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탱이의 歸處
http://www.zoglo.net/blog/jinchsh77 블로그홈 | 로그인
<< 8월 2022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31   

방문자

홈 > 자작글

전체 [ 41 ]

41    감사했던 한해 그리고 힘들었던 2015 댓글:  조회:2805  추천:0  2015-12-06
감사했던 한해  그리고 힘들었던 2015
40    [이사재 15] 빤스라고 번듯하게 썼던 이유는 댓글:  조회:1763  추천:0  2015-11-22
호텔을 하는 가족때문에 꿈에도 생각못했던 호텔에서 일을 하게되였다. 직원 모두가 한국분이였고 나랑 내친구만 조선족이였다. 그때 나이가 33살... 서비스업쪽 일은 말그대로 개뿔도 모르는 상황인지라 저기 가라면 저기 가고 여기 오라면 여기 오고 발에 아무렇게 채이는 공처럼 이부서 저부서 굴러다녔다. 대표이사, 상무, 이사 등등 분들만 나랑 친구가 가족이였다는것을 알고 나머지 직원들은 아무도 몰랐었다. 그냥 얍볼수 있고 우습게 볼수 있는 조선족이고 힘든 일은 당연히 조선족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황이였다. 친구랑 나랑 호텔사우나 카운터 담당을 하게 되였다. 오시는 여자손님들은 건식사우나를 즐겨 이용하는데 어떤 분들은 팬티를 씻어말리곤 하였다. 팬티를 가져오지 않은 상황에서 지저분한것을 그냥 입고 갈수도 없을테고 모르는척 눈감고 넘어갔다. 하루 이틀 지나고 열흘정도 지나니 건식사우나 안은 말이 아니였다. 참숯이고 머고 한방이고 머고 보이는건 팬티뿐이였다. 사태심각성을 그때 느꼈다. 초반에 강하게 나가서 제지하야 했었는데 아차... 급기야 허둥지둥 건식사우나입구에 "속옷을 널지 마세요!'하고 문구를 걸었다. 그러면 머하랴? 고삐 풀린 팬티고객들은 나몰라라하면서 변함없이 팬티를 말리우군 하였다. 그래서 고안해났다는것이 고작 강도 더 높게 "속옷 발견시 몰수입니다!"라고 바꿨다.   초반에는 팬티가 좀 주는것 같았지만 그건 그냥 느낌상이였다. 의연히 팬티는 난무했고 급기야  일회용비닐에 팬티를 한장한장 모셔서 카운터에 보관하였다. 그것도 젖은 팬티는 옷걸이에 널어 말려주면서 말이다. 사실 팬티몰수가 목적이 아니였다. 오래동안 팬티를 씻어 말리워입고 가는데 버릇된 사람들의 습관을 바꾸는건 쉬운일이 아니였다. 팬티를 찾으러오는 손님들은 거개가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찾아갔었다. 그런데 유독 20대 한친구만은 남달랐었다. 문신에 담배에 그친구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참으로 "용감무쌍" 했던 천하무적이였다. 터질것이 터졌는데 손님들로  시글법적하고 또 다른 한국직원들도 많이 있는 저녁시간대...느닷없이 어딘가에서 C8쪼팔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왔다. 난동이 벌어진것. "아 C8 어느 미치년이 내 &^%$를 지켜주는 소중한 팬티를 가져갔나? 재수없는 C8년들아 당장 내놔!!!" 소리를 지르는것도 모자라 의자를 발로 걷어차면서 한마디로 난동을 부렸다. 나는 듣고도 못들은척 못본척하였다. 사실 속으로 겁이 났었고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하고 고민중이였다. 고객들은 그런대 넘어갈수 있었지만 다른 여직원들이 지금 이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지라 수수방관하거나 지면 안되는 상황이였다. 그런데 친구 목소리가 워낙 높아서 내가 말한다해도 내 목소리는 아예 들리지 않을판...대학시절 웅변시합에 참가할때 무대아래가 시끄럽고 관중들이 집중하지 않을때는 침묵으로 일관하면 다 조용해지는법을 알고 있다. 나는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내 반응이 없으니 소리를 지르던 팬티난동녀도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직원에 손님에 모두가 나를 빤히 보고있었다. "이건 머니?"하는 식으로 나도 준비는 되였다. "손님! 20 처녀가 C8이 멉니까? 그런 말은 욕쟁이 할머니들이 하는 삶의 애드리브같은것을 인물고운 처녀가 어떻게 함부로 그런말을 합니까? C8? A8, B8, C8, 1,2,3,4,5,6,7,8 18 누구는 그런말 몰라서 안하는줄 압니까? 하는 사람의 입이 더러워지니깐..안하는겁니다. 그리고 팬티를 널리말라고 여러번 말씀드렸고...문구도 보셨을텐데 왜 자꾸 팬티를 건식사우나에 넙니까? 손님한테는 그 팬티가 여성의 신성한 고지를 지켜주는 보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그냥 꽃팬티입니다. 머 장미향 냄새가 나느것도 아니고..다른 사람 배려해야죠!"  나는 내가 한방에 그 친구를 날려버렸다. 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리도 난동 부렸으니 체면을 살려줘야 할것 같아서 소리찔러 목도 아플텐데 녹차한잔 드릴까요? 하고 넘어갔다. 고객과 직원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혈기 왕성한 그 20대 친구는 나갈때까지 탕탕탕 성질을 부렸지만 속으로는 백기를 들었던것.  저녁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팬티를 너는 문제에서 호텔에도 문제는 있었던것 같았다.팬티 한장을 입장료 반값에 팔고 있었으니..한장에 천원이면 족할 면팬티를 ...위의 분(여자대표 그날 상황을 알고 있었다)한테 이 정황을 말씀드리고 착한 가격으로 음료수 한병값에 팬티를 팔면 부담되지 않을것 같다고 말씀 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천방지축) 즉각 실행에 들어갔고 팬티는 단돈 천원에 팔기로 하였다. 팬티 한장 천원....그런데 이걸 어떻게 홍보를 해야 하는가? 생각같아서 그냥 써서 붙여놓으면 될거 같지만 사실 아니라는 점. 그래서 고안해낸 방법이 그거였다. "빤스 한장 천냥"... 난리가 났다. 호텔에서 빤스란 왠말이냐? 촌스러워도 넘 촌스럽다고...지어 어떤 분들은 호텔 프런트에 항의전화까지 하였다. "거좀 촌스러운 빤스라는 글짜 빼라고..팬티하라고..." 손님들은 우리가 조선족이여서 빤스라는 단어를 쓰는줄 알고 있다. 하지만 난 그게 아니였다. 많은 분들이 입방아를 찌고 말밥에 올라서 많은 분들이 알라고 "천원한장으로도 팬티를 살수 있다는걸" 빤스, 팬티, 고쟁이, 속옷...등등등 알아볼거 다 알아보아도 빤스만큼 강렬한 단어는 없었다. 직원과 사람들이 단정지은 촌스러운 조선족의 이미지에 딱맞아떨어지는...하지만 왜 빤스라고 했는지는 대표이사(여자)님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 하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으니깐.. 실제로 건식사우나에는 여성의 신성한 보루를 지키는 빤스님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사람들은 왜 빤스라고 했는지도 모른채...마냥 조선족이여서 한글을 잘 몰라 빤스라고 썼을거라고 ...
39    [이사재 14] 어제밤의 그 냄새가...무엇을 말하는지 댓글:  조회:2541  추천:1  2015-11-20
어릴때는 막내삼촌 따라 몰래 남조선 노래를 들었었다. "아름답다 서울은 태양의 거리 집집마다 오손도손...'이 노래를 지금도 잊지 않을 정도로 라디오로 가망가망 들었었던것 같다. 그러다 어느날인가부터 연변에도 본격적으로 남조선노래 바람이 불었는데 제목들을 대략 생각하면 "마음 약해서",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돌아와요 부산항에" 줄줄줄 시작하더니 주현미, 조용필  지어 변진섭의 "희망사항"에 , 구창모의 "희나리" 등도 엄청 즐겨 배우고 불렀었던것 같다. 그렇게 고중가서는 적어서 학생들속에서는 대중화가 될 정도로 남조선 노래를 즐겨듣고 애창하였으니 밤시장에 가면 2원내고 노래 한곡 부르는데 얼마나 많은 "재산"을 날려버렸는지 모른다. 학생인데 거금을 쓰면서 남조선부르는데 투자했으니 남조선노래사랑이 남다르다고 봐야 하겠지. 그때 대학생활 한달 소비 250원이였으니 노래 한곡 부르는 값 치고는 고가였다. 90년초 대학시절때 일이다.  학생회 선배랑 한침실에서 살았었는데 그 언니는 남조선 노래를 무척이나 잘 불렀었다.  노래방에 가끔 가긴 갔었지만 학생인 우리가 주체가 되여 신나게 노는 수준은 못되였다. 처음 가보는 노래방에 시설에도 잘 모르고 얌전하게 있다가 그나마 아주 자신있다하는곡을 한두곡 부르는 정도였으니... 그 학생회선배언니는 어부의 노래 라구요 등등 노래를 엄청 잘 불러서 지금도 그 선배언니의 18번으로 생각하군 한다. 언니의 생일날 침실에서 즐겁게 파티(지금 생각하면 소박하지만 그때로 말하면 나름 고풍격)를 열었다. 주인공인 언니의 노래도 잇다랐고 그런데 그 언니가 그날 부른 노래는 '그래요 말을 해봐요. 나는 알고 있어요. 어제밤의 그 맹세가 무엇을 말하는지..."이노래였었다. 나도 나름 남조선노래에 대하여는 일가견(노래를 많이 안다고 혼자서 자부했을뿐)이 있다고 자칭하던 날들에 어쩐지 가사부분에 이상하게 들렸다. 어제밤의 그 맹세가 ...이 맹세부분에서... 다음날 선배언니랑 대학가를 산책하면서 "언니 그 노래 다시 불러봐" 언니는 또 흥겹게 남조선노래를 "답쌔기는데"... 어머? 어제밤의 그 맹세를 언니는 어제밤의 그 냄새가로 부르는게 아닌가? 언니 어제밤의 그 머더라? 어제밤의 그 냄새가.... 깔깔깔...호호호...대학가가 다 떠나갈듯이 우린 포복절도하였다. 안웃을수 없었다. 맹세가 어떻게 냄새가 되는거지?하겠지만 그때는 복제한 테이프를 들으면서 가사를 적어가면서 배웠었던 시절이였으니 지금은 검색하면 탁탁 다 나오지만 그때는 정말 한구절구절 받아쓰면서 가사를 완성하면서 남조선노래를 배워었다. 러시아노래도 아니고 일본노래도 아니고 팝숑도 아니고 썅숑도 아니고 그냥 남조선노래를 즐겨배우고 불렀었던것은 그래도 우리마음에 와닿는게 있었던것이였다. 그때는 그렇게 남조선노래를 좋아했었다. 어제밤의 그 냄새가 무엇을 말하는지 그래요 우리는 알아요 그것 또한 정이라는것을...
38    [이사재13] 비오는 날의 오지랖 댓글:  조회:1289  추천:0  2015-08-11
[이사재13] 비오는 날의 오지랖 아침부터는 장대비가 쏟아진다. 아들은 눈뜨자마자 유치원으로 가겠다고 쫑알거린다. 칠색무지개 비옷을 입은 아들은 내가 알아들을수 없는 노래를 흥얼흥얼 신이나서 부른다. 그리고는 신대륙을 발견하듯 이렇게 "엄마! 비는 엄마랑 나랑 좋아해서 같이 놀자로  응.. 친구하려고 놀러온거지!" 이렇게 웨치면서 나의 긍정을 들으려는듯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럴수도 있겠다싶어서 "맞어! 엄마랑 하고 배기랑하고 친구하러고 놀러온거야. 배기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잘 노는거 아니깐 비도 친구하고펐던가보다. 오늘 비랑 잘 놀아.." 나는 아들하고 이렇게 인사를 나누고 출근길을 다그쳤다. 요즘 사람들이 다 있는 승용차가 없다. 운전면허도 없고 아직은 불편함을 크게 못느끼는 상황에서 차 한대 있다는건 월세집에 사는거랑 똑같은 소비같아서 무척이나 망설이고 있다. 한마디로 돈이 아까워서 사지 못하고 있다. 이런 비가 오는 날에는 택시잡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우산을 들고 서성서성 목을 길게 빼들고 양쪽을 다보고 짧은 팔마저 길게 뻗어가며 손을 흔들어도 택시는 잡히지 않는다. 사거리까지 나가서 택시잡기에 나섰는데 길 건너편에 긴머리여자도 나처럼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랑 다른 점이라면 우산을 들지 않았다는것. 솔찬히 내리고 있는 비에 나는 은근히 그녀 걱정을 하고 있었다. (비가 점점 더 크게 오는데 택시를 빨리 잡지)하고 말이면서...나도 택시를 못잡은 신세에 남의코 걱정을 하니...문득 빈택시가 지나간다. 나는 손을 흔들어서 택시잡을념은 안하고 그 택시를 그녀가 보았을까 손을 흔들었는가하고 그녀만 지켜보았다. 다행히 택시는 그녀앞에 가서 멈춰섰다. 나는 먼 큰일이라도 한것처럼 한참이나 기다려서 택시를 타고 아들처럼은 아니여도 룰루랄라 코노래 부르면서 가고 있다. 단위 근처(도보 5분거리)에 왔는데 한 지인이 비를 맞으면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급기야 택시기사보고 지인의 앞에 차를 세우고 아무생각없이 차에서 내렸다. "저는 다 왔어요. 좀만 걸어가면 되여요. 이 택시 타세요" 별 생각없이 말하고 택시에서 내린뒤 걸어가다 문득 (내가 계속 타면서 그 친구 앉아라고 해도 되는걸...아 혹 다른 길일수도 있겠구나. 아 내리길 잘했네) 머 대략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걸어가는데...걸어가는데... 승용차가 지나가더니 흙탕물이 쫘우악~~~ 신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내 바지가랑이쪽을 향한다. 나름 빠른 반응을 보이면서 우산으로 흙탕물을 가렸다. "흠...다행히 행동이 빨라서 잘 피했구나!." 이쯤이면 운전수를 욕할법도 하는데 왠지 아들이 말한 말이 떠오르면서 비는 엄마랑 친구하러 온것이니 이 역시  나랑 친구하러 온거니깐 하는 생각들기도 하면서 "운전수가 초보인가보네. 속도를 부드럽게 죽일줄 모르는거봐서..."하면서 변함없이 기분이 업되여  출근을 재촉한다. 아침 집문밖을 나설때 즐거운 아들과의 대화가 있었기에 비오는날의 촉촉하면서 훈훈한 오지랖일수 있었던것같다. 이렇게 쭉 흥겹게 사는거다.
37    [舌의 파워] 세배돈 얼마를 준비하셨습니까? 댓글:  조회:2265  추천:8  2015-01-26
  [舌의 파워] 세배돈 얼마를 준비하셨습니까?     구정이 다가오는 이맘때면 누구나 한번쯤 계획을 세우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주변 아이들에게 세배돈, 설소비돈을 얼마를 줄것인가입니다. 남성분들까지는 모르겠지만 녀성분들은 집안살림을 하는 립장과 가계부립장에서 설소비돈 액수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세배를 드리고 소정의 세배돈을 받던 이야기는 지난 일이 되였습니다. 작년에도 진행되였었던 세배돈, 설소비돈 순위부터 볼까요? 1 ...순위 친정조카, 시댁조카 2...순위 절친의 아들딸... 3...순위(0 순위로 급상승할수도 있음) 단위 든든한 힘이 되는 상사나 동료, 머 밝은 미래를 보장할수 있는 능력자분들의 자녀 4...순위 음력설기간 이래저래 만나뵙게되는 아이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똑같게 이쁘고 귀엽습니다. 순위 선정! 사실 굉장히 불쾌한 일이지만 어른들의 마음속에서는 순위 정해집니다. 그럼 액수는 어떻게 정할까요? 100원? 째째부리...시시부리 해바라기보다 더 시시하고 째째부리한 100원? 노노노노~~~~ 그렇게 줄거면 삼가하시라구요? 주고도 욕 먹는다구요? 200원? 무난합니다. 이래저래 무난합니다. 하지만 머 마지못해 주는 세배돈인거 액수를 보면 확 느낌이 옵니다. 200원? 형식적으로 줄거면 줘서 멀하지? 300원~500원? 300원보다는 500원이 힘이 있겠지요. 하지만 500원 부담되지 않을까요? 부담되지 않는다구요?...참...뻥치지 마세요. 500원이 한집으로 끝나면 몰라도 친정, 시댁 이래저래 10명에 가까운 애들에게 500원씩 준다면? 그 액수는 무리가 아닐까요? 이래서 말입니다. 세배돈, 설소비돈 굳이 줘야 합니까? 제가 이런 말씀을 올릴수 있는것은 바로 제게도 아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싱글일때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습니다. 주는 사람이 말하면 주는게 싫어서 말하는격이 되니깐요. 하지만 지금은 저도 애가 있습니다. 줬다가 받았다가 얼마나 번거롭습니까? 백원짜리 돈을 받고도 10원짜리 받은거마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우리의 아이들을 보면 우리들은 각성해야 합니다. 이제는 정말 어른인 우리들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에게 돈이라는것은 힘들게 벌어오는 피땀이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물쓰듯이 쓰고 허무맹랑하게 돈을 쓰는 법에 우리 조선족아이들이 너무 능수능란 합니다. 아이들의 잘못이 절대 아닙니다. 습관을 키워준 우리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바로 이런 거액의 세배돈, 설소비돈이 문제의 화근입니다.   돈 액수를 모르는 5살난 조카에게 제가 십원짜리 한장을 주었습니다. 간단하게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돌아지더군요. 장난끼가 발동한 저는 조카를 불러서 십원짜리 한장을 1원짜리 새돈 10장으로 바꿔주었습니다. 어마나~ 우리 조카는 10장이나 되는 돈을 보고 또 보고 세고 또 세고..하더니 "고맙습니다"를 3번 말하더군요. 그것도 경례를 하면서... 똑같은 십원이였지만 장수가 다른 십원의 힘은 엄청났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것은 돈에 대하여 아무것도 몰랐던 아이들은 어른들의 잘못된 인도로 돈을 접하게 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돈을 유용하게 쓰라는 차원과 아이들에게 추억을 심어주면서 더 잘하라는 격려차원에서 "새로운 한해에도 건강하게 자라줘"하는 고운 마음 담아서 10원정도로 주는것이 훈훈한 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글을 올린 저 역시 이번 설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제 조카들에게는 똑같게 1순위 선정으로 넉넉한 액수의 설소비를 줄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친구나 주변사람들에게는 제 의사를 분명히 말씀 드릴겁니다. 작년에도 그랬었지만 올해도 변함이 없을겁니다. "10원 단위로 하면 좋지 않을까요?"라고 말입니다. 소학교 10원. 초고중 20원. 대학 50원! 이렇게 말입니다. 인사를 하여도 부모한테 전하면서 아이들의 새학기 준비에 보탬이 되라는 차원은 좋겠지만 아이들에게 그 돈이 전달되게 하고 아이들이 돈액수체크를 서슴없이 하는 현상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야박한 글인것 같습니다. 집집마다 자녀교육법이 다르기때문에 제 글에 심한 반대를 하셔도 좋습니다. ---------------------------------------------------- 조글로 微信전화번호 13180738433을 귀하의 핸드폰에 추가하시면 실시간 뉴스와 알찬 정보를 선정하여 무료로 보내드립니다~(지금 이 화면번호를 누르면 복사됩니다) 阅读
36    지금은 행복한 시간(이사재12) 댓글:  조회:2179  추천:3  2015-01-14
지금은 행복한 시간(이사재12) 네살난 아들하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면서 집으로 가고 있다. 아들은 유치원의 지영이는 어땠소. 홍빈이는 머 이랬소하면서 쉴새없이 재잘거린다. 엄마인 나는 아들 이야기에 귀를 귀울여야 할뿐만아니라 리액션을 해줘야만 아들한테 지적을 받지 않는다. 아들이 이말저말 하는데 잠자코 있으면 영낙없이 이런 말이 날아온다. "엄마! 똥돌의 말 잘 안들을거야? 장난하지 말고 잘 들어..." 잘 안들었던게 아니라 아예 듣지도 않고 내 좋은 생각에 빠졌다가 아들 호통에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는 아들의 두서는 없지만 열정이 차넘치는 일과회보에 시선과 집중을 보낸다. 늘 정해졌던것처럼 바로 "와~ 우리 똥돌이 오늘 용감했구나! 와~ 우리 똥돌이 오늘 정말 열심히 했나보구나! 엄마 아들 짱 최고!!" 아들을 향해서 엄지를 내민다. 아들은 너무 좋아서 엉덩이를 흔들흔들하면서 웃음을 던진다. 푸른 하늘이 아닐지라도 추운 날씨지라도 아들이 "엄마! 엄마!" 하는 소리를 들을때면 가슴이 녹아난다.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면 "행복감"이 내 몸을 감싸주면서 감동이 밀려온다. 거창한 그 어떤 선물도, 화려한 이벤트도, 엄청난 기쁜 소식보다 나는 이렇게 아들하고 웃고떠들면서 함께 하는 날들이 더 행복하다. "아들 저녁에는 엄마가 칼국수  맛있게 끓여줄게~ " 신이 난 아들은 층계를 엉차엉차 잘 올라가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 똥돌이 칼국수 혼자 먹을거야!" 몸은 넉넉해도 속 좁은 이 엄마는 아들이 칼국수를 돼지처럼 혼자 먹겠다고 말한줄 알고 "어~ 그래! 똥똘이 혼자 먹고 돼지되여서 돼지굴에서 살아~~" 계단을 씩씩하게 걸어가던 아들은 "엄~~마!" 한다. 그리고는 바로 "엄마! 엄마가 칼국수 먹여줘..혼자 먹으면 돼지되니깐.." 흐흐흐..이보다 더  창피할수는 없었다. 엄마라는 사람이 아들의 스스로 자기절로 먹겠다는 장엄한 결심에 초를 쳤으니... 행복이 이렇게 달콤하고 고소하고 향기로울줄 생각못했다. 종알종알 대는 아들이 맛있게 칼국수 먹는 모습을 바라보면 저도 모르게 "세상이 내것이 아닐지라도 아들하고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행복하다"는것을 새삼 느낀다. 한국에 머물러있는 10년동안 중국에 두고온 자식들이 그리워 눈물 흘리는 엄마들을 수없이 많이 보아왔기에 지금의 함께함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우리집 똥돌...쫑알이...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 아들하고 엄마사이의 나눈 대화를 보니 종결토가 없네요. "그랬어요. 이랬어요"가 아니라 "그랬어. 이랬어"이네요... 잘못된 부분은 얼른 고쳐야겠지요?
35    [님의 소망] 먼 훗날 댓글:  조회:1737  추천:0  2014-12-05
먼 훗날 파릇파릇함이 이제는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억지다짐으로 파릇함을 살리기도 합니다. 핑크색 볼터치에 소녀로 되기도 합니다. 눈가의 주름살도 익숙해지고 외면받는데 서러움도 사라진 지금 많은 남자들의 대시에 한때는 눈을 하늘에 두고 다기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새 별로 원하지도 않는 일편단심 민들레 되여서 내 사랑 내 새끼만 바라보면서 흐뭇해합니다. 입가의 미소는 어디서 왔나 조심스럽게 추적해보면 어김없이 내 껍질에서 얻어온 행복이였습니다. 바램이 왜 없겠습니까? 늙어가는건 어쩔수 없다하지만 억울하고 서러운것 또한 사실인데 바램마저 없겠습니까? 십사년도 십오년도 모든 년들이 무탈한 년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세월에 간절한 부탁을 한다면 아들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자라게 힘을 주세요. 그리고 그 아들을 지켜줄 늙어가는 그저 그렇고 그런 이 여자랑, 이 여자의 하나밖에 없는 남의 편님을 함께 응원해주세요. 먼 훗날 세월 당신을 만나게 되면 그때 한턱 거하게 쏘겠습니다.    
34    꿈을 이룬 여자(이사재11) 댓글:  조회:1762  추천:0  2014-11-06
이런게 사는 재미 (이사재) 꿈을 이룬 여자 나이 마흔이 다된 아줌마들이 모여서 낄낄깔깔 자식자랑이나 시시콜콜 시댁흉이나 보는 그런 해바라기까먹는것보다 더 시시부리한 이야기들만 나누는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도 나름 지적인 부분이 있어서 대화에  영양가가 꽤는 많이 들어있다. 어제는 오래된 주제이지만 새롭게 다시 되새겨보는 립장에서 "나의 꿈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은 모두가 폭삭한 아줌마라하지만 한때는 거창한 꿈을 가진 대단한 희망의 새싹들이였다. 심천 강은 과학자이고 하마탕 하마는 초중교원이고 어처구니 없는 저 잘난 그 선녀는 킥킥킥 한번 웃고 말하자.. 본인 꿈이 "국가주석이 되는거래"  자신의 꿈을 말하더니 "국가주석은커녕 우리 집 주석도 안된다. 나그네 일등 큰소리 빵치면 꼼짝 못하는 안까이...아들이 신경질 부리면서 해달라고 하면 영낙없이 쫑드르르 달려가 마시는 물까지 떠주는 바보엄마...단위에서도 젊은 20, 30대에 밀리고 권력이 확실한 동년배한테 따돌리고 그저 형식적으로 사이좋게 보내는 들가의 작은풀보다 아니 그냥 작은풀정도 보잘것 없는 여자로 되였지 머니? 국가주석이 머니? 꿈이 거창해도 넘 거창했어. 미치지 그 꿈의 10분의 1도 도달하지 못했어." 사는게 거기서 거기여서 상대방의 김빠진 소리를 해도 우리는 별로 동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걸 가지고 장난을 치기도 한다. "머 이제라도 가정에서 권위를 찾아서 적어서 너네 집에서는 주석노롯 좀 해봐! " 다들 꿈에 대하여 열띤 토론을 하는데 내 옆의 수니는 그냥 웃기만 한다. 소학교때 학습위원 고중졸업때에도 학급 탄지부서기 대학서도 학생회 나름 꿈이 있을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그쳐물었다.  "수니 넌 꿈이 뭐였나?" 수니는 또 생글생글 웃기만 한다. "빨리 말해!" "내꿈? 헤헤헤...내 꿈은 사회주의 유용한 인재로 자라는것이였다!" ... .... 잠깐 침묵이 흐르고 지난 시절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 그때는 그랬었다. 소학교때부터  "사회주의 유용한 인재로 자라나는건 선생님의 칭찬을 들을만한 아주 좋은 리상이였다." 지나간 시절이 떠오르면서 깔깔깔 아줌마 아낙네 아니 여자들은 웃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얘! 너만 꿈을 이루었잖니? 자본주의국가인 일본가서 좋은 경험쌓고 돈 모아서 사회주의국가의 일원인 너의 남편의 아내로 되여 국가를 위하여 아들까지 출산하고 .진정 사회주의 유용한 인재가 아니니? .이래저래 너만 꿈을 이루었구나! 꿈을 이루어서 축하한다. 그리고 참 멋지다!" 호호호호호호 명랑하고 즐거운 웃음소리는 아줌마들의 웃음소리가 아니고 소학교 녀학생들이 흘리는 꿈에 대한 노래소리였다.
33    아이들과 아침을 먹는 일상으로 돌아오세요. 댓글:  조회:2386  추천:2  2014-10-09
아이들의 있는 곳으로 돌아오세요. 한국에서의  10년 생활을 접고 떠나 마흔이 다 되여서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온지 1년반이 되여갑니다. 아이때문에 고향에 돌아온 리유때문인지 알게 모르게 부모와 아이들에 대하여 눈길을 보내게 되였습니다. 물론 이 모든 일상이 사회속에서 이루어졌기에 사회인으로 느낀 점도 적지 않다고 보면 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을 두고 외국이나 타지에 계시는 분들 아이들의 곁으로 돌아오세요!" 제 자식도 아닌 남의 자식, 부모가 알아서 당연히 완벽하게 잘할거라 믿으면서도 이렇게 "싱거운" 소리를 하게 되는 리유는 바로 아이들때문입니다. 비록 제 자식은 아니지만 부모없이 외롭고 불안하게 자라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여서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였습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고모, 담임선생님 등등 천하에 좋은 분들이 많은것도 알지만은 아이들의 느낌에 있어서,  아이들의 바램에 있어서 부모 아닌 다른 사람들의 사랑은 하해와 같다 할지라도 "배고픔", "모자람"입니다. 실제로 제가 제 절친의 아들을 데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뼈속같은 친구였기에 내 아들처럼 공부부터 시작하여 먹는것까지 신경 썼지만 아이들의 외로움에는 제가 별다른 도움이 안되더군요. 학급행사가 있으면 제가 참가하면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외로워하고 고파하는 그런 모습은 보는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더군요. 그리고 우리 시댁에서는 외손녀를 10년동안 키워왔습니다. 시부모님 모두 교육사업에 종사하셨었던 분들이고 애기때부터 키운 외손녀 얼마나 이뻐했겠습니까? 생일되면 우리식구들도 다 불러서 한상 푸짐히 차례놓고 케익놓고 생일축하파티를 열었지요. 그런데 외손녀는 그 생일파티가 별로 즐겁고 행복하지 않았나봅니다. 제가 우리 아들 생일에 케익하고 빵을 사다가 유치원에 가져다드렸다고 친구하고 이야기 나누는것을 엿들은 우리 시댁조카는 "저는 한번도 즐겁게 생일을 쇠본적 없습니다." 하는 것이였습니다. 충격이였습니다. 분명히 며칠전에도 생일파티를 열었는데 말입니다.  우리 조카는 아이들과 어일리면서 생일을 쇠고싶었던것이였습니다. 교과서같은 삶을 사신 시부모들은 그렇게 생일을 쇠는것은 거의 취향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시부모님들은 나름대로 최고의 성의였지만 아이에게 있어서는 그건 별로 행복하지 않은 생일이였던것입니다. 생일이 별거 아닙니다. 다만 아이들의 느낌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저 작은 이야기를 한것뿐입니다. "고향에 돌아오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가 아마 가장 핵심적인 문제일것 같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일단 오셔서 부딛혀보면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한달에 2000원벌수 있는 일은 수두룩합니다. 하면 되지요." 그런 일에 나서서 하면 됩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이 돈을 버는 삶보다 더 알콩달콩하고 행복하고 맛깔스럽다는 것은 고향에 돌아온 제가 느끼고 있습니다. 저 역시 월급이 만 5천정도 받다가 지금 2000원 월급을 받습니다. 제 동창들은 거개가 출세하여 공무원직에서 멋스럽게 살아갑니다. 삶에 대한 자존심 초점을 어디에 두는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보다 가난하고 보다 허술한 직업이라 할지라도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무시를 받으면 받는대로,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문제에 봉착하면 해결방안을 찾고 이겨나가는 삶의 모습을 리얼하게 부모의 삶으로 가르쳐주는게 바람직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가난한 부모보다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부모가 더 못난 부모다"라는 생각을 요즘  강하게 느꼈습니다. 동생 아들이 입학식날 있었던 일입니다. 조카는 엄마, 아빠와 함께 소학교에 입학하면서 신난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면서 마냥 좋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아이들은 부모가 옆에 없이 입학식에 참석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없는 일상에 습관이 되여서 별로 슬퍼하지도 않고 담담합니다. 아주 조용하거나 혹 더 까부는 아이들 알고 보면 할머니나 남의 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 합니다. 부모가 함께 있으면서 모든것을 해주는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아이와 함께 함이 아이들에게 자신감과 당당함 그리고 용기를 부여하는데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아이들게 있어서 영원히 아이들의 든든한 응원자, 지지자가 아닐까요? 부모와 함께 있지 않는 아이들은 그런 "아이들의 편"이 없기에 은 어깨가 떨어지고 얼굴이 순간순간 어두워진다고 봅니다. 가난하면 무시 받습니다. 사회가 그런것도 사실입니다. 부모가 옆에 없으면 아이들은 마음의 병이 듭니다. 보이지 않는 병이 들고,  잘 치유되지 않는 병이 들기에 가난으로 무시받는것보다 더 무서운것입니다. 고향에서 열심히 살면 아주 잘산다고 장담할수는 없지만 적어서 못살지는 않습니다. 말 그대로 부지런히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다보면은 잘살길도 생기기 마련이지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 주변의 한족분들을 보면 알수 있는것이 아닙니까? 실속있게 내 자식 챙기면서 아이들을 지켜주면서 살아갑시다. 고향에 돌아오면 할일이 많습니다. 지금 당장 손에 쥔 돈이 없다해도 그냥 돌아오세요. 있는 동안 돈을 모으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이제 더 있는다해서 돈을 모으겠습니까? 그냥 돌아오셔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아보면 살길이 나집니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야만 아이의 심신이 건강한 행복한 가정을 이룰수 있습니다. 내 아이가 공부만 잘하고 신체적 질병이 없이 무탈하게 잘하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하지말고 심신이 건강한 아이로 키웁시다. 아이의 건강이 우리 삶의 행복해질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것 같습니다. 저역시 10년 생활 접고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되였지만 아이와 함께 하고, 만나고픈 부모님 때때로 만날수 있어서 참으로 즐겁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돈 없는 부모보다 아이들의 곁을 지켜주지 못하는 부모가 더 못나고 안쓰럽습니다. 별별볼일없는 일을 하면서 고향에서 살기 싫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한번 진심으로 아이와 자신의 앞날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돌아오시면 저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거라 믿습니다. 아이들 곁으로 돌아와서 사랑하는 자식과 아침밥을 먹는 일상을 즐기세요. 대단한 놀이공원도 다 필요없습니다. 우리 아들은 장난감삽에 모래더미에서 흙장난을 한시간 두시간 놀면 그날은 바로 "6.1"이요, 흙놀이터가 바로  "최고의 놀이터"입니다. 아이들과 아침을 먹는 일상으로 돌아오세요. 아이들이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말로는 "괜찮다고"하지만...
32    "덤"으로 생긴 친구...소중한 친구 (이사재10) 댓글:  조회:2412  추천:2  2014-07-25
"덤"으로 생긴 친구...소중한 친구 참 오래동안 초중동창들을 잊고 살았었다. 고중, 대학 거기에 사회에 나와서 사귀된 친구들까지...초중동창들은 집 한구석에서 오래동안 빛을 보지 못한 오랜 앨범처럼 까맣게 잊고 살았었다. 그러다 현대화 위챗의 덕분에 초중때 한책상에 앉았던 월이와 련락이 닿게 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월이와의 만남을 바쁘대는 핑계로 늘 피했었다. 고향으로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았고 아이가 어린지라 나에게는 초중동창들하고 어울릴 여유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출산하면서 몰라보게 "흉"해진 내 몸매로 하여 나는 나름 거리감 있고 경쟁을 했었던 친구가 아닌 동창들을 만는게 싫었었다. 그래도 한때는 학급의 "꽃"(흐흐흐...엄연한 혼자의 착각과 평가)였는데 어떻게 이런 모습의 나를 초중동창들에게 알려줄수 있겠는가? 요리조리 피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월이와 만나게 되였다. 절친 부친의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였는데 꼼작달싹 못하고 전화번호 주고받고 만남까지 약속하고 말았다. 얌전하기로 소문났었던 월이는 그후에 엄청난 "짓"을 저질렀었다. 나를 초중동창들의 만남의 장-90년급1반 그룹에 나를 초대하고 말았다. 나는 하루아침에 준비도 없이 마음의 눈꼽마저 채 떼지 못한채, 겹겹히 두터워진 뱃살을 가리지도 못한채 초중동창들 앞에 나서게 되였다. 참말이지 다른 동창들은 몰라도 초중동창들에게 정말로 이쁘게 보이고 싶었다. 적어서 남학생들에게는 아주 이쁜 느낌은 아니여도 그래도 괜찮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동창그룹에 가입되고 보고 이런 저런 메세지가 한참은 빗발쳤다. 15살에 만나게 된 우리들이 이제는 마흔이 되였으니..."사진을 올려라", "어떻게 변했나 보자" 등등...나는 웃음을 달고 즐겁게 출산전의 내 사진을 넉살좋게 올렸다. 그것도 포샵처리하고...정확히 난 내 사진으로 시간을 사기친 셈이였다. 빌려올수 없는 옛날을 허락없이 가져와서 지금의 나로 포장시켜버렸다. 반응은 뜨거웠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아. 이 거짓이 들통나기전에 난 빨리 다이어트를 해야지"이러면서 매일매일 결심을 하였지만 그 결심은 그냥 물 마시는 일상과 같이 하고싶을때 하는  특별한것 없는것이였다. 이번에는 외국에서 여자동창들이 고향으로 오게 되였다. 내 몸매가 자신없어서 뚱뚱하다고 해서 그들과의 만남을 피하는것은 바보같은 짓이여서 나는 짙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날씨가 화창한 저번 주말에 그들과 만났다.뚱뚱하다는 생각도 잠시..난 현실의 내 모습을 망각하고 어느새 15살 소녀로 되여서 그들과 희희호호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어졌다. 얼마나 행복했을까? 25년이 흐른 지금 아줌마의 얼굴과 몸매로 15살 소녀의 심성을 가지고 깔깔깔거렸으니... 두 녀학생이 한 남학생을 사모해서 한때는 "연적"이였던 사이도 지금은 "걔 괜찮은 남자였잖니? 얼마 좋니? 행복한 추억거리도 생기고"라면서 맥주잔 부딛칠수 있었구... 자타가 인정하는 아름다운 "꽃"이여서 15살때는 귀엽고 여성스러운 걸이한테 질투도 나고 시샘도 넘쳤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남보다 걸이가 더 섹시하고 더 이쁘길 바라는 이 마음은?..."얼음공주"라고 별명을 지으면서 "넌 누구한테서 연애편지 받아봤나"하면서 지금은 수다쟁이 된 추나한테 허물없이 물어보기도 하면서... 준비없이 만나는 초중동창이 두려웠었는데...남보다 못하다는 그런 시선을 받을까봐 못내 주저했었는데 그래도 막상 만나고 보니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울수가 없다.그것은 마치 내 호주머니에서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내 돈이 "벌러덩" 툭 튕겨나올때 "횡재"구나하면서 공짜로 가진 돈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서 괜스레 즐거워지고 신났던 그런 기분이였다. 덤으로 생긴 우정같은것에 못내 감사하고 못내 행복해하면서 시도때도 없이 만날수는 없지만 적어서 경조사(생일, 명절 거절)에 서로 다니면서 교원절이면 담임을 모시고 식사라도 하는 그런 삶을 보내자고 약속했다. 일본에서 온 수니가 그랬다. "나이 들어 그런지 친구가 그리웠다!" 80세 할머니께서 마흔이라는 나를 보고 "애기구나"했었던 말이 떠오른다. 늙어서보다는 철이 들어겠지. 사람이 소중하고 지나간 추억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은만큼 철이 들었겠지. 남하고 비기기보다는 어울리면서 서로 인정하고 서로 배우는 삶이 보다 평화롭고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것도 사는 재미가 아닐까? 잊었던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고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어린 소녀시절과 다시 만나는게 사는 재미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불타는 금요일인데 누굴 만날까? 만나서 뭘 먹을까?      
31    이런게 사는 재미(9) 댓글:  조회:2118  추천:0  2014-07-22
몇년전 살고 있던 아파트 단지에 벌어졌던 일이다. 저녁 9시가 넘어서 임신한 언니가 야식이 먹고프다면서 밖으로 나가자고 청을 들었다. 여름인지라 시원한 바람도 쏘일겸 나는 언니랑 함께 길을 나섰다. 그때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대문은 자물쇠로 걸어놓고 사람만 다니는 좁다란 문만 열어놓은 상태였다. 우리 두사람이 흔들흔들 나가려는 앞에서 두 녀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출입문이 좁긴 해도 두 사람이 지나가는 큰 무리는 없었다. 언니가 앞에서 다가오는 두 사람보다 먼저 출입문에 다가갔으나 상대방 녀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출입문을 향해 직행하고 있었다. 좁은 출입문을 지나가는게 문제가 아니였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그 녀성은 장발의 머리를 풀어헤친채 앞에서 다가오고 있었고 그녀의 품속에는 하얀털의 애완견까지 안겨있었다. 좁은 출입문에 들어서니 놀란 애완견이 우리 언니를 보고 앙칼지게 짖어댔다. 멀리서 볼때까지만 해도 그냥 두 녀자구나 했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하얀 드레스에 장발에 그것도 모자라 애완견에 짖기까지 언니는 급기야 "우 이 개쌔끼~"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 놀란 가슴 쓰러내리면서 "개를 안고 지나면 알려라도 주든지 해야지 머냐고?"하면서 한마디 싫은 소리를 했다. 적반하장은 다음에 있었다. 두 녀성은 길이길이 날뛰면서 "개쌔끼?"라는 호칭에 시비를 걸고 또 사전주의 하지 않고 피하지 않은 당신 잘못이지 누구 잘못이냐고 큰소리를 떵떵 치는것이였다. 옆에서 나도 가만히 지켜볼수는 없었다. 언니가 임신한 몸인지라 내가 나서서 한마디 했더니 두 녀성은 더 난리를 피웠다. 아주 그냥 "큰사모님"행세를 하면서 무조건 우리가 잘못한 일이라고 그 어투, 그 행동 그러면서 "누구한테 감히?"하는 말까지 던지는 것이였다. "아이고~~ 배야" 나는 령도사모님들을 보면, 그것도 령도사모님틀을 차리는 녀성들을 보면 배가 절로 아파지는 고질병이 있었다. 그런대로 참고 "전투"에 나섰다. "사모님, 무슨 대단한 집안의 부인인지 알수 없지만 한번 소리질러보세요. 동네 떠들썩하게 한번 소리 지르고 동네분들 다 나와서 구경 좀 하시게 하시죠. 개안고 개망신 당하고 싶으면..남편? 부장? 국장? 원장? 웃기지 마세요. 당신이 이런 행동이 당신 남편 얼굴에 똥칠하고 있다는거 지금 자신은 모르고 있죠? 남편? 당신 남편 한번 불러와요. 당신 남편 당신 잘했다고 칭찬해주는가 보게..글구 동물도 품고 사는 녀인이라면 최소한 사람한테 례의는 지키는 품위는 지키고 살아야죠. 개는 품을수 있고 사람은 품을수 없나요?" 정확히 그녀인은 그날 23분을 소리 질러댔다. 내 소리도 만만치는 않았지만 내가 소리높게 말한다해서 그녀를 이긴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냥 내 말을 정확하게 그녀에게 전달하면 되는것이였다. 조금은 지쳤는지 소리가 작아졌다. 내가 웃으면서 "왜? 소리가 작아지나요? 힘드나요? 제가 대신 소리쳐줄까요?" "다 나와보세요. 여기 녀자들이 싸움질하고 있어요!" 하고 엄청 큰소리로 쳐댔다. 글구 그 녀성을 보면서 "한번 더? 한번 더 할까요? 아니면 사람들이 아니 당신 남편 나올때까지 소리칠까요?" 그녀성은 주눅이 들어서 가버렸다. 정확히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똑똑히 보지는 못했다. 다만 그녀성이 어느 부장님의 안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거의 10년전의 일이다. 요즈음은 이런 간부님들의 안해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어떤 무명인의 말대로 "지금 이 세월에 너덜거렸다간 백성의 몽둥이에 맞아죽는다"면서 여전의 "기세등등하고 날뛰던 고위급 녀편네들"이 지금은 "쥐죽은듯이" 있다고 전했다. 정말이지 눈꼴 사나운 그런 꼴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 오고보니 참으로 살맛난다. 크하하하 간부님 마누라 중 내 지인들도 있는데 당신들도 포함되였겠지?  
30    같은 습관 댓글:  조회:1736  추천:0  2014-06-24
아침식사 마치고 디저트까지 드신 우리집 왕자님이 왕자님의 엄마한테 큰소리로 명령하였지요. "수박 더 먹겠슴돠!" 왕자님 엄마가 바로 답을 올렸지요. "배가 볼록 나온거 봐서는 이젠 량이 된것 같습니다. 과하게 드시면 토할수 있습니다." 막무가내 왕자님은 수박타령이 계속되였고 출근시간은 바작바작 타올라오고 하는수없이 왕자님 엄마가 협박을 날렸지요. "유치원 가지 않고 혼자 집에서 놀겠으면 수박 드세요" "어째서?" 왕자님이 또 물었지요. "시간이 안되여요. 배도 이미 불렀구 옷도 다 차례입구. 유치원 갔다오면 그때 수박 먹읍시다!" 정말 먹고펐는지 칭얼칭얼 대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치원으로 발길을 돌렸지요. 어른이나 애나 먹고싶은거 못참는건  마찬가지. 이 시간에 수박 먹겠다고 칭얼대는 아들이나 한숟가락 적게 먹으면 분명히 더 좋은데도 기어코 두숟가락 더 먹으려는 엄마나...  
29    쿨하게 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댓글:  조회:1868  추천:0  2014-05-23
한국 생활 10년을 마무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온지 일년이 되였다. 직장생활을 한지도 일년이 되면서 지난 일년을 뒤돌아보는 좋은 계기로 되였다. 고향이라 할지라도 떠난지 10년만에 돌아온터라 적응시간이 필요한 부분도 상당히 많았던것도 사실이였다. 그 가운데 아주 작은 일부인 한가지만 말해보련다.친구들하고 자주 만나고 즐겁게 한잔 하는 일도 꽤는 많은 편이다. 오늘은 심천에서 온 천사가 하고 내일은 일본에서 온 순둥이가 하고 내일은 연길에서 사업하는 핫순이가 하고 등등 이런 저런 일이 상당히 많은 편이였다. 한국에서 있을때는 어쩌다 고향으로 오는 상황인지라 내가 돈내고 친구들하고 같이 즐겁게 마시는 것 그것이 엄청난 랑비라할지라도  마음은 늘 엄청 즐거웠다. 고향으로 돌아와 발을 붙이고 다시 살자고 굳은 결심을 내리고 나니 생각이 많이 바뀌여졌다.  내 돈 내고 술 흥청망청 마시는 일은 앞날을 생각하지 않은 랑비인생라는 생각이 지궂게 들면서 절제해야겠고 마음 먹었다. 그렇다고 남이 사는 술만 먹을수 없고..똥순이 한번, 개순이 한번 이번에 멍순이 한번 이렇게 돌면 나도 한번은 쏘기 마련이였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가는데서 차질이 생기게 된것.. 한달 소비는 무조건 수입보다 작아야 한다는 내 생활철칙에 위반되는것있었다.  바로 한달에 두번씩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는것에 대한 경제부담을 내가 하는 부분이였다. 여자들치고는 상당히 주량이 좋은부분이 있고 아끼는 타입도 아닌지라 매번 만남은 엄청난 랑비였다. 두달 어울리다가 나는 부끄러움이 없이 기권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공개적으로 조건을 내걸었다. "더치페이...AA제로 하자. 더치페이하면 난 모임에 나갈수 있지만 더치페이가 아니면 난 모임에 이젠 나가지 않을거다. 친구들이 사는거 먹기만 하는것은 불가능하오니..암튼  난 더치페이면 나가고 아니면 미안하게 되였다." 소위 외화벌이를 공부한 시간 빼고 계산한다할지라도 꽤는 오래 한 사람이 먼저 돈때문에 더치페이를 말했으니... "망했는가?", "어머, 애 돈 꽤 모은거 아니였나?" 암튼 말로 표현이 안되는 묘한 눈빛들이 슬슬 내 얼굴을 훓고 있었다. 난 이런 부분에서는 누구의 시선도 신경 안쓰는 편이다. 웃으면서 여유작작말했다. "돈 많다 해서 더 내는것도 반대다. 돈이라는 것은 영원히 있다가도 없는 것이기에 있다해서 랑비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극소수의 사람들만 자주 돈을 내게 되면 친구들의 우정이 색이 바랜다고 생각한다. 누가 누구보다 더 잘 살고 못살고가 없다. 현재로서는 좀 어렵거나 혹 좀 더 여유롭거나 하겠지만 우리 사이에 특별한 부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돈이 좀 있다는 사람들은 모두 로후가 불안한 비공무직이다. " 그런대로 내 제의는 통과되였다. 더치페이로 하니 상당히 부분이 아끼게 되였다. 적어서 친구 집에 모여서 이것저것 음식 해놓고 즐겁게 먹고 마시고 놀게 되였다. 그런 날의 액수는 밖에서 먹는 값의 반 지어 1/3이면 될때도 있었다. 말하자면 철저한 절약이였다.그러나 그런 모임마저 난 백프로 출석을 할수가 없었다. 계획된 액수의 소비만을 나 자신한테 허락하였으니 친구모임에 못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한 친구는 나를 대놓고 말하였다. 아니 욕하였다. "너 참 야박하다!"고..나는 웃으면서 답해줬다. "왜? 내 주머니의 돈을 내서 술을 자주 먹을때는 야박하다는 생각이 안들었나? 넌 퇴직금이 넉넉하잖니. 니 퇴직금을 통장의 현금으로 계산하면 100만원짜리이다. 그러니 니가 나보다 부자 아니니? 난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수입이 예전의 1/5도 안되니..이제부터는 아껴써야 한다. 그래도 섭섭하고 내가 야박하다 생각들면 할수 없지..리별부르스를 불러야지.." 친구는 오래동안 날 외면하였다. 그런 친구를 친구라고 생각하던 나도 어느날부터인가 내 마음에서 서서히 지워버리기 시작했고...그러다 얼마전부터 다시 련락이 왔다. 옛날이 그립다고..난 그냥 웃으면서 넘어갔다. 시간되면 친구들이 다 모여서 즐겁게 한잔하다. 외국갔다 왔다해서 남의 시선을 신경썼더라면 난 아마 이 일년사이 상당한 소비를 했을거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았기에 난 내 통장을 철저하게 지킬수 있었고 소비가 수입보다 작은 생활을 할수 있었다. 누군가 "아무개는 승용차도 없는지 공공버스를 타고 다니더라"하면서 승용차가 없는 내 친구를 상당히 어렵게 사는 막막한 상황으로 설명을 하면서 누구네도 승용차가 있고 누구네도 얼마짜리 승용차라고 설명을 하였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들어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웃으면서 내가 말했다. "왜? 나도 버스 타고 다닌다. 필요한 사람은 승용차 한대가 아니라 백대 있어도 되고 필요없는 사람은 없어도 괜찮지 않냐? 우리 친구들도 외국에서 온 애들 꽤 있는데 차에 별로 관심없어. 집에 한대씩 있으면 되지머. " 나를 한참이나 빤히 쳐다보더니 그냥 입을 다물어버린다. 축의금이나 부의금, 또 병문안에는 상당히 앞장서는 타입이다. 그런 부분까지는 아끼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도 친구들 모임이나 그런데서 따지고 보니 혼자에게 의문스러워진다.  "내가 이상한가?" 하고 혼자서 반문해본다. "다른사람들이 명품백 들고 다닌다해서 나도 명품백 들어야 하는것도 질색이고 ..내가 이상한가? 내가 이 시대에 떨어졌는가?"하고 반문하고 또 반문한다. 그러면서 살면서 쿨하게 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하고 의문도 또 던진다. 내 자식을 위한 백프로의 삶은 아니지만 적어서 남만큼은 해주고 싶고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을 살려면 지금의 이런 생활방식이 가장 적합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돈벌러 애 두고 다시 외국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남의 시선보다는 내 자신한테 충실하게 살아가는게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별거 아닌 작은 돈에 옴니암니 따지는 자신의 마인드가 구경 옳은 생각일까하고 반문한다. "남의 시선을 적당히 의식하고 내 주제에 맞게 소박하게 사는는것도  쿨한것이 아닐까?"하고  나 혼자에게 주문을 한다.  
28    지금은 모기의 전성시대 댓글:  조회:2485  추천:2  2014-05-14
모기님동네가 우리 김치라는 김씨가문보다 더 번창하고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모기님들은 모씨라는 이유로 얼마나 득의양양하게 사는지 표현할수가 없다. 모기들은 법을 무시고 제멋대로 사는것은 물론 모씨네만 빼고는 다 우습게 보면서 너덜거리는것도 모자라 깐죽거리거나 아프게 하기도 한다. 쩍하면 모태주네도 자기네 사촌이라고 자랑을 하지 않는가하면 모** 그분의 이름도 렬거한다. 모태주네가 유명한 집안이것도 알지만 그것보다는 우리가 제일 위대하고 존경하는 한분중의 그분이 모씨여서 모기는 완전 "호랑이를 등에 업은 여유"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으면서 말그대로 날치면서 살고 있다. 블랙숫트로 온몸을 쫘~악 감싸고  앵앵거리는 코맹맹이 소리로 듣는 사람의 속을 뒤짚어질 지경의 소리를 빽빽 질러대면서 싸돌아다닌다.그것도 모자라 흡혈귀의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도 내 주위를 맴맴 돌고 있다. 그 정도의 가문상승이면 이젠 자선이나 하면서 이미지관리도 할법도 한데 말이다. 겁도 없는지 내 주위를 앵앵 신호탄을 보내고 휘리릭 휘리릭 뺑뺑 잘도 돈다. 내가 입을 하 벌리고 잠깐 조는 사이 그 모기는 어느새 내 허벅지를 물었다. 허여멀쑥한 살 잘 찐 내 허벅지가 맛있는줄은 알아가지고 내 허벅지에 뻑 한대 날리고 갔다. 미치는것은 그놈(젠장 이젠 그놈이다. 모씨면 어떻고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그놈의 신분때문에 난 감히 달려들어서 죽일 생각은 못한다 )이 내게 아픔을 준것마저도 내가 몰랐다는것이다. 그놈이 떠난 한참후에야 나는 비로서 극적극적 습관적으로 긁다가 뻐얼겋게 부어오른 1원짜리 동전(과장이 심한 표현 정확히 50전짜리 동전보다 작은 콩알)만한 흔적을 남기고 튀여버렸다. 젠장... 기분 나빠서 어디 살겠니? 아무리 내가 빽도 없고 명품도 없고 자가용도 없고 애인도 없고 퇴직금도 없는 싸가지 언니 오가지가 없는 여자라 해도 모기의 침략까지 받아야 하겠나? 열이 나서 씩씩거리는것보다 버물림으로 내 상처를 치유하는게 좀은 지혜로울것 같아서 버물림으로 휘휘 바르고 또 바른다. 입속으로 "빨리 가라앉아라. 빨리 가라앉아라"하면서.. 가려움을 체념한채로 나는 나대로 음악을 듣는다. 이은미의 "날 속였다"에 빠져서 나는 지금 가려움에 괴롭고 무시당함에 슬픈 나 자신을 속이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이어폰을 끼고 듣는 음악이 얼마나 감칠맛나고 생동한지는 들은 사람들은 다 알거다. 머 고막이 위험해지니 청력이 떨어지니 그딴거 다 필요없이 그냥 음악에 집중할수 있는 순간이다. 얼마나 흘렀을까? 내 눈앞에서 조폭들처럼 한 블랙슈트의 모씨네가 이번에는 한놈도 아니고 세마리인가? 네마리인가? 아님 눈이 어지러워질정도로 줄을 지어서 집단 살사댄스를 즐긴다. 그놈들이 축제에 빠졌을때는 무조건 무슨 진수성찬이 차례졌을텐데 난 부랴부랴 이어폰을 뺐다. 슬슬...슬슬..까닥까닥 절주를 즐겼던 내 왼손까락중 엄지가 가렵기 시작했다. 아~~~이번에는 한번도 점령당하지 않았던 히프도 가려운게 아닌가? 머 턱밑까지..온몸이 모씨가문의 긍정을 받고 폭격세례를 받은 내 몸은 내 몸이 아니였다. 죽어야 하나? 이대로..참을수 없는 가려움보다는 치욕감에 난 치를 떨었고 음악에 빠져서 잠시 모기에게 반격을 가해야 했었다는 후회에 절망스러웠다. 부르르...겹겹히 쌓인 배흰곱들이 내 심정만큼이나 떨고 있었다. 죽을수 없었다. 이제라도 반격에 나서야겠다고 작심하고 나는 부랴부랴 파리채를 찾았다. 그것도 한국에서 900원주고 사온 수입제로 말이다. 효능이 좋겠지하고 이를 악물고 나섰다.  "나와! 야 더러운 모기야!"나는 안경까지 찾아걸고 혈안이 되여서 모기를 찾아 훓었다. "어라~ 저놈이 저기 있군" 새하얀 커텐에 배부르는 배땡이를 드러내놓고 블랙슈트 구겨지는줄도 모르고 뒈벼져 코를 골고 있었다. 분명했다. 자고 있는것이..나는 걸상에 조심스레 올라가 온힘을 다해서 힘껏 내리쳤다. 결과는 어떻게 되였을까? 튀였다고? 흐흐흐 노노노지..잡았지..그런데 흑흑흑 새하얀 우리 커텐에는 모기의 시체와 함께 나의 피가 추잡한 그림을 남긴채 헬레레하고 있었다. 나는 권세의 대가인 모기를 죽였으니 엄한 처벌을 받을것 같아서 정당방위라는 차원에서 모기한테 물렸던 흔적을 사진증거로 모두 남겼다. 그것도 모자라 조글로에 공개성명을 발표했다. 모씨가문에 공개사과로..."모기님의 희생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삼가 모기님의 명복을 빕니다"등등의 속에도 없는 모기님를 써가면서... 며칠후 모씨가문의 홍보장관인 모태주 장남이 나한테서 전화가 왔다. 모기는 원래 모씨네 가문이 아니였다고..그놈들은 흡혈귀 천성때문에 모씨가문에서도 아주 오래전부터 호적에서 지워진 놈들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일부 사악한 놈들이 짝퉁신분으로 약자의 등꼴을 빼먹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니 경각성을 높히라고 신신당부하였다.  그런 진실에 나는 탕개가 풀리면서  허무맹랑함에 사맥이 해나른해났다. "허참 진작에 알려줄거지. 그러면 나의 무흔적의 순결의 고지 히프를 물기전에 쳐죽였을텐데."라고 후회의 가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난  명문가의,  지금은 전성시대의 모기(어떤 이들은 아부의 극치를 보였는데 모느님이라고도 부름)의 신분때문에 은근히 두려워했었는데..모기를 죽이고 후환이 두려워 잠도 못잤는데 말이다..커텐이 낄낄댄다. 2014년 5월 14일  
27    세월호...세월을 돌려달라! 댓글:  조회:1594  추천:0  2014-04-21
기적이 아직도 남아있기를 ... 세월호여 세월을 돌려주기를... 인재에는 모든 이들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무엇이 이리도 잔인한 참사를 불러일으켰는가? 한국의 참사라고 단정짓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사고 인간이 인간에게 내리는 어떤 형벌인가? 차라리 지구와 함께 우리 모두가 침몰하는게 덜 아픈 징벌일지도... "제발 돌아와줘~"  
26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 사랑해" 댓글:  조회:1635  추천:0  2014-04-17
어제 4월 16일 한국 전남 진도 해역에서 침몰한 여객선에 타고 있던 이들이 사고 직후 가족 등 지인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와 카톡이 공개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안산 단원고 한 학생은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한다'고 어머니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사고 소식을 모르던 어머니는 '왜...카톡을 안보나 했더니?...나도 사랑한다♥♥♥'고 답했다는 기사가 떴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 사랑해"...이 글을 보는 순간 속이 울컥하면서 눈물이 났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들어올때 아들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온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였지만 다른 한 방면으로 "보고싶은 사람 마음껏 보면서 살아야지"하는것도 어벗지 않아 있었다. 한국 생활 10년으로 나는 그리움에 많이 고파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왕청에 있는 친정엄마를 한달에 한번씩은 꼭 봐야지"하면서 나름 굳은 맹세를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왔었다. 어쩐걸...한달에 한번은 커녕 명절마다 찾아뵙는것도 힘들어졌다. 이런 저런 구실이라고 해봤자 "시간이 없어요.", "주말에 좀 쉬고 싶어요"하면서 이래저래 가지 않았었다. 못찾아뵙는것도 불효인데 더 막장인것은 나중에 있었다. 다정다감한 딸로 자식들중 유일한 엄마의 말동무였던 나는 요즘 들어서 짜증이 부쩍 늘어났다. 엄마와의 통화중에도 화를 내서 한번은 엄마가 마음 상해서 아프기까지 한적도 있었다한다. 기사를 보는 순간 눈물이 나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요즘 어머니한테 짜증 자주내서 미안해요.
25    통쾌한 복수 댓글:  조회:3186  추천:2  2014-04-08
지나간 이야기를 하기전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30대를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국사람들은 거의 모두  정이 많고 착한 사람들입니다. 혹 아래글을 보시더라도 한국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지 마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통쾌한 복수 호텔 프론트에 근무하던 그때였다. 매일 호텔 사우나를 애용하는 VIP고객중의 한분이 있었다. 안경을 걸고 신사옷차림에 항상 매너있게 인사도 잘하는 그분은 어딘가 모르게 싱거운 이미지에 밉상캐릭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VIP인데다가 주변에서 말하기를  동남아권에서 공장을 차린 꽤 실력있는 분이라 하기에 그렇다고 긍정하고 고객을 상대하였다. 업무상 필요(친절하게 인사하는 업무에서는 제가 갑)로 그분을 만나면  늘 항상 친절하게 인사를 하군 하였다. 사실 누구한테나 다 그랬듯이였다. 그분은 중국에 관심이 많은 분이였다.  그날도 례외는 아니였다. 사우나 이용을 마친 그분은 프론트 로비의 쏘파에 두 다리를 쩍 벌리고 반쯤 누운 자세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중국조선족 녀성들의 한국으로 시집오는 문제에 대하여 이것저것 또 말씀하기 시작하였다.나는 업무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일절 사절하는 편이지만 고객에 대한 례의로 간주하고 그냥 듣기만 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이면서 수긍하는척 하였다. 그분이 열변을 토로하면서 말씀하던 중 다른 한 고객이 오셨다. 인근에 찌질이로 소문난 경제실력도 꽝인 사람이였다. 알콜중독증세가 보일뿐만아니라 술에 취하면 바지에 오줌도 싸는 그런 분이였다. 그분이 사우나에 입장하면서 프론트 로비를 지나갔다. 전쟁은 그때부터 서서히 시작되였다. "김팀장! 소개할 여자 없나?" 속으로 "별꼴 다 보겠네. 내가 혼인중개소 담당인가?" 중얼거렸다. 대답이 없자 신사다운 안경을 건 그분이 또 지껄어왔다. "김팀장! 자네 중국조선족 녀자들은 한국으로 시집오는걸 굉장히 좋아하잖어! 금방 들어간 그 손님 지금 싱글인데 조선족여자 소개해주면 안될까?!" 젠장! 개새끼~~(나도 나름 지식있는 지식분자이고 나름 고상한 녀자지만 열불나면 C8도 잘하는 편이다. 왜냐 이렇게 당할때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병이 날것 같으니깐) 속으로 욕을 퍼댔지만 막상 입밖으로 튕겨나오진 못했다. 왜? 난 근무중이고 내 감정조절을 하는것 역시 업무였으니깐. 화가 날때로 내 얼굴은 웃는게 웃는게 아니였다. 지지벌개진 미소로..울지도 웃지도 못하면서 화를 참고 있었다. (그런 사람한테 우리 조선족녀성을 소개해라니...)인격무시로 느껴지면서 피가 꺼꾸로 흐르는것 같았다. 그분이 또 재촉한다. "김팀장. 아 좀 여자 소개해봐~~~" 그놈의 봐에 달린 꼬리소리가 왜 그리도 내 귀를 자극하는지..난 폭발하고 말았다. 긴 호흡을 하고 다음 옷맵시를 단정히 하고 부드럽게 한번 미소짓고 목소리톤은 한톤 낮추고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어머 사장님! 한국 분들은 국산을 선호하시잖아요~ 국산이요! 중국산은 별루라고 매체에서도 맨날 징징대는데.." "그럼 그렇지..중국산 한국산보다 못하지" "예~ 그럼요. 제가 그분께 사장님께서 념려하는 그분께 오줌 질질싸는 그분께 국산녀성 소해드릴게요. 기왕이면 사장님께서 부탁도 하시는데.." "어! 머? 한국녀자들도 잘 알어?" 잠깐 놀라는 눈치다. "사장님 댁에 녀동생이나 따님중 싱글이거나 혹 돌싱이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사양하시지 말고. 제가 확실하게 다리 나드릴게요. 저희 호텔에는 와인바, 노래방, 로얄룸 다 있잖아요. VIP 대접 섭섭하지 않게 해드리죠. 머 남자쪽에서 녀자쪽을 싫다고 해도 제가 중국산이니깐 말이 샐 념려도 없을겁니다. 아이구. 진작에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시집 못간 딸 있나요? 아님 임자 없는 녀동생 있나요? 이렇게 적극적인거 보면 보내고 싶은 녀자쪽이 분명 가족임에 틀림없는데...소개비는 성사되면 좋은 양복 한벌로 할게요. 아님 명품백으로.." 그분은 서서히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분 옆에는 가든을 하시는 신사장님도 계셨던 터라 확실한 패배를 알리는 짜릿하고 통쾌한 순간이였다. 승리의 기발이 내 가슴에서 나붓기고 패배의 쓴물이 그분의 목구멍에 흘러갈때 나는 처음으로 코노래까지 불렀다. "동포 여러분~ 형제 여러분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 뒤의 에피소드는 더 말할 필요없을거다. 그분은 재미있는 모습으로 호텔을 떠났고 한참뒤 총지배인께서 오셨다. "고객하고 무슨 말을 그렇게 잼있게 나누었나요?" 나는 능청스럽게 다른 말로 둘러냈다. " 호텔에 대하여 문의 하시길래 이것저것 알려드렸습니다. 가족의 탄생으로 곧 우리 호텔을 이용할것 같습니다.!"
24    웃기는 "싸쓰개"란 댓글:  조회:3123  추천:5  2014-03-28
싸쓰개...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싸쓰개라 부르면 부르는 그 사람이 싸쓰개로 되는거다. 아프고 불쌍한 사람을 그리 부르는건 아닌것 같으니깐.  내가 말하는 싸쓰개란 이러하다. 대포쑤씨개처럼 치켜든 헤어, 화장은 감자누룽지보다 더 두껍게 한 얼굴로 어린 아들 귀가시간마저 잊은채 남편 없다는 변명 아닌 변명으로 자신에게 구실을 만들면서 마작판에서 "깡! 안깡!"하면서 낄낄대는 녀자..그런 녀자를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저 싸쓰개~에그.."라는 말이 나간다. 힘들다고 아프다고 혼자여서 외롭다고 막 살아가는 그런 인간은 책임감을 기본으로 하는 결혼이라는 감투를 쓰지 말아야 했었다. 또 어떤 부류를 싸쓰개라 하는가? 얼마전에 12층 녀사가 승강기를 타고 천사처럼 내려왔다. 높은직에 있는 공개적인 석상에서는 멋진 녀성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안다. 그런데 9층에서 내가 승강기를 탔는데 표정이 영 시원치 않다. "우~씨"가 흘러나왔다. 젠장..속으로 나도 반싸쓰개가 되여서 속으로 그녀를 욕하고 싶어졌다. 반전는 또 있었다. 8층에서도 누군가가 올랐다. "우~씨~ 늦다하니 층층마다 다 서네. 신경질이 나게~" 높은직에 있는 엘리트라는 녀성이 이런 말을 하기에는 정말 부적절한 상황이였다. 높은직의 그녀야말로 이 순간 진정한 왕중왕 "싸쓰개" 갑이다. 아니 승강기가 개인전용인가? 입속말이라도 우씨가 머냐구 듣는 사람이 기분나쁘게.. "웃기는 싸쓰개구나!" 하고 나는 길을 재촉했다. 또 승강기안 이야기다. 8층에 이쁜 녀자가 있다. 나도 같은 녀자지만 그녀를 다시 한번 봤었다. 이뻐서... 그런데 두번이나 황당한 일을 당한 그 이후로부터 "저것도 곱게 생긴 싸쓰개"구나하고 실망했었다. 아침 출근이나 점심 출근이나 시간에 쫓기는 녀성인지 알수 없지만 승강기에 타기만 하면 닫히는 문 셔터를 정신없이 누른다. 입구에서 탕탕탕 다급히 뛰여오르는 구두발소리가 남에도 불구하고 "기다려주세요" 하는 소리가 나는데도 그녀는 꼭 마치 "당신이 타는 그 시간까지 기다리면  난 지각할수 있어. 안돼. 빨리 올라가야 돼"하는 듯이 초단위도 아니고 정신없이 누른다. 싸쓰개잖니..그렇게 1초가 애타고 그렇게 1초가 소중하면 10분전에 도착하면 되지. 한번도 아니고 볼적마다 승강기 닫히는 셔터를 쉴새없이 누르면 승강기가 쉽게 로화되는건 본인이 책임질거냐구?  참 저절로 닫혀지는거랑 셔터작동으로 닫히거 사이에는 전기세 낭비도 존재할듯 싶은데.. 암튼 이것도 싸쓰개라고 말하고 싶다. 이 시간대에 이런 잡담하는 나도 싸쓰개동네 여자라고 보면 된다. 술 늦게 퍼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싸쓰개, 쇼핑중독에 눈이 해가매가지고 다니는 싸쓰개, 남자들하고만 낄낄거리면서 앵앵하는 싸쓰개, 암튼 오늘은 녀자싸쓰개 일부만 말했다. 왠지 남자한테는 싸쓰개가 아닌 정신병자가 어울리긴 하지만...아직은 연구 못했다.   
23    빙그레 댓글:  조회:1844  추천:2  2014-03-21
빙그레 찾아온 친구   보고싶어서 어쩔줄 몰랐다하더니 눈물 지으면서 웃어보이는 친구   사랑의 아픔을 못내 인내하고 따뜻함으로 되살아온 친구   미워하는 것보다는 용서하는 것이 이해해주는 것이 자신한테 이롭다는 것을 힘들게 힘들게 알았다는 친구   출렁출렁 사랑하는 가슴 안고 내 곁에 다가와 이쁘게 웃고 가는 친구     빙그레 친구
22    양자택일 댓글:  조회:2866  추천:2  2014-03-21
버리는 가 가지는 가 양자중 택일이다.   동이냐 서이냐 양자택일이다   앞날은 내가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슬픔인가 기쁨인가 대박인가 쪽박인가   가봐야 안다.  
‹처음  이전 1 2 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칼럼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