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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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시] 키스의 나비 (외7수) 댓글:  조회:173  추천:0  2020-10-12
키스의 나비(외 7수)   박장길   이마에 남은 키스의 나비는 그냥 앉아있다 여름 지나  가을 지나 겨울 넘어 봄을 전령하는 노란 우표로 붙어있으면서   실어다 줄 것이다 여름은 가을로 성숙되고 가을은 겨울로 바뀌고 인생도 희여져 백발이 되는 그 침묵의 계절 죽음에 붙잡히는 그날까지 데려다줄 것이다   가장 짧은 느낌에서 가장 긴 여운으로 남아있는 달콤한 흔적   봄을 담은 봉투를 나르는 날개여.함께 눈감아 세상 닫고 몸을 벗을  마음의 마음이여!   새벽이슬을 먹고 산다는 나비는 하나의 악기ㅡ 꽃의 악보들을 더듬더듬 찾는 그 감각이 마음을 만져준다   날개로 바람을 읽으며 발끝으로부터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춤추는 악기 나비 하나 있어  꽃의 음자리를 타고 나의 계절은 가볍게 튕겨진다   하늘의 별들이 온통 깨져 입안으로 빨려들어오던 그 신선한 밤의 첫 키스의 나비   할랑할랑 춤추며 날아오고 있다 눈이 부시도록 그리운 그리움의 그리움아      작업복   로동을 풀어버리고 벗어놓은 옷이 피곤한 기색을 하고 의자에 걸터앉아있다   안락을 유혹하고 있는 의자에 피곤을 기대고 앉아있다   사람을 벗어버리고 의자에 몸을 부려둔 옷이 피곤한 단내가 묻어있는 하루를 고이 앉히고 있다   로동을 내려놓고 새 사람을 갈아입을 수도 없는 옷 로동을 팔지 않을 수도 없는 옷   높아지는 나이를 무겁게 어깨에 지고 유혹의 옷을 입은 거대한 욕망의 산을 오르며   가난을 두르고 앉은 가난으로부터 출애굽하려고 아무리 소금산을 쌓아도 욕망에는 정상이 없고   욕망은 더 큰 욕망을 욕망해서 욕망의 빈곤을 채울 수 없다 고단한 한벌 목숨   지친 몸 벗어 걸어둔 나무만이 그 자리에 서 있다   세상유혹에 지지 않은 나무 아래 하루를 벗어놓고 하루의 로동을 벗어놓고 피곤한 몸 부려놓았다 하루의 피곤을 내려놓았다     엄마의 손     남김없이 주면서도 언제나 남아있는 풍부한 손이다   아무리 주어도 모자라고 모자라는 가난한 큰 사랑이다     빈자리 ㅡ이발을 심고 하늘을 본다     아버지는 치아를 하지 않았다 곡식만 심어가꾸셨다 그 낟알을 씹어먹으며 나를 키운 이발 ㅡ   아버지를 먹은 이발은 아버지 같이 더러 세상에 없다   그 빈자리는 심어채웠지만 아버지의 빈자리는 심을 수가 없다   오늘을 먹고 래일을 먹으면서 먼 후날까지 나를 받들어갈 하얀 기둥을 세웠다   평생 오곡을 심었지만 자신의 몸엔 심은 적 없는 울 아버지!   나의 뿌리를 깊이 박고 씹어보리라 아버지의 몫까지 풍진 세월 오래 씹어보리라     양돈장     꿀꿀 양돈장은 욕심들의 전람회장   욕심을 경쟁하며 죽음을 부르는 피둥피둥 욕심돼지들을   가까이 본 몸에서도 살이 자라 올라   무거운 몸 이끌고 나른하게 펼쳐져 있는 오솔길로 할할 지쳐 헉헉 올 때   빨간 목댕기를 두른 청동빛 가슴의 장꿩이 푸드득 울화통 같이 시뻘겋게 솟구쳐 오르며   나를 깨워 쳐다본 하늘에서 흰 낫 하나 날아와 찍는다 탐욕의 손들의 손들의 손을!       비 내리는 창가     한곳에 오래 뿌리 내리고 살아온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안정감이 찾아오는 비 오는 날 비방울이 그리움 두드리는 비방울이 락서하 듯이 내리는 창문에   회복기의 환자처럼 헝클어진 신체리듬들이 평온하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비 오는 날 창문유리에   네가 그리울 때는 네 이름 닳도록 부르다가 그래도 그리울 때는 죽 죽 울고 있는 유리창에   네 이름 손가락으로 쓰면 너는 숱한 개울물 되여 눈에서 생명을 길어마시던 물 넘치는 쳐녀로 가슴에 따뜻하게 흘러내린다   내게 머물러 있는 먼 앞날까지 내 마음에 머무를 너 눈 감으면 잘 보이는 너 눈 뜨면 너의 빈자리   비가처럼 내리는 비 세월의 음악 같은 비 바이올린의 슬픔 선률 같이 가늘어지며 그치면 노을이 붉은 입술을 유리창에 부딪쳐 검게 멍든다       시내물을 품고 여유를 배운다     마음 안에 하나의 시내물이 흐르게 하고 빈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다 하루의 삶을 낚아올린다   집착 속에 굳어졌던 근육들에 숨을 쉬며 평화를 입혀주고   세상을 잡은 거미줄로 옷 입혀있던 몸이 아무 조건없이 물속에서 자유를 유영할 때   머리 우에선 물방울들이 춤을 해빛을 타고 춤을 추고 있다   가슴 속에 하나의 시내물이 흐르게 하고 안에 멈춰서 부패되고 있는 것을 흘러보내며 여유를 배운다     어둠의 혼   삼라만상이 어둠의 품에 안겨 어둠이 되였다 숲은 고요의 무덤으로 가라앉고   나는 머리를 수그리고 발끝에 손끝에 집중한다 인생은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놓친 옛날의 나비를 찾아 헤맸던 꿈길에 나를 놓고 왔다 말은 깊은 잠 속에 재워두고   몸무게를 빼버린 그림자 같이 어둠의 혼을 입는다 자연의 소리에 귀를 맡기고   나의 세월로는 다갈 수 없는 곳에 홀로 우뚝 앉아있는 진리의 형제여 고요함에 이른 업의 얼굴이여   태양은 동쪽에서 서쪽에로 옮겨 붙는 불길이다 나의 일몰 앞으로 가는 길 비춘다   어제를 오늘에 더해 참구하는 나의 밤기도가 아침 동의 해돋이로 익을 때 어둠의 혼은 빛의 폭포를 쏟으리라  
33    [시] 눈이 녹으면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외7수) 댓글:  조회:226  추천:0  2020-10-09
  눈이 녹으면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외7수)     박장길     하늘이 하얗게 지상에 몸을 푼다 서럭서럭 내리는 저녁의 백설 응크리고 혼자 지는 해 묻힌다 설폭(雪瀑)이 저녁을 덮고 있다   마을에 사는 어둠만이 속절없이 백발이 되여가고 코잔등에 간질간질 내려앉으며 희뜩희뜩 날리는 눈속 빈 들녁을 전보대만이 건너가고 있다   한컬레 고독을 두발에 신고 한컬레 즐거운 상상을 타고 겁나게 내리는 눈속에 조용히 세월만 맡기고 서서   지금 내 눈이 헤매고 있는 천년의 허공은 눈송이로 부서져 내리고 있다   이토록 가볍게 제몸의 무게를 하얗게 부셔 내리는 일은 겸손하고 참 겸손한 일   모든 것 포기한듯이 오시는 눈에 적막의 공간을 마음속에 넓혀간다 그 안에 새 마음을 만들어간다   하얀 버선발 사쁜 디뎌 찾아온 겨울 온 몸으로 부딪치며 내리는 은총이 빛나는 눈이여! 이 눈 다 녹으면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       밤눈   밤눈은 펑펑 차헤드라이트 불빛속으로만 쏟아진다   굽이굽이 밤길을 따라오며 퍼붓는다   하늘에서 뛰여 내리는 흰빛무리들 빛을 찾아 날아드는 부나비떼 아니다   세월에 썰리고 또 썰려 톱밥으로 떨어지는 겨울의 부스러기 빛으로 쏟아진다   어두울수록 서로를 살리는 빛의 만남 대지에 남는 것은 그래서 순결뿐이다       숨을 멈춘 농가의 굴뚝에     흰눈이 나무그늘을 파묻은 순하게 엎드린 마을에 꼬리 짧은 해살이 고요히 머물려 있다   마주서면 세상 안이요 돌아서면 세상 밖이다   세상안과 세상 밖 사이에 백여년의 시간을 몸안에 가두고 있는 느티나무 희미한 고요의 그늘을 밟고   참새 한 마리에게도 다정하고 싶은 다함없는 가슴속에 시골의 시간이 어둡게 눕는다   숨을 멈춘 농가의 굴뚝에 석양이 타오르고 황소같은 어둠이 뒤산에서 몰려내려오고 있다       박쥐     물구나무서보면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거꾸로 보는 박쥐를 알 것 같다   거꾸로 보아야 바로 보이는 역설을 온 몸으로 펼치며 가슴을 쏟아 비우는 박쥐, 밤의 날개   낮에 눈감고 밤에 없는 듯이 사는 검은 옷, 밤의 천사   밤을 걸을 때마다 그 날개아래 펼친 품처럼 따슨 온기를 입고   깊이 사랑한다 깊은 밤을 밤의 깊이에 깊이 빠진다 밤에 친구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하얗게 새운 밤을 줄 세우면 긴 세월 ㅡ 박장길은 쥐띠가 아니라 박쥐띠여야한다   지상의 쥐띠를 손잡아주는 박쥐, 반짝이는 밤의 검은 꽃   실면할 때마다 내가 생각하는 박쥐 세상을 거꾸로 보는 지혜를 가르쳐주는 밤의 쪼각   그 혜안을 배우리라 그러면 가슴에 고여 앙금된 것들이 다 쏟아져 버려지리라       붉은 명절     집건물이 피를 토했다 주변 가득 토혈했다   할복한 폭죽껍질의 벌건 피로 명절은 붉다   땅을 두르리며 하늘에 웨치며   울화통가슴을 터뜨리고 피를 흩뿌렸다   하늘은 붉게 터지고 땅은 붉게 물들었다   찬란이 꺼진 뒤 붉은 거리 고독을 밟는다       벽시계     똑딱똑딱 때를 새김질하는 벽시계 방안을 가득 채운다 텅 빈 방을 메우고 있다   한밤중이면 신경이 있는 대로 날카로와지게 나를 바늘같이 쫓는 불길한 탁목조(啄木鸟)   길고 짧은 량다리 절뚝거리는 벽시계 그래도 멈춤없이 시간을 끌고 가는 바퀴   벽에 부딪쳐 돌아온 초침의 메아리 창밖 하늘에 퍼져나가서   싱그럽도록 젋은 새벽을 데리고 온다       해빛 그물     나뭇잎 사이로 쏘아오는 한타래 노란 해살. 해빛그물이 나를 누운채로 매달아 공중에 떠있으면서 달콤한 나른함을 누리고 있다   송화가루 묻어있는 해볕속에 눈을 그러감고 무수한 무지개를 속눈섭에 만들며 눈 한번 환하게 부셔봐도 좋아라   현명한 게으름을 피우며 마음속에 고요를 퍼담는다   홀로 고독으로 방황의 종점에 가서 외로움을 넘어서리라 혼자를 두려워하며 진리를 놓치는 실수는 하지 않으리   옆에는 하늘을 꾸밀줄 아는 거미가 허공에 짜놓은 이슬이 하얀 비단그물에 걸린 벌레 ㅡ 우리는 지상의 두 벌레 나는 누구에게 바치는 조공일가?   하늘에 매단 금빛그물 나무에 매단 은빛그물 까만 한점 지상의 어부는 보이는데 하늘의 어부는 어디에 있을가   허공에 귀를 대고 있어도 하늘길 자국없이 걸어올 그 어부의 발소리 들리지 않고 해볕들이 쟁쟁 소리를 내며 기타를 치고 있다   누워있으면 주검을 생각하기 마련이다ㅡ 해살에게 붉은 수혈을 받으며 해빛 한줌, 용기 한줌 손바닥에 움켜쥐였다   가장 순도 높게 타오르며 고개를 끄덕이는 해를 가슴에 바르고 땅을 박찼다 터지킴이 까치가 하늘에 목을 꽂고 높이 떠오른다       흙냄새     꽃에 허리굽혀 흠향하면서 놀란다 꽃향기에 섞여있는 흙냄새   놀란다 모든 냄새가 향기로울 때 그 속에 섞여있는 흙냄새!      
32    [시]락엽을 태우며(외6수) 댓글:  조회:254  추천:0  2019-07-18
락엽을 태우며 박장길   꿈의 껍질을 모아 태운다 타버리는 꿈의 향기는 좋아라 하얗게 가맣게 비여지며 죽어버리는 꿈의 시체를 파묻는다   화려한 초록의 기억은 사라지고 시간이라는 것에서 바작바작 타는 마른 소리를 옆구리로 듣는다   가슴에 살다 무덤에로 간 잎들을 스쳐 륜회의 바퀴는 가을을 지나가며 어제의 마지막을 건너가고 있다   내가 무엇인가를 찾고 있을 때 그 무엇인가 나를 찾고 있지 않았을가 길이 만남이라면 그 만남은 열림이리니 꿈의 목적지로 데려다줄 것이다   아직 초으스름도 아닌데 발걸음은 버릇을 잃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이 가을의 한낮을 나 그냥 갈 수는 없어라     진홍가슴새    너는 본래 눈맛 없는 재빛이였다 그 사람의 이마에 박힌 가시를 피 흐르는 이마에서 입으로 뽑을 때 그 분의 피 한방울이 네 가슴에 떨어져서 피빛의 진홍가슴으로 되였다 친절한 마음씨 하나로 변신한 네 날개그늘 아래 세상이 숨었다     해살명상   금빛찬란한 해살이 머리 속으로 쏟아져 들어와 온몸에 깊이 스며들고는 다시 발가락으로 빠져나가면서 나를 깨끗이 정화시킨다   그 청정한 빈 장소로 어둠이 발끝으로부터 스며들어 온몸에 어둠의 강이 흘러넘치며 다시 머리를 통하여 밖으로 빠져나가며 나를 변화시켜 놀라게 한다   저쪽에서 태양이 떠오르고 내 배꼽에서 빛줄기가 서서히 솟아오르는 소리를 즐길 때 그 소리는 의미를 갖고 나는 또 하나의 태양을 본다     문이 되여   나 스스로 문이 되여 그 문을  통하여 사라져버린다   나무가지에 바람이 스쳐가는 소리 아래 몸만 있고 머리 없는 내가 나무로 서면 그 바람이 나의 몸을 통하여 지나간다   나무들과 나무 되여 이야기하고 껴안아주면 넓은 내 뒤에 모든 것이 있다   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찰나에 물씬 진동하는 꽃향기를 맡는다 신의 향기, 자연의 향연!   정신이 막을 내리는 곳에서 시작되는 명상, 나는 정신이 아니다 자연에 귀의한 자연 속의 자연으로 나는 자연스럽다     건너 쪽   너를 사랑하면서 중심으로부터 내던져지고 나 이제 여기에는 없다 사랑만 남아있고 나는 없다   정녕 인간이 신과 짐승의 사생아라면 동물도 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동물은 자유로와져야 한다 갇혀있던 내가 무욕으로 문 열고 나와 너에게 소유되였다     목련   햇병아리 숨소리를 내고 있다 노란 모시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무가지에 앉은 날지 않는 나비   애련한 모습 저만치에 두고 조금도 불순하지 않고 돌아올 때 내 뒤에 봄이 따라오고 있었다     어머니   세상 고뇌를 다 업은 것 같은 한 어머니가 걸어간다   어머니의 고뇌는 땅우에 발자국이 패일 만큼 무겁고 괴로웁지만 그것을 사랑이 지고 간다 인간의 행동에 신의 뜻이 나타나고 있다   눈물 글썽 고여라 어둠 속에 피여나는 새벽 새벽을 낳으며 죽어간 밤들 여기, 그 밤이 부끄러운 사나이가 있다 출처:2017 제4호
31    [시]어둠의 혼(외2수) 댓글:  조회:231  추천:0  2019-07-16
어둠의 혼(외2수) 박장길   삼라만상이   어둠의 품에 안겨 어둠이 되였다   숲은 고요의 무덤으로 가라앉고     나는 머리를 수그리고   발끝에 손끝에 집중한다   인생은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놓친 옛날의 나비를 찾아   헤맸던 꿈길에 나를 놓고 왔다   말은 깊은 잠 속에 재워두고     몸무게를 빼버린 그림자 같이   어둠의 혼을 입는다   자연의 소리에 귀를 맡기고     나의 세월로는 다가갈 수 없는 곳에   홀로 우뚝 앉아있는 진리의 형제여   고요함에 이른 업의 얼국이여     태양은 동쪽에서   서쪽에로 옮겨붙는 불길이다   나의 일몰 앞으로 가는 길 비춘다     어제를 오늘에 더해 참구하는   나의 밤기도가   아침 동의 해돋이로 익을 때   어둠의 혼은 빛의 폭포를 쏟으리라           하심 下心   옛 신분을 얼굴에 두껍게 바르고   장작불 쑤석이지 말라   불은 꺼지고 사랑은 깨진다     시뻘겋게 녹쓴 옛날 얘기를 그대로 두고   너의 생활 팔에 꼭 안아라   네 삶의 인연에 따라   네가 되여야 할 그런 존재가 되여라     두번 다시 같은 강물에   발을 적실 수 없거늘   꽃을 버려 열매 맺는 나무 같이   강을 버려 바다에 이르는 강물 같이   내려놓아라     서리 묻은 울음 우는 가을 기러기떼   날아가는 중천에 해가 올라오자   너를 싣고 온 차의 그림자   바퀴 밑으로 기여들어갔다     삶의 진실에 닻을 내리고   사람이 사람에게 가는 길에   머리 숙여 마음 아래로 향하여라   길은 하늘에 없다         지렁이   반가운 손님 같이   해살이 반짝 찾아왔다   흰구름도 따라나왔다     해살이 얼굴을 말리고 있는   물웅뎅이를 뒤로 하고 가는   한없이 느리고   한없이 부드러운   암수동체 지렁이     순식간에 몸과 의식의 질서를   휘저어버리며 나를   먼 세계로 떨어져나가게 한다     뒤걸음칠 수 없는   슬픔을 품고 끊임없이 몸을   수축시키고 밀어내며   보이지 않는 눈으로 가는 저쪽   먼 하늘에서 무지개가 걸어오고 있다     보이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길 ㅡ   나도 돌옷을 껴입고   천년 침묵의 바위에게   천년 침묵으로 물어보며     각성에 이르러   정신의 무늬를 만들리라 출처:2018 제6호
30    [시]달이 보고 있었다(외2수) 댓글:  조회:240  추천:0  2019-07-14
달이 보고 있었다(외2수) 박장길   나무잎 풀잎 잎잎마다 고요를 담아 고요하다 고요가 층층  쌓인 산사에서 나도 숨 죽이고 고요가 되였다   고요가 무거운 잎들이 고요를 쏟아서 고요에 선잠을 깬 벌레들이 죽음보다 깊은 밤을 뚫고   뭐라고 뭐라고 많은 말들을 분수처럼 하늘에 뽑아올리는 나무의 그림자는 자비의 손처럼 등을 어루만진다   가슴을 자욱하게 하며 나에게로 가까이 데려다주는 고요 속에 누군가 가만히 지켜보는 같아 고개를 드니 달님이였다 산사의 이웃, 조용한 밤손님   허무에 약한 인간들의 기다림을 데리고 산을 넘다가 나를 보고 가던 달이 그 바퀴를 멈추었다 나 언제 달빛소리 들을 수 있는 강물 될가   나, 개로 돌아가고 싶다        -심곡암 보리에게 네가 나의 현신이냐 내가 너의 현신이냐   전생에 사찰을 지키는 개로부터 사람으로 륜회한 나를 각별히 바라보는 보리야   산 아래 멀리 속세를 두고 지상의 허무를 깨달으며 잠든 소의 눈 같이 조용히 가라앉은 산속 암자에 목사리하고 날아가는 파리가 부러운 적요한 해살 속 노란 보리야   네가 나의 화현이냐 내가 너의 화현이냐   허기지도록 적막한 한낮의 침묵에 바람이 찾아와 처마 밑 풍경소리로 동그란 파문을 긋고 있는데 마주보는 눈길에 정을 느낀다 내 뒤를 이어 개로 태여난 보리야   정적을 깨는 살구나무 목탁소리 자장가로 둥글어 고독을 넘어 나를 적멸로 덮어주는데 부는 바람에도 귀를 세우는 네 눈길에 나 붙잡혀있다   몇겁의 륜회를 거쳐 나는 사람으로 태여나고 너는 개로 나타났다   내 뒤를 이어 륜회하는 보리야 이제 사람으로 나투겠으면 각오하여라 사바세계 깊고 넓은 고해를! 나, 개로 돌아가고 싶다     첫눈, 지상에 쌓이는 하늘의 고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을 향하여 그렇게 지금 눈이 내린다 지나간 일들을 아득하게 만들며 그렇게 지금 눈이 내린다   동년의 뜨락에 번져가던 하얀 박꽃 같이 펄 펄 펄 날아다니는 흰 나비처럼 흰눈이 조각 조각 조각 조각… 지는 한조각에 추위 한조각   머나먼 저 머나먼 기억 속을 지나 잊었던 벗의 편지마냥 내리는 첫눈, 지상에 쌓이는 하늘의 고요 지극한 내 마음에는 공중의 요령소리 들려온다   손잡고 있지 않아도 따스한 네 생각으로 몸을 두르고 네가 나를 바라보는 꿈으로 하늘의 화음 속에 우주률 속에   가만히 서있다 하늘과 땅 오직 혼자이다   아무도 오지 않는 새벽에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나라에 어둠을 적시며 소리가 내린다 소리가 소리 뒤에 쌓이고 그 소리 뒤에 고요히 내가 서있다 출처:2018 제4호
29    옛말할아버지 그립다(외4수) 댓글:  조회:248  추천:0  2017-10-07
  (동시) 옛말할아버지 그립다(외4수) 박장길   옛날 할아버지들 긴 담배대에는 이야기가 가득 담겨 한 모금에 장수가 또 한모금에 천리마 나왔다 하는데   지금 할아버지들 담배대가 없어 이야기가 없는가봐   낚시대 할아버지 문구채 할아버지 하나같이 담배대와 수염없다   울에게도 이야기통 긴 담배대 채수염 할아버지 계셨으면 좋겠는데      장수굴   장수굴 산의 목구멍 ㅡ   산이 입을 벌려 꺼먼 어둠을 물고   용감한 아이들만 불러들인다        주먹   손가락 크기가 같다면   힘있는 주먹을 쥐지 못해요   짧은 손가락과 긴 손가락   합쳐서 힘있는 주먹이 된대요     오리   세수를 하며 머리를 홰홰 내두르다   평온하게 호수를 가르는 오리 하얀 오리   저 오리 하얀 오리 그저 평온이 간다 생각말라   빨간 발이 물속에서 쉼없이 노를 젓는다      겨울   바싹 바싹 마른 잎 소리와 함께 겨울이 왔다   콜록 콜록 기침소리를 앞세우고 겨울이 왔다    
28    [시] 바람에 기대여 (외 4수) (박장길) 댓글:  조회:206  추천:0  2017-09-11
시 바람에 기대여 (외 4수) 박장길 하늘을 달려 록음 스쳐 오는 한자락 통통하게 살진 바람이 흰 나비떼를 가득 풀어놓았다   맛난 바람을 읽으며 춤 추는 꽃을 듣는다   하얗게 가루 난 시간들이 눈을 부시는 해살을 허리에 감고   푸른 하늘에 한점 구름 같은 죄 짓고 싶다는 그 시구에 찬란한 감동 먹는다   꽃을 피게 하는 바람으로 서있는 너로 하여 이 가을날 나는 꽃 피고 있다.   상처   령혼이 상처 입고 정신이 아플 때 빛이 가슴에 난 구멍으로 들어온다   물 속에 사는 모든 것을 어루만져주는 물의 손같이 내 안을 거두어주는 빛, 상처의 축복!   번뇌를 밝히며 벅찬 슬픔 딛고 한마디 큰다.   무념의 벽   이마를 가로 지나 주름살이 기러기처럼 날아가는 로인이 은빛 빛나는 머리칼 뒤로 가까이 죽음의 그림자 따르는 하얀 로인이 아침마다 빗질한다 죽음으로 가는 길   고요한 무념의 벽을 넘어 자신에게 누릴 시간 찾고 있다.   어둠을 찢어먹는 개   개는 날카롭게 어둠을 찢어먹는다 어둠이 깊을 수록 어둠을 갈기갈기 져며 씹는다   어둠을 짖으며 찢는 개는 개답다   세상을 감아버린 채 어둠 속에 뛰여들어 한자락 밤을 찢어가지고 나온다   짐승도 밟아보지 못한 깨끗한 땅에 나의 흔적을 남긴다   저기 개다운 개가 귀세워 보고 있다.   꽃을 듣는다   너의 말씨가 예뻐서 네가 말하는 것을 쳐다본다 무슨 고운 것을 보는 것처럼   코드에 묻혀온 찬 기운을 펄럭이며 앞에 앉아 세련된 고개짓으로 흘러내린 머리칼 치켜 올리고   너는 이야기하고 나는 너의 목소리를 듣는다   은방울꽃의 방울 같은 향기처럼 옹글동글 말씨 봉오리 맺혔다. 연벼일보 2017- 8-31
27    아버지의 달 (외 3수) 댓글:  조회:435  추천:0  2014-12-12
아버지의 달 (외 3수)  □ 박장길              청동의 소리가 울리던 구리빛 그 얼굴이 다 식어 부드러워졌다 석쉼한 소리로 영각을 켜던 황소의 피진 눈으로 달아올라 일에 끓던 그 붉은 열정이 한덩이 달로 하늘에 둥글었다 달을 가르면 낮의 흰 씨앗들이 가득 심어져 밤을 먹고 자라며 은빛 뿌리내려 땅을 딛는다 실패가 되여 온 몸에 달빛을 감는다 상처를 꿰매는 은실로 쓰리라 달 한덩이 하늘의 눈으로 뜰 때 고개 숙인 흰 갈대를 따라한다 동판화에서 끼룩끼룩 날아가는 달밤의 기러기들 나를 울린다   고향생각 한잎 세월의 동생 실개천을 흘러 보내는 산기슭 나무가 벗어버리는 잎이 하느님의 손 같다 손 잘린 아픈 나무밑에 노랗게 익은 가을로 서서 고향생각 한잎 주었다 시인의 사명은 귀향이다 자연에서 시인을 기르거라 천상의 소리 쥐고 내려 어깨에 하늘이 손 얹는다 먼 길 걸어 나를 찾아 만나고 세상의 첫날같이 귀향길에 하느님을 만났다   번지없는 슬픔 언 하늘을 만지는 나무의 손가락에서 거문고소리 울린다 슬대를 쥔 나무의 손가락의 떨림에 전률하며 슬프고싶다 눈이 마주친 다람쥐 서로가 그리운 탓으로 눈을 떼지 못하고 애틋하다 동한거에 들어간 나무들은 고통은 안고 사는것이라고 아픈 기억 지우려면 용서하라고 무수한 설뱀들은 뒹굴어오며 마음을 감지만 감아가지 못한다 겨울나무옆에 나무로 서서 빛의 현을 몸에 감은 거문고 길게 누워 신명을 풀고싶다 세월의 음악 같은 바람에 번지 없는 슬픔을 싣는다   입 세상을 뚫고 나온 통로로 커다란 입들이 빠져나와 달리며 대지를 가르며 바다를 날으며 하늘을 륙해공을 다 삼키고있다 아무리 먹어도 부르지 않는 배 새 먹이를 찾아 쌍불을 켜고 산밑을 파먹으며 땅밑을 파먹으며 바다를 파먹으며 바람이 출입금지였던 곳을 바람에게 문열어주고 바람의 날개를 폈다 목젖 깊은 벌둥지 지구― 시커먼 입이 가슴을 파먹을 때 붉은 입술은 하루를 다 빨아먹고 흰 입은 둥그렇게 하늘을 구멍 냈다    연변일보
26    렬 차 (외3수) 댓글:  조회:554  추천:1  2014-05-23
긴 긴 사닥다리에 배를 딱 붙이고 푸른 뱀이 화장실로 달려간다 배 가득 꿀럭 삼킨 천층만층구만층을 배설해야 한다 배설하고 또 먹는다 우글거리는 먹이들… 춘하추동 밤낮 먹어도 공허로 배불러 잠든다.   골고다 언덕 예수를 먹고 33층계가 쌓여있다 꼭대기는 하늘의 자리 회초리로 성자를 휘감고 퍼렇게 멍든 버드나무 머리를 깊이 숙이고 뚝 ㅡ뚝 떨구는 퍼렇게 멍든 눈물을 해빛이 감싼다.   동해의 딸 바다 흰혀로 깨끗이 씻어놓은 모래톱에 너의 이름을 썼다 나의것이라고 하지만 바다가 너의 이름을 안아갔다 너의 동해의 딸이라고 바다가 품어간 너는 깨끗이 머리 감고 내 마음 하늘에 은빛 부드러움으로 가득 차올랐다가 또 다시 저 넓은 바다에로 되돌아갔다 바다에서 하늘에서 오르내리며 사는 너를 찾아 바다가를 서성이는 나에게 사자처럼 덮쳐와 무너뜨리려 했지만 결국 부서져 무너진것은 나 아닌 바다였다.   해 볕 조심하시지 그만 실수로 랭면사발을 쏟고 빨갛게 달아오른 아가씨 쏟아져 내려오는 국수오리 그만 실수하시지 그냥 쏟아지는 국수오리 잡지 못한 꿈 내 몸에 불 질러놓은 빨간 아가씨.
25    [시] 시내물(외 2수) 댓글:  조회:514  추천:1  2014-05-08
청아 청아 하얗게 웨치며 산신령이 옥구슬을 쏟아붓는다 심청에게로 보내는 선물을 토지신은 꼭 안고 달리며 나른다 구슬치기 즐거운 가을은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새들은 구슬을 물고 날아올라 하늘에 굴린다 손오공은 구름 타고 내려와 훔친다 인간은 독차지하려고 뚝을 쌓아 가두어넣고있다 천궁은 아예 이사내려왔다 룡왕의 아들이라는 면류관을 쓰고 과욕으로 체한 잉어는 자위가 돌지 않아 눈 부릅뜨고 한알한알 알채로 토한다 결국 심청에게로 다 간다   강변바위 ㅡ마음이 멈추면 몸이 썩는다 흐르는 강물을 가로안고 가슴을 다 드러내놓은 사나이 어룽거리는 해볕을 가득 품었다 괴물들이 어룽어룽 모여와서 누런 가슴의 해빛을 핥아먹는다 세월을 풀어 세월을 키우며 하늘을 배고 금빛 은빛 알 둘 낳아 하나는 낮에게 주고 하나는 밤에게 주었다 낮을 열고 하늘이 눈 뜨고 붉어올 때 천사들이 날아내려 하얗게 안기고 밤을 닫아 대지가 눈감고 꿈이 깊을 때 어둠을 쓰고 어둠보다 더 어두운 서늘한 높은 숨결의 천살 먹은 크나큰 목숨 침묵의 무게   목요일 ㅡ나의 숲 목요일을 기다리며 목이 길어진다 목요일은 생나무가 몸 비벼 불을 일으킨다 목요일은 싱싱한 수림이 무성히 우거졌다 그속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샘물에 관이 높은 사슴이 목 축이고 머리 높이 들면 수풀은 또 푸르게 짙푸르게 펼쳐지고 청룡 두마리는 하늘땅을 휘감는다 월하로인은 히뭇이 흰웃음을 웃는다 원을 그린 산발에 원을 그리며 하늘 젓는 수리개 온몸으로 뜨고있는 까만 눈동자 찰랑찰랑 고인 단물에 빠져죽을 때마다 해빛이 달빛이 별빛이 쏟아져 파묻는다 /박장길
24    (시) 너라는 역에 도착하다 댓글:  조회:894  추천:10  2014-02-04
너라는 역에 도착하다 박장길 강물이 낳은 알에서 빛이 태여난다 그림자가 태여나서 자란다 하늘에서 태양알이 깨져 쏟아지는 노랗게 잘 익은것 하얗게 잘 여문것 알들이 배불리 받아먹고 눈 반짝인다 빛의 눈동자속으로 걸어들어가면 치마폭 가득 싸안고있는 물비린내 까무룩 잠이 드는 비몽사몽간에 꽃사슴 꽃다발 들고와 속눈을 떴다 힘껏 활개쳐 퐁퐁퐁 물딛고 건너간다 대지를 깊이 파서 흐르는 강언더 총알로 날아가서 펑 터뜨렸다 고스란히 봄을 오래 삭혀 오래 묵혀 향기가 폭발하는 순한 복분자술 밤새워 달을 깨뜨려서 마시고있다 도라지 2013/5호 총 200호
23    고 목 댓글:  조회:548  추천:1  2013-08-27
고 목  박장길   흘러간 모든 세월 한몸에 휘감고 고목이 있는 곳엔 그밑에 길이 납니다 기나긴 세월동안 해빛이 스며 손대지 않아도 따스한 나무여 세월의 비바람에 상처는 깊어도 늙어갈수록 더 멋진 고목이여 할배할매같이 자애로움 저 멀리 펼치며 고향의 하늘에 높이 높이 서있습니다  
22    태 산 (외1수) 댓글:  조회:558  추천:0  2013-06-28
태 산 (외1수)    박장길   산동성을 들어 높이 쳐든 거인의 발치에서 우러르며 목을 뒤로 꺾어도 모자라다   하늘도 구름을 내려 한입에 삼키려고 했지만 구름자락이 모자라는 거인은 내 앞에 있건만 내 안에 솟아있는 같아 나는 거인속의 거인   그냥 내려오지 않고있는 공자는 왈 ㅡ 어서 오거라 리태백은 소매를 떨쳐 일어서며 지팽이로 부른다   산동성을 들고가는 거인의 등에 업혀 하늘 천정아래 멀리 간다 거인을 가슴한 마음에 커다란 공간이 자리잡는다.   모 기   어둠속에 숨어 소리로 먼저 공격하고 목표를 바꾸는 가증스런 야간습격기 폭격에 터져오르는 대지우를 낮게 날며 목표물를 찾는 비행사 눈길이 서늘히 쏘아와 질려 굳어진 나의 몸을 노려 선회하는 전투기 나를 보고있지만 나는 보지 못하고 나의 피를 부르는 야간공습 나도 숨죽이고 피를 부른다 날아올랐기에 내려오기마련 벌겋게 터진것은 모기의 피인가 나의 피인가 그래도 승리로 두눈을 빛낸다.
21    월 병 댓글:  조회:542  추천:0  2013-03-20
.수필. 월 병 30년전, 내가 살던 동네에는 끔찍한 살인사건이 있어난적이 있다. 인적이 드문 비암산 골짜기에서 여섯살짜리 어린애가 싸늘한 사체로 발견되였던것이다. 피해자는 우리 동네에서 살고있는 내 짜개바지 친구 진철이의 동생 홍철이였다. 사건의 실마리는 참새잡이에 나섰던 젊은 친구가 왠지 모르게 모여드는 까마귀떼를 발견하고 경찰에 제보했던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범죄란 대개가 절도나 강간 정도였기에 “살인”은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단어였다. 그로 인해 한때는 온 시가지가 저녁에는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이 거의 끊길 정도로 공포적인 분위기에 휩싸였다. 경찰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수사에 나섰고 드디여 학교쪽으로부터 “보름 넘게 어느 동네 아무아무개가 보이지 않더”란 학생의 제보를 받고 파안의 실머리를 찾아냈던것이다. 그런데 더욱더 경악할만한 사실은 살인범이 그 누구도 아닌 피해자 홍철이 친아버지 김영학이였다는 점이였다. 바로 세집 건너 이웃에서 살고있었던 나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너무나 큰 충격이였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일이였다. 내 또래 친구인 진철이 형제간은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어미없이 자란 불쌍한 애들이였는데 그나마 야생마처럼 풀어놓고 자란 애들이라 손버릇도 좋지 않아 간혹 가다가 동네 어느 집에서 알루미늄 재철(양푼)이 없어져도 의례 진철이네 형제간이 한짓일것이라고 의심할 정도로 말썽꾸러기 장난군들이였다. 그러던차 이붓어머니가 들어오면서 그 집안은 말썽거리형제때문에 가정불화가 점점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더우기 아버지와 이붓어머니 사이에서 새 아이가 태여나면서 진철이 형제간은 모순덩어리로 변해버렸다. 그후로부터 띄염띄염 애들이 몇달씩이나 눈에 안 띄여 물어보면 친외가편에 갔다는 퉁명스러운 대답으로 돌아오군 했다. 그런 말썽꾸러기 어린 놈이 친아비에 의해 목 졸려서 질사했다니 모든 의문의 화살이 혹독한 질타와 채찍으로 변해 아비 영학이에게 쏟아졌을것은 물론이다. 영학이의 자백에 따르면 죽이기전에 어린것이 평소에 그렇게 먹고싶다던 월병을 사 먹이고 죽였다는것이다. 어찌나 제 새끼가 미웠으면 죽였을가? 그런데 그렇게 미운 놈에게 월병은 왜 사 먹였을가? 그 의문의 답안은 30여년이 지난 요즘에야 찾은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07년말, 아버지가 우연찮게 검진받다가 간암말기로 진단받고 온 가족이 순식간에 무너지듯 우리 집안은 저조기를 맞게 되였다. 1년2개월이라는 긴 투병생활끝에 아버지는 심양 제5병원에서 조용히 세상을 떴다. 간부위가 극통을 느껴 120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는 도중 그토록 고통스러워하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가슴에 안고 나는 그냥 울기만 했다. 배출은 못하고 주입되는 약물로 인한 복중의 압력으로 끝끝내 피를 토하면서 마지막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아버지께서 빨리 돌아가셨으면 하는 죄스러운 생각이 떠오르는것을 막지 못했다. 병상옆에서 온기가 점점 식어가는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서 더 이상 아버지를 그런 고생으로부터 돌려올만한 능력이 없는 나같은 불효자에게는 아버지께서 이렇게 고통스럽게 병마에 시달리기보다는 1분이라도 빨리 저쪽 극락세상에 가시길 더 원했던것 같다. 허락한다면 “안락사”라도 자진청구하고싶은 마음이였다. 아버지의 소중한 생명을 더 이상 지켜줄 능력조차 없는 나같은 자식에게는 그런 못되고 불효한 생각이 어쩌면 유일한 선택일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울면서 눈물로 범벅이 된 우리 형제가 싸늘해진 아버지에게 수의를 입힐 때 형의 어깨에 힘없이 기대인 아버지를 보면서 측은한 생각은 들었지만 왠지 눈물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어쩌면 그런 심신의 고통에서 풀려난 아버지가 행복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후로 몇년이 지난 오늘에도 나는 자식으로서 그런 불효한 생각을 가졌다는 자책에 헤매면서 종종 불면의 밤을 뜬눈으로 보내군 한다. 그리고 30여년이나 지난 오늘에야 제손으로 막둥이 아들의 목을 졸라죽인 영학이도 그때는 가정불화의 불씨였던 애군인 홍철이에게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행복한 생활환경을 줄수 없었던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이 세상보다는 더 행복할것이라고 믿었던 저세상으로 보내였던게 아닌가싶다. 마지막으로 홍철이한테 먹였다던 월병을 생각하면 그게 아닐가?
20    [시] 할머니 댓글:  조회:814  추천:1  2013-03-05
할머니 박장길 어둠을 쓸며 오는 아침처럼 자식들 앞길을 쓸어주며 세월에 닳고닳은 몽당비자루 받쳐든 개다리소반처럼 어깨우에 솟아오른 무릎우에 마음 한그릇 떠놓고 날마다 찾아오는 해님이 반가운 마른 그림자 한줌 한줌 해살 같은 노란 병아리들의 뜨락 포근함이 부풀은 아늑함속에 노란 졸음이 몰려오는 때 령감생각을 짚고 서있는 늙은 배나무에 기대고 앉아 가까운 하늘에 실눈웃음 짓고 흘러간 80년을 다녀오신다 연변문학 2013.2
19    [시] 아리랑 (외2수) 댓글:  조회:769  추천:1  2013-01-18
아리랑 (외2수) 박장길     구불거리는 소나무가 아리랑을 쓰며 온 몸으로 아리랑을 부른다 군무로 한풀이하며 몸을 비틀고 있는 하늘에 오르지 못한 룡떼들 이리구불 저리구불 아리랑을 읽으며 아리랑이 된다 뒤틀린 년륜을 감아 목숨을 매고 아리랑처럼 아리랑이 된 이 몸에 비늘을 쓰다듬는다 란창강을 흐르며 시쐉판나에 젖을 물리고 물꽃무늬를 가득 피여올리면서 이 땅 한끝을 흘러지나가는 온 통 소용돌이 란창강을 흐르며 겨울에서 떠나온 이 몸 봄에 젖어 푸르게 타올라 마음을 벗는다 굴곡을 헤치며 허리굽은 흐름우에 아침 푸르게 밝아 막 태여난 해살 벌써 노랗게 달아오르고 공포가 피여오르는 물결의 요람에 마음도 절주타고 란창강을 가르며 남국의 푸름에 젖어 봄이 된다 저 산굽이 돌면 이십도구 아래 열아홉도구를 하류에 아득히 늘여놓고 상류에 앉아 해빛을 한껏 들이며 압록강물을 먹고 사는 이십도구 택시앞에서 달리는 마음을 붙잡아 뒤세우고 차를 밀며 찾아가는 우럭골 이십도구 백두산에 뿌리박고 뻗어내린 두만강 압록강 량안은 같은데 많아 마치도 고향가는 길 내 생각속에 높이 있는 이십도구 저 산굽이 돌면 만난다 나는 벌써 그 곳으로 달려가서 초면에 낯익고 얼굴들과 먼저 뜨거운 악수를 나누고 있다
18    추천사 (2010.8.23~29) 댓글:  조회:889  추천:27  2010-08-23
금주의 문인 추천사(2010.8.23~29)인생 50, 공자님의 말씀을 빌면 \"지천명의 나이\"이다.50세를 기하여 박장길시인이 지천명의 시집 \"짧은 시, 긴 탄식\"을 펴냈다. 그리고 시집은 제14회 정지용문학상에 선정됐다.박장길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내 인생이 걸어온 오십살 언덕에서 나를 찾아내려간다.걸음걸음 본래의 나와 가까와지는 나, 나한테로 돌아가는 길은 즐겁다.\"고 말했다.뭘 보고 예까지 걸어왔을가? 그리고 이제 되돌아 본래의 나를 찾아떠나는 시인, 뭘 보고 다시 되돌아 가는 걸가? 그만이 아는 지천명이리라. 오는 길에 시집 5권을 펴냈으니 돌아가는 길에서도 역시 저그만치 시집 5권은 더 내소서. 새 시집 5권을 기대하며 금주의 문인으로 추천한다.문학닷컴 편집국 
17    [시] 개 (박장길) 댓글:  조회:717  추천:24  2010-08-23
개박장길집을 지키는 개가너무 충직스러워지나가는 바람소리에그만 짖어댔다그 소리에동네 개들이 다 짖어댄다한마리 개가 잘못 짖어온 마을이 소란스럽다잘못 짖은개탓인가따라 짖은개들탓인가어떤 개가개다운가
16    [시] 손목시계 (박장길) 댓글:  조회:709  추천:27  2010-08-23
손목시계박장길나의 손목을 감아쥐고먼 세월을 헤쳐온 친구하지만 난너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
15    [수상소감] 해를 담는 그릇 댓글:  조회:570  추천:20  2010-08-23
[제14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소감]해를 담는 그릇박장길모래알을 굴리며 조용히 솟아서 고여있는 샘물에 해님이 내려와 잠겨있다.샘물은 해를 담는 그릇이다.내 인생이 걸어온 오십살 언덕에서 나를 찾아내려간다. 걸음걸음 본래의 나와 가까와지는 나, 나한테로 돌아가는 길은 즐겁다. 멀리 떠나온 고향을 찾아가는 마음이다. 오십년 걸어온 길에 가로수처럼 줄 서있는 나를 지나며 내안 깊숙이 들어가면 고요히 고여있는 샘물을 만난다. 나의 시가 담겨있는 그릇이다.나의 샘물은 솟아서 바다에 이르지 못해도 된다. 풀 몇포기를 만나 푸름을 올려주어 대지에 몇점의 생기를 얹어주면 족하다.고향시절, 강변자갈밭에서 솟아 달빛을 풀어싣고 흐르는 샘물에서 찬기운을 호흡하며 꿈으로 부풀어오르던 그 싱싱한 심장을 간직하고있는 한 내 시의 뿌리는 마르지 않고 파란 풀로 자라올라 한들한들 명주바람에 몸을 맡기고 나름대로 세월을 저으며 나를 가느다랗게라도 웨칠것이다. 세상에 대한 련애편지 - 시를 건져올리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것이다. 세월이 높이 쌓일수록 깊어지는 내안의 고요한 샘물은 동그랗게 눈 뜨고 나를 지켜보고있다.정지용문학상이란 큰 영예의 무게로 내 마음을 눌러 용수철처럼 폭발력을 다져넣고 가끔 가다 꿈틀거릴것이다.심사위원님들께 허리 굽혀 감사를 드린다.2010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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