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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조와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
2015년 06월 12일 17시 04분  조회:912  추천:0  작성자: 최상운
          공원960년, 북쪽의 북한과 료나라가 련합하여 후주변경을 칩입하였다는 급보가 조정에 날아 들었다. 나어린 황제 공제는 대신들과 상론하고 침입자를 막으려고 대장군 조광윤을 파견하여 금군을 이끌고 적을 막으라고 어명을 내리 였다. 조광윤은 원래 세종수하의 막강한 장군으로서 세종을 따라 산전수전을 겪으며 큰 공을 여러 번 세웠다. 세종은 조광윤을 특별히 신임하여 전전도점검 (殿前都點檢)이라는 요직을 주어 금군(禁軍)을 통솔하게 했는데 금군은 후주의 군대중에서 가장 뛰여난 군대였다.        
   
         명을 받은 조광윤은 즉시 대군을 거느리고 도성인 변경으로 출발했다. 그 때 함께 출정한 사람중에는 모사인 조보가 있었다. 
   
          그날 밤, 대군은 도성인 변경에서 20리 떨어진 진교역까지 간 후에 조광윤의 명에 따라 장막을 치고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일부 장수들이 모여서 의론하던 중에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황제는 너무 어리오. 우리가 지금 목숨을 내 걸고 싸워 공로를 세운다 한들 황제가 나중에 그걸 알아 주겠소? 그럴 바에는 차라리 조점검을 황제로 세우는 것이 더 좋지 않겠소? 》 그러자 모두들 그 말에 찬성하였다.
   
         그러자 이 소식은 재빨리 전 병영에 펴졌고 장병들은 밤 새도록 조광윤이 묵어 있는 역관 주변을 지켰다. 조광윤이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입으려 할 때 장수 몆이 들어 오더니 다짜고짜 그에게 황제의 룡포를 입혔다. 그리고는 조광윤앞에 무릎을 꿇고 만세를 불렀다.                
   
         일이 이 지경이 되자 조광윤도 다른 도리가 없었다. 도성 변경으로 군사를 회군한 조광윤은 석수진 왕심기 등 조정대신들의 내응으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변경을 치지하였다. 조광윤이 황제자리를 빼앗으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는 향간의 말을 믿고 조광윤을 의심했던 범질과 완부도 군사들의 위압에 할 수 없이 조광윤앞에 무릎을 끓고 절을했다. 
   
         이렇게 해서 공제는 황제자리를 내 놓고 조광윤이 황제가 되였다. 그는 국호를 송(宋)으로 고치고 도성을 동경(東京ㅡ지금의 하남 개봉)으로 정했다. 력사상 이를 북송이라 하는데 조광윤이 바로 북송의 태조이다. 이로서 50년동안 혼란을 거듭했던 5대 시대가 막을 내리였다.
   
         송태조가 즉위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절도사 두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다. 태조는 즉시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반란을 평정했다. 이 일이 있은 후 태조는 항상 마음이 불안했다. 그래서 하루는 조보를 불러다 이렇게 물었다.
  
         《당나라 말기 부터 지금까지 나라가 다섯번이나 바뀌면서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소. 도대체 그 리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리유야 간단 합니다. 나라가 혼란한 리유는 번진들의 세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병권을 중앙에 집중시킨다면 천하가 태평할 것입니다.” 태조는 그 말이 옳다고 머리를 끄덕이었다.
  
         몇일 후, 태조는 주연을 베풀면서 석수진 왕심기 등 오랜 장수들을 불러  술을 마셨다. 술이 몆 순배 돌아 취기가 오르자 태조는 태감들을 밖으로 내 보내고 술잔을 들어 친히 술을 권하였다. 장수들이 술을 다 마시자 태조는 입을 열었다. “그대들이 도움이 없었다면 어찌 오늘의 이 자리가 있을 수 있었겠소? 그런데 천자가 절도사 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그대들은 모를 것이오. 나는 요지음 하루도 편한 잠을 자본적이 없소. 근심과 불안에 싸여 산단 말이오!” 
         그 말에 놀란 석수진 등이 그 영문을 묻자 태조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야 뻔한 일이 아니오? 내 자리를 탐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소?”  
         
          이 말에 석수신 등은 또 한번 깜짝 놀라서 얼른 무릎을 끓고 이렇게 말했다
          “페하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어리석은 저히들은 알 길 없사옵니다. 이제는 태평세월이 왔는데 언감생심 그 누가 딴 마음을 품겠습니까?”
          그 말에 태조는 손사래를 쳤다.
          “짐의 신복 장수들인 그대들을 믿지 못해 하는 말이 아니오. 그대들의 부하들이 부귀를 탐해 그대들에게 억지로 룡포를 입힌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겠소? 그렇게 되면 경들이 하고싶지 않다고 해도 다른 방법이 없지 않겠소?” 
          그 말을 들은 석수신 등의 등줄기에서는 식은 땀이 흘러 내렸다.
          예사로운 말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였다. 자칫 잘 못하다면 큰 화를 입을 수도 있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저희들이 어리석음에 미쳐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무쪼록 페하께서 저희들에게 밝은 앞길을 열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짐이 생각컨대 병권을 내 놓고 지방의 한관(閑官)으로 내려 가는 것이 그대들에게 리로울 것 같소. 자손들에게 풍족한 재산을 물려주고 만년을 편안히 보내는 것 보다 더 좋을 일이 어디 있겠소? 그리고 짐과 사돈을 맺고 서로 믿고 도와 주며 살아 간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이오?”
          그러자 석수신 등은 모두 머리를 조아렸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신들은 패하의 너그러운 은정에 감음 할 따름입니다.”
   
           이튿날, 석수진 등은 늙고 병든 몸이오니 사직하고 내려가는 것을 윤허해 달라는 상주서를 올렸다. 물론 태조는 이를 즉시 윤허하고 병권을 거두어 들였으며 많은 재물을 하사했다. 력사상에서는 이 일을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 이라고 하는데 여기의 석(釋)은 해제한다는 뜻이다.
   
          이 후, 태조는 지방 장수들의 병권마저 회수하여 새로운 군사제도를 수립했다고 하였다. 지방의 군대로부터 정병을 뽑아 금군을 편성하고 황제가 직접 금군을 지휘했으며 각 지방의 행정 장관들도 조정에서 임명하여 파견했다 수립된지 얼마 안된 북송은 이런 조치들로 인하여 비로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피흘리지 않고 권력찬탈을 할 수 있었고 후환을 슬기롭게 해결한 송태조의 처사는 다른 황제들과 현명한 대조를 이루었고 력사에 길이 전해지는 지혜로운 모략과 이야기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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