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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사람은 많지만 시를 읽는 사람은 많을손가 많지않도다...
2017년 02월 05일 19시 36분  조회:2410  추천:0  작성자: 죽림

 

 
»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시를 쓰는 사람은 많지만
시를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창동의 <시>를 통해 본 ‘시를 쓴다는 것’…

시는 진심과 더불어 써야 한다는 본래 정의를 기억하라

 

*영화 <시>에 대한 치명적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주부터 어떤 사설교육기관에서 시에 관한 강의를 시작했다. 흔히 아방가르드라 불리는 시인들의 어려운 시를 함께 읽는 수업이다. 시를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다고 투덜거리는 것으로 첫 강의의 말문을 열었다. 시를 쓰고 싶다는 것은 일종의 자기표현 욕구일 텐데, 그것은 많은 경우 자기애나 자기만족으로 귀결되고 만다고, 그러나 예술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다. 어설픈 창작자들보다는 고급 수용자들이 더 필요한 사회라고도 했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시를 공부한 이의 엘리티즘이 얼마간 개입했을 것이다.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허다한 시창작교실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과 냉소가 나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봤다. 나는 후회했다. 개강하기 전에 이 영화를 먼저 보았더라면 첫 수업을 다르게 시작했을 것이다.

 

 

시가 삶을 피하자 삶이 시 안으로 들어오네

 

초반 20~30분 정도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전형적이어서 오히려 불편했다. 66살의 할머니 양미자(윤정희)를 소개하는 도입부는 그녀를 ‘시창작교실에 다니는 할머니’에 대한 선입견에 얼추 부합하는 인물로 그린다. 화려한 옷을 입고 소녀 같은 말투로 “내가 시인 기질이 좀 있잖니”라고 말한다. 손자를 대신 키워주고 있으면서도 딸에게조차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것도, 그러면서 남들에게는 “우리 모녀는 친구처럼 지내요”라고 관계를 포장하는 것도 그 기질 때문이다. 문화센터 강사 김용탁(김용택) 시인의 강의 내용 역시 예상대로다. 초반 두 번의 강의에서 그는 말한다. 보는 것이 중요하다, 시인은 잘 보는 사람이고 거기서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사람이다, 당신 마음속에 있는 시를 해방시켜라 운운. 맞는 말이기는 하겠지만 상투적인데다 막연하기 짝이 없다.

 

사람들은 시에 대해 양가감정을 느낀다. “왜요, 시 쓰시게요?” 대견하지만 한심하다는 뉘앙스. 아름다움을 다루는 고상한 일이지만 그곳은 삶의 참혹한 실상과는 무관한 세계가 아닌가 하는 감정. 그리고 저 학생과 교사는 그런 통념에 착실히 부합한다. 아직까지 그녀에게 시를 배운다는 것은 거실에 그럴듯한 화분 하나 갖다놓는 일과 다르지 않다. 시 한 편 써오라는 숙제를 받고는 사과를 만져보고 나무 그늘에 앉아보지만 그것은 오로지 자기 삶을 들여다보지 않기 위해서 할 만한 일들이다. 손자가 집단 성폭행에 가담해 한 소녀를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다른 학부형들을 통해 알게 되는 자리에서도 아직은 그랬다. 충격적인 사실을 듣고 그녀는 그 자리를 피하고 꽃의 아름다움 속으로 숨어버렸으니까.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시가 삶을 피하자 삶이 시 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 양미자는 시인 기질이 있는 소녀 같은 할머니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손자 앞에서, 양미자가 시를 쓰는 일은 속죄의 완수와 포개진다.
 
 
 

 

“시를 쓴 사람은 양미자씨밖에 없네요”

이어지는 세 개의 장면이 그렇다. 양미자는 죽은 소녀의 추모 미사에 참석하고, 샤워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손자를 붙들고 신음한다. 그러면서 이 일들과 별개로 시를 쓰는 일이 불가능함을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깨달아간다. 이제 시를 쓰는 일(아름다움의 발견)과 삶을 사는 일(속죄의 완수)이 하나로 포개진다. (이쯤 되면 이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전작 <밀양>을 반대로 뒤집어 다시 찍은 영화처럼 보인다. 한 번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또 한 번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한 번은 종교를 통해, 또 한 번은 예술을 통해. 한 번은 용서의 문제를, 또 한 번은 속죄의 문제를.) 이제 그녀는 진실한 시를 얻으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공간이 아니라 장소를, 풍경이 아니라 인간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성폭력이 일어난 학교를 방문하고 소녀의 주검이 발견된 강가로 간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또 한 번의 결정적인 도약이 필요하다. 소녀의 주검이 발견된 그 강가에서 그녀가 수첩을 꺼내 시를 적으려 할 때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백지를 적시는 장면이 결정적이다. 시는 글자로 쓰는 게 아니라 몸으로 쓰는 거라고 저 비는 말한다. 시창작교실의 강사는 말했었다. 백지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라고. 그러나 젖어버린 백지는 양미자에게 다른 어떤 가능성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가 삶을 피했더니 삶이 시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이제 남은 단 하나의 과제는 시와 삶을 일치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소녀’ 미자는 합의금 500만원을 위해 옷을 벗는 수치를 감내하고, 그 과정에서 타인(‘회장님’)의 서글픈 욕망에 연민을 느끼고, 시창작교실에서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고백하면서 아름다움이 고통 바깥이 아니라 안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녀는 정말 시인이 되어간다.

 

 

 
 
» 시가 삶을 피하자 삶이 시 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양미자는 몸으로 쓴 시 한 편을 남겼다.
 
 
 

우리는 그 뒤에 그녀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 있다. 그녀는 몸으로 쓴 시 한 편을 남겼다. 진실하고, 그래서 고통스럽고, 그래서 아름다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시를 읽으면서 나는 그제야 알았다. 시인은 보는 사람이고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사람 운운하던 강사의 따분한 말이 틀린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니, 오로지 그 길로만 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양미자는 모두가 회피하는 어떤 심연을 들여다보았고 죽음을 대가로 지불하고 그로부터 어떤 아름다움을 끌어낸다. 양미자의 윤리적 급진성이 거기에서 나온다. 그녀는 ‘문자 그대로’ 행하는 인물이다. 강사는 자신의 말이 도대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몰랐을 것이다. 대신 그녀만 유일하게 과제를 제출했다는 사실은 안다. “시를 쓴 사람은 양미자씨밖에 없네요.” 나는 이 말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일종의 선언이라고 받아들였다. 양미자밖에 없다.

 

 

영화의 결말에서 나는 다시 한번 <밀양>을 떠올렸다. <밀양>에서의 기독교 공동체와 <시>에서 시낭송 모임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닮아 있는데, 그 시선은 어딘가 분열적으로 비틀려 있다. 그것은 종교와 예술의 세속화를 증명하는 그 집단을 부정하고 싶지만 종교와 시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어서 생겨난 균열일 것이다. 말하자면 두 영화에서 이창동의 목표는 같다. 제도로서의 종교와 제도로서의 예술로부터 종교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 그 자체를 구원해내기. 그는 희망에 냉혹하지만 덕분에 그가 말하는 희망에는 토를 달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이창동의 다음 영화의 소재는 정치가 될까? 제도로서의 정치로부터 정치적인 것 그 자체를 구원해내는 영화? 그러나 그는 찍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시>의 양미자에게서 삶과 정치를 일치시키기 위해 1년 전에 목숨을 끊은 한 정치인을 떠올린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면 말이다.

 

 

제도로서의 예술로부터 예술을 구해내라

 

이 영화는 시를 다시 정의하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다 잊어버린 시의 본래 정의를 환기하는 영화다. 시는 진실 혹은 진심과 더불어 써야 한다는 것. 너무나 당연해서 대개 다들 잊어버렸고 이제는 오히려 우스워진 그 정의.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우리는 누구이고 이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를 묻는 영화처럼 보였다. 감독이 ‘시’라고 지칭한 것을 진정성(authenticity) 일반의 은유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말이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기를 추구하는 이 윤리적 태도는 오늘날 낡은 것이 되었고 별 뜻 없이 남용되면서 이제는 이 말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조차 생겼다.) 이 영화는 말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본래 어려운 일이고 오늘날 시를 쓴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라고. 그러니 시를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다고 투덜거렸던 첫 수업을 다시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면 좋을 것이다. 시를 쓰는 사람은 많지만 시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_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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