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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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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제목에서도 이미지가 살아 있어야...
2017년 02월 08일 18시 13분  조회:2379  추천:0  작성자: 죽림

먼저 주제를 제목으로 한 예를 살펴 보기로 합니다.

이끼 앉은 
들길
토담집 지붕
달빛 치렁치렁 내리는
마당귀
지렁이 울음
우럼마 손때 묻은 
장독대에
방울방울 맺힌
이슬
바람같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
                           -- 차한수의 [그리움] 전문

차한수 시인의 이 [그리움]은 주제를 제목으로 하였지만 내용에서 ‘그립다’든지 ‘그리움’에 대한 직접 언급이 없다. 이것은 주제가 온전히 무르녹아서 짙게 배어있음을 말해 준다. 또한 주제가 잘 형상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의 흐름으로 보아 ‘우럼마 손때 묻은 / 장독대에’서 곧 ‘그리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끼 앉은 / 들길’이나 ‘토담집 지붕’과 ‘달빛 치렁치런 내리는 / 마당귀’ 그리고 ‘바람같이 다가오는 / 발자국 소리’ 등 어느 것 하나 ‘그리움’이 짙게 배어 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와같이 주제가 시의 제목으로 붙여지면 시 읽기의 묘미가 더욱 감칠 맛이 솟아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음은 주제를 내용 속에 깊이 감추고 있는 구절을 제목으로 붙인 경우를 보기로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제목 자체가 시의 맛을 내는데 큰 몫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ㅎ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영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蓮꽃
만러 가는 바람이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이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의 [蓮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전문

미당 서정주 시인의 이 시는 이 제목이 작품의 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도 살아 있고 숨겨진 의미가 대단히 넓고 깊음에 감동할 수 있게 합니다. 여기에서 ‘연꽃’은 불교에서 신성시하는 꽃이라는 비유와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과의 연관성은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으며 그 내용에 함축된 맛이 제목과의 연결은 시의 격을 한결 높혀주고 친근감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의 제목들을 찾는 거은 시 쓰기에서 필수적인 과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제목들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국제열차는 타자기처럼>(김경린)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었다>(유치환)
<낙엽끼리 모여 산다>(조병화)
<방안에서 익어가는 설움>(김수영)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신석정)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오후가 흘러드는 창>(박태진)
<목련이 있는 골목에서>(김윤성)
<내가 내게 이르는 말>(김연대)
<거미는 줄에 걸리지 않는다>(박부경)

다음은 소재를 제목으로 붙인 것으로서 누구나 이런 경우를 제일 많이 취하는 경향이 있다. 시인들이 소재를 바로 제목으로 즐겨 붙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졸시 [종점에서]를 읽어 보면 ‘종점’이라는 소재가 바로 시의 제목으로 등장하여 ‘종점’의 허전함과 설레임이 처음부터 끝까지 시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도착하는
언어들이
어둠 속에서 비워진다
슬픈 것들은 실려 보내고
불이 꺼진 종점
만남과 떠남이 늘 내 마음에서
뒹구는 바람 소리
달빛도 무디어진
이 밤
어디선가 실려 올
몇 개의 환희를 기다리며
한 아름
어둠을 지우고
마지막 설레임으로
종점은 휴식이었다.

이렇게 소재를 제목으로 쓰는 시인을 김춘수 시인은 시의 문체나 형태에 대한 자각이 없거나 모자라는 사람으로 격을 낮추어서 몰아붙이면서도 내용에는 결백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시의 문체나 내용이 안전하게 나아갈 수 있으며 시의 소재를 취하는 순간에 시의 주제나 언어가 즉시 동원되어 질 수 있다는 장점으로 보아서 시 쓰기의 초보자들이나 습작에 임하는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시 쓰기에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제목들은 김소월의 [진달래꽃], 이육사의 [황혼], 모윤숙의 [겨울나무], 한하운의 [보리피리], 한기팔의 [어느 비오다 갠 날의 풍경], 허형만의 [하동포구에서], 조유금의 [젖은 새] 등등 일정한 사물이나 지명을 제목으로 붙이는가 하면 이수영의 [죽음 혹은 사라에게], 조의홍의 [꿈], 배경숙의 [무엇으로 사는가], 고경희의 [그림자는 삶보다 확실하다]처럼 관념적인 소재를 시인들이 즐겨 쓰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소재도 주제도 아닌 그 무엇을 제목으로 붙이는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는 않지만 시의 어떤 형태의 실험이나 관념을 의도적으로 탈피하려 할 때 드물게 쓰고 있으나 좋은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목을 아예 붙이지 않는 경우도 예외이는 하지만 제목이 마땅하지 않거나 붙이기 힘들 때는 [무제]나 [실제]라고 하는 수도 있으나 이것 역시 요즘 현대시에서는 보기 드문 일입니다.
다음 시는 이창년 시인의 [失題]입니다.

나서기도 어정쩡하고
가만 있기도 뭣하다
혼자 있을 때는
철저하게 혼자라야 좋다
뭔가 아쉽다 싶으면
구멍이 뻥 뚫려 바람 소리가 난다

차라리 
털털털 경운기 소리면
제 소리만 질러대고
제 소리만 듣지만
이럴 때 무슨 수작이든
부릴 법도 한데

힘겨운 세상이라고 맞장구 칠 수도 없고
빙긋이 한번 웃으면 그만일까
앰뷸런스는 다급하게 싸이렌을 울리며 
지나간다 

어느 시간 위에 은빛 물고기들이
별빛으로 뛰고 있다
언제쯤 온갖 소리들이 사라지고
내 심장 뛰는 소리 들을 수 있을까.    

이 시는 독백의 범주는 이미 넘어서 있고 그러나 무엇인가 거창한 주제를 추적하였지만 마땅한 시적인 형상화를 도모하지 못하면서 주제와 함께 제목을 달기에는 애매한 경우인 것 같습니다. 
이와같은 경우에는 고도의 철학적인 개념이나 너무나 심오한 상념에서도 유발될 수 있는 현상으로 이해해야겠지만 중요하면서도 드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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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속의 방
―허혜정(1966∼)

 

 

검은 마분지로 만들어진 갈피마다 하얀 습자지로 덮여 있는 빛바랜 사진들. 하나의 방처럼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모여든 얼굴들이 기억의 영사기에 비춰오듯 흐릿하다. 딱히 언제 사진인지 짚어낼 순 없어도 앨범 속에 죽어 있던 풍경이 스며드는 방. 산 자와 죽은 자의 장소는 다르다고 믿어왔지만 사진 속의 일몰은 나의 창에 물들고 있다. 푸르게 젖어가는 옥양목 마당 너머에는 바라볼수록 여백이 넓어지는 하늘. 늦가을 바람에 창살은 구슬픈 울음소리를 낸다. 녹이 먹어버린 문고리와 발바닥에 닳아 얇게 패인 문턱들. 몇 세대가 머물다 간 낡은 집으로 그들은 바람처럼 돌아와 바스락댄다. 슬픈 아이가 잠결에 따스한 체온을 느끼듯이 혼자가 아닌 것 같아. 세대의 눈빛 안에 고여 있는 나의 눈이 어떤 슬픔을 꺼내놓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비워낸 시공간을 옮겨 적는 것. 잊었던 말들이 밀려온다. 스쳐가는 그림자의 방에서.

‘검은 마분지로 만들어진 갈피마다 하얀 습자지로 덮여 있는 빛바랜 사진들’, 사진 한 장 한 장을 소중히 갈무리한 이런 앨범이 집집마다 다락이나 장롱 깊은 곳에 있었다. 가족 앨범은 대개 스냅사진으로 채워진다. 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흘러갈 시공간을 찰칵찰칵 잡아채서 우리는 기억을 닳고 바래게 하는 시간의 물살에 대처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진으로 남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현재 삶이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인생은 저마다 기록해 남길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리라.

 


 

화자는 낡은 앨범을 보고 있다. 검은 마분지도 하얀 습자지도 바싹 말라 화자는 조심스레 앨범을 넘길 테다.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모여든 얼굴들’, 오래된 과거와 가까운 과거가 모여 있는 앨범이다. ‘몇 세대가 머물다 간 낡은 집’, 조부모님의 젊은 모습, 아버지나 고모 삼촌의 어린 모습…, 잘 모를 사람의 모습도 있겠지만 모두 화자의 혈족일 테다. ‘세대의 눈빛에 고여 있는 나의 눈’, 당연히 그럴 테다. 이미 작고하셨건 구존해 계시건 그들은 어딘가 화자와 닮았을 테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장소는 다르다고 믿어왔지만 사진 속의 일몰은 나의 창에 물들고 있’단다. 사진 속의 풍경이 화자의 회상과 포개지며 현재 공간을 아스라이 물들인다. 오래된 가족 앨범을 보면서 제가 세상에 불쑥 던져진 돌멩이 같은 존재가 아니라고 힘을 얻는 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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