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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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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료} - 해방전 조선인 시선 댓글:  조회:2739  추천:0  2018-12-17
ㅁ[문화산맥] 해방전 조선인 시선(詩選)1-2-3-4   해방전 조선인 시선(詩選) 김여 (작자신원미상) 金与 (作者身元未詳) 3월1일 황하수 건너 부는 바람, 피바람 한숨바람 아아 이날에 수만의 무고, 왜칼에  왜총에 맞고 죽단 말가 오오 언제난 류혈이 끝나리,  언제나 끝나리 거룩한 싸움 의로운 싸움, 어느덧  1년이로다 지하의 의로운 영령- 철창에 자는  용사 그러나! 안심하소서, 안심하소서. 자유의 해빛이 정의의 기발이, 새 광채 발할 날 멀지 않나니 멀지 않나니 노예의 쓰라림 압박 악형 학대 아아 생각만 하여도 소름이 끼친다 내 아우 채우던 모습, 내 누이 끌리여가는 모양 내 부모의 여윈 혼, 아아 아직도 이 눈에 삼삼하다. 죽어도 이 기반 면하고말리라, 이 기반을 면하고말리라. 천만번 다시 죽어도 독립은 하고야말지어다 온 천하 다 막아도, 독립은 하고야말리라 삼천리 피우에 뜨고,  2천만 하나도 안남아도 독립은 하고야말리라. 이 가슴 뛰는 피 정의의 피,  이 팔뚝 흐르느 피 자유의 피, 이 피를 뿌릴 때, 영광의 무궁화  다시 피리라 그리운 조국강산, 환희에 차리라, 환희에 차리라. (1920년 3월1일 「독립신문」) 향수 고향에 피던 꽃 여기도 핀다 고향에서 울던 새 여기서도 운다 다 같이 사람이 생활하는 땅 어데나 순간의 쾌락 없으련마는 고향의 꽃 눈에 띠울 때  고햐의 새소리 귀에 울릴 때 이 가슴 그리워 터지려 한다 아아 언제나 돌아가리 산넘고 물넘어 저기 저 멀리 아침해빛 빛나는 저기 나 그리는 무궁화 피는 저기 비록 빈곤의 설음이 있다하여도 때로 불의의 재난 온다하여도 쓰든 달든 내 살림살이 아아 언제나 돌아가리 가는 비 창밖에 삽삽히 울 때 밝은 달 창공에 솟아오를 때 고향의 옛기억은 더욱 새로와 오고가는 바람비에 나의 초목은 얼마나 더 무너졌으며 반백이 더 넘은 나의 부모는 얼마나 백발이 더하였으랴 아아 언제나 돌아가리 먼길에 피곤한 뭄 풀우에 누워 무심히 바라보는 북녘의 하늘우 흰구름 두어덩이 불리여간다 아아 저밑에 나의 님 계시련마는 저밑에 나의 동산 푸르련마는 저밑에 나의 샘 흐르련마는 아아 언제나 돌아가리 사람이 살며는 만년을 살랴 하늘에서 받은 짧은 동안을 행복있게 유용하게 쓴다 하여도 오히려 최후의 눈 안감기거든 몸 다하여 맘 다하여 애쓰던 이 몸 속절없이 해외에 표박의 생활 생각하면 눈물이 더욱 흐른다 아아 언제나 돌아가리 (1920년5월11일 「독립신문」) 리욱 (李旭 1907년~1984년) 1907년7월5일 로씨아에서 출생. 1910년 만주의 간도로 이주. 1924년 시 「생명의 례물」을 「간도일보」에 발표하여 데뷔. 1948년 「대중」잡지 주필. 1951년 연변대학에서 교편을 잡음. 시집 『북두성』(1947년),  『북륙의 서정』(1949년), 『고향사람들』(1957년),  『장백산하』(1959년 한문), 『연변의 노래』(1959년 한문), 『리욱시선집』(1980년) 등이 있음. 1984년2월6일 별세. 생명의 례물 생명은  우주이다 허나 우주도 생명보다 작다 산  바다 나도 생명의 한개 점이더니 나의 붉은 젖가슴에서 뛰는 생명의 거류여 생명의 전쟁이여 생명은 정복의 날개 창조의 힘 영생의 길 내 이제 뛰는 생명의 맥박을 찾으매로 생명은 찬연한 례물을 괴여들고 이 밤 이 광야에서 나의 앞에 홰불을 들었구나. (1924년) 바위 바위 바위 등가슴으로 풍진을 씹으며 루루이 침묵을 지키누나 바위 바위 한몸에 검푸른 갑옷 떨치고 장검만 벼리는가 루년루대… 언젠가 한번은 누리를 진감하리- 창천의 우뢰소리로  지심의 신곡소리로 기필코 한번은 무덤을 가르리니 암심에 묻힌 작탄- 세기의 기발로 (1935년) 조선심 (작자신원미상) 趙善心 (作者身元未詳) 백악산인 동무야 아느냐 조선의 마음은- 겨레의 마음을 한데 태워서 옳바른 붉어진 자유의 품에 님을 비추는 삼노니 의 사조가 한없이 흘러서 사람의 마음은 는다 해도 님의 마음은 꾀일 길 없노니 환영을 헤치고 진을 찾아서 의 푸른기를 높이 세우자 동무야 아느냐 조선의 마음은- 겨레의 뜻을 한데 맺어서 제단에 드리는 훈향을 삼노니 세상에 물결이 끝없이 거칠어 의 바퀴가 구른다 해도 님의 마음은 변할 길 없노니 울음을 그치고 환희를 간직해 축복의 한잔을 높이 들어라 동무야 아느냐 조선의 마음을- 겨레의 피를 한데 빚어서 곱곱이 옥맺힌 원한의 가슴에 신의 꽃을 피우게 하려니 의 빛갈이 아무리 고와도 온 누리 사람이 죄다- 따라도 님의 마음은 변할 길 없노니 설음을 걷고 안위를 간직해 조선의 미를 깊이 맛보라 동무야 아느냐 조선의 마음을- 겨레의 혼을 한데 뭉쳐서 나날이 빛나는 진역의 터전에 새로운 성탑을 높이 쌓으려니 악마의 벽력이 되거퍼 내리쳐 희생의 선풍이 이 땅을 삼키여도 님의 정화는 꺼질 길 없노니 락망을 버리고 용기를 내여 한토에 한빛을 길이 밝히라 (「민성보」1928년5월27일) 연가선 (작자신원미상) 涓佳善 (作者身元未詳) 철주 내 누워 앓는 방 란간끝에는 제비둥지가 있다 제비 암제비 낮에는 진흙을 물어다가 제 둥이를 수리하고 밤에는 목을 엇걸고 자더라 일기가 명랑하고 바람이 화창하면 둥이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나는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귀를 기웃거리며 아픔을 잊고 그 노래의 뜻을 풀었다. (1928년6월3일 「민성보」)  천청송(千青松)  191×년 함경북도에서 출생. 1936년 룡정 광명중학교 사범부 졸업. 1945년 「불꽃」 편집원으로 일하다가 조선으로 나감. 두메 두메의 봄은 짧다 내 살던 곳은 거울이 없어도 괜찮았다 사슴뿔 솟는 샘엔 이쁜 색시 얼굴 돋고 뒤고개는 양춘삼월에도 흰눈을 이고 앉았겠지 내 향수도 차거운데 이런 밤엔 의례 뻐꾸기가 울었다   (1942년 『재만조선시인집』) 무덤 정은의 집 묘지는 적막하다 고향이 하 그리워 넋이나마 남쪽을 향했도다 오직 위무란 북두칠성이 비쳐줄뿐 표적없는 무덤들이 옹기종기 정답게 모여있다 눈보라 사납던 매듭않은 력사를 이야기하는거냐? (1942년 『재만조선시인집』) 무제 마음이 항상 공허에 무지를 때면 바다가로 들이밀리는 파도가 보고싶소이다 그믐밤 하늘을 우러러 별빛은 밤새워 차지건만 구름 널린 하늘에는 반디불조차 날지 않더이다 소낙비 맞은 내 가슴엔 정열의 불길마저 꺼졌는가봅니다 (1940년7월20일 「만선일보」) 이역의 밤 고요한 밤이면 고즈넉이 들리는 호궁소리 더욱 애닯구나 함박눈 퍼붓던 새벽녘에 떠나가신 사랑선비가 웬 일인지 한없이 그립다 답사리 우거진 담밑에 숨박곡질하던 흩어진 동무들이 보고싶다 눈보라 휘날려 문풍지 떨고 말 달리는 방울소리 요란쿠나 옛고장 물레방아간에서 맺어둔 기약을 어기고 시집간  순이가 원망스럽다 화로불가에 이마를 마주대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던 시절이 부럽다 먼동리 개짖는 소리 은은하고 시름없이 눈내리는 이역의 밤은 서글프구나 (1940년4월27일 「만선일보」)  고화 유서 잃은 고화 네 꿈이 정녕 서글프냐 차돌에 돋친 명조의 민속 인정은 다를망정 풍기는 정서 향기롭다 루거만년을 가도 오히려 령롱한 색채 내 침울한 방은 옛풍정을 지니기 가당찮아 슬프다 (1942년 『만주시인집』) 송철리 (작자신원미상) 宋鉄利 (作者身元未詳) 고향 달빛 파-랗고 밤 애련-도 하다. 울고 떠난 고장이건만 마냥 그리워 그리워 계모 찾아가는 서자처럼 마음 조이며 이밤 사르-시 나는 고향의 품속에 숨어들다. 너무나 처참한 풍경! 이렇게 변할줄이야! 푸른 기름 흐르던 산전야전엔 우거진 잡초 거칠고 들국화 꺾으며 놀던 동산엔 검은 무덤이 촘-촘 기름불 돋우고 전설 익든 두세집터엔 여우 처량히 목놓아 울고 암탉새끼치는 닭의장우엔 부엉이 부-헝 부헝 소리높여 울다니 공허와 우수에 함초롬-이 젖어 마도로쓰의 파이프연기처럼 짜릿-한 한숨 마시며 뿜으며 하-얀 박꽃 필무렵 그 녀자와 산호구슬 바꾸던 우물가를 지나다 나는 허겁지겁 숨고말다. 애기업은 어머니 우물 푸는 아낙 그는 벌써 남의 안해였다는걸 내 일찌기 모른바 아니였지만 그렇지만 아- 아- 새삼스레 피타는듯 나는 괴로왔다 나는 괴로왔다 사계 포근-히 잠들고 마을 고요-히 꿈꾸는데 마음어린 도적처럼 초조하게 망설이다 종내 허무만 안고 이 밤 나는 고향을 나오고말다. 만일 메마른 얼굴에 근육이  굳지 않았더면 내 고향의 달아래 굴욕을 뿌렸으리라 아- 아- 고향은 고향이런가? 고향은 고향이런가? (1940년3월25일) 오열 산 몇 넘었던고? 물 몇 건넜던고? 험로 수천리 후조처럼 찾아와보니 꿈에까지 그리던 옛 보금자리 꿈에만 그릴수 있게 될줄 내 어이 알았으랴! 내 어이 알았으랴 밤 심산같이 고요-한데 마음 도심처럼 소란타. 잎지는 숲속 버리고 꽃피는 섬 찾아간 파랑새 공작은 놀던 곳에 깃 남기던데 그는 와 튼 곳에 꽃잎 하나 남기잖았고나 이런줄 희미하게 짐작했거니 내 왜 왔던고? 내 왜 왔던고? 랭기 스미는 주막에서 외로이 등불 돋우는 마음 이 무거운 밤 밀리기전 아- 밤 심산같이 고요-한데 내 마음 도심처럼 소란타 (1940년3월27일) 가련 소녀야! 가슴에 시드는 수련인양 너는 애처로웁다 너는 애처로웁다 맑고 깊은 네 동자의 호수속에 파들거려야 할 희망의 송사리떼는 그림자도 없고 잔인한 애수만이 부평처럼 떠도누나 떠도누나 가마안 가만 뽑는 네 이야기 실오리에 가느다란 하소가 비가같이 슬프고 네 동그란 얼굴 탐스러운 뺨에 응당 붉어야 할 장미는 벌써  졌다 말이냐? 세상을 저주하는 싸늘한 원한만이 재처럼 차고나! 재처럼 차고나! 펴도 못보고 펴도 못보고 너는 꽃봉오리로 고만 져야 하는냐? 소녀야! 너는 가엾다 너는 가엾다 운명의 새장속에서 창공을 우는 카라리아처럼- (1940년5월7일) 침묵 나는- 침묵의 여울에서 명상의 송사리를 낚는 고독의 어옹이외다 나를- 세인은 가르쳐 벙어리! 말못하는 병신이라고… 그러나 나는- 어제도 오늘도 고독의 어옹이였나니 래일도 모레도 고독의 어옹이려나이다. (1942년 「만선일보」) 도라지 도라지 피면 8월도 피고 8월이 피면 향수도 피더라 산 물 길 될쇠 갓난이 삽살개 하염없이 쓸어보는 파란 꽃송이에 무지개마냥 아롱지는 흘러간 옛마을 그러나- 도라지 지면 8월도 지고 8월이 지면 향수도 지더라 (1942년 『만주시인집』) 함형수(咸亨洙 1914년~1946년) 1914년 함경북도에서 출생. 1935년 시 「마음의 단편」을 「동아일보」에 발표하여 데뷔. 一九三六년초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약하다가 간도로 건너옴. 1946년 서거. 가족 1 고기와 꽃과 보리이삭과 그외 여러가지 보배를 어머니는 세여진 머리에 이고 걸어오셨다 인제 어머니는 눈을 가슴속에다 박으셨다 눈물이 기쁨에서 오는 눈물이 자꾸만 흐른다 2 휘황한 전등밑에서 누이는 밤마다 붉은알 푸른알 흰알 노-란알을 굴리느라고 눈길이 이상해졌다 오늘 누이는 대리석 돌층계에서 경주련습을 한다 돌층계 밑에 떨어져있는 찢어진 찬송가와 때묻은 행케치. 3 풍차와 연과 팽이와 그리고 노래와 춤을 동생은 자꾸 만든다. 동생의 사랑은 샤기-르와 그리고 나와 어머니와 누이와 이외에도 기수없다 동생은 해를 쳐다보고 웃는다 웃는다 (1940년3월1일) 나의 신은 멀-리 암흑속을 뚫고 오는 희미하나마 확실한 광선과 같이 아무리 쇠약한 육체와 아무리 패배한 정신에게도 또 하나의 문을 가르치는 나의 신은 그런 자비의 신이리라 영원사역에 떨어진 포로수와도 같이 불타는 정열과 굳센의지와 량심과 열정과 최후의 특성까지를 바쳐서 섬길지라도 오히려 우리를 의심하고 채찍질하는 나의 신은 그런 엄격한 신이리라 지상에 사는 온갖것의 향락 지상에 사는 온갖것의 자랑과 지상에 사는 온갖것의 가치와 지상에 있는 지상에 있는 온갖 모든것을 가지고도 바꿀수없는 나의 신은 그런 고귀한 신이리라 해와 달과 별과 동물의 계열과 식물의 종류와 인류의 력사와 이 모든것을 단 한번의 분노로써 재가 되게 할수 있는 나의 신은 그런 공포의 신이리라 (1942년 『만주시인집』) 귀국 그들은 묻는다 내가 갔었던 곳을 무엇을 하였고 무엇을 얻었는가를 그러나 내 무엇이라 대답할고 누가 알랴 여기 돌아온것은  한개 덧없는 그림자뿐이니 먼- 하늘끝에서 총과 칼의 수풀을 헤염쳐 이 손과 이 다리로 모-든 무리를 무찔렀으나 그것은 참으로 또 하나의 육체였도다 나는 거기서 새로운 언어를 배웠고 새로운 행동을 배웠고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육체를 얻었나니 여기 돌아온것은 실로 그의 그림자뿐이로다 (1942년 『만주시인집』)  나는 하나의 손바닥우에 나는 하나의 피투성이된 손바닥밑에  숨은 천사를 보았다 시간의 마술이여 물질이여 먼지같은 감상이여 천사가 깨여나면 찢어진 공간을 내음새가 돈다. 아름다운 피부의 호수여 노래의 망각자여 째라 진리의 빛이여 어두운 침상이여 돌이여 눈물이여 나는 하나의 피투성이 된 손바닥우에 이상스러운 천사를 보았다. (1942년 『만주시인집』) //     해방전 조선족시선(詩選)2 윤동주 (1917년~1945년) 1917년12월30일 만주의 간도성 화룡현(현재의 룡정시) 명동촌에서 태여남. 1941년 도일하여 립교대학, 동지사대학에 적을 둠. 1945년 독립운동의 혐의로 일경에 체포됨. 1945년2월16일 호쿠오카경무소에서 옥사함. 1948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출판됨.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우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년11월20일)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년9월) 돌아와 보는 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것은 너무나 피로로운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들여야 할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가옵니다 (1941년6월) 십자가 쫓아오던 해빛인데 지금 교회당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였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수 있을가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왔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여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1941년5월31일) 또 다른 고향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 짓는것이 내가 우는것이냐 백골이 우는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좇는것일게다 가자 가자 좇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1941년9월)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래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쟘,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우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였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여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거외다 (1941년11월5일)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것은 어느 왕조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줄에 줄이자 -만 24년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래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뒤모양이 거울속에 나타나온다 (1942년1월24일) 쉽게 씌여진 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륙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한줄 시를 적어 볼가,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륙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942년6월3일) 그 여자 함께 핀 꽃에 처음 익은 능금은 먼저 떨어졌습니다. 오늘도 가을바람은 그냥 붑니다. 길가에 떨어진 붉은 능금은 지나는 손님이 집어갔습니다. (1937년7월26일) 김달진(金達鎮1907년~1989년) 1907년2월2일 경상남도에서 출생. 1929년 시 「잡영수곡」으로 데뷔. 1936년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약. 1941년 만주의 룡정에서 「만선일보」 등에 시를 발표함. 1989년6월7일 서울에서 별세. 룡정 차창밖 두만강이 너무 빨라 섭섭했다 흐린 하늘 락엽이 날리는 늦가을 오후 마차바퀴가 길을 내는  쩔걱쩔걱한 검은 진흙길 흰종이쪽으로 네귀에 어찔러 발라놓은 창경창경 알수없는 말소리가 귀가로 지나가고 어디서 호떡굽는 냄새가 난다 시악시요 아 이국의 젊은 시악시요 아장아장 걸어오는 쪼막발 시악시요 흰 분이 고루 먹히지 않은 살찐 얼굴 당신은 저 넓은 들이 슬프지 않습니까 저 하늘바람이 슬프지 않습니까 황혼 길거리로 허렁허렁 헤매이는 흰옷자락 그림자는 서른 내 가슴에 허렁허렁 떠오르는 조상네의 그림자- 나는 강남제비새끼처럼  새론 옛고향을 찾아왔거니 난생처음으로 마차도 타보았다 호궁소리도 들어보았다 어디 가서 나 혼자라도 빼-주 한잔 마시고싶고나 뜰 잎 다 진 백양 두어주 있고 가끔 노마바람 지나가고 밤이면 찬서리 눈처럼 내리는 가난한 작은 이 뜰에도 한나절 해볕이 무르녹으면 해볕따라 참새들 날아와 놀면 백화란만한 봄화원인듯 눈부신다 차병 드리운 청동화로가인듯 평화로웁다 국화 나 적은 동무와 마주앉아 인생을 론하다가 대기염을 토하다가 문득 흥이 식어져 입다물고 무연히 창경밖을 내다보았다 화분에 피여나는 찬 국화 세송이 석양을 받고있다 김조규(金朝奎1914년~1990년) 1914년1월21일 평안남도에서 출생. 1938년 「단층과 맥」 동인으로 활약. 1942년 『재만조선시인집』을 펴냄. 해방후 평양에술대학 교수, 「조선문학」,「문학예술」 주필 등을 지냄. 1990년12월3일 별세. 북행렬차 안개 짙은 밤 나는 그늘진 나의 청춘을 안고 북행렬차에 실려 도망치듯 고향을 떠났노라 산속을 기여 해안을 달음질쳐 북관 천리 차창은 우리 모두가 안고있는 한폭 생활의 축도런가 행복은 문어구에도 없고 불행만 꽉 차 숨이 막힌다 차창을 적시는 가을 찬비는 울며 따라서던 어머니 눈물이냐? 마지막 넘던 집문턱  울바자에 맺혔던 밤이슬이냐? 눈에 보이는 모든것 잃었으니 어느 구석엔들 웃음이 있으리요 빈 젖을 파고드는 애기의 울음을 어머닌들 무엇으로 멈춘단 말인가 그런데 욕설로 무찌르는 이방말… 차바퀴소리 요란한걸 보니 두만강 다리를 건너는가부다 벌써 대지는 얼어 북만엔 눈발이 섰다는데 홀적삼 로즈레로 이제 대륙의 칼바람을 어이 견뎌낼것인가 오라는 글발도 없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밤과 밤을 거듭한 추방의 막막한 나그네길 나는 내가 내리는 이곳 북행렬차는 끝닿는줄 알았는데 아, 어제도 오늘도 또 래일도 북행렬차는 더 큰 불행과 슬픔을  싣고 어덴가 자꾸 떠나고있어라 (1940년 조양천에서) 3등대합실 고향 사투리가 듣고싶어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는 저녁 정거장으로  내 창황히 나아오다 예서 고향이 몇천 몇백리이뇨? 남행렬차에 탄 길손이 부러워라 보내는 사람도 없는데 손을 들어 멀리 사라지는 푸른 신호등을 바래주노니 인생은 뭇자욱 어지러운 3등대합실 행복보다도 불행으로 가득찬 3등대합실 (할머니 그 늙으신 몸에 북행렬차를 더 타시렵니까?) 눈물의 북쪽 만리 아하하 쫓기우는 족속이여 쪼막발 이방의 아가씨가 인형처럼 아장아장 문을 열고 들어선다 슬픈 석고상처럼 창턱에 기대여 낯선 거리의 저무는 풍경을 실신한듯 내다보는 젊은이도 있다 아, 언제 닥칠지 모를 그 무서운 폭압의 채찍이 내리기전 나도 어데든지 떠나야 할것 아닌가 한마디 고별의 인사도 없이 밤차에 숨어 밤차에 홀로… (1941년 가을 조양천에서) 밤의 륜리 술을 불으고 돌아오는 밤은 노상 히틀러-의 시간도 가진다 와-샤 검은 장미송이를 뿌려라 꽃다발과 노래와 춤의 향연 충혈된 나의 욕망은 병곤을 잊을수도 있다 밤하늘이 너무 푸르고 맑아서 푸른 마음이기에 웃을줄 안단다 그러기에 나는 오늘밤을 행복하련다 화려한 밤의 륜리로 잠시 행복하련다 (1941년 『김조규작품집』) 장렬 원시적인 풍악소리가 흘러가고 소복한 녀인이 느끼며 지나가고 가까운 기억도 머얼리 황혼처럼 떠오르고 고목과 려마와 말과 조화의 기인 행렬이 흐느낄 때 나는 나의 위치를 슬퍼하고있었다 (1941년 『김조규작품집』)     해방전 조선족시선(詩選)3 권녕화 (작자신원미상) 権寧華 (作者身元未詳) 권태 대장간에서 뛰여오는 쇠뭉치 부딪치는 느린 박자 삐걱삐걱 거리로 구으는 구루마바퀴굽소리 둔중하고 착잡한 인간들의 지저거림 이○도가 몇천년을 경과한 전설인양 내게는 아무 관계도 없는 하나의 별세계 방안에 홀로 앞발을 비비는 한마리 파리에 무심한 생각을 보내며 까실까실한 코밑수염을 쓰다듬는 오후- 피줄조차 피로한듯 느리게 꿈적이고 세기의 폭풍에 지친 머리는 꾸벅꾸벅 졸며 긴- 하품을 한줄기 뽑아내오 고막에 매여달린 길다란 선에 가지가지 회포가 오롱조롱 매여달리다 (1940년4월23일) 이국의 달 창틈으로 새여넘는 이국의 달은 고향의 소식 싣고 날 찾아왔나 나날이 식어가는 내 가슴처럼 그 모양 쌀쌀하여 차기도 하다 돌아갈 기약없는 나그네 몸은 부질없는 생각인줄 잘 알면서도 고향의 지난날을 더듬으면서 외로이 달을 보고 한숨지으오 십리가 백번 모여 겨우 천리인데 내 고향 그 어덴가 반만리 저편 은하수 맑은 물에 나무배 띄워 그리운 내 고향을 찾아가볼가 (1940년5월15일) 남승경 (작자신원미상) 南勝景 (作者身元未詳) 북만소묘 바람은 바람을 안고 지랄을 치고 눈은 눈을 안고 몸부림한다 하늘과 땅이 분별없이 얼어붙은 날 한떨기 파초는 남국이 그리워 밤새 운다. 령하 36도 9분! 썰매의 방울소리마저 바람에게 포로된 날 뻬치까우에 놓인 둥그런 빵 한개 누구 배를 불려서 코노래를 들으려는고. 자비로운 북국의 녀신이시여 푸른 하늘과 맑은 대지를 내여놓으소서 취하지 않은 고량주 씨원치 않는 스피어 차디찬 마음 마음속에는 언제나 봄이 옵니다 (1942년 『재만조선시인집』) 정와 태고적 성모를 등에 업은 정와가 세기의 천지를 품에 그러안고 설계없는 청주를 마시며 사막을  기여간다. 초연이는 어느 지방 상가앞에서 공복을 참다못해 조반을 구걸하는 파리마냥 전통잃은 우물개구리… 지평선이 뵈지 않는 무딘 천리안 깨여진 두개골 구부러진 척추 이제는 락타도 못 타는 한낱 물벌레. 그의 정든 고향은 언제나 우물속 매일 구름뭉치를 하나 둘 헤여보다가 수장이 되고마는 우물개구리여. (1942년 『재만조선시인집』)  류치환 (柳致環 1908년~1967년) 1908년8월 경상남도에서 출생. 1928년 연세전문학교를 중최후 도일하여 사진을 배움. 1931년 시 「정적」을 「문예월간」에 발표하여 데뷔. 1940년 만주로 건너옴. 시집 『청마시초』, 『생명의 서』 등 간행. 1967년2월3일 사망 노한 산 그 륜락이 거리를 지켜 먼 한천에 산은 홀로이  돌아앉아 있었도다 눈뜨자 거리는 저자를 이루어 사람들은 다투어 탐람하기에 여념없고 내 일찍 호올로 슬프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나니 일모에 하늘은 음산히 설의를 품고 사람은 오히려 우러러 하늘을 중오하건만 아아 산이여 너는 높이 노하여 그 한천에 굳이 접어주지 말고있으라 바위 내 죽으면 한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대로 억년 비정의 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여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사향 향수는 또한 검정 망토를 쓴 병든 고양이런가. 해만 지면 은밀히 기여와 나 대신 내 자리에 살짝 앉나니. 마음 내키지 않아 저녁상도 받은양 밀어놓고 가만히 일어나 창에 가 서면 푸른 모색의 먼 거리에 우리 아기의 얼굴같은 등불 두엇! 북방추색 먼 북쪽 광야에 크낙한 가을이 소리없이 내려서면 잎잎이 몸짓하는 고량밭 십리 이랑새로 무량한 탄식같이 떠오르는 하늘! 석양에 두렁길을 호올로 가량이면 애꿎이도 눈부신 제 옷자락에 설흔여섯 나이가 보람없이 서글퍼 이대로 활개치고 만리라도 가고지고 신상보 (작자신원미상) 申尚宝 (作者身元未詳) 사막 여기는 아세아의 꿈많은 나라 명일이 즐겁게 해뜨는 나라다 은호털속에 극락보다 단꿈이 있고 유방보다 보드라운 모래언덕 넘어서 밤이면 별 하나씩 시집오는 사막이다 락타등에 생활을 싣고 걸어서 천년 앉아서 천년을 살아도 언제나 꿈속에 명일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1942년 『만주시인집』) 걸인 얼어터진 손목에 넋을 걸고 찬바람 안아 하루가 슬픈 생활 걸어서 걸어서 일륜처럼 돌기만 하는 그대 뉘 자손이뇨 족보가 우는 그의 세대는 정녕 서글프다 털모자 등거리 떨어진 장화 굽은 등에 일생을 보따리에 의지하고 뉘 문전이 고맙드뇨 뉘 문전이 괄시많드뇨 밤잠이 차거운 꿈속에도 별같이 아름거리는 추억마저 시들어 자리를 돌아눌제마다 끙- 소리 땅이 꺼지고 남음이여 무거운 한숨 뜨고지는 해가 소용이 없다 덥고 찬거움이 소용이 없다 걸어서 일생을 사방이 집이로다 드문드문 걸어도 쉬여본적 없는 인생걸인 (1942년 『만주시인집』) 려인숙 오늘 해가 저물었소 길가마귀 지저귀고 저기 가는 저 손님 짐내리시고 쉬여가오 어깨에 70년이 못박히고 보따리속에 한숨이 그득한듯 고랑처럼 패인 주름살에 그 땀을 식혀가오 차거웁기 얼음같은 표정 고요하기 상아같은 표정 무슨 비밀이뇨 말없이 굳게 다문 입 어서 짐을 내리시고 이 밤을 쉬여가오 해지는 겨울밤이 무섭게 차거웁소 가실 곳이 어디길래  바쁘다만 하시나뇨 가도가도 끝없길래  한없이 가고프오 한없는 길이길래 멀-리 가시는 길이길래 어서 천천히 머물러 나름나름 가시구려 (1942년 『만주시인집』)     해방전 조선족시선(4) 윤해영 (尹海栄 1909년~) 1909년 함경북도에서 태여남. 1930년초기 룡정에서 흑룡강성의 녕안으로 이주. 시 「해간강」 「룡정의 노래」(일명 「선구자」) 등이 있음. 해란강 적막한 강이로다 거룩한 강이로다 고원잃은 자식들 젖줄을 빨리기 해란강 백리언덕에 주름살은 잡혔느니 전설의 물줄기 더듬어오르면 령란이 핀 언덕에 어진 사슴이  호사로운 두뿔 비쳐보던 시절엔 정정한 락엽송의 아지가지가 은하의 별빛조차 가렸다건만 이주민의 부월에 력사가 빛날 때! 쓰러지는 환목의 도막도막을 가슴에 안고서 흘렀느니 은하장장 천심에 별이 종종 류역에는 아리아리 인연이 종종! 강낭대 마디마디에 희망을 맺은 어진 족속들이 별떼처럼 무성해서 잎이 필 때면 기러기가 울 때면 회향병 젊은이들의 로맨스도 실어갔다 근심많은 사나이들의 큰 뜻도 실어갔다 한세기 수다한 이 지역의 력사를 늙은 해란강 백사장에서 찾으리 (1939년5월 룡정에서) 발해옛터 5월의 석양 발해옛터에 지팽이와 나와 풀숲에 쓰다 력사란 모두다 거짓말같아서 6궁의 남은 자취 주추돌도 늙었는데 제일궁지 드높은 곳 응령사 종이 울어울어… 기와 편편 어루만져 회고에 잠기우면 저- 언덕 밭가는 농부 그 시절 백성인듯 멍에 멘 소잔등에 태고가 어리우다 (1942년5월 경박호기행시중에서) 설인( 雪人 1926년~) 본명 리성휘(李成徽). 1921년 연길시에서 출생. 중국작가협회 회원. 시집 『봄은 어디에』 『설인소시집』 『설인시선집』 등이 있음. 한야에 굶주린 창자 헐벗은 알몸들 지금 엄동설한 이 삼경에 누구의 집 모퉁이에서 지낼가 없나? 누가 그들에게 따스한 물 한모금 김나는 밥 한숟갈 그들에게 줄 사람 없는가, 없는가… 모대기다 못해 급기야 기한에 지는 한맺힌 이슬 누구 탓일가? 누구 탓일가? 이 밤이 왜 이다지 찰고? 아, 왜 이다지 찰고… (1940년) 소식 오늘도 끝없이 울부짖는 소리 들었나니 언제나 가시덤불속에서 아득한 지평선너머의  아름다운 신화를 찾는 순례자의 발끝에 피방울이 맺힌 서글픈 소식 (1942년) 채정린 (작자신원미상) 蔡貞麟 (作者身元未詳) 북으로 간다 내 눈알에 이야기 돋아 탐나게 기리하고 허연 나비 머리 풀고 내려앉은 등불밑길로 북으로 간다 버들꽃이 바람을 부는 두메날에서 모든것이 내 움직이는 모든것이 비로 눈으로 한갖 돌아가던 여러것이 머리칼우에 펴진 하늘만을 믿어 따라간다 고개마루너머로는 강 두만강이 오래다 붉은산에 얕은 한나절 피마른 열매를 물고 북으로 간다 뒤에는 다시 펴볼 꿈 한포기 없이 차다 물러간 구름속 오직 물러간 구름속은 문이 없고 북으로 가슴앞에 불꽃이 핀다 (1942년 『만주시인집』) 벌 까마귀는 매양 뒤골을 쫓는다는 가시꽃밭은 괴괴하여 전설은 내 가슴의 엷은 문을 두드리고 가쁜 호흡이다 벌은 아무도 없는 꿍이기에 나는 목화를 꺾는 허연 그림을 푼다 (1942년 『만주시인집』)  밤 나도 그림자도 말없는 돌인양 앉아 긴긴 밤 붉은 입술을 벌려 서로 꽃술을 따르는 밤 멀리 때아닌 꿈문이 열려 인제 괴이한 전설이 튀여날따름 호개는 넓은 벌에 오-랜 밤을 울고 나도 내가 끝없이 낯선 곳에 어디서 흉한 웃음이 히히 웃음인가 자꾸만 마음은 푸른 불을 물고 흐르는 손바닥우에 허연 이마는 별처럼 춥다 (1942년 『만주시인집』) 신활(申活) 혁명가의 안해 고량밭 지나 역까지 20리길 떠나는 남편을 보낸지도 그 몇해 눈보라치는 세린하골에 겨울을  보낼 때마다 어린아이를 안고 눈물지우는 밤이면 소식이 그리워 잠을 못이루었소 옥수죽 한그릇도 더웁게 앞에 놓으면 생각은 어느덧 먼곳으로 지금은 어는 산협에서 굶지나 않는지 목메인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소 그러나 그는 혁명가의 안해 늙은 부모를 도와 일하기에  게으르지 않고 봄에 씨뿌리기와 여름에 김매기와 가을이면 걷어들일줄을  싫어한적 없소 혁명의 정열을 안고 발벗은 남편을 사시밭으로 내여쫓던 로씨야의 그들만 못지 않게 굳세게 튼튼한 안해였소 앞산고개넘은 옆으로 가로놓인 오솔길에 사람의 그림자만 얼른거려도 울타리나 마당앞 백양나무가지에  까치만 울어도 그리 쉽게 안돌아옴을 번연히 알면서도 마음은 남모르게 기다려졌소 깊은 밤 회오리바람이 왕왕 우는 밤 건너마을 호개짖는 바람에  잠을 깨면 또 다시 놈들의 경찰이 오는가 하여 고스란히 한밤을 그냥 새웠소 얘야 어서 자라, 그 놈의 성질을  너는 모르느냐 이 놈의 세상이 뒤집혀져야 그래야 내 자식은 돌아오리라 시아버지 역시 담배대 두드리며 잠못이루고 계시나니 우는 아이를 안고 돌아누우며 쉬는 긴 한숨 언제나 그 언제나 돌아오리라 새 세상이 오는 그날 아침이면 내 남편은 기어코 돌아오리라 아! 그러면 돌아오는 남편의 얼굴이 그 얼굴이… 이처럼 믿고 믿고서 그렇기에 튼튼한 마음 굳세게 믿어서 치마폭으로 코를 씽- 풀고 눈물 대신에 슬그머니 웃는 그는 혁명가의 안해 남모르게 래일을 기다리는 그는 혁명가의 안해였소 (1947년 시집 『태풍』)        
3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꿈은 깨여지고 댓글:  조회:2739  추천:0  2018-12-17
꿈은 깨여지고                     /윤동주   꿈은 눈을 떴다. 그윽한 유무(幽雾)에서. 노래하던 종다리 도망쳐 날아나고 지난날 봄타령하던 금잔디 밭은 아니다. 탑은 무너졌다. 붉은 마음의  탑이─ 손톱으로 새긴 대리석탑이─ 하루 저녁 폭풍에 여지없이도 오─ 황페의 쑥밭, 눈물과 목메임이여! 꿈은 깨어졌다. 탑은 무너졌다.                            1935.10.27.
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불쌍한 코끼리,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588  추천:0  2018-12-17
캄보디아서 '밀수' 코끼리 상아 1026개 적발 김서연 기자 2018.12.17.  자동요약   음성 기사 듣기   번역 설정   공유   글씨크기 조절하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모잠비크서 선적.. 총 3.2톤 규모 캄보디아 세관 당국이 압수한 아프리카코끼리 상아 © AFP=뉴스1 (서울=뉴스1) 김서연 기자 = 캄보디아에서 컨테이너에 숨겨져 있던 아프리카 코끼리 상아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16일(현지시간) BBC방송에 따르면 캄보디아 세관 당국은 미국 대사관의 제보를 받고 수도 프놈펜 항구 컨테이너 야적장을 단속한 결과, 상아 1026개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전체 무게만 3.2톤을 넘는다고 한다. 상아가 발견된 컨테이너는 작년에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선적된 것으로서 단속이 이뤄질 때까지 수취인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세관 당국 관계자는 "상아는 버려진 컨테이너의 대리석 사이에 숨겨져 있었다"면서 "캄보디아로 들여오려던 것이었는지, 다른 나라로 보내려 했던 건지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에선 최근 5년 새 다수의 상아 밀수·밀거래 사건이 적발됐다. 2014년엔 남서부 시아누크빌 항구에서 콩과 함께 컨테이너에 숨겨져 있던 상아 3톤이 당국에 압수됐고, 올 4월에도 모잠비크 마푸토항에서 선적돼 캄보디아로 보내진 상아 3.5톤이 압류됐다. 이와 관련 BBC는 "중국과 베트남의 상아 수요에 따라 캄보디아가 불법 야생동물 거래의 핵심 전달 지점이 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상아의 국제거래는 지난 1990년부터 금지됐다. 그러나 야생동물 보호 운동가들은 매년 3만마리 이상의 아프리카 코끼리들이 밀렵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쓰레기처리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872  추천:0  2018-12-17
[바로간다] '한국산' 쓰레기로 산 하나 새로 생겨.. "주민 고통" 박진준 2018.12.17.  음성 기사 듣기   번역 설정   공유   글씨크기 조절하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뉴스데스크] ◀ 앵커 ▶ 바로 간다, 미래산업팀 박진준 기자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된 쓰레기가 몇 달째 현지에 방치돼 논란이 일고 있는데요. 국제협약으로 다른 나라로 수출이 금지된 그런 쓰레기가 어떻게 필리핀 현지로 수출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버린 그런 쓰레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요? 쓰레기를 둘러싸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필리핀 현지로 바로 가 보겠습니다. ◀ 리포트 ▶ 취재팀은 한국에서 온 쓰레기가 방치돼 썩어간다는 필리핀 민다나오섬으로 직접 날아갔습니다. 수도 마닐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반, 거기서 다시 차로 2시간을 달려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작은 시골마을 한편에서 쓰레기야적장을 발견했습니다. 야적장 주변에는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펜스가 쳐져 있습니다. 하늘에서 바라본 쓰레기 야적장은 축구장 6개 넓이. 5천 톤이 넘는 거대한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수많은 비닐봉지와 페트병 등 플라스틱, 나뭇조각과 옷가지 등 생활쓰레기가 뒤엉켜 있었습니다. 쓰레기 곳곳에는 한글로 적힌 상표가 선명합니다. 필리핀 현지의 최고기온은 35도가 넘었고 습기도 많아, 쓰레기 중 일부는 심하게 부패했습니다. 쓰레기 야적장 바로 인근에는 민가가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밤마다 악취 때문에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카렌/필리핀 주민] "낮에는 좀 나은데 밤마다 악취가 몰려와 힘듭니다."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이 쓰레기는 인근의 민다나오 국제화물터미널에서 지난 7월 실려왔습니다. 취재팀은 쓰레기를 실어왔다는 항구로 가 봤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한국에서 온 쓰레기가 가득했습니다. 모두 51개나 되는 커다란 컨테이너에 한국에서 온 쓰레기 1천여 톤이 실린 채 압류돼 있었습니다. [존 사이몬/필리핀 세관장] "올해 두 묶음의 쓰레기가 (한국에서) 필리핀으로 왔습니다. 하나는 지난 7월,다른 하나는 10월에 왔습니다." 컨테이너에는 한글이 선명한 과자 상자와 먹고 버린 한약 봉지, 아이스크림 비닐도 있었습니다. 쓰레기가 왜 압류됐는지 필리핀 당국에 물어봤습니다. [존 사이몬/필리핀 세관장] "(신고된 것과 달리) 이건 100% 플라스틱이 아닙니다. 이 안에는 잡다한 쓰레기가 들어 있어요.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국제협약은 재활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이 아닌 생활 쓰레기나 폐기물은 수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취재팀은 쓰레기를 분석한 필리핀 정부의 '컨피덴셜' 즉 대외비 문건을 입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문건은, "한국이 신고한 것과 달리 플라스틱 조각이 아니다", "유해한 쓰레기가 다량으로 포함돼 있어, 한국으로 즉각 되돌려 보내도록 조치해야 한다" 고 적시했습니다. 쓰레기 수출업자가 한국과 필리핀 당국을 속였다는 겁니다. 두 나라의 세관 당국을 속이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쓰레기 반출을 허가한 평택 세관을 찾아갔습니다. 세관측은, 환경부가 보내 준 서류만 보고 서류상으로 문제가 없어 수출을 허가했다고 말했습니다. [세관 직원] "모든 화물을 다 검사할 수는 없고, 이게 수출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환경부에서 이상이 없었다면 이상이 없는 거죠." 국제협약에 따라 수출이 허용된 쓰레기인지를 1차적으로 판단하는 기관은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입니다. 환경부는 왜 쓰레기 반출을 허가했는지 물어봤습니다. 환경부는 수출업체로부터 쓰레기 '시험성적서'를 제출하게 하는데 여기도 큰 허점이 있었습니다. 쓰레기 샘플을 분석해 문제가 없다는 시험성적서, 즉 확인서를 받고 수출을 허가하는 건데 검사할 때 쓴 샘플과 실제로 수출할 쓰레기 내용물을 얼마든지 바꿔치기할 수 있었습니다.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 직원] "선적할 때 가서 보는 것은 극히 일부고요.인력이 부족하니까 문제죠." 필리핀 당국은 한국 정부에 이달 안에 쓰레기를 한국으로 모두 되가져가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환경부는 수출업체에 회수 명령을 내렸다고 말합니다. 쓰레기 수출업체 관계자를 어렵게 찾아 연락해 봤습니다. 그러나 수출업체 측은 "적법한 절차대로 수출했다”며 “이의 신청하겠다" 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행정명령에 대한 이의 신청은 최장 90일이 걸리고, 만약 법적 다툼으로까지 이어진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에일린/필리핀 환경단체 직원] "우리는 크리스마스 전에 한국 쓰레기가 돌아갈 것을 희망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 정부가 필리핀 사람들에게 주는 가장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겁니다." 필리핀 현지의 바람과는 달리, 이 쓰레기는 해가 바뀌어도 계속해서 필리핀 당국과 주민들을 괴롭히는 골칫거리로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취재팀은, 후속 보도를 통해 이 쓰레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을 짚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MBC뉴스 박진준입니다. 박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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