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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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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나들이]20. 캄캄한 모텔에서
2013년 06월 13일 09시 35분  조회:2241  추천:0  작성자: 김재진
20. 캄캄한 모텔에서
 
“돼지 인공수정 센터”에서 돌아온 후 나보다 안해의 일거리가 마땅치 않아 애를 먹다가 “벼룩시장”의 광고를 읽고 한 모텔의 청소부로 들어가게 되였다.
모텔이라면 호텔보담은 작고 려인숙보담은 크고, 그러한 규모의 잠자는 장소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국어 사전을 번져보니 영문으로 “motel”이라 적어놓은 것을 보아 영어 발음을 따온 단어이고 “자동차 여행자용 여관”이라고 설명을 달아놓은 것을 보아 본의는 자동차를 몰고 일보러 다니는 운전수나 수행자들이 쉬여가는 장소로서 옛날 자동차가 귀할 때의 “마차려관”같은 작용을 하는 장소렸다. 헌데 지금 모텔은 실제로 자가용 몰고 놀러 다니는 남녀가 함께 들리여 침대위에서 즐기는 장소로 전용되고 있다. 중국에선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명사인지라 안해도 그저 려관으로만 알고 방 20개에 청소부가 둘이라니 식당보조보다는 일이 쉬우리라 생각했다.
일하러 떠나는 날 아침, 나는 짐을 챙기는 안해를 보고 말 하였다.
“짐을 많이 갖고 가지마오. 갈아입을 속옷이나 한견지 넣고 치솔이나 하나 넣고 가서 며칠 해 보고 할만하면 다시 와서 짐을 챙겨가는 것이 좋겠소.”
안해도 동감이였다. 허지만 “고까짓것!”하는 자신 만만한 자태였다. 가방 하나 달랑 메고 꽃 놀이 가듯 흥얼거리며 안해는 떠나갔다.
분당 지하철역에서 내려 전화 가르킴대로 오른손편 길을따라 얼마를 안 가니 모텔이 나타났다. 올려다보니 이상하게도 다른 층집과는 판 달리 창문이 작았다. 사실 이상 할 것이 없다. 려관이라 잠자는 곳이니 해빛이 필요치 않고 공기통만 뚫리면 끝이다.
전화를 받은 모텔마담이 문어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확인 인사를 나눈 후 안해는 마담을 따라 층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 들어 선 안해는 어리둥절 해졌다. 밖은 대낮인데 집안의 카운터로부터 뻗은 길다란 복도는 깊은 동굴속의 야밤과도 같았다. <전기세를 아껴도 유분수지, 손님 하나나 벽에 코방아 찧으면 어쩔라구…> 모텔이란 “지하 공작자”들이 드나드는 비밀지로 남들과는 될 수록 얼굴이 맞띄지 말아야 좋다는 도리를 안해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모텔 정차장에 줄지어선 고급 승용차들의 길쪽으로 향한 번호판마다엔 걸레를 걸어 덮어놓았다. 다가 비밀공작의 수요인 것이다.
선배 청소부가 앞에 나타나서야 정신이 든 안해는 보이지 않는대로 인사를 나누고 그녀를 따라 일 할 방으로 들어갔다. 흑룡강성 농촌에서 왔다고하는 선배 녀인은 나이 60에 가까웠고 흑인처럼 검으틱틱한 얼굴에 작달막한 키와 딱 벌어진 어깨가 농사일에 굳어진 몸매였다. 한국에 오자마자 들어온 모텔인데 6개월이 지났어도 이 건물밖을 한번도 나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중국에서도 시골 마을 한번 떠나보지 못했던 순박한 여자라 이런 곳에서 먹고 자고 돈 벌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같은 중국에서 온 조선인이라는 의미에서 그녀는 더없이 반가워하며 안해를 좋아 하였다.
일이 시작되였다. 흑룡강 언니가 안해에게 일을 가르쳤다. 그녀들의 주되는 작업은 침대보를 곱게 펴는 것과 화장실 청소였다. 손님이 걸쳐 간 뒤의 침대와 침실은 어지럽다고만 해선 전혀 말이 아니였다. 금방 펴논 새하얀 침대보엔 “코물”지도며 피자국까지 더럽게 발려져 있었고 오물투성이인 화장지가 사방에 널려져 있는가하면 먹다만 음식물까지 마구 뿌려져 있는 것이 통 말이 아니다. 양복차림에 목바를 정연히 매고 아녀자와 팔을 끼고 모텔에 들어와서는 그짓을 해도 왜서 그렇게 더럽게 하는지? 것치례는 반반한데 실속은 더럽기가 그지 없다. “비단보에 개똥”이 그것이다.
안해는 구역질을 참으며 일에 손을 댔다. 고무장갑을 끼였지만도 화장지를 하나하나 쓸어모을 때마다 전신이 오싹 해 나면서 손이 움추러들었다. 화장실은 길고 짧은 머리카락 천지라 물로 한참씩 씻어내고 닦아내고 해야했다. 침대보를 갈아 펴는 일은 힘들다고만 해선 말이 아니였다. 침대보를 몇개 갈고나니 힘든 일이라곤 해보지 못한 안해는 팔맥이 다 풀렸고 열손가락 손톱눈 주위가 벗겨지기 시작하였다. 전신은 땀에 푹 젖었다. 오전에 간 침대보만하여도 50개가 넘는다. 한칸 일이 끝나기 바쁘게 카운터에서 따르릉하고 전화가 오면 또 다른 칸으로 뛰여 가야 했다. 반날일에 안해는 벌써 지쳐버렸다.
점심을 대충 먹고 숨 돌릴사이도 없이 일은 계속되였는데 안해는 벗겨진 손가락으로 침대보를 팽팽히 잡아끌어 펴고 깃을 쑤셔넣을 때마다 숨 넘어가듯 아파났다. 강 설금이 받은 혹형도 이보다 더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되였다. 땀벌창이 되고 신음소리까지 지르며 안깐힘을 다 쓰는 안해를 보기가 구차했던지 흑룡강 아줌마는 비닐빗 하나를 주어다 주면서 빗을 꺼꾸로 쥐고 빗 손잡이로 침대보 깃을 밀어넣도록 가르쳐주었다. “저녁 후 동생은 주로 화장실 청소만 하오, 침대보는 내가 펼게. 그리 힘들어 하고서야 쯧쯧쯧…”라고 혀를 찼다.
“언니, 저녁엔 대체 몇시에나 일이 끝나요?” 한시 급히 아무곳에나 벌렁 들어누워 버리고 싶은 나의 불쌍한 안해였다.
“24시간 영업인데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 우리한테 휴식시간을 주는거요.”
“예? 그러면 몇시간 로동이죠? 18시간 로동! 너무 합니다! 그렇게 긴시간 일 시키고도 월급은 고작 100만원, 식당일보다 더없이 고됩니다.” 안해는 속으로 무조건 투항을 선고 했다.
안해는 모텔에 오기전 고향친구 희숙씨의 소개로 안양의 한 한바(건설장 식당)에서 도우미 일을 했었다. 일도 전혀 힘들지 않았고 일하는 시간도 짧고 먹고 자기도 편리하고 모텔일에 비기면 꽃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해의 신체로서는 감당하기가 힘들어 겨우 열흘을 하고 집에 와서 추석을 쇤 후 안 가버린 신세다. 관절염인 두 다리는 퉁퉁 부어나고 두 발은 고무장화 속에서 괴여 터지고 밤이면 뼈마디마다 쑤셔나는데 모기떼까지 살판치며 괴롭혔다. 하여 물과 멀리하는 일거리를 찾는다고 나선 것이 승냥이 굴에서 호랑이 굴로 굴러 떨어진 격이다.
나의 안해를 두고 “공주님의 몸에 시녀의 명으로 태여난 애”라고 나의 장모님께선 일찍 말씀 하셨다. 일을 전혀 할 수 없는 존귀하고 연약한 몸으로 태여나 고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가련한 운명을 가졌다는 비유일 것이다. 그는 20대 초반에 큰 수술을 했었고 30대 초반에 또 큰 수술을 하였으며 40대 말에는 암 수술을 세번이나 하였다. 그런 몸으로 한국에 나온 것만도 기적이 아닐 수 없는데 일해서 돈까지 벌려니 그 고초야말로 뭐라고 더 형용키 어렵다. 돈 잘 버는 남자나 만나 살것이지… 허지만 나같이 돈 못 버는 멍청이와 한생을 살도록 태여난 불우한 운명인걸 무슨 수가 있단 말인가? 그 누구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행복을 안겨 줄것이 소원일 것이다. 나로서는 안해에게 미안한 마음에 휩싸이고 자신의 무능함을 통탄 할뿐이다…
하루에 방 열개만 깨끗이 청소하면 끝나는 청소공인줄로 알고 모텔일에 덤벼든 안해는 크게 오산 한 것이다. 저녘 10시가 되자 주인은 밤참을 먹으라고 전화가 왔다. 밤참이라야 고작 밀갈루 부침개 몇개였다. 배가 고픈지라 그것도 별미였다. 다시 청소 할 방에 왔는데 어데선가 전화벨이 울렸다. 둘러보니 손님이 두고 간 핸드폰이라 안해는 데꺽 주어열고 “여보세요”를 불렀다.
“누군데요?”하고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나요? 중국에서 온 아줌만데요.”
“근데 왜 아줌마가 그 핸드폰을 받아요?”
“예, 그런 당신은 이 핸드폰 주인과 어떻게 되신데요?”
“나 그사람 마누라야!” 겨우 참던 분노가 폭팔하였다.
“예-- 마님 어쩌죠? 당신 남편 예쁜 아가씨 끼고 이 모텔에 와 시원히 한판 하고 이 핸드폰만 남겨두고 방금 콧노래 부르며 나가던걸요. 나같은 불쌍하구 죄 없는 청소부 아줌마하구 전화로 야자나 부르며 큰 소리 치는 여자는 남편의 배신 받기엔 딱이네요!” 안해는 깔깔 웃으며 말하였다.
“거기가 어디야?!” 당금이라도 뛰여와 머리칼이라도 잡아끗을 듯한 기세다.
“여기요? 하하! 나 몰라, 남편하구 물으면 알려줄건데, 잘 물어보고 와요.”
안해는 깔깔거리다가 핸드폰을 꺼버렸다.
“동생, 남의 집에 불을 질러놔서 어쩌나?” 흑룡강 아줌마가 벌벌 떤다.
“콱 싸우라지요! 그리고 언니, 이 핸드폰은 언니가 갖고있다가 후제 번호를 바꾸어 쓰던지 아니면 팔아버리던지 하세요.”
“그래도 돼?”
“그럼요, 다시 안 와요. 와도 모른다면 다구요, 나한테 밀어도 되구요.”
“안그래도 화장품이구 시계구 두고 가는 것이 많아 쓸만한건 내가 감추어 두었소… 이보오 동생, 우리마을에서 한국에 시집 온 애가 둘이나 있소, 그래서 나두 작은아는 한국에다 시집보낼까 했댔는데 와보니 한국 남자들이 다 개요 개, 메슥거워 한국 남자한테는 정말 안보내겠소.”
둘이 찍고 박고 신나려는참에“따르릉ㅡ” 일 독촉 전화별 소리가 그들의 대화를 끊어놓았다. 그들 둘은 한바탕 통쾌하게 웃었다. 그웃음에 하루의 피로가 조금이라도 가셔지는듯 했다.
모텔에 오는 손님은 대부분 한시간내지 두시간정도 머물고 간다. 그러니 모텔마담은 돈벼락을 맞는 것이다. 하루 24시간 영업이니 방 20개라 한방에 적어도 손님이 열번 이상으로 오니깐 매번 5만원이라쳐도 하루에 수입이 천만원이다. 그 절반으로쳐도 한달 수입이 억 오천만원이다. 그러니 거리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 모텔이란 간판이다. 그만큼 모텔 사용자가 많다는 것을 말한다. “살펴볼라니 한국남자 90%가 바람둥임다.” 이는 나의 안해가 “삶의 현장”에서 얻은 결론이다. 사람들은 연길을 작은 서울이라 말한다. 서울처럼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내재적 원인ㅡ서울에서 뭘 하면 앵무새처럼 연길에서 뭘 따라 한다는 그소리이다. 특히 불량한 것이라면 더욱 잘 옮겨지는 법이라지만 “모텔문화”만은 전염이 되지를 말았으면…
복도 제일 끝머리에 합판으로 막아놓은 작은 칸이 있었다. 손바닥만큼한 창문을 열어놨지만 바람이라곤 통하지 않는 어둑 침침한 방에 피로에 푹 절은 두 여인은 나무단 넘어지듯 폴싹 쓰러졌다. 눈은 감았어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숨 넘어가는듯한 생매(生埋)소리에 그들은 잠 들 수가 없었다.
“언니, 난 이일을 못하겠습니다. 넬 아침 돌아가겠습니다.”
“동생, 내가 일을 더 맡아 할테니 가지 마오.”
“아니, 일하는 시간도 너무 길고 일도 너무 힘들고 게다가 구역질까지 나서 못 하겠습니다. 집에가서 쉬면서 다른 일을 찾아볼 예산입니다.”
“동생하구 같이하면 참 좋겠는데…넬 가믄 오늘 일한 돈도 안 줄건데…” 
“안 준대도 할 수 없지. 언니도 이런 일 하지말고 다른 일 찾아요. 할 일은 영 많씀다. 언니는 농촌에서 단련된 몸이라서 아무일이라도 다 잘 할껨다.”
“아직 전철도 호분자 못 타봤는데 어떻게?… 잠시는 그냥 해야 될것 같으오. 불법이라 잡히믄 쫓겨 간다던데…”
그녀는 한숨을 휴ㅡ 내 쉬였다. 밖에 나가 돌다간 경찰한테 잡혀 쫓겨가고 만다는 마담의 말만 들어왔고 비자 연기 수속도 모르는지라 하지 못한 처지였다.
날이 밝자 안해는 마담하고 일을 그만두겠노라고 말하였다. 하루 삯전은 주어도 좋고 돈 나올 때 언니한테 보태주어도 좋다고 했다. 안해의 태도가 하도 단호하니 주인은 돈 3만원을 주면서 “그렇게 고추장 맛보기 할라믄 오지나 말든가, 세상 쉬운일이 어데 있을라고…”하며 두덜거렸다.
어둑 침침한 모텔문을 나서니 몇년만에 구치소에서 풀려나오는 심정이라할까, 눈앞이 환해지고 흐리멍텅하던 머리가 개운해지며 갑갑하던 가슴이 확 트이는듯 긴 숨이 “후ㅡ”하고 절로 나왔다.
안해는 지친몸을 이끌고 힘들게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또 “벼룩시장” 한웅큼 안고 들어왔다. 며칠간의 연구끝에 가정부 생활을 “체험”해보기로 결정되였다.
서울강남에 일흔이 잘 된 할머니를 모시고 아들 딸 오누이를 둔 40대 초반의 현씨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큼직한 일식점을 경영하고 있었고 일때문에 밖에서 많이 돌다보니 아들 딸 교육과 관리가 제일 큰 문제라고 했다. 딸애가 아홉살이고 아들애가 일곱살인데 초등학교 삼학년과 일학년이였다.
안해는 원래 사범학원을 나온 로교원이다보니 자신있게 대답을 주었다. 사모님은 긍정적인 사유을 가졌고 성격도 시원해 마음 든다면서 안해를 기꺼이 받아주었다. 그러면서 려권과 보호자의 각서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일부 품질이 나쁜 아줌마들이 가정도우미로 들어갔다가는 귀중품을 훔쳐가지고 도망쳐버리는 일들이 있었기에 주인집에서 려권을 받아두는 것이 공통법칙으로 되여 있었다.
나는 일식점의 떨어진 곳에서 잔비를 맞으며 한시간을 서성거리다가 안해가 면접에 합격되였다는 신호를 보내자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돌아섰다. 집으로 향한 발걸음은 무거웁고 가슴은 쓰리였다.
캄캄한 모텔이라서 하루밖에 견디지 못하고 돌아선 그가 부잣집 머슴으로는 얼마나 뻗힐 수 있을런지? 다른것 보다는 스트레스를 참고 이겨내야 할 것이니 꼭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려야 한다고 몇십번을 말해주었고 그도 그러리라 결심하고 떠났으나 말이 쉽지 그 심리적 고통을 어떻게 감당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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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라주
날자:2013-06-13 20:53:41
한국생활을 세절적인 사실로서 잘 썼군요 좋은글 많이 쓰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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