬뿍 담지는 않는다

가난해도 넉넉한 바람이니까

실망하지 않을 정도로

희망을 살짝 얹고 산다

그대 오지 않아도 슬프지 않게.

―<기다림에 대하여> 전문

 

이 시를 보면 이성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희망을 기다리는 노래이다. 기다림이란 아무것도 없는 허허로운 벌판에서 유를 창조하는 바람이다. 그렇다, 기다림은 가난하다. 약속이 없는 것에서 희망이란 실체를 얻기 위한 노력이다. 지금은 가난할지언정 노력하여 얻으려는 보람을 이야기한 것이다. 기다려도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서 오지 않아도 상심하지 않게 마음을 다스리는 감정까지 예상하고 무한한 기다림으로 그대 또는 희망을 염두해 두면서 용기를 버리지 않고 산다는 의지표현의 시이다. 우리는 잔뜩 기대하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망하고 포기하는 실연에 헤어나지 못하는 폐인이 된다. 이런 독자에게 마음을 다스리는 좋은 교훈이다.

 

파도는

도끼가 되어

큰 돌을 쪼개 내고

파도는

맷돌이 되어

줄곧 돌을 갈아댑니다

 

얇게 깎고

곱게 갈아서

은색으로 다듬어

파도는

모래알을 밀어냅니다

 

조개가 살고

해녀가 찾는 바닷가에

큰 파도

작은 파도는

넓은 모래밭을 만들어 냅니다.

― <파도> 부분

 

위 시의 전체를 읽어보면 파도에 의해 모래가 생긴 까닭이 설득력을 준다. 개인적으로는 박가월의 대표적인 시로 추천하고 싶다. 이보다 감동을 주는 시가 많겠지만 모래가 해변가에 왜 생기는지가 전설처럼 느껴진다. 시는 시를 쓰는 자의 합리화시킬 특권이 있다.

朴佳月 시인은 관악산을 수백 번을 올랐다고 자부한다. 근무지가 관악산 밑에 자라잡고 있어 시간만 나면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오후에 올라갔다고 한다. 필자도 몇 번 같이 시인하고 따라 나선 적이 있는데 산을 좋아하고 잘 탔다. 산을 타고 내려오면 꼭 술을 한잔씩 했는데 많이는 못 들어도 즐겨서 어울린 기억이 난다. 십수 년간을 매일같이 바라본 관악산의 모습 한편을 담았다.

 

능선이 잔설을 등짐지고

청솔가지에 찬바람이 일어

계곡 깊숙한 곳은

아직 얼음이 닷 근이다

까투리 장끼가 쉬어 놀던

햇살 품은 곳으로부터

겨울이 떠나는 계곡물은

얼음장 속을 핥아

봄의 무게만큼 바다로 향한다.

― <冠岳山스케치> 부분

 

3월 어느 날 산에 오르는데 산비탈 양지에 봄기운을 감지한다. 양지에 봄기운이 돌고 있는데 산등성이에는 잔설이 남아있고 응달에는 얼음장이 두껍게 겨울이 아직 머물고 있다. 봄이 점령한 것만큼은 봄이 와 있고, 겨울이 있는 산야를 한 폭의 그림을 이 시에서 연상해 그려도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봄의 경계선이 세밀하다.

 

네 년이 황진이도 아닌 것이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것이다

이리도 몰랐던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여인아

머리 속에 떠나지 않는 곡두

네 년이 무엇이관데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냐

黃眞伊가 있은들 무슨 소용 있으랴

보고 싶은 미운년.

― <황진이도 아닌 것이> 전문

 

황진이가 무슨 죄인가. 이렇게 막말로 끌어들여도 밉지가 않은 것은 어인 일인가. 시인은 황진이를 무진 동경했나보다. 여기에 어느 계집이 나타나면서 마음을 몽땅 빼앗긴 것은 아닌가. 사랑할 때 뭐가 보이겠는가. 역설적인 표현으로 황진이를 끌어들인 여인이 누구인가 있다면 만나보고 싶다.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표현이다. 사랑 시에 이만한 사랑 시도 없다.

 

기쁜

설렘도

잠시

 

반가운

포옹도

잠시

 

좋아하자마자

질퍽거리는

조루

 

어설픈

경험

― <첫눈> 전문

 

긴 소설로 설명한들 이렇게 다가올까. 한 눈에 쏙 들어온다. 한 눈에 사로잡는다. 첫눈이 사내들의 첫 관계로 받아들여진다. 사내들의 첫 경험의 속성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는 첫눈이 내릴 때 설렘과 벅찬 감정을 느낀다. 그 기쁨도 잠시 눈이 내리자마자 땅에 닿으면서 녹는다. 시인은 이것을 눈과 대비시켜 첫 경험을 조루로 표현했다. 남성들의 첫 경험은 금방 발기했다 금방 시들어지는 생리적인 현상을 말해 주고 있다. 박가월 시인은 짧은 서정시에 감동을 주는 시를 자주 목격한다. 배울 점이다.

 

떠나 버린 사랑을 치유하기 위해

숱한 이야기를 나누던 주안역 광장을 찾는다

공중전화기에 매달려

통화하는 사람들은 제각기 이유가 있다

숙녀는 애인과 어느 장소에서

만나자는 전화를 하고 유유히 사라지는데

그 옆 여인은 실연인 양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선다

신사는 골똘히 무슨 생각에 잠겨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전화를 걸고,

청년은 참다못해 휴대폰을 박살낼 것처럼

큰소리로 친구한테 욕설을 퍼붓는다

아저씨는 환하게 웃으면서 어느 갈비집 앞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나오라고

여유가 있는 행복한 얼굴로 통화를 한다

전동차는 와서 사람을 부리고

역 광장에서는 가족, 연인 또는 친구들을 만나서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는 공중전화기를 바라보며 그녀를 생각한다

서로 잘못도 없이 헤어져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그리움을 어떻게 설명할까

주안역 광장에는

내 경험을 연기하는 사람들처럼

다양한 희로애락을 연출하는 모습으로 돌아들 선다

전동차는 오고가고 만나서 돌아가는데

나는 만날 약속도 없고

전화 통화도 없는 그리운 사람을 기다린다

그리고 낮게 불러 본다.

―<주안역에서> 전문

 

필자가 평에 올리는 시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문학 활동에서 관심을 받은 것을 위주로 시집을 묶었다. 시인은 <주안역에서>의 시를 모임에서 즐겨 낭송했다. 평상시는 목소리가 작은데 낭송할 때는 우렁차다. 외우고 다니는 시가 몇 편 있어 즉석에서 낭송을 청하면 들려주곤 했다. 사석에서 한번 물어봤다. 이 시가 탄생한 것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산책 삼아 집 부근 주안역을 자주 나가 공중 전화기에서 전화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착상을 얻었다고 한다.

 

――갈잎은 뜨락에 뒹굴고 세상은 고요하고 쓸쓸하다

마음은 한없이 빛나고 사랑은 그립다

아, 상현달 비추는 이 가을밤에

지나는 길손이라도 붙잡고 그리움을 하소연하고 싶다.

―<그리움의 神話> 부분

 

박가월 시인을 보면 너무 착하여 고백 한번 못해 봤을 것 같다. 그래서 그리움의 시가 많은 것 같다. 시인이 말하기를 내성적이라 어디 가서 말을 못하여 시로 표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말한다. 쉽게 쟁취하는 사람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쓸 리는 없다. 가 보지 못하는 곳을 동경하여 시로 표현했으리라.

 

너의 죽음이

국민장이 되는구나

기껏 여름 몇 푼의 그늘

업적은 미비한데

화려한 장례식에

명산은 문상하느라

온 나라가 북새통이다.

―<단풍 1> 전문

 

시인의 시를 보면 다양한 시를 쓴다. 등단은 늦게 하였지만 오래도록 써온 흔적과 꾸준히 노력한 시력이 있다. 시인이 사물에 관한 시를 쓸 때는 적절이 그 소재에 잘 맞아 감동을 준다. 위에서 보더라도 잘 드러난다. 지고지순한 시를 쓰는가 하면 여인네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휘어잡는다. 때로는 감칠맛 나게 성묘사도 적절하게 표현한다. 우리말도 때로는 잘 찾아 적절하게 쓰고 있다. 우리 시대에 트로트의 노래처럼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서정시의 산실이며, 서정시는 다시 도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집을 전체를 읽고 감동을 받고 그 시인을 사랑하라.
한권의 시집을 읽고 시간을 낭비했다고 후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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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시와 련관성이 없는 "무의미시"의 낱말로 제목화할수도 있어... 2017-03-22 0 2053
338 이순신 장군 시 모음 2017-03-21 0 2638
337 저 밑에는 날개도 없는것들이 많단다... 2017-03-21 0 2159
336 류시화 시 모음 2017-03-21 0 5169
335 새가 나무가지를 못떠남은?!ㅡ 2017-03-21 0 2138
334 <새(鳥)> 시 모음 2017-03-21 0 2286
333 시제는 그 시의 얼굴로서 그작품의 질과 수준을 예감할수도... 2017-03-21 0 2387
332 시의 제목을 첫행이나 끝행으로 할수도 있다... 2017-03-20 0 2118
331 시의 제목에 의하여 시의 탄력이 생긴다... 2017-03-18 0 2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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