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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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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나들이]18. 품 값
2013년 06월 08일 08시 44분  조회:1699  추천:0  작성자: 김재진
18.  품  값                
 

 
부천에 돌아와 이삼일간 푹 쉬였다. 안해와 함께 시장돌이 하면서 금점에 가 반지를 바꾸었다. 우리들이 옛날에 만들어 낀 반지는 24k 순금이라서 색갈도 곱지 않고 디자이너도 그닥잖은데다가 경도(硬度)가 차하여 찌그러들기도 하였다. 우리는 보석이 박힌 18k 반지로 바꾸어 하나씩 끼였다. 18k는 24k와 달리 무르지 않아 변형이 가지 않고 색갈도 어두워 지지않는다. 인생도 사랑도 18k 처럼, 자그마한 보석 처럼 영원히 변치말고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였다.
“벼룩시장”을 한동안 뒤번지다가 “때밀이 강습반 학원모집”광고에 눈길이 멈췄다. 이튿날 명동 “제일 모욕관리원”에 가 40만원을 내고 때밀이 강습반에 들어갔다. 자그마한 지하실에 합판을 세워 세칸으로 나누고 첫 칸은 책상 하나 놓고 사무실로 쓰고 두번째 칸은 갱의실, 세번째 칸이 강습실인데 작은 나무 침대 두개에 큰 물통 하나가 놓여 있었다. 시설이 나쁘면 뭐라나, 재간만 배우면 되는거지. 돈벌이 보담 재간 배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나였다. 재간이면 영원한 재산이 아니겠는가?
우리 나이와 비슷한 김혜환 이정옥부부가 꾸리는 강습반인데 오전엔 남자들이 한시간반 배우고 오후엔 녀 학원들이 배운다. 이렇게 한달을 배운 후 일자리를 찾아 준다고 한다. 나의 안해는 함께 배우고 싶어 하면서도 그일이 힘 겨울거라 감히 덤벼들지 못하였다. 세주일간을 때밀이와 안마를 배우면서 련습한 후 한주일은 실습이라고 두곳엔 두날씩 다니고 한곳은 하루 갔었다. 때 미는 일은 얼마 못 하고 주로 목욕탕 청결일을 하였는데 일당 품값 3만원씩 받았다.
마지막 날 억수로 쏟아지는 폭우를 무릅쓰고 인천 연안부두“명진해수탕”에 갔었는데 어쩌다 4만원을 받았다. 헌데 퇴근하려 할 때 난데 없이 한 놈 나타나 그것이 자기가 소개한 일자리라며 소개비 3만원을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날강도가 따로 없구나>고 생각 하면서도 나는 그런 놈팽이와 싱갱이질 하는 것이 질색이고 또한 시시비비 해봤자 이길 수 없을거라 달라는대로 줘버렸다. 그러고는 그곳으로 일 하러 다시 가지 않았고 성이 방가인 그놈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마도 강습반쪽을 통해 나의 핸드폰 번호를 알았던 모양이다. 사흘 후 강습반 김선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왜 인천 사우나에 하루만 가고 마느냐 하는 것이였다. 통근 길이 멀어 힘드니 부천이나 그 부근에 일자리를 알선 해달라고 부탁 했다. 이틀 후 다시 전화로 부평에 있는 “전방 사우나”를 소개 받았다. 인천에 안 간 것은 사실 거리문제는 아니지만 부천에서 부평까지는 인천 가기보담 절반 거리도 아니되니 괜찮은 편이다. 보증금 50만원을 내고 밤 일군으로 채용 되였다.
저녁 다섯시에 출근해 여덟시까지 청소를 해야한다. 엄청 큰 사우나라서 좀만 굼뜨면 청소일은 아홉시를 넘긴다. 먼저 이동식 양수기를 작은 수영장만큼한 랭수 욕탕에 가져다 넣어 낮에 쓴 낡은 물 뽑기를 시작 해놓고 초약 욕탕, 홍송 욕탕, 더운물 욕탕, 뜨거운물 욕탕의 낡은 물들이 절로 빠지게 바닥의 하수도 구멍 마개들을 하나하나 뽑아놓는다. 한편 고무 장갑을 끼고 세척제 물로 20개의 샤워분두(淋浴 喷头)가 달린 사기벽과 바닥 그리고 작은 비닐걸상을 깔고 앉아 때 벗기는 넓다란 구역의 바닥과 탁, 거울들을 걸레질 하고 맑은 물을 뿜어 씻어내린다. 찜질실과 고온 안개실 역시 맑은 물을 쏘고 쓸어낸다. 물 빠진 욕탕들은 닦아내고 요구하는 온도에 맞게 물을 다시 댄 후 초약탕에는 이미 배합 해놓은 약주머니를 던져 넣는다. 이때면 랭수 욕탕의 물이 발등 높이에까지 줄어드는데 걸레로 바닥과 벽을 밀고 하수도 뚜껑을 열어 오수를 완전히 뺀 후 맑은 찬물을 댄다.
낮 일군들은 나한테 맡기고 여섯시면 퇴근한다. 그때면 저녁 먹는 시간이라서 그런지 고객 몇이 없다. 청소를 끝내고나면 때밀이 받을 고객 한두명이 기다리고 있는데 젊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 부자간일 때가 많다. 때밀이 복무비는 어른은 만원이고 어린애는 오천원 받는다. 한사람을 미는데 걸리는 시간은 20-25분이다. 새벽엔 로인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등 밀어 달라는 로인은 하나도 없다. 초약 물이나 제일 뜨거운 물에 몸을 한시간씩 담구고 나서는 뿔뿔이 아침 식사하러 간다. 안마비는 일인당 4만원인데 나는 초보라고 3만원씩밖에 받지 않았다. 더 받는건 모르겠지만 남들만 적게 받는건 내 맘대루였다. 그나마 한달 사이 안마를 받으려는 손님 둘밖에 만나지 못하였다. 고객이 나갈 때 카운터에 돈을 내고 아침에 퇴근 할 때 카운터에서 나에게 내가 수입한 돈의 80%를 준다. 그들의 장소에서 돈벌이 하는 값으로 수입의 20%를 바치고 청소일을 감당하는 것이니 비교적 합리한 셈이라 하겠다. 헌데 내가 청소일을 한 품값만큼 장소를 쓸 수 있도록 때투성이들이 몰려 와야는데 그렇잖으니 품값도 못 받고 날마다 죽도록 청소일만 해주는 신세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한달 사이 어쩌다 딱 한번 하루밤에 열사람을 밀어주어 8만원을 벌어보았다. 이튿날 부근에서 뭐 신체 검사를 한다나? 평일엔 겨우 2-3만원씩밖에 벌지 못 한다. 그런데다 집에서 세시에 떠나기에 부평에 도착 한 후 먼저 저녁을 먹어야 하고 오가는 교통비가 들어야 한다. 첨엔 안해가 도시락을 싸 줬었는데 그것도 헐찮은 일이고 안해 또한 아무 일이나 찾아 밥값이라도 해야지 도시락 하나 보고 집에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라 부득불 음식점에서 먹기로 한 것이다.
아침 여섯시에 출근 하여 저녁 여섯시에 퇴근하는 낮대거리는 한사람이 열 서넛씩 밀고 주말엔 30명 좌우씩 민다. 나보다 평균 열배씩 버는 판이다. 그들은 둘 다 김씨이고 부평구의 토박이인데 하나는 대개 마흔살쯤 돼 보이고 한놈은 그보담 댓살 정도 위였다. 나이 더 먹은 김 산수(이름도 페롭다, 산수가 뭐여?) 란이가 사우나 남탕 때밀이와 안마일을 도거리 맡은 오아지이다. 오아지란 한국에 와서 새로 듣게된 말인데 십장이나 두목을 일컸는 말로 나는 안다. 그위에 또 사우나 남탕을 임대 맡은 성이 장씨인 경리가 있고 경리위에 사우나를 만든 사장이 있고 사장위엔 건물을 지은 건설회사의 동사장인지 회장인지가 있다. 건물주는 사장들한테서 집세를 받아 벌고 사장은 집을 세맡아 여러가지 영업터로 꾸며 다시 여러 경리들한테 나누어 임대준다. 사우나같은 경우는 사장이 경리들이 바치는 임대료만 버는 것이 아니라 사우나 입장비도 벌고 있었다.
지하 2층에 내려서면 본 카운터에서 사우나 입장권을 사야하는데 낮에는 사장의 며느리가 앉아 있고 밤엔 아들이 앉아 있다. 표를 사고 오른켠 문을 열고 들어서면 녀탕이고 왼켠이 남탕이다.
남탕에 들어서면 먼저 잠글쇠가 달린 신 보관함이 벽에 설치돼 있고 한켠에 구두닦는 아저씨가 앉아 있다. 그앞을 지나 오른켠으로 사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문안 오른켠에 작은 카운터가 하나 있다. 거기에다 입장권과 신 보관함의 열쇠를 바치면 신 보관함과 같은 번호의 옷 보관궤의 열쇠를 준다. 낮에는 남탕을 임대 맡은 장경리가 카운터를 지키고 밤에는 장경리의 조카애가 앉아 있다.
작은 카운터에선 표를 받고 열쇠를 바꿔 주는 외에 목욕탕에서 쓸 수 있는 잡동사니들을 파는 것이 주업이였고 거기에서 돈이 벌어졌다. 수건, 팬티, 양말, 머리 감는 물비누, 일회용 면도와 코털가위, 치솔, 과자, 사탕, 삶은 계란 등등 수십가지였다. 철통맥주와 음료들은 카운터 밖에 놓은 유리문 랭장고에 가격별로 줄 세워 넣어두어 마시고픈 사람은 절로 꺼내고 카운터에 가 돈을 낸다. 랭장고 제일 윗층엔 한봉다리에 몇만원씩 하는 인삼액과 같은 보건약물도 놓여있다. 거기에서 파는 음료나 물건들은 슈퍼보다 몇갑절 비싸지만도 잘 팔리는 편이였다. 계란만 놓고 보더라도 가격차이가 다섯배나 된다. 슈퍼에선 생계란 한알에 100원(한틀에 30개씩 담아 3000원)인데 사우나에선 삶은 계란 하나에 500원이다. 특정된 환경에서 하는 장사라 나무랄 것이 없는 일이고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사 먹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새벽 두 세시쯤 되면 근본 때밀이 받으려는 사람이 없다. 수십명 사람들이 수면실에 꼬부라 지거나 휴식실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텔레비를 본다. 이럴 때면 나는 장경리의 조카애를 대신하여 카운터에 앉아 책을 보며 돈도 받고 열쇠도 바꿔준다. 스무살이 되나마나한 어린애가 얼마나 졸리랴 싶어 새벽 손님들이 몰려들기 전에 눈을 부치게 하는 것이다. 그 조카애의 집도 부천에 있었다.
카운터 곁방은 리발관이다. 리발사 셋은 모두 낮에만 출근 한다. 신닦는 젊은 아저씨와 휴식실 청소공 아저씨도 낮에만 나온다. 밤에는 머리 깎을 사람도 구두 닦을 사람도 없으니깐. 그러니 때밀이 받을 사람이라고 따로 있을리 만무하다.
밤에는 잠자러 오는 사람들 뿐이다. 사천원 내고 목욕 실컷하고 영업 정지만 아니라면 백년을 들어박혀 자도 쫓는 사람이 없다. 수면실엔 2층으로 된 침대를 수십개 놓았고 까딱하면 콩크리트 대들보에 이마가 쫏기는 다락방 같은 윗층 널마루 바닥에는 목침과 타월식 이불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막일 다니며 품값 받아 홀로 사는 나그네들 휴식처로는 꽤나 괜찮은 곳이다. 헌데 꼭 배불리 먹고 들어와야 한다는 것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녀탕에서 꾸리는 간이 음식점에 전화만 누르면 국밥이나 라면같은 것들을 가져오지만 어느만큼이나 비싸리라는 것은 계란 값에 대해 이미 비교 해 본바이니 다시 말 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는 휴식일이 없었다. 내가 결근하면 욕탕의 물을 바꾸고 청소일을 해 줄 사람이 없으니 쉴 수가 없었다. 마침 9월 21일이 추석이라서 19일 저녁부터 21일 저녁까지 영업을 정지 하였기에 두날 밤을 쉴 수가 있었다. “19일 저녁 9시부터 21일 저녁 6시까지 영업을 정지하고 설비 보양을 하오니 광범한 고객님들의 양해를 구합니다!”라고 흰종이에 크게 써서 부쳐놓은 것이였다.
21일 오전, 안산시에서 일하는 륙촌처남 춘석이가 추석이라고 술병을 들고 놀러 왔다. 그는 농촌 신용사의 회계라는 괜찮은 공무원 직을 버리고 연길에서 몇해간 택시업을 하더니 삼년전에 한국으로 왔다. 안해는 외사촌동생 미옥이한테 전화를 쳤다. 미옥이 남편도 추석이라 마침 집에 있었다. 사촌이고 륙촌이고 어릴 때엔 모두 산골 마을에서 네집 내집 따로 없이 함께 뛰놀며 자란 형제 자매다. 두 녀자가 부지런히 안주를 볶아대고 세나그네는 부지런히 잔을 비웠다.
“형부, 제 한잔 붓자요.” 미옥이가 차례로 술을 따른다. “언니, 한국에 와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앉을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소.” 잔을 추켜들고 미옥이를 따라 이구동성으로 “위하여!”를 높이 웨쳤다. 웨친것만은 사실인데 뭘 위하자 했던지 지금 생각히질 않는다. 술이 거나하게 되자 그들 넷은 노래방으로 놀러 가고 나는 출근 하였다. 품값도 벌지 못하면서 만 한달째 다니고 있었다. 술 마시면서 한국에 나온지가 오래된 처남과 동서는 나에게 알맞는 일자리를 찾아 주리라고 약속하였다. 춘석이는 안산에서 괜찮은 회사에 취직 했고 미옥이 실랑은 목공 20명을 거느리고 건설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추석이 지난 이틀 후 과연 춘석이한테서 소식이 왔다.
밤 열시, 내가 휴식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춘석이와 즉시 통화 하라고 안해한테서 전화가 왔다. 인천 공업단지 한 회사에서 용접공을 수요하고 있는데 이튿날로 출근해야 한다는 것이였다.
이튿날 아침, 오아지가 출근하자 나는 당일 저녁부터 안 나오겠다고 말 하고 보증금인지 뭔지 내가 낸 돈 50만원을 돌려 달라고 하였다. 그는 무지 성난 어투로 장경리와 말 하라는 것이였다. 불시로 청소 해 줄 사람이 없어지는데 누구든 좋아 할 리는 만무한 것이지만 그는 원래 도툴 없이 제정시대 십장놈 모양이였다. 얼마전 그와 낮일을 함께 하던 김씨를 억지로 내보내고 연길에서 온 한 젊은이를 받았는데 중학교 교원질을 하다가 한국에 왔다는 그는 이틀을 삐쳐보고는 치질병이 도져 못 하겠노라고 구실을 대고 나가버렸다. 나가면서 왜서 이런 곳에 박혀 헛 고생만 하느냐고 나한테 의혹을 표하였다. 그는 자기 안해가 3년 먼저 한국에 와 벌어놓은 돈이 있으니 그 돈으로 때밀이 일을 도급 맡은 후 함께 해보자는 것이였다. 그 젊은이가 나간 후 역시 중국 흑룡강성에서 온 청년이 들어왔다. 사우나 일을 하고저 하는 조선족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때밀이 강습반에 등록 할 때 일년 사이 배우고 나간 조선족만 하여도 50여명이고 몽땅 일자리를 알선해 주었노라고 김 혜환선생님은 등록부를 펼쳐 보이며 자랑 했었다.
내 나이와 비슷한 장경리는 오아지보담 목소리도 낮고 말수도 적고 싹싹한 편이였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아침 자기 조카애와 나를 자가용으로 집에까지 실어다 준 일도 있다. 그러한 장경리와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하기가 민망스럽긴 했으나 말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장경리는 돈이 갖추어지면 전화 해 줄터이니 그때에 와서 가져가라는 것이였다.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였다. 며칠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기에 내가 휴식하는 날 안해와 함께 놀음삼아 그 사우나로 찾아갔다. 일이 안 될라니 그날 마침 장경리는 몸이 안좋아 출근하지 않았고 카운터에는 오아지 김 산수가 앉아 있었는데 “돈이 갖추어지면 전화 한다고 장경리가 말 했다면서요?”하니 더 말 할 나위도 없었다. 돌아져 나오는데 신닦는 젊은 아저씨가 “아저씨, 돈 찾았어요?”하고 말을 건넸다. 내가 돈 찾으러 온 줄 그가 어떻게 아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장경리 안 계셔 못 찾았습니다.”
“꼭 찾으세요.”
“예, 그럼요. 그럼 수고 하세요!”
“또 오세요!”
“안녕 하세요?” “고맙습니다!” “또 오세요!”는 그의 직업적 용어이지만 한달간 아침 저녁으로 만났던 사람이라고 아는척을 하고 고무 해 주니 고마웠다. 그는 오른발 앞부분 절반이 잘리워 없어진 장애인이였는데 이미 잘리워 나간 때밀이 김씨와 가까운 사이였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고 십여년간 여러개의 사우나로 함께 일하러 다녔었다. 그런 그들을 갈라 놓았으니 불만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후 나는 다시 찾아가지 않고 나의 작은 조카애가 여러번 전화를 걸어 겨우 30만원을 찾아왔다. 강습비 40만원에 떼운 보증금 20만원을 버리니 센터에서 돌아 온 후 두달 사이 고생만 하고 품값을 벌대신 30만원가량 꺼꾸로 처넣고 말았다. 남들은 한국에 나오면 돈을 잘들만 번다고 하는데 이놈이라구야… 그러니 속히 자리를 옮겨야 한다. 춘석이가 추천하는 일자리가 어떨런지 모르나 용접일이라니 할만한 것이고 또 듣자니 용접일은 일반적으로 품값도 높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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