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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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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쉼터] - "높이 나는 새", "낮게 나는 새", 그리고... 댓글:  조회:4065  추천:0  2018-05-03
문학인의 고뇌와 그 가치를 말한다 2018년 05월 02일  작성자: 김인섭 청명날 고향에서 일생을 볼모로 내밀고 문학의 일로에서 매진하는 몇몇 문사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오가는 한담에서 이들이 바로 속세의 부귀영화와 주지육림을 멀리한 민족사회의 주보이고 민족문학의 버팀목이라는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민족문화의 터전이 황페해지고 민족문학의 자리가 좁아터진다는 탄식을 들으며 불안해졌다. 면식도 익히기 바쁘게 우수에 잠긴 그들을 뒤로 하며 유감(有感)도 남았다. 개혁개방은 조선족사회의 새 지평을 열었지만 전통적 인문지리학 구조는 밑둥부터 바뀌고 있다. 또 그 변화 물결과 세계화 조류가 합류되면서 조선족사회에는 인구대이동,인구격감, 교육위기, 등등 ‘전신증상’이 병발(并发)하여 그 존망 자체를 걱정하는 소리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더구나 민족문화를 아예 리탈하는 인구도 량산되고 있으며 가무는 문화터전에 불부채질한다는 것도 민족 내부의 사실이다. 이 불가역변화가 민족문학의 뿌리를 세차게 흔들었고 오늘도 진행형이다. 첨단과학의 발전으로 문학의 생산방식, 류통방식과 소비패턴이 격변하고 있다. 하여 재래적 문학은 과학기술 발전과 엇박자를 치는 데 합점을 이루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전 지구가 한마을로 축소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는 그만두고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까지 인터넷 통신망으로 련결되는 시대이다. 문학인들의 원고지는 모니터로 바뀌고 연필은 키보드로 바뀌고 있다.전통적인 문학과 문학 향수 타입이 혼선을 빚으며 헛갈리여 말 그대로 앞이 흐리마리하다. 격렬한 물질추구 욕망과 인간의 리성, 륜리 관념이 세찬 파동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민족공동체의 해체를 부르고 리념 혼돈을 조성하여 민족문화 허무주의와 그에 따르는 부산물을 량산하고 있다. 물질주의에 넋을 잃은 사람들은 무한경쟁과 재부의 축적에 혈안이 되였을 뿐 그까짓 민족문학은 내 생존과 아무 관련이 있냐는 듯 머리를 돌리고 있다. 민족문학이 이 살벌한 시대에서 류리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제4차산업혁명이 시대적 화두가 되고 그 물결이 급속히 세지고 있다. 20년 뒤면 인간은 육체로동과 정신로동과 잡무에서 탈피하여 행복하게 살 것이라며 미래학자들이 예측을 꽃피우는 현실이다. 인간의 물욕과 과학발전의 동반물인 민족문학의 공허증후군을 해소하고 민족 가치관과 륜리 공백을 메우는 것이 조선족사회의 급선무로 나서고 있다. 하여 민족문화 본연의 기초에서 문학의 미래를 재정립하고 새 도로를 개척해야 할 심중한 력사적 과제는 지성인들의 몫이 되고 있다. 시대가 굴러가며 변해도 조선족 작가들이 류념해야 할 신조라면 나의 작품은 중국특색이 선명한 민족문학이여야 한다는 점이다. 작가들은 중국 문화를 위주로 한 타문화에서 혼합영양을 흡수하고 량종측지(侧枝)를 접목하고 우성형질(优性形质)을 융합시키는 시대적 기법을 창조하는 것으로 민족문학의 승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타문화와의 슬기로운 조화야말로 민족문학 빛발의 광원이고 민족문학 영광의 소재이며 민족문학 존속의 원천이 된다. 또한 문화융합이 유연하게 실현된 작품이여야 민족문학의 독자성을 지키는 문화 장치와 방어선이 될 수 있다. 만약 문학시장의 개발에 나선다면 융합문학이란 포인트를 기치선명하게 홍보해야 최대의 시장효과를 올릴 것이다. 민족문학이 비록 가파로운 아리랑고개를 넘고 있어도 우리 작가들은 창작을 지속하며 민족의 희로애락과 참된 인간성을 살려내는 소임을 다 하고 있다. 생존, 자본과 과학이란 삼두마차가 끌고 가는 이 시대에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문학인들의 고뇌는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작가들의 고민은 사회, 경제나 과학 발전의 간단한 부작용이 아니고 반드시 겪어야 하는 발전통이고 성장통이고 지나야 할 통과의례로 봐야 마땅하다. 우리 조선족은 기복이 많은 력사시련을 겪으며 혹독한 고민이 없었던 나날이 없었던 같다. 그렇다면 이 가난한 문인들의 고뇌와 고민을 민족운명의 축도라 봐야 할 게 아닌가. 그래도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락관적 정신과 ‘낮게 나는 새가 먹이를 많이 먹는다.” 는 실리적 태도를 결합시키며 힘들더라도 미래와 발부리를 갈마보며 나가야 한다.그러면 우리 문인들의 고뇌 집적은 새시대 문학을 숙성하는 ‘발효효모’ 로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들이 고난이 점철한 올리막 걸음을 숙명으로 감내할 때 그 의지는 민족 문학의 새 천지를 개척하는 원동력이 될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연변일보 ========================   민족문화는 적자생존의 산실 2018년 04월 30일  작성자: 김인섭 적자생존이란 술어의 연원은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개체가 살아남는다는 생물학 명사였는데 지금은 무한경쟁의 마당에서 나타나는 사회문제와 삶을 위해 고전하는 인간들의 애환을 담아내는 형용사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적자생존의 본래의 뜻은 동일한 자연환경에서 생존에 필요한 유전물질을 획득하는 개체가 살아남고 후대 번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자연성은 모든 생물체가 여건에 맞는 천연 형질이 구비되여야 한다는 피동적이고 무조건적인 순응이 전제로 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원리를 간단히 인간사회에 적용한다면 인간은 주동적으로 자기와 자기 환경을 개변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적자생존의 의미도 문명의 진보에 따라 그 내용이 부단히 풍부해 지고 시점도 다각화 되고 있다. 과거 류행되던 적응하면 생존하고 생존했으면 적응된 것이라는식의 단순한 직접 추리는 무한경쟁을 부추기고 약육강식이나 승자독식 같은 부조리를 형성하여 사회 불안의 요인이 되였다. 그러나 세계화추세와 과학발전에 따라 인간의 자아개발 능력이 전례없이 향상되고 환경선택의 여지가 류례없이 넓어져 현재 인간은 자기 형질에 알맞는 삶터를 수시로 바꾸도록 되여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생존경쟁의 의미에도 공존공영의 무게가 실리고 있다. 현재 제4차 산업혁명이 지능화시대를 몰고 오지만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이라는 경쟁의 기본 성질은 변함이 없다. 사회 상위권에 들고 하위권에 령락하지 않으려면 인간은 피동적 적응이 아니라 주동적 선택으로 변화에 부응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체력로동과 뇌력로동 상당 부분을 대체하는 이때 적응 가능한 삶의 터전이 넓은 자가 시대의 선두주자로 된다. 다시말하면 적자생존은 인류사회의 필연 법칙이다. 그렇다면 살아가고 잘 사는 비결은 자기에 부합되는 의식주행의 호조건을 부단히 조성하고 알맞는 여건을 찾아내는 것이다. 여기서 굼뜨면 비천한 일생이 아니면 보람없는 인생이 될 수 밖에 없다. 인간으로 말하면 진입 가능한 문화세계가 넓고 그 문화세계에 잠입할 ‘잠수함’이 구비되고 세계와 융합할 수 있는 인문주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일전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아들이 당장 대입시험인데 노라리만 부려 골이 아프다고 한다. 아들은 국내에서 대학에 꼭 입학해야만 되냐며 고중을 졸업하면 바로 한국류학을 떠나고 비용은 아르바이트로 챙기고 아버지 돈은 푼전땡전도 안 쓰고 류학공부를 마치면 중국, 한국을 드나들며 돈벌이를 한다는 선언을 내렸다. 들어봐도 ‘공부를 시키니 개포수를 배운다’는 역리(逆理)인데 그래도 적자생존이란 론리로 분해하니 일리가 있는 것 같고 자기 문화에 대한 깊은 확신과 자신을 가진다는 감회도 머리에서 돌았다. 이 애꾼도 문화로 살 자리를 만든다는 생각을 굴리면서 어디에나 붓질하고 있는가부다.  ///길림신문  ===================   [촬영: 중국신문사 류잔쿤(劉占昆) 기자]                                                                            [인민망 한국어판 5월 2일] 4월 29일 장시(江西, 강서)성 난창(南昌, 남창)시 완다(萬達) 문화관광성의 대형 주차장에 차량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모습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주차장의 모습은 마치 회로기판을 떠올리게 한다. 노동절 연휴 첫날부터 중국의 유명 관광지들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번역: 은진호)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4월 30일, 간쑤(甘肅, 감숙)성 둔황(敦煌, 돈황)시 밍사(鳴沙, 명사)산 웨야취안(月牙泉, 월아천)을 찾은 관광객들의 모습 [사진 출처: 신화사/촬영: 장샤오량(張曉亮)]
7    [타산지석] - 손도장의 위력 댓글:  조회:3055  추천:0  2018-05-03
[개혁개방 40년] 네번 찍은 손도장과 소강촌 (ZOGLO) 2018년4월28일  붉은 손도장, 이 중국농민의 소박하면서도 견결한 표현은 중국농촌개혁의 서막을 열었다. 40년전, 안휘봉양소강촌 촌민들은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처음으로 “호도거리”라는 생사적 계약에 손도장을 찍었다. 그 후로는 개혁의 앞장에 선 선줄군을 신변에 남기기 위해  붉은 손도장을 세번 찍고 이 중후한 토지 우에 시대적 전기를 써내였다. 처음 찍은 손도장 1978년의 한 겨울 안휘 봉양현 소강촌의 낮고 허름한 초가집에서 18명의 람루한 옷가지를 걸친 촌민들이 가물거리는 기름등잔불을 마주하고 “감옥살이도 할 수 있는” 큰일을 둘러싸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생산대에는 굶어죽은 사람이 60여명에 달했고 온가족이 굶어죽은 집이 6세대나 되였습니다.” 칠순이 넘은 소강촌 촌민 엄립화가 당시를 회억하며 말하였다. 그는 이 소강촌의 ‘호도거리’ 인솔자의 한사람이였다. 40년전, 소강촌은 ‘반소량을 먹고 구제돈을 쓰고 대부금으로 생산’하던 소문난 빈곤촌이였다. 늘 기근이 들어 농민들은 외지로 나가 구걸을 하였다. “처자가 있고 늙은 부모들이 있는 세대들에서도 며칠이고 밥가마에 불을 때지 못하였습니다. 저의 부친은 너무 굶어 침대에서 내려서지도 못하였고 말린 토란이라도 한입 맛있게 잡숫고 싶어했지만 어디서 구할 데가 없었습니다..” 다른 한 도거리호 엄홍창이 눈물이 글썽해서 말하였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18명의 촌민들은 붉은 인주를 묻혀 손도장을 꾹- 꾹 눌러 찍고 그 손을 움켜쥐고 맹세를 다졌다. 집집마다 밭을 나눠가지고 호도거리를 잘 해 보자고. “감옥살이를 하는 한이 있라도 촌민들이 한끼 배불리 먹는 모습이라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라고 생각했지요.” 역시 호도거리에 앞장 섰던 엄준창의 말이였다. 붉은 손도장을 찍는 순간부터 촌민들은 땅에 대한 무한한 기대로 가슴 부풀었고 농민들의 생산적극성은 드높기만 하였다. 한뙈기 땅이나마 “나누면서” 농민들은 황량한 대지우에 풍작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것을 보는 것만 같았다. 바람 새지 않는 벽이 없다고 했다. 1979년 4월의 하루, 당시 봉양현위 서기였던 진정원이 소강촌 소속인 리원공사로 검사를 내려 왔다가 이 “놀라운 비밀”을 발견하였다. “진정원은 한 젊은 부부가 밭에서 일하는 것을 보고 ‘두부부만 같이 일하는 걸 보니 당신들도 밭을 나눠가진 거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부부는 아무 말도 없이 수걱수걱 일만 했지요. 진정원도 그때 모든걸 번연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봉양현 인대상무위원회 원 부주임 진회인이 그때를 돌이키며 말하였다. 즉시 압제를 해버려야 하는 건가 아니면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인가? 성 시 현 각급 정부에서는 후자를 선택하였던 것이다. 1980년 음력설이 갓 지난 때, 중공안휘성위 제1서기로 사업하던 만리동지가 소강촌을 찾아왔다. 엄홍창의 집에서 만리동지는 그와 근 네시간동안 담화를 나누었다. “그이는 우리 집에 들어서면서 ‘마음대로 봐도 괜찮을가요?’라고 묻는 것이였습니다. 그러자 저는 ‘괜찮다’고 했지요. 그이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내 쪽에서는 속이 한줌은 했지요. 그이가 아니라고 한마디만 하면 나는 당장에서 감옥에 가야 하였습니다. 그런데 잠간 뜸을 들이던 그이는 ‘나는 언녕부터 이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감히 하려는 사람이 없었지요. 당신은 참 잘한 겁니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엄홍창은 열띤 어조로 말하였다. 붉은 손도장 18매는 호도거리책임제를 속출시켰다. 1980년 5월 등소평은 한차례 연설에서 공개적으로 “가정단위생산”를 긍정하였다. 1982년, 중앙에서는 처음으로 되는 농촌사업 “1호문건”을 출범하여 “가정단위 도급생산”과 “가구단위 생산도급제”를 사회주의 집체경제의 생산책임제라고 명확히 규명하였다. “호도거리”를 실시한 첫해, 송강촌의 량곡생산량은 13.3만근에 달하였다. 이는 1955년부터 1970년사이의 량곡생산의 총량과 맞먹는다. 인구당 평균수입은 400원이 되였는데 이것은 그 전해의 인구당수입 22원의 18배에 달한다. 이것은 20여년간 구제량을 타먹던 이 촌의 력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공산당이 없으면 새 중국이 없다 싶이 공산당이 없으면 오늘의 ‘호도거리’도 없습니다.” 년로한 엄준창은 격동되여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다시 찍은 손도장: 개혁 치부의 선줄군을 위하여 20여년이 지난 후 소강촌 촌민들은 다시 한번 붉은 손도장을 찍었다. 이것은 개혁의 길에서 촌민들을 이끌어 치부의 길로 나아가는 선줄군을 위한 선택이였다. 심호(沈浩), 그는 2004년 안휘성 제2기 파견간부로서 안휘성재정청으로부터 봉양현 소강촌에 와 당지부 제1서기로 된 사람이였다. 후날 소강촌 촌민들은 그를 촌에 남기기 위해 세차례나 손도장을 찍으면서 그를 만류하였지만 처음부터 반겨맞이한 것은 아니였다. 1978년후로 중국의 농촌들은 날따라 새로운 면모로 일신하였다. 소강촌은 “하루 밤 새에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는 선을” 넘어섰지만 “20년간 부유의 대문에 들어서지는 못하였다.” “당시 심서기는 ‘3개 발전단계’라는 발전사상을 제기하였습니다. 현대화농업을 발전시키고 공업을 꾸리고 관광업을 벌릴 것을 제의하자 어떤 군중들은 심서기가 허튼소리를 친다고 꾸짖었습니다. ” 당시 소강촌의 당지부 부서기를 담당했던 장후화가 터놓았다.   “그때 농민들은 자기 밭을 잘 다루어 배를 곯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였지 잘 먹고 잘살자는 생각을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역시 호도거리에 앞장에 섰던 관우강이 말하였다. 소강촌은 지리적으로 회하남안에 위치하고 있고 현성과 28키로메터 떨어진 마을이다. 당시 108세대에 경작지면적이 1800무, 인구당 3무 푼한 땅을 다루었는데 이것은 중국전통농촌의 축도로 된다. 먹고 입는 문제가 해결되였으나 촌조직이 장시기 흩어져있고 관리모식이 뒤떨어졌으며 기초시설이 박약하였다. 심호가 소강촌에 발을 들여놓을 때는 촌민들의 인구당수입이 200원을 웃돌고 집체 빚이 3만원이나 되였다. 그는 두달동안 전 촌 108세대를 집집이 방문하면서 마을이 발전해야만 촌민들이 부유하게 살 수 있다는 도리를 설명하였다. “그는 당원가부들과 군중대표들을 조직하여 화서, 대채 등 이름난 촌들을 참관하면서 비교속에서 차이를 느끼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개혁에서 앞장선 사람들이라 하지만 시대와 함께 발전하지 않으면 결국 개혁의 장애물이 되고마는 것입니다.”관우강의 소감이였다. 오랜 세월동안 소강촌은 단 한갈래 흙길로 외계와 통하고 있었다. 이 페쇄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심호는 50만원이라는 자금을 쟁취하여 포장도로를 수건하였다. 그는 촌민들을 이끌고 물자를 아끼고 로력을 아끼면서 돈을 절약하였을뿐만 아니라 촌민들의 참여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매일 공사장에서 올리 뛰고 내리 뛰면서 닥치는대로 일을 해재꼈다. 팔을 걷어부치고 두손으로 세멘트를 이겨내면서 시공을 질적으로 보장하고 절반자금을 남기기도 하였다. '우의대로'라고 이름한 이 도로는 소강촌의 첫 홰불로 타올라 그후로 호도거리기념관을 짓고 홍색관광을 이끌어냈으며 자금을 인입하여 공장을 경영하고 촌민들은 집중계획으로 새 아빠트에 입주하였으며 좋은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일어났다… 2006년 소강촌의 인구당 평균수입은 5000원을 넘어섰다. 이해 가을 심호 서기의 임직기가 만기되자 촌민들은 깊은 정을 안고 심서기를 만류하는 청원서를 쓴 후 98매의 진붉은 손도장을 찍고 또 찍었다. 그 무엇인들 이 붉은 손도장보다 더 농민들의 깊은 감정을 잘 표달할 수가 있을가? 심호는 드디여 마을에 남기로 작심하였다. 소강촌: 개혁을 심화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심호가 계속 이 마을에서 사업한 3년은 고스란히 소강촌이 개혁을 실시한 3년이였다. 소강촌은 전형적인 농업형마을로서 농촌토지는 분산된 가정경영으로 다루었는데 이것은 현대농업발전을 제약하고 있었다. 심호는 한차례의 촌민대회에서 자기가 오랫동안 구상해온 발전사상을 제출하였다. 토지를 집중하고 합작사를 룡두로 자원을 종합정돈하며 촌민들은 토지를 가지고 주식에 가입하는 형식을 취하자고 하였다. 이것은 결국 소강촌의 밥가마를 깨는 형국이 되는 것이였다. 어느 때는 '목이 떨어질' 각오를 하며 나눈 토지를 어쩌면 또다시 양도를 하다니?! 대대로 이 땅을 부치며 먹고 살아온 농민들은 그 ‘리론’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속에는 당년의 호도거리능수 엄준창도 있었다. “과거에 밭을 나눈 것이 개혁이라면 오늘날 토지를 합리하게 양도하는 것도 개혁입니다.” 심호는 엄씨댁으로 분주히 나들며 토지양도 우대정책과 눈앞의 리익에 대해 입이 다슬도록 해석하였다. 엄씨는 드디여 설득되여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그가 이렇게 애쓴 덕에 2년사이에 소강촌에서는 600무의 토지를 양도받아 규모화 량곡, 포도 종식업을 발전시켰으며 양송이산업과 첨국양식기지 등 일련의 현대농업을 발전시켰다. 적당한 규모생산은 파죽지세로 일떠났다. 엄준창의 아들 엄덕우는 소강촌의 현대농업생산의 선줄군이다. 심호 서기의 도움으로 그는 100여무의 밭을 양도받고 포도재배를 시작하였는데 한 무에서 식량생산의 10배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 그들 부자는 만나는 사람마다 잡고 “현대농업이야말로 소강사람들을 살려내는 구성!”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겨울이 가고 여름이 오면서 어느덧 또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소강사람들은 부유하게 잘살고 싶은 갈망과 개혁을 심화할데 대한 기대를 안고 또다시 심호 서기를 남겨두기 위해 붉은 손도장을 찍고 찍었다. “손도장이라고 쉽사리 찍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백성의 인정을 받아야만 손도장도 찍어주는 것입니다.” ‘호도거리’선줄군 엄금창도 굳게 닫힌 입을 열었다. 2009년 11월 심호 서기는 끝내 이 땅 우에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소강사람들은 세번째로 심호 서기가 이 곳에서 영원히 잠들기를 바라며 손도장들을 무겁게 찍었다. 2016년 그때로부터 소강촌에서는 집체자산주식합작제개혁과 “세가지변화”개혁시점사업을 전개하였다. 2018년 2월 9일, 촌민들은 처음으로 집체경제수익주권분홍을 탔다. “네차례에 거쳐 찍은 붉은손도장은 소강촌의 발전을 견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국공산당은 영원히 개혁의 견정한 지도자이며 추동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현재 소강촌의 당위 제1서기로 사업하고 있는 리금주는 감개무량하게 터놓았다. ///편역: 길림신문 김청수 편역
6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피서명산 = 장백산, 어서 놀러 오이소 댓글:  조회:2991  추천:0  2018-05-03
장백산 ‘2018 중국 100대 피서명산’ 제1위 (ZOGLO) 2018년5월3일  관리위원회 혜민조치 시행 4월 22일, 계강방글로벌경쟁력연구회, 향항아태환경보호협회, 향항세계문화지리연구원에서 련합으로 연구, 평가한 ‘2018 중국 100대 피서명산 순위’ 및 ‘계강방순위’2018 중외 피서 관광목적지 순위가 확정된 가운데 장백산이 ‘중국 100대 피서 명산 순위’에 1위로 이름을 올렸다. ‘계강방순위’ 2018 중외 피서관광목적지 순위는 세계피서 명도시 순위, 중국피서 명도시 순위, 중국피서 명산 순위와 중국피서레저 100개 우수현 순위 등 4개 종목이 포함된다.   100대 피서명산 관광 목적지 평가에서 장백산은 ‘백두상수(白头相守)’의 미명으로 1위에 올랐으며 산서성의 오대산, 안휘성의 황산이 뒤를 이었다.   국가 5A급 풍경구인 장백산은 천년 적설과 만년송, 천하 제일봉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신산(神山), 성수(圣水), 기림(奇林), 선과(仙果)’로 칭송받고 있다. 장백산은 천지, 장백폭포, 지하삼림, 화산온천 등 명소와 대자연이 부여한 풍부하고 독특한 자연자원에 의거해 생태관광, 풍광관광, 변경관광과 민속관광을 두루 할 수 있는 명승지로 부상했다.   최근 들어 장백산관리위원회는 리극강 총리가 ‘정부사업보고’ 에서 제기한 중점 국유 풍경구 입장료 하향 조절 요구에 따라 ‘다섯가지 혜민 조치’를 시행했다. 5월 1일부터 10월 8일까지 북쪽 풍경구와 서쪽 풍경구의 개방시간을 연장하고 입장권을 한장 사면 3일간 회수 제한 없이 북쪽 풍경구와 서쪽 풍경구를 관광할 수 있으며 65세 이상 로인, 장애인, 현역군인, 인민경찰, 기자, 관광가이드 등 인원들은 무료로 록색통로를 통해 입장할 수 있고 서쪽, 북쪽 풍경구에서 해돋이를 보고 서쪽 풍경구에서 별하늘을 감상할 수 있으며 신고를 받는 즉시 처리하고 ‘리유 없이’ 배상하는 등 혜민조치는 해내외 손님들이 관광업 발전의 성과를 누리게 하고 있다.    ///길림일보/연변일보 
5    [록색문학평화주의者]-"하늘 길 여는 문제",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4219  추천:0  2018-05-03
남북한 직항로는 왜 바다로 돌아갈까 (ZOGLO) 2018년5월2일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영공 개방과 국제항로 신설을 요청한 것으로 동아일보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올해 3월 ‘날飛’에서도 이 같은 가능성에 대해 전해드린 적이 있었는데요. 북한이 예상 외로 빠르게 자국 영토와 영공을 개방하고 나서는 모양새입니다.  북한이 ICAO에 영공 개방과 국제항로 신설을 요청했다는 동아일보 2018년 5월 2일자 단독 보도. ▷관련기사 : [이원주의 날飛] 北 하늘길도 다시 열릴 수 있을까 ▷관련기사 : [단독]北 “해외항로 늘리고 영공 열겠다” 하늘길 제재풀기 나서  북한 영공이 열리고 남북 항공기가 교류할 수 있어도 남북을 잇는 항로는 한동안 여전히 ‘서해 직항로’, ‘동해 직항로’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2월 평창 올림픽 당시 남북 단일팀 협의를 위해 남한을 찾았던 북한 고위급 대표단은 ‘서해 직항로’를 이용했습니다. 그 고위급 회담의 결과로 북한 마식령 스키장에 가서 전지훈련을 했던 남한 국가대표 상비군 선수들은 ‘동해 직항로’를 이용해 북한으로 갔죠. 올림픽 기간 모란봉 예술단의 남한 공연에 대한 답방으로 북한 공연을 떠났던 남한 공연단 역시 ‘서해 직항로’를 이용해 평양에 갔고요. 평창 겨울올림픽 당시 단일팀 등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방남했던 북한 고위급대표단을 태우고 서해직항로를 건너 인천공항에 내린 북한 김정은 전용기. 동아일보 DB 서울 인천공항에서 평양 순안공항까지 직선으로 이으면 200km가 살짝 넘는 거리가 나옵니다. 거리가 너무 가깝다보니 고속철도에 손님을 크게 빼앗긴 김포-대구 직선거리(약 250km)보다 가깝죠. 이 가까운 거리를 두고 남북한을 오가는 비행기는 서해로 동해로 일부러 빙 둘러서 오갔습니다. 40분이면 될 비행 시간은 1시간 반 정도로 두 배나 더 걸립니다. 하늘에는 장애물도 없는데, 왜 남북 직항로는 ‘직항로 아닌 직항로’가 되었을까요.  남한과 북한을 항공기로 오갈 때 쓰는 직항로. 각각 서해와 동해바다로 빠져나갔다가 북한으로 올라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휴전선이 하늘 끝까지 뻗어있기 때문입니다. 휴전선 비무장지대 상공은 ‘비행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있어서 어떤 민간항공기도 이 휴전선 상공을 비행하지 못합니다. ‘P-518 한국전술지대’라는 이름이 붙은 이 비행제한구역에는 군 작전에 꼭 필요한 항공기나 응급구조, 산불진화 같은 특수목적 항공기만이 지극히 제한적으로 허가를 받아 이 공간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휴전선 상공에 배치된 비행금지구역. 군 작전이나 화재·긴급구조 등 특수임무를 제외하고는 어떤 항공기도 지나갈 수 없습니다. 자료 : 주한미군 육군 제8군 따라서 휴전선을 넘어 비행기가 오가려면 먼저 이 비행제한구역이 해제되거나, 아니면 민간 항공기가 상시 오갈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허가는 우리나라 국방부에서 마음대로 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P-518 비행제한구역은 한미연합사령부, 주한미군, 유엔군 사령부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는 공간이기 때문이죠. 이 공간에 항공기가 드나들기 위해서는 UN과 미국(주한미군), 한국이 한꺼번에 협의를 해야 합니다.  ※P-518 한국전술지대를 비행할 때 지켜야 할 비행 절차 문건에 표시된 이 지역의 관리 주체. 유엔군사령부와 한미연합군사령부, 주한미군이 공동 관할하고 있습니다. 자료 : 주한미군 육군 제8군 그렇다고 휴전선 상공을 오가는 직항로를 아예 생각조차 않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우리 정부는 예전부터 육로 상공을 가로지르는 직항로를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서울과 평양, 양양에서 청진-나진을 잇는 직항로를 개설하는 구상입니다.  ※동해·서해 직항로가 아닌 육상 상공에 직항로를 신설할 경우의 항로 구상안. 서울(안양VOR)과 평양(순안공항), 양양(강원VOR)과 북한의 청진·나진을 잇는 항로가 유력합니다. 이 구상안은 남한과 북한의 주요 방문지역, 그러니까 평양이나 백두산, 청진·나진 등을 최단거리로 이어주는 항로인 동시에, 남한 국적기가 미주나 유럽으로 향할 때 최단거리로 주파할 수 있도록 숨통을 터주는 역할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는 미주로 가려면 동해를 가로질러 일본으로 건너간 뒤 태평양 상공으로 빠져나가는 항로를, 유럽으로 가려면 반대로 서해를 가로질러 중국으로 건너간 뒤 러시아 상공으로 진입하는 항로를 쓰고 있습니다. 남북 직항로가 신설되면 유럽과 미국 동부로 가는 비행기의 최단 경로(노란색)와 현재 항공로(흰색). 직항로가 개설되면 양대륙으로 가는 장거리 항로가 상당히 단축될 전망입니다. 남북 직항로가 신설되면 유럽과 미국 동부로 가는 비행기의 최단 경로(노란색)와 현재 항공로(흰색). 직항로가 개설되면 양대륙으로 가는 장거리 항로가 상당히 단축될 전망입니다. 우리 정부는 남북통일이 될 경우에 대비해 통일 이후 북한의 항로를 크게 늘리는 방안도 오래 전부터 구상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가로 방향으로만 연결된 현재의 북한 항로를 9개 간선으로 크게 늘려 ‘통일한국’ 국내선뿐만 아니라 유럽-일본이나 미주-중국 중부·동남아 등지를 잇는 항공기 수요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복안으로 읽힙니다. 통일이 된 이후 북한 지역(現 평양 비행정보구역)에서 운용될 항로 구상안. 남북 방향 항로가 크게 늘어나게 됩니다. 자료 : 통일된 남북한의 효율적인 항공교통흐름관리에 관한 연구(국토교통부) 정상회담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된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이 여러 가지 숙제를 안고 있는 것처럼, 남북 직항로도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 한아름입니다. 하지만 남북이 진정성을 가지고 꾸준히 추진해 나간다면 비행기를 타고 북한 하늘을 통과할 수 있는 날이 정말 머지않은 시기에 올 수도 있습니다. 조만간 비행기를 타고 북한 하늘을 지나가면서 ‘하늘에서 본 백두산 인증샷’을 찍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동아일보
4    [이런저런] - "바위벼랑 구멍가게" 댓글:  조회:2918  추천:0  2018-05-03
후난 핑장에 등장한 ‘암벽 편의점’ [ 2018년 05월 02일 ]     최근 후난(湖南, 호남)성 핑장(平江)현 스뉴자이(石牛寨, 석우채)의 ‘암벽 편의점’이 정식 영업을 시작했다. 편의점은 스뉴자이 ‘비아 페라타’ 암벽등반 챌린저대회가 열리는 암벽 위에 설치됐다. 지상으로부터의 높이는 100m에 달하며 암벽등반을 하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간식과 음료수 등을 판매한다. /중신넷/인민망                                         베이징(北京)~장자커우(張家口) 철도는 중국이 자체적으로 철도를 건설하지 못할 것이라는 100여년전의 주장을 깨뜨렸다. 베이징~장자커우 고속철도는 세계 스마트 철도의 물꼬를 틔웠다. 베이징~장자커우 고속철 특집편 ‘중국 고속철의 새 모델 수립’ 캡처   베이징~장자커우 고속철 스마트 열차 시속 350km 23일 오후, 중국철도총공사(中國鐵路總公司)가 발표한 베이징~장자커우 고속철 스마트 열차의 설계방안은 스마트 열차의 외관, 이미지, 기능을 자세히 보여주었다. 스마트 열차는 푸싱호(復興號) 열차의 스마트 업그레이드판이자 중국이 최초로 독자 연구개발한 베이더우(北斗) 위성항법시스템을 채택해 세계 최초로 시속 350km의 자율주행을 실현했다.   쌍둥이 열차 ‘룽펑청샹(龍鳳呈祥, 용봉정상)’과 ‘루이쉐잉춘(瑞雪迎春, 서설영춘)’ ‘푸싱호’의 스마트형인 베이징~장자커우 고속철은 ‘푸싱호’ CR400BF형을 토대로 현대화된 최신 과학기술 운용을 통해 스마트화, 안전감과 쾌적도, 녹색 친환경, 종합 에너지 절약 등 분야에서 새로운 발전과 돌파를 실현했다. 베이징~장자커우 스마트 고속철은 ‘룽펑청샹’과 ‘루이쉐잉춘’이라는 이름의 쌍둥이다. 열차 앞 부분은 매와 돛새치(sailfish)를 본 떠 뛰어난 공기 역학 성능과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한다. 베이징~장자커우 스마트 고속철 ‘룽펑청샹’ 베이징~장자커우 스마트 고속철 ‘루이쉐잉춘’   =======================     타지역 사람들이 특히 몰리는 곳은 단동 신구 지역. 조선 황금평, 위화도와 맞붙은 이곳에는 아직 미개통된 신압록강 대교가 있다. 2014년 7월 개통 예정이였던 신압록강 대교는 중조관계 악화를 개통이 미뤄져왔다. 하지만 조선반도 정세가 완화하면서 개통 기대감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향후 대교가 개통되면 물류업체들이 속속 단동신구로 옮겨올 것으로 전망된다.
3    [고향의 자랑] - 연변, 진달래, 민속향연... 댓글:  조회:3011  추천:0  2018-05-03
[연변의 향연] 진달래와 민속문화의 향... [ 2018년 05월 03일 ]     진달래와 민속문화의 향...///사진 길림신문 김성걸 기자                                   
2    [쉼터] - "로망쟁이" = 5월 봄눈 댓글:  조회:1984  추천:0  2018-05-03
봄의 불청객... 연길 5월의 눈 [ 2018년 05월 03일 ]     5월 2일, 연변 대부분 지역에 낮의 보슬비에 이어 저녁에 눈이 내렸다. 비속에 꽃펴나는 함박눈은 5월의 화초를 더욱 어였하게 장식하였다.  사진은 당일 촬영 애호가들이 눈오는 정경을 찍어 위챗모멘트를 달구던 일부 "작품"들이다. / 길림신문                                                                        
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백두산 호랑이"는 우리 친구... 댓글:  조회:4076  추천:0  2018-05-03
'백두산 호랑이'.. 아시아 최대 규모 백두대간 수목원에 방사 엄지원  2018.05.03.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뉴스데스크] ◀ 앵커 ▶ 숲 속에서 뛰어노는 백두산 호랑이 보러 오세요. 백두산 호랑이가 뛰어노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목원이 오늘 경북 봉화군에 문을 열었습니다. 야생 적응 훈련을 마친 호랑이 두 마리가 일단 방사됐는데요. 여러분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엄지원 기자입니다. ◀ 리포트 ▶ 광릉수목원의 2.5배 크기, 5천 헥타르 규모의 백두대간 수목원입니다. 그 중심엔 '호랑이 숲'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람한 체구의 7살 수컷 '우리'가 넓은 숲을 제 집 마냥 어슬렁거립니다. 13살 암컷 '한청'과는 스스럼 없이 장난을 칠 정도로 친해졌습니다. 지난해 서울대공원에서 이주해온 우리와 한청은 반년 동안 숲 적응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김용하 /백두대간 수목원 원장] "동물원에 가면 호랑이들이 굉장히 정적으로 있잖아요, 근데 여기 호랑이는 방사 훈련을 했습니다. 그래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들을 볼 수 있을 거고요." 호랑이 숲은 4.8 헥타르, 축구장 7개를 합친 넓이입니다. 자연 상태에 가깝게 나무와 대형 연못을 배치했고, 갑작스런 비바람이나 추위에 대비해 고인돌 구조에 열선도 설치했습니다. 야생성을 키우기 위해 하루 두 끼 식사로 닭 5킬로그램, 소고기 1.5킬로그램을 먹이고, 금요일마다 금식을 시킵니다. 백두산 호랑이들은 사육동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숲에서 지냅니다. 6미터 높이의 철조망과 전기 울타리 너머로 일반인들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나이 많은 17살 수컷 두만이도 적응 훈련 중인데, 수목원은 앞으로 10여 마리를 더 풀어놓을 계획입니다. 오늘 첫 문을 연 백두대간 수목원엔 식물 2천여 종, 385만 그루가 자라고, 식물종자 4만 6천 점을 보관한 '씨드볼트'도 설치됐습니다. MBC뉴스 엄지원입니다. 엄지원 기자 =========================   (안동=뉴스1) 피재윤 기자 = 3일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숲에서 백두산 호랑이가 거닐고 있다.(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제공) 2018.5.3/뉴스1 =================== [앵커]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이 완공 3년 만에 정식으로 개장했습니다. 백두산 호랑이들이 숲에서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멸종위기의 산림자원을 보존하는 역할도 하게 됩니다. 우한솔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경북 봉화군 문수산과 옥석산 일대. 5천 여 ha에 이르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곳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단연 축구장 7배 넓이의 '호랑이숲'. 서울대공원에서 기르던 호랑이 13살 '한청이'와 7살 '우리'도 개장과 함께 이곳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감개무량하고 이게 야생이구나 이게 야산이구나 싶고, 깊은 산속에 있는 이런 촌에서 동물을 (볼 수 있어서) 기쁩니다."] 수목원은 이 숲에 호랑이를 10마리까지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마릿수를 늘려갈 계획입니다. 세계 최초의 지하터널형 종자 저장시설인 '시드 볼트'엔 2023년까지 멸종위기에 놓여있거나 연구가치가 있는 야생식물 종자 30만점이 저장됩니다. 연중 영하 20도를 유지하며 최대 2백만 점의 종자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김용하/국립백두대간수목원장 : "멸종위기 식물들을 수집을 해서 안전하게 보존하고, 복원하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이 되고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선 고산식물과 야생화 등 2천여종의 다양한 식물들도 만나볼 수 있어 숲을 통한 휴식과 치유의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KBS 뉴스 우한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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