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jinzaizhen 블로그홈 | 로그인
김재진
<< 5월 2024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작품

[한국 나들이]14. 박사장과 사모님
2013년 06월 04일 08시 36분  조회:1663  추천:1  작성자: 김재진
14.  박사장과  사모님
                                                               
우리부부는 센터에 온지 달포 되였을 때 휴식일을 빌어 박사장네 집으로 인사도 할겸 놀러 갔었다. 그의 소개로 센터에 오게된 우리가 아닌가? 호성이네가 바로 박사장 뒷집 건너에서 사는터라 우리는 고사장이 안배대로 호성의 차에 앉아 평택시 교구로 갔다. 박사장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배사장보담 두살 위인 그역시 드물게 잘 생기고 건장하고 호방한 사나이였다. 주정부 공무원이였던 나의 안해는 연길에서 그와 함께 술 마신적도 둬번 있은터라 초면이 아니였다.
사람마다가 고향을 멀리하고 시가지로 들어가는 그세월에 박 종필씨는 축목업 대학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집마당에 작은 우리를 짓고 돼지를 키우기 시작하여 20년이 흘러갔다. 오늘 그는 전국 양돈왕으로 되였고 그의 사업은 국외로 뻗히고 있다. 그의 집엔 김대통령이 수여한 “감사패”도 걸려 있었다. 나라 양돈사업에 한 공적과 불운한 이웃을 돕고 고향민들을 부추켜 잘 살게 한 공덕을 칭송하였다.
전화벨 소리가 울리더니 팩스기가 돌아갔다. 연변 돈화시 왕사장한테서 보내온 팩스라 중문으로 찍혀 있었는데 마침 우리가 곁에 있었기에 번역해 줄 수 있었다. 왕 강은 돈화시에서 규모가 제일 큰 자동차 부품 판매회사를 갖고 있었는데 박사장이 연변에 다니면서 사귄 30대의 젊은 친구였다. 이번에 주정부에서 조직한 민간 상무 고찰단에 들어 한국으로 오게되는데 보내온 팩스 내용은 열 다섯명의 고찰단 성원 구성과 한국에 온 후 열흘간의 일정 안배였다. 일정에는 고찰단이 종필네 한길농장을 참관 고찰 한다는 조목도 들어있었다. 연길 의란진 춘양촌에 세운 농장만 한길농장인줄 알았었는데 사실은 원유의 이름을 그대로 그곳에 옮겨간 것이였다. 왕 강의 상무 고찰 목적은 한국 자동차 부품들을 제 3자의 손을 걸치지 않고 직접 자기가 수입해다 판매 할 수 있는 통로를 찾으려는 것이였다. 성사 하였는지는 몰라도 그들이 쌍용 자동차 회사의 유관 인원과 상담 할 때 안해와 나는 통역으로 한번씩 불리워 갔었다.
박사장의 안내하에 우리는 그의 돈사를 돌아보았다. 몇백마리의 엄지돼지는 박사장 부인님께서 직접 마을 사람들을 거느리고 사양하면서 달마다 천여마리의 새끼 돼지를 받아내고 있었다. 부인은 교포일군들의 끼니도 직접 책임지고 한집 식구처럼 함께 먹으며 지냈다. 그많은 돈을 벌고서도 부부가 손잡고 부지런히 돌아치는 그들을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진짜 열심히 사는 모습이구나>하고 나는 못내 탄복 하였다. 박사장의 두 아들은 고교에 다니고 있었다. 큰 놈이 금년에 필업하면 유럽으로 류학 보내 양돈업을 전공하게 할판이라고 한다.
종필네 양돈장엔 만 여마리 고기돼지가 크고 있었는데 5-6개월씩 먹이면 출하 하니깐 달마다 한번씩, 한번에 근 천마리씩 서울에서 내려와 실어간다고 한다. 만여마리라는 많은 돼지를 돈 벌러 건너간 연길 나그네 넷이서 관리하고 있었는데 돈사의 모든 것은 기계화로 되여 있기에 책임감만 가진다면 쉽게 할 수가 있었다. 사료회사에서 포장도 하지 않은 건사료를 트럭으로 실어다가 직접 네개의 사료 공급 시스탬ㅡ철탑식 저장고에 넣어준다.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번씩 스위치 하나만 꾹 누르면 시스탬이 작동하여 저장고 속의 마른 사료가 자동으로 오륙백칸의 돼지 우리, 수천개의 철 구유마다에 정량으로 수송된다. 건사료를 먹은 돼지들은 물을 많이 먹기가 마련이니 수돗물은 24시간 끊이질 않고 공급하는데 철구유 윗쪽마다 자동 물주리(물면 물이 나오고 입을 떼면 막히는)가 줄줄히 달려 있다. 돼지 분변 처리도 당연히 자동화이다.
설비의 수리와 보양은 설비를 공급한 회사에서 완전히 책임진다. 그러니 사양원의 일은 전기 스위치를 누르는것, 사료 시스탬과 급수 계통에 이상이 없는가를 감시 하는것, 덜 새여 내려간 분변을 긁어 내려뜨리는것, 그리고 돈사를 정기적으로 소독 하는 것이다. 돈사는 엄청 큰 봉페식 2층 벽돌집 두채에 층마다 사료 시스탬과 분변 처리 시스탬이 각기 하나씩 설치되여 있었다.
중국에서도 큰 양돈장들은 아마 봉페식이고 모든 것이 자동화로 되여 있을 것이다. 비록 내가 보아온 것들은 죄다 로천식 우리에 철바가지로 물사료를 퍼주는 그런 작은 사양장들 뿐이지만…
30년전, 군대 종합 농장에서 일년 남짓이 돼지를 먹였었다. 그 때의 겨울은 어쩌면 그리도 추웠던지? 헌데 봉페식 돈사가 아니라 토피(土坯)를 쌓아 북쪽만 막고 남쪽은 통나무로 울타리를 삥 둘러놓은 원시적인 우리였다. 서른마리도 안되는 돼지를 우리 쫄도병 넷이서 힘들게 먹였다. 여름에는 풀밭으로 몰고 다니며 풀을 뜯기였고 겨울에는 벼겨를 사다가 물을 뿌려 비닐 하우스 땅 밑에 묻어놓은 큰 오지독에 담아 발효시킨 후 시래기를 섞어 부글부글 삶아 먹였다. 펄펄 끓여 주면 뭘하게? 구유에 붓기가 바쁘게 얼음 덩어리로 되여버리는데야. 천지가 얼음장인 세월에 왜 따스한 봉페식 돈사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지 알고도 모를 일이다. 한 밤중, 설한풍이 창문을 두드릴 때면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몇리밖의 련대 탈곡장으로 뛰여가 벼짚북데기를 한짐 꿍져지고 사나운 눈보라와 씨름하며 돼지우리에로 기여와 새끼돼지들을 덮어주었고 낡은 솜군복을 뜯어 체질이 약한 놈들에게 “외투”를 해 입혔다… 그해 나는 전퇀에서 하나밖에 없는 남들이 우러러 보는 삼등 공신으로 당선 되였다. 도리켜 보면 참으로 우숩고도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다. 박사장의 돈사를 돌아 보면서 내가 만약 다시 돼지를 기르게 된다면 절대로 옛길로 가지 않을 것이라 속다짐 하였다.
박사장은 우리부부를 차에 앉히고 이미 준공되고 바야흐로 사용에 교부될 한길농장 새 돈사 건설 현지로 갔다. 년간 10만마리 고기돼지를 생산 할 수 있는 양돈장을 세운 것이다. 그는 국내 돼지고기 수요가 만족 되였으므로 국외에로 진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길에 와 농장을 세웠고 자지방에 막대한 “돼지굴”을 지은 것이다.
국도로부터 지방도로를 거쳐 농장에 이르기까지 길목마다 “한길”을 가르킨 도로 표시판이 세워져 있었다. 나라 양돈협회 주석인데다 한길농장 또한 전국의 으뜸인지라 참관이나 자문, 상담 하고저 찾아오는 사람들로 줄을 섯는데 길을 몰라 고생이고 전화기로 가르켜 줄라니 시간 랑비가 대단하였다는 것이다.
박사장네 새농장에서 멀지않은 곳에 고사장이 새로 세우고 있는 경기도 돼지 인공 수정 센터가 있었다. 현재 경영하고 있는 충남의 센터보다 곱절 더 크고 모든 것이 자동으로 돌아가게끔 할 판이였다. 사료도 비닐 바가지로 퍼주지 않고 자동으로 수송되고 분변도 철편 갈퀴로 긁지 않고 절로 떨어져 내리는 그런 돈사다. 새로운 센터가 운영 되면 고사장은 우리 몇몇만 데리고 이사오고 충남의 것은 배사장한테 다시 넘겨 줄 것이라고 한다. 고사장의 새로운 돼지정액센터가 가동 되여야만 박사장의 몇 십만마리를 사육하는 양돈장이 돌아 갈 수 있고 박사장의 새 양돈장이 가동 돼야 고사장의 새 센터가 살아 갈 수 있는 그런 사이, 병존하며 서로 도와야만이 잘 될 수 있는“상보상성(相辅相成)”의 관계였다.
“고사장은 인제 가만히 앉어 돈 벌게 됐어요.” 참관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하는 박사장의 말이다. 고사장 센터의 돼지정액을 박사장네 농장에서 전부 받아 써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센터의 달 평균 수입이 천만원을 넘기므로 이제 새 센터의 달 평균 순 수입은 이천만원 쉬히 넘길 것이라 그이야기다. “원래 물 장사 마른 돈 버는 법이 아닙니까? 허허허…”박사장은 유모감도 뛰여났다. 고사장이 이천만원씩 번다면 박사장은 얼마씩 벌것인가?ㅡ나는 박사장의 말을 들으며 홀로 주먹구구 치다가 엄청난 천문수자라서 결과도 못 보고 그만두었다.
박사장네 집에 돌아와 보니 사모님은 멋진 스타일로 변장하고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전 돈사에서 작업복 차림에 새끼돼지를 안고 돌아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건강하고 일 잘 하는 텁텁한 농촌녀성으로 보였고 박사장에 비해 너무나도 짝진다고 생각 하였었다. 헌데 웬걸, 입호단장이라고 좋은 옷 입고 얼굴에 분가루를 조금 뿌려 놓으니 몰라보게 변하였다. 호리호리하고 아름답고 젊고, 서울의 어느 귀부인도 따를 수 없을 형편이고 박사장쪽이 되려 많이 찌불어 보이는 판이였다. 아마 이럴 때엔 “사모님, 미인이십니다!”하고 찬사를 올려야 할 것인데 나이 먹은 놈이 주책 없는 짓이다 싶어 목구멍에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버렸다. 고 미자씨보다 한살 위라는 사모님은 되려 그보다 더 많이 젊어 보였고 아직도 청춘의 활기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고사장도 조금만 치장하고 꾸미고 가꾸면 박사장 사모님보다 썩 나으련만 그녀는 그저 입술을 약간 칠하는 정도밖엔 아무것도 없었다.
박사장의 봉고차는 사모님이 핸들을 돌리는대로 어데론가 향해 달리고 있었다. 박사장은 나의 옆 운전석 뒤자리에 앉아 누구에겐가 전화를 치고자 부지런히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아마 잘 안 통하는 모양이였다. 까아만 봉고차는 마을의 작은 길을 벗어나 큰 도로를 타고 한참을 달리다가 다시 작은 길로 접어들었다. 큰 도로던 작은 길이던 다가 아스팔트라서 하나 거침이 없었고 시속은 시종 백키로를 넘기고 있었다.
“운전 기술 참 대단하시네요!” 조수석에서 안해는 찬탄을 금치 못하였다.
“뭘요, 그저 수수한데요.” 종필씨 안해의 겸손한 대답이다.
“거 다 이 스승님의 덕분이쥬.” 종필씨가 허허 웃으며 끼여 들었다.
“제요, 저양반 기사노릇 이십년 했어요. 처멘 태워줘 좋더니 날 갈쳐 놓곤 부리기만 하는거 있죠?”“스승님 덕분”에“불만”을 토하는 사모님이였다.
“참 수고 많으셨군요, 뽀너쓰 많이 받으세요.” 나도 한마디 끼였다.
“뽀너쓰유? 줄라니 싫다는디유, 뽀뽀도 주고 키쓰도 주고 밤낮으로…”
종필씨의 롱담끼가 막 터지려는데“전화 왔어요! 전화 받으세요…”하고 그의 핸드폰 신호가 울리였다. “예예, 고사장님, 왜 통화 안 됐었지유?...오, 그래유?  우리 지금 이조농원에 가는 길이우… 맞쥬… 맞어유, 그리로 와유… 기다릴테니 꼭이유…‘뽀너쓰’ 토론 중이라 전화 끊습니다…아따 참말로 와 보면 알거구만유. 끊습니다.” 그는 핸드폰을 접으면서 “인천공항 갔대유.”라고 한다.
“인천공항에서 오시믄 당신 뽀너쓰 줄거죠?” 이번엔 사모님이 말을 뗐다. 그녀의 말은 롱담 반 진담 반으로 들렸다. 웃으며 떠드노라 차속도 떨어졌다.
박사장은 술 한모금만 마셔도 안해한테 차 핸들을 몰수 당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해야한다! 가정에서부터 음주운전 단속과 방지에 전력 해야지 경찰아저씨들의 힘만으로는 천만 가당찮은 일이다. 그처럼 애쓰는데도 얼마나 많은 아까운 생명들이 음주운전 사고로 불행을 당하고 있는지 헤아릴 수가 없다. 술 마신후 요행을 바라며 핸들을 잡는 일이 절대로 없어야 할 것이고 박사장님네 부부처럼 자각적으로 교통 규칙을 지키고 자기의 생명과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아끼고 지켜야 할 것이다!
사모님은 남편의 음주운전 단속만이 아니라 가정생활로부터 사회활동, 양돈 사업에 이르기까지 내조작용을 출중히 하는 훌륭한 동반자였다. “성공한 남성의 뒤엔 위대한 녀성이 서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의 뽀너쓰야 당신거 아니유? 남 줘두 되것수?” 박사장은 하하하 크게 웃으며 안해의 롱담을 받았다. 그 안해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보관원 맘대로 하는거 아닌가요? 남 줬다고 뭐 자리나 나는가, 자각적으로 영수증 떼여다 바칠리도 없고한데. 주인한테 들키는 날이면 큰 일 날 것이란걸 잊지 마시고 들키지만 말아요.”
“알것습니다, 주인님! 헌데 그 고사장 성질 사납고 팩해 뽀너쓰 못 받아요. 누가 줄라겠어유? 이봐요, 왕누님! 이 형님 뽀너쓰 많이 드리쥬?”
한일 남편을 위해 차를 몰았다는 사모님더러 남편한테서 장려금이나 많이 타라고 그녀의 방식대로 롱담 절반 진담 절반 한다는 것이 장려금을 한국식대로 뽀너쓰라 했고 보너스를 발음법에 맞추어 된소리 조금 낸 것이 뽀뽀요 키쓰요하며 롱담거리로 돌다가 다시 돌아 온 것이다.
“왕누님”은 성이 왕씨라서가 아니라 나의 안해를 두고 이르는 박사장만의 특별한 존칭이다.
나의 안해는 전(全)씨라 단위에 나가면 “전서기”라 불리우고 집에 오면 “여보” 아니면 “어이”로 불리운다. 함께 일하고 함께 노는 친한 녀동료들 중 나이가 제일 많다보니 모두들 “全姐(전언니,전누님)”라 불렀고 친언니 보담도 더 믿어주고 따라주고 존경해 주었다. 박사장과 연길에서 만나 함께 술 마시고 놀 때 “칠선녀”들이나 “다섯금화”들은 입만 열면“쵄제”이니 박사장은 하도 궁금하여 곁에 앉은 복자씨와 그것이 뭔 소리냐고 몰래 묻게 되였다.
“쵄제란건 순수한 중국말인데요…” 남의 뒷공론 하는것 같아 계면적은 생각에 낮은 소리로 물었더니 복자씨는 아무런 구애 없이 기다렸다는 듯이 높은 소리로 대꾸했다. “쵄은 성씨 올 전, 모땅다라는 뜻이구요, 제는 언니 누님이란 뜻입니다. 쵄제는 우리들을 골고루 사랑하고 우리들은 쵄제를 존경합니다. 쵄제는 제일 큰 언니 누님, 제일 높은 언니 누님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챈제는 왕누님이구먼…” 연신 머리를 끄덕이며 설명을 듣던 박사장은 쵄자를 챈자로 번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왕누님! 박 종필이란 사람도 챈제를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박수소리 속에서 그가 잔을 추켜들자 좌석 전체도 일어섰다. “자, 여러분! 왕누님의 이쁨과 기쁨을ㅡ 위하여!ㅡ”하니 다 같이 “위하여!”를 웨치고는 잔을 굽내고 다시 열렬한 박수를 쳤다. 이렇게 “왕누님”이란 특이한 이름이 몇해전 연길에서 탄생한 것이다.
“왕누님 이젠 년세가 많으셔 뽀너쓰에는 뒤전이랍니다. 아마 저축이 퍼그나 많은가 보죠 뭐.” 박사장의 묻는 말에 내가 안해 먼저 입을 열었다. 
“형님한테 남겨두면 안 좋을텐데…” 박사장의 말이다.
“남겨 둘 새가 어디 있다구요? 달라는 사람도 많을게고 주고싶은 사람도 많을게고 모자랄거야요.” 나의 안해도 뒤질세라 공격 태세로 끼여들었다.
“남자들은 뽀너쓰를 자꾸자꾸 써야써유. 마님 모르게…”
“그럼요, 유통 기한이 지나면 끝이랍니다…”
“얼마나 유통 했는지 바른대로 대시요.”하는 쵄제의 말을 이어 사모님은ㅡ 
“바른대로 댈리 있겠어요? 그러니 전 운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따라 다니면서 우리집 재물 관리를 철저히 하는거얘요, 방임하면 언제 어떻게 어데로 새여 나갈지 모르잖아요.”라고 한다. 
“실증 났어도 남 줘서는 안되고, 여자들은 그래요.”
나의 말에 앞 좌석에서 “남자들 그런거얘요!”하고 이구동성으로 달려든다.
“집에 꽃은 남이 꺾을까 눈 부릅뜨고 밖에 꽃에만 눈독 들이고, 남자들은 다 이런거라구요.” 하는 쵄제의 말에 사모님도 “그래요!”하고 동을 단다. 
“롱담은 롱담이고, 고사장 앞에선 이런 롱담도 못해유.”남녀간의 대결이 한동안 흐르다가 결국엔 종필씨가 결말을 지었다. “누구라 없이 가정을 지켜야지 가정을 잃으면 인생을 잃는겁니다.”하는 종필씨의 말에 우리 셋은 이구동성으로 “그럼요”를 부쳤다.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말은 가장 평범하고 가장 심오한 말이다. 종필씨는 말을 이었다. “고사장이나 배사장이나 다가 우리와 친구구 동업자지유. 그들에게는 웃음이란게 없어유, 실수로 인한 불행입니다.” 종필씨는 휴ㅡ 한숨을 내쉬였다.
“배사장이나 고사장이나 둘 다 기막히게 좋은 분들이시고 사이도 너무나 끔찍 했었는데…” 남편의 론술에 사모님이 설명을 가했다.
박사장네 부부는 우리 센터로 자주 왔었다. 센터에서 개를 잡고 회식 할 때도 사모님은 삼계탕을 손수 끓여들고 남편과 함께 왔었고 사모님의 동생 남편을 일군으로 들여보내놓고 자주 보러 다녔으며 사모님은 가을에 센터의 김장일을 도우러 동네 친구들까지 여럿 끌고 왔었다. 박사장네와 배사장네는 확실히 가까운 사이였다.
우리를 태운 검은색 봉고차는 작은 아스팔트 길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5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5 아름다운 꿈을 품고… 2013-06-20 0 1605
24 <부기>어머님께서 떠나시던 날 2013-06-19 0 1965
23 [한국 나들이]23. 어머님의 슬하에로 2013-06-18 0 1845
22 [한국 나들이]22. 막 일 군 2013-06-17 0 1632
21 [한국 나들이]21. 깍쟁이네 집 머슴 2013-06-14 0 2339
20 [한국 나들이]20. 캄캄한 모텔에서 2013-06-13 0 2240
19 [한국 나들이]19. 번대머리 파트너 2013-06-09 0 1738
18 [한국 나들이]18. 품 값 2013-06-08 0 1699
17 [한국 나들이]17. 종돈장과 리 별 2013-06-07 0 1742
16 [한국 나들이]16. 无 题 (무제ㅡ잡담) 2013-06-06 0 1585
15 [한국 나들이]15. 서해 대교 2013-06-05 1 1976
14 [한국 나들이]14. 박사장과 사모님 2013-06-04 1 1663
13 [한국 나들이]13. 고사장 그녀 2013-06-03 0 1587
12 [한국 나들이]12. 추석날의 추억 2013-05-31 0 1519
11 [한국 나들이]11. 충청남도 종돈장(种腞场) 2013-05-30 0 1789
10 [한국 나들이]10. 둘만의 생일 파티 2013-05-29 1 1681
9 [한국 나들이]9. 현대화 아파트 2013-05-28 0 1688
8 [한국 나들이] 8. 권력과 돈 그리고 법 2013-05-27 0 1844
7 [한국 나들이]7. 인생 수업 2013-05-24 0 1357
6 [한국 나들이] 6. 동북아의 진주 2013-05-23 0 2323
‹처음  이전 1 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