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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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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날짜 : 2017/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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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런저런] - 락타 그림자는 락타가 아니다... 댓글:  조회:2575  추천:0  2017-10-03
착시 사진은 국내외를 막론한 네티즌들의 최고 화제 아이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착시 사진들은 조작 처리를 거쳤거나 착시 유발을 노리고 의도한다. 그에 비해 해외 네티즌들의 환호를 받고 있는 ‘낙타 그림자 착시 사진’은 의도성이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에 더욱 돋보인다. 내셔널 지오그래픽社의 이 사진에서 낙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검은 색 실루엣이 낙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낙타의 그림자일 뿐이다. 이 사진을 처음 접하면 반사적으로 강한 자극을 주는 곳에 시선에 집중하게 된다. 그 결과 뇌 속에 ‘편견’이 생겨나 그림자를 낙타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 주;- 검은 색은 락타의 그림자, 실제 락타는 각각 락타그림자 밑부분에 있음. 사진을 하늘에서 찍었다고 보면 될듯... ㅎㅎㅎ}    
14    [이런저런] - 착시사진이야, 나와 놀쟈... 댓글:  조회:2945  추천:0  2017-10-03
력대급 착시 사진ㅡ 한번 보아내면 원래대로 보자해도 돌아 안감... 홀~... 이런 묘미가...
13    [쉼터] - 착시현상 아닌 실상으로 보는 "투명산" 댓글:  조회:2758  추천:0  2017-10-03
  ▲  투명산. ⓒ 완도신문   '투명산' 백운산·백운봉 비경  백운산은 전라도 완도읍에 위치한 상왕봉에 이어 완도군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으로 생일도의 중앙에 우뚝 솟아 있다. 백운산 정상이 백운봉(483m)인데 이곳에서 맑은 날엔 남쪽 멀리 제주도까지 바라보일 만큼 조망이 뛰어나 곳이다.  또한 백운산은 앞산에 가려진 뒷산 능선이 투시돼 보이는 것처럼 보여 '투명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두 개의 산이 1.5km의 거리를 두고 겹쳐 있지만 때로는 두 봉우리가 마치 한 개로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날씨가 흐린 날에는 뒷산의 능선의 윤곽이 선명하게 나타나 마치 투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 광경은 백운산에서 바닷길로 4km가량 떨어진 금일읍 동백리 선착장 부근에서 연중 볼 수 있다. 2007년경 언론에 보도되고, 피서객들이 카메라에 담아 당시 인터넷 상에서 '착시현상'이냐, '합성(사진)이냐'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12    [쉼터] - 착시, 착시, 또 착시... 댓글:  조회:2816  추천:0  2017-10-03
재미있는 착시 사진들               옮겨온 그림   
11    [쉼터] - 우연과 일치; 엄마 승객과 조종사 아들 댓글:  조회:2803  추천:0  2017-10-03
자신이 탄 비행기의 조종사가 아들임을 알게 된 엄마 반응 (ZOGLO) 2017년10월3일  한 비행기에서 승객과 조종사로 만난 엄마와 아들이 감격의 포옹을 하는 장면이 전 세계 누리꾼을 뭉클하게 했다. 지난달 SNS상에는 자신이 탄 비행기의 조종사가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엄마의 모습이 올라왔다. 홀로 짐을 끌고 승무원에게 인사한 뒤 비행기에 탑승한 엄마는 조종실에서 나타난 아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들이 같은 항공기에 타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들을 보자마자 감격과 자랑스러움의 눈물을 흘린 엄마는 아들과 포옹하며 반가운 마음을 드러냈다. 정확한 항공 편명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영상은 해외 SNS상에서 퍼지면서 화제가 됐고, 최근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미러 등도 두 사람의 모습을 보도했다. ///YTN      
10    [고향자랑거리] - 중국 연변 룡정 "중국조선족농부절" 댓글:  조회:2719  추천:0  2017-10-03
[룡정농부절] 한복과 어우러지는 김치의 향연...'명품' 김치 탄생 [ 2017년 10월 03일 05시 25분 ]     김치담그기 경합 한장면 룡정 제8회 중국조선족농부절의 일환인 김치축제가 지난 10월 1일부터 3일까지 동성용진 동명촌(원 인화촌) 해란강민속생태원에서 펼쳐졌다.   1일에는 김치전시, 2일에는 김치담그기체험 행사가 열렸고 3일에는 100명  김치담그기 경합이 있었다.    '100인조선족농경사철쇼' 한장면-관광객들이 우리 민족의 전통주를 맛보고 있다. 력대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중국조선족 농부절’은‘ 여덟개 100’으로 개괄했다. 즉 100명 가야금병창, 100메터 조선족순대, 100단지 막걸리체험, 100년 조선족전통시장, 100명 조선족 농사 사계절공연, 100명 김치담그기체험, 100명 김치비빔밥, 100명 조선족김치담그기 경합 등이다.   경합준비를 위해  식자재들을 하나하나 지정된 위치에 배렬하는 심사위원들. 룡정시문화라지오텔레비죤방송신문출판국에서 주최하고 연변조선족전통음식협회(회장 김순옥), 연변대학녀성평생교육총동문회(회장 김영순)의 협찬으로 펼쳐진 이번 대회는 한개팀에 25명씩 4개팀으로 나뉘어 배추김치, 오이김치, 깎두기김치, 깻잎기치를 담그었다. 선수들은 40분이란 주어진 시간내에 양념을 만들어 가장 맛있는 김치, 먹음직스러운 김치를 담그어여야 했다. 심사위원들로는 연변조선족전통음식협회 김순옥 회장과 회원 도합 10명으로 구성되였다. .   심사위원들로는 연변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음식점의 사장들이다..       1등보좌에 오른 선수들과 함께    치렬한 경쟁을 거쳐 배추김치팀에서 15번 선수가, 깻잎김치팀에서 23번 선수, 깎두기김치팀에서 3번선수, 오이김치팀에서 18번선수가 1등의 영예를 지녔다.   2등 선수들과 함께. 참가자들은 “올 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이렇게 뜻깊은 축제인줄 몰랐다. 오지 않았더라면 평생 후회할 번 했다.”며 “나이 60이 되도록 이런 대회에 참석해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서로들 자신이 담근 김치가 제일 맛있다며 김치통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는 선수들, 한족 관광객들에게 우리가 담금 명품 김치를 맛봐라라도 건네주는 이들도 있었다.    녀성평생교육총동문회 김영순 회장은 “추석을 앞두고 집에도 할일이 많을텐데 이렇게 참석해준 회원님들이 너무 고맙다.우리 회원들은 대학교에서는 학생, 무대에 서면 예술인, 축제에선 꽃”이라며 "연변미스유니버스들과 함께 전통음식을 널리 홍보할 수 있어 더욱 흐믓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100인조선족농경사철쇼'가 '배추도사네집'앞에서 펼쳐졌다.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수확하는 전반 과정을 담아냈다.   한복과 어우러지는 김치의 향연이 '명품'김치를 탄생시켰고 풍요로운 가을을 맞는 농부들의 환락의 웃음소리 해란강민속생태원에서 울려퍼졌다. ///조글로미디어 문야 
9    [이런저런] - "마늘"이냐?... "무릇"이냐?... 댓글:  조회:3723  추천:0  2017-10-03
무릇의 꽃.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한 굴에 살면서 늘 신웅(神雄·환웅)께 빌면서 인간이 되기를 발원했다. 신웅은 신령스런 쑥 한 단과 마늘 스무 매를 주었다." 일연이 편찬한 역사서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 편의 일부다. 개천절이면 회자하는 단군신화의 내용은 삼국유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환웅이 웅녀에게 준 음식은 쑥과 마늘이 아니라 쑥과 '무릇'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박광민 한국어문교육연구회 연구위원은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최근호에 게재한 논문에서 "단군 시대에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마늘이 없었다"며 마늘로 알려진 식물은 무릇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삼국유사에 이 대목은 '산이십매'(蒜二十枚)라고 돼 있다. 오늘날 '산'(蒜)의 의미는 마늘, 달래다. 하지만 박 위원은 단군신화의 '산'(蒜)은 마늘과 달래가 모두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그는 "마늘은 서한 시대에 서역에서 들어왔다"며 명나라 학자 이시진이 엮은 책인 '본초강목'의 내용을 인용해 설명했다. 본초강목에는 "집에서 심는 산(蒜)은 두 가지가 있다. 뿌리와 줄기가 작으면서 씨가 적고 몹시 매운 것이 산(蒜)인데, 이것은 소산(小蒜)이다. 뿌리와 줄기가 크면서 씨가 많고 매운맛이 나면서 단맛이 도는 것은 호(葫)인데, 이것이 대산(大蒜)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호는 마늘, 산은 무릇이라는 것이 박 위원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박 위원은 "달래는 매운맛이 그리 강하지 않아서 소산이라고 할 수 없다"며 "무릇은 큰 상수리 열매 정도 크기로, 무척 맵고 아려서 날로 먹을 수 없다"고 부연했다. 구황식물인 무릇은 한자로 석산(石蒜), 조산(鳥蒜) 등으로 표기하며 쑥과 둥굴레, 잔대 등과 함께 10시간 이상 고아서 익혀야 먹을 수 있다. 박 위원은 "1946년 사서연역회(史書衍譯會)가 삼국유사의 첫 번역본을 내면서 '산'(蒜)을 마늘로 옮긴 뒤 수정되지 않았다"고 지적한 뒤 "지금이라도 마늘은 무릇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8    맥주는 곡물로 값을 치루어야 제맛일거야... 댓글:  조회:2818  추천:0  2017-10-03
[이데일리 EFN 강동완기자] 유구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맥주는 전세계에서 1만 5,000종 이상이 주조될 만큼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농경시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맥주. 하늘에 별처럼 많은 맥주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명품 맥주들에 얽힌 숨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편집자주]       기원전 1700년경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은 제1왕조 6대왕인 함무라비왕(BC1728~1686)의 통치하에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함무라비왕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말로 유명한 인류최초의 성문법전을 반포하는 등 제도를 정비하고 무역을 장려하는 등 내치에도 힘써 바빌론을 오리엔트의 중심도시로 번영하게 하였다.    총 282조로 구성된 함부라비 법전에는 맥주에 관한 조항이 4개나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당시 맥주는 매우 대중적인 음료였고, 곳곳에 오늘날과 거의 같은 맥주집이 성업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함부라비 법전의 행간에 좇아 3700년전 바빌로니아 왕국의 맥주홀로 들어가보자.  바빌로니아 왕국의 성안 마을,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삼삼오오 맥주집으로 모여든다. 마을어귀에는 멀리서도 잘 볼 수 있는 커다란 입간판이 손님들을 유혹한다. 맥주홀 안은 오늘날의 나이트 클럽처럼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무대 위에는 토플리스의 아름다운 무희들이 요란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맥주집은 여성이 운영했고, 여자를 포함해서 누구든지 출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맥주집은 엄연히 유흥과 향락을 제공하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수도원에 거주하지 않는 여승이나 사제가 맥주를 마시러 주점에 들어가면 화형에 처했다.   맥주집에서는 20여종의 맥주를 판매했다. 8종은 순수한 밀로 만들었고, 다른 8종은 보리로 만들었으며, 나머지 4종은 곡식 혼합물로 주조했다. 당시의 맥주는 여과를 시키지 않아 탁했고, 찌꺼기가 입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빨대를 사용해서 맥주를 마셨다.  맥주는 돈으로 팔고 사지 않고 곡물로 값을 치루었다. 맥주값을 당장에 현물을 치룰 수 없는 사람은 외상으로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외상값은 가을 추수 때 정산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만약에 맥주집 주인이 용량을 적게 하거나 물을 타서 묽게한 맥주를 판매하면 물 속에 던져 익사케 했다.   많은 사람들이 출입하는 곳이다 보니 맥주홀은 범죄가 모의되고 범죄인이 숨어드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범죄 모의를 방조하거나 범죄인을 맥주홀에 숨기고 신고하지 않으면 그 주인은 사형에 처했다.   함무라비 법전속의 맥주홀은 길고 긴 맥주의 역사와 함께 고대인들의 맥주 사랑을 함께 보여준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인간의 고독을 달래주고 즐거움을 키워주었던 맥주가 지금은 스트레스 많은 현대인들의 시름을 달래주고 있다.   [ 도움말 : 한국창업개발연구원 장승희 전략기획팀장]
7    "술 한잔 하고 오겠소" = "개를 산책시키고 오겠소" 댓글:  조회:3034  추천:0  2017-10-03
[이데일리 EnterFN 강동완기자] 유구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맥주는 전세계에서 1만 5,000종 이상이 주조될 만큼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농경시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맥주. 하늘에 별처럼 많은 맥주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명품 맥주들에 얽힌 숨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편집자주]  영국 북동부에 위치한 인구 26만명 규모의 뉴캐슬시는 중세시대부터 탄광과 제철도시이자 양조도시로서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곳이 근육질의 강한 남성의 이미지로 특히 남성 맥주 애호가들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뉴캐슬 브라운 에일의 고향이라는 것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붉은 빛이 감도는 연한 갈색으로 페일 몰트와 크리스탈 몰트를 함께 사용하여 견과류의 구수한 맛이 나며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좋고 오래 지속되는 뉴캐슬 브라운 에일은 영국에서 병맥주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맥주이다.      미국, 러시아 등에서도 인기가 높아, 미국 슈퍼마켓 판매순위(2006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뉴캐슬 브라운 에일은 1925년에 커널 포터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3년 후인 1928년에는 국제 양조박람회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최근(2007년 8월)에는 유럽연합으로부터 전통있는 지역특산품에 부여하는 PGI(Protected Geographical Indication) 인증을 받아 성가를 더욱 높혔다.   제철 및 탄광 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뉴캐슬 지역에서는 맥주를 개(Dog)라고 부르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술 생각이 난 남편이 아내에게 "술 한잔 하고 오겠소"라고 말하는 대신, "개를 산책시키고 오겠소"(I'm going to walk the dog)라고 말한 것에서 연유했다는 것이다.  개를 산책시키기 위해 달려간 곳은 잘 익은 뉴캐슬 브라운 에일이 기다리고 있는 동네 선술집. 주당들은 데려온 애완견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온갖 정치 이야기와 돈버는 이야기를 하면서 맛있는 맥주를 기울었을 것이다.   미국의 영화배우 크린트 이스트우트는 그의 부인에게 무슨 말을 하고 술집으로 향했을지 궁금하다. 남성적인 매력이라면 둘째 가라면 서운해할 그가 공개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맥주가 바로 뉴캐슬 브라운이라고 선언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스파이스비 펍문화팀장]  
6    맥주 마시기 위해서 술집에 왼쪽 신발 맡겨야 한다?!... 댓글:  조회:2485  추천:0  2017-10-03
[이데일리 EnterFN 강동완기자]  즐거울 때 마시는 술, 맥주에는 맥주 그 자체 보다도 더 많은 즐거움을 주는 유쾌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벨지안 스페셜티 에일로 분류되는 콰크(Kwak) 맥주는 왼쪽 신발을 맡겨놓고 마셔야 하는 풍습이 있다. 이쯤 되면 맥주 맛 보다도 신발에 얽힌 사연이 더 궁금해진다.    이야기는 지금부터 약 200년 전인 1791년, 벨기에 동 프랑드르 지방 덴데르문데에 있었던 데후른(De Hoorn)이라는 여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여관에서는 양조장 기능을 갖춘 맥주 주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우편배달 마차를 모는 마부들이 단골로 이용했다.  그러던 중 어느날 갑자기 마부들이 마차와 말을 떠나 맥주를 마실 수 없다는 황당무계한 규정이 생겨나는 바람에 졸지에 손님을 다 잃게 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술집주인인 파우웰 콰크(Pauwel Kwak)는 기지를 발휘해 나무 받침대와 모래시계 모양의 맥주잔을 만들어 마부들이 마차를 몰고 가는 중에도 맥주를 즐길 수 있게 했다.  마부들은 마차에 몰고 가면서 밝은 갈색을 띠고 있고, 과일향과 기분좋은 쓴맛을 내는 콰크 맥주를 즐겼고, 곧이어 마차가 아닌 일반 주점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밑바닥이 둥근 모양을 하고 있는 콰크맥주 전용잔은 자주 파손되거나 독특한 모양 때문에 도난되는 일이 많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술집 주인들이 생각해낸 것이 콰크 맥주를 주문하는 손님에게 미리 예치금을 내게 한 것. 술값 밖에 없는 손님에게는 신발이라도 맡겨놓게 한 것이 왼쪽 신발을 맡겨놓고 술을 마시는 풍습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오늘날 콰크 맥주는 맥주 애호가들이 맥주 주점이 벨기에 맥주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맥주의 하나가 되었다.      현재 콰크 맥주는 부겐호우트에 있는 보스틸즈라는 양조장에서 6대를 걸쳐 가족 경영 방식으로 주조되고 있다.   [스파이스비 펍문화팀장]  
5    력사속에 영영 사라질번 했던 맥주 한 젊은이 땜에 살아났다... 댓글:  조회:2724  추천:0  2017-10-03
[이데일리 EnterFN 강동완기자]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의 동쪽에 있는 호가든은 화이트 맥주의 고향이다.   연노란색의 뿌연 빛깔을 내며 풍부한 과일향에 쓴 듯 단 듯한 부드럽고 상쾌한 맛을 내는 밀맥주, 호가든 화이트가 처음 만들어진 곳이다.     전세계의 밀맥주 애호가들을 열광시키고 있는 이 전설적인 맥주는 피엘 셀리스(Pierre Celis)라는 젊은이의 집념이 아니었다면 영영 역사속으로 사라졌을런지도 모른다.    호가든 마을에서는 14세기 무렵부터 수도사들에 의해 밀맥주가 주조됐고, 많을 때는 인구가 6,000여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에 30개가 넘는 양조장에서 밀맥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면서 대량생산 체제로 주조되는 필스너 맥주에 밀려 급속히 쇠락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그 많던 밀맥주 양조장이 하나 둘 문을 닫았고, 1957년에는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 하는 가운데 마지막 양조장인 톰신(Tomsin) 양조장 마저 폐쇄되었다.  위기의 순간, 우유배달을 하면서 톰신 양조장에서 견습으로 일한 경험이 있었던 셀리스는 700년 전통의 밀맥주의 부활을 위해 나섰다.      셀리스는 부친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고 노련한 양조가들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수도원’이라고 명명한 작은 시골 양조장에서 전래되어 온 방식에 따라 코리앤더 열매나 오렌지 껍질 등 색다른 원료를 사용하여 호가든만의 밀맥주를 만들었다는 것.    그리하며 밀맥주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마지막 양조장이 문을 닫은 뒤 9년이 지난 1966년. 이렇게 다시 태어난 밀맥주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첫해에 350헬터리터 였던 생산량은 1985년 까지 7만 5,000헬터리터로 크게 늘어났다. 무려 생산량이 200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호가든 화이트는 벨기에와 독일의 젊은이들을 매료시켰고, 전세계를 향해 힘찬 부활의 날개짓을 했다.   오늘날 호가든 화이트는 세계 최대의 맥주회사인 인베브(InBev)의 간판 상품의 하나가 되어 전세계 100여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호가든 화이트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은 셀리스는 1987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으로 이주하여 또 다른 맥주 ‘셀리스 화이트’로 밀맥주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도움말 : 스파이스비 펍문화팀장]  
4    "책은 우리를 괴롭히게 하고 맥주는 우리를 즐겁게 하나니..." 댓글:  조회:2526  추천:0  2017-10-03
[이데일리 EnterFN 강동완기자]  “우리들의 책은 쓰레기, 위대하게 하는 건 맥주뿐, 맥주는 우리를 즐겁게 하고 책은 우리를 괴롭히나니.”   독일의 문호 괴테가 남긴 맥주찬양가의 한 구절이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맥주애호가로 알려져 있는 괴테는 맥주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많이 남겼다.      하나는 슈바르츠비어라는 흑맥주를 관한 것인데, 감기에 걸렸을 때 이 맥주를 먹고 나은 것을 인연으로 자신의 초상화를 맥주병에 그려넣을 수 있도록 허용한 것.   다른 하나는 웨팅어라는 맥주를 너무 좋아해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던 중 이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이 있는 바이에른 지방 웨팅엔에서 머무르며 웨팅어 맥주를 즐겨 마셨다는 것이다.  괴테의 선견지명이 적중한 것일까? 괴테의 여행일정까지 변경하게 했던 바로 그 맥주가 독일에서 생산되는 2,000여종의 맥주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웨팅어 맥주가 독일에서 판매량 1위로 올라선 것은 2004년. “마케팅은 없다. 오로지 맛으로 승부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독특한 마케팅전략을 편 것이 주효하여 벡스, 크롬바커 등 유명 브랜드를 독일내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잡은 것이다.   웨팅어의 가장 큰 경쟁력은 경쟁자를 경악케 하는 가격정책이다. 이를 위해 웨팅어는 생산설비의 최첨단화를 통해 생산비용을 최소화하고 대형 할인 매장과의 제한된 직거래로 유통비용을 절감을 통한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품질관리를 통한 신뢰의 확보로 친환경적인 설비를 통해 고품격의 맥주를 제공하는 것이다.   16종의 라인업을 유지하고 있는 웨팅어의 대표적인 맥주는 웨팅어 오리지널 필스. 황금색을 띠고 있고 흰 거품이 풍성한 정통적인 독일 필스너 스타일 맥주로 적당한 호프와 몰트향함께 부드럽고 상쾌한 느낌을 준다.   웨딩어의 힘은 이처럼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을 조화시킨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      1516년 제정된 맥주순수령에 근거하여 보리, 호프, 효모, 물만으로 맥주를 양조하고 있으며 최신 양조 설비 및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여 세계맥주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3    [그것이 알고싶다] - 맥주가 만들어진 유래?... 댓글:  조회:3071  추천:0  2017-10-03
  [이데일리 EnterFN 강동완기자]  유구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맥주는 전세계에서 1만 5,000종 이상이 주조될 만큼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농경시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맥주. 하늘에 별처럼 많은 맥주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명품 맥주들에 얽힌 숨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편집자주]  오늘날 세계인이 가장 많이 마시는 맥주, 다양한 스타일을 자랑하며 전 세계에서 1만 5,000종 이상이 주조되고 있는 맥주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오래된 친구와 같은 술이다.    인류는 언제부터 맥주를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을까? 학자들은 맥주가 7000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보고 있다. 맥주는 곡물을 원료로 한다는 점에서 인류의 조상이 한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한 농경시대부터 비롯되었다는 데서 추정하는 연대다.      BC 5000년경부터 곡물이 심기 시작했으니, 그 무렵 어느 땐가 맥주라는 음료가 만들어졌고, 그 후 7000년 동안 인간의 희노애락과 함께 해왔다는 것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맥주의 유래가 이처럼 김빠진 맥주처럼 싱거워서야 되겠는가? 이 시점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속했던 수메르 민족의 한 여성이 등장한다. 보리를 빻아서 빵을 만드는 일을 하던 이 여인은 실수로 빵을 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며칠이 지난 후 빵에서 우러난 물을 마셔보니 정신이 몽롱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바로 이 물이 자연적으로 발효되어 만들어진 최초의 맥주였던 것이다.  1953년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된 점토판은 이 이야기를 뒷받침해준다. BC 42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모뉴멘트 블루’라는 점토판에는 방아를 찧고 맥주를 빚어 여신에게 바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설형문자로 기록된 이 점토판을 해독한 결과 수메인들은 오늘날과는 달리 보리를 분쇄하여 빵을 구워낸 다음, 그 빵을 물과 함께 섞어서 자연발효 시켜 맥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수메르인은 이미 ‘시카루’라고 하는 보통 맥주 외에도 강한 맥주, 검은 맥주, 붉은 맥주 등 6종의 맥주를 주조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점토판은 당시 수메르인들이 맥주를 신이 인간에게 전할 선물로 생각하여 사원 안에서 종교의식의 하나로 이 술을 빚었다는 것이다. 또 당시 맥주를 만드는 일은 여성이 맡아서 했으며, 양조가는 매우 존경받는 직업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들이 맥주를 만드는 음료이다 보니 맥주와 관련된 신화에는 어김없이 여신들이 등장한다. 수메르인들은 맥주를 만들어 시리스(Siris)와 님스키(Nimkasi) 여신에 봉양한 후 급료로 지급하거나 선술집에서 마셨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맥주에 공장에서 제조되는 방식으로 바뀌어 맥주의 왕이나 수호성인으로 남성들이 등장하지만, 신화 속에서는 여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런 연유 때문이다.    
2    [그것이 알고싶다] - "와인은 神, 맥주는 인간을 위한것" 댓글:  조회:2968  추천:0  2017-10-03
      인류는 언제부터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을까요? 처음 맥주를 마시기 시작한 사람들은 수메르인들이라고 해요. 수메르인은 지금부터 약 6000년전, 오늘날의 이라크 주변인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살았던 사람들을 일컫지요.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맥주를 만들게 됐는지는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단지 물에 젖은 빵을 놓아 두었는데, 이것이 발효되면서 시금털털한 맛을 내는 액체가 생겨났고, 사람들이 이것을 마시면서 맥주라는 술을 알게 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예요.     수메르 사람들의 맥주 제조법은 바빌로니아로 전해졌어요. 바빌로니아(BC 4000~BC 538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문화를 갖고 있던 문화 대국이었죠. 그 사람들은 여러 가지 곡물을 이용해 20가지가 넘는 다양한 맥주를 만들었어요.   고대의 맥주는 요즘의 맥주와 많이 달랐다고 해요. 당시의 맥주는 제대로 걸러지지 않아서, 색깔이 탁했고 맛도 썼다는군요. 그래서 맥주를 마실 땐 씁쓸한 앙금이 입 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가느다란 갈대를 잔에 꼽아서 ‘쭉쭉’ 빨아 마셨다고 해요.   바빌로니아 유적 그 시절의 맥주는 ‘평등한’ 먹거리가 아니었어요.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만든 함무라비 법전에 ‘사람의 지위에 따라서 맥주를 차등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거든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법전’인 이 법전에 따르면 일반 시민은 하루에 약 2리터, 관리들은 3리터, 성직자와 고위 관리들은 약 5리터의 맥주를 배급 받을 수 있었다고 해요.   신분 차별은 있지만, 누구든 하루 2~5리터의 맥주를 마셨으니, 그야말로 엄청나게 마셔댄 셈이죠.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맥주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술집 주인이 형편 없는 저질 맥주를 내놓으면 물에 빠뜨리고, 심지어 살해하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무시무시한 세상이었죠?   그리스 맥주 맥주는 그리스에서도 사랑을 받았어요. 정치가 플리니우스(Plinius·63~113)는 “(지중해 인근의 오리엔트 지역에서) 포도주가 유행하기 전에 맥주가 있었다”고 했어요. 하지만 로마에선 달랐지요. ‘신의 음료’ 라고 불리던 와인에 밀려서 외면당했거든요. 로마 사람들에게 맥주는 포도가 제대로 재배되지 않는 외곽에서나 마시던 ‘야만인의 음료’였던 셈이죠.     로마인들은 맥주를 싫어했어요. 로마인 중에 맥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남긴 사람은 정치가 타키투스(Tacitus·55~117)로 알려져 있어요. 그는 “게르만 사람들은 보리나 밀로 만든 끔찍한 음료를 마신다”고 적어 놓았어요. 이 기록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게르만족은 맥주를 좋아했지요. 독일 쿨름바흐(Kulmbach) 지역에선 기원전에 사용되던 맥주 항아리가 발견돼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어요. 기원전부터 이 지역에서 맥주가 애용됐음을 보여주는 증거였죠. 맥주는 바이킹들도 즐겨 마시던 음료였어요. 에다(Edda)라는 북유럽 서사시에 ‘와인은 신을 위한 것이고 맥주는 인간을 위한 것’이란 내용이 나오거든요.   클룸바흐 맥주 파티   로마 사람들과 달리 유럽 사람들은 맥주를 좋아했어요. 그 덕에 맥주는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죠. 그런데 맥주 제조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일반 시민들이 아니었어요. 뜻밖에도 수도사들이었죠. 이유는 사순절(예수가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기간)을 맞아 단식을 하는 동안, 영양을 보충해줄 ‘음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어요. 당시엔 맥주를 술이 아니라 음료라고 여겼지요. 그리고 음료를 마시는 것은 단식의 계율을 어기는 것이 아니었어요.     중세는 종교적 색채가 무척 강했던 시기였어요. 하지만 맥주는 금지된 음식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수도원에선 엄청나게 맥주를 마셔댔어요. 수도사 한 사람당, 하루 5리터씩의 맥주가 허용됐거든요. 1리터 짜리 생수 5병 분량의 맥주를 매일 마셨다는 얘기니까, 당시의 수도사들이 맥주를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알 수 있겠죠?     맥주 제조에 관심을 가진 수도사들은 12세기에 들어, 맥주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어요. 맥주에 처음 호프(hop)를 넣어 맛을 변화시킨 거죠. 대표적인 곳이 벨기에의 브라반트(Brabant) 수도원이어요. 이 수도원에서는 호프 뿐만 아니라, 향을 좋게 하기 위해 다른 곡물, 과일, 꽃잎 등을 맥주에 첨가하는 여러가지 시도가 다양하게 이뤄졌어요. 요즘도 유럽의 맥주 중엔 꽃 향기나 과일 향기가 나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이 맥주들은 대부분 14~15세기에 걸쳐 수도사들이 발전시킨 양조기술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에요.   브라반트 수도원   맥주를 뜻하는 영어 단어 비어(beer)는 ‘마실 것’을 뜻하는 라틴어 비베르(biber)에서 유래된 말이에요. 인도 인근에선 맥주를 알루(alu)라고 했는데, 이 말은 원래 ‘마법’ 또는 ‘마술’을 뜻하는 단어였어요. 고대인들의 눈에는 곡식을 발효시켜 맥주를 만드는 것이 마법같이 신기한 일로 보였나 봐요. 고대 게르만 사람들은 맥주를 에알루(ealu)라고 불렀고, 바이킹들은 알루트(aluth)라고 불렀어요. 모두 맥주의 일종인 에일(ale)을 가리키는 말이었죠. 영국에서는 호프를 재배해 맥주에 이용하기 시작한 15세기 초기까지 비어와 에일을 동일한 단어로 사용했어요. 요즘도 영국에 가서 ‘에일을 달라’고 하면 맥주를 주는 것은 그 시절의 영향 때문이지요.
1    [이런저런] - 맥주 200병 마셨다고... 진짜?... 가짜?... 댓글:  조회:2457  추천:0  2017-10-03
    앉은 자리에서 맥주 200병을 마시는 게 가능할까? 지난 8월 21일 중국 매체 시나닷컴은 한 청년이 충칭의 양지아핑(Yangjiaping)에 위치한 한 무한리필 식당을 방문해 말도 안되는 식탐을 보였다. 매체에 따르면 청년 A씨는 1인당 68위안(한화 약 1만 1,500원)을 내면 무한으로 먹을 수 있는 무한리필 식당을 방문해 맥주만 200병 이상을 마셨다고 한다. 그는 애초에 음식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음식을 조금만 먹은 뒤 바로 냉장고로 이동, 맥주 30병씩 두번 꺼내여 마시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냉장고에서 60병씩 두번 꺼내여 마셨고, 그것으로도 성이 안차 종업원에게 맥주 15박스를 가져다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그의 주변에 놓인 맥주병을 본 식당 사장은 “위장이 하수도에요? 우리 가게가 원래 싼 편인데 이렇게 마시면 거덜 나겠다”며 “환불해 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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