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jinzaizhen 블로그홈 | 로그인
김재진
<< 5월 2024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작품

[한국 나들이]10. 둘만의 생일 파티
2013년 05월 29일 10시 54분  조회:1681  추천:1  작성자: 김재진
10.  둘만의  생일  파티
 
칠월이라서인지 날씨도 을씨년 스럽다. 차창 밖에선 잔비가 한없이 내린다. 
현대적인 엘지 건설장에서 열흘 일하고 나왔다. 하루에 5만원씩 50만원을 월말 봉금이 나올 때 형 광철씨가 받아서 넘겨 오기로 하였다. 그냥 붙어 한다면 월급은 백 이 삼십만원 될 것 같았고 일도 한주일 후부터는 미립이 트이여 그닥 힘 들지가 않았다. 친구도 익혀졌고 아침 다섯시에 일어나 뻐스타고 갔다가 저녁 일곱시면 오는 시간 생활도 완전히 습관이 되였다. 문래동의 작업이 곧 끝나는데 인천엔가 새로운 공사장으로 옮겨 간다고 하니 일거리 끊길 근심도 없다. 꽤나 괜찮은 일자리라 생각돼 그만두기는 아쉬웠지만 그만두지 않으면 안되였다. 나는 안해가 더욱 좋은 일자리를 찾았다기에 그를 따라 충남 천안으로 가는길이다.
영등포 역에서 점심 때 쯤 “무궁화” 남행 렬차에 올랐다. 한국 렬차를 처음 타보는 것이다. 뻐스와 지하철을 많이 탔고 제주도 왕복 비행기도 탔었다. 렬차는 여덟 바고니 초과하지 않았고 한바고니 정원도 여든을 초과하지 않았다. 려객표는 일절 컴퓨터로 공제되여 있기에 역마다에서 차위에 빈자리가 나져야만 표를 사고 오를 수 있었다. 차위엔 표 검사를 한답시고 왁짝거리며 서넛씩 무리쳐 다니는 승무원이나 승경도 없고 승무원 옷을 주어입고 쪽바리 차를 비집고 밀고다니며 시끄럽게 “매바, 매바!ㅡ (买吧-사세요)”를 부를는 장사군도 없다.
차바곤이 사이문은 자동문이라서 사람이 문앞에 다가서면 조용히 열리고 또 사람이 지나간 후면 소리없이 닫힌다. 바닥엔 붉은 주단을 깔았고 천정엔 공기 조절기를 달아놓았기에 창문은 열지 못하도록 고정해버려 바깥 먼지바람이나 소음과 완전히 격리 되여 있는 것이다. 차내는 조용하고 깨끗하고 편안하였다.
장거리라야 고작해서 중국의 한개 성내의 거리도 안되는 것이라서 침대차나 식당차가 따로 없다. 한국 렬차 안은 대형 뻐스 모양으로 가운데에 통로가 있고 좌우켠에 두사람씩 앉는다. 걸상은 모두 렬차가 전진하는 방향으로 놓여졌는데 등받이를 반쯤 젖히고 누운 자세로 휴식을 취 할 수도 있고 걸상을 백 팔십도로 돌려놓고 넷이 마주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맥주도 마실 수 있다. 실로 아늑한 공간이라 하겠다. 중국에서 기차 타는 것을 한차례의 고역이라 한다면 한국에서 기차 타는 것은 일종의 향수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려행가방을 선반위에 올려놓고 그아래에 나란히 앉아 차창 밖의 경물들을 구경하며 향수를 누린다. 철로 연선의 나무들과 철탑식 전선주들은 휙-휙- 차창을 스치며 우리가 오던 방향을 향해 달리는데 꽤나 먼곳의 고층 건물들은 우리와 경주나 하려는 듯 한참씩 함께 앞으로 달리다가는 기진맥진한 듯 천천히 뒤로 물러선다.
기차가 한역전에 당도 할 때마다 스피카에서는 네가지 나라 말로 지명과 내릴 문의 방향을 알려주고는 “감사 합니다!”“빠이 빠이!”“쎼쎼!”“사요나라!” 하는 아가씨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유연하게 울려 나온다.
“자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점심이나 먹기요.” 역전 슈퍼에서 장만한 물건이란 맥주와 포도물 두통씩 그리고 자그마한 빵과 짤막한 소시지 두개씩 뿐이다. 너무나도 적은 것이지만 그것이 정이고 쾌락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일자리를 찾아 간다기보담 신혼 부부가 려행길에 오른듯한 들뜬 기분이다.
한국에 나온지 달포가 다 되는데 안해는 아무 일도 못하고 하루 종일 옥살이 하듯 조카네 빈집만 지키자니 여간만 힘겨운 사무가 아니였다.
얼마전 그녀는 주정부 인대에서 일보는 딱친구 복자씨한테 안부를 전했었다. 그 친구로부터 한국에서 제일 큰 양돈장을 경영하는 박사장의 련락처를 알았고 그 즉시로 박사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복자씨도 박사장에게 도움을 부탁하는 전화를 쳤다. 이렇게 되여 전날 안해는 박사장의 련계로 천안의 한 돼지농장에 가서 사장님을 만나 뵙고 일자리를 결정 지었던 것이다. 월 로임은 80만원과 70만원으로 남자는 백 사십마리의 종돈을 기르고 녀자는 열명 좌우의 사람들 밥을 하기로 하였다. 두사람의 로임을 합쳐야 문래동에서 내가 혼자 벌던것 만큼 되지만 우리는 돈이 첫째가 아니라 기분 좋게 사는 것이 첫째다. 우리 뿐만 아니라 누구든 다가 그럴 것이다. 돈도 기분 좋게 살자고 버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누구든 살기위해 버는 것이지 벌기위해 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안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그가 할 일이 한결 가볍기만을 은근히 기대해본다.
“자, 나의 옥의 건강을 위하여ㅡ!” 포도물을 그에게 따 주고 나는 맥주를 따 들었다. 그리고는 앞뒤 좌석의 려객들이 듣기나 할까 두려워 도적놈처럼 속살 걸렸다. 그녀도 나의 귀에다 속살거리며 맥주통에 포도물통을 가져다 대였다.
“자, 나의 진의 건강을 위하여ㅡ!”
“우리부부의 건강과 행복과 사랑을 위하여ㅡ”우리는 함께 속삭이며 한모금씩 마시고 마주 보며 웃었다. 참으로 꿀 같이 달콤한 분위기였다. 모든 피로와 번뇌와 증오와 고통까지도 말끔히 잊혀지고 사라지는 순간이였다.
나의 안해의 이름은 옥이고 성은 전씨다. 올 전(全)자에 구슬 옥(玉)이라 이름 하나만은 완미하고 찬란하다. 내가 고쳐준 이름이라서 나의 구미에 딱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본명은 순옥이라 우리 민족 여자들중 제일 평범하고 썩어빠지게 흔한 이름이였다. 중학시절 소위 문화혁명이란 놀음을 함께 하였기에 아래 학급인 그녀와 알게되였고 사회에 나간 후 남 몰래 꽃편지까지 쓰게 되였다. 물론 그녀가 제일 처음 받아본 꽃편지였고 나역시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써바친 사랑의 고백이였다. 그많은 편지의 첫줄마다에 “사랑하는 나의 옥!”하고 썼으니 그 이름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별일인 것이 아니고 뭐겠는가?
내가 군대질 할 때 그는 병마에 찢기운 몸과 순옥이란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그와 한마을에서 함께 자란 춘식이한테로 시집 갔다. 불행이도 그녀에게는 자식이 없었고 그처럼 그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던 춘식이마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춘식이는 나와 동창이였고 먼저 군대에 갔다왔었다.
운명의 조화라고나 할까, 하늘의 안배라고나 할까? 나는 전 처 장씨와 자그마한 말다툼 끝에 리혼까지 하게되였고 리혼한지 3일만에 옥을 다시 만나게 되였다. 만나고보니 남편을 잃고는 이름을 고쳤고 연길에 전근 해 와 살고 있었다. 홀로 있는 팔년 사이 돈 많은 남자, 급 높은 남자, 잘 생긴 남자, 우수한 남자들의 청혼도 많았지만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기다리기나 했다는 듯 무능하고 못난 나를 만나 주었다.
첫사랑이란 원래 잊혀지지 않는 법이라고들 말한다. 그녀가 철부지던 나로하여금 사랑이란 뭔지를 알게 하였고 내가 그녀의 애된 가슴속에 사랑이란 불씨를 던져 타번지게 하였다. 25년이란 기나긴 세월의 폭풍취우와 엄동설한을 겪은 후 그 재무덤을 살랭이 뒤적이고 헤쳐 보니 그속에 여직껏 그렇게 뜨겁고 아름다운것ㅡ사랑이란 불티가 고집스레 살아남아 반짝이고 있지를 않겠는가?!
93년 2월 9일 오후 3시경, 나는 리혼증을 타가지고 그길로 큰 누님을 찾아 갔었다. 큰 누님께선 한단위에서 근무하는 옥의 친구를 통해 3일만에 옥을 찾아 누님집으로 데려왔고 저녁에 나를 불렀다. 그때 나는 어머니와 함께 동생 순란이네 집에서 살았었는데(리혼시 집을 녀자쪽에 주었으니깐) 옥을 찾았다는 소리에 매제 봉진이가 벌떡 자리를 차고 먼저 일어서는 것이였다.
“오빠를 오라는건데 동무 뭐라구 먼저 나섭니꺄?” 순란이의 질문이다.
“나두 보믄 안 되는가?” 봉진이의 불가사이라는 뜻이다.
“둘이 만나 련애 할건데 동무 무슨 대반 서겠습니꺄?”
“그런가? 하하하…”
“그렇채이쿠, 호호호…야ㅡ웃긴다야! …오빠, 잘 만나보구 오시요!”
문밖에 나서는 내 등뒤에서 순란이네 부부의 상쾌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동생들이나 누님들은 옛날부터 나와 옥의 관계를 너무 잘 알고 있는터였다.
“만나게 되여 반갑소!” 나는 처음으로 옥의 손을 잡았다. 60년대 말과 70년대 초 5년간 편지만 서로 오고 갔을 뿐 손을 잡기는 커녕 이렇게 가까이에서 만나본 일 조차 없었다. 아마도 어리고 어진 탓이였을 것이다.
“전 옛날 옥이 아님다…” <그래도 괜찮겠어요?>하는 말은 잇지 않았다.
“나두…” 나도 옛날 내가 아니란 말이고 <아무렴이면 어때서?>하는 뜻이다. 그의 풍상고초를 모르는 내가 아니다. 그마음의 상처를 인젠 내가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 생각은 이렇게 하면서도 본성이 의사 표달을 잘 못 하는 나고 처음 만나는 자리인지라 말을 아꼈다. 우리는 이튿날 아침 여덟시에 예술극장 앞에서 남몰래 만나기로 약속하고 인츰 갈라졌다.
이튿날 13일은 음력으로 1월 22일이라 마침 그녀의 생일이였다. 우리는 쌍 침대 하나보담 조금 더 큰 그의 세집방 침대위에서 말린 세치네(물고기)를 기름에 튀겨놓고 빠이갈(흰술)을 마시면서 하루내내 둘만의 생일파티를 가졌다. 그리고는 저녁에 순란이네 집에 함께 가 어머님과 형제들의 허락을 받았다.
차창밖에선 작은 비가 그냥 내리고 있었다. “무궁화”는 우리를 싣고 평택을 지나 천안으로 달린다. 안해는 음료통을 나의 앞으로 내들었다. 
“이번엔 내가 찡쥬(敬酒-술을 권함)할 차롐다. 랑군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옥체 건강하시고 하려는 일들이 뜻대로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부인님의 건강과 쾌락을 위하여 이잔을 듭시다!”
나는 나의 옥과 존대말을 잘 쓰지 않는 버릇이 있다. 중학 시절부터 어린애로 보아왔고 선배노라 틀거지 내며 “야,자,”하는 말투가 습관 돼 버렸다. 헌데 생각지도 않은 생일을 축하 한다고 하니 정식이 돼버려 존대어가 불쑥 튕겨져 나온다. 오늘이 바로 양력 7월 10일이니 음력으로 5월20일이라 나의 쉰 한돐 생일이였던 것이다.
“섭섭케 생각지 마십시오, 앞으로 다 보상 해 드릴께요.”
“아니, 섭섭한게 아니라 너무 즐겁기만 한데뭐, 고국의 아름다운‘무궁화’ 속에서 사랑하는 님과 나, 우리 둘만의 생일파티! 얼마나 랑만적인 현실이요? 남들은 이런 생일을 쇠고퍼 죽는다고 해도 쇨 수 없거니와 상상도 못 할 건데뭐, 영원히 영원히 이렇게 둘이서 생일을 쇨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이같은‘생일 려행’은‘신혼 려행’ 못지 않게 뜻 깊은 한페지가 아니겠소?…”
“뭐나 좋게 생각하니 좋습니다. 고생을 락으로 생각하며 ‘뛰고 뛰는 몸이라 괴로움 많지만 쨍ㅡ 하고 해 뜰 날 돌아 온단다…’”
“생일날이면 제일 먼저 생각 나는 사람은 누구갬?” 내가 불쑥 물었다.
“어,머,니!”하고 안해는 또박또박 대답한 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정답입니다! 백점을 드리겠습니다. 자, 철혁씨의 노래가 나갑니다…”
나는 사회자나 된듯한 어투였고 “어머니”를 낮은 소리로 함께 불렀다. “천리를 가도 만리를 가도 못 잊을 어머님 사랑, 무엇으로 그 사랑에 보답 해야 합니까…” 우리는 어머님에 대한 추억으로 묵상에 잠겼다.
“천구백 칠십년, 애들과 함께 갑산골에 가 일년간 감자 농사를 지었댔소…”
나는 31년전 스므돐 생일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남도마을”로 내려갔던 동필이가 달구지에 보습날이며 괭이따위 농기구들과 생활 용품들을 싣고 돌아왔다. 마을로부터 갑산골까지 칠 팔십리 거리라 소수레를 몰고 올라면 하루 종일이 걸린다.
“자, 이거 저네 엄마 줍데.”하며 동필이는 돈 2원을 내앞에 내밀었다.
“이건 어째?”  파아란 돈 2원을 받아쥐며 짓는 나의 의아적은 표정이다.
“넬 제 생진이라구 술 사 먹으랍데.” 동필이의 전달이다.
“응?” 나는 목이 꺽 메였다. 원경지에 가 일하는 아들의 생일을 잊지 않으시고 챙겨주신 어머니! 그 이원은 온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어머님의 사랑이다! 째지게 구차한 그세월에 무슨 수로 그 2원을 얻어 보내셨는지 알 수 없다. 한근에 2전씩 하는 소금을 산다면 2원으로 백근을 살 것이고 백근이면 몇년을 먹을지 모른다. 그렇게 눅은 소금도 적잖은 농가들에선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없는 세월이였다. 먹을 쌀이 긴장한 때라서 그랬던지 그때도 다른 물건에 비해 술값만은 비쌋다. 2원이면 흰술 너근밖에 살 수 없었으니깐. 우리네 넷이니 너근 값을 구해 보내신 것이 뻔하다. 너남 없이 젊은이들은 누구나 다 60% 흰술을 한근씩 마시고도 부족해 하는 때였으니깐.
이튿날 그들 셋은 감자밭 기음 매러 가고 나를 남겨 밥을 짓게 하였다. 애들이 나의 생일이라 봐준 것이고 또 그래야만 저녁에 생일술이 쉽게 생길 것이 아니겠는가? 애들을 점심 먹여 일밭에 다시 올려 보낸 후 할 일이 없으니 나무 그늘 아래서 소설책을 읽고 있는데 뜻밖의 춘식이가 찾아왔다. 군대에서 휴가를 맡아 나온 그애는 멋들어진 군복 차림이였다. 68년 3월에 참군하여 학교에서 갈라진 후로 오래간만에 만나는 동창이고 친구이다. 갑산마을에 친척이 있어 피끗 뵈러 왔다가 내가 그곳에 와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들린 것이였다. 기차를 타야 한다면서 말 몇마디 못하고 역전으로 발길을 옮기는지라 나도 따라 나섰다. 기차란 림업국 통나무를 운반하는 소형 철길 위로 뛰는 작은 객차인데 고동하골과 갑산골로 하루 건너 엇바꾸어 뛰는지라 한번만 놓지면 두밤을 묵어야 하였다.
함께 학교 다니다가 춘식이와 같이 참군한 애들이 많았다. 명식이, 룡운이, 운봉이, 준봉이, 승남이, 승호… 나는 그애들의 소식을 퍼그나 알고 싶었다. 나는 일원을 내고 “목단표”담배 두갑을 사 춘식이의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그때 그곳에선 그것이 제일 비싼 담배였다. 더 사주고파도 아니된다. 저녁에 생일 술을 적게라도 사야되니깐.
“이것이 바로 돈을 쪼개 쓴다는 것일게요…”
나의 옛말은 아쉬운대로 여기에서 멈춰져야 했다. 우리들을 실은 “무궁화” 렬차가 서서히 천안역에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사장님께서 직접 승용차를 몰고 우리들을 영접하러 오기로 했노라고 안해가 알려 주었다. 나는 어서 빨리 뛰여내려 사장님을 뵙고 싶었고 가슴까지 쿵당쿵당 뛰였다. 무슨 말부터 해야는건지? 악수는 해야는지 말아야 쓰는지? 사장님이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하니깐 분수 없이 들뜬 것이다.
“원래 점잔은척 하는 놈이 뒤로 호박씨 깐다”고들 말한다. 고운 녀자 싫다는 남자란 없을 것이다. 특히나 나같이 멋진 남자가, 식물인이면 몰라도 말이야. 물론 고운 녀자라고 뭐 다 나하고 친하는건 아니지만, 아니, 나를 보는것 처럼도 하지 않을 것이지만 홀로 생각만 하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데야! 이래서 “남자들은 다 발람둥이”라고 무리하게 제멋대로 욕하는건지 모를 일이다. 바람둥이라기 보담은 세상이란 원래 이렇게 타극이나 이성은 서로 흡입 하면서 음양 자웅이 서로 조화되여 온 사회가 발전 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고 생각된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5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5 아름다운 꿈을 품고… 2013-06-20 0 1605
24 <부기>어머님께서 떠나시던 날 2013-06-19 0 1964
23 [한국 나들이]23. 어머님의 슬하에로 2013-06-18 0 1845
22 [한국 나들이]22. 막 일 군 2013-06-17 0 1632
21 [한국 나들이]21. 깍쟁이네 집 머슴 2013-06-14 0 2339
20 [한국 나들이]20. 캄캄한 모텔에서 2013-06-13 0 2240
19 [한국 나들이]19. 번대머리 파트너 2013-06-09 0 1738
18 [한국 나들이]18. 품 값 2013-06-08 0 1698
17 [한국 나들이]17. 종돈장과 리 별 2013-06-07 0 1742
16 [한국 나들이]16. 无 题 (무제ㅡ잡담) 2013-06-06 0 1585
15 [한국 나들이]15. 서해 대교 2013-06-05 1 1976
14 [한국 나들이]14. 박사장과 사모님 2013-06-04 1 1662
13 [한국 나들이]13. 고사장 그녀 2013-06-03 0 1587
12 [한국 나들이]12. 추석날의 추억 2013-05-31 0 1519
11 [한국 나들이]11. 충청남도 종돈장(种腞场) 2013-05-30 0 1789
10 [한국 나들이]10. 둘만의 생일 파티 2013-05-29 1 1681
9 [한국 나들이]9. 현대화 아파트 2013-05-28 0 1688
8 [한국 나들이] 8. 권력과 돈 그리고 법 2013-05-27 0 1844
7 [한국 나들이]7. 인생 수업 2013-05-24 0 1357
6 [한국 나들이] 6. 동북아의 진주 2013-05-23 0 2323
‹처음  이전 1 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