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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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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철새가 문제냐? 인간이 문제냐!!! 댓글:  조회:3637  추천:0  2018-11-25
로마, '성가신' 철새 쫓으려 매 동원 추진.. 동물단체 반발 2018.11.25.  자동요약   음성 기사 듣기   번역 설정   공유   글씨크기 조절하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지난 몇년 간 고질적인 쓰레기 수거 문제가 악화되면서 도심의 쓰레기통 주변에 갈매기와 쥐떼가 창궐하는 것은 물론 멧돼지들까지 출몰하며 '동물원'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는 이탈리아 로마에 겨울철로 접어들면서 또 하나의 성가신 동물이 출현했다. 이탈리아 로마의 도심 하늘을 뒤덮은 찌르레기 떼 [AFP=연합뉴스] 겨울이면 따뜻한 남쪽나라로 이동하는 철새 찌르레기가 로마를 관통하는 테베레 강변에 집단으로 서식하면서 이 일대에 배설물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는 통에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불평이 높아지고 있는 것. 그러자, 로마 시가 수십 만 마리에 달하는 찌르레기를 쫓을 방편으로 송골매를 동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이탈리아 영문 뉴스사이트 더 로컬이 25일 보도했다. 실제로 로마 시내에서는 찌르레기의 배설물을 맞지 않으려 맑은 날씨에도 우산을 펴들고 길을 걷는 주민들이 빈번하게 목격되고 있다. 지난 주 초반에는 테베레 강변을 따라 난 도로 일부가 찌르레기 떼의 똥으로 뒤덮이며 폐쇄되는 사태도 발생했다. 당국은 새들의 분변이 최근 내리는 잦은 비와 결합하면서 도로와 보도가 극히 미끄럽게 변해 사고가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예방적 차원에서 통행을 제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로마 시를 관통하는 테베레 강변 [AP=연합뉴스] 이처럼 찌르레기 떼로 인해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되자 로마 시는 송골매를 이용해 새들을 쫓아낸다는 구상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로마 시는 매 조련사가 송골매를 찌르레기 서식지에 풀어놓으면, 포식자의 출현에 놀란 찌르레기들이 흩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는 아울러, 찌르레기들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소리를 서식지에 틀어놓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로마 시가 "잔혹하지 않은 친환경적인 방법"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이런 구상에 동물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동물단체 '아니말리스티 이탈리아니'의 리날도 시돌리 대변인은 "로마시의 구상은 야만적이며, 잔인하고, 시대착오적인 것"이라며 "로마 시의 계획은 또한 공인된 야생동물 보호센터의 승인 없이는 조류를 풀어놓지 못하게 한 시의 규정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마 시가 불결한 환경 정비를 위해 동물을 동원하려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재정난으로 도시 환경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로마 시는 방치된 시내 공원과 녹지 지대의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공원에 양떼를 풀어놓아 잡초를 뜯어 먹게 한다는 구상을 지난 5월 공개한 바 있다. 로마 시의 한 주택가에 쌓인 쓰레기 더미 옆에서 한 환경미화원이 머리에 손을 올리고 서 있다. [AP=연합뉴스] 한편, 로마 시는 지난 6월 극우정당 '동맹'과 손잡고 집권한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의 비르지니아 라지 시장이 2016년 6월부터 이끌고 있다. 투명한 행정을 강조하는 라지 시장은 마피아가 시정에 침투하며 '마피아 수도'라는 오명을 얻은 로마의 고질적인 병폐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시장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그의 취임 이후 로마의 열악한 대중교통, 쓰레기 수거난, 도로 곳곳에 팬 구멍 등 열악한 인프라는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달에는 거주 환경의 악화에 분노한 로마 시민 수천 명이 시청 앞에서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   전깃줄 차지한 찌르레기떼 2018/10/23     이전다음  자동넘김 시작 자동넘김 멈춤 (경산=뉴스1) 공정식 기자 - 23일 오후 경북 경산시 임당동 마을 전깃줄에 수백 마리의 찌르레기가 무리를 지어 앉아 있다. 2018.10.23/뉴스1  
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풍산개야, "통일개"야, 무럭무럭... 댓글:  조회:3091  추천:0  2018-11-25
지난 9일 태어난 풍산개 '곰이' 새끼 여섯 마리 모습 '곰이'가 낳은 새끼들[청와대 트위터 캡처]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청와대가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키우는 풍산개 중 한 마리인 '곰이'가 최근 낳은 새끼들의 사진을 공개했다. 청와대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9일에 태어난 '곰이'의 새끼들"이라면서 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관저 앞마당에서 곰이와 새끼들을 살피는 사진을 올렸다. 청와대는 "엄마 개와 여섯 새끼 모두 아주 건강하다"고 전했다.   '곰이'는 지난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선물한 풍산개 한 쌍 중 암컷이다. '곰이'와 새끼들을 살펴보는 문 대통령 부부[청와대 트위터 캡처]   '곰이'는 수컷인 '송강'과 함께 9월 27일에 동물검역절차를 마치고 판문점을 통해 우리 측에 인수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트위터를 통해 '곰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하는 동시에 "2마리의 선물에 6마리가 더해졌으니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면서 "남북관계의 일이 이와 같기만 바란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당시 '곰이'가 초산인 데다 새끼들의 건강을 고려해 추후에 풍산개 모습을 공개하겠다고 한 바 있다.   /연합뉴스, 
3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비로봉 댓글:  조회:2966  추천:0  2018-11-25
비로봉           /윤동주 만상을 굽어보기란ㅡ 무릎이 오들오들 떨린다. 백화 어려서 늙었다. 새가 나비가 된다. 정말 구름이 비가 된다. 옷자락이  춥다. 1937.9. ================/// 평양, 그리고 윤동주의 '서시'와 '비로봉'   유시경 신부(성공회 교무원장, 평통연대 운영위원) 평화칼럼             올해는 시인 윤동주의 탄생 100주년이다.(1917-2017) 나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윤동주의 첫 일본 유학지인 동경의 릿쿄대학에서 교목으로 일했다. 재직 중에 알게된 사실은, 한국에서는 유치원생도 알 정도로 유명한 시인이지만, 일본에서는 아주 일부 일본인들을 제외하고는 시인의 존재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다만, 윤동주 시인을 기억하는 극소수의 일본인들은 시인의 오늘날의 위상에 큰 공적을 남겼다. 이 중에는 70년대에 시인의 존재를 수필로 알려 교과서에 실리게 한 분, 유학생 독립운동 취조와 재판 기록을 발굴한 분, 80년대에 시인의 시집을 일본어로 번역한 분, 아직 한국이 중국과 수교되기 전에 고향에서 묘소를 발견한 분, 90년대 들어 광복 50주년의 해인 1995년에 KBS와 NHK 공동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든 분, 고향방문단을 조직하고 이후 줄곧 윤동주 연구에 헌신한 분, 두번째 유학지인 쿄토 동지사대학에 시비를 세운 분들, 20년 이상 후쿠오카 형무소 유적지에서 시낭독 모임을 해온 분들, 쿄토 우지강가에 시비를 세운 분들 등, 결코 적지 않은 분들이 있었다.   이 분들과 연결되면서, 동경에서도 윤동주 추모회를 조직하고 2007년부터 매년 시인의 기일에 맞춰 동경 릿쿄대학에서 추모집회를 10년간 개최하고 윤동주 장학금을 만들었다. 이렇게 시인을 기억하고 조금씩 배움과 깨달음이 늘어가는 가운데, 뒤늦게 다시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윤동주 연구가들을 통해 북한에서도 90년대에 윤동주 시인이 재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제시대 식민지 통치의 가장 포악하고 암담한 그 마지막 시기 조선문학 발전 역사에서 특기할만한 사실 중의 하나는 시인 윤동주의 출현이다."(박종식 '통일문학')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고 문익환 목사가 1989년 3월 평양 방문 때에, 환영 인파 앞에서 연설 중에 윤동주의 서시를 인용한 일이다. 문익환 목사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윤동주와, "모든 통일은 선"이라고 외친 장준하의 마음으로 대화하러 왔노라고 선언했다. 윤동주도 장준하도 문목사의 용정 명동초등학교의 동창이었다.   동주가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것은 해방을 반년 앞둔 1945년 2월 16일이다. 시인의 가슴 속에는 오로지 분단 이전의 "통일 한국"만이 존재했다. 1936년 평양 숭실고가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를 당해 고향으로 돌아와 광명중학교에 다니던 시인은 수학여행으로 금강산을 다녀왔고, 시를 한 수 읊었다.   비로봉   만상을 굽어 보기란-----   무릎이 오들오들 떨린다.   백화 어려서 늙었다.   새가 나비가 된다.   정말 구름이 비가 된다.   옷 자락이 춥다. (1937.9)   지금 통일의 꿈이 멀어지고 작아지는 듯한 어려운 때이지만, 시인 윤동주가 걸었던 금강산 등산로를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함께 오르는 평화통일 시대를 꼭 열고 싶다. 북의 청년들이 한라산 백록담을 보고, 남의 처녀들이 백두산 천지를 함께 노래하는 때를 앞당기고 싶다. 윤동주의 100주년에 부끄럽기 짝이 없다. ======================/// ▲  서울 신촌 연세대 내 핀슨홀 2층에 마련된 윤동주문학관. 윤동주와 관련한 원고와 평전 등을 전시하고 있다.     유성호의 윤동주 100주년, 문학과 역사   - 작가 송우혜의 집념으로 탄생한 ‘평전’  ◇ 비허구 장르의 흐름  최근 우리의 시선을 강렬하게 붙잡고 있는 책들 가운데는 이른바 ‘비허구 장르’가 많다. 회고록이나 자서전 같은 전통적 나르시시즘 독서물도 많지만, 사실적 기억에 토대를 둔 이른바 증언문학도 많이 눈에 띈다. 일례로 연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팩트와 픽션의 경계를 허물면서 인류가 겪어온 전쟁과 학살과 재난 현장의 고통을 기록해 왔고, 그렇게 사실성의 기억으로 그녀만의 문학적 기념비를 세웠다. 전통 서사인 소설보다 논픽션에 가까운 기록문학의 요청이 절실해진 측면도 이러한 평가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소설가 김숨의 최근 장편 ‘한 명’은 일제강점기 종군위안부 문제를 제재로 하여 증언으로서의 속성과 기억의 문화사로서의 지향을 추구한 확연한 결실이다. 이 작품은 비록 허구이지만, 정밀한 역사적 자료와 기억의 재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최근 흐름을 입증하고 있다.  윤동주와 관련하여 이런 생각이 오래도록 떠나지 않는 것은, 그 역시 이러한 기억과 증언에 의해 우리에게 알려지고 각인된 대표적 사례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가령 윤동주는 자신의 삶과 생각과 실천에 대한 산문적 정보를 일절 남기지 않았다. 개개 시편에는 꼼꼼하게 창작연월일을 일일이 달아놓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산문, 이를테면 일기나 고백적 에세이를 남기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윤동주에 대한 자료는 그가 남긴 소중한 시편들과 4편의 문학적 산문뿐이다. 하지만 윤동주를 우리가 정확하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가족과 지인과 선후배들의 증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것은 대부분 정확한 기억과 우호적인 증언이었고, 그 기억과 증언에 기초하여 그의 시편들이 낱낱의 풍부함을 얻으면서 윤동주라는 상(像)이 형성, 착근되어간 것이다. 시집 초판에 거의 첫 기억을 남겨준 아우 윤일주, 초판에 서문과 발문을 달았던 정지용과 강처중, 육필 시집 원본을 보관했다 세상에 알린 정병욱, 그리고 윤영춘, 윤혜원 등의 가족들, 김정우, 문익환 등의 북간도 친우들의 기억 속에서 윤동주는 선하고 치열한 생을 살아간 시인의 모습으로 충일한다. 이분들의 기억과 증언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가 아는 윤동주는 텍스트 안으로 옹색하게 갇혀버렸을 것이다. ◇ 청춘과 사랑과 실천의 기억들  이러한 기억과 증언의 최전선에 위치하는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은 우리 근대문학사의 비허구 장르 가운데 가장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문제적 개인의 생애를 재현하면서도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하는 ‘사실적 허구’의 양식이 바로 평전일 것인데, 이 책은 가장 순결하고도 고독한 삶을 살아갔던 윤동주 시인을 통해 험난했던 한 시대를 전체적으로 통찰하게 하는 평전문학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방대한 노작(勞作)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송우혜는 북간도 역사에 대해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연구해온 근대 사학자이다. 그 점에서 그가 윤동주 연구에 착수하고 기념비적인 저서를 낸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북간도의 가파른 역사를 연구해온 송우혜가 윤동주 평전에 가장 적합한 작가임을 알아본 이는 시인 최하림이었다. 최하림의 권면으로 송우혜는 윤동주 평전에 착수할 수 있었다. 지난해 개봉해 커다란 호응을 얻은 영화 ‘동주’의 감독 이준익은 “평생을 함께한 오랜 벗 윤동주와 송몽규, 두 사람이 어떻게 시대를 이겨냈고, 그 시가 어떻게 이 땅에 남았는지, 그 과정을 영화로 담고 싶다는 바람 하나로 이 작품을 시작했다”는 말을 했는데, 이들의 신산한 세월을 흑백 화면에 담아 고고학적 속성을 높여간 이 영화의 저본이 된 것 역시 송우혜의 이 책이었다.  어쨌든 송우혜의 평전은 ‘지금 여기’에서 윤동주-송몽규-강처중으로 이어지는 청춘과 사랑과 실천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우리에게 탕진되지 않는 감동으로 전해주고 있다. 송우혜는 평전 서문에서 “나의 아버지 송두규 목사님의 삼종형인 송몽규 어른이 윤동주 시인의 동갑내기 고종사촌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는 점이 더욱 집필의 동력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이처럼 윤동주와 송몽규라는 형제요, 친구요, 운명적 동지에 대한 고증과 각인은 송우혜의 노고가 없었다면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  송우혜 작가와 윤동주 평전 표지. 왼쪽부터 1998년 세계사, 2004년 푸른역사, 2014년 서정시학 출간본. ◇ 판을 거듭해간 새로운 기억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은 열음사 주간이었던 최하림의 정성스러운 부탁을 작가가 오랜 숙고 끝에 받아들인 결실이었다. (이때 우리는 최하림 역시 또 한 편의 명작 ‘김수영 평전’의 저자라는 사실을 삽화처럼 만나게 된다.) 송우혜는 이 책에서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밝혀내는데,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윤동주의 동기 동창이자 함경도 사나이인 강처중에 대한 발견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강처중이 처형되었다는 증언을 기록했는데, 나중에 그 글을 읽은 강처중 가족이 그 기억을 수정해준 과정은 평전문학의 백미였다. 판을 바꾸면서까지 그 변모 과정을 기록해내는 작가 정신은 적지 않은 감동과 외경을 내게 주었다. 나는 지난해 3월에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에서 강처중의 가족이 증언하는 것을 보고는, 이 또한 송우혜의 공적이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또한 작가는 윤동주의 여동생 윤혜원의 헌신적 증언에 대해서도 깊은 사의를 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 책을 가능하게 했던 분들을 호명하고 있다. 마치 윤동주가 별마다 소중한 이름을 하나하나 붙여간 것처럼 말이다.  윤동주 시인의 명동소학교 4학년 때 담임이었던 현준명 선생님, 중국 낙양군관학교에서 송몽규와 같이 훈련을 받았고 또 후일 윤동주와 송몽규가 연전 입학시험을 치르러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숙소를 제공해 주었으며 윤동주와 함께 북아현동에 있는 정지용 시인의 집에 찾아갔던 라사행 목사님, 일본 경도(교토)에서 사건의 공범으로 윤동주와 같은 날 일본 특고경찰에 체포되어 수감되었던 고희욱 선생님…. 그런 분들이 별세하기 전에 만나서 직접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고, 두고두고 큰 위로가 되었다.  이 ‘행운’과 ‘위로’의 끝에 작가는 네 번이나 판을 거듭하면서 새롭게 증보된 윤동주 평전을 태어나게 하였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초간본은 1988년에 ‘열음사’에서 나왔고, 1차 개정판은 1998년에 ‘세계사’에서, 2차 개정판은 2004년에 ‘푸른역사’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 책은 지금 ‘서정시학’에서 출간되고 있다. 그렇게 여러 번 판을 거듭할 때마다 작가는 매우 중요한 자료들을 공개하고 그에 대한 예리하고도 전문가적인 해석을 덧보태 갔다. 특별히 소설가로서의 정확하고 소통 지향적인 문장은 이러한 성과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더없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송우혜의 평전은 그야말로 수많은 인터뷰를 하고 발로 뛰면서 귀납한 자료들을 적정한 곳에 배치하고 또 풍부하게 해석하는 과정을 거쳐 윤동주와 송몽규의 연대기를 차근차근 구축해 간다. 책의 구성은 자연스럽게 전(傳)적 체제를 취하게 되었고, 시인의 출생부터 성장 과정을 거쳐 가혹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치밀한 고증과 필치로 드러나고 있다.  ◇ 평전의 세목과 성취  책의 1장에서는 시인의 출생 과정을 담고 있는데, 이는 윤동주 개인사라기보다는, 2장 ‘지사들의 마을 명동’, 3장 ‘해란강의 심장 용정’과 함께 북간도의 역사이자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이산(離散, diaspora) 역사로서도 결코 모자람이 없다. 북간도 근대사 연구자로서의 작가의 역량과 개성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송우혜 득의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4장 ‘송몽규 이야기’는 다른 어떤 책에서도 확인 불가능한 창의적 궤적이다. 윤동주와 송몽규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송몽규 개인의 생각과 실천을 올바로 드러냄으로써 한국 독립 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추가했다는 보람을 가질 만하다. 영화 역시 이 장에 많은 빚을 졌다.  ‘평양에서 보낸 7개월’을 지나 다시 용정에 돌아와 공부를 마치는 과정이 삽화처럼 펼쳐져 있고, 7장 ‘젊음의 정거장, 서울 연희전문학교’에 오면 이 책은 윤동주의 주옥같은 시편들이 쓰이는 맥락과 배경에 대한 더없는 참고서가 되어준다. 사실 윤동주는 이 시절에 가장 아름다운 절편(絶篇)들을 썼거니와, 이때 윤동주가 겪었던 신앙적 고민이나 시대에 대한 아픔 같은 것은 송우혜의 답사와 서사적 상상력이 없었더라면 제대로 재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8장 ‘6첩방의 고장, 일본’과 9장 ‘체포, 재판, 복역, 옥사’에서는 일본인들의 도움과 증언이 많은 역할을 하였고, 특별히 최근 공개된 판결문들을 실증적으로 제시하고 해석함으로써 일본 현지에서 일어났던 우리 독립 운동사의 흔적을 선명하게 알려준다. 마지막 10장 ‘시인윤동주지묘’와 11장 ‘민족시인의 영광’은 죽음 이후의 윤동주에 대한 소묘로서, 정지용과 강처중의 역할을 새삼 드러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정연하게 정리된 소중한 연보로 책은 끝이 난다. ◇ 불멸의 기억을 가능케 한 기록    이처럼 송우혜의 저작은 우리 시대 평전문학의 대표 격이 되어주고 있다. 물론 작가 송우혜의 열정은 또 다른 자료가 공개될 때마다 판을 거듭해갈 것이다. 사실 윤동주 연구의 역사에서 아이러니가 있다면, 하나는 문학 연구자가 아닌 역사학자가 시인에 대한 가장 적확하고 풍부한 기록자가 되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윤동주에 대한 중요한 발굴과 발견에 일본인들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정지용이 시집 서문에서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라고 기억했던 그 오롯한 ‘고독’이 윤동주를 불멸의 시인으로 남게 했다는 사실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불멸의 기억을 지금 우리가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송우혜의 노고 때문이다. 다행스럽고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나는 윤동주 시 전편 해설서를 쓰고 있다. 평전으로는 송우혜 저작을 넘어설 수 없어서, 작품을 꼼꼼히 읽어내고, 시의 영향사와 수용사를 알리고, 그가 가장 성실한 ‘학생’(윤동주는 평생 학생이었고, 학생으로 죽었다.)으로서 선행 고전들을 수용하며 결국 그것을 넘어서는 성장 드라마를 보여주었다고 논증하려고 한다. 이 또한 윤동주 기억의 결정(結晶)으로서의 송우혜 선행 업적이 없었다면 착수하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문화일보 8월 22일자 25면 5회 참조)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
2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산협의 오후 댓글:  조회:3203  추천:0  2018-11-25
산협山峽의 오후                                    윤동주     내 노래는 오히려 섧은 산울림.   골짜기 길에 떨어진 그림자는 너무나 슬프구나   오후의 명상暝想은 아- 졸려.   1937년 9월. =================== 윤동주 (1917.12.30. ~ 1945.2.16) 1917년 12월 30일 당시 중화민국 동북부(만주)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본관이 파평인 부친 윤영석(尹永錫, 1895-1965?), 모친 김룡(金龍, 1891-1948)의 맏아들로 태어나다. 아명은 해환(海煥).  출생 전조부 윤하현(尹夏鉉) 때인 1900년에 명동촌으로 이주. 증조부 윤재옥(尹在玉) 때인 1886년에 함경북도 종성에서 간도의 자동(子洞 또는 紫洞)으로 이주, 조부 윤하현 때인 1900년에 명동촌으로 옮기어 살았다. 1910년에는 일가가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외삼촌 규암 김약연(金躍淵) 선생은 1899년, 역시 종성에서 명동촌으로 이주한 한학자로서 1900년대 초에 명동학교를 세우고 많은 지사를 길러낸 선각자이며 1910년에 기독교에 입교한 인물로 윤동주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1917년12월 30일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 당시 중화민국 동북부(만주)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본관이 파평인 부친 윤영석(尹永錫, 1895-1965?), 모친 김룡(金龍, 1891-1948)의 맏아들로 태어나다. 아명은 해환(海煥). 당시 조부 윤하현은 개척에 의한 소지주로서 기독교 장로였고, 부친은 명동학교 교원이었다. 후에 윤동주와 함께 옥사하게 되는 고종(姑從) 송몽규(宋夢奎)는 외가인 윤동주의 집에서 같은 해 9월 28일에 태어났다(부친 송창희, 모친 윤신영, 아명 한범(韓範)). 송몽규와 윤동주는 유아 세례를 받았다(연도 미상). 호적상 윤동주 생년이 1918년으로 되어 있는 것은 출생 신고가 1년 늦었기 때문이다.   1923년(7세) 9월, 부친 윤영석은 관동대지진때 동경에 유학 중. 12월, 누이동생 혜원(惠媛)이 출생하다. 1925년(9세)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하다. 같은 학년에는 고종 송몽규, 당숙 윤영선(의사), 외사촌 김정우(시인), 문익환(목사, 시인) 같은 분들이 있었다. 1927년(11세) 12월, 동생 윤일주 출생하다. 1928~1930년(12세~14세)급우들과 함께 이란 잡지를 만들다. 명동소학교 4학년 무렵부터 서울에서 간행되던 , 구독, 5학년 때에는 급우들과 함께 이란 등사 잡지를 만들다. 그림에도 소질을 보이다. 1929년(13세)외삼촌 김약연은 목사 안수를 받다. 1931년(15세)3월 15일, 명동소학교를 졸업하다. 학교에서는 졸업생 14명에게 김동환 시집 [국경의 밤]을 선물로 주다. 송몽규, 김정우와 함께 명동에서 10리 남쪽에 있는 소읍인 대납자(大拉子)의 중국인 소학교 화룡 현립 제일소학교 고등과(高等科)에 편입하여 1년간 수학하다. 1932년(16세)은진중학교에 입학하다. 4월, 명동에서 20리 서쪽에 있는 소도시인 용정의 기독교계 학교 은진중학교에 송몽규, 문익환과 함께 입학하다. 윤동주의 집에서는 명동의 농토와 집을 소작인에게 맡기고 용정에 이사하다. 부친은 인쇄소를 내었으나 사업이 여의치 않았다. 은진중학교 재학 시절, 윤동주는 급우들과 교내 문예지를 만들고, 축구 선수로 뛰고, 교내 웅변 대회에서 ‘땀 한 방울’이라는 제목으로 1등을 하기도 한다. 1933년(17세)4월, 동생 윤광주 출생하다. 1934년(18세)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쓰다. 이는 오늘날 찾을 수 있는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다. 1월 1일, 송몽규, 신춘 문예에 꽁트 ‘숟가락’이 아명인 송한범이라는 이름으로 당선되다. 4월경, 송몽규는 가출하여 난징(남경)의 독립운동 단체로 가다. 9월 1일,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친 윤동주는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에 편입하다(만주 학제와의 차이로 1년 늦어지다). 숭실학교 4학년에는 한 학기 전에 옮겨간 문익환이 있었다. 10월, 숭실학교 YMCA 문예부에서 내던 제15호에 시 ‘공상’이 최초로 인쇄화되다. 이 무렵 수학여행으로 동룡굴을 구경하다. 1936년(20세)숭실학교를 자퇴, 광명학원 중학부에 편입하다. 3월 말, 숭실학교에 대한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자퇴, 고향 용정(룽징)으로 돌아와 5년제인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편입하다. 문익환은 같은 학교 5학년에 편입하다. 3월, 중국 남경(난징)과 제남(지난)의 독립운동 단체에 가 있던 송몽규가 고향에 돌아와 4월에서 8월까지 본적지인 웅기 경찰서에 구금, 문초를 받고 나오다. 그 후 요시찰인(要視察人)으로 계속 일본 경찰의 주목을 받다. 윤동주는 간도의 연길(옌지)에서 발행하던 에 동시 ‘병아리’(11월호), ‘빗자루’(12월호)를 윤동주(尹童柱)란 이름으로 발표하다. 광명중학교 시절, 일본판 [세계문학전집]과 한국인 작가의 소설과 시를 탐독하다. [정지용 시집]을 정독하다. 이 무렵 용정(룽징)의 외가에 와 있던 동요 시인 강소천을 만나다. 한국 문학작품을 신문과 잡지에서 스크랩하다. 이상(李箱)의 작품을 스크랩하다. 이 무렵, 부친은 포목상을 경영하였으나 선비형인 그에게 맞지 않았다. 1937년(21세)윤동주(尹童舟)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다. 에 동시 ‘오줌싸개지도’(1월호), ‘무얼 먹고 사나’(3월호)를 윤동주(尹童柱)란 이름으로, ‘거짓부리’(10월호)를 윤동주(尹童舟)란 이름으로 각기 발표하다. 동주(童舟)란 필명은 이때 처음 사용하다. 경찰서에서 풀려나와 휴양하던 송몽규는 용정 대성중학교(룽징중학) 4학년에 편입하다. 이 무렵 광명중학 농구 선수로 활약하다. 8월, 100부 한정판인 백석 시집 [사슴]을 완전히 베껴내다. 9월, 수학 여행으로 금강산과 원산 송도원 같은 곳을 구경하다. 이때 ‘바다’, ‘비로봉’ 2편의 시를 얻다. 광명중학교 졸업반인 5학년 2학기가 되면서 상급 학교 진학 문제로 문학을 희망하는 윤동주와 의학을 택하라는 부친과의 대립이 심해지다. 조부 윤하현의 권유로 부친이 양보하여 문과를 택하기로 하다. [영랑시집]을 정독하다. 1938년(22세)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4월 9일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하다. 대성중학교 4학년을 졸업한 송몽규도 함께 입학하다. 윤동주는 3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다. 연희전문 3학년에는 고향 은진중학을 졸업한 선배 박창해가 있었다.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도서관 촉탁의 이름으로 있던 최현배 선생에게서 조선어를 배우고, 이양하 교수에게서 영시를 배우다. 연희전문 입학 초부터, 조선일보사에서 발행하던 지를 매달 동생 윤일주에게 우편으로 보내다. 여름 방학에 고향 용정의 북부(감리) 교회 하계 아동 성경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이 무렵 동생들에게 태극기, 애국가, 기미독립만세, 광주 학생사건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다.   1939년(23세) 산문 ‘달을 쏘다’, 시 ‘유언’을 발표하다. 조선일보 학생란에 산문 ‘달을 쏘다’(1.23), 시 ‘유언’(2.6), ‘아우의 인상화’(10.17)를 윤동주(尹東柱)와 윤주(尹柱)란 이름으로 발표하다. 동시 ‘산울림’을 (3월호)에 윤동주(尹童舟)란 이름으로 발표하다. 이를 계기로 편집인인 동요시인 윤석중 씨를 만나다. 처음으로 원고료를 받다. , 을 매달 사서 읽다. 신문에서 한국 작가 작품을 스크랩하다. 이 무렵, 부친은 한국인 경영의 삼화물산회사의 취체역 상무로 취직하다.   1940년(24세) 릴케, 발레리, 지드 등의 작품을 탐독한다. 4월, 고향 광명학원 중학부 후배 장덕순, 연희전문에 입학하다. 새로 연희전문에 입학한 하동 학생정병욱(1922~1982)을 알게 되어 그 후 깊이 사귀다. 이화여전 구내의 협성교회에 다니며, 케이블 목사 부인이 지도하던 영어 성서반에 참석하다. 이해 여름 방학, 고향 용정의 외삼촌 김약연 선생에게서 ‘시전’을 배우다. 이해 무렵 릴케, 발레리,지드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탐독하는 한편, 프랑스어를 자습하다. 고향에 오면 안과 의사인 당숙 윤영선의 방에서 함께 고전 음악을 듣다. 이해(또는 다음 해) 논산, 부여 낙화암 같은 곳을 여행하다.   1941년(25세)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77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 5월에 정병욱과 함께 기숙사를 나와 종로구 누상동 9번지, 소설가 김송 씨 집에서 하숙 생활을 하다(김송 씨와는 하숙생이 됨으로써 우연히 알게 되다). 9월에, 요시찰인인 주인 김송 씨와 학생들에 대한 경찰의 주목이 심하여 그곳을 나와 북아현동의 전문적인 하숙집으로 옮기다. 서정주 시집 [화사집]을 즐겨 읽다. 12월 27일, 전시 학제 단축으로 3개월 앞당겨 연희전문학교 4학년을 졸업하다. 졸업 기념으로 19편의 작품을 모아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77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 본래 예정했던 시집 제목은 ‘병원’이었으나 ‘서시’가 씌어진 후 위와 같은 제목으로 바꾸었다. ‘병원’은 병든 사회를 치유한다는 상징이었다. 같은 시고집 3부를 작성하여 이양하 선생과 정병욱에게 1부씩 증정하다. 오늘날 시집 그 부분의 유일한 원고가 된 것은 정병욱 보관본에 의한 것이다. 이해 말 고향집에서는 일제의 탄압에 못 이기고 동주의 도일 수속을 위하여 성씨를 '히라누마(平沼)'라고 '창씨'하다. 송몽규 집에서는 성씨를 '소오무라(宋村)'라고 창씨하다. 1942년(26세)연희전문을 마치고 일본에 갈 때까지 1개월 반 정도 고향집에 머무르다. 나이와 경제 사정 같은 이유로 진학을 망설였으나 부친은 일본 유학을 권하다. 가계가 다소 어려워지다. 당숙 윤영선에게 서정주 시집 [화사집]과 미요시 타츠지(三好達治)의 시집 [春の岬]을 선물하며 이상의 작품 읽기를 권하다. 이 무렵 키에르케고르를 탐독하다. 용정에 돌아와 있던 박창해에게서 [퀴리부인전]의 영문 원서를 빌려 일역판과 대조하여 읽다. 졸업증명서 등, 도일 수속을 위하여 1월 19일, 연희전문에 창씨계를 제출하다. 1월 24일의 시작품 ‘참회록’은 고국에서 쓴 마지막 작품이 되다. 일본에 건너가(날짜미상) 4월 2일, 도쿄 릿쿄대학(입교대학) 문학부 영문과 선과에 입학하다(송몽규는 교토 제국대학 서양사학과에 입학하다). 일시 도쿄 한인 YMCA 숙소에 기거하다가 개인 집에 혼자 하숙하다. 학적부에 의하면 릿쿄대학 한 학기 동안 과 2과목만 수강하였는데, 각기 85점, 80점을 취득하다. 릿쿄대학 시절인 4-6월의 시 작품 ‘쉽게 씌어진 詩’를 비롯한 5편을 서울의 한 친구에게 우송하다. 오늘날 발견할 수 있는 마지막 작품이다. 여름 방학에 마지막으로 고향에 다녀가다. 이 때 동생들에게 ‘우리말 인쇄물이 앞으로 사라질 것이니 무엇이나, 악보까지라도 사서 모으라’고 당부하다. 방학 도중 도호쿠 제국대학 입학을 목표로 다시 도일하였으나 10월 1일 교토 도시샤 대학(동지사대학) 영문학과 선과에 입학하여 교토시 사교구 타나카타카하라 마을(京都市 左京區 田中高原町) 27, 타케다(武田) 아파트에서 하숙 생활을 하다. 봄에 교토제국대학에 와 있던 송몽규는 사교구 키타시라카와 히가시히라이 마을(左京區 北白川 東平井町) 60번지에 하숙하고 있었다. 10월 29일, 외삼촌 김약연 목사, 고향 용정에서 별세하다. 1943년(27세)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되고 작품, 일기가 압수되다. 1월 1일, 동경에서 온 당숙 윤영춘, 그리고 송몽규와 함께 비와호(비파호, 琵琶湖)를 구경하다. 일본 체류 중 읽은 책은 [고흐 서간집], [고흐의 생애], [다치하라 미치조우(立原道造) 시집] 같은 책들이다. 여름 방학 중인 7월 10일, 송몽규가 교토 시모가모(下鴨) 경찰서에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되다.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려고 차표를 사놓고 짐까지 부쳐놓은 윤동주도 송몽규와 같은 혐의로 검거되고 많은 책과 작품, 일기가 압수되다. 송몽규와 같은 하숙집에 있던 고희욱도 같은 날 검거되다. 윤동주와 고희욱은 학생 식당에서 두 번 가량 상면하여 인사를 나눈 정도의 사이였다. 그 후 도쿄에서 교토의 경찰서에 면회하러 간 당숙 윤영춘은 윤동주가 '고오로기'란 형사와 대좌하여 우리말 작품과 일기를 일역(日譯)하는 것을 목격하다. 외사촌 김정우도 면회하여 같은 장면을 목격하다. 12월 6일, 송몽규, 윤동주, 고희욱이 송청(검찰청으로 넘겨짐)되다. 이해 무렵, 부친은 회사를 그만두고 양계업을 하며 10여 년 동안 다니지 않던 교회에 다시 나가다. 1944년(28세)후쿠오카 형무소(복강 형무소)에 투옥되다. 1월 19일, 고희욱은 기소유예 처분으로 석방되다. 2월 22일, 윤동주, 송몽규 기소되다. 3월 31일, 윤동주는 도쿄 지방재판소의 재판 결과 1941년 개정 치안유지법 제5조 위반(독립운동) 죄로 징역 2년의 언도를 받다(구형은 3년이었다). 그중 미결 구류일 수 120일이 산입(算入)되다. 재판장 이시이 히라오(石井平雄) 외 판사 2인. 이 재판 결과는 4월 1일 확정되다. 4월 13일, 송몽규는 재판 결과 윤동주와 같은 죄목으로 역시 2년 형의 언도를 받다(구형 3년). 미결 구류 일수 산입되지 않다. 재판장 코니시 노부하루(小西宣治) 외 판사 2인. 이 재판 결과는 4월 17일 확정되다. 윤동주, 송몽규는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되다(날짜미상). 수감된 후 고향에의 서신으로는 매달 일어로 쓴 엽서 한 장씩만 허락되다. 고향 집에 부탁하여 보내진 [영화대조 신약성서(일문으로 번역된 신약성서, 英和對照 新約聖書)]를 옥중에서 읽다.   1945년(29세)해방되기 여섯 달 전, 2월 16일 사망하다. 2월에 엽서는 오지 않고 중순이 지난 18일에 는 전보가 고향집에 배달되어 윤동주의 사망이 알려지다. 부친과 당숙 윤영춘이 시신 인수차 일본으로 떠난 후, 이라는 요지의, 고인 생존시에 보낸 형식의 우편 통지서가 뒤늦게 고향집에 배달되다. 일본에 도착한 부친과 당숙은 송몽규를 먼저 면회하다. 그로부터 매일같이 이름 모를 주사를 맞는다는 이야기를 듣다. 그는 매우 여위어 있었다. 라고 일본인 간수가 말하다. 형무소측에서는 운명 시간이 오전 3시 36분임을 알려주다. 규슈제국대학 의학부에서 방부제를 사용하여 윤동주의 시신은 생시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유해는 화장하여 고향에 모셔와 3월 6일 용정의 동산 교회 묘지에 묻히다. 장례식에서는 지에 발표되었던 ‘우물속의 자화상’과 ‘새로운 길’이 낭독되다. 3월 10일, 송몽규도 옥사하다. 그의 부친에 의해 시신이 인수되어 고향인 대납자(大拉子)에 묻히다. 이해 단오 무렵, 윤동주 묘소에 라는 비석을 가족들이 세우다. 8월 15일, 윤동주, 송몽규 사망한 지 반 년 만에 일제가 패망함으로 해방이 되다. [네이버 지식백과] 윤동주 연보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 (타임라인)
1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서시" 분석 댓글:  조회:3726  추천:0  2018-11-25
/ 이승훈 ㅡ윤동주의 '서시' 분석     1)분석의 목표    윤동주의 '서시'는 해방 후 간행된 그의 유고 시집 (1948)의 첫 머리에 수록된 작품이다. 이 시집은 1941년말 그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할 무렵 18편의 시를 자선하여 출간하려던 것이었으나, 생전에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해방 후 유고 시집으로 간행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시'는 그가 1941년 11월 20일에 완성한 것으로 흔히 그이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이 시를 그의 대표작으로 삼을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이제까지 많은 분들이 그의 시를 논의하면서 이 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한국 현대시의 흐름을 논하는 자리에서 정한모는 이 시를 일제 말 최대의 시인으로 평가되는 윤동주의 지적 고뇌와 서정이 단적으로 드러난 대표작이라고 언급한다. 이 시를 그의 대표작으로 볼 수 있는 다른 하나의 이유로는, 이 시가 윤동주의 시정신을 집약한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 시는 말 그대로 그의 시세계를 해명할 수 있는 서시로서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찬찬히 읽어보면 그의 시집 표제에 해당하는 "하늘" "바람" "별" "시"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시는 원래 그가 펴내려던 자선 시집에 수록될 시편들 가운데 제일 나중에 씌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것은 이 시를 통해 의식했던 의식하지 못했던 그가 자신의 시세계를 일단 요약하려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이 시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윤동주의 시세계를 밝히는 자리에서 누구나 한 번씩 언급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 시만을 별로 독립시켜 찬찬히 분석한 논문들은, 필자가 알기로는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까지 필자가 읽은 것으로 홍희표, 이동순, 노대규의 논문 정도이며, 이 시만 다룬 것은 아니지만 마광수의 글이 있다. 홍희표는 이 시를 4단락으로 나누고, 1단란(1,2행)에서는 결백하고자 하는 진실의 선언, 2단락(3,4행)에서 욕된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적 고뇌 3단락(5,6,7행)에서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찾아 떠나고 싶은 갈구, 4단락(9행)에서는 아픈 자기 성찰을 읽는다. 그에 의하면 이 시의 주제는 이 시의 주제는 부끄럼 없는 삶을 살기 위한 결백한 양심의 선언이 된다. 그런가 하면 이동순은 이 시를 3단락으로 나누고, 1단락(1,2,3,4행)에서는 삶의 도적적 완성을 염원하며 지조를 지켜가려는 시인의 의지, 2단락(5,6,7,8행)에서는 시인이 성취하고자 하는 창조적 진화의 연속성, 3단락(9행)에서는 어둠의 역사에서 괴로운 시련을 당하고 있지만 극복의 의지를 잃지 않고 있는 마음을 읽는다. 그에 의하면 시 시의 주제는 근원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가 갈등을 겪으면서도 현실에서의 조화로운 공간을 그리워하는 의식이 된다. 또한 마광수는 이 시를 4단락으로 나누고, 1단락(1,2행)에서는 윤동주가 자신의 도덕적 윤리를 성취시키려는 윤리 의식, 2단락(3,4행)에서는 1단락의 의지가 현실 상황에 부딪쳐 시련을 겪는 것, 3단락(5,6,7,8행)에서는 어려운 현실 상황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해 가며 영원한 진리와 생명의 나라를 지상에 실현시켜 보려고 애쓰는 시인의 의지와 실천적 다짐, 4단락(9행)에서는 2단락의 연장, 곧 시인이 처한 시대적 상황의 제시를 읽는다. 그에 의하면 이 시는 기-승-전-결의 구성법을 연상시키며, 이 시의 주제는 자연 심상을 염두에 둘 때, 대자연의 운행 질서를 겸손하게 바라보며, 그 가운데서 자기 자신의 분수에 맞는 일을 찾아 천명에 따르려 애쓰는 청년의 모습이 된다.  노대규는 언어학적 방법에 의해 이 시의 언어 구조를 분석한다. 앞의 세 논문이 이 시의 구조를 막연한 의미론적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살피고 있다면, 노대규의 논문은, 필자가 알기로는 이 시를 언어학적 시각에서 분석한 최초의 글이 아닌가 싶다. 그는 통사-의미론적 시각에서 이 시를 5문장으로 나누고, 1문장(1,2행)에서는 불변적 지속적 준법 정신에 대한 소망, 2문장(3,4행)에서는 이러한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괴로움과 죽음에 대한 괴로움, 3문장(5,6행)에서는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는 책임감과 의무감의 확인과 다짐, 4문장(7,8행)에서는 이러한 존중하는 책임과 의무의 수행 의지, 5문장(9행)에서는 역사적, 사회적 시대 상황에 대한 인식과 희망 불멸의 정신을 읽는다. 그에 의하면 이 시의 주제는 윤동주의 준법 정신, 생명 존중 정신, 책임과 의미의 수행 정신, 희망 불멸의 정신이 된다, '서시'를 언어학적 방법에 따라 면밀히 고찰한 이 논문은, 이 시의 언어학적 특성, 그것도 통사-의미론적 특성을 최초로 해명했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 하지만, 이상의 요약에서 알 수 있듯이, 논문의 주제를 작가 정신의 해명에 두었다는 점에서 시에 대한 언어학적 분석의 한계를 초월하지 않았나 싶다. 시의 언어 분석은 시를 형성하고 있는 언어 체계의 체계성, 바꿔 말하면 조직 원리를 드러내는 일로 충분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언어 분석을 통해 작가 정신을 해명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시의 언어에 대한 분석은, 시의 언어는 하나의 자율적 체계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어디까지나 언어적 특성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어왔다. 무카졸브스키는 시적 언어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들을 비판하면서 그 특성을 시적 효과의 성취에서 찾은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시적 언어의 특성은 언어의 특성이 아니라, 언어의 특수한 기능으로 나타난다. 시적 언어는 표현 행위 자체를 지양한다는 점에서 논리적 언어나 표현적 언어, 나아가 표준적 언어와 본질적으로 다른 기능을 보여 준다. 논리적 언어에서 중시되는 것은 표현의 정확성, 바꿔 말하면 논리적 상관성에 의해 의미론적 단위를 확정하는 일이다. 그러니 시적 언어에서는 이러한 의미로서의 표현의 정확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정확성으로부터의 이탈, 따라서 표현의 애매성이 문제가 된다. 표현적 언어에서 중시되는 것은 화자의 감정이다. 시적 언어에서도 물론 이러한 감정은 중시된다. 그러나 시적 언의 경우 이러한 표현성, 곧 화자의 감정 전달은, 무카졸브스키도 지적하듯이, 어디까지나 기능적 다양성을 내포하는 표현의 세계로 드러난다. 따라서 시적 언어의 경우 표현이라는 개념은 표현적 언어의 경우와는 다르게 사용된다. 끝으로 표준적 언어는 시적 언어의 특성을 살피기 위해 특히 강조되어야 할 언어 형식이다.  무카졸브스키에 의하면,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시적 언어의 기능은 표현 행위 자체를 지향함으로써 미적 효과를 산출함에 있다. 표현 행위 자체를 지향한다는 것은 소위 일상적 표준어의 기능이 낯설게 되거나, 뒤로 물러갈 때 가능하다. 이렇게 낮익은 표준어의 기능이 낯설게 되거나, 뒤로 물러가는 현상을 러시아 형식주의에서는 낯설게 만들기(ostranenie), 체코 구조주의에서는 배경화(backgrounding)라고 한다. 모든 예술은 이렇게 자동화된, 따라서 낯익은 세계를 낯설게 만들거나 배경화함으로써 성립된다. 그런 점에서 시적 언어의 기능은 표현 행위의 전경화(foregrounding)를 극대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시적 언어는 역동적 구조를 보여 준다. 곧 시적 언어는 표준어와 대비할 때, 표준어의 형식을 배경화하면서 표현 행위 자체를 전경화하는 역동적 구조로 드러난다. 한마디로 그것은 전경화와 배경화의 역동적 체계로 나타난다. 시적 언어가 전경화를 성취하는 기법으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체계성과 수미 일관성이 무엇보다도 강조된다. 다시 말하면 시를 구성하는 전경화된 요소들은 체계성과 수미 일관성을 띠어야 하며, 이 요소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될 뿐만 아니라, 요소들간에는 위계 질서(hierarchy)가 존재한다. 무카졸프스키는 최고의 위계에 속하는 요소를 지배소(dominant)라고 부른다.  시의 언어를 분석한다는 것은 결국 시를 구성하는, 전경화된 요소들의 체계성을 살피고, 나아가 시의 조직 원리라 할 지배소를 살피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리취는 전경화된 요소들의 체계성을 검토하기 위하여 언어의 중요한 세 가지 수준을 지적한 바 있다. 실현의 수준, 형식의 수준, 의미론의 수준이 그것이다. 실현의 수준에서는 음성학적 특성과 자소론적 특성, 형식의 수준에서는 문법적 특성과 어휘론적 특성, 의미론적 수준에서는 의미론적 특성이 해명된다. 그에 의하면 모든 시는 언어학적 인습과 규칙을 파괴한다. 그러한 파괴는 일상 어법으로부터 이탈하는 전통적 파괴, 새로운 경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하여 언어의 한계를 초월하는 창조적 파격으로 양분된다. 한마디로 모든 시적 언어는 일상적 언어로부터 이탈하는 특수한 언어 형식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비록 시적 언어가 일상 어법으로부터 이탈한다고는 해도, 그러니까 무카졸브스키식으로는 표현 행위 자체를 전경화한다고는 해도,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전경화된 요소들은 체계성과 위계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리취가 제시한 세 가지 언어 수준 가운데 소위 형식 수준에 해당하는 문법적 특성과 어휘론적 특성을 중심으로 윤동주의 '서시'를 분석하고, 그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2. 시제의 구조   '서시'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1)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2)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3)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4) 나는 괴로워했다.  (5)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6)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7)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8) 걸어가야겠다.  (9)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시행 앞의 번호는 분석에 필요할 것 같아 필자가 붙인 것이다. 전체 시는 크게 두 개의 연으로 이루어졌지만, 관점에 따라 시는 몇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단락이라고 하는 것은 산문 분석에서 사용되는 의미로서보다는, 연과 관계없이 전체 시의 구조적 단위들을 절단하기 위한 임의적 개념이다. 야콥슨이 셰익스피어의 소넷을 분석하면서 사용한 그러한 개념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싶다. 어느 경우나 비슷하겠지만 하나의 대상을 구조로 인식하다는 것은 구조적 단위들을 절단하고, 그 단위들의 상관성을 읽는 일을 전제로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절단에는 나름대로의 시각이 수반된다. 다시 말하면 어떤 시각에서 대상을 보는가에 따라 대상의 구조는 다르게 드러난다.  먼저 이 시를 문법적 시각, 특히 시제의 개념을 중심으로 바라보면 전체 시는 크게 세 개의 단락으로 나뉘어진다. 1단락(1,2,3,4행)은 과거 시제, 2단락(5,6,7,8행)은 미래 시제, 3단락(9행)은 현재 시제로 되어 있다. 이 세 단락의 상호 관계, 곧 전경화된 요소들로써의 체계성 과연 어떻게 드러날까, 일상적 어법에 따르면 과거→현재→미래의 순서로 시간을 인식하는 게 보통이다. 다시 말하면 일상적 어법에 따르면 이 시의 체계성은 1단락→3단락→2단락의 순서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시에서 그것은 과거→미래→현재의 순서를 밟고 있다. 곧 1단락→2단락→3단락의 순서는 시간에 대한 일상적 인식을 낯설게 함으로써 독특한 미적 효과를 생산한다. 독특한 미적 효과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요소들의 통합 관계를 중심으로 하며, 다른 하나는 그들의 계열 관계를 중심으로 한다. 요소들의 통합 관계, 수평적 차원에서 요소들의 상호 관계를 통시적으로 바라보면, 요소들의 계기적  질서라는 측면에서 이 시의 체계성은 과거→미래→현재로 나타나며,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과거와 미래가 현재를 지향한다는 시간 인식을 암시한다. 흔히 우리는 과거와 현재가 미래를 지향하거나, 과거와 미래가 현재를 지향한다고 생각해온 터이다. 그러나 이 시의 통합적 관계는 시간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형상화하고 있다. 과거나 미래가 현재를 지향한다는 말은,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시의 화자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시간이 과거나 미래보다는 현재라는 것, 또한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담고 있다는 인식을 내포한다.  그런가 하면 요소들의 계열 관계, 곧 수직적 차원에서 요소들의 상호 관계를 공시적으로 바라보면, 이 시의 체계성은 표면적으로는 과거→미래→현재로 되어 있지만, 의미의 무게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놓인다. 왜냐하면 수평적 시각이 아니라 수직적 시각에 따를 때, 이 시의 세 요소 가운데 미래가 중시되며, 그것은 과거와 현재가 미래를 감싸는 구조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계열적 측면에서 이 시의 체계성은 시간에 대한 또 다른 인식을 암시한다. 시간에 대한 또 다른 인식이라고 하는 것은, 통합적 측면에서 이 시의 구조는 과거와 미래가 현재를 지향한다는 시간 인식을 보여 주지만, 계열적 측면에서는 이와는 달리 과거와 현재가 미래를 지향한다는 것, 바꿔 말하면 시간의 본질은 미래에 있다는 시간 인식을 낳기 때문이다. 시제를 중심으로 살펴본 이상의 구조적 의미 가운데 과연 어느 것이 정당한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모든 시적 표현은 논리적 정확성을 노리지 않기 때문에 시제를 중심으로 하는 이 시의 주제는 시간에 대한 이러한 양가적 인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우리들의 자동화된 인식을 갱신한다. 이러한 양가적 인식이 아니라, 어떤 단일한 인식만을 강조한다면 그것은 이미 시적 언어가 아니라 일상적 언어 혹은 논리적 언어가 될 것이다. 물론 표면 구조와 심층 구조의 논리에 따르면 이 시에서 화자는 미래 지향적 삶을 형상화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이상의 세 단락에서 읽을 수 있는 화자의 태도는 어떤가. 태도라는 것은 시 속에서 화자가 세계를 받아들이는 양상을 의미한다. 대체로 모든 서정시에서는 자아와 세계가 융합된 양상으로 나타난다. 서정시의 이러한 특성은 어디까지나 서사시나 희곡과의 비교를 전제로 한다. 서사시에서는 자아와 세계의 대립, 희곡에서는 자아와 세계의 긴장을 읽을 수 있다는 주장이 그렇다. 그렇지만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슈타이거도 말했듯이, 이러한 장르 개념이 어디까지나 작가나 시인의 태도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이상 세 가지 장르 개념은 시인, 소설가, 극작가,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은 자아와 세계가 회상 속에서 융합되는 시적 공간을 형상화하지만, 좀더 따져보면 이 시적 공간은 다시 서사적 태도, 극적 태도, 서정적 태도로 세분될 수 있는 것이다. '서시'의 경우 우리가 화자의 태도를 살핀다는 것은, 소박하게 말하면, 이 시가 한편의 서정시의 범주에 들지만, 이러한 서정시의 범주를 지니면서도 화자는 그 범주 속에서 과연 세계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를 살핌을 의미한다.  이 경우 화자의 태도는 크게 갈등의 양상과 화해의 양상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시의 경우 1단락에서는 화자와 세계의 갈등, 2단락에서는 화자와 세계의 화해, 3단락에서는 다시 화자와 세계의 갈등이 드러난다. 재미있는 것은, 시제와 관련시킬 때, 이러한 화자의 태도가 1단락에서는 과거로, 2단락에서는 미래로, 3단락에서는 현재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화자의 괴로움은 과거에 속하며, 화자의 사랑과 의지는 미래에 속하며, 화자의 갈등은 현재에 속한다. 그러나 1단락과 3단락은 비슷한 갈등의 세계를 보여주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그 갈등의 내용이 다르다. 1단락에서는 부끄럼이 없는 삶에 대한 자기 갈등을 노래한다면, 2단락에서는 1단락에서 노래된 과거의 갈등과, 2단락에서 노래된 미래의 화해가, 다시 말하면 과거와 미래가 어느 한쪽을 지향하지 않고 한데 엉켜 있는 심리적 복합성을 노래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화자가 느끼는 갈등은 앞의 시간 인식에서도 암시했듯이, 과거의 고뇌와 미래의 사상이 얽혀 있는 현재의 갈등이다. 3단락의 갈등이 1단락과 2단락의 태도에 얽혀 있는 그러한 구조라는 것은, 1단락의 중심 이미지 "바람"과, 2단락의 중심이미지 "별"이, 3단락에서는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노래함으로써 서로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좀더 자세히 읽어보면, 3단락의 갈등 구조는 미래의 사랑이 과거의 고뇌에 상처를 받고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이 시에서 읽을 수 있는 화자의 태도는 크게 1,2단락이 심리적 현실, 곧 화자의 주관적 현실을 서술하고, 3단락은 객관적 현실, 곧 화자가 그의 밖에 존재하는 현실만을 묘사한다는 특성을 보여준다. 줄여 말하면 1,2단락에서는 내면 세계, 3단락에서는 외면 세계가 노래된다. 이러한 특성은 시간의 논리에 그대로 대응한다. 과거나 미래는 화자의 주관적 현실이며, 현재는 화자의 객관적 현실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적 특성은 이 시에 나타나는 공간의 양상을 중심으로 할 때에도 그대로 확인된다. 1단락에서는 천상(하늘)과 지상(나)의 대립, 2단락에서는 천상(별)과 지상(나)의 화해, 3단락에서는 다시 하늘(별)과 지상(바람)의 대립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3단락의 대립은 1단락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상에서 논의한 이 시의 구조적 특성을 간탄히 도표로 나타내면,            1단락      2단락      3단락 시간     과거        미래       현재 태도     갈등         화해      갈등      현실     주관적       주관적    객관적 공간     천상/지상  천상=지상 천상/지상 심상    하늘/나       별=나    별/바람   3) 시행의 구조    이제까지 필자는 이 시의 구조를 시제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의 구조를 분석한다는 것은 구조를 형성하는 요소들, 여기서는 세 단락으로 나타난 요소들이 어떤 미적 효과, 곧 어떤 시적 인식의 세계를 보여 주는가를 살피는일이다. 그것은 시를 형성하는 요소들의 체계성, 리취 식으로 말하면 요소들 상호간의 관계의 그물(cohesion)을 읽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는 시제 개념에 의한 구조적 특성 말고도 시행 자체를 중심으로 독특한 구조를 보여준다. 시행은 연이나 단락보다는 미시적 구조 단위이다. 이 시의 경우 시행들 사이에는 어떤 체계성이 드러나며, 그것들은 또한 어떤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을까. '서시'는 모두 9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9행 사이에는 표면적으로는 어떤 체계성도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만 좀더 찬찬히 읽을 때 시행 배열의 법칙성, 곧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먼저 기수행(odd)과 우수행(even)을 중심으로 시행들의 체계를 밝히기로 한다. 각 시행에 나오는 중심이 되는 낱말들을 추려 적으면 다음과 같다.   기수행         우수행 (1)하늘        (2)부끄럼 (2)바람       (4)괴로움 (5)별         (6)사랑 (7)길         (7)의지 (9)별-바람    이 도표에서 읽을 수 있는 두드러진 특성으로는 첫째로 시행들 사이에 일정한 규칙, 곧 체계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기수행은 모든 물질 세계를 노래하며, 우수행은 모두가 정신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따라서 문장 구조를 염두에 둘 때, 이 시가 다섯 문장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면, 각 문장은 마지막 문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가 대응되는 양식을 띠고 있다.  대체로 한 문장이 분할되어 두 개의 시행을 이루는 경우는 많다. 그렇지만 이 시에서 그것은 독특한 구조를 보여준다. 기수행은 물질 세계, 우수행은 정신 세계에 대해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에서 읽을 수 있는 의미는 이 시의 경우, 기수행이 종속절의 형식을 띠기 때문에, 물질 세계보다 정신 세계가 강조된다는 점이다. 시행 구조를 중심으로 할 때, 화자의 삶의 원리는 정신 세계가 물질 세계를 포섭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곧 물질 세계가 환기하는 현실주의적 삶의 태도보다 정신 세계가 환기하는 이상주의적 삶의 태도가 강조된다.  둘째로 이 도표에서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성은 마지막 문장이 한 시행으로 되어 있으며, 그것도 기수행 곧 물질 세계로만 제시되고 우수행 곧 정신 세계가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성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의미를 암시할 수 있겠지만,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의 대립 혹은 대응 구조라는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우선 마지막 문장이 기수행으로만 나타난다는것은 화자의 현재의 삶이 물질 세계에 지배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앞의 네 문장, 곧 과거간 미래 속에서는 물질 세계가 정신 세계에 의하여 극복되거나 물질 세계보다 정신 세계가 중시되지만, 현재 속에서는 정신 세계에 대해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음을 암시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미래의 정신적 승리를 노래한다기보다는 현재의 물질적 고뇌, 현실적 갈등, 한마디로 객관적 현실 속에서의 불안감을 노래한다.  세째로 이 도표에서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성으로는, 단락을 염두에 둘 때. 1-2단락을 이루는 시행들은 모두가 대응 구조로 이루어졌음에 비하여 3단락만 단일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곧 1-2단락은 각각 두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지며, 각 문장은 서로 대응되는 두 시행들로 이루어 짐에 비하여 3단락은 한 문장으로, 그것도 한 시행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다. 간단히 도표로 나타내면 이러한 특성은,     연   단락   문장     시행          1      1     (1)(2)   1             2     (3)(4)          2      3     (5)(6)                  4     (7)(8)      2     3      5       (9)   와 같다. 이 도표에서 우리는 이제까지 해명할 수 없었던 이 시의 또 하나의 비밀을 밝힐 수 있다. 그것은 이 시의 형식과 관련되는 바, 어째서 이 시가 두 연으로 구성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논리적으로 따진다면 이 시는 크게 세 연으로 구성되었어야 할 터이다. 곧 과거-미래-현재의 시제를 각각 분리시켜 독립된 연으로 설정함이 옳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과거-미래를 한 연으로 처리하고, 현재를 다시 한 연으로 처리했다. 그렇게 한 이유를 제대로 밝힐 수 없었던 바, 이 도표에서 비로서 그 이유가 밝혀진다. 그것은 1-2단락의 문장 구조와 3단락의 문장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곧 1단락과 2단락은 유사한 문장 구조를 보여주기 때문에 한데 묶어 한 연으로 처리하고, 3단락은 별도의 연으로 처리했다고 본다. 문장 구조의 이러한 차이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대수로운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시의 구조 분석에서는 매우 섬세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바로 이 시만이 환기하는 독특한 미적 효과를 낳고, 그러한 효과를 제대로 읽을 때 이 시의 시적 메시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문장 구조를 전제로 1-2단락이 이웃해 있고, 3단락이 고립되어 있는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이 시에서 화자가 과거-미래보다 현재의 삶을 한결 고립된 것으로, 바꿔 말하면 과거-미래의 삶에서 소외된 것으로 느낌을 암시한다. 또한 이러한 현재의 삶의 고립성은 기수행, 곧 물질 세계로만 포섭되는 삶과 은밀히 연관된다.  네째로 위의 도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 시에서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구조적 특성을 지적할 수 있다. 단락 구조을 따질 때 언급한 바 있듯이 1-2단락은 심리적 현실을, 3단락은 객관적 현실을 노래한다, 그렇지만 앞에서는 같은 심리적 현실을 노래한다고만 했지 1단락과 2단락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같은 심리적 현실을 노래하지만, 1단락과 2단락의 내용은 다르다. 그 다음은 문장 구조, 나아가 시행 구조를 전제로 할 때 한결 뚜렷해 진다. 이러한 차이를 간단히 도표로 나타내면     단락   문장     시행           내용                           의미     1      1    (1)(2)   부끄럼없는 삶을 바랬다.               동경            2    (3)(4)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     갈등     2      3   (5)(6)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             사랑            4    (7)(8)   나의 길을 가겠다                     의지     3      5     (9)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와 같다. 화자의 심리적 현실로서의 과거의 갈등은 부끄럼이 없는 삶에 대한 동경이 계기가 되는 그러한 갈등이며, 미래의 사랑도 어디까지나 의지와 결합된 그러한 사랑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1-2단락은 같은 내면 세계를 노래하고 있지만, 1단락에서는 동경과 갈등, 2단락에서는 사랑과 의지의 대응적 양상으로 제시된다. 결국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노래하는 화자의 현재의 삶은, "별"이 2단락의 의미를, "바람"이 3단락의 의미를 함축하는, 그러한 내면 세계를 보여준다. 3단락은 그런 점에서 단순한 객관적 현실을 노래하지 않고, 그 속에 과거-미래의 삶에 내용들이 내포된 그러한 객관적 현실을 노래한다. 객관적 세계가 주관적 세계를 내포한다는 이러한 진술은 모든 객체가 주체이며, 모든 주체가 객체일 수 있다는 인식을 낳는다. 그렇긴 하나 "오늘 밤에도"라는 부사는 과거의 갈등이 현재에도 지속됨을 암시한다.   4)어휘의 구조    이제까지 필자는 "서시"의 구조를 시제-시행을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시제를 중심으로 하든, 시행을 중심으로 하든, 언제나 시의 구조를 분석하는 일은 분석 내용들의 상관성, 곧 구조를 형성하는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하나의 체계를 이룬다는 데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상의 분석에서도 그것은 이를테면 전체 시-연-단락-문장-시행들의 상관성이 중시되었다. 끝으로 이러한 요소들의 상관성을 전제하면서 이 시의 구조적 특성을 몇 가지만 보여줄까. 한 편의 시를 어휘론의 측면에서 고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는 시 속에 나오는 어휘의 빈도를 조사하는 것이 있다. 이 시에서 두 번 이상 나오는 낱말은 "바람"과 "별"이다 단락을 중심으로 할 때 이 낱말들은   1단락    2단락      3단락  바람      별       별-바람   과 같은 분포의 형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분포 형식은, 어휘론을 중심으로 할 때. 이 시의 열쇠가 되는 낱말이 "바람"과 "별"이며 따라서 이 시는 "바람"과 "별"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나의 구조를 형성한다. "바람"의 의미는 1단락의 문맥에 따를 때, "하늘"의 의미와 대립된다. "하늘"은 우러러보는 세계요, "바람"은 귀를 기울려 듣는 세계이다. 전자는 시각, 후자는 청각의 세계이며, 다시 전자는 천상, 후자는 지상의 세계를 표상한다. 뿐만 아니라 전자는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세계, 후자는 "괴로움"곧 부끄럼이 있는 세계를 표상한다. 간단히 도표로 나타내면 이러한 의미의 대립은      하늘                              바람   우러러보다                        귀를 기울리다 시각                              청각 상승                              하강 천상                              지상 부끄럼이 없다                     부끄럼이 있다 행복                               고뇌   처럼 정리된다. 모든 사물의 의미는 구조주의의  시각에서는, 다른 사물과의 대립성을 전제로 획득되며, 이것이 언어 기호의 본질이다. 따라서 이 시의 경우 "바람"의 의미 역시 "하늘"의 의미와 대립될 때 드러난다. 그것은 한마디로 지상의 괴로운 삶을 표상한다. "별"의 의미 역시 2단락의 문맥에 따를 때 "죽어가는 것"과 대립된다. 간단히 도표로 나타내면 이러한 의미의 대립은,   별          죽어가는 것   불멸         소멸 삶           죽음 천상         지상 상승         하강 사랑         증오 단단함      연약함    처럼 정리된다. 결국 "별'은 죽음과 대비되는 영원한 삶의 세계를 표상한다. 이상의 두 도표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하늘"과 "바람"의 대립은 "별" "죽음"의 대립에 대응된다. 다시 말하면 이상 네 낱말은 의미론적인 체계를 형성한다. 그것은 하늘과 별의 등가 관계, 바람과 죽음의 등가 관계로 요약된다. 따라서 1단락과 2단락의 관계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할 때, 다음과 같은 통합체(syntagm)와 계열체(paradigm)를 보여준다.   통합체→ 1단락  하늘  우러르다  부끄럼이 없다  잎새에 이는 바람  괴로워하다   개  2단락  별    노래하다  죽어가는 것을 열                             사랑하다 체                           나의 길을 가다    이 도표는 1-2단락을 중심으로 이 시의 통합 관계와 계열 관계를 밝혀본 것이다. 먼저 통합 관계는 시에서 등가성의 원리가 선택의 축에서 결합의 축으로 투사된다는 야콥슨의 견해에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모든 시의 결합 원리는 선택의 축에 해당되는 등가성의 원리를 결합의 축에 투사한다, 다시 말하면 이 도표에서 1단락의 결합은 "하늘"→"우러르다"→"부끄럼이 없다"처럼 등가 관계에 있는 요소들로 성립된다. 곧 1단락의 전반부는 등가성의 원리에 의해 낱말들이 결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늘" "우러르다" "부끄럼이 없다"는 결국 서로 동의어적인 관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합 원리는 이 단락의 후반부라 할 "잎새에 부는 바람"→"괴로와하다"와 대립된다. 곧 1단락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대립되지만, 개별적으로는 등가성의 원리에 따라 낱말들이 결합되고 있다. 결국 1단락은 대립성의 원리와 등가성의 원리에 의해 낱말들이 결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등가성의 원리는 2단락에서도 나타난다. 곧 "별"→"노래하다"→"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다"→"나의 길을 가다"에서 낱말들은 등가 관계에 의하여 결합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의 대립은 1단락의 경우 "하늘"과 "바람"의 대립, 2단락의 경우, "별"과 "죽어가는 것"의 대립을 전제로 한다. 다음 이 도표에서 읽을 수 있는 계열 관계는, 1단락과 2단락을 중심으로 할 때, "하늘"과 "별", "우러르다"와 "노래하다" "부끄럼이 없다"와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다" 및 "나의 길을 가다"가 등가 관계에 있음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결국 계열 관계를 중심으로 살필 때, 이 시에서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보는 마음"이 "별을 노래하는 삶"이며, 또한 "나한테 주어진 길"임을 알게 된다.  3단락에서는 "오늘 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노래한다. 이때의 "별"과 "바람"의 의미는 1-2단락을 전제오 해명된다. 이 시의 구조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살피면, 바람(1단락)→별(2단락)→별-바람(3단락)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변증법적인 구조에서 읽을 수 있는 특성은 "바람"이 표상하는 과거의 갈등과 "별"이 표상하는 미래의 화해 및 사랑이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3단락에서 알 수 있듯이 헌재의 화자의 삶 속에 섞여 있다는 점이다. 3단락은 표면적으로는 1단락과 2단락의 종합 지양되는 단계인 것 같지만, 좀더 찬찬히 살펴보면 3단락 자체가 다시 갈등의 양식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별"이 "바람"에 스친다는 것은, 화자의 미래의 삶이 과거의 괴로왔던 삶의 영향 속에서 아직도 흔들리고 있으며, 이러한 흔들림, 곧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가지 필자는 윤 동주의 대표시로 평가되는 '서시'의 구조를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고, 그러한 구조가 환기하는 시적 의미를 살펴 보았다. 첫째로 시제의 개념을 중심으로 이 시는 세 단락으로 나누어지며, 그것은 과거→미래→현재의 시간 구조로 나타난다. 이러한 시간 구조는 수평적 시각과 수직적 시각, 혹은 통합 관계와 개열 관계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게 나타난다. 이제까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수평적 시각에 의한 해석이 보편성을 띨 것 같다. 수평적 시각에 의하면 이 시에서 과거, 미래는 현재를 지향하며, 수직적 시각에 의하면 이 시에서 과거, 현재가 미래를 지향한다.  둘째로 시행의 개념을 중심으로 이 시는 기수행과 우수행의 대립 구조를 보여주며, 특히 기수행은 물질 세계를, 우수행은 정신 세계를 표상한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다시 문장의 개념을 중심으로 살필 때, 기수행이 대체로 한 문장의 종속절로 나타남으로써 물질 세계에 대한 정신 세계의 승리라는 의미를 환기한다. 세째로 어휘의 개념을 중심으로 이 시는 변증법적 구조를 보여준다. 이때 어휘란 시 속에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어휘, 곧 중심 어휘를 의미한다. 이 시에서 그것은 "바람"과 "별"이며, 이 낱말들은 바람(1단락)→별(2단락)→별-바람(3단락)같은 변증법적 구조를 보여준다. 여기서 "바람"과 "별"은 이미지 혹은 상징으로 드러나며, 그 의미는 시의 문맥에 따라 다른 낱말과의 대림 속에서 해명되었다. 한마디로 '바람"은 과거의 갈등, "별"은 미래의 사랑을 표상한다. 따라서 3단락을 강조할 때 이 시는 화자가 지향하는 미래의 사랑스런 삶이 아직도 과거의 갈등에 침륜당하는, 불안한 현재의 심리적 상황을 노래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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