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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시에서 이질적인 이미지들을 폭력조합시켜라...
2017년 03월 29일 23시 26분  조회:2328  추천:0  작성자: 죽림
 

            형이상시의 컨시트와 그 유형

                              최규철 (시인, 문학평론가)

 

 

 

  형이상시의 컨시트(conceit)는 형이상시의 몇몇 특징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컨시트는 모든 형이상시의 특징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특징이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컨시트 속에는 형이상시의 특징인 정서의 지적 등가물이나 기지(wit), 2원적 양극화의 결합, 생략적 구문, 패러독스, 아이러니 등이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이상시의 컨시트를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형이상시의 전반적인 특징을 모두 숙지하는 일이다.

 

원래 컨시트(conceit)란 말의 어원은 이태리어인 concetto 에서 유래된 말로서 concept(개념), Idea(발상), thought(사상) 라는 뜻으로 사용된 말이다. 이런 컨시트가 시에서 사용하게 될 때 지적인 놀라움과 층격 그리고 희열을 주는 하나의 비유법이 된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의 소네트 작가들이 즐겨 쓰던 페트라르카 컨시트(Petrarchan conceit)는 대개 아름답고 잔인한 애인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애인을 어떤 물질적 대상, 즉 무덤이나 바다, 태양과 비교하는 과장된 비유법이었다. 그러나 17세기 존 던(John Donne)을 중심으로 한 영국의 형이상시인들이 자주 썼던 형이상학적 컨시트(metaphysical conceit)는 기존의 페트라르카 컨시트보다 난해하고 현대적인 감수성을 자극하는 복잡한 비유법이다.

 

글리어슨(Grierson)은 『여러 가지 면에서 페트라르카의 컨시트와 던의 컨시트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으며 던의 컨시트는 '감정과 사고, 느낌과 추리의 독특한 융합'을 이룬 가장 큰 업적을 남겼다』고 했다.

 

형이상시의 컨시트란 진기한 기상 또는 발상을 말하는데 서로 상반된 것들을 폭력적으로 결합하여 조화를 이루는 시의 기법을 가리킨다. 즉 겉보기에 전혀 유사성이 없거나 어울리지 않는 사상이나 사물 등을 지극히 재치 있고 기발한 방법에 의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지적인 충격을 주는 일종의 메타포이다. 이렇게 엉뚱하고 동떨어진 이미지(image)들끼리 결합하여 놀랍고도 충격적인 효과를 줌과 동시에 서로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 속에서 유사성과 정교한 조화를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즉 이런 이질적인 경험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기능을 말한다.

 

이러한 컨시트는 기발한 기지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것을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은 『부조화의 조화』라는 말로 비꼬았다. 그는 말하기를『한 종류의 부조화의 조화는 전혀 상이한 이미지의 결합이나, 외견상 같지 않은 사물 안에서의 불가사의한 유사성의 발견』이라 했다. (Samuel Johnson, The Life of English Poets Everyman Library, 1954 , p. 11)

 

또한 그는 『카울리론(Life of Cowley)』에서 “17세기경에 형이상학파 시인들이라 일컫는 일군의 시인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의 기지는 조화의 부조화라 할 수 있다. 환언하면 유사성이 없는 이미지의 결합, 내지 외견상 다른 것에서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이 이들의 기지이다. 이 시인들은 이러한 기지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가장 이질적인 생각들도 폭력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다”라고 했다, 즉 유사하지 않은 이미지(image 心象)의 결합. 혹은 겉보기에 동일하지 않은 것에 숨어있는 유사성의 발견이라고 지적함으로써 던의 시의 특징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의 기상천외한 컨시트가 그의 기지에 의해 행사되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지가 컨시트의 지배적인 요소임을 말해 주고 있다.

 

다음에는 형이상시 컨시트에서 지적 감동과 놀라움을 주는 ‘정서의 지적 등가물’에 대해서 언급하겠다.

 

형이상시인들은 그들의 정서를 그대로 나타내지 않고 그에 부합한 지적 등가물과의 유추를 통해서 시어를 선택하여 사용했다. 그런 시도 때문에 서로 연상 작용이 용이하지 않은 생경한 낱말들을 골랐다. 그들은 상업, 과학, 신학, 지리 등의 용어들을 더 즐겨 사용했다.

 

조안 베넷( Joan Bennett)은 던의 컨시트에 들어있는 지적인 요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시에 있어서의 이미저리의 목적은 어떤 지적 등가물에 의한 정서적인 경험이라고 정의했다.』(Joan Bennett, Five metaphysical Poet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4, p. 31.) 라 했고, 이어 던의 지적인 유추가 그의 정서와 일치함을 언급하면서 『또한 던은 그의 지적인 유추를 그의 정서와 동일시했다』라고 했다.

 

다시 말하자면 그의 정서적인 경험을 어떤 지적인 등가물에서 유추하여 소화시킴으로써 그 안에서 정서와 지성이 완전히 융합된 비유적 기능을 말한다. 그리하여 컨시트가 주는 놀라움은 정서적 감동이 지적인 감동으로 함께 어우러지는 데서 더욱 크다. 더욱이 던은 자연과학이나 연금술, 중세 스콜라 철학 등에서 섭렵한 광범위하고도 심도 있은 지식을 기초로 하여 서로 이질적인 사상이나 사물들을 결합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폭 넓은 지적 상상력에 의해서 그의 지적인 충격을 주는 컨시트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학문적인 언어가 단순한 사상이나 지식을 나타내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오직 그의 사고는 일상적인 경험의 세계를 통해서 얻어진 것이다. 이런 형이상시에 있어서의 지적 등가물의 발견은 모든 현상과 사물에 대한 보다 더 본질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이 점에 대서『지성(nous)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육의 눈으로만 보는 것은 일종의 그림자에 자니지 않다.』라고 했다.

 

또 형이상시의 컨시트에는 양극화 현상을 나란히 병치함과 동시에 결합함으로써 비유의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다. 어떤 이미지나 개념에 대한 가장 동떨어진 상상의 거리가 바로 양극화이다. 이런 거리를 하나로 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컨시트의 기능이야말로 압권적이라 할 수 있다.

 

조안 베넷(Joan Bennett)은 형이상시인들의 시의 특징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은 컨시트의 양극화를 설명했다.

 

『형이상시인들의 특징은 그들이 관련지어 설명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인식한 관계들은 감각적인 것이나 감정적인 것보다는 오히려 논리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끊임없이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 먼 것과 가까운 것, 숭고한 것과 평범한 것을 연관시킨다.』 (Joan Bennett, Five Metaphysical Poets, Cambridge University Press,1964 , p. 3.) 라 했다.

 

그런데 이런 형이상시의 기상은 극과 극으로 양극화된 현상을 폭력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시의 새로운 긴장을 고조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즉 추상적인 것과 구상적인 것, 관념적인 것과 즉물적인 것, 선한 것과 악한 것, 고상한 것과 세속적인 것, 천국과 지옥, 영혼과 육체, 남녀, 명암 등의 양극화 된 형이상학적 문제들을 시인의 통합적 감수성에 의해서 융화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형이상시의 특징 중에서 패러독스나 아이러니도 역시 양극화가 있는 컨시트로 처리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렇게 양극화가 되고 동떨어진 거리를 컨시트를 통해서 억지로 결합되는 과정에서 서로 잡아당기는 형이상시의 강력한 긴장(tension)이 유발되기도 한다. 더욱이 형이상시에 있어서는 형이상학적 정신세계와 형이하학적 물질세계의 양극에서 오는 긴장, 컨시트라고 하는 메타포의 원관념과 보조과념 간의 이질관계에서 오는 긴장, 그리고 내포(intension)와 외연(extension)의 동떨어진 거리에서 발생하는 긴장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사랑할 때까지 그대와 나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오. 그 때까지 젖도 떨어지지 않은 채

유치하게 촌스러운 쾌락이나 빨고 있지 않았는지?

아니면 잠자는 일곱 성도들의 동굴에서 코나 골고 있었단 말이오?

정말 그랬소; 이 기쁨 외에 모든 즐거움은 환상이고

만약 내가 어떤 미인을 보고, 탐이 나서 차지했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당신의 환영에 지나지 않소.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깨어나는 영혼들이

두려워하며 서로를 보지 않는 새 아침이 밝았소.

사랑은 다른 모습에 대한 모든 사랑을 억제하고

하나의 작은 방을 전 세계로 만드니까요.

해외 탐험가들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게 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지도들을 주어 구세계 위에다 신세게를 보여주게 하시오

허나 우리는 서로가 하나를 가진 하나의 세계를 갖도록 합시다

 

그대의 눈에 나의 얼굴이, 나의 눈에 그대의 얼굴이 나타나오.

그리고 진실하고 순결한 마음이 그 얼굴에 깃드오.

이보다 더 나은 반구를 우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겠소

매서운 북극도 해지는 서쪽도 없는?

사멸하는 것은 무엇이나 조화롭게 혼합되지 않은 것,

만약 우리 둘의 사랑이 하나이거나, 그대와 내가 똑같이 사랑한다면 어떤 것도 느슨해지지 앉고 어떤 것도 사멸할 수 없을 것이오

-존 던의 『새아침』 전문-

 

이 시는 3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연에서는 지금 누리고 있는 연인과의 황홀한 기쁨을 그들이 만나기 이전의 삶과 비교하면서 유치하고 촌스런 쾌락이나 빨고 있는 어린애나, 동굴에서 잠을 자던 초기 기독교 전설에 나오는 일곱 성도에 비유하여 그것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며 허무한 것이라 했다.

 

2연에서는 연인들이 서로 만나지 못했던 과거를 캄캄한 밤으로, 그리고 서로 만나서 영혼이 깨어나는 지금을 새아침으로 비유했다. 두 사람의 사랑이 경계하거나 두려워함이 없이 진정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온갖 것들에 대한 사랑을 억제하고 부부일신이 되는 일종의 작은 사랑의 방을 만든다면 그것이 바로 전 세계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존 던의 소우주적 (microcosm) 사상을 보게 된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Pythagoras)는 소우주(Microcosm)와 대우주(Macrocosm)적 개념으로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했다.

 

존 던이 말하는 사랑으로 만든 소우주는 비록 작은 방이지만 그것은 전세계와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우주적인 공간이다. 그리기 때문에 ‘해외 탐험가들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게 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 지도들을 주어 구세계 위에다 신세계를 보여주게 하시오‘라 했다. 두 연인이 만든 세계 외에는 관심 밖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부부일신의 지극히 작은 공간을 그와 전혀 상반된 개념인 광활한 세계와 연결해 보는 컨시트가 성립된다. 거기다가 이 컨시트는 피타고라스나 플라톤의 소우주론적인 지적 등가물로써 연인간의 아름다운 연정의 정서를 표현했다.

 

3연에서 ‘그대의 눈에 나의 얼굴이, 나의 눈에 그대의 얼굴이 나타나오.’ ‘ 이보다 더 나은 반구를 우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겠소 ’

서로의 눈동자에 비친 반구 모양의 상대방 얼굴을 보고 연인들의 눈동자 속에 상대방의 얼굴이 비치고 서로 교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피차가 함께 상대방을 받아들여 하나가 된다고 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요. 또한 ‘인들의 눈동자 속에 상대방의 얼굴이 들게 될 때’바로 그것은 완벽 속일신동체가 된 상태이다. 특히 이렇게 서로의 눈동자 속에 비친 반구 모양의 상대방 얼굴을 보면서 그것이 합쳐져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는 기상천외의 기지가 더욱 지적인 갑동을 주는 컨시트의 놀라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상태를 던은 지리학적인 관점에서 지구의 남반구(南半球)와 북반구(北半球)가 서로 완벽하게 결합된 상태로 비유했다. 이것은 연인들의 결합을 마치 전혀 유사성이 없는 지구의 두 반구가 결합되어 전 세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비유함으로써 2연에서 연인들의 결합된 공간을 전 세계의 공간으로 본 컨시트와 맥락을 잇게 하는 데서 더욱 기지에 찬 던의 컨시트를 엿볼 수 있다. 거기다가 두 반구의 결합은 남녀의 반신이 하나가 됨으로써 새로운 세계가 형성되는 양극화와 사적인 남녀의 관계를 세계적인 관계로 양극화 하여 다시 결합하는 정묘한 컨시트의 묘미를 발견한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위에서는 던이 남녀의 사랑을 단순한 공간적인 관계로만 간주했다면 3연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시간적인 관계로 발전시켜 보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던은 두 연인의 결합된 세계를 ‘매서운 북극도 해지는 서쪽도 없는 것’으로 묘사하여 사랑의 영원성을 언급하고 있다. 던은 그의 주장을 보다 학문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펼쳐가기 위해서 중세 스콜라 철학의 이론을 빌려 온다. 이 점에 대해서 김종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인은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보다 설득력 있고 논리적으로 주장하기 위해 중세 스콜라 철학의 이론을 빌려 온다.‘무엇이든 죽는 것은 똑같이 혼합되지 않은 것’이란 명제가 바로 그것이다. 중세 스콜라 철학의 대부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gunas)는 ‘부패란 대립적인 것이 발견되는 곳을 제외하고서는 발견할 수 없다’고 하여 상극적인 둘이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을 때는 그 어떤 것도 사멸하지 않는다고 보았는데 바로 이런 생각을 시인은 자신의 사랑의 개념을 천명하는데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우리 두 사람의 사랑이 하나이고 그대와 내가 똑같이 사랑한다면 아무 것도 느슨해지지 않고 죽지 않을 것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은 스콜라 철학에서 중시하는 영원성의 개념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두 연인의 사랑의 영원성과 불변성을 대변하고 있어서 시인이 이 시에서 주장하는 사랑 철학의 요체이다.』(김종두, 형이상학시의 분석과 이해, 도서출판 동인, 1996, p.23-24.)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이 시에서 지리학적이며 철학적인 학문의 지적 등가물에서 오는 지적인 감동과 놀라움과 충격의 감정 등, 형이상시적인 컨시트가 가지는 특색을 보여주고 있고, 나가서는 ‘하나의 작은 방을 전 세계 ’로 보는 패러독스가 있다. 사랑에 대한 공간적인 무한성과 시간적인 영원성으로 표현되는 내포(內包)와 양 반구와의 결합으로 표현되는 외연(外延)과의 거리에서 긴장이 유발되고 있고, 또 두 연인과의 결합으로 표현된 원관념과 두 반구의 결합으로 표현된 보조관념 간의 긴장이 있다.

이렇게 동떨어지고 유사치 않은 개념과 이미지들이 우격다짐으로 결합되어 컨시트를 이루게 한 기지가 부조화의 조화를 이루면서 잘 융합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컨시트의 특색을 정리하여 조지 윌리엄슨(George Williamson)은 던의 기상의 특징을 세 가지로 분류하여 보았다.

첫째는 던의 기상에는 추리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분석의 도구는 이성이다:.., 어쨌든, 위트의 이성적 토대가 모든 형이상시에서 느껴진다. T. S. 엘리엇은 이러한 위트를 ‘가벼운 서정적 우아함 이면에 있는 거친 분별성’으로 정의했다. 우리는 항상 이와 같은 거친 분별성을 던의 기상과 그의 시의 전개에서 의식하게 된다. 이미지들을 단편들로 부수는 것은 관계에 대한 이성적 인식을 필요로 한다.』 (GeorgeWilliamson, The Donne Tradition, New York : The Noonday Press, 1958 , p. 3o.)라 하고, 던의 시 가운데 가장 기지가 있는 ‘벼룩’(The Flea)에서 그 실례를 들고 있다.

 

아-아 잠깐만, 이 벼룩 한 마리 속에 세 명의 생명이 있으니 살려줍시다,

이 벼룩 안에서 우린 결혼, 아니 그 이상을 한거에요.

이 벼룩이 바로 당신이고 또한 나고, 그리고 이건

우리의 신방의 침대 그리고 우리의 예식장이요;

 

자신과 여인의 피를 빨아먹은 벼룩은 두 연인의 피를 빨아먹고 한 몸을 이루게 했다는 컨시트를 통해서 기지가 있는 논리를 전개하면서, 더나가서는 그 벼룩이 바로 우리의 신방(marrige bed)이요, 결혼식 성전(marriage temple)이라고 하는 추리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둘째는 학문에서 이미지를 끌어내어 그의 시에 사용한 것인데. 이에 대해서 윌리엄슨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던의 위트의 또 하나의 특징은 그가 유추를 인식할 때 그가 끌어들이는 제재의 광범위함이다. 이것은 그의 지식과 관계가 있다.』(George Williamson, op. cit. , p. 31.)

 

이 말은 던의 광범위한 지적 경험능력이 그의 시에 사용되고 있음을 발해주고 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인생과 자연을 학문적인 경험을 통해서 유추한 이미지들을 서로 결합시키는 천재적인 위트를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던은 그 당시의 신 · 구학문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그에 통달한 시인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의 학문은 단순한 사상이나 지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엘리엇의 말대로 그에게 있어서 사고는 곧 경험의 세계였다. 그는 모든 경험을 시적 비유의 수단으로 사용하였는데, 지구의(地球儀),컴퍼스, 연금술, 달의 인력 등의 학문적인 소재들을 기발한 이미지로 사용함으로써 지적인 놀라움을 줄 수 있었다.

 

셋째로 윌리엄슨이 언급한 기상의 특징은 상상의 거리(imaginative distance)인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세 번째 특징은 어떤 이미지 속에서 그가 결함시킨, 즉 때로는 다만 고삐 줄처럼 억지로 얽어매어 놀은 사물들 사이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거리이다. 이것은 또한 그의 폭넓은 지식과도 관련되어진다.』 (George Williamson, op. cit. , p. 30.)

 

여기서 말한 상상의 거리(Imaginative distance)는 윌리엄슨이 던 시의 컨시트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특징으로서, 아주 동떨어지고 상반된 두 개의 사물이나 개념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상적으로 거리가 면 것을 말한다.

 

윌리엄슨은 던의 이러한 컨시트를 다시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첫째로 확장된 컨시트(The extended conceit)인데 이것은 처음에 제시한 유추물을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고 정교하게 발전시켜 가는 것이다. 이 같은 실례로 윌리엄슨은 던의 시 ‘작별의 말: 슬픔을 삼키며’ (A Valediction: Forbidding Mourning)를 들고 있다.

 

우리의 두 영혼은 그러므로, 하나입니다,

비록 나는 가야하지만, 단절이 아닌

사랑의 확장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두드려서 공기처럼 얇게 펴진 금처럼 말입니다.

 

아무리 얇게 쳐 늘려가도 단절되지 않고 변함없이 질과 색깔을 유지하는 황금의 속성을 연인들의 영혼의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에 비유한 컨시트가 돋보인다. 순금은 귀금속이란 개념에서 그치지 않고 그 금의 속성을 통한 여러 가지의 현상으로 확장해 가면서 연인들의 변치 않은 사랑의 속성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서는 쳐 늘릴수록 팽팽해져서 끊어지지 않은 황금이 외연이요, 멀리 떨어질수록 잡아당겨져서 끊어지지 않은 사랑이 내포인데 그 두 사이의 상상의 거리가 이 시의 긴장을 더욱 조성해 주고 있다. 또 이 시의 마지막 두 연에서 컴퍼스에 대한 비유가 있다.

 

그리고 비록 그 다리는 가운데에 앉아있지만,

다른 쪽 다리가 멀리 배회한다면,

그 다리는 그쪽으로 기대고 귀 기울이면서,

나머지 한쪽 다리가 집으로 돌아올 때 똑바로 서지요.

 

당신 또한 그렇게 나에게 있어줄 것입니다,

나는 다른 쪽 다리처럼, 기울어져 달려야하니,

당신의 굳은 신념이 나의 원을 정확하게 만들고,

그래서 내가 처음 시작한 곳에서 끝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던은 두 연인과의 사이를 컴퍼스의 두 다리로 비유면서, 고정되어 있는 다리를 여인으로,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다리를 남자로 보는 기발한 컨시트를 성공시켰다. 연인들이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그리움이 더하고, 다시 만나 한 몸을 이루려고 하는 열망이 커지는 것처럼 컴퍼스의 두 다리도 넓게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더욱 두 다리를 중심으로 모아 정상으로 합쳐지려고 하는 작용이 커지는 데서 시의 긴장이 있다. 또 연인관계를 컴퍼스의 집약된 개념에만 멈추지 않고, 컴퍼스의 여러 기능을 정교하게 확장시켜감으로써 연인과의 관계에 대한 사랑의 신비를 더욱 고조시켜주고 있다

 

둘째는 압축된 기상(the condensed conceit)인데 이것은 교묘한 유추 작용물 혹은 불협화의 대조가 참으로 간결하게 표현되는 것을 이른다. 윌리엄슨은 집약된 기상의 좋은 예가 던의 「황홀」과 「성골」이라고 하였다.

 

응축된 기상의 이 두 작품 중, 대표적 작품인 던의 시 「황홀」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황홀」은 남녀 간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시 중의 하나이다. 이 시는 19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2-4연을 언급해 보겠다.

 

우리 두 손은 거기서 솟아나온

향유로 굳게 접착되었고

우리의 시선은 얽혀 우리의 눈과 눈을

한 가닥의 두겹실로 꿰매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손을 접목시키는 것이

아직은 우리가 하나가 되는 모든 방법이었다

그리고 눈에 비치는 서로의 모습을 포착하는 것만이

우리의 생식의 전부였다

 

백중지세의 두 군대 사이에서 운명의 여신이

불확실한 승리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우리의 두 영혼 (품위를 높이기 위해 육체 밖으로

나가버린)은 그녀와 나 사이에 매달려 있었다

 

이 시는 인간의 생명을 육신과 영혼의 두 실재가 결합된 것으로 보는 2분설의 철학적인 전제를 깔고, 두 연인간의 육체와 육체가 결합되고 영혼과 영혼과의 결합됨과 동시에, 다시 이들의 영혼과 육체가 총체적으로 결합됨으로써 한 몸을 이룬다고 하는 사랑의 신비로 집약시켜가고 있다.

 

2연에서는 두 연인의 사랑을 말하면서 두 손은 향유로 접착되었고 두 시선은 한 가닥의 두 겹실로 꿰매었다고 묘사함으로써 보다 감각적이고도 사실주의적인 기법으로 그들의 순수한 육체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3연에서는 연인들의 완전한 육체의 결합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이 성적인 관계로 결합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손을 잡고 시선을 맞추는 상태만으로도 두 몸이 하나가 되어있는 고귀한 사랑을 말해 주고 있다.

4연부터는 영혼과 육신의 분리를 말하고 있다. 두 연인의 영혼이 육체 밖으로 나가 두 사람의 사이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마치 백중지세에 있는 대등한 두 군대 사이에서 병사들이 전진도 후퇴도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오로, 5연에서는 생명이 없이 누어있는 육체를 ‘무덤의 조각상’ 으로 비유하고 있다.

 

던은 이렇게 연인들의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가 모든 것이 정지해버린 상태를 황홀경(ecstasis)에 빠진 신비의 경지로 표현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육신을 떠난 영적인 황홀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육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불가시적이며 추상적인 사랑에서 가시적이며 구체적인 사랑으로 발전함으로써 육체는 그것을 배우는 책(교과서)이라했다.

 

『그러니 우리는 육체로 돌아가자 / 연악한 사람들도 계시된 사랑을 볼 수 있도록 / 사랑의 신비는 영혼 속에서 성장하지만 / 그러나 육체는 그것을 배우는 책이다』.

 

즉 영적인 사랑도 육체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김종두는 이런 고귀한 사랑을 산의 사랑에 빗대면서

 

『여기서 시인의 주장은 신의 사랑이 영적인 것이지만 성경을 통해서 인간에게 계시되듯이 남녀 간의 영적인 사랑도 육체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육으로 돌아와도 두 사람의 사랑에는 변화가 조금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 이 시의 결론이다.』(김종두. op. cit. , p.97.)

 

이제까지 우리가 살펴본 확장된 기상과 집약된 기상의 상이점은 권용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말하고 있다.

 

『앞서 살펴 본 「고별사: 비탄을 금하며」는 두 연언의 내면적 특성을 컴퍼스의 물리적 특정과 결부하여 시상을 전개시켰는데 반해, 「황홀」에서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영혼과 영혼의 결합, 육체와 육체의 결합, 그리고 영혼과 육체의 결합 등의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를 교묘한 유추작용을 통하여 간결하고 순간적이며 집약된 이미지들로 제시하는 방식으로 되어있다. 즉, 두 작품은 비유의 적용 범위가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앞서 말한 확장된 기상과 집약된 기상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권용각, 존 던의 시에 나타난 형이상학적 기상. 가톨릭대학교 교육대학원, p. 75.)

 

 

이상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형이상시의 컨시트는 다양하고 복잡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 현대시에서도 그런 컨시트의 기법으로 쓰인 시가 더러 많이 있고 그런 시일수록 한국문단에서 가장 좋은 시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부의 경우 형이상시의 이론을 익히고 그 기법에 따라 의도적으로 쓴 시는 드물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런 예시를 두어 편 들어보겠다. 먼저 박남수의 시『손』인데 이 시는 6연으로 되어있고 그 중 2-5연을 보면

 

얼마나 오랜 세월을

손은 소유하고

또 놓쳐 왔을까.

 

잠깐씩 가져 보는

허무의 체적(體積).

 

그래서 손은 노하면

주먹이 된다.

주먹이 풀리면

손바닥을 맞부비는

따가운 기원이 된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손은

빈 짓만 되풀어 왔을까.

 

이 시는 획득과 상실, 존재와 비존재의 존재론적인 개념을 손이라고 하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서 형이상시적인 컨시트를 이루는 좋은 예를 보여준다.

 

2-3연에서는 오랫동안 획득과 상실을 거듭한 득실의 삶을 설명하면서 득(得)의 세월보다는 실(失)의 세월이 길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소유의 개념은 존재의 본질에 대한 허실을 잠간 동안의 소유경험과 지금은 빈 털털이가 된 빈손의 경험을 그 작은 손바닥 안의 허무의 체적아란 수학적이며 물리학적인 지적 용어로 나타냈고, 그런 경험은 득실의 세월 속에서 소유의 기쁨보다는 상실의 고통이 길었다는 실존적인 허무를 잘 표현해 내고 있다. 이렇게 손의 작은 동작이 아주 동떨어진 존재에 대한 허무의 미학과 폭력적인 결합을 통해서 아주 정묘한 형이상시적인 컨시트의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5-6연에서는 손은 확실히 움켜쥔 소유물을 놓치지 않으려고 때로는 노한 주먹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모든 것을 잃고 맥없이 풀린 손바닥이 되어 비굴하게도 빌기만 하는 손으로 끝난다. 즉 인생에 있어서 짧았던 주먹의 세월과 길었던 손바닥의 세월을 대비하면서 주먹과 손바닥의 두 경험을 통한 일종의 존재에 대한 경험철학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자면 이 시에서 인체의 지극히 작은 손의 쥐었다 폈다 하는 두 동작만으로 인생의 획득과 유실. 존재와 비존재의 양면성을 담은 총체적인 결합이 더욱 기발한 컨시트의 기법이 들어나 있다. 이것이 곧 존재는 비존재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존재와 비존재는 서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플라톤의 존재론과도 통한다.

 

다음에는 김현승의 시견고한 고독』에서 형이상시의 면모를 찾아보겠다.

 

껍질을 더 벗길 수도 없이

단단하게 마른

흰 얼굴

 

그늘에 빚지지 않고

어느 햇볕에 기대지 않는

단 하나의 손발

 

모든 신들의 거대한 정의 앞엔

이 가느다란 창끝으로 거슬리고

 

생각하던 사람들 굶주려 돌아오면

이 마른 떡을 하룻밤

네 살과 같이 떼어 주며

 

결정(結晶)된 빛의 눈물,

그 이슬과 사랑에도 녹슬지 않는

견고한 칼날―발 딛지 않는

피와 살

 

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에도

더 휘지 않는

마를 대로 마른 목관악기의 가을

그 높은 언덕에 떨어지는,

굳은 열매

 

쌉쌀한 자양(滋養)

에 스며드는

에 스며드는

네 생명의 마지막 남은 맛!

 

이 시에서 ‘견고한 열매’는 예수의 십자가 나무에 열린 열매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십자가 나무를 의인화하였고 그 나무와 그 가지의 식물학적인 현상을 흰 얼굴, 손발, 창끝. 마른 떡, 빛의 눈물, 피와 살, 목관 악기, 굳은 열매, 생명의 맛 등의 이미지를 통해 십자가에 대한 신학적인 의미를 추출하여 기독교 교리를 총체적으로 시로 형상화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 원관념은 굳은 열매인 견고한 고독이요 다른 이미지 어들은 모두가 보조관념으로 처리되어 있다.

여기에는 제자들에게서까지도 버림받은 십자가상의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도 인류구원의 결실을 위해 고난을 처음 메시아의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벌거벗겨진 채 피 흘리어 창백해진 얼굴과, 손과 발에 대못에 찔린 상황에서도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은 유일한 절대자의 신적 권세와 창끝에 허리를 상하여 쏟은 물과 피, 그리고 어두운 인류사회를 밝히는 빛의 눈물, 이것은 또한 은혜와 사랑에만 치우치지 않은 정의의 칼날이 겸비된 눈물이기도 했다. 또한 견고한 고독의 결실인 ‘굳은 열매’를 맺기 위해 피와 살을 다 주고 마를 대로 마른 목관악기와 같은 가을추수기의 노래도 곁들어 있다.

이 나무에는 인류구원 사역을 위한 절대자의 희생, 공의와 사랑, 피와 살의 성찬과 로고스(logos)의 화육(化肉) 등의 신학적인 의미가 서로 동떨어진 이미지인, 즉 단단하게 마른 흰 얼굴, 단 하나의 손발, 가느다란 창끝, 견고한 칼날. 빛의 눈물, 목관악기의 가을 등과 폭력적으로 결합되어 형이상시의 컨시트를 이루었다.

 

특히 이 시에서는 상상의 거리(Imaginative distance)를 좁히고 한 데 어울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팽팽한 긴장과 서로 연관성이 없는 이미지들을 ‘굳은 결실’이라고 하는 매개어로 구슬을 꿰듯 엮어가서 부조화의 조화를 이룬 기발한 기지가 있다. 6연의 ‘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에도 더 휘지 않는’ 에서는 메시아임을 거부하면 살려 주겠다고 하는 악당들의 회유에도 굽히지 않은 높은 골고다 언덕의 견고한 의지, 그 속에 인류를 구원한 고난과 구원의 양면성이 조화를 이루면서 형이상시의 미학이 살아난다.

 

이상과 같이 형이상시의 컨시트는 추리적이며 놀라운 지적 감동과 상반되고 괴리된 개념과 이미지들을 강제로 결합함으로써 조화를 이루는 기발한 기지가 있다. 현대시의 참신한 감각미학과 지적 놀라움, 압축된 생략적 구문, 내연과 외연. 원관념과 보조관념 등의 상상적 거리를 좁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의 텐션 등이 형이상시의 컨시트에서 현저하게 드러남으로써 형이상시가 현대시에서 가장 각광을 받는 것도 이런 기법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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